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를 입은 비너스 펭귄클래식 61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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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취향 아님. 사드 남작이 쓴 <미덕의 불운>을 읽었을 때의 불쾌감하고 거의 완전히 반대방향에 자리잡은 불쾌감. 에잇. 언젠가 한 번 인용한 거 같은데, 맞다, 플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국일미디어 판의 독후감이었다, 김정은과 임원희 주연의 <재밌는 영화>에서 와타나베 형사로 분장한 김응수가 김정은과 호텔에 들어 하신다는 말씀이, "자기 나 좀 더 때려줘, 아 좋아, 더 때려줘!" 배꼽을 잡은 적이 있다. 바로 이 현상의 원조가 기어이 책을 다 읽고 책 뒷장에 써놓은 걸 읽고서야 알았는데 바로 이 책의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라는 인간이란다. "사도마조히즘의 성적 강박"을 보고서야, 아하, 마조히즘,할 때 마조흐가 이 책의 저자 자허-마조흐라는 거구나! 이런 형광등. 그걸 이제 알았다니. 그러니 당연히 사드의 정 반대편에 딱 그만큼의 불쾌감을 느낀 것이지.

 어제 읽은 소위 여성문학, 그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은 혹시 모르겠다. 이 책 읽으며 통쾌감을 만끽하실 수 있을지. 주로 담비 가죽을 대표로 하는 최고급 모피를 입은 비너스. 남국의 따뜻한 기후 속에서 사랑과 섹스와 질투와 장난을 무차별적으로 해대던 여신 비너스가 추운 나라 독일로 왔으니 여신은 모피를 입을 수밖에. 비너스를 찬미하여 찬 대리석 석상의 발가락에 입맞춤하면서 성장한 제베린은 모피를 입은 비너스와 딱 비슷하게 생긴 스물 네살의 어마어마한 부자 과부한테 홀딱 빠져, 그이의 남편이 되길 요구하지만 뺀찌. 그러자 기어이 젊은 부자 과부 반다의 노예가 되길 희망하여, 드디어 나온다, 자기 나 좀 더 때려줘, 아 좋아, 더 때려줘! 연발탄.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학대하고 다른 남자새끼와 깊은 관계를 맺어 몸과 마음에 치명적인 아픔/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여인을 사랑하는 완벽한 변태. 아참, 변태성욕을 가진 사람도 '성소수자'에 포함시키는 건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다. 아시는 분 있으면 진정 답글 바람. 난 변태성욕을 가졌건 말았건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다. 남한테 원하지 않는 고통을 주지 않는 한, 그분들이 서로 고통을 주고 받으며 아 좋아, 하건 말건 그건 내 일이 아니다. 알아서 즐기시면 될 일. 나하고 다른 것일 뿐.

 근데 자허-마조흐Sacher-Masoch 이 양반이 19세기 초반 1836년 태생이라 당시 분위기 상 노골적인 변태성욕을 설파하진 못했을 터. 그리하여 불행하게도 사드 남작만큼 용감한 초지일관으로 밀어부치지 못하고 반다Wanda 여사께서 제베린에게 모진 고통을 통해 노예가 되고싶어 하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게 했다는 결론으로 가는 건, 비록 내가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경멸하지만, 참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뭐 세상이 그랬으니.

