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그림자들 마지막 왕국 시리즈 1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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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콩쿠르상 수상작. 본문만 224쪽의 얇은 책. 만만하게 봤다가 코피 터진 책.

 첫 문장.

 "수탉의 울음 소리, 새벽, 개 짖는 소리, 밝아오는 아침, 잠이 깨어 일어나는 사람, 자연, 시간, 꿈, 명료한 의식, 이 모두가 가차없는 것들이다."

 첫 문장부터 오리무중. 문장은 멋있지만 도대체 주장하고 있는 바를 알지 못하겠다. 올바른 해석을 위해 네이버 국어사전을 열었다. (이게 뭐야, 책 읽으면서 첫 문장부터 사전을 열게 하다니!)


 가차假借 : ① 정하지 않고 잠시만 빌리는 것. '임시로 빌림'으로 순화, ② 사정을 보아줌, ③ <언어> 한자 육서(六書)의 하나. 어떤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 음이 같은...어쩌구저쩌구...


 위 문장에서 '이 모두가 가차없는 것들이다'라고 하면 사전에서 두번째 뜻일 거다. 그럼 다시 써보자.

 "수탉의 울음 소리, 새벽, 개 짖는 소리, 밝아오는 아침, 잠이 깨어 일어나는 사람, 자연, 시간, 꿈, 명료한 의식, 이 모두가 사정을 안 보아주는 것들이다."

 에이 썅. 무슨 뜻이야 이거.


 좋아. 첫 문장은 무슨 뜻인지 모른 채 넘어가고 다음, 두번째 문장.

 "어떤 책들의 알록달록한 표지에 손이 닿으면 언제나 내 마음 속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이 복받쳐온다."

 작가한테 특정한 책 한 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책을 만질 때마다 '고통스러운' 감정이 울컥하는 책. 뭐 그럴 수 있겠지. 근데 정말로 책 표지를 만지면 마음 속의 "고통"이 복받쳐? 그럼 버리면 될 것을 왜 아직도 가지고 있는 거지? 당신한테 그런 책이 있는지 없는지 난 별로 관심 없고, 지금 당장 당신이 쓴 책을 읽으며 내 마음 속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이 복받쳐온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장면이 아주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데, 얼마나 어린 시절이냐 하면,

 "내가 아직 말을 못하던 그 시기가 떠오르자, 불현듯 목이 메어온다. 그 시기는 내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다른 세계를 감추고 있다. 일종의 소리 없는 흐느낌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 이거 또 뭐야. 아직 말을 하지 못하던 시기를 기억한다고? 깜짝 놀라 각주를 보니 이렇게 써있다.

 "키냐르는 18개월 때 자폐증으로 언어 습득과 먹기를 거부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만 두살 이전을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거다.

 이 사람 참. 좋아, 작가가 소설 형식을 통해 어떤 말을 못하겠어.


 근데 책을 읽어가며 곤란한 점은, 아주 짧은 단편斷片으로 이루어진다는 거. 니체의 일부 저작을 읽는 것같은 느낌. 쉬운 말로 하자면 저 위에서 한 번 쓴 단어. 오리무중. 책의 제 3장의 전문(全文)을 옮겨보겠다.



 제 3장

 

 스스로 자신의 제삼자가 되는 일은 언어의 구조에 속하는 것이다.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자신들 내부의 진짜 화자(話者)가 누구인지를 안다. 진짜 화자는 표현 방식이다.

 내가 하는 일이란, 힘겹고pesant, 생각으로 하고pensant, 몸을 굽히고penchant, 언어 자체는 사용하지 않고depensant, 언어로 하는 작업이다.



 제 3장을 읽고 내가 절절하게 느낀 건, 이 책은 프랑스인, 아니면 적어도 불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알아서 행간의 뜻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야 매력을 느끼겠다는 거. 그러려면 적어도 번역본을 읽고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거 같다. 다시 한 번 보시라. pesant, pensant, penchant, depensant의 수열적 나열. 그런데 이걸 한글로 읽으면 "내가 하는 일이란 힘겹고, 생각으로 하고, 몸을 굽히고, 언어자체는 사용하지 않고, 언어로 하는 작업" 정말 무슨 뜻인줄 아시겠어? 이 책 다 읽고 감격했다고 말 하시겠어?


