회개한 멜모스·아듀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파롤앤(PAROLE&)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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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 분량이면, 다른 작가한테는 중편이겠지만 적어도 발자크는 그냥 단편이라 해야 할 두 작품을 실었다. <회개한 멜모스>와 <아듀>의 공통점이라면 1812년 모스크바를 함락하기는 했지만 추위에 뒷덜미를 잡힌 프랑스군 최악의 퇴각전투인 “베레지나 도하” 참전 군인을 다루고 있다는 거다. <아듀>는 아예 내놓고 전투 장면을 상세 묘사하고 있다. 당연히 발자크가 썼으니 실제보다 더 혹독하고, 비참하고, 춥고, 살 떨리는 장면의 연속상영이다. 그리하여 <아듀>에 관해서는 독후감 열라 써봤자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거야말로 백문이불여일견, 아무쪼록 직접 읽어 보시기 권하고, <회개한 멜모스>를 이야기해보자.


  <회개한 멜모스>는 금천출납계원이라는 직업인에 대한 발자크 식 설레발로 시작한다. 사회계에서 문명이 밪어낸 희한한 인간종이며 인간의 형상을 한 피조물이라고 했으니, 이게 인간, 즉 사람이란 얘기인지 사람도 아니라는 뜻인지 독자를 현혹하기 시작한다. 발자크의 눈부신 구라를 그래도 소개해보자.


  “영락없는 인간의 형상을 한 피조물인 그 종은 신앙심을 통해 수분을 공급받고 단두대라는 지지대로 줄기를 꼿꼿이 세우지만, 악행의 손으로 자잘하게 가지치기되면서 건물 4층에서 참한 아내와 성가신 아이들에 둘러싸여 나무처럼 자란다. 파리에 서식하는 금전출납계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두고두고 생리학자를 괴롭히는 문제로 남을 것이다.” (p.10)


  이어서 발자크는 독자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덫에 갇힌 생쥐를 앞에 둔 고양이처럼 항상 돈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시겠는가? 방범 철창이 쳐진 좁은 공간 속에서 일 년의 7/8을 매일 7시간에서 8시간 동안 등나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선박 조타실에 못 박혀 있는 항해사보다도 덜 움직이는 재주를 지닌 사람을 떠올려보시겠는가? 그런 일에 종사하면서도 무릎이나 골반 관절에 경직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을 떠올려보시겠는가? 왜소하다고 할 만한 몸집을 가진 사람은? 돈을 하도 많이 다루어서 돈이라면 신물이 날 법한 사람은?” (p.11)


  발자크가 관찰하고 경험한 금전출납계원은 역사를 이 잡듯 뒤져봐도 번듯한 지위라고 할 만한 자리에 올라간 계원을 발견할 수 없었고, 결국엔 중죄인 감옥에 수감되거나, 외국으로 도피하거나, 마레지구 생 루이가의 어느 집 3층에서 죽은 듯이 살게 된단다. 이 당시 파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층이 위로 올라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니, 생 루이가의 3층에서 “죽은 듯이” 산다는 걸 보면 결국 인생이 찌그러진다는 뜻이겠다. 금전출납계원. 지금 시대에는 거의 사라진 직종이다. 은행에 가면 플라스틱 박스 안에서 주로 현금을 내주고 받는 행원을 말한다. 현금 시대에는 은행마다 있었는데 지금은 본 것 같기도 하고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발자크가 이렇게 하루 종일 지독한 돈 냄새를 맡으며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한테 박한 평가를 했는가 하면, 견물생심이라고, 돈을 자꾸 만지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필요한 만큼 돈이 없는 사람한테 사고가 생길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나도 살면서 봤다. 돈 액수에 민감해지지 못하는 은행원. 출납계원과 은행,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부오나파르테 나폴레옹이 쌍코피가 터지고나서 프랑스에선 루이 18세가 왕정을 복고한다. 이 시절인 1815년 이후 돈의 원칙이 명예의 원칙을 대체해 우리 문명의 진정한 상처를 입혔다고 발자크는 주장하는데, 뭐 잘 모르겠다. 상처입은 “우리 문명”에서 ‘우리’의 범위에 아시아인이 들어가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하여간 이 시절 프랑스 파리 생-라자르 가에 뉘싱겐 남작이 자기 이름을 따 “뉘싱겐 은행”을 세우고, 1813년 모스크바 퇴각 당시 자신도 참전한 바 있는 스투드장카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퇴역장교, 명예 대령인 카스타니에 씨를 월급 5백 프랑의 현금출납계원으로 고용한다. 카스타니에는 정수리가 빤질빤질한 대머리의 사십줄에 접어든 사내로 반백의 관자놀이에 동그란 얼굴이며, 뉘싱겐 남작처럼 윗옷 가슴에 레지옹도뇌르 훈장의 약장을 달고 다닌다. 나폴레옹 제정 시대 용기병 대대의 지휘관이었으며 부상당해 2천4백 프랑의 퇴직금을 받고 제대한 인물이다. 은행에서는 현금 출납 외에 가장 핵심인 회계장부 업무도 지휘하고 있다. 그러니까 은행장의 핵심 측근이라는 말씀.

  이 날도 카스타니에는 일과를 마치고 은행문을 닫은 후에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여러 은행 앞으로 발행된 신용장 중에서 런던의 와차일딘 은행 앞으로 발행한 신용장을 집어 들더니, 세상에, 뉘싱겐 행장의 서명을 위조해 슥슥, 신용장에 사인을 했다. 나는 작품을 다 읽었으니 어떤 서명인 줄 안다. 귀 와차일딘 은행께서는 폐 뉘싱겐 은행이 보증하오니 위에 밝힌 카스타니에 선생에게 현금 1백만 프랑을 지급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작 뉘싱겐 서명. 이제 이 한 장을 가지고 런던 와차일딘 은행에 가면 즉시 1백만 프랑에 해당하는 세계 각국의 돈을 받을 수 있게 된 거다. 오늘은 토요일. 내일은 휴무인 일요일. 월요일은 내용은 모르겠지만 출근하지 않기로 합의가 된 날이고, 화요일 정오에 나오기로 했으니 카스타니에는 적어도 3박4일의 시간을 벌어 놓았다. 이 동안 런던에 가서 현금을 찾고 위조한 여권과 변장을 위해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이탈리아 피렌체로 가서 페라로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여생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다. 페라로 백작은 1813년 젬빈 늪지 전투에서 죽은 불쌍한 대령이다. 이 젬빈 늪지 전투가 뒤에 실린 <아듀>의 핵심 장면이라서 이렇게 저렇게 다 연결이 된다니까.