 결론. 이 책 읽고 좋다하시는 분 수없이 많다. 근데 난 추천 않는다. 읽고 싶은 분은 내가 굳이 추천하지 않아도 찾아 읽으실 것이니 이 정도면 뭐,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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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의 여명 - 신화와 민담과 판타지 펭귄클래식 44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서혜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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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전래 구전 이야기. 한 겨울 밤이라면 화로에서 군 밤 꺼내 까먹으며 할머니한테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 말로만 들었던 예이츠의 명문을 기대했다가, 억지로 다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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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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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펭귄클래식코리아의 책 소개에 의하면 톨스토이의 '단편' 네 작품을 모아 책을 냈다고 한다. 요새 우리나라 대표적 출판사들(꼭히 문학동네, 창비, 열린책들, 민음사를 꼽지는 않겠지만)이라면 당당하게 네 권의 장정본을 만들고나서 뭐라고 주장하느냐 하면, 이름도 찬란한 "경장편" 네 작품이라 주장할 것이다. 경장편? 세상에 그런게 어딨어. 양심없이 돈벌이에만 눈이 벌건 출판사에 비하면 펭귄클래식코리아 거 참 괜찮다. 더구나 오역 여부는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읽은 펭귄 시리즈에선 비문이나 크게 맞춤법 이상한 거 또는 단어를 연속해서 잘못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몇몇 유명 출판사하고 비교해도 기본에 충실하다는 뜻. 디자인이 좀 그래서 그렇지 이 출판사, 괜찮다. 특히 문학동네가 이 책 속의 모든 작품을 찍었다고 가정한다면 네 권의 "경장편" 양장본을 구입해 읽어보기 위해 최소한 4만원은 들 것인데, 난 최상급 중고책을 4,200원 주고 사서, 잘 읽었다.

 그건 그거고, 책 이야기를 하자. 오늘도 서두가 길었다.

 레프 톨스토이. 우리 나이로 50세 전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써서 이제 문호의 반열에 오른 그는, 자신의 넘쳐나는 성적 욕구를 느끼는 만큼, 그것을 억제하는 신앙의 삶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의 아내 입장에서 말할 거 같으면 이제 16세 연하, 그니깐 34세의 젊은 아내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입장에서 보면, 서방은 젊어서 온갖 난잡한 섹스와 성병까지, 거기다가 도박, 술에 젖어 할 거 실컷 해보고, 이제 나이들어 연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니 금욕주의네 수도생활이네 지랄을 하지만 자신은 불꽃같은 인생의 절정기 30대 중반의 여인으로 본격적으로 맛을 알아가고 있는 와중에 그게 무슨 말같지 않은 허무맹랑한 짓인가 말이다. 소피야 입장에선 명색이 그래도 톨스토이 백작님이라, 얼굴과 아랫도리를 동시에 그냥 확 쥐어 뜯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은 길고 긴 인생, 바늘로 자신의 허벅지 콕콕 찌르며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밤이면 밤마다 면벽참선 할 수도 없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 영감이 나이를 조금 더 먹으니 뭐라? 저작권을 포기하고 언제든지 자신의 작품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게 하겠다고? 남이라도 그럼 섭섭할 텐데 이걸 서방이라고 그래도 몇 십년을 함께 살아준 댓가라는 말이냐고. 당신 같으면 레프 톨스토이 같은 남편을 그냥 내비 두시겄어? 밖으로 폼만 나지 안에선 그야말로 하나 내실 없는 속물 덩어리. 아, 물론 젊은 아내 입장에서 말이다. 그러니 날이면 날마다 바가지 벅벅. 이게 소피야 잘못이야? 톨 백작 잘못이지.

 톨스토이 백작의 집구석에 평화가 전혀 깃들지 아니할 즈음해서, 몇 십년 동안 가정의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톨스토이는 근본적으로 결혼제도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우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결혼한 가정을 면밀히 조사, 탐색해보니 다 거기서 거기. 하고한날 부부간의 쌈박질에 생활고까지 겹치면 한때는 죽고 못살았던 부부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하면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지 모색하게 되고, 치명적 언어의 화살촉을 발견하는 즉시 그것이 잘 듣는지 궁금한 걸 참지 못해 즉각 상대를 향해 비상을 듬뿍 묻혀 발사해마지않는 현상을 발견해낸다. 때는 19세기 말. 당시 러시아의 몇몇 귀족 가정에선 부부 간에 서로가 서로에 대한 독립을 인정하여 서로 눈치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적 증거를 발견하기를 서로 꺼려하며 부부가 공히 각자의 정부를 한 두명씩 부양하고 있는 것이 유행이었다, 라고 오해할 만한 문학작품을 우리는 읽은 바 있다.

