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5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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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읽었다. 난 보통의 독자다. 그럼 이걸로 빅토르 위고는 졸업, 혹은 땡! 맞지? 나도 위고 졸업장을 받은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 존애하는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는데 이 이모가 위고 작품 가운데 딱 <레 미제라블>하고 <노트르담 드 파리>만 빼놓고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면서 아주 곳곳에 유럽의 낭만주의에 대해 토론하면서 <웃는 남자>의 등장인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또 가끔은 <93년>을 짤막하게 짚고 넘어가니 어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리하여 올 1월 다이허우잉의 책을 읽는 도중에 급하게 인터넷 접속해서 카드 긋고 산 책이 <웃는 남자>와 <93년>.

 상,하권 합해서 본문만 950쪽에 달하는 <웃는 남자>를 정말로 읽어보니, 물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완전 개인적 감상에서 얘기하자면,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를 능가하는 재미와 감동의 진짜 낭만주의 작품.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리하여 19세기는 프랑스 소설의 세기로 규정하는 것이다.

 먼저 그림 좀 보시고.

 

 


 앞의 것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 속 궁정광대 리골레토, 뒤의 것은 유랑 익살광대극단 단장 카니오. 내가 생각하는 등장인물의 캘릭터하고는 좀 맞지 않는 사진이지만 하여간 목적상 가져왔다.


 리골레토는 연극 또는 익살극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둘째 사진은 내가 확실히 아는데, 젊은 마누라는 동네 총각하고 눈이 맞고 배가 맞았고, 하필이면 그걸 자기 눈으로 직접 봐서 이 작것들을 죽여 말아 마음 속엔 눈물과 질투와 분노와 악마의 꿈틀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데 바로 그 순간 바야흐로 익살광대극을 시작해야 하는 희극 광대다. 그가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하게 분장을 하면서 노래하는 "의상을 입어라", 희대의 테너 아리아, 아마 한 번은 다들 들어보셨을 걸?

https://youtu.be/rRhmogBs-gU

 


 근데, 저 익살광대의 얼굴이 분장을 한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기 위해 외과수술을 해서 일부러 얼굴을 만든 거라면? 어린 아이를 유괴하지 않고 법적으로 돈을 주고 사서 목적상 외과수술을 하는데, 중국에서 천년 전부터 시행하던 마취술을 써 아이를 잠들게 해놓고 눈꺼풀을 아래 위로 찢고, 코뼈를 제거한 다음 나머지 살덩이도 콧구멍만 빼고 뭉개버리고 입술을 귀 아래까지 절개해 잇몸이 드러나면서 피수술자의 기분과 관계없이 언제나 함빡 웃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면.

 실제로 야만족들이 득시글거렸던 유럽에선 17세기까지 이런 행위를 해서 수술한 아이를 비싼 값에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콤프라치코스'란 조직이 여럿 있었다는 보고가 있으며 17세기 말에 들어서야 영국의 제임스 몇세던가 하는 작자의 치하에 이르러서야 이를 불법으로 여겨 처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에선 위 문단에서 내가 예로 들었던 외과수술을 받은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사는 모습을 그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 위 위고의 <환락의 왕> 리골레토는 거기다가 곱사등 시술까지 받은 후천적 기형이 아니었던가 의심이 가는 것이, 자신의 어여쁜 딸 질다에게 유독 자신의 가족관계와 자기 이름까지 알려주지 못하는 정경 때문이었다. 어려서 팔려와 기형수술을 받은 후 만토바 성의 익살광대로 되팔린 신세. 가족은커녕 자신의 진짜 이름도 모르는 광대가 리골레토 아니었을까.

