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 알마 인코그니타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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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는 199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태어났다. 북부 수마트라 섬의 바탁 종족 가운데 가장 큰 토바 바탁 족이며, 커밍 아웃 한 게이다. STAN 국립 재무 대학을 졸업하고 재무 학사 학위를 땄으며, 이 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국가 재무직 공무원으로 임용되는 거 같은데, 싹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 명함은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는 시인, 작가, 역자, 편집자. 시집도 내고 작품집도 내고 그랬다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내게 된 계기는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이 2022년에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최종 심사까지 올라가 미역국을 먹은 일이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2023년부터 올해까지 하버드 대학 아시아 센터 상주 작가로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만큼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이 유명한 작품이라 이건데, 아오, 난 책의 첫 문장부터 지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의 별자리가 물고기 자리라면, 그건 당신이 게이라는 뜻이다.”


  하필이면 내 별자리가 물고기 자리인데, 거의 완벽하게 섹스라이프가 끝난 이 시점까지 단 한 번도 게이라고, 하다못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게이 성향을 발견해본 적이 없다. 에잇! 당연히 나는 성소수자의 모든 것은 인정한다. 한 번도 내가 “그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할 지 모른다. 전제는: 나를 유혹하려 하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인용 문장은 파사리부가 아니라 에이미 와인하우스라는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Amy Jade Winehouse는 영국의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27세 때인 2011년에 약물과다복용으로 죽었다. 그러니 내가 참자.

  근데 지금 내가 쓴 위 문단을 다시 읽어보면, 특히 감탄사 “에잇!”이라든지, “그러니 내가 참자.”라는 말이 암만해도 목에 걸린 잔가시처럼 까슬까슬하다. 문단 속에 벽이 있다. 나는 세상에 “정상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난 정상인이 아니라 이성애자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성애자 그룹에서 이탈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누가 나를 다른 그룹으로 잘못 보는 것도 싫다는 뜻이다.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다. 이것도 차별일까? 차별일 것도 같다.


  서부 자바 교외의 주택단지에 살던 시절에 헌책방을 하던 이모부 덕택에 곱슬머리 김수정의 작품 <아기공룡 둘리>에 흠뻑 빠져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파사리부.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쓰는 소개글을 달았고, 이어서 시인 문보영과 소설가이자 역자로 활약하는 안톤 허의 추천글이 두 꼭지 나온 다음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책은 인도네시아에서 게이로 사는 일에 관한 작품이다. 아니, 작품의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지는 않으니, 그냥 좌절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자.

  열두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읽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안톤 허가 추천의 글에서 말했듯이 시인이, 그것도 현대시인이 쓴 소설이라 그런지 결코 읽기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짧거나, 길지 않은 이야기를 서로 연결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말짱 다른 이야기로 읽기도 께름칙한 기분, 이해하시겠지?


  마마 산드라 이야기. 산드라의 외아들이 죽었다. 마마 산드라는 1992년에 포대기에 갓난 아이를 넣고 홀로 자카르타 동쪽 베카시로 이사를 왔다. 이후 줄곧 혼자 아들 바이슨을 키웠다. 낮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해서 이웃인 마마 앤턴, 앤턴의 엄마가 바이슨을 돌보아, 마마 앤턴이 산드라 모자에 대한 정情도 대단했다. 마마 앤턴은 산드라와 수마트라 북부 하리안보호 고향 친구다. 그래서 더 친해질 수 있었겠지. 산드라의 아들 바이슨은 총명한 소년으로 자랐고,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아 자카르타의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함께 유소년 시절을 지낸 앤턴은 지역의 괜찮은 대학에 가고. 신기하지, 바이슨과 앤턴 둘 다 게이였다. 앤턴 집안에서는 할아버지가 손자 어렸을 적부터 눈치채고 아예 처음부터 그런 성향을 인정해 대학 다니면서 숱한 게이들과 어울렸고, 졸업 후에 네덜란드로 날아가 동성 결혼까지 했다. 근데 이게 맞는 말이 아닐 수 있다. 뒤에 나오는 에피소드와 연결할 수 있다는 전제면 그렇다는 말이다. 반면에 바이슨은 어머니한테, 대학 2년 선배인 솔로 지역 출신 청년 세티아와 지난 석 달 동안 데이트를 했다고 커밍아웃을 하니까 산드라가 하염없이 절망하는지라 그걸 보고 자기도 견디지 못해 약을 먹고 자살해버린 거다. 바이슨. 남자답고 강하게 들려 산드라가 붙여준 이름이건만, 바이슨은 북미 들소의 한 종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야생에 대해 배우다가 이를 알게 된 바이슨이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집에 왔고, 이때부터 아이들은 바이슨한테 “바탁의 사생아 바이슨”이라 놀리기 시작했다. 바탁은 작가 파사리부의 부족이라는 거 기억하시지?