 톨스토이 선생은 그리하여 작품 속에 자신이 본 특별하지 않은 부부를 등장시켜 신혼여행 부터 결혼생활이 작살나기 바로 직전까지 전혀 우아하지 않게 펼쳐지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집중사격, 거기다가 오해받을 만한 행위를 보태 비극적 결말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가장조 작품 47의 1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에 이어진 프레스토를 곁들여 격하게 토해낸다. 이게 책의 두번째 단편 <크로이체르 소나타>.


https://youtu.be/kpf1DXDSajg
(베토벤의 바이올린 연주에 관하여는 난 무조건 헨릭 셰링이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말고 <가정의 행복>, <악마>, <신부 세르게이> 세 편이 더 실려 있는데 이거 참. 톨스토이는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적어도 하나 이상을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작가라서 어쩔 수 없이 좀 재미없고 재수없는 장면들이 나온다. 단편들을 쓴 시점이 19세기 말이고, 늙은 톨스토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종교적 금욕주의에 퐁당 빠져버려, 젊은 시절 방탕했던 자신을 채근하듯 남자 주인공들이 함부로 놀려댄 아랫도리에 체벌을 가하는데 말 그대로 가차없다. 아 씨. 자기는 할 거 다 해놓고 말야. 당시 러시아, 물론 러시아만 그랬겠어, 유럽이 다 마찬가지였겠지. 하여간 거기선 젊은 귀족들은 15세 혹은 16세부터 정기적으로 여자와 성적 접촉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다. 근데 문제는 적절한 피임 방법이 없었던 거. 그들의 건강을 이유로 숱한 일반 백성의 처녀, 유부녀들은 1루블을 받고 무수한 사생아를 만들어냈던 건데, 톨스토이 자신이 젊어서는 이런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다가 50이 넘고 60이 넘고, 하여간 나이들면서 세상의 죄악이 다 거기서 시작한다고 자각을 했단다. 왜? 이제 늙어 그게 마음대로 작동하지 않으니까? 난 그의 개심, 금욕주의가 별로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 족속이다.
 그러다가 기어이 80이 넘어 도를 닦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한적한 시골역에서 생을 마감하는 톨스토이. 그의 마지막은 벌써 몇십년 전에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거다. 정말이라니까! 한 번 읽어보시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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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7-1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오간 결혼에 대한 신랄한 대화가 떠오르는군요. ㅋㅋ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문학작품은 정말 독하게 쓰고, 음악은 참~ 아름다운 재미난 작품입니다. 하긴 어쩔 때 들으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부부싸움 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어요. ㅎㅎ

Falstaff 2017-07-18 10:0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거기다가 첼로까지 끼어들어 삼중주가 되면 그야말로 삼국지 장판파 싸움이 됩니다. 이중주와 삼중주 까지는 그렇게 치열한 경쟁이 또 지독한 별미이기도 하잖아요.
근데 톨백작께서 쓰신 이 네편은 하나같이 정말 꼰대스러운지라 ^^;
암만 생각해도 21세기엔 별로 효용이 없지않나....해요.

잠자냥 2017-07-1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톨백작님은 도덕교과서 읽는 것 같아서 눈쌀이 찌푸려질 때도 있지요. 그런데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이런 구절이었던가... ‘짧은 기간의 창녀는 경멸 당하고, 긴 기간의 창녀는 존경 받는다‘ 이런 촌철살인은 기억에 오래 남더군요. 그리고 ‘신부 세르게이‘였나요? ㅋㅋㅋㅋ 욕정을 참지 못해서 자기 손가락까지 자르고 마는 ㅋㅋㅋㅋ 아 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17-07-18 12:42   좋아요 0 | URL
손가락 자르기 바로 전에 램프에다가 자기 손가락 지지는 장면 나옵니다. ㅋㅋㅋ
근데 너무 뜨거워 이러느니 차라리 걍 짧게 끝내버리자는 취지에서 싹둑 잘랐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습죠. ㅋㅋㅋㅋ
 
소설, 여행이 되다 : 작품이 내게 찾아올 때 소설, 여행이 되다
이시목 외 9인 지음 / 글누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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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로 전에 이어 "소설, 여행이 되다" 시리즈. 이번엔 '작품이 나를 찾아올 때'라는 소제목으로 주요 소설의 무대가 되는 장소로 떠나는 여행 이야기다.

