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책 삼인 시집선 1
유진목 지음 / 삼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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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몽



 빈 방에서 사랑을 했는데

 당신은 어느덧 살림이 되고


 나는 봉지처럼 느슨하게 묶여서

 서랍에 들어 있길 좋아한다


 움켜 쥔 창틀 쪽에서

 매일 밤 돌아오지 않는 꿈을 꾼다


 나는 당신이 돌아오지 않는 것보다

 그게 더 슬펐다


 배꼽에 흐르던 당신의 일들


 내게서 당신이 가장 멀리 흐를 때

 나는 오래 덮은 이불 냄새


 우리는 닫힌 채로 집을 나왔다   (20쪽. 전문)



 <접몽>, 어떤 꿈일까? 제목만 딱 보고, 이거 참 중의적인 시가 아닐까 싶었다. 장자莊子가 먼저 생각났다. 나비 꿈을 꿨는데, 내가 나비 꿈을 꾼 거야, 나비가 내 꿈을 꾼 거야? 다른 하나는 이런 접몽. 접몽接夢, 교접하는 꿈. 특히 남자의 경우 몽정이라고 하는 거. 시인 유진목이 여자니까 몽은 오케이, 그러나 정精할 것이 없으니 그냥 접몽, 이라고 하는 것도 괜찮은 시어. 굳이 주장한다면 장자와 섹스詩의 중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주장할 걸 주장해야지, 이건 그냥 사랑과 섹스의 시다. 다시 한 번 시를 읽어보자. 어딘지 읽어본 느낌. 들어본 가요 제목이 문득 생각난다. 공일오비, <아주 오래된 연인들>. TvN의 인기 프로그램 <SNL>에서 싱어송 라이터 윤상이 이 제목을 이렇게 바꿔 얘기했다. <아주 오래 한 연인들>. 아주 딱!


 '(주) 도서출판 삼인'이라는 책 내는 법인이 있다. 펴낸이, 즉 발행인이 신길순. 이 분이 사장일 거 같고, 간행위원으로 황현산, 김혜순, 김정환. 이렇게 적혀있다. 황현산은 평론가. 김혜순은 시인이자 대학 선생(그냥 '선생' 또는 '교사'라고 하고 싶은데, 요샌 언어의 인플레가 심해 대학에서 선생하는 사람들한테 앞에 '대학'을 붙혀 '선생'이라 하거나 '교수' 또는 '교숫님!'하지 않으면 드럽게 싫어한다. 우연히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레인의 아래층 네 집에 대학 선생들이 살아서 아주 쯔~알 안다). 김정환은 이젠 시인이라기보다 잡글 전문가. 하여간 간행위원 세 명이 모여 우리나라에서 시인으로 등단하는 과정에 문제가 크다고 의기투합, 싹수 있는 시인 지망생들의 시를 추려 책을 내주는 행위를 통해 정식 시인으로 만들어준다는 기특한 생각으로 "삼인 시인선"이란 시리즈를 냈다고 한다. 이 <연애의 책>이 시리즈 첫번째.

 '삼인 시인선'의 이런 바람직한 출판 행위는 갈채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시를 감상하는데 보태거나 빼는 요인이 되면 안 될 것. 계속 유진목의 시를 더 읽어보자. 위의 시 <접몽>의 다음 페이지에 게재된 한 줄 시.



 에밀 졸라


 계속 트랑스를 겪으며 사느니 차라리 몰래 떠나고 싶어 (21쪽. 전문)



 트랑스? 이거 불어인줄 몰랐다. 영어 접두사 'trans'가 생각났고, 이어서 'transportation'이 떠오르니 당연히 우리 말로 '수송'. 그러니 이 시가 지금 뭘 주장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있었겠는가. 미친 척하고 불어 사전을 열고(요샌 불어 사전을 '펴고'가 아니라 '열고'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내 불어사전은 지금 어디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trance'를 찾아보니 '불안, 공포, 최면상태, 신들린 상태'라는 뜻 등장. 그래 이거다. 근데 그거하고 에밀 졸라하고 무슨 관계? 에밀 졸라 대신에 그 자리에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마르케스, 심지어 보르헤스를 넣어봐라. 무슨 차이가 나는지. 오히려 도스토옙스키를 대입하면 불안, 공포, 신들린 상태, 최면 상태, 이런 게 훨씬 더 실감난다. 기억하시지? 그의 작품 속에 무수하게 등장하는 불안, 공포, 섬망, 식은 땀 등등. 시가 후지단 뜻이 아니라 이왕 한 줄 시를 쓰려면 제목, 즉 에밀 졸라를 단 칼에 대표할 수 있는 카피를 썼어야 했던 걸 아닐까,는 의견. 아직 한 줄 시 쓸 짬밥은 아닌 듯. 그게 쉬운 줄 아셔? 이 정도는 되야 하는 겨.



