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 부지깽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1
로버트 쿠버 지음, 양윤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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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를 보시라. 이래서 책도 디자인이 중요하다. 위 사진의 어린아이를 자세히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만일 봤다면 안 그랬을 텐데, 작은 사진만 보다보니 이 책 <요술 부지깽이>는 제목이 주는 동화적 인상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화나 동화 비슷한 장르의 책인 줄 알았다. 당연히 작가 로버트 쿠버란 이름도 처음 들었으며 그가 미국에선 '메타 픽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다. 원래 나처럼 남들과 소통하지 않고 혼자만 죽어라 책 읽는 사람들의 한계다. 더구나 아시다시피 난 문과 출신도 아니라서 주위에 있는 친구라는 것들도 뭐 다들 엔지니어 출신 치킨집 사장님, 학원 강사, 납품업체 사장. 잘나가는 친한 친구들도 몇 명 있긴 한데 걔네들은 공직생활 끝날 때까지 연락 딱 끊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일이란 걸 다행히 알고 있어서 연락도 안 한다. 그러니 쿠버가 어떻고 메타 픽션이 어떻고 그걸 알 도리가 있어야지.

 오늘도 서론이 길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그냥 사는 얘기 한 번 해봤다.

 하여간 이 책 읽으면서 코피났다. 쉽게 보고 만만하게 들이닥쳤다가 된통 혼났다. 동화? 동화는 동환데 어째 좀 이상하다.

 표지 사진을 크게 보면​, 아이의 눈과 심술보가 대단히 사납다. 앙리 루소가 1903년에 그린 <아기에게 경의를 표하며>란 그림이라는데 어찌보면 척키 같은 인상이 좀 으스스한 것이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아니나 달라, 재크와 콩나무 얘기가 나온다. 거기서 재크가 밤 새 대빵 커져 구름을 뚫고 솟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거인을 죽이고 돈 좀 만졌다는 건 다들 아실 거다. 쿠버, 여기서 정말 기상천외한 생각을 한다. 구름 위의 거인이 누구인가. 누군데 그를 죽여야 하는 것인가. 다름아닌 재크 자신이란 거다. 성인이 된 재크. 재크 점점 자라 아랫도리에 털나고 턱 밑에 수염나 어른이 되면 괴물이 된다는 말일까. 하긴 어린 아이의 눈에 세상의 모든 어른 남자는 괴물일 수도 있겠다.

 쿠버의 비틀기는 경계도 없다. 성경도, 아담과 이브도, 노아도, 원더랜드의 엘리스도 없다. 그냥 뭐든지 쿠버한테 걸리기만 하면 심하게 비틀려 제 모습을 찾지 못하게 변질되어 버린다. 아하, 이런 거 어디서 읽어봤다. 천일야화의 셰혜라자데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불세출의 영웅 페세우스를 확 비틀어버린 존 바스의 <키메라>. 흠. <요술...>과 <키메라> 같은 책을 메타 픽션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누가 나한테 메타 픽션이 뭐냐고 하면 일단 쿠버를, 그 다음에 존 바스를 얘기하면서, 크게 말해 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경향을 얘기하는 거지. 라고 하면 좀 폼은 나겠다. 상황 봐서 거기다가 구라도 좀 덧붙이고.

 근데 문제는, 위에서 내가 말한대로 쿠버의 <요술 부지깽이>와 바스의 <키메라>가 정말 메타 픽션, 이제 세상에 소설의 소재는 몽땅 다 떨어졌기 때문에 남은 것이라고는 이미 인류가 알고 있는 신화나 전설등을 다시 만드는 작업,의 테두리 안에 포함된다고 가정하더라도(물론 아마추어의 턱도 없는 주장이겠지만) 소설읽기의 주요 목적인 재미가 <요술...>엔 별로 없을까. <키메라>는 읽는 내내 웃겨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어째 <요술...>은 영 그렇지 않다. 오히려 페이지 넘기기가 되게 힘들었다. 에이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고 양해를 하더라도, 물론 재미가 있어야 소설이라는 얘긴 아니지만, 이왕에 있는 동화, 신화, 전설, 거기다가 성경 창세기까지 온갖 것을 다 가져다가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하면, 독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유니크한 다른 얘기가 펼쳐질 것인데, 그럼 (맨땅에 대가리 박는 심정으로 소설쓰는 작가에 비하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기에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 것임에야. 아하, 줄리언 반스의 <10 1/2 장으로 쓴 세계역사>도 이 부류에 드나? 그렇기도 하겠다. 반스가 알면 난리를 칠 수도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극동 아시아의 한 독자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단 걸 반스가 알 턱이 없으니 그냥 말해버려도 무방하겠다.