 하여간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얼굴에 중점적으로 기형수술을 받아 기괴한 웃는 모습을 지니게 된 그윈플레인은 열살 때 콤프라치코스 일당이 잉글랜드에서 바다 건너로 도망치던 한겨울에 콤프라치코스 무리에 의하여 얼어 죽거나 굶어 죽으라고 외딴 잉글랜드 땅에 버려져 황량한 포틀랜드 일대를 방황하면서 인생을 시작하는데, 당시 지구를 뒤덮던 소빙하기를 맞아 눈내리는 밤 꼬마 그윈플레인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이 터무니없이 엄정한 법에 의하여 교수형을 당한 다음 온 몸에 타르를 뒤집어 쓰고 교수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썩지도 않으면서 오랜시간 인민들로 하여금 경계하라는 교훈을 내리고 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시신이었고, 두번째가 젖먹이를 품에 안고 길을 가다가 기아와 추위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은 여인이었으며, 깊은 밤에 도착한 조촐한 시내의 두드려도 두드려도 결코 열리지 않던 시민들의 안식처로서의 집 혹은 도시였다.

 이것으로 책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마친다.

 위고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곳곳에 예상치 못한 장치를 숨겨놓아 앞의 것이 뒤의 장면과 연결되는 은밀하고 교묘한 거미줄이 함빡 쳐져있어 서툰 독자가 자신이 이 소설을 읽었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 스토리를 조금 이야기하다보면 여차했다간 세밀한 복선이나 열쇠의 끄트머리를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날 자신이 있다고 어깨에 힘 줄 이유가 없는 바,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다.

 다만 한 가지, 꼭 이야기하고 싶은 건, 왠만하면 한번 읽어보셔. 소위 말하는 작중 클라이막스에 가서 당신의 가슴도 내것처럼 안타깝고 찌르르하고 가슴 아프고 가엽고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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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7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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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찍은 <보헤미아의 숲 / 숲속의 오솔길>을 먼저 읽었고 그 책이 참으로 아름다워 기꺼이 <늦여름>도 고르게 되었다. 그러나 앞의 책에서 슈티프터가 자연과 숲과 산맥과 그 속의 생명을 묘사하는 방식이 느꺼울 정도로 아름답기는 하지만 나로 하여금 책갈피 속으로 확 빠져들게 하는 대단한 흡인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어서, 각 100쪽 언저리의 두 단편소설(<보헤미아의 숲 / 숲속의 오솔길>)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라 받아들인 효용이 과연 촘촘하게 쓰여진 880 쪽의 길고 긴 장편소설에서도 가능할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처음 책을 살 때부터 조금 걱정이었고, 책을 읽기로 한 시기가 가까워 옴에 따라(내 책읽는 방식을 서재친구분들은 아신다!) 읽기도 전에 왠지 부담이 되어 왔다는 걸 숨기지 못하겠다.

 게다가 막상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어찌도 내가 싫어하는, 싫어하다못해 아주 짜증을 내는 요소들을 그리도 골고루 갖추었는지. 내가 어떤 걸 싫어하는지 먼저 나열을 해보자.

 1. 스스로 한 건 하나도 없으면서 그냥 조상 잘 만나 큰 돈 상속받아 애초부터 부자로 살고 죽을 때까지 부자로 살기로 예약되어 있는 거. 나와 내 친구는 이런 족속을 '물총 잘 맞았다'고 표현한다. 어떤 물총? 에이, 내 입으로 설명하긴 좀 그렇고, 집에 가서 아빠한테 물어보셔.

 2. 등장인물의 관심사는 전적으로 동류들에만 있으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난한 인민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동전이나 은화 한 잎 던져주곤 그걸로 입 싹 닦는 거.

 3. 몸과 마음이 고결하기 짝이 없어 매사에 조심 또 조심, 행실에 눈꼽만 한 과오도 일으키지 않으며 설사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행위에 대한 끔찍하고 오버스런 자기 반성으로 인간성 과시하는 거.

 4. 배냇적부터 습관화 한 소위 신사 숙녀 의식에 절어 처음부터 끝까지 손끝부터 발끝까지 우아함과 고귀함과 순결함에 절어 소박한 식사를 하되 식사가 아무리 소박하더라도 결코 배설은 하지 않을 거 같은 인물들.

