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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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소설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서 스웨덴 말 “Flickan som lekte med elden”을 구글 번역기에 돌려봤더니 “화재로 놀고 있던 소녀”란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어 다시 스웨덴어→영어로 해보니까 “The girl who was playing with the fire". 뭐 하여간 그렇다는 말이다.
 라르손 본인이 기자 출신의 작가라, 이 책, 밀레니엄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는 ‘밀레니엄’이란 월간지의 선하고 독한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겪는 스릴러 범죄에 대한 소설인데, 재미난 것이, 이 작자가 세계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야하는 스웨덴에서 열라 기자생활을 해도 별 볼일이 없을 거 같으니, 나중에 늙어서 좀 여유롭게 살아볼까 싶어 40대 후반 들어 이 범죄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한 가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거 있나? 모두 열편의 시리즈를 구상하고 열라 써나가고 있던 도중, 나이 50에 이르러, 세 편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채, 정작 책이 나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등극해 자신의 통장에 숨 막힐 듯한 현금이 쌓이는 건 구경도 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 하직하고 만다. 노후 대비하려다 아주 일찍 세상 떴다. 그게 인생이다.
 하여간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읽어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잘 쓴 대중소설’이라 시리즈를 몽땅 독파하리라 마음먹어 읽어보게 됐다.
 전작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고생을 죽도록 했던 150센티미터, 가냘픈 체격의 아가씨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고생 끝에 잭팟 또는 로또가 터져 죽어 호적이 없어진 악인의 돈 30억 크로나, 우리나라 돈으로 4,200 억 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삥칠(삥치다: 은어, 속어. 나쁜 꾀로 금품을 얻거나 만만한 인간을 협박해 금품을 빼앗다) 수 있어서 졸지에 백만장자로 등극한 다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돈 많으니 행복하겠다, 싶지? 천만의 말씀. 여태까지 내내 거렁뱅이로 살아와 정작 돈이 넘치게 많아도 폼 나게 쓸 줄을 모른다. 부유하고 가방끈 긴 인간들과 어울리는 대화도 할 줄 모르고, 마음에 드는 펜타하우스 한 채 사려고 해도 복덕방 늙은이는 쳐다보지도 않아 결국 해외 대리인을 통할 수밖에 없는걸. 근데 이런 거 가지고는 소설을 쓸 수 없다. 더구나 완벽한 대중소설임에야. 그리하여 작가 라르손이 머리를 짜내 이 가냘픈 아가씨를 둘러싼 범국가적 범죄행위를 하나 장만하니, 살란데르 아가씨의 지문이 묻은 권총으로 세 명의 대갈통이 박살나버리고 만다. 어릴 적부터 문제아의 최상급으로 등록되어 있던 아가씨의 지문은 당연히 정부당국에 의해 보관되어 있었고, 화려한 전력이 뒷받침되어 살란데르는 단박에 제 1의 용의자로 등극하고 만다. 그.러.나. 살란데르 아가씨는 엄마하고 살던 자신의 아파트는 친구한테 줘버리고 가명으로 위에서 말한 200평짜리 펜타하우스에 입주해 살고 있으니 그걸 어떻게 찾아.
 여기까지 스토리는 책 소개에 다 나온다.
 이런 소개는 정말 밉상. 특히 범죄소설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내용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는 건 진짜 바람직하지 않다.
 전작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자주 보였던 엽기 변태와 학대 및 고문 같은 씬은 이 책에선 나오지 않고, 조금 순화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매그넘 총을 인간의 대가리를 향해 쏘고, 총알을 맞은 인간 대가리의 모습을 묘사가 등장하는 정도. 전기톱을 이용해 사체를 분리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 같은 것이 제일 지독한 묘사인데, 전작하고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이 시리즈의 책을 읽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바르가스 요사는 “난 일말의 부끄럼 없이 말한다. 환상적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되게 웃기다. 부끄럼 없이 말하다니. 그냥 환상적이라고 하면 어디 덧나? 이게 뭔 말씀이냐 하면, 노벨상 수상자가 대중 소설을 읽고 환상적이란 소감을 달면 그게, 기본적으로는, 부끄러운 행위라는 거다. 대중 소설을 읽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는데, 제발 하나만 부탁하자. 웃긴 얘기는 가려서 하라고.
 백문이 불여일견. 무척 재밌는 책. 시간 죽이기 위한 최고, 최선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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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사서 읽으셨군요.
이 시리즈 2쇄부터는 반양장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때를 노려보는 중입니다.
인테넷으로 사도 만 7천원이라 좀 비싸더군요.
하긴 반양장이라고 해도 가격 차이 별로 안 나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중고샵 판매 때까지 기다려 보든가.ㅋ