 왜 특출한 소설가 존 바스와 줄리언 반스까지 거론해가며 메타 픽션 어쩌구 저쩌구 하는가 하면, 매우 아쉬운 얘기지만 로버트 쿠버의 <요술 부지깽이>만 읽어보고 얘기한다는 전제 아래, 쿠버는 안타깝게도 자신이 개척했다고 하는 메타 픽션의 방식을 통해 바스나 반스처럼 장편소설로 영역을 확장할 역량까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바스와 반스를 포함해, 기존 작가들이 그냥 참고하거나 인용 정도의 수준에 머물던 여러 이야기를 다시 비틀어버려 사차원적 두뇌놀이로 만든 메타 픽션 소설가들의 아이디어는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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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마르 열린책들 세계문학 173
나기브 마푸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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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중원문화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나기브 마푸즈의 소설 <우리동네 아이들> 정성호 번역을 사서 아직 표지도 들추지 않았는데 민음사가 같은 소설을 배혜경의 번역으로 발매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정성호를 경원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정성호는 영문학 전공으로 이집트 소설가의 작품을 중역한 것이고, 배혜경은 직역을 한 것. 당신 같으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더구나 정성호 역은 중역본, 훨 먼저 발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격까지 비싸다. 정가 기준 1권은 2,000원 2권은 1,500원. 왜 열을 내느냐 하면, 세계 유수의 선정기관들이 빠짐없이 마푸즈의 <우리동네 아이들>를 100대 소설이라느니 하는 목록에 빠짐없이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아시리라. 내가 속물이란 걸. 그러니 배가 아프겠어 안 아프겠어. 읽은 결과, 아담, 모세, 예수, 모하메드, 그리고 (백퍼 내 생각으로)니체, 다섯 인간(또는 요괴인간 또는 반인반신 또는 하느님의 아들 또는 사람의 아들 또는 망치를 든 철학자)에 관한 우화적 구라를 푼 책. 중역이라서 그랬는지 어땠는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 동네...>가 그리 특징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그의 다른 소설 딱 한 권을 더 읽고 마푸즈를 계속 읽을지 때려 치울지 결정을 하고자 선택한 것이 바로 <미라마르>였던 거다.

 책을 딱 펼쳐보니, 아, 멀리 아득한 동경을 담은 도시 알렉산드리아.

 그곳에 한때는 고급 팬션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이제 많이 쇠락한 하숙집 미라마르. 역시 한 시절 기품있는 아름다움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광휘가 넘쳐흘렀던, 그러나 이미 늙어 어깨가 굽고, 화사한 금발은 틀림없이 염색을 한 것이고, 손과 팔뚝의 살갗 아래로 정맥이 비치고, 입가에 주름이 낀 것으로 보아 적어도 예순 다섯살은 돼보이는 마리아나, 숱한 세월동안 한 남자로 하여금 가슴 속에 품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그리스 출신의 마리아나가 미라마르 팬션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다.

 비록 어느 한 순간은 마리아나를 추억하지 않았겠지만 수십년의 세월 동안, 1919년 영국의 식민지배에 항거하기 위해 민족주의 혁명에 기꺼이 몸을 던졌으나 1952년 이름도 수상한 나세르와 자유장교단에 의한 쿠데타로 정치적 지위도 잃고, 아울러 명성과 재산까지 몽땅 털려버린, 그러나 남은 재산을 남은 생애만큼은 여유있게 쓸만큼은 되는, 그리고 더 남은 것이라고는 푸른 눈의 그리스 미인 마리아나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밖엔 없는, 퇴직 정치인 아메르 와그디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미라마르 팬션에 드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수십년의 그리움이여. 하지만 세월은 흐르는 것. 시간의 손톱이 사납게 할퀴고 지나간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들은 전혀 옛시절의 연정을 다시 이으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명한 늙은이들. 그들은 그저 가끔 시간이 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같이 듣고, 지중해 날씨를 즐기며, 밤의 대화를 한다.