  바이슨이 죽고나서 산드라는 아들이 늘 먹던 진통제 파나돌을 습관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두통이 심해져서. 넉 달 뒤, 산드라는 베트남 꽝남 지역의 마이선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들 바이슨Bison을 평소에 그냥 선Son이라고 불렀는데, 우연히 베트남에 ‘마이선”이라는 관광지가 있다는 걸 알고 당장 결심을 해버렸다. 마침 시청에 근무하는 조카가 있어서 얼른 여권을 만들고, 조카가 만들어준 열 몇 장의 안내 메모를 주머니에 넣고, 평소 바이슨이 쓰던 캐리어에 옷과 신발과 파나돌과 하여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 집어넣고, 그걸 끌면서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탄다. 말레이시아를 거쳐 하노이에서 내려, 조카가 알려준 대로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가의 저렴하지만 꺠끗한 호텔에 짐을 풀고 첫날은 지쳐 잠이 들었다. 이튿날은 호수가 벤치에 앉아 바이슨을 생각하며 울고, 울고, 울었다. 근처 산 위의 절에 무지하게 큰 거북의 박제가 있다고 해서 구경갔다가 거북을 보고 또 바이슨이 생각나 울고, 울고, 울고불고, 엉엉 울다가 내려왔다. 나흘째 호이안으로 가는 기차를 놓쳤지만 그냥 호텔에 체크아웃을 해버렸다. 호엔끼엠 호수가 벤치에 앉았더니 또 눈물이 난다. 정신을 차려 호이안의 마이선에 대해 베트남 사람에게 물었다. 베트남인을 모른단다. 그래 ‘마이선My Son’을 다시 묻고, 다시 묻고 또다시 물으니, 베트남에서는 그 지역을 ‘마이선’이 아니라 ‘미이센’이라 한단다. 산드라는 미이센이라는 지명을 듣자마자 그곳으로 갈 이유가 사라졌음을 안다. 산드라는 대신 다시 한번 산 위의 사원에 올라 진열창 안의 거북을 가리키면서 “This is my son. This is my son. This is my son, you know?” 묻는다. 산드라의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러내린다.


  은퇴한 수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평생을 순결, 순종, 청빈하게 살다가 은퇴한 늙은 수녀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비슷한 처지의 수녀들만 기거하는 수녀원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여태 해 온대로 청빈하고 순결하게 기도하며 종교와 수녀원의 계율에 순종한다. 대신,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은 감해준다. 이건 사제도 마찬가지다. 은퇴 신부들도 그들만 모인 수도원 또는 안식처에서 비슷한 생활을 하며 삶의 마감을 기다린다. 아무리 추기경, 주교를 수십 년 했어도 마찬가지다. 드디어 천국의 기쁨을 찾아 가더라도 여태 영혼을 담았던 몸에는 작고 볼품없는 묘지만 주어질 뿐이다.