 오리무중 속을 헤매면, 헤매다가 어느 순간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코끼리를 장님이 더듬듯 감각은 할 수 있는데, 아, 나 이런 거 싫다. 물론 키냐르를 읽어보고 싫다고 하면 현대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둔한 감각의 소유자가 되겠지만 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 이런 소설을 쓰는 일도 물론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걸 인정한다. 그러나 나한테 키냐르는 이 한 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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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6-23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아주 깊이x1000 공감합니다. ㅋㅋㅋㅋ

Falstaff 2017-06-23 15:16   좋아요 0 | URL
이거 나이제한 해서 판매해야 합니다. 일정 이상 연령이 읽으면 뇌졸중 유발 위험이 크거든요. ㅎㅎㅎ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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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늙은이 참.

 이거 독후감 쓰기 참 힘들게 만드네.

 독후감이란 것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내" 느낌을 쓰는 거란 사전적 정의에 입각해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마지막 문장 하나를 향해 질주하는 작품이라는 거. 당연히 문제의 마지막 문장이 어떤 것이며 무슨 뜻이란 말은 하지 않겠다.

 화자이자 문학 교수인 데이비드 케페시가 지금은 은퇴한 70대지만, 60대 시절 대학에서 교수를 할 때 젊은 여학생과 즐기기 위한 방법은, 학기중에는 절대로 내색하지 않고 있다가 학기가 끝나고 채점까지 다 마친 후에 자기 집에 남녀 학생을 초대하여 쫑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그럼 여학생들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끝까지 남아 데이비드하고 갈 데까지 간다나. 뭐 미국 얘기다. 설마 대한민국에서야 그러겠어? 그건 그렇고 필립 로스의 늙은 주인공 데이비드 케페시가 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존 쿳시가 만든 대학 교수 데이비드 루리보다 한 수 위다(존 쿳시, <추락> 참조). 미국 데이비드는 이런 방법으로 적어도 법적, 사회적 지탄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비하여 남아프리카 데이비드는 신세 완전히 조져버리니까.

 아, 근데 <죽어가는 짐승>은 좀 심하게 섹스 오리엔티드 작품이다. 야동도 즐겨 보는 입장에서 그래서 더 좋긴 하지만. 야동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씀인데, 필립 로스의 성적 엽기로 말할 것 같으면 <포트노이의 불평>의 한 장면, 유대인 소년이 딱지를 떼려 하다가 자신이 사정한 액체 덩어리가 엉뚱하게도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자신의 눈알에 떨어져 '아 이제 드디어 내가 장님이 되고야 마는구나'라고 했던 건 귀여운데다가 엽기발랄하기나 하지, <죽어가는...>에서는 (적게 산 거 같지는 않은데)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고 하다못해 야동에서조차 본 적 없는 엽기 더하기 비위생, 윽, 다시 생각하는 것만 가지고도 비위가 팍 상해버릴 정도이니, 정말로 필립 로스 이 양반 변태 아냐?

 저 위 책 표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그린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 누드>, 아참 한글로 쓰니까 정말 재미없다. 영어로 해서 <Reclining Nude>. 좀 크게 보실까?

 이 그림 보고 좀 헷갈렸는데, 모딜리아니 같다고 생각했지 정말로 그의 그림이라고 단정하지 못했었다. 대개 모딜리아니는 눈알 없는 얼굴에다가 전체적으로 길쭉길쭉하니 저렇게 풍만한 젖가슴과 엉덩이를 보고 어떻게 그의 그림으로 확정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잘 보시라.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발랑 누워 있는데도 젖가슴이 저렇게 솟을 정도라면 틀림없이 실리콘이거나 화가의 로망을 그림으로 과장한 것일 거다. 사실 여인의 풍성한 가슴은 많은 남자의 로망. <죽어가는....>의 화자 미국 데이비드가 그러했듯 풍성한 가슴에 머리를 푹 담겨보고 싶다는 거. 당장 숨막혀 죽더라도 말이지. 우리집? 처가집이 세탁소 했다는 얘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신기도 하지, 장모께서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다려놨다, 내 마누라 젖가슴.