 나세르 정권은 시류 속에서 약한 수준의 사회주의를 채택, 일단의 부르주아들이 갖고 있는 재산을 몰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지만, 거의 모든 부르주아들은 재산의 많은 부분을 이미 다른 곳으로 빼돌린 상태. 언제나 부르주아들은 그냥 앉아서 당하진 않았던 거다. 겉으론 모든 재산을 몰수당해 거덜이 난 것으로 보이나 사우디 아라비아로 시집간 딸에게 많은 재산을 빼돌린 것처럼 보이는 거덜난 구닥다리 부르주아 톨바 마주르끄가 또다른 하숙인으로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거기다가 여태 숙박인 하나 없던 팬션에 갑자기 세 명의 젊은 손님이 들이닥치니, 말로는 넓은 땅을 몰수당하지 않고 지켜냈다고 하는 지방 유지이자 자칭 부자(같이 보이는) 호스니 알람. 고위 경찰로 막강한 권력을 향유하는 형을 둔 사회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이자 약간의 정신질환, 그것도 (내가 보기엔)심각한 범죄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평소엔)선량하기 그지없는 정신질환자 만수르 바히. 그리고 잘 생긴 건달이자 놈팽이이자 쓰레기, 그래서 가히 한 소설의 주인공 감이긴 한데 이 소설에선 주인공의 자리엔 오르지 못하는 사르한 알베헤이리.

 노인 셋, 젊은이 셋. 이렇게만? 하나 빠진 게 있다.

 그건 바로 아름다운 젊은 여성. 오라버니가 이빨 다 빠진 동네 할아비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자신의 땅까지 포기하고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쳐 미라마르 팬션에 하녀로 취직한 조라.

 그리하여 작품은 조라를 둘러싼 진짜와 가짜 사랑. 이를 둘러싼 눈길들의 안타까움과 냉정함의 교차로 구성되어 있다. 젊은이들의 혼돈과 사랑, 이를 둘러싼 이집트 현대사의 암울한 정경, 이런 풍경들이 소설 속에 섞여 알싸하게 만든다. 결국 마푸즈의 소설을 더 읽을지는 이이의 작품을 하나 더 읽어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재미있는 책.



 * 참고로 이집트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해준 소설이 있어 소개.

  

   치과의사 알라 알아스와니가 쓴 소설 <시카고>. 겁나 재밌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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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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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먼 커포티, 라는 이름은 무척 많이 들어봤는데 그의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커포티의 작품들을 일반적으로 장르 문학, 장르 문학 가운데서도 추리소설로 구분하는 거 같다. 난 추리소설을 싫어하지 않지만 굳이 찾아 읽지 않는다(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는 무지하게 재미나게 봤다). 그래서 이 사람의 작품을 몇 해 동안 읽을까 말까, 들었다 놨다, 장바구니에 넣다 뺐다만 하다 오늘날 까지 온 거다. 이 책 말고도 좋다고 하는 책들은 쌔고 쌨으니까.

 이런 이유로 마음 속에만 이름을 기억하고 몇 해를 건너 뛰다가 진짜로 이 책을 읽어보니, 이게 추리소설? 글쎄. 장르 구분이야 읽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쳐주겠지만 내 생각엔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심리소설이다(물론 잘 쓴 추리소설은 언제나 심리소설일 수밖에 없기는 하다). 게다가, 나 같은 경우엔 거의 대부분 책의 본문만 읽는 경향이 있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 사건을 진행시키는 악당들의 동선과 행위 같은 것이 어째 좀 으스스한 게 뭔가 수상쩍어, 잠깐 책 읽기를 멈추고 좀 알아봤더니, 세상에 나 참, 심지어 이게 실화소설이란 거다.