  하여간 이렇게 신용장 또는 약속어음을 봉투에 담고 속주머니에 넣은 카스타니에는 왜 이 위험한 장난을 할까? 뭐긴 뭐야? 19세기 프랑스 소설에서. 여자 때문이지. 아킬리나. ‘나키’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어린 불여우는 사십대 카스타니에의 정부가 되면서 겉으로는 그냥 아닌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남자가 스스로, 알아서, 자동적으로 온통 비싼 가구, 옷, 귀금속, 보석, 신발, 언더웨어를 사 바치게 만들었다. 2천4백 프랑의 퇴직금과 월급 5백 프랑만 가지고 있던 퇴직 명예 대령 카스타니에는 애초에 정부를 둘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미 저질러버렸으니 이걸 어떻게 해. 이제 신용장에 서명하고 속주머니에 넣은 찰라, 에그머니, 이미 은행문을 닫아 걸었건만, 현금출납 철창 뒤편 작은 창구에서 웬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거다. 영국인처럼 보이는데, 프랑스 사람이 영국인을 예쁘장하게 그릴 수 없는 법. 발자크 눈에는, 시체의 피를 빨아먹은 것 같은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붉은 입술의 30대 남자. 그는 어음을 현금 50만 프랑으로 교환하러 온 고객으로 이름을 존 멜모스라고 영수 서명했다. 이제야 멜모스가 나온다. 카스타니에가 약속어음을 받으니 희한도 하지, 돈을 주려는 순간, 그가 없어졌다. 돈을 받았다고 서명을 했지, 금고에서 돈도 꺼냈지, 지금 문을 닫으면 화요일 정오에나 열지, 카스타니에는 당연히 현금 50만 프랑도 자기 주머니 속에 넣는다. 일을 다 마친 카스타니에는 남작이 없을 때 늘 그렇듯이 남작부인,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젊은 대학생 라스티냐크의 애인이기도 한 남작부인에게 런던의 와차일딘 은행에서 발행한 약속어음 50만 프랑을 지급했다고 보고하고 드디어 퇴근한다.


  길거리로 나온 카스타니에. 그는 잠깐 즐거운 고민을 한다. 오늘은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정부 아킬리나와 함께 극장에 가서 좋은 시간을 즐기고, 내일 일어나 마르세유로 갈 때는 아킬리나를 데려가야 하나, 데려가지 말아야 하나? 그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은 다음에 오른손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탁 때려 오른쪽으로 튀면 데려가고, 왼쪽으로 튀면 피렌체에서 새 애인을 찾는 걸로 하고 손을 번쩍 든 순간, 등 뒤가 서늘해 뒤돌아보니, 에그머니, 영국인이 또 나타난 거다. 존 멜모스가. 키 큰 멜모스가 카스타니에의 귀 가까이에서 속삭인다.

  “너는 그녀를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더니 다시 선언하기를,

  “너는 떠나지 못할 것이다!”

  결론은? 언제나 불행한 예언은 들어맞는 법이다. 발자크는 결코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는 않겠지만. 궁금하시지? 얼른 도서관 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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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6-21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크리스토프 하인, <호른의 죽음>
수요일. 쥴퓌 리바넬리, <호랑이 등에서>
금요일. 송지현,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stella.K 2024-06-2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우리의 발자크 옹께서 이런 단편을 쓰셨다니 저도 좀 놀라운데요? 부담은 적을 듯하지만 왠지 그의 악마같은 표현은 여전히 만만치 않을 것 같네요. ㅋ

Falstaff 2024-06-21 15:41   좋아요 1 | URL
발자크 치고는 장황한 편 아닙니다. 책이 얇아서 권하게 되지는 않네요. ^^
 
백설까마귀 문예소설 8
츠쯔젠 지음, 동동 외 옮김 / 문예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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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작품. 초고는 2009년에 쓰고 다음 해에 두 번에 걸친 다시 쓰기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츠쯔젠의 단편집 《가장 짧은 낮》을 무척 인상깊게 읽고 얼른 인터넷 검색해 이 책 <백설까마귀>를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 단편집에서는 헤이룽장성 전역, 저 다이싱안 지역, 즉 대흥안령 산맥의 밀림부터 만주 벌판 황량한 지평선까지 북쪽 지역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자연풍광을 묘사했다면, <백설까마귀>는 1910년 가을에서 1911년 봄까지 헤이룽장성의 성도인 하얼빈 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페스트 대유행 사건에 집중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중국 북동지역의 페스트 이야기인 줄 몰랐다. 알았으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COVID-19를 겪으면서 벌써 여러 작가들이 당시의 경험을 작품 속에 쓴 바 있어서 지금까지 읽은 것만 가지고도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율리 체의 <인간에 대하여>, 이사벨 아옌데의 <비올레타>, 등. 이 중에 <인간에 대하여> 한 권으로 COVID-19 이야기가 충분했듯이, 1910년대 페스트에 대해서는 이미 알베르 까뮈가 <페스트>라는 노골적인 제목으로 끝내 버렸지 않나 싶었던 거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미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책이 도착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작품을 쓴 시기가 2010년, 중국 동북부에 페스트가 창궐하고 딱 백 년이 흐른 시기이며, COVID-19가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펜데믹에 대한 중국적 변명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중국인이 아닌 우리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감안해야 할 것이 있다. 츠쯔젠이 중국의 국가 1급 작가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문화적 검열을 펼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이며, 미국과 더불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포함해서 세계 원톱 급 애국심을 거의 세뇌 수준으로 고취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국가라는 거. 이런 나라의 국가 1급 작가라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던 청조에 대한 비판은 자유스럽게 표현하겠지만, 중국인의 우수성과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낼 수도 있는 장면은 이이의 글에서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사실 이건 중국 작가에 국한한 것은 아니다. 세상의 많은 작가들 가운데 작품 속에서 자국민이 국제적인 수모를 당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인간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츠쯔젠이 다행인 것이, 《가장 짧은 낮》에 실린 단편소설 열여섯 편이 모두 명품이었던 것처럼 짧은 이야기를 맛나게 쓰는 작가라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페스트, 한 가지 주제를 스물두 개의 소제목을 달아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각 챕터를 구성하고 썼다는 점이다. 펜데믹, 그것도 20세기 초반에 실제로 있었던 페스트이지만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와 일본이 철도공사를 완성하고, 러시아는 자기들 철길에서부터 (출판사 오식이겠지만) 15,000km 이내의 탄광에 독점적인 채굴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타 청말의 골수를 빼먹기 위해 일본과 서구 열강들이 모두 집결해 있는 도시였다. 그리하여 다른 곳보다 이 먼 변방일지라도 하얼빈에서는 서구 과학과 의학이 선진적으로 유입되어 그나마 나은 편이었음에도 하얼빈 푸자뎬 지역에서 살고 있던 2만 명의 중국인 가운데 7천여 명이 죽었으니 세 명 가운데 한 명이었던 셈이다. 물론 러시아, 프랑스, 일본인들도 죽음의 신을 피해가지는 못했지만 외국인의 피해는 작가의 눈을 적극적으로 끌지는 못한다. 이런 큰 비극에도 역시 츠쯔젠이라서, 이이는 작품 전반을 큰 비통과 곡소리, 참혹, 이기심 같은 것으로 채우지 않는다. 아무리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늘 슬픔과 난관과 호곡과 인내만 있는 건 아니라서 촌철 같은 유머와 풍자와 눈썹 같은 즐거움의 순간도 있는 법인데, 이걸 놓치지 않았다.