 교수 데이비드의 쫑파티를 통해 한 학생과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쿠바 출신 이주민으로 스스로 아직도 쿠바인으로 생각하는 관능적인 아가씨로 가슴이 꼭 저렇게 생겼다. 데이비드 케페시 교수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찌기 결혼 한 번 하고 얼마 안 가 찢어진 후론 1960년대에 청춘을 보낸 자유주의자답게 평생 혼자 살며 기존의 가족관계를 부정하면서 늘상 바뀌는 여자 제자들과 인생을 즐기기만 하는 걸 최고의 가치로 알고 지내는 인종이다.

 세상 사는 게 마음대로 되나? 멕시코 만의 풍요로운 해변의 도시 아바나를 닮아 풍요로운 젖가슴과 못지않게 풍요로운 음모를 가진 콘수엘라 카스티요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자, 아니 이게 무슨 일? 콘수엘라가 과거에 섹스를 했던 다섯 명 가량의 청년들, 아니 그들과의 섹스에 대한 상상 및 공상으로 인해 고통스러워지고, 젊은이들이 콘수엘라에게 했던 모든 것을 자신도 경험하고 싶어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만다. 다 늙어서 말야.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때 미국 데이비드의 연세가 62세. 혹은 그 정도. 근데 그렇게 강렬하게 섹스 생각이 날까? 난 벌써 여자가 여자로 보이기는 하지만 섹스의 대상으로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말씀이야. 이 고백을 읽는 많은 청춘들이 날더러 남자로서의 뭐가 어떠니 저떠니 할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천만의 말씀을. 세상의 아가들아, 그 생각 안 나니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살기 좋고, 무엇보다, 얼마나 편한지 너희들은 모른다. 그리고 한 시간에도 몇번씩 울뚝불뚝 솟구치는 너희들의 젊은 욕정, 하나도 부럽지 않고 이제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길까 무섭다.

 미국 데이비드, 나이만 많이 먹었지 섹스의 부재로 인한 노년의 평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늙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짙은 호소이자 가장 막강한 음모陰謀의 근거인 섹스로 인해 불쌍하게 오늘 밤도 하얗게 새울 것이다. 진짠지 내기할래? 조심하셔. 난 책 읽어보고 하는 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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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최대화 민음의 시 219
황유원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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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은 사고보니 2015에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책이란다. 자기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낸 첫번째 시집으로 떠르르한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으니 얼마나 째졌을까? 좋겠다.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고 이 시집에 실려있는 시들이 김수영의 그것들과 닮았다고 생각하면 오산. 글쎄, 옛 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라면 그의 시적 성과를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가 쓴 시집에 계관을 씌워주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 마시라. 그냥 잘 쓰면 주는 거지 꼭 김수영같이 쓸 필요는 없다. 그럼 동인 문학상을 받을 작가는 만날 배따라기나 노래하고 벌판에서 감자나 캐고 있어야 하나? 그냥 잘 쓰는 시인, 소설가한테 상 주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민음사가 주관하는 김수영 문학상의 선정위원들, 물론 이름만 대면 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숙한 쟁쟁한 사람들일 것인데, 시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가 분명하겠지만, 쟁쟁한 이들의 추천의 변을, 독자가 상을 수상한 시집을 통해 체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책을 읽고난 후 감상을 한 마디로 하자면, "한 마디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 줄 소감을 쓰니까 햐, 이 소감이야말로 진짜 시같다.

 놀랍게도 이 시집의 발문은 시인이면서 음악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옛 멤버였던 성기완이 제목을 "조선어 연금술사 통관보고서"라고 했다. 일단 발문의 제목을 '조선어'라고 한 것에 대해 왜 '한글'이란 말 대신에 '조선어'라고 표현했을까 의아했다. 아, 난 아무리 생각해도 정치적으로 보수편향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성기완의 발문이 황유원의 시집을 빛나게 해준다는 명목하게 본인의 잘난 척만 오지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기완의 발문에서 읽었던가 헷갈리는 글을 여기서 쓰고자 한다. (잘난 척하는 그의 발문을 다시 읽어볼 생각이 없어서)

 황유원의 시는 징징거리지 않는다.

 나도 시인 지망생은 몇개 봤다. 근데 걔들이 아직도 시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뭐 등단하지 않았다고 시인이 아니라는 얘긴 아니지만 하여간 시를 써서 돈을 벌지 못하면 어쨌든 시인은 아니니까, 찐따들이 세상의 고통과 힘겨움은 다 지들 것인줄만 알아서 그런 거다. 2정도 아프면 대성통곡을 해대면서 9나 10 정도의 고통을 호소하고, 3정도의 외로움은 지구라는 행성에선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고독이라 단정하는 시인과 시가, 솔직히 말해서, 넘쳐나지 않는가. 황유원이 슬픔을 한 번 인용해볼까?