 이른바 사이코 패스의 단계로 접어든 두 인간들에 관한 보고서. 이 책을 읽고 사이코 패스에 관해 좀 더 알아봤다. 이른바 전문가 집단의 의견은 사이코 패스를 만드는 건, 사이코 패스 당사자의 유전적 형질이나 천부의 성격 탓이라기 보다 특정한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움, 폭력에 대한 반항 및 반항으로의 재 폭력,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 등의 종합선물세트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에 묻지마 살인/폭력이나 테러리즘에 가까운 다중을 향한 폭력의 기도, 사이코패스 등을 조사해보니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는 조사도 있단다. 즉, 다중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지간에 특정인을 고립시키는 행위, 거기다가 폭력을 동반하여 고립시키면 더욱 그러한데, 그런 행위가 해당 특정인을 사회부적응에 이은 사이코패스로 만드는 지름길이며, 이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일으키는 순간 자신의 범죄에 대한 죄의식,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거의 없다는 놀라운 현상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러니 외톨이를 만들지 말 것. 그의 성격이 얼마나 더러웠으면 외톨이가 됐겠느냐고? 아, 제발 이딴 생각 마음에 두지 마시라.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내가 다니는 회사 안을 보더라도 다중이 인위적으로 만든 외톨이 몇 명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수와 다르다는 것, 이거 좀 제발 인정하면서 살자. 인류 평화를 위해서라도.

 갑자기 독후감 쓰다가 왠 삼천갑자 동방삭이냐고 하실 지 모르지만, 이게 명색이 범죄사건, 미국 중서부 지역의 무지무지, 무지하게 건전한 부르주아 가족을 몰살시키는 이야기라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며, 골머리를 썩이는 수사관들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독후감을 쓰자면 어쩔 수 없다. 다른 어떤 장르보더 범죄와 수사를 통한 사건의 해결, 재판과정과 결과의 실행, 이딴 거 말하기 힘들다. 이런 거 정말 아시고 싶어? 좋다, 정 그러시다면 어찌 멈출 수 있으리오.

 이 책은 네 부로 되어있다.


 1부. 그들이 살아있던 마지막 날.

 켄자스 주 홀컴이란 아주 작은 마을에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마음 좋은 지주 클러터 씨 일가가 있다. 아들 하나와 딸 셋. 큰 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둘째 딸은 대학가서 공부하다가 지금 좋은 남자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집엔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제 연애를 막 시작한 똑똑하고 마음 착하고 거기다가 예쁘기까지 한 큰 딸과 그런 누나와 비교해도 모자람 없는 막내 아들, 이렇게 네 명이 살고 있다. 원래 인간이 너무 행복하면 신이 질투를 하는 법. 동부에서부터 먼 길을 운전해 온 두 악당이 한 밤중에 부엌문을 따고 침입해 들어와 네 식구를 결박하고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버린다. 그렇게 다 죽었다.

 2부. 신원불명의 범인들.

 공포상태에 빠진 홀컴 주민들. 심지어 형사반장 가족들까지. 딕과 페리, 두 악당이 범죄를 저지르고 태연하게 미국과 멕시코를 넘나들며 부도수표를 남발해가며 잘 놀고 잘 때려먹고, 심지어 선량한 독일인 친구까지 사귀며 다니다가, 잡힌다.

 3부. 해답

 켄자스 법정에서 범죄사실에 관한 재판이 벌어진다. 딕과 페리의 유년, 소년, 청년 시절에 관한 묘사가 등장하며 살인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형제도에 관한 왈가왈부. 예상외로 커포티가 범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동정적이라 깜놀.

 4부. 구석

 '구석'은 교수형을 집행하는 곳. 형무소 한 구석에 있다. 켄자스 형무소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딕과 페리. 사형제도 반대의견이 고조되고 있던 시점. 두 흉악범인은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건조하게라도 써놓는 것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지만 팍 내용을 올리는 건, 스토리를 아무리 여기다 써봐도 진짜 이 책을 읽는 건, 커포티가 인터뷰한 숱한 사람들의 진술과 그들의 심리상태. 수사관과 범인들 사이의 범죄적 교감 등등에 관한 것이지 결코 범죄와 사건의 해결, 그리고 형벌의 집행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작은 아니지만 굳이 시간 내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그러나 작품을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는 범인들에 대한 동정적 시선이다.
 미국 드라마 CSI 뉴욕에서 맥 테일러 반장이 괴물 아버지를 둔, 불우한 유년/소년/청소년 시기를 두루 지낸 미남의 연쇄살인범에게 (완전한 인용이 아니라 이런 취지로) 말한다.
 "난 널 동정하지 않아.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 거의 다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 넌 그냥 개새끼일 뿐이야."
 나는 커포티 보다 맥반장의 말에 더욱 동감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 소설 작품에 관해선 재미는 있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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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5-0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다 보면 정말 좀 으스스하죠. 전 카포티가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페리 스미스에게 인간적으로 끌렸던 게 아닌가 싶어요. 페리에게만 유독 동정적 시선이라 읽다가 부아가 치밀기도 했지요(실제로 이 사건 담당 형사 중 한 사람은 카포티가 페리와 애정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공정성을 잃었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카포티의 그런 시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해해보자면, 카포티가 자신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페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Falstaff 2017-05-04 12:38   좋아요 0 | URL
카포티도 어린 시절에 그런 기억의 흉터가 남았던 모양이지요?
근데,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있어서 시간의 상흔을 잘 치유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겠습니까. 다들 아픔을 마음 속에 하나씩 가지고 사는 거지요. 그래서 소설가도 나오고 시인도 나오고, 심지어 철학하는 작자들도 생기고 뭐 그런 거지요.
에휴, 하여간 인생, 길지도 않은 거 살기도 쉽지 않습니다. ㅠㅠ