  작품은 1910년 가을,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날 시작한다. 하얼빈 시 푸자뎬. 중국인 밀집 지역이다. 당시 하얼빈은 인구가 막 10만 명을 넘긴 상태였다. 러시아에 의하여 중동철도가 놓이고, 이후 철도를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인력이 대폭 유입되어 러시아 사람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철도 노동자나 기타 잡일을 찾아 유입된 중국인 유민이 푸자뎬 지역에 모여 육체노동과 작은 가게를 열어 살았다. 푸자뎬에는 큰 느릅나무가 서 있었고, 가을을 맞아 나무는 엄청난 가산을 탕진한 몰락한 부자처럼 민둥민둥하고 이파리도 몇 개 남지 않았으나 물기가 많지 않은 가지가 아래로 축 쳐져 있었으니 가지마다 새까만 까마귀들이 빽빽하게 앉아있었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왕춘션(王春申)이 어두컴컴한 녘에 새까만 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돌아온다. 싼푸캉三鋪炕 여인숙의 주인이다. 중국인은 돈 있고 권세가 있다면 세명의 처와 여섯명의 첩을 거느리는 삼처육첩을 특권으로 여기는데, 하얼빈의 빈민가에 초가를 짓고 여인숙을 연 왕춘션은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처 우펀吳芬과 첩 진란金蘭을 두었다. 우펀과 결혼해 오손도손 살기 바랐지만 아이 둘을 연달아 유산한 후로 그만 아기를 들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니, 시어미가 날이면 날마다 모질게 손주 타령을 하는 바람에 그걸 견디지 못해 첩 진란을 들였다. 그런데 이 진란으로 말할 거 같으면 이름만 어여쁘지 푸자뎬에서 추녀로 이름이 높았다. 츠쯔젠은 진란을 사시, 들창코, 돼지 주둥이에 뻐드렁니, 땅딸하고 뚱뚱한 곰보이며 숫처녀라고 묘사했다. 너무 못생겨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뜻일까? 그래도 결혼을 했으니 진란은 임신을 했고, 아들 지바오繼寶, 딸 지잉繼英을 생산했다. 근데 문제는 왕춘셴이 진란과 첫날밤을 치루지 않았는데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다는 거. 진짜 아이의 아비는 아마도 노점하는 맹인 장씨 아니면 쓰레기 줍는 사마귀 이씨로 짐작할 뿐이었다.

  모친이 죽자마자 왕춘셴은 은기와 집을 팔고 통파가同發街의 초가 판자집을 구입해 여인숙을 시작했다. 큰 방 둘, 작은 방 하나를 구비해 한 번에 스무 명 정도 숙박이 가능하단다. 왕춘셴은 물 기르고, 땔 나무를 장만하고, 음식물 구매와 배표 예매를 대행했다. 우펀은 불 피우고, 정소하고, 이불 세탁하고 장부정리 일을 맡았고, 진란은 부뚜막에서 하는 거친 작업을 했지만 잘 먹을 수 있어 만족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됐는데, 그러면 뭐해, 남편이 두 여자 가까이에 오지 않는 것을. 한참 나이에 밤이면 밤마다 바늘로 허벅지만 찌르고 있을 수 없던 우펀이 드디어 출장 온 말장수의 배 밑에서 발견되었고, 그래도 남편이란 작자가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인 것을 알고는, 자신 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남자를 물색하기 시작해 하일라르에서 ‘칼 기술자’ 즉 아편 자르는 일을 하다가 당국이 아편을 금지시키자 만주에서 가죽제품 장사로 업종을 변경한 바인巴音을 아예 집에 들어 앉힌다.

  이것을 본 진란도 기죽기 싫어 남자를 물색하지만 워낙 출중하게 눈에 띄는 외모라 남자들이 기겁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한 남자가 들어왔으니 자금성 환관출신 디이셩. 허벅지 사이가 훤히 비었지만 놀랄만큼 민감한 손과 손가락을 가지고 있어서 손만 댔다 하면 진란은 하룻밤에 대여섯 번도 넘게 죽어 넘어갔다고 하니, 그래, 뭐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가 대처하는 법이 맞다. 바인과 디이셩을 들인 형님과 아우는 이후부터 죽이 맞아 그나마 잘 살았다나? 그런데 여인숙 주인 왕춘셴은 정나미가 똑 떨어져 늙은 말과 병든 말을 관청에서 도태시키는 출청出靑 일을 시작했고, 작업 중에 키가 크고 위풍당당한 대단한 말이 출청 대상에 오른 것을 보고 자신이 그 말을 사서 한 번도 매어 놓은 적이 없을 만큼 아꼈으며, 집에서 나와 마구간에서 지내며 마차 사업을 시작했는데, 마치 자기 자신이 여인숙에서 출청당한 거 같은 기분이었단다.


  당시 하얼빈은 제일 작은 중국인 지역인 푸자뎬 말고 부두 구역과 신도시 구역이 있어서 주로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인이 거주했다. 부두 구역에 디팡꾸이라는 여성이 살고 있었는데 이이가 자금성 환관출신 디이셩은 친동생이다. 집이 하도 가난해서 아들 이셩은 환관으로 보내고, 팡꾸이만 데리고 살다가 빌어먹겠다고 프랑스 선교사한테 넘어가 크리스천으로 개종을 했다. 그러다 하필이면 의화단 사건이 벌어져, 단원들이 예수교 믿는 팡꾸이네 집에 불을 싸지르는 바람에 부모와 막내 여동생이 타죽어 버렸다. 팡꾸이는 길에서 만난 장얼랑한테 겁탈을 당한 후 그의 기름가게에서 함께 살다가 장얼랑이 사고로 죽는다. 정식 혼인을 하지 않아 형네 집에 들어온 장얼랑의 동생이 디팡꾸이를 쫓아내는 바람에 고모네 집으로, 거기서 다시 하얼빈으로 흘러 들어가 이름은 근사한 청운서관이라는 기생집에서 향지란香芝蘭이란 기명의 에이스로 활약하기에 이른다. 화무십일홍이라, 4년 전인 1906년에 부두 구역의 시에원에서 곡물장사를 하는 부자 지용허가 청운서관의 마담한테 돈을 주고 향지란을 속신시켜 자신의 삼처로 삼는다. 첫 아내는 오리 먹이로 쓰려고 물고기나 새우를 잡으러 강에 갔다가 빠져 죽었는데 임신 5개월이었고, 둘째는 난산 끝에 드런 세상 마감했다. 그래서 점쟁이한테 가봤더니 삼처는 반드시 천한 여자를 골라야 한다, 해서 들인 것이 기생출신인 디팡꾸이였던 것. 근데 자수성가한 부자가 특히 더 노랭이인 경우가 많아 암만해도 속신시키기 위해 준 돈이 아까웠던 거다. 본전 생각이 하도 커서 아내 디팡꾸이한테 다시, 물론 가끔, 손님을 받으라고 하고 정작 받은 다음엔 들들 괴롭히기를 계속했으니 이게 사람 사는 일이냐는 말이지.