 어느 바람 부는 날, "한치 학꽁치 미주구리 문어대가리"로 물회를 말아 물회를 담은 대접 속의 "얼음이 녹기 전에",


 바람 속으로 날아드는 새들이 생선을 다 채가기 전에 쌈장을 찍고 마늘을 올려서

 김에도 싸서 너의 입에 한 번,

 나의 입에 한 번

 바람 속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의 친화력과 공평함

 오늘 왜 난 자꾸 눈물이 날까

 이봐 그러고 있지 말고 저길 좀 봐

 어느새 일렬로 늘어선 소주병들이 진한 방풍림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이봐 앞에 앉아서 자꾸 핸드폰이나 쳐다볼 바엔 차라리 지나가는 여자 다리를 쳐다보지 그래

 <바람 부는 날> 부분


 너도 한 입 먹고 나도 한 입 먹는 친화력과 공평함을 알아차릴 때 시인은 눈물을 흘렸다. 시인의 눈물은 그러나 조금도 징징거리지 않고 계속 음주로 이어지고 음주 후 또는 어울리고 있는 지금, 다른 곳에 있는 한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나 회상을 상징하는 그까짓 핸드폰은 내던지고 차라리 바로 지금 취한 눈 앞의 (아가씨도 아니고 그냥) 여자의 종아리나 한 번 바라보는 거다.


 그의 시적 관심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음악이다. 바흐부터 피아졸라, 재즈에서 일렉트릭까지. 한 20년 전 쯤, 지금은 종합편성 방송에 포니 테일로 머리를 묶고 나와 온갖 이슈를 망라해서 무차별적 구라를 때리는 김갑수가, 그래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브람스의 4번 교향곡, 특별히 번스타인이 베를린 필을 지휘하는 LP에 침이 마르게 찬송한 이후, 원래 시를 잘 안 읽기는 했지만 시인이 음악에 관해 황유원 만큼 관심을 쏟는 것을 읽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중에 내가 좋다, 했던 시 하나 올린다. 황유원의 시는 전부 무지 길기 때문에 전문을 올리는 건 사실 좀 무린데.... 그렇다. 역시 전문을 올리는 일는 포기하는 게 좋겠다.


 사람과 하나도 안 똑같은 눈사람이

 눈과 끝없이 하나 되어 가는 밤

 숨죽인 채 발견되는 메모 같은 것

 그 메모의 여백 같은 눈송이들이 한 줄 두 줄 울다

 한 장 두 장 울기도

 아예 (상), (하)권으로 울려 버리기도 하는 밤

 고립되지 않았으면 낼 수 없었을 소리

 오로지 마음만을 반영하는 악기의 한 소절이

 두꺼운 고서(古書) 한 권의 냄새로 깊어져 방 안 가득

 퍼졌다가

 조금 열어 놓은 창을 통해

 무슨 빛이나

 소금처럼

 조금씩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밤

 <인벤션> 부분


 바흐의 <인벤션>을 시인은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하고 있다. 혹은 누가 인벤션을 연주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게 하필이면 어둔 공간에 눈이 가득한 겨울밤이었던 모양. 악보의 여백같은 흰 눈송이들이 울고, 악보의 한 장 두 장이 모두 다 눈물이어서, 인벤션 상, 하권이 시인을 울려버리는 밤.

 이미지가 꽉 들어온다. 인벤션을 들으며 슬픔과 눈물을 떠올리는 것. 저 위에서 얘기한 김갑수의 책에서 첼리스트 전봉초 선생이 한 말을 읽었다. 바흐를 들을 때 섹스를 느낀다고. 황유원은 바흐를 들으며 눈물을 체험한다. 섹스나 눈물, 이것들의 공통점은 애무와 눈물을 통해 바흐는 350년 차이가 나는 후세들과 교통, 교감을 하고 있다는 진실. 황유원은 이 시 <인벤션>에 와서 비로소 조금이나마 징징거린다.