잠자냥 2017-05-0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리 스미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카포티는 아주 어릴 때(4살 무렵)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살았더라고요(부모가 둘 다 그를 원하지 않아서 ㅠㅠ). 카포티라는 성도 엄마가 재혼한 남자의 성이라고 하네요. 그나마 맡겨진 친척집에서 나이 많은 사촌으로부터 애정다운 애정을 받은 게 큰 위안이 된 것 같더군요. 그의 단편에서 그 시절 이야기들이 종종 나옵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와의 우정도 그 친척집에 있을 때 이루어졌던 것 같고요. 그 애정과 우정이 카포티를 살린 셈이랄까요. ㅎㅎ

Falstaff 2017-05-04 13:06   좋아요 1 | URL
아, 그래서 이 책에서 하퍼 리한테 (헌정했던가?) 특별한 감사를 했군요.
심지어 인터뷰도 하퍼 리하고 같이 했던 걸로 책 뒤에 나와 있더라고요.
덕분에 또 배웠습니다. 언제나처럼 고맙습니다.
 
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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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은 오에 겐자부로. 이 사람 아직도 살아 있다며? 노벨상도 받았다며? 노벨상이야 아무나 받는 거지만(펄 S 벅도 받았고, 처칠도 받았고, 밥 딜런도 받았고 하다못해 크누트 함순도 받은 문학상이잖아) 왜 내 옆에는 사람이 없어 이 나이 먹도록 반핵운동가이자 양심적 소설가로만 알았던 오에의 작품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듣지 못했을까? 하긴 '눈을 까뒤집고' 찾아봐도 내 주위의 삼차원적 세상에선 책 읽는 사람, 증말 한 명도 없다.

 책을 읽어나가며 조금은 엉뚱하게도 오에보다 한 10년 늦게 노벨상을 받은 페르시아 태생의 소설가 도리스 레싱이 쓴 <다섯째 아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에의 <개인적인 체험>이 결국엔 제발 해피 엔드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책을 읽으면서 읽는 순간엔 나름대로 간절해지는 심정 다 이해들 하시지? 그런 간절한 심정이 풍풍 솟구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다섯째 아이>를 읽을 땐 도리스 레싱, 이 작가가 독자에게 즐거운 마지막 페이지를 결코 선사하지 않을 것이란 걸, 비극적 전망을 계속 보여준 바 있어 그걸 통해 눈치를 챌 수 있어 참담한 마음을 읽는 내내 어찌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에선? 궁금하시지? 천만의 말씀. 절대 가르쳐드리지 않는다.

 책에는 '버드' 즉 '새'라는 별명을 지닌 신혼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경사스럽게 첫 아이의 출산을 목전에 둔 상태. 버드에게도 멈추지 못하는 로망이 있었으니 바로 아프리카 탐험이다. 그는 아내가 산과 병원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책방에 들러 비싸고 비싼 아프리카의 상세 지도를 기꺼이 사고 보는 인종. 물론 아프리카로의 탐험 자금으로 아내 몰래 꿍쳐둔 돈도 3만 엔 가량 되고. 이 인간에겐 아프리카 탐험이나, 거금 3만 엔의 비자금, 하다못해 비싼 아프리카 지도를 사는 일마저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박봉에 시달리는 학원 강사로 호구를 이어가는데, 영문학을 공부하여 학사를 거쳐 석사의 위를 향해 대학원에서 열라 공부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물론 이유가 있기는 있었겠지만 자기 머리로는 왜 자신이 그랬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난데없이 몇 달을 위스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해 공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 때, 그의 지도교수이자 학과장의 딸을 인터셉트하여 결혼에 성공한 댓가로 장인이 학원 강사 자리나마 알선을 해준 터였다.