 작가나 작품이 만들어졌던 장소를 향해 떠난 이야기, 저 먼 시절 내가 다니는 회사 사보에 소개한 책이 있다. 2001년 간행한 최내경의 여행기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거기서 최내경은 고흐가 고독 속에서 자신의 해골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다락방으로, 고흐의 붓에 의하여 불멸의 교회로 남겨진 오베르 교회로의 여행기를 소개했었다.

 그럼에도 글누림 출판사에 의한 이러한 기획은 사실 참으로 바람직하여 그냥 마음의 치유를 위해 길을 떠나는 것보다는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옛 현장을 답사하는 일이야말로 참 괜찮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하고, 이 책에서도 어느 작가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말한다. 따뜻한 치유를 위한 여행. 참으로 행복한 상상이다. 여행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다고? 그랬으면 좋겠다. 여행은, 환상을 깨서 미안하지만, 잠깐의 일탈이다. 여행을 다녀와도 상처는 여전한 상처고, 아픔도 여전히 아픔이고, 날 버린 그 새끼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집을 나서기 전 소파 위에 휙 던져놓은 브래지어는 여태 그대로 널브러져 있고, 오히려 우체통엔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와 공공요금 계산서 쪼가리만 보태져 있을 것이며, 이제 돌아와 피곤한 당신은 미리 짐작했던 바와 같이 심각한 변비로 얼굴만 노오래져 있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떠난다. 심지어 떠나고 싶어 몸부림을 친다. 먹고 사느라 훌훌 떠나지 못함을 기어이 아쉬워 한다. 아무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래도 기어이 떠날 당신, 이왕이면 길을 나서기 전에 이 책 한 번 읽고 길을 골라보라.

 솔직하게 말하겠다.

 책은 이게 기행문인지 독후감인지 헷갈린다. 열 명의 작가가 경향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위 '명작의 고향'을 찾아 갔는데, 아뿔싸, 문제는 바로 그 명작 이야기도 해야겠고, 명작을 태어나게 한 고장의 모습을 독자의 가슴이 짜르르하게 윤색도 해야겠고. 실제 가 보면 둘 중의 하나. 누추하고 빛 바랜 옛 기억의 한 장면이든지 아니면 야하게 화장한 노파의 얼굴같이 작품과 너무 어울리지 않게 현대화한 모습이던지. 그 둘 중의 한 모습을 독자의 가슴에 진하게 새겨놓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한 문명의 장비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한 부분만 확 잡아놓았을 때, 진짜 시각으로 바라볼 경우의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극미세한 한 장면으로 축약되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거. 그게 사진 또는 그림의 마술이다.

 나는 지금 이 책을 폄훼하기 위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왕 길을 나선다면 한 가지 테마에 집중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기 때문. 이 책의 효용은 그거 하나로도 충분하다.

 책에 수인선. 수원과 인천 사이를 달리던 협궤열차 이야기가 나온다. 오랜 추억. 수십년 전 추웠던 겨울. 어느날 트렌치 코트 속 주머니에 소주 한 병과 노가리 한 쾌를 넣고 동기, 후배아이들을 유혹했다. 협괘열차를 타보자고. 그리하여 멀고 먼, 멀고 멀고 먼 송도역에서 수원까지 유행가 가사처럼 비린내 가득한 열차에 몸을 싣고 수원에 도착. 그러나 할 짓이 없었다. 하지만 청춘은 무엇인가를 저지르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어서, 나는 청년들을 이끌고 우리나라의 클래식 명화 <애마부인>을 단체관람했고, 안소영의 수박만한 젖가슴을 보고 낄낄거렸으며, 너무 재미가 없어서, 영화가 끝난 후에, 영화를 보자고 선동했던 나는,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했다. 당연히 송도역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전철로 인천역에 내려 어슬렁거리다가 중국식 음식점이 줄줄이 늘어선, 재수없으면 진흙탕 속에 가짜 나이키 운동화가 푹푹 빠져버리는 거리에 들어서서 이 동네가 오정희가 쓴 '중국인 거리', 거기가 바로 여기야. 어쩌고 저쩌고 잘난 척을 해가며 짜장면 한 그릇씩 받아놓고 어린 놈들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독한 배갈 한 도꾸리 씩을 비워냈던 건 물론이다.