Falstaff 2017-09-12 14:57   좋아요 0 | URL
반양장이라도 얘기하신대로 그리 차이나지 않을 겁니다. 한 만5천원 하겠군요.
하여간 그노무 우라질 도서정가제 때문에 여러가지로 코피나는 21세깁니다. ㅠㅠ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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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작가이긴 하지만 오히려 바로 유명세 때문에 정작 읽어보기를 차일피일하게 된 소설가. 이런 기분 아시지? 3년 전에 <장미의 이름>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차일피일은 괜히 했네. 얼른 읽어볼 것을. 그러면서 한 구석으론, 책을 번역한 이윤기 선생이, ①내가 알기론 이태리 말을 한국말로 옮겨 책을 낼 만큼의 이태리어 실력을 갖고 있지 않은데다가, ②번역하는 분이 한국말로 글을 과하게 잘 쓰는 사람일 경우 오히려 원본을 손상시키는 위험을 잘 알고 있어서 이윤기 번역서를 피하다보니 두 번째로 읽은 책이 <푸코의 진자>가 아닌 이태리어→한국어, 즉 직역과 동시에 적어도 진지한 번역인 것처럼 읽힌 <바우돌리노>가 됐으며, 세 번째 역시 직역(인줄 알았는데 암만해도 아닌 것 같음), 그리고 (다 읽고 조심스레 결론을 내려보니)공을 많이 들여 번역작업에 임한 것이 틀림없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이 됐다. <푸코의 진자>를 다음에 읽으려고 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로아나....>의 주석에 <푸코의 진자>와 겹치는 부분을 상세하게 콕 집어놔서 혹시 두 작품 사이에 뭔 관계가 있나 싶어서이지만, 솔직히 이윤기 번역이란 게 좀 맘에 걸린다. 아울러 그동안 외국 시의 번역은 반역이란 투철한 인식 아래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외국 번역시집 한 권은 꼭 읽어보려 한다. 누구냐 하면, 랭보. 에코가 진짜 시인이라고 은근히 강조했기 때문에. 아시다시피 난 책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책에 관심이 무지 많아서. 또 있다. 에드몽 로스탕이 쓴 <시라노>. 동명의 오페라가 원작의 거의 모든 걸 다 포함하고 있어서 마치 읽어본 듯한데 <로아나....>의 뒷부분이 온통 시라노와 로잔느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깔려 있어 마음 고쳐먹고 한 번 읽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에밀리오 살가리가 쓴 <산도칸-몸프라쳄의 호랑이들>도. 이건 화자 ‘나’ 잠바티스타 보도니, 애칭으로 얌보의 유년시절에 감동을 받아 평생에 걸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소개한다. 위스망스의 소설 하나가 더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절판이다.
 문제는 돈 많은 고서적상 얌보가 술, 담배, 여자, 과다한 독서에 따른 운동부족(누구 하나를 콕, 집어서 얘기하는 거 같다)에 따른 고혈압으로 하루 날을 잡아 까무러친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물론 뒷목 부여잡고 어어… 하면서 자빠지는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이미 까무러쳤는데 병원에서 서서히 회복하는 광경, 완전한 오리무중에 빠져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상태와 매우 비슷한 환경. 저 멀리서 어딘가,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얘기를 하고 난 대답을 하고,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단이 골을 넣은 프랑스가 브라질에 3대 0으로 이겨 우승했다는 건 알고 있으나, 자신이 낼 모래 환갑인 노년의 남자고, 동갑내기 심리학자 마누라 파올라와의 사이에 결혼한 두 딸, 세 손자들이 있다는 기억은 완벽하게 소거된 상태로 깨어난다.
 거 재밌겠다. 눈 떠보니 처음 보는 여자가 내 아내라고 주장하면서 내 몸의 여기저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물럭거린단 말이지. 진짜 내 눈 앞의 다 늙어버린 여자가 30년 넘게 같이 산 아내란 말인가? 그렇기는커녕 난 결혼 생활이란 것이, 여자하고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무슨 기분인지도 전혀 모르는데? 안 물어볼 수가 없었겠지. “난 괜찮은 사람이었소?” 여자는 싱긋 웃고 말한다. “대체적으로 괜찮았어요. 유혹에 약한 걸 빼면.”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 뒤로는 젊은 주부 두 명이 세 아이를 데리고 서 있다. 