  이 가게에 싼푸캉 여인숙의 객식구이자 처 우펀의 애인인 바인이 들러, 만주의 콩 풍년 소식을 전한다. 지금 유럽에는 식량이 모자라 난리굿인 모양이니 만주에서 싼 가격에 콩을 사 영국에 수출해 큰 돈을 벌어보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질러보는 거다. 겉으로는 거절하는 척했지만 장사꾼의 본능으로 이게 돈이 되는 일인 줄 알아챈 지용허는 흥정을 하기 시작했고, 무작정 가격을 깎기 시작했고,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바인은 흥정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좋은 가격을 일찌감치 제시했다. 여기까지면 좋았을 것을, 지용허가 더 깎아달라고 조르자, 바인은 뿔따구가 나서 얼굴이 붉어지고, 기침을 그치지 않고 하다가, 결국, 돌판 바닥에 피를 토해버린다. 유민들이 사냥한 설치류 마못에서 시작한 페스트라는 재난이 만저우리滿洲里를 거쳐 하얼빈에 처음 도착하는 순간이다.


  독후감의 처음 부분에서 말했듯이 중국인이 본 펜데믹 대항 소설이다. 서양인 의사는 오진을 하고, 러시아와 프랑스 신부는 성당에 페스트 감염자 수 백명 가득 몰아넣은 채 향불을 피우며 하느님께 전원 치유의 기도를 하다 속절없이 죽어가지만, 피해를 무릅쓴 중국인 연대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의술을 배운 중국인 의사를 선두로 효과적으로 페스트에 대항해 결국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 이런 불행 속에서도 사람들 본성 가운데 하나인 자잘한 웃음이 별사탕처럼 박혀 있는 재미있는 소설. 역시 츠쯔젠이라는 탄성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페스트라면 1947년에 이미 나온 알베르 까뮈의 작품 하나가 워낙 독보적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원래 세상 사는 게 다 그렇다. 먼저 손 댄 놈, 입에 댄 놈이 대빵인 거. 대빵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게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거, 이게 사실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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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친데 대산세계문학총서 187
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박상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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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은 1772년,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에 열렬한, 광적인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난 독일의 시인, 문학평론가, 철학자, 문헌학자, 소설가, 동양학자, 기타 등등으로, 그의 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 소위 예나 낭만주의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했다. 예나 낭만주의라고 별 건 아니고 그저 독일의 예나 지역에서 노발리스, 피히테, 프리드리히 쉴러,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캐롤라인 셸링 등과 낭만주의 서클을 결성해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을 펼친 일을 말한다.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이 어떤 세월인데 누가 어떤 낭만주의를 주장했는지, 알면 좋겠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외울 필요도 없으며, 아무리 기억하고 있어도 어떤 시험문제로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오직 하나, 이때 우리가 잘 아는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죤의 할아버지이자, 독일계 유대 철학자이자, 신학자 모세 멘델스죤의 딸, 도로테아 베이트도 멤버였는데, 슐레겔은 유대교 여성이며 유부녀인 도로테아와 확 불장난을 해버렸고, 원래 이렇게 재미난 일은 북풍의 들판에 붙은 들불처럼 한 순간에 확 번지는 법이라 금방 동네가 시끄러워져, 어마 뜨거워라 싶은 슐레겔이 “관능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결합을 신성한 우주적 에로스의 알레고리로 찬양”하는, 쉽게 얘기해서 화끈한 불륜을 변명하기 위하여 1799년에 쓴 유일한 소설이 <루친데>라는 거만 일반 상식으로 알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흠. 알려드리지. 슐레겔과 도로테아 베이트의 화끈한 불륜 이야기는 도로테아의 남편 베이트 씨 귀에도 들어가 둘은 당대의 지성인 커플답게 짝 갈라섰다. 유대교에서는 이혼이 가능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혼 서류에 인감도장 꾹 눌러 찍은 도로테아는 1804년 프리드리히 슐레겔과의 결혼을 위해 유대교를 버리고 개신교로 개종을 해버린다. 초장에 밝혔듯이 슐레겔 집안이 열렬한, 그리고 광적인 개신교 집안 수준을 넘어서 시아빠 자리인 요한 아돌프 슐레겔 선생이 시인이면서 루터교 목사였으니 지가 결혼하고 싶으면 개종을 안 하고 배겨? 근데 4년 후인 1808년에 도로테아가 남편 슐레겔을 살살 꼬드겼는지, 아니면 바가지 벅벅 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부는 가톨릭으로 다시 개종을 해버린다. 목사 집안에서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리하여 요한 아돌프 슐레겔 목사님은 열번째 자식인 프리드리히를 호적에서 확 파버릴 수는 없고, 하여튼 온 가족이 협심 단결하여 프리드리히 부부만 나타났다 하면, 눈알을 허옇게 뒤집어 깠다고 한다.

  근데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세계 문화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가? 그런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마추어들은 그냥 이런 가십을 즐기기만 하면 될 거 같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독후감이 갑갑하게 됐다. 아무리 18세기 소설이라 해도 그렇지, 참 재미없다. 이 작품보다 무려 50년 전에 잉글랜드 소설가 헨리 필딩이 발표한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60년 전에 나온 새뮤얼 리차드슨의 <파멜라> 등등과 비교하고, 우스개소리로 “재미없는 독일 소설”임을 감안하더라도, 어떻게 이리도 흥미유발 요인 없이 썼는지 말이야. 물론 자신과 도로테아의 불장난을 변명하기 위해 썼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타령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 시절 소설들이 거의 사랑을 위해 복무했을 때이며, 위키피디아 얘기대로 “낭만주의 발기인” 가운데 한 명이어서 늘 발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당대 수준으로 보면 굉장히 야한 묘사도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작품이 슐레겔이 남긴 “단 한 편의 소설”이라서 그런지 분명 소설은 소설이되, 소설처럼 읽히지 않기도 하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서간문일 때도 있고, 지문 같은 거 다 뺀 대사로만 구성되어 있는 챕터도 있고, 막 헷갈리기도 한다.