 5. 완벽한 지성과 지식으로 무장한 무결점 무오류 인간, 특히 남자. 분명히 예수와 초등학교 동창일 듯.

 말 했다시피 이 책에선 내가 싫어하는 거, 빠짐없이 다 들어있다.

 거기다가 호흡이 유장하기 짝이 없어서 한 문단이 서너 페이지에 달하기도 하고, 도무지 마침표가 나오지 않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까 봤던 내용 같은데 또 나오고. 허벅지 쥐어 뜯어도 도무지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고 밤만 깊어가는 진퇴양난. 어떤 기분인지 아시지? 이걸 다 합쳐서 무엇을 만드는가 하면 친애하는 한 서재동무님께서 얘기하시듯, '재미없는 독일 소설'의 전형. 전형 가운데서도 완전한 전형을 만든다. 이 정도만 쓰면 이해하실 거다.

 근데 여기서 끝나면 내가 얘기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위에 써놓은 온갖 마땅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거기다가 '재미없는' 독일소설에서도 드물게 철학, 문학, 역사 더하기 미학에 관한 한 끝판왕이 무려 두 명이나 등장하는 잘난 척까지, 그리하여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 예술에 관한 동의할 만하지만 색다를 것도 없고 분명히 과장되어 있는 무리수 마저 다 보태는 야만에도 불구하고, 난,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이 책 <늦여름>을 대단히 인상깊게, 그리고 좋게, 아울러 아름답게 읽었다는 사실.

 이거 대단히 드문 경험이다. 다 아시다시피 난 위대한 <파우스트>조차 개떡으로 아는 종자다. <파우스트> 말고도 누가 위대하지만 개떡인 책 딱 하나 골라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신곡>을 집어주는 인간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말하건데, 정말 근사하게 읽었고 근래에 보기드문 '생각하면서 읽을 책'으로 <늦여름>을 꼽겠다. 하지만 당신에게 권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 우연히 오프 라인에서 서로 볼 일 생기면 귀싸대기 한대 얻어맞기 십상일 테니까.

 내가 이 책을 그리 높게 평가하는 건 여러가지가 있지만 첫째가 오직 내가 읽어본 경험만으로 말하건데, 스티프터만큼 자연을 멋있고 맛있고 아름답고 경건하고 친숙하고 생동감있고 건강하고 태내적 익숙함으로 묘사하는 작가는 없기 때문이다. 나무와 숲과 숲 속의 식물과 곤충과 새들과 짐승과 돌맹이와 흙과 암반과 암괴와 화석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놀라운 자연과학적 지식으로 숲을 보는 것하고 오직 태생적 미학의 관념으로만 보는 숲하고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스티프터는 태생적 미학의 관념을 갖고 있는 위에다가 자연과학적 지식까지 습득한, 거기다가 글도 잘 쓰는 작가다. 그러니 애초부터 게임 끝. 미학적 관점은 회화와 조각과 조소와 건축과 구조물과 공예품과 화훼까지 끝간 데가 없이 광활한 조망을 이루고, 때에 따라선 독자를 가르쳐보려 들이대는 기미도 있기는 한데 그까짓 것만 좀 너그러워질 수 있다면 나처럼 이 책에 반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내가 아무리 좋다고 상찬했을지언정 전적으로 개인의 기호라는 거.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동감이나 감동까진 내가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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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0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ㅋㅋㅋ 제가 이 책 사놓고 그 재미없는 독일 소설의 전형에 1권 반쯤 읽었을 때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아.....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는데...... 다시 이겨내야겠습니다. ㅋㅋㅋ 근데 지금 그 재미없는 독일 소설의 또 다른 하나인 <마의 산>을 예전에 읽다 말아서 다시 읽고 있는데 너무나 그 산은 넘기 힘들군요... <마의 산> 다 읽고 연달아 <늦여름> 읽으면 미쳐버리겠죠? ㅋㅋㅋㅋ