 소도시에 살던 어린 시절엔 그야말로 껌 좀 씹던 몸이 도쿄에서 정착을 하자마자 시새푸새 하루하루 몸에 근육이 빠져나가기 시작해 이젠 20대 젊은이이긴 하지만 도무지 기력이 없는, 이런 인간, 짐작하시겠지, 맞다 바로 당신이 짐작하는 헐렁뱅이 젊은이를 떠올리면 딱 맞는다. 아니나달라? 젊고 어여쁜 아내는 분만대 위에서 기력을 다해 힘을 쓰고 있는 와중에, 20대 후반의 이 청년, 공중전화 걸려고 들어갔던 시내 지하실 사격장에 '어린' 건달들한테 걸려, 비 쏟아지는 진흙 위에서 와장창 두드려 맞아 이가 하나 부러지는 참경을 겪는다.

 (이가 부러진 버드. 이가 부러져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그래서 네이버에 "이 부러지면 아픈가요?" 검색해봤더니, "이빨도 뼈인데 부러졌는데 그럼 안 아프겠냐", ""개아픔 채택ㄱㄱ", "이빨도 부서지면 아플 거예요 물론 100%요"의 대답이 나와 내 생각을 만족시켰다. 소설은 이후 약 1주일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근데 버드의 성격에 네이버 답변과 같이 '개아픔'을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어떻게 한 번도 호소하지 않았을까? 무지 아팠는데 참았을까? 진짜로 무진장 아팠지만 작가가 생각하기에 그건 이 책에선 아픔도 아니라서 오에 겐자부로가 일부러 모른 척했을까? 난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여간 젊은 아빠가 온갖 역경을 겪은 다음에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는, 부의사, 정의사 말고 부의사副醫師의 전화를 받았으나 어째 전화 속의 목소리가 심상찮다. 아이가 나오긴 나왔지만, 머리뼈에 이상이 생겨 뇌헤르니아 상태라서 아이의 머리통이 수박만 하다는 거다. 헤르니아, 라면 탈장을 얘기하는 거고, 뇌헤르니아라면 뇌가 머리뼈의 빈 곳을 통해 두개골 밖으로 누출 되었다는 얘긴데, 그게 수박만 하다면 뇌의 거의 전부가 흘러나왔다고 봐야 하는 것이고, 진짜로 산부인과의 정,부의사는 뇌헤르니아로 진단하여 아이를 대학병원으로 옮기자는 말을 하기 위해 버드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갓난 아이의 두개골을 열고 뇌를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수술. 수술이 극적으로 성공해도 살아날 가능성 별로 없고, 살아났다 하더라도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지내야 할 확률이 거의 95%. 수술이 대성공을 거두어 식물인간이 아니라 지체장애로 살아야 할 확률이 나머지 5%. 그러느니 차라리 아이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부모한테도, 아이한테도 훨씬 나은, 효과적인, 바람직한, 심지어 자비로운 일이 아닐까. 부모가 아이보다 먼저 생을 뜨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럴 경우 정말로 수술이 대성공을 거두어 지체장애가 된 성인 자녀는 남은 생애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의 큰 아들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난 더 이상 단 한 마디도 보태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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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5-0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에 겐자부로의 수필 <말의 정의>를 보면 아들 히카리와의 담담한 일상이 잘 그려져 있어요. 아들은 음악에 재능이 뛰어나서, 오에 겐자부로는 글을 쓰고 아들은 그 옆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가, 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Falstaff 2017-05-02 10: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가끔 울나라 뉴스에 나와서 하는 거 보면 일본에선 ‘양심적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란 거 말고는 오에를 전혀 몰랐습니다. 조만간에 한 권 더 읽을 거고요, 올 하반기에 한 번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나누어진 하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4
크리스타 볼프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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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타 볼프가 동독에서 이 책 <나누어진 하늘>을 쓰고 출간한 해가 1963년. 같은 토끼 해 자유 대한민국에선 놀랍게도 식민모국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다카키 마사오가 원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박정희로 다시 개명하고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복무 중 남조선노동당원으로 체포돼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한국전쟁의 와중에 승승장구, 초보 민주주의 공화국의 어지러운 틈을 타 와장창 쿠데타를 일으키더니 자기 손으로 별 네개를 달고 제대를 해 민주공화당 당수에 올라 선거를 통해 제 5대 대통령에 취임, 두번째 해를 맞는 제 1차 경제개발계획에 숨가쁘게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누어진 하늘>을 읽어보고 단언하건데, 1963년 빨갱이 나라 동독은 자유 대한민국보다 훨씬 사상과 표현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던 거다. 25년 후 독일이 통일될 수 있었던 건 동과 서가 정치적으론 비록 수많은 간첩을 파견하고 온갖 공작을 자행했겠지만, 독일민족 특유의 혈연과 이에 따른 동질감이 이어진데다가 상대적으로 매우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동쪽 독일에서조차도 이런 책을 발간할만큼 충분한 표현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니, 슬프게도 한반도의 남과 북은 아직 구호 말고는 통일을 위한 아무런 전조가 보이지 않는다.