 서울살이


 서울 천리를 와서 가랑잎 하나 줍다 

 박목월, <서울살이> 전문. 외워 쓴 관계로 출처는 아예 기억도 안 남.



 유진목의 시집 <연애의 책>이 나온 것이 2016년. 그러니 나이는 많지만 신인이다. 목월과 비교할 상대가 아니나, 단언컨데 모든 시인의 경쟁자는 과거의 별들, 청록파 3인, 미당, 이런 선배들을 물리치겠다는, 아니면 앞으로 적어도 그들과 어깨를 견줄 시를 써야겠다는 포부가 있어야 할 터. 옛 거장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아예 시를 쓰지 말든지.


 말이 딴 데로 흘렀다. 다시 <연애의 시>. 여기서 '연애'라 함을 말 그대로 연애로 받아들이지 말자. 사랑? 얼마나 좋아. 연애는 빨리 끝나잖아. 사랑은 좀 더 오래 가고. 물론 '정'만큼이야 질기겠어? '정'만큼이야 더럽겠어? 근데 당신과 나를 여태까지 같이 살게 만들고 앞으로도 같이 살게 만들 거 같은 게 웃기지도 않는 '연애'도 아니고 우라질 '사랑'이긴커녕 드럽게 질긴 그놈의 '정'일 거 같아. 이 시 한 번 읽어보자.



 그믐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과를 주워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아내는 몸을 씼고 일찍 이부자리에 누웠다


 밤에 모과 한 알이 부엌에 놓여 있다


 나는 모과를 훔치려고 더 어두워졌다  28쪽 (전문)



 여기서 '나'는 그믐밤의 어둠. 모과 아시지? 우리 조상들께서는 좀 못생긴 아이 놀릴 때 "꼭 모과덩이 닮은 것"이라고 했다. 생기긴 그렇지만 방에 두면 모과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이 참 그윽하다. 얇게 저며 설탕에 재워 오래 두면 저절로 모과주가 된다. 나 유년 시절에 모과주 마시고 알딸딸해져서 이상하게 걸으면 고모들이 나보고 허벌 웃으셨다. 나, 즉 어둠이 바로 그 모과를 훔치기 위해서 밤을 더 어둡게, 어둡게, 페이드 아웃, 페이드 아웃. 그리하여 밤과 어둠이 안식과 사랑을 위한 어둠으로 되기 위해. 위의 <접몽>도 그렇고 <그믐>도 그렇고, 딱 내 스타일. 난 길고 긴 시는 정말 별로다.


 물론 유진목의 시를 다 좋게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시집을 산다. 그럼 솔직히 얘기해서 시집 속에 내 맘에 맞아 한 번 외워볼까, 하는 시 두 개만 건지면 본전이고 세 개 건지면 횡재다. 아니 그런가? 나한테 이 시집은 횡재에 해당하는데 마지막 세번째 시를 소개한다.



 한밤



 신발을 이렇게 예쁘게 꺼내놨네


 너하고 나하고 예쁘게 떠나려고  (82쪽, 전문)



 시는 전적으로 읽는 사람, 아니, 감상하는 사람 마음대로다. 너하고 나하고 예쁘게 어디로 떠나? 둘이 좋아하는 걸 양가부모가 지랄맞고 극성맞게 반대해서 걍 보츠와나 공화국으로 도망가듯 이민가는 거야? 아닐 걸. 예쁘게 어디로 떠나느냐, 하면, 밤으로. 빈 방에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또 하고, 쉼없이 사랑해서 당신은 어느덧 살림이 되고, 나는 봉지처럼 느슨하게 묶여서 서랍에 들어앉아 있길 좋아하는 상태가 되기 위해, 오늘 밤, 밤 속으로 떠나는 거다. 천만의 말씀이라고? 그랴.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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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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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의 이름을 처음 들은 순간, 혹시 매릴린 먼로의 집안 식구 아닌가, 잠깐 궁금했는데, 한글 표기만 같지 완전히 다른 집안이란다. 처음 읽은 먼로. 왠만하면 단편소설집, 특히 외국 단편은 피해다니는데 먼로의 이름이 하도 알려져 있어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이러나싶어 샀다. 이 책 읽기도 전에 또 한 권의 먼로를 샀으니 7월 말 혹은 8월 초에 읽을 또다른 단편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암만해도 괜히 산 거 같다.