자식과 손자들이라는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식이라면 자라면서 속도 썩히고 그랬을 테니까 기억하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설마 손자 손녀들을 내가 알아보지 못할까. 근데 기억나지 않는다. 퇴원 후 집에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가장 친한, 친하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왔는데도 전혀 누군지 모르겠다. 그가 눈을 찡긋하며 짓궂은 농담을 해도. “어여쁜 시빌라한테 전화해봤어?” 뭐라고? 시빌라? 그게 누구?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데 이 경우엔 심각하다. 여자 이름이라서. 아내가 말했었다. 유혹에는 약했다고.
 “아, 미안, 미안. 자네 고서적상점 아가씨야. 정말로 아름다운 아가씨라서 남자라면 누구라도 다 한 번 쯤 마음속에서 간음하게 만들 정도지. 흔히 자네한테 지금처럼 놀리고 그랬네.”
 아, 미치겠다. 그걸 어떻게 믿어. 가게에서 하루 종일 둘이 같이 있었다면, 거기다가 내가 천성적으로 유혹에 약했다면 과연 그리 어여쁜 아가씨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었을 수 있었을까? 게다가 몸이 조금 좋아진 거 같아 광장 한 바퀴 산책을 하는데 약간 나이든 티가 나는 젊은 여인 반나가 와서 얌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얌보, 얌보.”하면서 “나는 너에게 두고두고 아주 멋진 추억으로 남을 거야” 하는걸 보면 분명 이건 보통 사이가 아닌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거다.
 사태가 심각함을 제대로 알아챈 심리학자이자 현명한 아내. 원래부터 얌보는 대학진학 이전까지 그가 주로 살던 솔라라(지역이자 저택을 지칭하는 고유명사) 시절의 기억을 싹 지우고 살던 터. 비록 아주 촌이지만 공기도 좋고 얌보의 기억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곳에서 몇 달을 보내라고 거의 강권을 하다시피 한다.
 나, 지금 독후감 쓰면서 굉장히 중요한 얘기한 거다. 주인공이 원래부터 청소년 시절까지의 기억을 지우고 살았다는 거. 그럼 혈압이 터져 자빠진 다음에 후유증으로 모든 기억을 소거하기 전에도 생애 일부분에 관해선 회로가 망가져 있었다는 중요한 설정.
 하여간 솔라라로 주거를 옮긴 얌보. 그는 그곳에서 열 살 가량 위인 청지기의 딸 아말리아의 보살핌을 받으며 몇 달을 지내면서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 그의 유년기와 소년기 시절, 또한 이탈리아 현대사의 질곡기桎梏期 한 가운데를 관통하던 시기에 있던 일을, 그의 할아버지가 수집해놓은 온갖 책, 잡지, 신문, 우표, 과자 깡통 등을 통해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로아나 여왕의 놀라운 불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뭐냐, 하면…… 이 대목에서 “안 알려줌!”이 나와야 하지만 오늘은 예외적으로 알려드리겠다. 만화책 제목.
 당연히 이렇게 쉽게 알려드리는 이유는, 그래봤자 <로아나....>가 만화책 제목이라는 걸 백번 얘기해도 절대 이 책의 프레임 비슷한 건 생각도 못할 것이기 때문. 소설의 절반 이상은 얌보 또는 에코의 소년시대에 읽은 책과 잡지, 만화책 같은 것들에 할애하고 있다. 근데 그걸 글쎄, 거의 다 사진을 찍어 삽화 비슷하게 보여준다는 말씀. 하여간 별의 별 것이 다 있다. 파시스트, 물론 ‘두체’라고 칭했던 무솔리니와 그 일당들을 찬양하는 노래 가사까지 다 나오니까 할 말 없다. 이미 노년에 접어든 작가가(이 소설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 한다) 자신의 유소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쓴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고, 다 늙어 죽음의 침상에 누워 그땐 그랬고, 그때는 또 그랬지, 순간순간을 짚어가는 삽화소설일 수도 있고(삽화소설이라고 하는 게 더 비슷하겠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순간, 우연히 조국의 불행한 현대사와 맞부딪힌 시절에 겪을 수밖에 없던 허구의 개인사를 보태 소설로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해드릴까? 글쎄.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중에서도 천수를 다 하고 돌아간 작가들의 경우에, 참 아쉽게도 마지막 작품은 전작들과 굳이 비교하면 눈썹을 휘날리는 경우가 그리 없기 때문에, 내가 읽기엔 참 좋았으나, 하여간 신중을 기해 선택하시란 사족을 달아야 나중에 핀잔을 덜 먹겠다 싶어서 말씀이야.