  슐레겔이라고 읽는 율리우스와, 도로테아라고 읽는 루친데를 중심으로 위 단락에서 이야기했듯 열라 “관능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결합을 신성한 우주적 에로스의 알레고리로 찬양”한다. 이걸 써 놓으니까 뭐 할 말이 쑥 들어가 버리더라고. 어떻게 하겠어. 이쯤에서 말아야지.

  그런데 하여간 낭만주의란! 아니면 내가 좀 병적이어서 그랬나? 지극히 낭만적인 대목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랑의 수사학이 자연과 순수함에 대한 변호를 모든 여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여인의 부드러운 가슴속에는 신성한 관능의 성스러운 불꽃이 비밀스럽게 깊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황폐해지고 훼손될지언정 결코 완전히 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p. 42)


  하여간 수컷들이란. 여인의 가슴에서 신성한 관능과 성스럽고 비밀스러운 불꽃을 발견하는 게 낭만주의라니. 흠. 그건, 슈레겔 선생, 불꽃이 아니라 그건 그냥 지방fat일 걸? 그게 남자들의 오랜 로망이란 건 알지만, 이젠 그런 얘기 좀 그만 읽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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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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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라 캐더는 참 좋아하는 작가이다. <나의 안토니아>와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이 딱 두 편으로 나는 단박에 이이의 팬이 되었다. 이후 캐더에게 퓰리처 상을 가져다준 <우리 중 하나>의 참혹한 번역서 때문에 완벽하게 맛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를 출간했다는 걸 알자마자 단박 구해 읽어야 했다. 역시 네브래스카. 광활한 무대. 대륙성 기후라서 여름엔 몹시 덥고 겨울에는 눈보라와 강추위가 엄습하는 엄혹한 벌판. 플랫 강이 흐르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 중심가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서쪽 끝자락에 시계수리공 게이하트 씨의 집이 있다. 1킬로미터는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라면 다녀오기에 꽤 먼 거리라고 여긴다. 다만 딱 한 사람, 이 집의 둘째이자 막내딸인 루시 게이하트를 제외하고.

  해버퍼드 중심가에 유난히 빨리 움직이는 점 하나. 그게 루시였다. 부단히 움직이는 작은 빛이자 둥지로 돌아가는 작은 새 루시는 금빛이 감도는 갈색 눈동자에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피부, 그러나 붉은 작약처럼 색이 깊고 벨벳 같은 입술과 볼을 지녔으며, 직접적이고, 거침없고 유쾌한 성정을 가졌다. 친구들이 사랑한 것은 루시의 명랑과 기품, 앳되지만 아름다운 생명만이 누리는 독특한 광채였으리라.

  루시의 아버지 게이하트 씨는 일리노이 밸빌의 독일인 마을에서 바이에른 출신 이민 부부의 아들로 출생했다. 독일인 후예답게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상당한 수준으로 연주할 줄 알았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도 교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했다. 결혼할 때 아내가 130만 제곱미터, 40만 평에 조금 못 미치는 농지를 가져와 처음부터 부농이랄 수 있었지만, 게이하트 씨는 아내가 세상을 뜨자마자 토담대, 토지담보대출을 받아 다른 토지를 구입해 이제는 두 땅 모두 저당 잡힌 상태였다. 부부는 맏딸 폴린을 낳고, 이어서 아들만 둘 낳았으나 일찍 여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낳은 딸이 루시인데 루시가 여섯 살 때 엄마가 세상을 떠서 열여덟 살의 폴린 언니가 엄마 대신 키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집의 가장 큰 문젯거리는 아버지 게이하트 씨. 속이 없는 양반이다. 천생 한량인데 미국에서도 저 벽촌에 속하는 네브래스카 시골의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서 시계방을 운영한다. 땅 욕심은 왜 그리 많아 40만평도 모자라 담보 대출을 얻어 또 땅을 사놓고는, 농사일은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도 복장이 편하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집안 살림과 농사, 루시 보살피는 일 몽땅 다 폴린이 맡아야 했다. 내가 윌라 캐더라면 루시 말고 폴린을 주인공으로 해도 두툼한 소설책 한 권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니까. 그러면 게이하트 씨는? 본업이 동네 음악대 대장 같다. 은판 사진 속 독일인 무명 시인 같은 외모로 염소 턱수염과 콧수염을 기르고, 지적이고 느긋한 녹갈색 눈을 한 게이하트 씨는 매일 한결같은 삶을 즐기며 생활한다. 적어도 그렇게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건강과 단순한 즐거움이 최고의 가치로, 푸른색과 금색이 섞인 음악대 유니폼에 가장 큰 만족감을 지니며. 나중에 나이 들어 음악대원들도 늙고 사라질 때부터는 새롭게 체스에 취미를 들여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인물. 이러니 토담대 대출받은 돈의 이자 갚느라 안달하는 것도 역시 맏딸 폴린의 몫이다. 폴린은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엄마쪽을 닮아 짧은 몸에 짧은 팔다리, 그리고 바지런한 품성을 지닌 선한 여성이지만 어려서부터 아빠가 특히 좋아하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루시한테 정을 몽땅 빼앗기면서도 동생을 자기 딸처럼 돌보며 살아야 했던 여성. 넘치는 질투를 타고났지만 덕성과 인내와 선함으로 덮어가며 평생을 숫처녀로 살다가 눈을 감은 우리의 폴린이, 나는 너무너무 불쌍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폴린이 그냥 그랬다는 거다. 세상이 다 그렇듯이 소설 역시 다 그런 거라서, 착하기만 하고 개성이 별로 없는 인간은 주인공으로 발탁하지 않는 법이거든.


  본격적으로 루시 이야기를 해보자. 재능이 있어 피아노를 공부하기 위해 열여덟 살에 시카고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워낙 무사태평한 성격의 루시는 자기의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음악은 그저 자연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며, 피아노를 배워 고향 해버퍼드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돈벌이의 한 방편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1901년, 루시의 시카고 생활 세번째 크리스마스 연휴 막바지에 해버퍼드에서는 그러나 이야기가 좀 달라져 있었다. 두 달 전, 루시는 파울 아우어바흐 지도교수가 좋은 자리를 얻어주어 자신의 친구인 중년의 바리톤 가수 클레멘트 서배스천의 공연을 본 것. 서배스천은 연주회에서 연가곡 <백조의 노래>를 포함한 슈베르트를 노래했다. 앵콜을 사양하겠다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랑스 친구들이 “클레망”을 연호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서배스천은 바이런 시의 <우리 둘은 작별했네>를 노래했다.