 이 책? 작가의 마지막 작품집이라고 한다. 괜찮다.

 작가가 다 늙어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는 작품들. 특히 단편소설인 경우, 자신의 유소년 시기를 보낸 한 지역에 천착하면, 개인적 경험과 가족관계 등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거 같)다. 또 옛날 작가 이야기하지만 김원일의 진영, 오정희의 인천과 이주 전의 모처, 윤흥길의 정읍(정읍을 이야기하면서 난 죽어도 어느 글 도둑년의 이름은 대지 않겠다), 김주영의 청송, 이문열의 영양, 무엇보다 이문구의 대천 등등.

 먼로도 아픈 개인사가 있는 모양이다.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것.

 세상의 (거의) 모든 인간은 다 자신만의 상처를 지닌 채 생을 살아간다.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걸 평생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이 있고, 이념을 달리해 처자식, 부모 팽개치고 적대 진영에 합류해 집안을 완벽하게 거덜낸 아버지를 화상 흔적처럼 차마 버릴 수 없어 품을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완전한 죽음으로 한 순간 상처를 남길지언정 영원히 기념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소원하는, 참담한 미래만 약속할 뿐인 장기 중환자의 가족도 있고. 그러니 먼로의 경우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닐 것.

 별로 특징적이지 않은 단편들. 문외한이 겁없이 말하는 바, 노벨상, 맨부커상, 우거지잡탕상 등의 화려한 수상경력에 (나처럼) 미혹되어 읽어볼 수는 있을 것. 읽은 다음에 괜찮은 단편들이라고 소감을 쓸 수 있음. 그러나 그걸로 끝. 7일 전에 읽은 <디어 라이프>. 벌써 기억에서 거의 다 지워졌다. 큰일이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또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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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6-2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워낙 단편집을 좋아해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부터 읽고 <디어 라이프>는 선물 받았는데, 이 책에서는 딱 한 편 읽고 아직 읽은 게 없네요. 읽긴 읽을 텐데.... 크게 감흥은 없더라고요. 노벨문학상 때문에 이 책 낚여서 산 사람들이 많은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면 널리고 널렸습니다. ㅎㅎ 전 이 사람이 글쓰는 방식이 일단 좀 싫더라고요. 개인사를 (가족사겠죠?) 지나치게 작품화한 바람에 그런지, 가족들과도 거의 등지고 사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리 개인사라고 하지만, 그게 정말 과연 온당히 자기만의 역사일까요? 결혼도 여러 번 해서 그 결혼이 끝날 때마다(결혼 여러 번 한 게 잘못이 아니라) 전 남편들을 소재로 또 글을 써댔던데.... 흠.... 작가로서 글쓰는 재주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윤리의식은 꽝인 거 같아 통 매력 없는 작가입니다.

Falstaff 2017-06-29 12:47   좋아요 1 | URL
사실 많은 작가들이 자기들 가족사를 파먹고, 팔아먹고 사는 앵벌이잖아요. 근데 가족사 전부가 자기 것인 양하는 건 좀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단편은 장편에 비해서 문장 하나하나가 묘사하고 주장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매우 좋아하는데 암만해도 역자가 그걸 제대로 전달한다는 느낌이 별로 와 닿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 단편은 즐겨 읽지만 번역은 좀처럼 손이 닿지 않더라고요.
ㅎㅎㅎ 결혼 여러번 한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약 한 열 번 하면 정상은 아니지요. (먼로가 그랬다는 얘긴 절대 아닙니닷!!) 아이구, 그 지긋지긋한 걸 열 번이나? 헥! ㅋㅋ
 
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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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이승우를 읽었다. 30년 전, 우리는 이승우를 '새끼 이청준'이라고 불렀다. 장흥 사람 이청준과 동향이고 같은 이씨 성에 쓰는 것도 이청준과 아주 비슷했다. 스스로도 글공부 하던 시절에 이청준을 대단히 많이 공부했다고 자복했다. 자복? 그렇다. 자복自服. 저지른 죄를 자백하고 복종함.