 읽으면서 제일 골 때리는 장면이,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하고 같이 자야하는 첫날 밤 침상 위에서 슬쩍 손을 대니까, 아내가 하시는 말씀이, “처음 날 알기 시작한 남자하고는 그걸 할 수 없어요.”라는 취지로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아니라, 며칠 후 드디어 사랑의 행위를 마친 다음에 역시 아내가 하시는 말씀. “원 세상에,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네. 예순 살 먹은 남편의 동정을 빼앗다니.” 아,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이게 진짜 유머 아냐? 여기에 남편께서 아내에게 화답하시는 말씀. “아예 안 하느니 늦게라도 하는 게 나은 법이죠.” 같은 장면에서 더 재미난 건, 일을 다 마친 후에 얌보 선생께서 하시는 말씀. “이제 사람들이 왜 그걸 밝히는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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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9-1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세욱 님, 번역이 정확한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번역에 공들인 것은 알 수 있죠.
이 ‘로아나‘의 경우, 역주에 영문판이랑, 어디 다른 걸 참고했다고 자잘하게 나오더라구요.
그 수고를 알게 되니, 괜히 트집잡고 싶었던 마음이 ‘완전 무장 해제‘ 됐었습니다.

님의 리뷰로 다시 보게 되니, 완전 반가운 마음에~^^

Falstaff 2017-09-11 13:24   좋아요 0 | URL
예. 하여간 꼼꼼하게 시간 무척 많이 들여 공들여서 번역한 티가 나더라고요.
저도 정확한 번역 여부에 관해서는 깡통입니다만 ^^;

잠자냥 2017-09-1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위스망스의 소설은 <거꾸로> 인가요? 전 미셸 우엘벡 <복종> 읽다가 위스망스 <거꾸로> 읽어봐야 겠구나 하고 검색해봤더니 절판이더라고요. 다행히 알라딘 중고에서 싼 가격에 거의 새 책을 구했습니다!

Falstaff 2017-09-11 13:25   좋아요 0 | URL
지금은 중고책도 별로 없더라고요. 다시 한 번 뒤져봐야겠습니다. ㅠㅠ
 
랩소디 인 베를린
구효서 지음 / 뿔(웅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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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문학웹진 뿔》에 연재했던 걸 다시 검토, 수정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책의 뒷날개에 작가가 쓴 ‘연재를 종료하며’란 짧은 글을 소개한다. 작가 소감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써있다.
 “피부로 느꼈던 물리적 장벽은 없어졌습니다만, 우리를 더 크게 가두려는 전지구적 화폐의 움직임은 마침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미래의 불행한 디아스포라로 불러 올지도 모릅니다.”
 이 문장에서 몇 개만 추려보자.
 1) 물리적 장벽은 없어졌다 : 20세기의 대부분을 지역적으로 가로막았던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말하는 거 아닐까. 이제 그것이 없어져 대한민국 국민이 합법적으로 갈 수 없는 곳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말고는 (거의) 없다.
 2) 우리를 더 크게 가두려는 전지구적 화폐 : 이미 상당한 힘으로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해버린 신자유주의 또는 신자본주의를 말함.
 3) 미래의 디아스포라로 불러 올지도 모른다 : 전지구적 화폐, 즉 신자본주의는 앞으로 많은 지구인들을 자신의 고향 또는 조국의 품을 떠나 세계로 방랑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읽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할 거 같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나온다. 디아스포라.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대가로 집과 고향과 조국을 잃고 2천여 년 간 세계를 방랑하며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유지해온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일컫는데, 작가, 그것도 이미 문단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확보한 중견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디아스포라 운운해버려 평론가들 역시 그것에 초점을 과하게 맞추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근데, 정말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있다면 (죽지 않으면 인간의 죄를 대신하지 못할 운명이었던)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원인을 제공한 유대인을 정말 미워해서 누천년 동안 세상을 헤매게 만들었을까? 일단 이 논의는 여기까지. 종교 얘기는 술맛 안 나게 하고, 오늘 난 넙치회에 소주를 마실 예정이니까.

