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두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카렐 차페크 지음, 권재일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찍이 카렐 차페크의 팬이 되기를 선언한 바 있다. 처음 읽었던 <도롱뇽과의 전쟁>에서 시작해 <곤충극장>에 실린 드라마 세 편으로 나는 그의 세계관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제는 그가 쓴 동화집 <작은 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의 독후감을 올렸고 오늘도 <호르두발>을 읽은 독후감을 쓰기에 이른다.
 역시 차페크.

 

 먼저 출판사 이야기부터. 출판사 이름이 “지식을만드는지식”이다. 띄어쓰기를 해야 하는지 아닌지 애매해서 책을 온통 뒤졌더니 맨 마지막 쪽에 출판사 이름이 “지식을만드는지식”(아우, 자판 두드리기 힘들어, 앞으로 ‘지만지’라고 함)이며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있단다. 책 고르다보면 숱하게 보이는 출판사로 굳이 특징을 들자면, ① 이 회사에서 찍은 책이 과연 책 전문全文인지 발췌본인지 확신이 가지 않으며, 그건 ② 나이 들어 글자 읽기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출판사처럼 소위 “큰글씨책” 시리즈의 사이즈도 큰 책을 내기도 하는 걸로 미루어, 글씨가 크니까 혹시 발췌본이 아닐까라는 선입견을 주는데다가, 진짜로 “천줄읽기”란 희한한 요약본도 활발하게 만들고, ③ 무엇보다 책값이 경악할 수준으로 비싸다는 것. 이 책도 (직접 한 번 재보자. 가로 127mm, 세로 182mm) 작은 판형의 보통 활자체로 꾸민 것으로 본문, 해설, 역자소개, 판권 등을 모두 합해 딱 300 쪽의 평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를 주고 샀느냐 하면, 18,520원. 정가가 무려 19,500원인데 여기서 딱 5% 할인해준다. 그런데 왜 이 출판사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느냐 하면, 뭐겠어, 당연하지, 이 출판사 말고는 읽어볼 수 없는 유명한 작품들을 찍는다는 거. 이 책도 20세기엔 “리브로”란 출판사에서 찍었지만, 소위 차페크 3부작(<호르두발>, <유성>, <평범한 인생>)을 낸 다음, 곧바로 망했다. 그 가운데 <호르두발>을 지만지에서 골라 다시 찍었으니 지만지 아니었으면 차페크를 제대로는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시험 삼아 한 번 사서 읽어본 것. 결과는 합격. 요약본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 지만지 책을 가끔 사볼 것인데, 전적으로 ‘가끔’인 이유는 당연히 너무 비싸서 그런 거다. 벌써 한 권 찍어 놨다. 어떤 책인지는 올해 안으로 아실 수 있을 듯.
 얼마나 비싼지 한 번 비교해 봐?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2월 중에 읽으려 샀는데, 큰 판형의 보통 글씨, 1,120쪽, 1kg 더하기 8g의 무게, 이 책의 정가가 16,000원, 판매가가 10% 깎아서 14,400원. 물론 동서문화사는 나로 하여금 예전 해적판인데 해적질 한 시기가 너무 오래전이라서 합법적으로 저작권을 지불하지 않으며, 일어 중역의 의심(저작권 포함해서 이것까지 몽땅 의심이다, 의심. 확실하다는 게 아니고!)을 일으키는 시리즈이긴 하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거.
 책은 참 잘 만들었다. 이게 지만지가 공을 들인 건지, 아니면 전에 같은 텍스트를 찍었던 리브로가 처음부터 소위 심혈을 기울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탈자 거의 없고(있긴 있다), 편집 깨끗하다. 이걸로 출판사 및 하드웨어로의 책 소개는 끝. 이젠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호르두발은 사람의 이름이다. 유라이 호르두발.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건너가 탄광에서 8년 동안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이젠 무려 700달러(당시론 거금)를 주머니에 넣고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말 위험한 작업도 무릅쓰고 개처럼 벌어 돈 생길 때마다 고향의 (자신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아내 폴라나에게 송금을 하다가, 같이 탄광에서 일을 하던 동료가 죽은 후엔 (호르두발은 글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인데)꼬박꼬박 은행에 저금을 해 3,000달러를 모았지만 한 방에 사기를 당해 몽땅 잃고, 다시 힘을 내 700달러를 벌어 금의환향의 길에 올랐으니 꿈엔들 잊힐까, 사랑하는 아내와 딸 하피에를 만난다는 즐거운 설렘이여. 그러나 행복은 결코 현실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전적으로 호르두발의 시각에 의하여 씌어진 1부를 읽는 일은, 대단히 아름다운 문장과, 인간 본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객관적인 듯하면서도 넉넉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끝 모를 안타까움의 손톱을 깨물게 한다. 그리하여 읽다가 잠시 책을 내려놓고, 다시 읽다가 잠깐의 산책을 하게 만들고, 또다시 읽다가 한숨을 한 번 쉬게 만든다. 한 선한 인간의 마음을 문자로 적는 일. 지나간 8년의 세월을 옆에서 보고 들은 사람들의 객관적인 상황설명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람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 다시 생각하고 또다시 생각하고, 그리하여 믿고 싶은 것을 기어이 믿는 호르두발의 슬픈 이야기, 그걸 읽는 건 참 쓸쓸한 일이다. 독자로 하여금 가슴의 한 부분이 비어져가는 느낌이 들게 하는 소설.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 상황이 급변하는데, 나는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 인간이 도롱뇽과 전쟁을 하고, 딱정벌레와 나비들이 사랑과 투쟁을 하며, 한 소프라노 가수가 300년을 사는 이야기와 흑사병이 아닌 백사병이 창궐하는 시대를 만들어낸 작가가 사람 사는 모습도 이렇게 아름답고 쓸쓸하게 쓸 수도 있다니. 여전히 카렐 차페크를 읽는 일은 내게 대단한 즐거움이다.