 이청준의 성과.  전쟁 중 한밤에 들이닥쳐 손전등 빛을 식구들 눈에 비추며 단 한 번의 대답으로 생명줄이 왔다갔다 하던 질문, 이편인지 저편인지 대답하라는, 소위 전짓불의 공포, ② 서편제나 매잡이 같은 남도 지역에 전래해오는 민간 전통 문화사③ 장흥의 대표적인 산 천관산을 무대로 유사종교에 관한 종교철학적 이야기. ④ <당신들의 천국> <낮은데로 임하소서> <키작은 자유인> 등 장편.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인데, 이승우는 여기서 ③의 경우를 많이 차용해왔다. 단, 이청준이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관산'이라 했으나 이승우는 '관'자를 빼고 '천산'이라 했다. 그게 장흥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천산'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작가가 임의대로 그렇게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천(관)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유사종교, 비화밀교, 이단 기독교 등이 이청준과 이승우의 최대공약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젊은 시절의 우리는 이승우를 걍 '새끼 이청준'이라고 불러버렸던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이승우. 그중에서도 2013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았다는 <지상의 노래>. 와우, 아직도 작가는 전라도 장흥,으로 짐작되는 '천산' 언저리에서 노닐고 있다. 참 오래 우려먹는다. 더할 수 없이 솔직하게 말하지만, 이승우의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늙은 이승우'에게 실망했다. 잽싸게 책꽂이를 점검해보니 <미궁에 대한 추측>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에리직톤의 초상>, 이렇게 세 권이 보인다. 책꽂이에 책을 두 줄로 겹쳐 꽂는 관계로 저 속에 뭐가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 그럼 30년만에 읽는 이승우가 아니라 20년 만에 읽는 이승우라는 것이 맞겠다.

 20년 만이거나 30년 만이거나 그딴 건 중요하지 않고, 이제 새로이 책장을 넘겨 <지상의 노래>를 읽은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느느니 말장난. 이제 이이도 나이가 제법 들어 낼 모레 환갑. 글 상태에 진전이 없으면 이젠 슬슬 문학적으로 은퇴를 생각해볼 때가 됐을지도. A라서 B고 B라서 A다, 라는 식의 말장난. 이런 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면, "밥을 많이 먹어서 몸이 커졌고, 몸이 커서 밥을 많이 먹었다"라는 거. 꽃노래도 삼세번인데 이런 식의 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시로 등장한다. 한 세번 쯤 이런 꽃노래를 읽으니까, 이거 그때 읽은 이승우 맞아? 라는 불평이 솟더라.

 시대적 배경도 박정희 쿠데타 시절부터 80년대 신군부 쿠데타까지 몽땅 아우르는데, 아우르느라고 참 고생 많았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 내가 유별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간 신경쓰이는 게 연대. 다음 문장을 보자.

 37쪽에, "라면 생산이 시작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한 식품회사 사장이 일본에서 기계 두 대를 들여와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이지만...운운"

 그럼 현 시점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1973년. 주인공 소년은 15세다(어! 작가 이승우와 같은 나이다). 소년이 15세 때 사고를 심하게 치고 천산 꼭대기 위의 수도원(나중에 '헤브론 성'으로 칭한다)으로 들어가 3년을 짱박혀 있다가 강제 하산 조치를 당한다. 그럼 1976년이 독자가 계산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 18세. 딱 이 시점에 천산 수도원 '헤브론 성'의 유일한 출입구 앞에 군인 초소를 만든다. 여기까지 37쪽을 배경으로 한 (내가 만든) 연대기다.

 그러다가 202쪽에 보면 이렇다.

 (천산 수도원 헤브론 성 지하에 벽서가 씌어진 것은) "수도원 공동체 형제들에 의해서 비교적 이른 시기, 적어도 초소가 만들어진 1972년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하나 문제점 가지고 책 전체를 왈가왈부하는 건 좀 야박한 일이다. 근데 왜 이랬을까? 왜 대한민국에 라면공장이 생긴 연도를 굳이 넣어가지고 나로부터 이런 쪽팔림을 당할까?