 구효서는 나도 매우 독특한 작가,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소설가로 분류해놓았다. 유명작가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무도하다고? 천만에. 아무리 훌륭한 작가도 결국 나 하나를 위해 평생 소설을 쓰다가 죽는 숙명을 띠고 사는 인간이니 이렇게 얘기해도 별 무리는 없을 거 같다. 그의 책을 참 오랜만에 읽었다. 역시 구효서.
 기본적으로 이 <랩소디 인 베를린>은 재일 한국인(또는 조선인) 3세이자 세계적 작곡가, 그리고 윤이상 선생에게 누가 될까봐 매우 조심해 글을 썼다고 고백한 한국 이름 김상호, 일본 이름 야마가와 겐타로, 독일 이름 토마스 김이 독일에서 자살을 하면서,
 “아, 이것은 모질지 못한 짓일까 모진 짓일까. 내가 늘 찾던, 내가 평생 가닿고자 했던 곳이 하나코였다는 사실을 못내 고백하는 것.”
 이란 짧은 유서를 전해 받은, 일본의 부락민이며 축(畜: 도축업) 가문 출신의 하나코란 67세의 작은 몸피의 약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노인이 마지막으로 만나고 40년이 지난 다음 겐타로의 자살의 동기를 밝히기 위해 독일에 도착해서 궁금증을 해결하고 떠나는 것까지를 그리고 있다.
 겐타로 또는 김상호라는 인물은, 일본 태생으로 한국어(또는 조선어)를 거의 알지도 못하지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차별을 받으며 살았고, 독일 유학중에, 임진왜란(1592~1598년)의 와중에 왜군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 어찌어찌 독일로 흘러든 조선인의 후예 가운데 하나, 요한 힌터마이어가 18세기 중엽, 독일의 이름난 (아니면 매우 유능하지만 저평가된) 작곡가가 됐다가 교회법재판의 와중에 독일을 떠나 다시 조선으로 돌아간 사건에 대단한 흥미를 느껴 자료를 수집하던 중, 그에 관한 필사본이 있는 평양에 방문해 <토카타와 푸가 Toccata und Fuge : 책에선 이후 “TNF”로 요약>을 베껴오고 이후 자신의 작품 연주회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모진 고문 끝에 간첩혐의를 뒤집어 써 17년간 옥살이를 한 다음에 다시 독일로 돌아가 20년을 더 살다가 결국 자살 한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니 <TNF>의 주인공 힌터마이어나 겐타로나 자신이 주인이 아닌 객지에서 삶을 이어간 인물들이니 그냥 이방인들이라고 칭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근데 굳이 작가나 평론가들이 이들을 코리안 디아스포라, 라고 선언하는 건, 여기에 20세기 중반, 전체주의에 의하여 저질러진 유대인 학살에 관한 이야기 또는 잡지 기사가 중요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1944년 5월부터 9월까지 작센하우젠에 수용되었던 유대인 가족의 진술에 의하면, 진술인의 아버지이자 트럼펫 주자였던 ‘그’는 ‘뱀’이란 별호로 불렸던 수용소악대 악대장으로부터 예비대원으로 오디션을 받던 중 텔레만의 D장조 협주곡을 좋아해 즐겨 연주한다는 이유로, 더러운 유대인이 정통 독일 혈통의 대 음악가를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오디션 중에 (인격적, 육체적으로)잔인하고 비참한 고문을 당했으며, 수용소악대 전 대원들 역시 수시로 습관적이고 악랄한 모멸과 학대를 당하다가, 어느 날 ‘선발’되어 학살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때 진술인의 나이가 10살 이었단다. 세월이 흘러 책에선 진술인(피학살자 '그'의 아들)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인물과, ‘뱀’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인물까지 등장하여, 겐타로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도움도 되고 괜히 돌아갈 길이 되기도 해서, 나치, 즉 ①전체주의 혹은 지독한 독재에 의하여 학살을 당한 유대인과, ②일본 내에서 외국인, 특히 조선인이란 것 때문에, 더러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서 대지진이 발생해 많은 일본인이 죽었으니 학살당해 마땅한 민족으로의 조선인, ③전체주의 혹은 독재 정권의 유지를 위해 조국에 의하여 죄없이 고문을 당하고 17년간 옥살이까지 해야 했던 겐타로의 공통점을 독자로 하여금 떠올리게 한다. 그리하여 구효서 본인과 평론가들, 서평을 쓰는 독자들까지 디아스포라, 코리안 디아스포라, 라고 일컬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누천년을 이방의 땅에서 헤매고 다닌 유대인과 같은 단어를 쓰기엔, 조금, 아주 조금, 주인공이 일본 여성이니 그녀를 위해 일본말로 하면, ‘조또’ 무리다.
 오늘 특별히 책의 내용을 막 쏟아내고 있다. 그건 첫째가 오늘 일이 빨리 끝나서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다가, 두 번째론, 이게 중요한 건데, 이런 얘기 숱하게 해봤자, 정말 중요하고 재미난 건, 위의 세 가지 사건 또는 기록과 잡지기사가 어떻게 서로 유기적으로 짜여 있는가 하는 것이고,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엮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성격과 말씨와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이건 하나도 얘기하지 않았다는 거.

 굳이 사족을 달자면, 구효서가 음악에 이리 조예가 깊은 줄 몰랐다. 전문적으로 음악에 관한 담론은 등장하지 않지만, 생각과 달리 이 책 정도의 묘사도 대단한 애호가 아니면 묘사하기 정말 힘들겠다고 내내 중얼거리곤 했는데, 역시 작가후기에 직접 포지티브 오르간에 바람을 넣어본 것이 책을 쓰는데 도움이 됐다고 얘기한다. 근데 옥의티를 바늘 끝으로 콕 집자면, 18세기 중반의 연주 장면이 적어도 19세기 후반과 흡사하다는데 있다. 모차르트 이전 시대에 청중이 정말로 연주에 열광했을까? 낭만주의 대작 교향곡을 연주할 때의 흥분과 감동 같은 묘사는 조금 그랬는데, 백미는 다음 구절.
 “대미의 감격이 그에게서 잠깐 현실감을 앗아간 듯했다. 수석 주자에 대한 소개와 격려도 잊은 채, 그는 청중을 향해…… ” (450쪽)
 연주를 마치고 청중이 미친 듯이 갈채를 하고 휘파람을 불고, 발을 구르면, 느지막이 지휘자가 뒤로 돌아 청중에게 인사한 다음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악장에게 손짓해 노고가 많았음을 위로 또는 칭찬하고, 그래도 갈채가 쏟아지면 차례로 다른 수석들을 지목해서 박수를 받게 하는 걸 얘기하는데, 그게 18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었을까? 모차르트가 세상에 막 나왔을 땐데.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듯 이런 티는 책 전체에 비해 너무 작아서 바늘 끝이 아니라면 집어낼 수도 없다. 재미있는 책. 구효서는 믿어도 된다는 것이 내 평소 생각이었고 이번에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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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민음사 모던 클래식 30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샀을 때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절판이다. 이럴 때 은근히 기분 좋다. 예상한 수준 이상으로 책이 재미있을 경우엔 더 그렇다. 이게 민음사에서 내놓았던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의 한 편. 눈치를 보아하니 민음사는 더 이상 이 시리즈를 내지 않을 거 같다. 판형 바꿔 세계문학전집으로 내는 거 아냐?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이런 수준의 책을 절판 상태로 내비두긴 너무 아깝다.