  그러나 툴라 수녀는 얘기가 다르다. 은퇴 수녀들이 모인 수녀원에서 툴라는 가방에 사복을 담은 채 무단 외출을 해, 버스를 타고 30킬로미터를 가, 터미널 화장실에서 사복으로 갈아 입은 후, 시내를 돌아다니다 들어온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잃은 아이 서배스천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찾아준다. 수녀원으로 돌아온 툴라를 기다리는 건 원장수녀.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근데 그게 되나? 툴라는 며칠 후 다시 무단 외출을 감행해 서베스천과 아빠 요하네스가 사는 집에 들르게 되고, 몇 번 그러다 보니까, 서베스천한테 심장병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뭐 이런 이야기. 재미있다. 그나마.

  그래서 이 책이 퀴어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실과 절망, 그리고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던 것. 그럼에도 세상은 대체로 행복한 곳이라는 게 작가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의 주장이다. 살아보니까 행복은 생각보다 늦게 온다. 그것도 사람을 골라가면서 온다. 나? 나는 지금 대체로 행복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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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07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성소수자의 모든 것은 인정한다.˝
라고 썼습니다. 여기서 ‘인정‘이란 단어는, 제가 뭐라고 성소수자의 성적 취향을 인정하고 말고의 의미가 아니라, 글을 쓸 당시엔, 그들을 ˝부정˝한다는 뜻의 반대 단어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단어 탐색을 게을리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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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생. 2021년 <악단>으로 문학과사회 여름호 통해 신인문학상 데뷔. 아마추어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수준급으로 잠수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말”에서 가장 최근 다이빙은 동해바다였고, 언젠가 코론 바다에 다시 가고 싶단다. 필리핀 코론 섬을 말하는 것 같다.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안산, 서울, 발렌시아에서도 ‘거주’했으며 만 스물일곱 해 동안 나름대로 많은 일이 있었다니, 경험도 많았을 테고, 소설을 쓰기 위한 재료도 다른 작가들 보다 풍성하겠지만, 추억이 너무 많아도 나이 들면 쓸쓸한 걸 아는 입장에서 좀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첫번째 작품 <검은 말>이 제일 좋았다. 단편소설 일곱 편 가운데서.

  “지금 당장 검은 말 한 마리를 상상하시라. 그것도 맹렬히 달리는 놈으로.”

  요즘 젊은 작가들 가운데 이렇게 강렬한 문장으로 작품을 시작하는 것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21세기 일반 가정에서 ‘검은 말’ 감탄할 만한 준마를 보기는 힘들다. 작가의 검은 말도 다른 사물로 변용한다. 당장.

  “그 총, 내가 아홉 살 때 고모의 집에서 발견한 그 검은 총은 말을 닮아 있었다.”

  화자 ‘나’는 아홉 살 때의 ‘나’가 아니라 이제 성년이 되어 당시 사우스타코타에서 살고 있는 고모네 집에서 본 총을 연상했고, 총의 모습을 묘사해보려고 하니 검은 말을 닮았다는 의미다.

  이서아의 작품에 쓰이는 단어를 유심히 살필 것. 아홉 살 꼬마의 부모는 “엄마”와 “아빠”가 아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엄마와 아빠에 비하여 조금 구식이고, 권위가 있고, 권위라는 말은 권력과 그리 멀지 않은데, 권력은 일방적인 물리적 힘, ‘나’의 행동을 구속하려는 압력, 특정한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만들려 하는 갇힌 상태를 의미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진실되다”라는 말은 틀렸다. “진실하다”가 옳은 표현이고, “진실하다”의 피동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급기야 강박이 생긴다. 그러다가 대가리가 커지면 한국어 어문 규범이고 뭐고 간에 자기가 쓰고 싶어하는 단어를 만들어서라도 써야겠다는 강박. 바닷가에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라는 식의 틀린 문법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 권 내내 이런 식으로 글을 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문학과지성사 편집부가 이런 걸 무사 통과시킬 리 없다. 애초에 언어도 규범에 졸졸 따르지 않겠다는 젊은 작가의 뜻을 십분 살렸을 것이다.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이건 배의 현 모습이라기 보다는 사람, 특히 남자 어른의 완력에 의하여 줄에 묶여 있는 상태를 더 강조한다.