Falstaff 2017-03-07 14:39   좋아요 0 | URL
ㅋㅋㅋ 확실한 건 <마의 산>에 이어 <늦여름>까지 읽으시면 다른 건 몰라도 몸에 사리 생깁니다. 열반하실 수도 있고요. ㅋㅋㅋㅋ
근데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책에 관해선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호‘란 점을 확실히 밝혀야해요. ㅠㅠ 음악 듣는 거에도 가끔 이런 경우가 생기는데 그걸 ˝나만의 명반˝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의 산>. 어제도 어디서 이 작품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어요. 삼중당 문고판으로 <마의 산>을 읽은 게 고딩 2학년 땐데, 지금 생각해도 첨부터 끝까지 스위스 산자락 요양원에서 미열에 시달리는 젊은이 얘길 어떻게 다 읽어치웠는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그 후엔 살면서 다시 읽어볼까, 라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더라고요.

귀도발도 2022-12-0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클라우디오 마그리스가 다뉴브에서 언급했길래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선생님의 이 재치있고 유쾌씁쓸한 리뷰를 만나게 됐네요. ㅋㅋㅋ 결론은... 선생님 리뷰 덕에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겁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ㅋㅋㅋ

Falstaff 2022-12-09 05:30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혹시 낚이신 건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어쨌든 즐기는 게 제일이니 아무쪼록 공감하며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
 
블라이드데일 로맨스 대산세계문학총서 50
나다니엘 호손 지음, 김지원.한혜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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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에 나온 <큰 바위 얼굴>의 작가 이름은 '나다니엘 호돈'이라고 배웠는데 이제 세월이 지나니 이젠 이 사람 이름은 쓰는 사람 마음대로다. 나사니엘 호손(문학과지성사, 소담출판사), 너새니얼 호손(민음사, 문예출판사), 너대니얼 호손(푸른숲), 기타등등. 이거 뭐 대한민국 출판을 책임지는 것들이 외국어 표기에 관해선 다들 지 잘났다고 맘대로야.

 호손의 책을 한 권 정도 더 읽으려고 해서 <일곱박공의 집>을 고를까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를 고를까 잠깐 망설이다가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책. 왜냐면 오랜만에 시내 나가 5천원짜리 커피 마시며 사람 기다리다가, 물론 술 약속 시간 맞추려고 그랬는데, 커피집이 입구 전광판에 오늘 들어온 책 474권, 이렇게 써있는 중고책 가게도 겸해서 무슨 책들이 나왔나 둘러보다가 싼 김에 산 거다. 싸서 샀다고? 하이고, 커피값 5천원은 생각 안 해? 직장생활 하면서 하도 인스턴트 커피에 입이 길들어 난 몇 천원짜리 원두커피는 맛이 없어 잘 안 먹는데, 맛없는 원두커피 값 생각하면 절대로 싼 김에 산 거 아니다. 하여간 그랬다.

 이걸로 호돈인지 호손인지 하는 19세기 초반 태생의 미국작가는 내게 작별을 고한다. 아, 호손이 그리고 <블라이드데일 로맨스>가 후져서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내게 큰 어필을 하는데 실패했다는, 아주 전적으로 개인적인 기호에서 그렇다는 말씀. 이 양반이 1804년생. 마흔 여덟살에 출간한 이 책은 호손으로선 이색적으로 1인칭 시점에서 썼다고들 하는데 뭐 그리 관심이 있는 바는 아니고, 왜 개인적으로 내가 호손에게 실망했는가 하면, 실제로 호손이 유럽에 비해 완전 꼴보수 상태였던 아메리카에서 농촌 공동체 내의 사회주의를 실험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경험한 것을 소설적으로 만든 것이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라고 하지만, 그 사회주의 농촌 공동체에서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해 7개월만에 쫑을 낸 것처럼 다분히 공동체를 좀 비틀어보려는 악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1인칭 소설이 제일 재수 없는 건 주인공 '나', 이 책에선 '커버데일'이란 작잔데,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무결점의 정의로운 자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거. 하지만 곳곳에 그놈의 '나'가 견지하는 시선의 삐딱함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건 거의 전적으로 작가의 사상 자체가 그래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긴 뭐, 이 책에선 화자 '나'가 주인공이라기보다 다분히 관찰자로 등장하고, 주인공 삼인방이라고 할 수 있는 등장인물은 (화자, 즉 작가의 시선으로 보면) 다분히 위선적이고 허황한 성격의 박애주의자 홀링스워스와 그를 둘러싼 두 여자, 제노비아와 프리실라로 이 세 사람 사이에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 설킨 로맨스를 그렸지만, 제일 마지막 문장, 즉 결론에 이르는 화자 '나'의 선언이 어째 좀, 당최, 여간해서, 여기까지 써놓고 온라인에서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 점 대여섯개 찍는 일. 이렇게. "…".