 격변하는 한국 현대사를 책에 담고싶어 하는 건 이해하며, 저 남쪽 끄트머리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을 정치적 목적으로 하고자 하는 권력의 폭행을 정말 그럴 듯하게 만들었지만 전체적으로 과하게 종교적이 됐다. 유사 기독교라고 봐야할 것인 사이비 종교집단의 구도의식. 이 집단은 철저하게 원시 기독교, 카타콤을 모델로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약보다는 구약에 더 의존하는 것이겠지. 아, 잠깐! 난 개신교, 천주교. 통틀어 기독교에 관해선 완전 무지하다. 그래서 말인데, 이건 종교와 독재정치와 개인사를 합쳐만든 잡탕밥. 이승우라면 같은 내용으로 더 심사숙고할 만한 소설을 쓸 법했다. 암만해도 필력이 좀 떨어진 듯.

 저 위쪽에 이청준의 장편소설 <키 작은 자유인>을 말했다. 이제 그 의도를 밝히노니, 난 <키 작은...>을 읽고 이청준 선생이 은퇴할 때가 됐다고 여겨서 이후 그의 작품은 읽지 않았다. 이제 세월이 흘러 새끼 이청준으로 불렸던 이승우와도 이별을 선택해야할 시기인 것 같아, 한 시절이 이렇게 가는구나,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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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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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읽는 줄리언 반스. 문제작 <플로베르의 앵무새> <10 1/2 장으로 쓴 세계역사>를 진짜 흥미깊게 읽고 이이가 쓴 다른 책 검색해서 찾은 책. 앞의 두 종과 완전히 성격을 달리해 이번엔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한, 복잡하게 꼬인 개인사를 엮어놨다. 나 역시 박제된 앵무새를 찾거나, 여권과 비자 없이 무단으로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나무좀벌레, 비슷한, 기존의 뭔가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기대했다가 재미있게도 40여년 만에 만난 옛 애인과의 재회를 다루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줄리언 반스가. <플로베르...> <10 1/2장...>의 작가가 말이다. 이래서 소설가의 변신은 무죄.

 근데 참 독후감 쓰기 힘든 책이다. 대개 이런 책은 마지막 결론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썼다는 내 의심을 받는다. 이 책도 포함해서. 그러니 (20세기말, 21세기 초엽의) 막강한 무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마음먹고 마지막 장면을 꼬불쳐두고 소설의 앞부분에서 독자들이 좀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 현란한 장면들을 배치해놨으니, 나중에 결론을 발견할 때의 미묘한 '아, 속았다!' 하는 느낌,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1960년대 말의 영국. 당시에 고교와 대학을 다녔던 젊은이들. 그러나 이들은 60년대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던 자유와 평화, 그리고 프리섹스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채 젊음을, 작은 의미로, 낭비했다. 화자 '나' 토니 웹스터가 베로니카란 귀여운 이름의 학생과 연애를 하고, 베로니카 역시 그가 좋은 듯 멀지않은 시골의 저택에 나를 초대하여 거대한 몸집의 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과 인사도 시키고(마초같은 아빠, 딸을 신뢰하는 것 같지 않는 엄마, 잘난 척 오지게 하는 오빠), 별짓을 다 하지만, 천생 암컷이라 줄듯 말듯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시간이 좀 흐른 뒤 둘이 이별을 확정한 다음에야 딱 한 번 관계를 허용하는데, 어 이거봐라? 완전 프로였던 거다. 그때부터 세월은 흘러흘러 어느덧 나 토니 웹스터한테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죽었으며 유산으로 500 파운드와 일기를 남긴다는 편지를 받으면서 재미난 책 <예감은....>의 본격적인 전개부를 시작한다.

 이 책이 한 시절 무지 유명했던 모양이다. 독자 서평이 무려 200개에 육박한다. 그정도로 재미난 책이니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미리 말씀드리노니, 걸작, 명작의 반열에 오를 책은 아니다. 아울러 반스의 대표작으로 언급되지도 않을 거 같다. 하지만 소설책의 미덕, 재미에 관해선 탁월하다. 처음부터 신경을 집중해서, 작가가 어떤 결말을 준비하고 있을지 행간의 문장 하나하나를 읽고 또 읽고(지가 아무리 그래봤자 복선 없는 추리소설 봤어? 그지?), 따져보고, 어떤 실마리가 있는지 눈알이 빠지게 각오하며 집중에 집중을 하다가, 결국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읽고 즐거운 허탈에 빠지는 재미도 솔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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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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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세의 노작가가 자신의 마지막 소설임을 암시하며 쓴 장편소설.