 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썼다.

 북 잉글랜드의 평화스럽고 지극히 일상적인 소도시에서 한 점잖은 중늙은이가 크레인 위, 저 까마득한 꼭대기 위에서 뭄에 줄을 묶은 상태로 자유낙하를 시도했다. 멀리서 보면 몸에 묶은 줄이 보이지 않아 마치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 몸이 개구리처럼 터져버릴 거 같다는 경악. 사람들은 우연히 이 장면을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전혀 보지 못한 상태로 일상의 일을 하고 있다. 한 트럭 운전수 역시 지극히 일상적인 운행을, 그리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차를 몰고 있었고, 우연히 눈에 까마득한 하늘 꼭대기에서 한 남자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해 깜짝 놀랐다가, 로프의 이완과 수축 현상으로 다시 위로 솟구치는 걸, 여전히 악셀레이터를 밟은 상태에서 보고 있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이물체, 그게 무엇인지, 사람인지 개새낀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인지, 세발 자전거를 탄 어린 아이인지도 모르는 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브레이크 관을 따라 브레이크 오일이 압력을 가해 브레이크 디스크를 순간적으로 꽉 다물어 바퀴가 순식간에 정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는 비극적인 비명을 지르며 바퀴와 동시에 멈추지 못한 채 아스팔트에 앞으로 몇 달간 여간해 지워지지 않을 검은색 띠의 흔적을 남긴 채 찌지이이이익 끌려갔고, 조용한 동네를 한 순간에 울리게 만든 기분나쁜 소음을 들은 주택가 19번지 할머니는 문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졸며 깨며 해바라기를 하다가 고개를 번쩍 들고 얼른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눈을 돌렸고, 21번지 나이 든 부부는 훤한 대낮에 오랜만에 한 번 하고 둘 다 벌거벗은 채 나른하게 누워 있다가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린가 깜짝 놀라 벗은 몸을 가리지도 않고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봤으며, 이때 20호에 사는 청년은 내일 집을 옮기기 위해 짐을 싸다 번쩍 일어났는데 눈 앞에 먼저 보이는 게 앞집 이층 침대 위와 창가의 벗은 몸(들)이었고, 기타등등, 그 동네 주민들의 일상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거, 요약해놓은 거다. 그 날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을 나열하자면 이런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이걸 이해하기 위해선 끝까지 다 읽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한다. 근데 오늘 왜? 아, 이거 지금 품절이니까 여러분들 읽기에 좀 쉽지 않을 거 같아서. 혹은 이 책을 골라 읽을 때 쯤엔 내가 여태 써놓은 거 기억할 사람 하나도 없을 것이란 계산이 나와서 오랜만에, 스토리 쫙 써놨다.

 근데 이걸로 끝? 천만에. 위헤서 두 가지 방식으로 썼다고 했으니 하나가 더 남았다.

 그때 그 순간 동네에 있었던 한 여자애가 점점 자라 이제 성인이 됐고, 평생, 지금까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신한테, 친딸한테 그리도 냉정하고 예의바르고, 자주 너무 예의바른 건 냉정하다는 말하고 같을 때가 있는데, 바로 이 경우가 그런데, 차가운 배려를 아까지 않아 외갓집이 있는 스코틀랜드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아서 전혀 몰랐던 외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런던 역 3/4 승강장에서 기차를 타고 근 열 시간을 달린 끝에 스코틀랜드에 도착, 장례식에 참석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 장례식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말고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전부 친척임에 틀림없는 보통의 스코틀랜드 장례식. 이들이 모두 체크 무늬 치마를 입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잠깐 의아했던 여자('나') 앞에 한 젊은 청년이 나타나 나는 아무 생각없이 한 번 했고, 씨를 내려 받아 임신을 했다. 아이는 배 속에서 점점 자라고 나한테 씨를 준 스코틀랜드 바텐더에겐 연락하기 싫은데, 난 임신과 출산과 수유와 육아에 관해선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어 절망스러운 상태, 딱 그때 내 눈 앞에 나타나는 선량한 젊은 남자.

 이 두 사건의 동시상영. 어떻게 연결이 되고 그래서 도대체 뭘 말하는지, 내 그건 얘기하지 않겠다.