  우리 둘은 작별했네

  조용히 흐르는 눈물

  마음이 둘로 부서졌네

  오랫동안 이어질 이별


  당신의 뺨은 창백하고 싸늘하네

  차가운 입맞춤보다도

  분명 그날이 예고해줬네

  이 이별의 슬픔도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는 즉시 시카고로 돌아가야 한다. 클레멘트 서배스천 전담 반주자 제임스 목퍼드는 다리를 저는 장애인인데 골반뼈에 문제가 생겨 런던에서 몸을 돌보는 사이에 서배스천의 연습 반주자를 뽑는 일종의 오디션이 있어서. 아무리 그래도 루시는 어려서부터 마을에서 제일 잘 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던 겨울철 플랫 샛강 얼음판 위의 스케이트를 포기할 수 없다. 많은 청춘들 가운데 짐 하드윅과 선두를 형성해 힘차게 스케이트를 타는 루시 게이하트. 그러다가 하늘 같은 말이 끄는 썰매가 도착하고, 마을에서 이름난 부잣집의 성격도 인물도 반듯한 청년 헤리 고든이 등장해 스케이트 끈을 매더니 단박에 선두그룹에 합류한다. 눈치 채셨지? 어느새 저녁별이 내리고 저 먼 곳의 아득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행복이 영원한 것일 듯한 분위기. 이럴 때 어울리는 디즈니 만화영화 주제곡 가사에 이런 것이 있다. “자, 입맞춰, 분위기가 좋잖아? 그래 그렇게 입을 맞춰요, 입맞춰!” 하지만 1901년이다. 혼인서약에 서명할 때까지는, 알지? 유학 3년이면 루시가 스물한 살, 해리 고든이 루시보다 여덟 살이 많다니까 스물아홉 살. 둘 다 완벽한 성인임에도.

  해리는 삼십대를 앞에 두고 이제 반려를 찾아야 하는 단계. 오랫동안 주판알을 튕겨본 바, 작지만 해버퍼드의 유일한 은행 은행장의 아들이며 틀림없이 차기 은행장이 될 자신이 한낱 시계공의 딸과 결혼하는 건 사실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사업차 온갖 곳을 다니며 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루시 같은 여자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신중한 청년은 세인트조지프에 살며 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은행의 은행장의 딸인 스물여섯 살 먹은 해리엇 아크라이트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헤리엇은 서둘러 구속되기 싫다는 이유로 미혼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만일 상대가 해리 고든이라면 언제든지 결혼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해리 고든이 미처 알지 못했지만 야무지게 재산을 관리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즐길 줄 아는 미덕도 가지고 있었고. 그건 책의 막바지에 드러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궁리해봐도 자신한테 깊은 찌릿함을 선사하는 여자는 교회의 쥐처럼 가난하고 여간해서 자기를 칭찬하려 하지 않는 루시뿐이라 결론을 내리고, 시카고로 돌아가 4월 중 뉴욕 오페라단이 시카고 순회공연을 하는 주에 일주일간 함께 오페라를 보자고 제의한다. 당연히 제의를 수락하는 루시.

  그러나 루시에게는 1월 4일의 오디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을 한 다소 지쳐 보이는 눈의 남자. 바리톤이 자주 그러하듯 아주 큰 덩치. 키가 크고 퉁퉁하며 넓은 어깨를 한 시카고 사람. 지난 10월 공연을 보며 루시는 생의 진실을 알게 됐고,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시는 서배스천을 통해 “새까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을 발견”하고 말았다. 즉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데, 이게 어떤 의미인 줄 짐작이 되지? 서른 몇 살의 나이를 초월한 점잖고, 예의바르며, 애틋하지만 경건한 사랑. 아뿔싸, 그러나 서배스천은 지난 10월의 공연에서, 부르지 않겠다는 앵콜곡을 노래하며 이미 이들 사이의 사랑이 어떻게 될 지 왕창 큰 복선으로 깔아놓았다. 이걸 놓치는 독자는 설마 없겠지?


  그러면서도 “교회 쥐처럼 가난하고 칭찬하지 않는 루시”와 함께 서배스천이 공연을 떠난 4월의 한 주 동안 <아이다> <오텔로> <라 트라비아타> 그리고 <로엔그린>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구경했으면서, 그것도 모자라 <로엔그린>을 본 날 비싼 레스토랑에 들어 아주 비싼 식사와 겁나게 비싼 와인을 따며 청혼하는 해리한테 퇴짜를 놓는 루시. 루시는 50대 중장년 유부남이자, 당대 최고의 지휘자이며 귀족인 로버트 레스터 경의 사위인 서배스천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원하는데 차지하지 못할 것이 무어냐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런. 그러면 비싼 오페라 네 편과, 식사와 와인은 거절을 했어야지, 쯧쯧. 설마 돈이 아까워 그러진 않았겠지만 해리는 홧김에, 나중에 해리 스스로 고백하듯, 정말로 홧김에 두 주만에 해이럿 아크라이트 양과 혼인을 맺고 고향 헤버퍼드 최고의 부자이며 유지로 말뚝을 박는다.


  이야기는 낡았다. 이후 몇 가지 비극이 연속되면서 독자의 누선을 적신다. 틀림없이 신파극이며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윌라 캐더가 그리는 대자연의 광경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맺는 방식, 점잖고 기품있는 문제 풀이 같은 것은 상투적인 신파도 매우 근사하게 읽히게 만든다. <나의 안토니아>와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이후 마음에 맞는 윌라 캐더를 읽었다는 거 하나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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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1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린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그러나 폴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데에서 저는 이 책과 작가가 참 좋았어요!!

자목련 2024-06-14 10: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주인공만 내세우지 않고 주변의 인물까지 전체를 잘 아우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Falstaff 2024-06-14 16:21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정말 폴린, 짠합니다. 읽는 내내 그랬습니다. 보면 이 책 속에 불쌍하지 않은 인간이 없더라고요.

moonnight 2024-06-14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Falstaff님 리뷰에 궁금해져서 보관함에 넣습니다. 나의 안토니아 작가로군요@_@;

Falstaff 2024-06-14 16:22   좋아요 1 | URL
크게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분량도 짧아서 편하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

stella.K 2024-06-14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저녁별이 내리고 저 먼 곳의 아득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행복이 영원한 것일 듯한 분위기. 이럴 때 어울리는 디즈니 만화영화 주제곡 가사에 이런 것이 있다. “자, 입맞춰, 분위기가 좋잖아? 그래 그렇게 입을 맞춰요, 입맞춰!”
표현 좋네요. 신파에 상투적이라니 일단 읽기는 어렵지 얺겠습니다.
글치 않아도 관심이 가던데...^^