 책의 초판을 가지고 있느냐가 만일 자랑이라면 나도 초판 몇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한강이 쓴 <여수의 사랑>. 하지만 더 깊숙한 여수의 추억. 180 센티미터의 키에 남진과 변웅전을 합한 모습의 미남 아버지는 왠일인지 아들 둘을 앞세우고 전국일주에 나섰다. 여수에 들러 당시 최고 좋은 여관에 짐을 풀자 주인 마담인 듯한 아주머니가 눈웃음을 살살 치며 반겨주었다. 오동도에 들러 난생 처음 주먹덩이 만한 소라(그렇게 큰 소라는 처음이란 뜻입네다)와 전복, 홍삼(붉은 해삼) 등을 초고추장 듬뿍 묻혀 실컷 먹고, 아, 과식의 심각한 절망이여, 밤새 심각한 설사와 탈수증에 시달렸으나, 분명히 내 옆에서 베개 위에 머리를 뉘셨던 아버지는, 방에 안 계셨다. 쾌속정을 타고 부산을 거쳐 며칠만에 집에 도착한 나와 형, 두 아들새끼들은, 꼴에 남자라고 하필 설사병으로 밤새 고생해마지않던 그날 밤 아버지가 방에 없었다는 걸 결코 정여사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뭐 이런 재미난 에피소드 없어? 없다.

 왜 이런 단어를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요새 '힐링'이란 말이 붐이다. 그러기 위해 웃음이 아닌 가슴이 쌉싸름해지는 가을 빛 정서를 듬뿍 담아내기 위해 온 힘을 들여 자판을 두드리는 열 명의 작가들이 눈에 선하다. 가슴이 저릿저릿한 아름다움. 선운사 앞을 흐르는 도솔천의 맑은 소리? 진하게 화장한 시에미처럼 변한 선운사 입구의 선운사 관광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절에 들면 입장료 받는 직원이 출근 전이라 돈 안 들이고 들어갈 수 있다는 팁은? 가을날 물 마른 도솔천보다는 선운사에 들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무슨 각이더라, 하여간 누각의 엉뚱한 기둥이 엉뚱하게 주장하는 미감은 또 얼마나 푸근한지, 왜 이런 건 안 보이지? 정말 다행인 건 일종의 관습이 된 선운사 동백, 목이 툭 꺾여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꽃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거. 동백꽃이 후지다는 말씀이 아니라 심하게 식상해서 누구나 다 아는 것이라 피하기 잘했다는 대목.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 이 책을 읽고, 책에 나온 소설들을 먼저 읽으시라. 다행스럽게 단편소설을 훨 많이 배치해놓았다. 단편 하나를 읽기 위해 책을 사기 뭐하다면 좋은 방법이 있으니, 동네 도서관에 가시라. 에어컨 바람 시원한 곳에 가서 책 속의 소설을 하나씩 읽고 그곳으로 방향을 잡으면 이 여름, 어느 때보다 기특한 휴가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글이 제일 좋았느냐고? 정말 얘기해야 해? 에이, 관두겠어.

 근데 책 속의 식당 소개는, 아 참, 요새 큰 경향 가운데 하나지만, 흐흐흐, 웃고 만다.





++++++++++  부록  ++++++++++


2001년 밥 빌어먹던 회사 사보에 기고한 글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최내경, 2001. 오늘의 책, 1만원

 

 