 나중에 다시 책 팔면 읽어보고 직접 알아내시라고. 으때, 나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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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모던 클래식 52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00년 작품. 바르베리가 우리 나이로 서른둘일 때 이 책을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서른두 살의 청년이 겪으면 얼마나 겪었고, 음식을 먹어봤으면 얼마나 먹어봤으며, 맛의 종류를 안다해도 과연 얼마나 알겠는가. 근데, 억!
 한때 잠깐 몰두했던 음식관련 방송을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림은 봐야 멋이고, 음식은 먹어야 맛인데 TV에 나오는 음식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 하는 시청자에게 별 오두방정을 떠는 표정에다가 하나같이 하는 말이, 식감이 죽여줘요. 운운. 식감? 그게 무슨 감각이야? 씹는 맛? 그따위로 얘기할 거면 내가 나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맛 프로그램 패널들이 도무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얘기. 그이들이 얘기하는 식감이란 음식을 입에 넣고 식도를 통과해 위장에 닿을 때까지의 모든 감각을 일컬어야 한다. 이와 잇몸, 그리고 구강엔 인체 내 어느 부위보다 촘촘하게 신경세포가 깔려있어 ‘식감’이란 씹는 맛을 포함하여 혀와 구강, 그리고 해당 부위를 적시고 있는 침의 기능이 더해져 음식물에 대한 촉감과 맛의 결정에 대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후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서로 충돌, 보완해 독특한 감각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식감’이 아니라 식감을 포함한 ‘맛’이다. 내말 틀려? 근데 그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라서 음식물이 입안에 들어갔을 때의 촉감만 예로 들더라도 그게 혀와 구강, 침을 포함한 점막 특유의 감각에서 느껴지는 촉감이라 액체일 수도 있고, 고체일 수도 있고, 고체와 액체 사이의 아름답게 애매모호한 감각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닐 수 있는 것에다가, 고체라도 딱딱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데 딱딱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아 말랑말랑하다 할 수 있지만 또 말랑말랑하다고 표현하기엔 정확하지 않는 저작詛嚼 감각을 띠었을 경우, 하여간 무지하게 많은 맛의 세계. 그런 것들을 서른두 살의 여인네 뮈리엘 바르베리가 절묘한 문장으로 써 놨다. 일단 TV에 나와서 만날 “맛이 상당하죠.” “전 이런 맛이 더 좋아하는데요.” “입 안에서 톡 터지는 식감이란” “구수하게 입 안 가득 향이 퍼지면서” “어, 이거봐라, 재밌네.” 이런 얘기만 끊임없이 늘어놓는 황X익, 홍X애, 백X원 같은 이들은 스스로의 함양 발전을 위하여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고(요새 사이버 모독죄로 고소한다고 항의를 받아 간이 콩알만 해졌다. 실명 올릴 배짱이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어떤 이들을 얘기하는지 다 아시지?),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에 입각한 맛을 향한 미학이 궁금하신 분도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명작이나 걸작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도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개인, 그게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고, 오늘 출근길에 내 옆에 앉았던 참 못난 사람일 수도 있는 그 개인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급한 쾌락으로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아름다운 문장의 극점을 감상하기 위해서라면 꼭 이 책을 읽어봐야 안다.
 다만 하나. 작가가 모로코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살며 불어로 글을 쓰기 때문에 이이의 책 속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일본의 생선회와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맛, 둘 말고는 힘들었다. 좀 길더라도 인용을 해보자.


 “현기증 나는 경탄이었다. 내 치아의 방벽을 넘어 들어온 것은 고체도 아니고 물도 아닌, 단지 그 둘 사이의 매개적인 물질로서 고체의 편에서는 무(無)에 저항하는 견고성을 간직하고 물의 편에서는 기적 같은 유동성과 부드러움을 빌려 온 물질이었다. 진짜 회는 씹히지 않지만 혀 위에서 녹지도 않는다. 진짜 회는 느리고 유연히 씹어야만 한다. 음식의 성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공기처럼 가벼운 말랑함을 맛보기 위해. 그렇다. 폭신함도 물컹함도 아닌 말랑함. 회, 마치 비단 같은 우단 먼지. 회는 두 가지를 조금씩 가지고 있으며 수증기로 된 본성의 희한한 연금술 속에서 구름이 갖지 못한 우유의 밀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흥분을 내 안에 불러일으킨 첫 분홍색 한 입은 연어였다. 그러나 나는 또한 광어, 대합 관자, 문어와 만나야 했다. 연어는 본성적으로 담백하지만 기름지고 달았고 문어는 엄하고 혹독했으며 이에 오래 저항한 끝에야 찢어지는 비밀스러운 조직이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나는 분홍과 엷은 보라로 무늬지고 돌출물 끄트머리가 톱니 모양으로 거무스름한 그 이상하고 깔쭉깔쭉한 조각을 와락 입에 넣기에 앞서 관찰했고 겨우 익숙해진 젓가락으로 서투르게 집어서 엄청난 밀도에 사로잡힌 혀로 그것을 맞아들였고 쾌감으로 몸을 떨었다. 그 둘 사이, 연어와 문어 사이에는 언제나 그 밀도 높은 유동성과 함께 입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색조의 감각이 있었다. (중략) 대합 관자는 그것대로 너무나 가볍고 덧없어서 입에 넣자마자 사라져 버렸지만 그 후에도 오랫동안 볼은 그 깊이 있는 스침을 기억했다. 마지막으로 실제와 다르게 가장 투박해보이는 광어에는 섬세한 레몬 맛이 돌았고 그 특별한 살은 이 아래에서 놀라운 풍만함으로 도드라졌다.”  (60~61쪽)