 인벤션의 선율이 창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밤'이야말로 한 번 쯤 '한 번쯤 혼자 조용히 / 죽어보고 싶은 밤'이라고. 근데 가끔이라면 시인의 말대로 한 번쯤 혼자 징징거리는 모습이 또한 보기도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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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암살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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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책, 많이 읽었다. 내 사전에 전권구입이란 건 없다. 그러니 전부 한 권 한 권 골라 사서 읽었다. 그러나 앞으로 두어달 동안 민음사 세계문학은 목록에 올라오지 않는다. 솔직하게 얘기해서 참 기념할 만한 세계문학전집이고 다양한 작품을 새로 소개하는 것 등 칭찬할 만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계문학 시리즈와 비교해 책을 너무 함부로 찍어내는 거 같다. 내가 읽는 세계문학 시리즈로 말씀드리자면, 민음사, 문학과지성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펭귄클래식코리아, 을유문화사, 창비, 시공사, 동서문화사 등인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다른 출판사는 도저히 따라오지 못할 만큼 탁월하게 앞서나가는 것이 오탈자 발생률이다(열린책들의 <서부전선 이상없다>, 시공사 <밤은 부드러워>를 빼면). 다른 출판사는 도무지 민음사를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물론 오역 여부에 관해선 내가 언급할 사항이 아니라서 함구. 타사의 책은 특정 상품 한 두 권이 대단할, 기가 막힐, 껌벅 넘어갈, 무척 열받을 정도의 형편없는 오탈자 내지는 비문의 향연으로 일관하는데 반하여, 민음사는 아주 균일한 수준으로 책마다 오탈자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독자로 하여금 적어도 각오하고 책을 읽게 만드는 어여쁜 센스는 있다.

 이 책? 역자 차은정. 본고사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당시 본고사 영어 시험에서 빠지지 않고 한 문제는 나왔던 것이, "다음 문장을 우리 말로 바꾸시오". 차은정의 번역이 딱 이 문제의 답안같다. 영어를 정확한 한국말로 그대로 옮기는데 완전 성공한 듯한 문장들. 이 대목에서 "완전 성공한 듯"이라고 표현한 건 정말로 성공했는지 아닌지 내가 원본과 대조해 읽어보지도 않았고, 대조해 읽어봤자 그런지 아닌지도 모를 수준이란 걸 다행스럽게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 (정답지 말고) 본고사 답안지 같은 문장. 거기다가 하나를 더 보태서, 차은정이 국어를 쓸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더 좋은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데 술술 나오는 국어 단어의 갯수에 문제가 있으니 적절하지 않은 단어도 막 집어 넣는다. 근데 자신은 문제의 단어가 틀리는 줄 모르니까 자체 퇴고과정은 무사 통과. 거기다가 낮은 급여로 인해 열의도 없는 데다가 불평불만이 꽉 차 있는 교정자의 국어 실력도 거기서 거기에다, 소프트웨어 아래한글의 검색과정에서도 하여간 단어는 틀린 말이 아니니 문맥상 쓰면 안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무사통과. 역자-교정자-소프트웨어, 기가막힌 트라이앵글. 삼각형이라고 다 변증법인줄 아시나? 천만의 말씀.

 거기다가 하나만 더 보태면, 자신 없으면 제발 사전 좀 찾아보고 한자를 보태라는 것. 내가 변태라서 이 단어를 고른 건 아니고 지금 딱 생각나는 게 이거라서 첨언하는 것인데 (당신들도 나이 먹어봐라, 한 단어 떠올리는데 삼박 사일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나마 고른 것도 다행이다) 남자 또는 여자, 그중에서 특히 여자의 다리 사이에 있는 기관을 일컫는 말 '음부'를 굳이 '음부(淫部)' 이렇게 써놓는 거. '음부(淫部)'라는 단어, 난 첨봤다. 인간의 다리 사이가 생전 햇빛을 볼 일이 없어서 그늘 진 부분, 어두운 부분이란 뜻으로 음부陰部라고 쓴다고 배웠고 그게 맞다. '음부(淫部)'라고 쓰는 여자는 진짜 무식한 경우고, 그렇게 쓰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는 여혐자다. '음부(淫部)'는 남녀의 성기, 특히 여성의 성기를 '음란한 기관'으로만 특정할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쯤에서 분명하게 얘기하고 넘어가자. 난 지금 역자 차은정의 영어실력에 관해 까탈을 잡아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다. 그가 번역한 기막히게 재미난 텍스트 <눈먼 암살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데 번역의 영향으로 줄거리가 이상하게 뒤틀린다거나, 아까 한 얘기가 이상하게 꼬여 흐르거나 그런 점은 없다. 난 이이가 번역한 <눈먼...>을 읽고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작정을 해서 찾아봤더니 차은정의 번역이 제일 많다. 아, 고민 중. 왜냐하면, 한국어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여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 이런 책들이 거의 그렇듯 앞쪽에서 가독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다가 독자도 모르게 의례 그러려니 읽어나가게 되고 그러면 그냥 툴툴거리면서 끝까지 다 읽는다. 가끔 욕도 한 마디씩 하는 건 당연하지만.