 마지막 문장, 혹은 '나'의 선언이 뭐냐고? 그거 아시면 책 못읽음. 그래서 안 알려드림.


 근데, 그러지 말고 호손이 쓴 다른 책 한 권 정도 더 읽어볼까? 그래 뭐 세상 별거 있나. 그깐 책이 뭐라고 단칼에 자르겠단 말을 해. 안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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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튤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8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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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난 작가. 19세기를 프랑스 소설문학의 황금기로 만든 주인공 가운데 한 명. 신고전주의의 새물결 이란 공허한 선언을 완전히 뭉개버린 낭만주의의 전사. 흑인 노예 출신 어머니를 둔 물라토 출신, 그러나 나폴레옹 시절에 장군을 역임했던 풍운아 아버지가 뒤마에겐 어떤 역할을 했을까. 혹시 그래서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역사소설들이 특히 더 재미있을까? 그건 다 프랑스 문학 평론가에게 맡기고 난 그냥 책을 즐기기만 하면 장땡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이야기. 바로 옆나라 프랑스에선 태양왕 루이 14세가 전성기를 맞아 오직 심심하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네덜란드한테 찾아가 레프트 잽을 다르르르 날리곤 했던 시기. 두르려놓고는 꼭 한 마디를 보태니, "까불지마!" 네덜란드 입장에선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이 늘 그렇듯이 이리저리 눈치 보면서 명줄을 늘이기에 완전 넙치 눈깔이 되던 때, 정말 축구 하나 기막히게 잘하는 네덜란드 축구대표팀 오렌지 군단의 영도자 오렌지 가문을 중심으로 한 공국체제와 당시만 해도 혁신적인 정치제제인 공화정을 주장하던 세력간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시절에 적절히 적응하고 아니고의 문제일 뿐이었다.

 당시 공화정을 주장하던 권세있는 형제가 있었으니 형 코르넬리스 드 비트, 동생 얀 드 비트. 그러나 정세는 오렌지 공 윌리엄을 등극시키면서 코르넬리스는 이미 암살음모의 누명을 쓰고 헤이그의 감옥에서 고문까지 받고 죽음만 기다리던 상태였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의 격변기엔 죽고 죽이는 사람들 양 편이 공히 정의로운 사람일 수도 있으니 오직 '자신들만의' 확신과 진리와 통찰에 의하여 행위하기 때문. 드 비트에겐 유배형이 내려지고, 사형이 아니라 유배형에 격분한 시민들은 드 비트 형제를 척살하기 위해 헤이그 감옥 앞 광장을 잔뜩 메우고 있다. 이 상황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본문만 350쪽으로, 그것도 민음사 세계문학의 럴럴한 편집으로 350쪽으로, 뒤마의 소설로 치면 매우 짧은 분량이다. 근데 그거 말고도 뒤마가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순간순간을 묘사하는 재치와 직관적 순간의 포착과 그리하여 그런 것들을 통해서 독자가 전율할 수밖에 없는 실감과 재미와 흥미진진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의 스토리에 관한 더 이상의 첨언은 그야말로 낭비다. 어떻게 글을 쓰면 뒤마 만큼 술술 읽힐 수 있을까. 그것도 원어가 아니라 번역한 글이 말이다. 소설가나 소설가 지망생들은 이에 대해 한 번 숙고해볼 만하지 않을까. 문장 하나하나를 감각적이고 주머니 속에서 톡, 튀어나온 송곳처럼 쓰는 것도 좋겠지만 역시 소설의 문장들은 읽기 편하게 죽죽 힘차게 벋는 힘을 수반해야 제대로 된 맛일 터이니.