 난 이 사람의 작품을 별로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출판사 책 소개에 의하면 아버지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한 소설이 별로 없다고(극히 드물다고) 한다. <익사>는,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읽기로는 세 가지 정도의 굵은 주제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작가의 분신이랄 수 있는 조코 코기토가 작중 작가이자 화자이며 주인공이어서 나이도 70대 중반으로 이젠 더 소설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어서 마지막 작품을 구상한다. 읽을수록 오에 겐자부로 본인 이야기같지만 명심해야할지니 이건 분명히 소설이고 소설은 구라치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

 세월이 흘러흘러 95세를 일기로 어머니가 세상을 뜬지 벌써 10년차(일본 여성들 오래 사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기 전에 '나 죽은 다음 10년이 지나면 붉은 가죽 트렁크를 조코에게 물려주라'는 유언을 해, 조코의 친애하는 누이동생이자 현명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일본의 잘 배운 집안 여인 '아사'가 전화를 해 이제 거의 10년이 됐으니 그만 '붉은 가죽 트렁크'를 넘겨받으라고 하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마지막 소설(예정작)은 시작한다.

 여기에 평소부터 조코의 작품을 동경하여 그의 모든 작품을 연극으로 만드는 데 자신의 연극인생을 몽땅 바치겠다는 신념의 인물 마사오가 있어 그가 이끄는 연극집단 '혈거인' 그룹. 여름에 시골집(이라 하지만 강가에 위치하고 매우 커서 자그마한 규모의 연극도 상영할 수준의 개인 집)에 얼마간 묵으며 문제의 '붉은 가죽 트렁크'를 열어 그 자료를 기초로 하여 마지막 소설을 쓰는 동안 조코와 함께 기거하면서 조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에 관해 상의하자고 제안한다. 조코의 흔쾌한 동의를 이끌어낸 여배우이자 기획자이자 공동 운영자이며 대단한 추진력을 지닌 우나이코.

 한 명의 주요인물을 또 소개하자면, 조코의 아들 아카리. 오에의 전작 <개인적인 체험>에서 두개골에 문제가 있어 뇌가 두개골 밖으로 흘러나온(것으로 산부인과 의사간 판정한) 상태로 태어난 조코의 아들. 태어나 며칠 동안 아이를 방치하여 그냥 짧은 생을 마감시킬까 말까를 절망적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치료를 결심, 조코와 평생을 살면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죄책감과 더불어 함께 사는 고통과 자주 발생하는 짜증 등을 벌써 40년이 훌쩍 넘게 짊어지게 한 아들. 일부 자폐환자가 그렇듯 음악적 감각이 매우 발달해 모차르트의 40번 교향곡의 일부 악구가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2번에 그대로 나온다는 것마저 악보만 본 상태에서 발견하는 천재. 그러나 부모에겐 어느새 사십대에 이른 무거운 짐. 아들의 장래를 준비하지 못한 채 자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인의 암담함.

 차근차근 얘기하자.

 내가 알고 있는 물에 빠져 죽은 아버지. 그는 패전과 항복에 반발하여 테러를 준비하는 청년 장교 모임에 우연하게 가담하게 된 인물. 여기까지는 조코와 그의 어머니, 동네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바. 그러나 진실을 찾는 게임이야말로 소설가들의 영원한 숙제라서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기록들이 들어있는 '붉은 가죽 트렁크'를 열어 그 속에 담긴 숱한 편지, 문서, 책 같은 자료를 좀 보여달라고 어머니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리 매몰차고 단호하게 거부할 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일찌기 <만엔 원년의 풋불>로 공전의 히트를 친 조코,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이 갈라진 땅을 메우고 찢어진 하늘을 채워 결국 트렁크에 든 내용물과 관계없이 자신이 직접 보고 거기다가 꿈 속에서 숱한 세월 자신을 괴롭힌 모습을 더해 물에 빠져 죽은 아버지의 '익사소설'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을 쓰게 이른다. 벌써 몇 십년 전에.

 이쯤에서 독자는 좀 헷갈림. 책 속의 등장하는 책, 즉 조코의 저작 두개를 보면 하나는 <만엔 원년의 풋불>, 하나는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 <만엔...>은 오에의 작품인 걸 다 알지만, <손수...>는 도대체 뭐야? 정말 오에의 작품 목록에 이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없다는 쪽에 만원 걸 용의 있음.