 서두가 오지게 길었는데 이제 책 얘기하자.

 무조건 강추. 진짜 재미난 책. 2017년 6월에 재미난 책 참 많이 읽는다. 여태까지 써놓은 역자의 문제 때문에 별 다섯개 만점을 줄 수는 없지만 소설책 읽기 좋아하시는 분들한테는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겠다.

 1910년대 후반에 태어나 책의 현재시점인 1990년대 말까지 생존해 있는 아이리스라는 이름의 할매가 주인공이다. 소설은 좀 복잡한 구조를 띤다. 아이리스의 동생 로라, 1945년 8월에 교량 공사중이던 낭떠러지 아래로 자기 것도 아닌 언니 차를 과속, 전속력으로 몰아 추락해 온몸이 불에 타 죽는다. 델마와 루이스? 아니, '로라'라니까. '로라'하면 떠오르는 것이? 옙. <인형의 집>. 굳이 그 로라와 비슷한 점을 꼽으라면 자신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왔다는 거. 근데 이 로라는 여성의 권리나 자존 대신 인생을 통째로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거. 오직 하나, 캐나다를 비롯해 영어권의 독자와 비평계에 큰 발자국을 남긴 <눈먼 암살자>라는 책을 한 권 사후 출판으로 남기고 죽었다는 거. 로라가 죽은지 5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 또는 팬들은 끊임없이 로라의 무덤까지 찾아와 그녀를 기념하며 헌화한다.

 꼬부랑 노파이자 로라의 친언니 아이리스는 지팡이를 짚어가며 간혹 로라를 비롯한 가족묘를 찾아 돌보기도 하는데 비록 50년 전에 죽었다 하더라도 자매간의 오묘한 질투심으로 헌화한 꽃을 사납게 쓰레기통에 던져넣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쓸쓸하게 로라의 묘비를 손바닥으로 쓸어보기도 한다. 그림이 그려질 듯.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리스가 지난 날을 회상하며 싸구려 볼펜 하나로 시간날 때마다 낡은 노트에 손수 써내려간 회상록. 그걸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건데, 속에 로라의 작품 <눈먼 암살자>의 여러 부분이 섞여가며 중의적 작품이 되며 독자로 하여금 책의 결론이 어떻게 날까, 궁금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 수작. 조금 건방지게 말하면 독서훈련이 좀 된 독자들이라면 아무리 늦어도 2권 중반쯤엔 노파의 글쓰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리라 짐작하는데, 그래도 끝까지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추측한 책의 결말이 정말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거, 진짜 책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만들어놓은 트랩에 빠지지 않고 결말을 추리했는데 그게 정말로 맞으면 그 짜리리한 쾌감. 한 번 느껴보시라. 그건 좋은데 정작 트랩에 갇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작가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진짜다. 읽어보시라).

 "Trapped? Mastur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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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돌리노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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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우돌리노, 사람 이름이다. 예전에 어떤 짓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선 한 성인聖人의 이름이기도 하고 이 소설의 눈부신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근데, 이름이 하필이면 '바우'로 시작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경우 이 인간을 생각할 때 기운찬 돌대가리 천하장사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일단 언어에 관한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 어느 종족 속에서도 한두 달만 같이 지내면 마치 모국어인 양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하고, 예상 외로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 가운데 한 명이며, 무엇보다 여태까지 내가 읽은 모든 책 가운데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거짓말장이다. 난 선의의 거짓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거짓은 '더러운 거짓말'이라고 알며 평생을 살아왔는데 이제 조금은 생각을 바꾸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대단하지? 평생 품고 있던 신념을 바꾸게 만든 책이라니. 원래 그런겨. 책의 힘이란 것이. 하긴 여태 살아온 걸 뒤돌아보면 사소한 거짓말도 하기 싫어 솔직하게 얘기해 얻어 터진 경우가 부지기수이긴 하다.