  이서아도 권력, 남자, 아저씨 들이 자기 또래에 틈만 생기면 함부로 행사하고자 하는 폭력에 적극 저항한다. 그리고 발렌시아에서도, 레바논 사하라 사막에서도, 필리핀에서도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 남자들의 몰양식적인 언어와 성적 비유와 눈길과 이상행동의 기미를 나타내는 행위, 인종차별에 진저리친다. 당연히 자신이 가장 많이 생활해봤을 “한국 아저씨”에 대한 모멸이 제일 심해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작가 자신의 “한국 아저씨”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기까지 한다.

  좋다. 자기가 싫으면 싫은 거니까.


  아직 젊어서 그런지 행위와 표현이 거칠다. 등장인물은, 그러기 위해서 아홉 살의 나이를 주어야 했겠지만, 미국의 공항에서 부모를 따라 탑승하지 않고 활주로를 빠르게 달려가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경찰에 체포당해 조사를 받고, 그 사이 과부가 된 고모가 와서 데리고 가야하는 일도 생긴다. 존경하는 선생이 죽자, 선생이 무연고자라서 며칠 안에 화장 처리된다는 걸 알고는 트럭을 몰고가 안치실에서 시신을 훔쳐온다. 대설예보가 있어 마을에 고립이 되었지만 (당연히 나이든 남자)변태 화가가 남아 있어서 트럭으로 친 다음 다친 육체를 고기 다지듯 트럭을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며 확실하게 숨을 끊어 놓는다. 

  <검은 말>이 좋았다.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더는 말을 않겠다. 차별과 혐오는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언제나 나쁘다. 이렇게 활자로, 그게 단 한 번이라도 찍혀 나오면, 글자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문학을 하는 이들은 자기 몸에 연비를 뜨듯 글자를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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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고 해밀턴
더글러스 스튜어트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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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쪽까지 읽었다. 이런 걸 왜 읽고 있나, 네 번째로 이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은 참아줄 수 없어서 덮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덮었다. 내가 산 책이었으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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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8-02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었습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8-03 06: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우짜겠습니까, 세상 일이 다 그렇지요.

망고 2024-08-02 1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 저 이 책 샀는데요 아직 읽진 않았고요ㅠㅠ 그렇게 별론가요?

Falstaff 2024-08-03 06:08   좋아요 1 | URL
저 말고 다른 독자서평은 모두 별5더라고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세워 놓고, 아무리 자전적 기록을 좀 첨가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막 처참하고 잔혹한 시절을 겪게 해도 되는지 화가 나더라고요. 여기서도 리틀 라이프를 반복하는 것이 무척 짜증났습니다.

coolcat329 2024-08-03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별이 1개는 아니네요?
망고님 사셨는데...에고

Falstaff 2024-08-03 10:11   좋아요 0 | URL
그게...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한 인간이 바로 저라서 말씀이죠. ㅜㅜ
 
삶과 운명 3 창비세계문학 100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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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네이즈 장면을 생략한 전쟁과 평화. 오랜만에 읽은 진짜배기 리얼리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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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진열실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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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발자크. 또? 그렇다. 이번에는 말 그대로 대박인 걸. 물론 당연히 촌스럽다. 1839년 작품을 지금 시각으로 읽으면 촌스러운 게 자연스럽다. 게다가 무대도 촌이다. 발자크의 문장으로 썼지만 읽으면서 당대에 발자크와 비슷한 수준으로 일필휘지를 날리던 알렉상드르 뒤마가 생각날만큼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발자크보다 겨우 세 살 아래인 대 뒤마를 진짜로 연상했다니까. 근데 역시 발자크인 건, 상황은 뒤마처럼 긴박하게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줄달음을 치건만, 클라이맥스 바로 앞, 여기서까지 특정인의 직업이 어떻고, 생긴 건 또 어떻고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데 이이의 온실에 가면 어떻고 저떤 화초가 있어 그게 원산지 어디서 수입한 거고, 아이고, 아주 턱이 뚝 떨어진다. 웃기겠지? 정말 그렇다. 마음 같으면 그냥 후딱 넘어가고 싶지만 언제 또 결말을 품고 있는 복선 끄트머리라도 나올지 몰라 바득바득 읽고 있으면 실실 새는 웃음, 물론 헛웃음이지만 그걸 멈추지 못한다니까.