 쓸데없이 길게 머리말을 썼는데, <나누어진...>은 동쪽 독일에서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패전 후 약 15년이 지난 사이 서쪽 독일이 동쪽보다 월등하게 발전했고 당연히 저쪽 동포들이 훨씬 여유롭게 살고 있으며 이에따라 또다시 당연하게 문화적, 학문적 우월성도 확보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여러번, 일반 동독 인민까지 충분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밝힌다. 위에서 같은 해 한국의 상황을 얘기한 건 같은 시기에 공산주의 국가 동독보다, 단언하건데, 파시스트 비슷한 대통령이 지배 또는 통치, 부드럽게 말해, 다스리고 있던 대한민국보다 훨씬 풍족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의 학문과 경제가 남쪽보다 우월했던 게 사실이라는데, 이 뻔한 사실을 북한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에 와서야 일반적으로 알려졌고, 파시스트와 그의 아들들, 이름이 뭐라더라 전두환이라던가, 하는 파시스트 적的 아들 대까지 와서도 북이 남보다 더 잘산다던데? 했다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을 일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사실이 무엇보다 부러웠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도래하니 그 새 내 청춘도 몽땅 사그러지고 말았던 거다. 그래서 위에서 한 얘기 지금 또 중언부언. 하지만 이런 사실이 책의 소감으로는 어울리지 않아서 더 말하지 않겠다. 뭐라? 할 얘기 실컷 해놓고 더 안하겠다 하느냐고? 어때, 쓰는 사람 맘이지.

 동쪽 독일의 한 촌구석에 열 아홉 먹은 참한 아가씨가 (우리나라로 치면)고등학교 졸업 후 보험회사 출장소에서 한가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가씨 앞에 화학을 전공한 이학박사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나이 차가 좀 나긴 하지만 사랑엔 국경도 없는데 그까짓 십년 남짓한 나이 차 때문에 연애를 못한다면, 서태지, 이병헌, 서경석, 이승환에다가 요즘들어 마동석까지 숱한 연예인들, 장가 한 번 못가고 다 총각귀신됐게? 나이많은 이학박사가 어떻게 열아홉 순정을 꼬드기냐 하면, 넌 똑똑하니까 대학에 가야지? 그럴려면 먼저 (공산주의 나라니까) 노동현장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거, 몰랐지? 나하고 같이 살자. 낮엔 공장 다니고 밤엔 조금씩 공부하다가 공장 주임이 추천서를 써주면 대학에 가는 거야, 어때? 그리하여 열아홉 순정은 박사의 집에서 시부모 모시고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로 살게 된다.