참, 금요일 입니다. 왜 다음 주 리뷰 예고 왜 안 하십니까? 잊으셨나요? ㅠ

Falstaff 2024-06-14 19:27   좋아요 0 | URL
ㅎㅎ 다음 주 예정은요
월요일. 프리드리히 슐레겔, <루친데>
수요일. 츠쯔젠, <백설까마귀>
금요일. 오노레 드 발자크, 《회개한 멜모스∙아듀》
인데요, 미리 소개하는 게 뭐 티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은근히 쪽팔리더라고요. ^^;;

stella.K 2024-06-14 19:44   좋아요 0 | URL
아유,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이거야 말로 팔님의 시그니처 같은 건데. ㅎㅎ
잘 올리셨습니다. 다음 주도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험볼트의 선물 - 1976 퓰리처상 수상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4
솔 벨로 지음, 전수용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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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솔 벨로. 솔 벨로는 처음에 <오기 마치의 모험>을 읽고 얼마나 학을 떼었는지 곧바로 읽을 생각으로 함께 사 둔 <허조그>를 다섯 달 동안이나 먼지만 쌓게 만들었던 적이 있다. 그랬다가 <허조그>가 참 재미있어서 원래 계획에 의하면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솔 벨로를 연달아 찾게 만들었지 뭐야? <비의 왕 헨더슨>과 <오늘을 잡아라>. 그리고 눈에 띄기만 하면 솔 벨로는 무조건 읽겠다고 작심까지 했다. 그러다가 문학동네에서 이 책을 다시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어찌 망설임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대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첫빠따로 읽었다. 어휴, 솔 벨로의 거침없는 수다라니. 즐겁게 지긋지긋한 사흘 반이었다.


  솔 벨로의 입심은 초장부터 현란하다. 극을 견인하는 등장인물은 화자 ‘나’ 찰스 시트린, 유대 이름으로 처키 치트린. 위스콘신 촌놈으로 대학에 다니다가 1930년대에 혜성처럼 등단한 20세기 첫 번째 아방가르드 작가 폰 험볼트 플라이셔의 담시집을 읽고 홀딱 반해 무작정 그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 가 주당 3달러짜리 방에 머물며 ‘풀러’라는 선술집에 일자리를 얻은 인물이다. 세월은 무상한 것이라 1940년대 후반에 이르면 과작의 시인 험볼트의 명성은 점점 작아지다 결국 달팽이 지나간 길처럼 어느새 자취도 없어진 반면 ‘나’ 찰스 시트린은 50년대 들어 연극과 영화 버전으로 크게 히트한 <폰트렌크> 덕택에 큰 돈을 만지게 되었다. 험볼트가 이 꼴을 보니 “배알이 뒤틀릴” 수준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심기가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자기하고 한 번 말이나 해볼 생각으로 뉴욕으로 왔던 꼬맹이가 이리 크게 성공했으니. 게다가 점점 조증과 울증의 교차 공격을 받기 시작한 험볼트는 이렇게 꼬아댄다.


  “찰리 시틀린을 봐. 위스콘신주 메디슨에서 와서 우리집 문을 두드렸지. 그런데 이젠 백만장자가 됐어. 대체 어떤 작가 어떤 지성인이 그런 큰돈을 벌겠나? 케인스? 그래. 케인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지. 경제학 천재에다 블룸즈버리의 왕자였지.” 험볼트가 말했다. “그는 러시아 발레리나와 결혼했어. 돈은 따라왔고. 그런데 시트린이 대체 뭐라고 그렇게 부자가 됐나? 우리는 가까운 사이였어. 그런데 그 친구는 어딘가 좀 꼬인 데가 있어. 그렇게 돈을 벌었는데 왜 구석에 틀어박혀 지내? 시카고에는 왜 간 거야? 정체가 밝혀질까봐 겁이 난 거겠지.”  (p.8~p.9)


  험볼트는 원래 뭐든 다 가진 남자였다. 금발의 미남이고 체구가 크며, 진지하고, 재치있고, 박식한 인물.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자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해 큰 부자였으나 대공황을 만나 가진 것 모두를 파산하고 얼마 안 지나 심근경색으로 급사하는 바람에 갑자기 맨땅에 처박히긴 했지만. 천재적인 문학적, 시적 영감으로 적어 나간 담시가 공전의 히트를 해 시대의 총아로 부상한 거였다. 그는 ‘나’ 찰스, 찰리를 “꽤 잘 생긴 친구, 좀 약은 편이고 일찍 대머리가 될 것 같은데 감정이 풍부해서 문학을 사랑하고 감수성이 있는” 젊은이로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잡지에 서평을 쓰는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는 10년 정도로 끝났다. 원래 작품 수가 많지 않은 과작의 시인이라는 한계를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정받다가 그것으로 종 친 예술가. 그는 1940년대 말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반면, ‘나’는 50년대 초에 큰 돈을 벌게 되어, 험볼트는 바로 이 돈 때문에 ‘나’에게 반감을 갖게 된 거였다. 게다가 말년에 접어들어 엄청난 우울감에 시달려 결국 정신병원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들락거렸다는 건, 들어가 있을 때가 있고, 나와 있을 때가 있다는 말인 즉, 병원 밖에 있을 때는 꼭 ‘나’와, 정작 ‘나’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백만달러의 재산을 신랄하게 야유하는 것에서 재미를 찾았다. 그러니까 ‘나’의 입장에서 험볼트를 정의하자면, 예전에 신세를 진 적 있지만 이젠 완전히 “진상”이다, 진상. 그렇다고 내놓고 막 대할 수도 없는. 대강 이해 가시지?

  인간이 망가지면 참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망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험볼트도 예외가 아니다. 일찍이 미국의 빈민가에서 안티 크리스트가 뛰쳐나오리라 생각한 미국 문학계에서 험볼트가 나타나 신사처럼 행동하고 매력적인 작품을 쏟아내 콘래드 에이킨, TS 엘리엇, 아이비 윈터스 등이 호평을 받았던 시절엔 생각지도 못할 망나니가 되어 버렸다. ‘나’의 작품 <폰 트렌크>의 연극 공연장 앞에 자신의 후원자 다수와 피켓에 머큐로크롬으로 붉게 “이 연극의 원작자는 배신자다!”라고 쓴 채 연좌농성을 하기도 하고, 친구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몸집이 크고 피부가 희면서 아름다운 아내 캐슬린을 윽박질러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퇴장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차를 몰고 오다가 핸들을 잡지 않은 팔을 휘둘러 캐슬린의 눈두덩을 시퍼렇게 염색시키는 지경까지 갔으니, 이걸 어쩔꼬? 며칠 후, 캐슬린은 프랑스 제과점에 간다고 나가서 다시는 험볼트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텍사스 시골로 가서 티글리 씨와 재혼해 살다가, 두번째 남편이 죽고나서야 다시 ‘나’와 상봉을 할 때는 이미 험볼트도 세상에 없었다.