  발자크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명문가 출신으로서 파리에 상경해서 파멸하는 가련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라고 아예 못을 박고 시작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아니라 빅튀르니앵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의 명문가 자제가 말 그대로 “죽다가 깨나는 이야기”다. 발자크는 계속해서 멸망의 원인을 젊은이가 “도박에 의해, 빛나려는 욕망 때문이거나 파리 생활에 현혹당해서, 재산을 증식하려는 시도로 인해서, 행복하거나 불행한 사랑에 의한 파멸”이라고 미끼를 던지기도 한다. 서문을 읽고 혹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 독자를 매혹시키는 요소가 듬뿍 들었으니 이걸 어째? 역시 가장 큰 매력은 돈과 사랑, 특히 불륜이거든.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주인공 데그리뇽 백작이 지방 출신 젊은이의 다른 유형인 라스티냑의 반대형이며, 여기서 라스티냑은 <고리오 영감>을 비롯해서 <인생의 새출발>, <12인당 이야기>, <루이 랑베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라스티냐크를 말하는데, 능란하고 대담한 라스티냑은 데그리뇽 백작이 패배하는 곳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분명히 그랬지만, 그는 그냥 주인공의 파리 생활에서 엑스트라 급으로 몇 장면에 스치듯 나오고 만다. 워낙 많은 작품을 쓰다 보니, 발자크 역시 사람인지라, 자기가 앞에서 한 이야기를 가끔 잊거나, 헛갈리기도 한다. 독자들이 너그럽게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서문에 큰 의의를 두지 말자.


  작품의 서두는 프랑스에서 가장 빈한한 현청소재지 중 한 곳의 도심 길모퉁이 집, “데그리뇽 저택”이라 관습적으로 부르는 집에서 시작한다. 이 저택의 주인의 정식 이름은 샤를르-마리-빅토르-앙주 카롤. 정통 프랑크 족으로 1,300여년 전 북쪽에서 내려와 강력한 골 족을 쳐부수고 봉건제를 확립한 영광스러운 카롤 가문의 후손이다. 그렇다니까. 유럽의 귀족들은 원래부터 사병을 이끌고 여기저기 약탈을 하고 다니던 비적 두목 출신이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게 대를 이어 몇 백 년을 지나다보니 이제 자손들에게 조금씩 공맹의 도를 가르치고, 별 희한한 예절을 만들어 그것을 준수하게 하니 멋있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동서양이 다 그렇다. 이 명망 높은 카롤 가문의 노 귀족을 사람들은 데그리뇽 후작으로 불렀다. 하지만 뭐든지 끝이 있는 법이어서, 역대 프랑스 왕가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던, 심지어 공작으로 승격을 권유하는 왕의 호의를 싹 무시하고 후작으로 남았던 대단한 가문도 1789년 대혁명을 만나 거의 완전히 찌그러지고 말았다. 영지의 대부분을 유실해서 이제 연수입이 겨우 9천프랑 이하로 격감을 해 원래 사용했으나 혁명의 와중에 모든 가구를 약탈당한 성chateau을 유지할 수 없어 포기한 채 청 소재지의 자기집이었던 저택을 충성스러운 공증인 쉐넬이 마지막 남은 루이 금화 5백 루이로 마련해주어 들어와 살고 있었다.