 만원 한 장이면 이 책 살 수 있다. 그럼 하루 혹은 이틀이 재미있거나 행복하다. 감동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경우보다 훌륭한 당신의 킬링 타임을 보장한다. 이거,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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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03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이거 정말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어릴 때 뒤마 <삼총사> 읽으면서 심장 쫄깃했던 기억이 납니다.

Falstaff 2017-03-03 14:34   좋아요 1 | URL
영화보는 거처럼 박진감도 있고 막 그렇더라고요.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합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2-07-20 14:14   좋아요 1 | URL
이 책… 재밌었어요… 킬링타임 맞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좀 아 너무 옛날 소설이다 이러면서 읽다가 뭔가 유치한 데 매력적이라서 빠져서 읽었답니다. 1800년대의 베스트 셀러 였던 거죠? ㅋㅋㅋㅋ 삼총사도 이렇게 재밌나요? ㅋㅋㅋ 누가 읽었나 하고 찾아봤는데 역시 걸드문트 님은 읽고 리뷰까지 남기셨네요 ㅋㅋㅋ 신기방기!!!

Falstaff 2022-07-20 18:39   좋아요 0 | URL
옙. 삼총사도 재미납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재미납니다.
삼총사 민음사 1권 보시면 쇤네가 쓴 독후감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어마어마하게도, 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가히 뒤마의 대표작 아니겠습니까. 역시 인간은 돈이 많으면 좋아요. ㅋㅋㅋㅋ

삼총사도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오지 않을까요? ㅋㅋㅋㅋㅋ 민음사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죠.
 
유디트 / 헤롯과 마리암네 대산세계문학총서 105
프리드리히 헤벨 지음, 김영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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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얘기하는대로 이스라엘 삼국지, 즉 구약성서를 기반으로 쓴 희곡 두개를 실은 책. <유디트>와 <헤롯과 마리암네>. 유디트는 뭐하는 여잔줄 알았고 마리암네는 몰랐다. 유디트도 사실 구약을 읽어서가 아니라 서양소설을 읽는데 가끔 등장해서 아는 것이지 난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돌아오지 않은 탕아다.

 그래서, 솔직히 별 감흥 없이 읽은 책. 이 책에서 가장 멋있는 건, 전적으로 기독교에 관심 없는 이방인의 눈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인데, 바로 책 껍데기 그림이다. 당연히 구글 검색해서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어떤 모습인지 찾아냈다. 보실래?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대가리


 놀랍게도 우리나라 출판사 중에서도 메이저 가운데 메이저 문학과지성사가 이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원화는 어디에 있는지, 원화의 소유자에게 저작권료는 줬는지 아닌지를 책 어느 구석에도 명시하지 않았다는 거.


 두 희곡을 발표하고 초연을 한 것이 1840년과 48년. 당시엔 무대 위에서 남자 중의 남자, 영웅 가운데 진짜 영웅 홀로페르네스의 대가리를 자르는 것이 매우 획기적인 연출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그다지 와닫지 않는 게 사실.

 <유디트>는 알고 있는 얘기였음에도 이랬으니 <헤롯과 마리암네>는 더했으면 더하지 않았다는 건 얘기할 필요도 없다. 근데 여기서 살로메가 등장하는데, 와일드를 통해서 알고 있는 살로메하고는 완전 다르던데, 이래서 문학에서도 진화가 있다는 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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