 첫번째 문제. 조코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죽음은 무엇일까? 정말 패전과 항복에 항의하기 위하여 테러를 감행하기 위해 홍수가 나자 작은 보트로 동네를 탈출하여 거사를 꾀했을까? 아니면 거사가 정말로 일어날까봐, 진짜 일어난다면 사건에 연루되어 일신상 돌이킬 수 없는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는데 처자식 건사하는 입장에서 그럴 수 없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거사 전모가 담긴 트렁크를 갖고 탈출, 말이 탈출이지 동지들 버리고 도망한 것일까.

 두번째 문제. 조코의 책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바흐의 칸타타를 합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어 원어로 노래하는 거. 근데 차용한 칸타타는 세속 칸타타가 아니라 종교 칸타타였던 모양이어서 내가 흘린 눈물을 손수 닦아주시는 분은 원래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걸 천황(천황은 무슨, 천왕이라고만 해도 너무 충분하고, 걍 일왕이라고 불러도 아주 좋다)으로 바꿔 노래한다. 출연진이 리허설 비슷하게 조코 앞에서 합창을 하니 기분이 과하게 고양된 74세의 작가는 높고 우렁찬 목소리로 칸타타를 따라 부르며 넘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어한다. 자, 조코가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페르소나라고 가정하면, 물론 그런 가정은 충분히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고 일면 합당하기까지 한데, 어려서 깊게 세뇌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의식이 74세가 되도 어쩔 수 없이 변하지 않았을까(특히 그의 양심적 일본인으로서의 여러 참여운동을 감안하면)? 그도 역시 근본은 파시스트? 난 아니라고 생각함. 이 장치는 소설 <익사>를 만들기 위한 과정, 즉 '정당한 허구'라고 생각한다. 역시 만원 건다.

 세번째 문제. 극단 '혈거인'의 멤버 우나이코. 대단히 실험적이고 모험적이고 위험한 연출, "죽은 개를 던져라" 방식의 연극을 시도하는 똑똑한 아가씨. 손수 눈물을 닦아주시는 천왕에 가장 의아해하는 인물. 개항과 더불어 메이지 시대에 닥친 굶주림에 항거하기 위한 여인과 어린이들의, 여인과 아이들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가난과 굶주림의 봉기를 연극으로 재현하기 위해 애쓰는 캘릭터. 소녀시절에 큰집(백부네 집구석)에 얹혀 살 때 큰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배할 때 갑작스런 구토를 경험한 여인. 여기서 내가 '사람'이라고 쓰지 않고 '여인'이라 쓴 건, 이이가 연극으로 만들려고 하는 '메이스케 어머니'가 봉기에는 성공하지만 봉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극의 주인공 모자가 몰락한 무사들에 의하여 어머니는 집단 윤간을 당하고 아들은 생매장으로 죽음을 맞기 때문. 집단 혹은 국가 또는 권력이나 힘에 의하여 강간을 당하고 살인까지 저질러지는 야만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네번째 문제. 첫번째 문제를 보다 더 크게 보면 그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듯. 조코의 아들 아카리. 나 어렸을 적엔 동네에 한 명 씩 꼭 바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폐증이 있는 사람을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그냥 '바보'라고 불렀다. 지금은 별로 볼 수 없는데 그건 자폐증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밖에 나와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바보를 놀려먹던 아이들 가운데 나도 포함되며, 백색증 아이를 따돌렸던 집단 가운데 한 명이다. 비록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어렸다 하더라도 그런 행동을 돌이킬 때마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다. 대단히. 앞으로도 평생 반성하며 살 것이다.) 아카리도 비록 자신이 음악에 대단한 천재를 보이지만 사회적으로 바보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길거리에서 누가 자신을 '바보'라고 할 때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아버지는 한 번 빠짐없이 상대에게 분노하고 사과를 요구했으므로 사소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그런 아버지가 며칠 새에, 물론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가 아카리 자신한테 '바보같다' '넌 바보다'라고 두 번이나 욕을 해대다니. 난 아버지와 다시는 화해하지 않고 살겠다.

 사소한 것들 빼고 큰 문제만 네 개를 골랐다.

 이 네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 비록 내놓은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전적으로 독자가 할 일이겠지만 서로 얼키설키 엮어있는 네 가지 문제, 혹은 내가 모르게 숨겨 있는 더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일이 책을 읽는 행위다.

 다만 한 가지, 내가 확신하는 건, 이건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쓴 "소설"이라는 거. 조코를 빙자한 오에의 고백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꼭 그렇게 읽을 필요는 조금도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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