 두 권 850여 쪽의 장편소설. 근데 읽다보면, 나처럼 저녁때 술만 마시지 않으면 이틀이면 독파할 수 있다. 난 나흘 걸렸다. 그놈의 술 때문에. 아직 본격적인 여름도 안 됐는데 어이하여 벌써부터 개고기 전골이 그리도 맛나단 말인가.

 바우돌리노로 말할 거 같으면 장화 닮은 이탈리아 반도 저 위쪽으로 알프스 가까이 있는 노바라(이 도시 이름은 아직도 '노바라'다) 부근에서 나고 자랐다. 깡촌 시골구석에서도 바우는 천부적인 재능인 언어에 눈을 떠 라틴어, 독일어 등을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니면서 읽고 쓸 줄 알았다. 이거 대단한 거. 무대가 12세기 말 13세기 초. 당시에도 물론 종이가 있었으나 워낙 비싸 양피지를 사용했으며 거기다가 고려에서 세계최초로 1234년에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를 이용해 찍어내기 전이어서 누군가가 깃펜에 잉크를 묻혀 필사를 했던 걸 읽어볼 수 있었다는 건데 노바라, 아직까지도 시골구석인 그 동네 사는 평민의 아들이 글을 익혔다는 거, 기적 비슷한 일이었다.

 근데 참, 인간이란. 글을 익혀 읽고 쓰기 시작하자 인간본성 가운데 하나인 '구라 만들기'를 시작한다. 이 작업은 모든 인간들이 할 수 있으나 수다한 사람은 관심이 없거나 시도하지 않는 반면, 오직 유전자 사슬에 거짓말을 만들어내는데 흥미가 있어서 심지어는 목숨을 걸고라도 거짓말을 진짜처럼 꾸며내는 종족들이 간혹 나타나 죽기살기로 마치 진실인 것처럼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참경에 이른다. 이런 인간들의 가장 앞쪽에서 광배를 두르고 우뚝 선 자, 바우돌리노.

 인류 역사를 보면 힘 있는 자의 집에 객식구로 얹혀살며 뻔한 거짓말을 함부로 노래로 지어 부르다 혀가 잘리고 눈이 뽑힌 인간이 어디 한둘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가 다 거짓말인줄 아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애먼 PC 자판만 열라 두르리고 있는 청춘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말이지. 이거 누가 시켜서 하는 짓이 아니다. 다 그 염병할 유전자사슬 DNA라고 불리는 두 줄의 나선 구조에 의해 결정될 뿐. 유명한 두 줄의 나선구조가 명령하는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는 걸 우리는 뭐라 불러? 예, 맞습니다. 본능이라고 한답니다. 유전자를 배열하는 레시피에 의한 것.

 그리하여 바우돌리노 역시 아주 능숙한 솜씨로 거짓말을 지어내는데, 문제는 바우의 거짓말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아니, 모든 경우가 만인의 행복을 위하여 작용하...... 아 참, 뭐라 써야 해, "작용한다"라고 쓸까? 아니면 "작용하지 않는다"라고 쓸까.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작용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 더욱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바우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구라를 진실로 인식한다는 점. 평생 충성을 다하고 의부로 모신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황제를 만나게 된 것 역시 노바라 근방의 한 숲에서 황제를 몰라보고 구라를 친 덕분이다. 이렇게 거짓말의 위대함을 차츰 알아가는 바우돌리노. 그의 좌충우돌 모험담. 파란만장하고 파노라마스러운 환상적 모험. 그 속에서도 유감없이 펼쳐지는 바우의 찬란한 거짓말, 거짓말, 그리고 또 거짓말. 동시에 진실이며 어느 것보다도 더 진실이며, 결코 변경할 수 없는 진실이자 진리. 진리를 찾아 떠나는 모험.

 여기까지.

 책 내용에 관해선 한 마디도 안 했지? 그럼 성공했네.

 의심하지 말고 한 번 읽어보셔. 재미나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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