 “미지의 냄새가 벌써 모든 가능한 것들의 너머에서 나를 동요시켰다. 이 얼마나 멋진 습격인가. 이 얼마나 정력적이고 거칠고 건조하면서도 향긋한 폭발인가. 마치 평소에 만족스럽게 머물렀던 세포 조직을 떠나 감각의 절벽에서 기체로 응축되어 코의 표면에까지 증발하는 아드레날린의 배출처럼……. 깜짝 놀라며 나는 이 신랄한 발효의 악취가 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알았다.
 공기 같은, 거드름 떠는 부인. 나는 조심스레 이 이탄질의 용암에 입술을 담갔다. 아, 그 폭력적인 효과! 그것은 불시에 입속에서 터지는, 고추와 다른 사나운 재료들로 만든 발화물이다. 기관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입천장도 양 볼도 점막도 없다. 대지적인 전투가 우리 속에서 진행되는 듯한 파괴적인 감각뿐. 나는 황홀해져서 첫 한 모금을 혀 위에 한순간 지체하게 놓아두었고 동심원을 그리는 파동은 오랫동안 혀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것이 위스키를 마시는 첫 번째 방식이다. 떫고 결정적인 맛을 만끽할 수 있도록 가혹하게 마시는 방식. 반대로 두 번째 한 모금은 서두름 속에서 왔다. 즉시 삼켜진 다음 그것은 한참 뒤에야 내 태양신경총을 데웠다. 하지만 그 뜨거움이란! 강한 화주를 마시는, 판에 박힌 동작, 즉 갈망의 대상을 단숨에 마시고 잠시 기다린 다음 타격으로 눈을 감고 편안함과 충격이 혼합된 숨을 내쉬는 것. 이것이 위스키를 마시는 두 번째 방식이다. 알코올이 목구멍을 면세 통과함으로써 미각 유두는 거의 마비되고 신경총은 완전히 민감해져서 에틸기의 프리스마 폭탄이 침입한 듯 갑자기 열기에 휩쓸린다. 그것은 데우고 다시 데우고 풀어 주고 깨우고 기분 좋게 한다. 그것은 지극히 행복한 열을 복사함으로써 육체로 하여금 자신의 빛나는 존재를 믿게 하는 태양이다.“  (114~115쪽)


 위의 인용이 책에서 가장 감각적인 장면이 아니라 내가 맛을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 연어, 문어, 대합 관자, 광어회를 차례로 맛을 보며 입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이렇게 표현한 여자가 서른두 살이라니 참. (대합 관자는 사실 대합이 아니라 키조개 관자를 이야기하는 거 같다.) 두 번째 인용은 스카치위스키를 처음 마셔보는 광경인데 이때 위스키를 시음하는 인물은 아직 소년기의 아동이다.
 이 책이 소설의 외피를 차용하는 건, 세계 최고의 요리 평론가인 화자 ‘나’가 이제 죽음을 이틀 앞두고 인생의 진짜 막바지에 자신이 생애 맛보았던 가장 훌륭한 요리를 회상하면서 당시 인물과 기르던 개와 고양이, 가족과 친지를 돌아보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진미를 먹어봤던 내가 인생에서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게 만든 것은, 수수한 야채에 발라먹는 마요네즈. 오랜 친구이자 요리사가 전래 방식으로 달걀 하나, 기름, 소금, 후추로만 만든 전통 마요네즈도 물론 좋지만 땅거미가 진 죽음의 병상에서 끝내 잊지 못하는 마요네즈는 슈퍼마켓 식료품 코너에서 파는 서민용 공산품이라는 놀라운 이야기.
 그러나 화자 ‘나’가 진짜 마지막 숨을 쉬며 조카를 불러 급히 나가서 사오라고 하는 음식이 하나 더 있으니,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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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9-0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회에 소주.......도 아니고 위스키 먹고 싶어지게 만드네요. -_-;;;;

Falstaff 2017-09-05 12:43   좋아요 0 | URL
낮술 한 잔 푸고 팍 자버리고 싶은 날씹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