  1802년에 후작은 누아스트르 남작의 딸과 혼인해 아들을 낳았으나 예쁘고 어린 아내가 출산 중에 숨을 거두는 바람에, 이때 미모의 누이동생 마리 아르망드 클레르 데그리뇽 아가씨가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이후에 이 아이, 그러니까 데그리뇽 양의 조카 때문에 어여쁜 아가씨는 파파 할머니가 될 때까지 숫처녀로 살다가 죽을 운명으로 결정이 나버리게 된다. 어여쁘고 기품있으며 현명하기까지 한 아르망드도 즉각적으로 자기 팔자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따르기로 했는데, 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언감생심,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한 낮은 신분의 은행가 뒤 크루아지에 씨가 아르망드에게 청혼했으니 이게 통할 일인가? 청혼 자체를 대단한 불명예를 당한 것으로 여긴 후작과 데그리뇽 아가씨는 그때는 몰랐다. 냉혹한 거절이 지역의 자유주의자들을 대표하게 될 밴댕이 소갈딱지 뒤 크루아지에 씨를 두고두고 스무 해가 넘을 때까지 복수심을 키우게 될 지는. 이이가 품은 극한의 복수심으로 작품은 놀랄만한 출력을 지닌 엔진을 달게 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뒤 크루아지에의 복수혈전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데그리뇽 저택은 당연히 현청소재지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된다. 다른 한 곳도 있다. 데그리뇽 양에게 청혼했다가 미역국 먹은 뒤 은행장이 된 크루아지에의 응접실. 후작 저택의 살롱은 혁명 전부터 귀족이었던 가문 대대로 명망가의 자존심과 자부심과 명예와 예법 등의 이젠 세월이 바뀌어 전혀 돈 안 되는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사는 인간들의 모임. 하도 고릿한 냄새가 진동해 이들이 모인 살롱을, 자유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 등 진보 좌파적 입장을 유지한 부르주아, 웃기지? 진보 좌파 부르주아들이라니, 하여간 그들이 뒤 크루아지에의 살롱에서, 앙시앵레짐의 혜택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인간들이 모이는 데그리뇽 저택의 살롱을 “골동품 진열실”이라고 낮추어 불렀는데 이게 도시 사람들 입에도 짝짝 들러붙었던 거다. 그러니까 <골동품 진열실>은 19세기에도 여전히 명망가라고 폼잡으려는 철없는 귀족 나리들을 일컫는다고 보면 된다.

  근데 오노레 드 발자크 자신도 평생 왕정을 지지하던 보수 우파 출신이거든. 그가 자신처럼 왕정에 충성하는 오랜 귀족들의 모임을 낮춰 부른 말로 작품의 제목으로 했다고? 그렇다. 발자크는 정치적으로는 보수파였을 지 몰라도 과학의 세기라고 하는 19세기에 아직도 정처를 모르고 옛 시절의 구태에 머물고 있는 귀족 집단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거다. 그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구 귀족과 신규 부르주아의 다툼에서 일방적으로 옛 귀족의 손을 들어주지만, 결코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승리인 듯하지만 결국 흐름에 굴복해야만 하는. 이크, 더 얘기했다가는 영낙없이… 스포일러?


  빅튀르니앵은 말했다시피 고모인 아르망드가 업어서 키운다. 낳자마자 엄마를 잃은 가여운 아이. 자라면서 어땠겠어? 아버지 후작은 후작 가오가 있지 아들 키우는데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어 그저 뒷짐 짚고 동생 하는 대로 맡겨 놓았을 것이 뻔하고, 작품에서 가장 교훈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작가가 직접 언급한 고모는 지성이 빠진 가장 순결한 덕성이 아이에게 어떤 해를 끼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면서 희극적으로 이야기한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응석받이 자체로 키웠다는 뜻이다. 매사에 오냐, 오냐만 했지, 직접 낳은 엄마라면 따끔하게 혼을 낼 일조차 차마 그러지 못하고 감싸는 데만 전력을 기울인 거다. 이렇게 자라는 빅튀르니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작자가 하나 있었으니, 이 가문에 앙심을 품고 늘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뒤 크루아지에. 그는 젊은 귀족이 받고 있는 교육의 오류 속에서 가혹한 복수의 가능성을 감지해, 어린 양을 어미의 젖 속에 빠트려 익사시킬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빅튀르니앵은 점점 자라며 우월성의 신조를 뒤집어쓰게 된다. 기막힌 미모로 태어난 데다가 키는 중키라 해도 매우 근육질의 단단한 몸에 놀라운 운동능력을 갖게 됐다. 사실 아름다운 외모라는 건 재산과 재능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으로 기능한다. 귀족신분의 아름다운 청년, 그리고 열렬한 정신,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과 뛰어난 기억력은, 그러나, 왕자처럼 이기적이고 중세의 혈기왕성한 추기경처럼 고집불통이며 무례하고 방약무인의 독선적인 성격으로 진화하면서 드디어 18세가 되어 지방 사교계에 데뷔했다.