 어느새 가을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신은 외롭지 않습니까. 당신 가슴 속 깊숙한 고독의 빈자리로 문득 황황한 바람이 불어오지는 않습니까. 어려운 시절, 거친 생활을 살아내느라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고 함부로 관계들을 만들어가면서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사막을 바라보지는 않나요. 부모와 배우자, 그리고 정겨운 살붙이들이 아주 가끔은 전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겠군요.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가을에.
 가끔은 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지구라는 별자리에 오직 당신만이 혼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 당신은 헤진 배낭을 메고 그저 길을 나서고싶어질 것입니다.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지친 발걸음을 쉬고싶겠지요. 당신은 신발끈을 풀고 고단한 발바닥을 두드립니다. 그러다가 무거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려봅니다. 저런, 그러고보니 외로운 당신을 품고있는 공기 속에서 위대했으나 고독했던 영혼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군요.
 당신은 행복합니다. 위대한 예술품을 만들어낸 고독한 영혼들이 당신과 함께하니까요.
 그러나 정말로 자리를 박차고 길을 나설 수 있으면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거나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이겠지요. 보통의 당신은 길 떠날 생각조차 못할 확률이 많습니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는.... 하지만 언젠가 길을 떠나리라, 마치 비밀스런 에로스의 약속인 양 마음 한 쪽엔 그런 갈증을 이 가을에도 당신은 품고 있겠지요. 그 희망, 사실은 조금은 덧없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뒤 돌아보지 않고 베낭을 멜 희망이 있는 당신은 지금 불행하고, 그럴 희망을 갖지 않은 당신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일탈의 그날을 위해 이 책을 소개합니다.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프랑스.... 혹은 불란서를 소리내 발음해보십시오. 그것은 이미 당신에게 어떤 동경으로서의 보통명사입니다. 유럽의 중심,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라는 지리부도적인 지식보다도 당신의 가슴 속에서 프랑스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앙드레 말로 같은 작가, <암흑가의 두 사람>에서의 쟝 가뱅과 알랭 들롱의 우수 깊은 눈동자, 장-폴 고띠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의 패션 디자이너... 이런 소프트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아니죠, 당신을 포함한 많은 우리 보통의 사람들은 의당 그러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몽마르트 언덕의 노천 카페에 몰려앉아있는 혁명가 레닌과 바쿠닌 같은 망명 이방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프랑스의 무수한 소프트 중에 프랑스를 프랑스답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프트는 무엇일까요. 루브르 박물관의 눈썹 없는 여인 <모나리자>를 위시한 미술품을 제일 윗자리에 놓지 않으면 많이 서운하리라 생각합니다.
 책《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는 그러나 고흐의 작품에 대한 설명서나 입문서가 아닙니다.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에서 고흐를 발견할 수 있는 페이지는 얼마 되지 않는군요. 그의 그림도 여섯 컷의 사진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책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앞에서 얘기했듯, 어느날 갑자기 단행할 당신의 일탈, 그 여행길에 당신의 헤진 베낭 속에 담아갈 안내서입니다. 당신은 이 책과 함께 지난 세기와 지지난 세기에 가장 고독했고 우울했던 영혼들의 흔적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즉, 고흐의 작품을 보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흐가 자신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던 무서운 고독과 절망의 시절을 온전히 담아낸 다락방으로 당신의 발길을 옮길 수 있게하는 책이지요. 낡은 침대가 놓인 그 좁은 다락방에서 밤새도록 신음을 하던 고흐를 당신은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비뚤배뚤하게 원색으로 불안하게 그려놓은 오베르 교회, 위대한 그 그림을 볼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천재에 의하여 불멸의 명화로 그려진 교회 건물을 당신은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시간의 마모는 직접 고흐의 집을 찾아나선 나그네의 발길에 쓸쓸한 회한 만을 선사하기 십상입니다만, 고독했던 천재의 숨결마저 어느 한 구석에서 발견하기 기대난망이겠지만 굳이 그 집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신의 외로운 영혼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작가 최내경은 고흐가 최후를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셋집을 비롯해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1막의 무대가 되는 퐁텐블로 숲 가의 밀레의 집과 아틀리에, 거장 다 빈치가 만년을 보낸 클로 뤼세, 프랑스 회화의 다른 큰 축을 이룬 남프랑스 지방, 그리고 파리를 대단원으로 해서 간결하게, 그렇습니다, 우리가 섣부른 기행문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허접한 감상을 첨가하지 않고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최내경의 글은 이렇듯 조금은 건조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까운 지면을 빌어 소개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백에 대한 매력이지요. 작가는 고흐의 집으로 가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어느어느 것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 다음의 지면은 당신의 순서입니다. 최내경의 책을 헌 베낭에 넣고 남프랑스에서 다시 파리로 향하는 밤 열차를 탄 당신은 열차 객실에서 이방의 문자로 인쇄된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를 꺼내 그 빈 여백에 당신의 감상을 적어놓을 수 있습니다. 최내경은 남부에까지 가서 왜 엑상 프로방스의 세잔의 집엔 들러보지 않았을까...를 빈 자리에 쓸 수도 있고, 끝없이 펼쳐지는 남 프랑스의 들녘을 밤기차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써놓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건 당신의 몫이니까요.
 당신 속의 외로운 영혼을 위하여, 어느날 문득 저질러질 일탈을 위하여 기쁘게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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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여행이 되다 : 작가가 내게 말을 걸 때 소설, 여행이 되다
이시목 외 9인 지음 / 글누림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몰랐는데, '글누림'이란 출판사, 좀 독특한 느낌. 특히 눈에 확 와닿던 시리즈가 '비서구문학전집' 한국의 번역문학이 거의 유럽의 것들로 채워진 것에 불만을 느낀 모양이다. 그래서 시리즈 1번이 베트남 작가들의 단편선. 야, 이거봐라. 대단한 기획일 걸! 깜짝 한 번 놀라고, 2번이 아랍 소설가들의 단편선, 3번이 아랍 여성들의 단편선. 와, 정말 죽여준다. 근데 4번이 중국. 흠. 중국문학은 더이상 변방이 아닌데. 5번이 멕시코. 멕시코 문학이면 크게 봐서 스페인어 권역의 문학. 이거 좀. 그럼 라틴 아메리카 문학도 이 시리즈에 다 포함시킬 건가? 하는 의문. 아니나달라 6,7,8,9번은 다 일본 문학. 에잇, 이거 뭐야. 잘 나가다가. 게다가 대학 출판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출판사가 정가의 10%를 할인해서 판매하는데 반해 이 사람들은 5%다. 좋다. 안 깍아줘도 볼 놈들은 다 본다. 놀라운 마케팅.