 근데 이딴 얘기만 나오면 그건 전후 독일 얘기도 아니다. 먼저 이학박사 가족간의 갈등이 툭 튀어나온다. 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를 앞 세대로 둔 천형을 짊어진 독일민족. 문학 작품 속에서도 그들의 반성문은 숱하게 나오는데, 이 책에선 박사의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나치 친위대의 골수에다가, 나치 하에서 출세를 위해 아버지로서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박사에게 저질렀다고 설정했다. 자, 이해하자. 박사가 가족 문제로 전혀 존경, 존경? 존경은커녕 경멸해 마지않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밖으론 자신이 만든 기계장치가 학문적으로 전혀 인정받지 못해 자존심 팍 상하고, 여기에다가 은근히 열아홉 순정과의 사랑의 농도도 좀 희석되는 거 같고, 해서! 서베를린으로 토껴버린다는 전제. 왜 상세히 이런 얘기를 다 알려드리느냐 하면, 비교적 책의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책의 뒤는? 뒤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나누어진...>은 한 개인이 동과 서로 나누어진 하늘 때문에 치명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 그걸 치유하는 과정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과정이 독자로 하여금 심장이 저릿저릿하게 한다는 거, 이거 만 얘기해도 이 책을 진짜 읽어보실 이유는 되리라 믿는다. 안타까움을 독자가 계속 갖게 하는 책. 힘들게 유지해온 사랑까지 동과 서로 쪼개버리는 세계에 대한 통곡.


 


 

 그.러.나… 역자 전영애. 설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괴테 학회장을 역임한 비까번쩍한 이력을 자랑하듯(남산에 있는 괴테 하우스 1977년이던가 78년이던가, 오픈하는 날 직접 가봤다. 독일에서 공부한 장혜원 선생이 베토벤의 <발트슈타인>을 연주했다. 거기 대빵이었다는 말씀은 아니겠지?) 깔끔한 번역이 눈에 띄는데, 시금치 동생, 근데, 어째 좀 진도가 팍팍 나가지 않는다. 작가 크리스타 볼프가 전형적인 여류작가답게 여성의 섬세한 심리의 끈을 조밀하게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라 이런 소설을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가며 읽을 때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가 이상하게 문맥에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럴 경우는 거의 대부분 번역문에 문제가 있는 법이다. 한 번 읽어보시라. 좀 길게 인용하겠다.


 "'……… 이 일이 가늠구멍이며 가늠쇠 너머 살아있는 표적에 겨누어 총을 쏘는 것보다는 목공일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지. 믿을 수 있겠어?' 그러나 그가 그 사실을 이해했다면 지나칠 것 없다는 거야 그녀도 분명히 인정 하리라고, 하지만 그가 전쟁에서 돌아오자 곧장 서른여섯 살 나이로 당에 가서 입당신고를 할 이유가 불분명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거라고.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충직한 마음으로 오기만 했다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느냐는 끈질기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06쪽)


 "그의 이러한 실추에는, 온 국민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해왔던 그라는 한 사람에 대한 불의 못지않게 국민전체에 대한 정의가 결부되어 있었다." (108쪽 : 썅 '결부'란 얼토당토 않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 때문에 얼마나 헤맸는지!)


 내가 내린 결론은 전영애가 단문의 경우는 매우 깔끔하게 번역을 하지만, 크리스타 볼프가, 이이 말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번역할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으나, 번역해야할 문장이 길어지기만 하면 헤매는 거 같다. 숱한 문장지도 책에선 문장을 길게 쓰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난 한 번도 그딴 책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내 문장도 상당히 긴 편에 속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할 수 없다. 박상륭과 이문구를 읽은 다음부터 이렇게 고정되어 버렸다) 그리고 긴 문장의 글은 (제대로)쓰기도 힘들뿐더러, 번역하기는 더욱 힘든 거 같다. 긴 문장으로 악명높은 작가들, 조이스, 프루스트, 포크너, 이 사람들이 쓴 작품을 읽고 쉽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아직 보질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영애 선생, 비문이나 적어도 비문에 가까운 번역을 하시면 돈 주고 책 읽는 사람 기분 별로지. 이 역자의 글이 비문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두개의 경우 특히 첫번째 문장들은, 같은 내용을 한 삼십번 읽어봐야 했는데 물론 첫째가 내 IQ에 문제가 좀 있어서 그랬겠지만, 앞으론 보다 더 친절한 번역을 해주시면 좋겠다.

 기억하시라. 단어 하나 때문에 문장을 서른 번 읽는 IQ 낮은 독자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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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4-2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상륭과 이문구 ㅋㅋㅋㅋㅋㅋ 거기에 김원우까지 합세하면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폴스타프 님 글은 쉽게 읽힙니다.

Falstaff 2017-04-27 11:49   좋아요 0 | URL
ㅎㅎ 쉽게 읽힌다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문장 길게 쓰는 건 좋은 버릇 아닌 거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