  난리가 났다. 사교계의 귀족, 부르주아 아가씨들과 숱한 배우, 가수, 그리고 유부녀들도. 빅튀르니앵은 예전엔 자기 가문의 땅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남의 숲 속에 들어가 아무 짐승이나 사냥을 해, 가문의 충성스러운 공증인 쉐렐로 하여금 돈으로 해결하게 하더니, 처녀들한테 분별없이 결혼 약속을 하고 속고쟁이를 벗기는 바람에 신세를 망친 아가씨들과 가족이 난리를 쳐서 역시 쉐넬이 한 번 더 돈으로 막았으며, 노름판에서 함부로 발행한 약속어음이라는 노름빚도 대신 갚아주는 등, 18세부터 21세까지 쉐렐은 아버지와 고모 모르게 거의 8만 프랑의 자기 돈을 지출해야 했다.

  이러다가 1822년 10월이 오고, 현의 한 기사가 골동품 진열실에서 데그리뇽 후작과 면담을 청해, 이제 아들 데그리뇽 백작이 스무 살이 됐으니 파리로 올려 보내 궁에서 일자리를 얻게 해야 한다고 진언한다. 후작이 행각하기에 그 말이 마땅한지라 친척이기도 한 파리의 대 귀족 드 르농쿠르 공작에게 전할 서신을 써서 아들에게 주고 파리로 보낸다. 이때 쉐넬은 자신의 시골 소유지를 담보로 해 10만 프랑을 마련해서 고모 아르망드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빅튀르니앵의 초기 비용으로 1만 프랑을 주고, 한 달에 가용 용돈으로 2천 프랑을 줄 수 있도록 파리에 있는 공증인 동창에게 전권을 주라고 하면서. 하지만, 쉐넬의 동창생은 이미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후임 공증인은 빅튀르니앵에게 한 방에 10만 프랑 전부를 전해주는 기가 막힌 일을 해버렸고, 거의 최고 수준의 사치를 시작한 빅튀르니앵은 마구간과 마차를 보관하는 차고가 하나씩, 마차 끄는 말과 승마용 영국 말 한 필씩, 거처를 꾸미는데 5만 프랑, 이런 식으로 펑펑 써 제친다. 또 젊디 젊어 리비도가 풍풍 솟구치는 청년이 연애를 하지 않으면 말이 되나? 귀족신분에 아름답기까지 한데? 그리하여 열렬한 첫사랑을 시작하니, 상대는 당대 파리에서 예쁘기로 열 번째 안에 든다는 디안느. 이 여인이 바로 드 모프리뇌즈 공작부인이었던 거다. 이렇게 작품은 파란만장한 데그리뇽 백작, 빅튀르니앵의 불꽃 같은 허랑방탕과 급격한 몰락을 향해 급발진을 시작했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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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02 05: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이서아, 《어린 심장 훈련》
화요일.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
목요일.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쿠코츠키의 경우>
금요일. 콜슨 화이트헤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단발머리 2024-08-02 16:06   좋아요 2 | URL
아는 작품(읽은 작품) 다뤄주시는 금요일 기다립니다!

그레이스 2024-08-03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단락!
턱이 뚝 떨어지게 하는 발자크의 묘사들 ㅋ 완전공감합니다. ㅎㅎ

Falstaff 2024-08-04 06:13   좋아요 2 | URL
ㅎㅎㅎ 하여튼 발자크, 못 말리겠더라고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