 거기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건, 다른 업체와 비교할 때 기행문이 눈에 많이 띈다는 거. 이 책도 10 명의 글 좀 쓴다는 사람이 모여 경향각지를 싸돌아다닌 이야기책. 그냥 길 떠난 이야기, 라고 하면 이젠 좀 심심한 시대가 되서 '문학' 중에서도 특히 '소설'을 주제로 책 두 권을 냈는데 첫번째 이야기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기행의 주제로 삼았다. 그리하여 먼저 소제목 '작가가 내게 말을 걸 때'를 앞에 놓고 큰 제목을 <소설, 여행이 되다>로 뒤에 배열했다. 글 쓴 이들이 조금 연배, 글쎄 아직 연배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하여간 나이가 좀 있는 모양이다. 이들이 고른 작가들을 가지고 궁리해보자면 많으면 50대 중반, 적어도 40세 이상인 거 같다. 뭐, 아니면 말고(윽! 아니란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내게 말을 건 작가들 거의 대부분과 나는 익숙했다.

 이 책을 기획할 당시로 뒤돌아가보자. 한두명도 아니고 작가가 무려 열명. 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제일 먼저, 당연히 제일 쉽게 떠올린 생각은? "XX 문학관" "XXX 생가(터)" "XXX 기념관"에 가보자. 하는 거. 나 같아도 그랬을 거 같으니까. 거기다가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한 거 같은데, 이 책에선 거명하지 않았으나 이문열 같은 이들이 경기도 이천에서 사숙을 열고 문학지망생들에게 공간을 제공해주고 소설쓰기에 힘을 쏟게 해주는 게 유행을 만들었는 바, 그런 장소도 셈에 꼽았을 거 같다. 책에 문순태의 사숙 비슷한 장소가 나오듯이.

 그리고, 열 명의 작가가 지금부터 해산! 이렇게 동시에 경향각지를 향해 고단한 발걸음을 한 것이 아니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몇 군데는 그랬다고 짐작하지만, 열 아홉 군데 전부를 열 명이서 두군데 씩 간 것이 아니고 때로는 둘이 혹은 셋이 손잡고 가서 한 명은 이런 시각으로 다른 이는 저런 앵글로 피사체에 관한 사색을 한 결과물을, 편집과정에서 합해놓은 것도 분명이 있다, 여럿 있다, 라는 데 만원 건다(아니란다. 만원 잃었다!). 문장과 문단은 작가들의 지문과 비슷한 법.