  뉴욕에 도착해 오전에 재비츠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해안경비대 헬리콥터를 타고 뉴욕 상공을 비행해 센트럴파크 태번온더그린에서 열린 정치인 오찬에 참석했다가 밖으로 걸어나온 ‘나’는 우연히 그를 본다. 벨라스코 극장의 모퉁이를 돌면 바로 나오는, 거의 허물어지는 수준의 일스컴 호텔 앞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험볼트의 얼굴에는 이미 죽음의 기색이 완연했다. 그는 ‘나’를 보지 못한 채 병들고 지저분한 행색으로 막대형 프리첼을 점심으로 먹고 있었다. ‘나’는 주차된 차 뒤에 숨어 그를 지켜보았고, 결코 다가가지 않았으며 곧 자리를 떴다. 다음날 아침 ‘나’가 사는 시카고행 727 제트기 안에서 <타임스>에 실린 험볼트 사망 기사를 읽었다. 그는 새벽 세 시쯤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으며 곧바로 시city의 시체안치소에 들어갔는데, 안치소에 시poetry 읽는 사람이 없는 바람에 무연고자 신분으로 안치되었다.

  마지막 날 험볼트를 본 일, 이건 ‘나’ 찰스 시트린에게 작지 않은 회한을 주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자.


  근데, 솔 벨로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혹시 정상적으로 이것저것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인내해서 짜증나는 일 참아가며 보통 사람처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는 커플을 혹시 보신 분 계시면 거수.

  ‘나’ 찰리 시트린의 첫사랑은 나오미 루츠였다. 위스콘신 살 때 고등학교 동창생. 이때부터 찰리의 머리 구조는 보통의 고등학생들과 달라, 갑자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넘나들기 시작해 쾨슬러, 사르트르, 비트겐슈타인을 망라해버리니, 참 나, 이런데도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게 기적일만큼, 도무지 시내의 모든 고등학생과 교사를 통틀어도 찰리와 대화 가능한 인물을 구할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다. 찰리와 나오미는 그런 거 말고 나머지 부분에 관해서만큼은, 그러니까 1940년대 연애하는 하이틴이 겪는 모든 과정은 알뜰하게 밟아가며, 찰리는, 겁도 없이 나오미와 남은 생 전부를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나오미는 다른 남자를 골라 홀라당 결혼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하마터면 죽음을 부를 수도 있었을 찰나에 기적적으로 나오미의 딸이 등장해 다시 연락이 닿아 만나 확인해본 바, 나오미는 구름 꼭대기쯤에서 내려오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오리무중의 언설을 도무지 견딜 수 없어, 평생 이런 이야기만 듣고 살다가는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요실금이 올 거 같다는 공포에 휩쓸려 찰리가 뉴욕으로 험볼트를 보러 간 사이에 후딱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리고 만 거였다.

  이어서 애칭 ‘데미’라 불리는 애나 뎀스터 퐁벨이라는 좋은 집안의 아가씨와 깊고 깊은 연애를 했다. 데미는 ‘나’가 <폰 트랜크>의 대성공이라는 기회를 얻어, 이제야 아버지에게 ‘나’를 남편감으로 소개할 수 있겠다 싶어 <폰 트랜크>의 기사나 화보 같은 걸 스크랩해서 당시 투자를 위해 베네수엘라에 출장계획이 있던 아버지와 함께 날아가다가, 그만 공중폭발로 부녀가 동시에 생을 접었다. ‘나’ 찰스는 당연히 시신이나마 찾고자 베네수엘라로 갔지만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언젠가 장난 비슷하게 교환했던 서로의 백지수표에 험볼트가 $6,763.58의 금액을 써넣고 이를 현금으로 찾아가버렸다. 당시 젊은 찰리 시트린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험볼트가 평생에 걸쳐 악담을 할 만큼 큰 돈을 벌기 시작할 때, ‘나’ 찰리 시트린은 괜찮은 신교도 집안의 아가씨 데니즈와 혼인을 한다. 데니즈와의 사이에 딸 둘을 낳고 잘 사는 듯하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솔 벨로의 주인공이라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포기해야 마땅한 전례를 따라 갈라섰는데, 데니즈는, 유대인 주제에 감히 나와 이혼을 하려고 해, 시카고에서 가장 지독한 변호사를 고용해 ‘나’의 전 재산을 홀딱 빨아버리려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데니즈와 이혼 소송중에 새롭게 레나타라는 아들 하나 딸린 돌싱녀와 연애를 하고 있기는 하다. 근데 이 레나타는 ‘나’를 완전히 호구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결혼을 하자고 몇 번 제의를 했지만‘나’ 찰리는 이혼소송이 완전히 다 끝나기 전까지 그러고 싶지 않은 거다. 그리고 사실 알고 보면 ‘나’가 거의 알거지 수준이라는 것도 밝히고 싶지 않다. 솔 벨로의 작품 속 남자들의 삶이 대부분 이렇다. 이걸 재미로 알아야지 뭐.


  다시 첫 애인 나오미 루츠로 돌아가서, 사실 크게 볼 일 없는 나오미 루츠를 소환하는 이유는, 나오미가 찰리 시트린을 도무지 참아주지 못하고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 버린 이유가 찰리의 과도한 현학성, 장황한 단어의 사용, 끝도 없는 주절거림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면 정말로 실감난다. 얼마나 말이 많고,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려고 난리를 벌이는지. 나는 당연히 찰리보다 나오미와 비슷한 부류라서, 본문만 744쪽에 이르는 길고 긴 장편소설을 읽으며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경험도 했고, 속이 미식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라인은 누가 솔 벨로 아니랄까봐 재미 만땅인데, 이제 다른 독자께 권하니, 벨로의 사변적 설레발쯤 아무것도 아닌 듯 견딜 수 있으면 가볍게 도전하시고, 아니면 약간의 허들 정도로 여겨 조금 각오를 하시든지, 그것도 아니면 일단 책을 사놓고, 언제든 내가 한 번은 읽고 만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질 지표로 삼으시면 될 듯하다.

  다른 거 다 빼고, 그러면 온 힘을 다해 세계 인텔리겐치아의 지도자가 되기를 추구했으며, 승리에 대한 분석을 믿었고, 시보다 ‘생각’을 선호했으며, 좀더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하위 세계를 위해 우주 자체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던 폰 험볼트 플라이셔가 남긴 선물이 뭐냐고? 정말 선물이 있다. 이제 다른 건 몰라도 경제적으로 다 죽어가는 찰스 처키 시트린을 위한 인공호흡. 그게 뭔지는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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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06-12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뱅글뱅글@_@;;; 오늘을 잡아라 읽어볼까 하고 전집에서 빼놓았던 게 언제인지@_@;;; Falstaff님 리뷰로만 솔 벨로를 만나게 될 것 같은^^;;;;;

Falstaff 2024-06-13 06:14   좋아요 1 | URL
<오늘을 잡아라> 빡세지 않습니다. 잘 읽히고 재미도 있습니다. 당연히 명작은 아니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