 하여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자식새끼들한텐 번듯한 스펙을 달게 해주기 위해 개풍에서 서울로 와 처음으로 엄마가 말뚝을 푹 박아버린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시작해 중산간 지역 주민들을 줄 좍 세워놓고 거의 2/3를 때죽음으로 몰아놓은 제주도 4.3 사건의 현장까지 열명의 작가들은 '쎄가 빠지게' 돌아다녔다. 카메라 한 대 어깨에 메고. 요새 카메라엔 필름을 넣지 않지만 그래도 무게가 여간 아니라 쎄가 빠지게 카메라 메고 다니느라 어깨도 빠져버렸을 거 같다. 여기저기 사진 박으면서 길 떠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서술, 이 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안 떠나거나 못 떠난 사람들이 마치 진짜 가서 보면 작가들이 써놓은 글 모양 가슴이 시리고 마음이 알싸한 쓸쓸한 회한 가득한 정경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상당한 부분, 성공했다.

 춘천을 예로 들어볼까? 춘천,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맞습니다. 김유정. 요샌 김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김유정 생가터가 있는 지역의 기차역 이름을 '김유정 역'이라 해놓고, 춘천 시내 곳곳의 이정표에 '김유정 생가' 방향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김유정은 현재 행정구역 상 춘천에 거주하면서 정말, 진짜 기가 막힌 토속적 향취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이의 고향이 춘천이라 춘천의 김유정 생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춘천을 무대로 소설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가 작품 속에 묘사한 춘천의 한 지역을 답사해 기행문을 썼다. 춘천이 고향인 사람이 한 둘인가. 이외수? 글쎄 난 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별개로 하고,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최수철. 그러나 최수철의 태가 묻힌 곳이 비록 춘천이 맞지만 그의 문학적 고향은 차라리 고래뱃속? 그리하여 작가가 말을 거는 장소로서 춘천에 최수철은 없다. 여담을 한 마디 하자면, 김유정, 최수철, 두 명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춘천 태생 작가를 한 명 아는데 요새 책을 낸 김희선. 왜냐고? 최수철이 등단시켰고(이런 단정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지만 하여간) 김유정을 만날 수만 있으면 그이가 걸렸던 병에 잘 듣는 약을 주고 싶어하는 작가니까. 근데 김희선도 태생이 춘천이지 문학적 고향은 춘천에서 구도로로 가면 한 시간 반, 고속도로로 가면 한 시간 쯤 걸리는 W시다.

 그외 지금 퍼뜩 생각나는 곳이 청송, 대구(사실 진영에 갔더라도 좋았을 뻔했다), 을숙도, 남원, 담양 그리고 특히 장흥. 장흥 기행은 무려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한승원과 이청준이 말을 걸어서. 장흥으로 향한 두 번의 발걸음에 동의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작가들이고 장소라서.

 책을 큰 아이에게 선물하려 한다. 그 아이가 딱 좋아할 스타일의 책이다. 걘 서울에서 병역을 할 때에도 서울지역에 관한 테마 여행기를 한 권 사서 꼼꼼하게 뒤지고 다녔던 적이 있다. 이젠 서울에서 벗어나 전국으로 확대할 시점이니 그러기 위해선 이 책이 더없이 훌륭한 반려가 될 것이다.


 * 불만 하나 얘기하자면, 문장과 문단으로 보건데 정말 열 명의 작가가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상 별 차이가 없다. 편집자나 기획자가 한 방향으로만 주문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좀 더 다양한 감상이 아쉽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읽으며 늦가을 같은 심상만 자아낼 뿐 한 번도 웃게 만들지 못한다. 심지어 <봄봄>, <동백꽃>의 무대에 가서도 여전히 폐결핵과 결핵성 치루로 한참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얘기만 줄창 나온다.  점순이 키 커가는 거, 내가 장인짜리 불알 잡고 늘어지는 거하고 폐결핵, 그리고 결핵성 치루가 뭔 관계가 있다고, 참나. 웃고 살아도 괜찮은 세월이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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