 

 지만지가 만든 다른 책들의 수준이 이 <호르두발>과 균일하게 같다면, 천정부지의 책값도 (전혀는 아니고, "조금")아깝지 않을 텐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8-01-1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작품 마지막에 정말 가슴 미어지는 줄......;;

지만지가 요즘 찍어내는 책 (예전 연두색 양장 말고 하얀색 책)은 괜찮은 것 같아요. 무시무시한 가격 때문에 저는 거의 도서관에 주문 신청해서 빌려 읽었지만 하얀색으로 나온 책들 가운데 실패한 책은 아직은 없네요. 차페크의 <별똥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편집도 깔끔하죠? ㅎㅎ

지만지에서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Falstaff 2018-01-17 09:38   좋아요 0 | URL
근데 얘기하신대로 너무 비싸요! 아무리 비싸도 살 놈들은 산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책 좀 많이 사는 인간들에겐 가혹해요! ㅠㅠ
이 책도 잠자냥 님이 지만지에서 나온다, 축약본이 아닌 거 같다, 하고 지르시는 바람에 완전 낚였다가 아주 만족해가며 읽은 겁니다. ^^

독서괭 2023-09-09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값 겁나 비싸지만 사서 읽었는데, 저도 만족입니다^^ 골드문트님은 이미 오래전에 sf로 시작하셨군요. 저도 sf도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3-09-09 18:47   좋아요 0 | URL
옙. 아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이 양반, 참 좋아합니다. ^^
 
작은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 - 체코 아름드리 어린이 문학 1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변은숙 외 옮김, 이오덕 우리말 다듬기 / 길벗어린이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이거, 작가 이름 딱 하나 보고 고른 책. 알라딘 중고책방에서 산 거다.
 책의 제목이 이상하지? 천사의 알이라니, 천사도 난태생이야? 박혁거세가 난태생인 건 알지만 천사도? 나정이란 우물 옆에 말이 울어 가보니 알이 놓여 하나 있었다. 동네 노인이 나서서 알에 손을 대는 순간 알이 쪼개지면서 팬티도 입지 않은 사내아이가 우렁차게 울어대는데 이를 들은 온갖 날짐승과 길짐승이 춤을 추고 해와 달도 동시에 하늘에 떴다는 건, 나라를 세운 사람이 어찌 너희 잡것들과 같을 수 있을소냐, 신화 창조작업, 이 가운데 한 글자 빼서, ‘신화 조작업’의 결과로 당연히 성인(成人 혹은 聖人 둘 다 포함해서) 문학의 영역으로 쳐야할 것이다.
 근데 밤하늘에서 휙 금을 긋고 저 산 아래로 떨어지는 눈부신 불꽃, 별똥별, 그걸 보고는 저 속에 유리 가가린 같은 한 인간종이 들어 있는 거 아냐? 밤새도록 궁리하다가 새벽 놀이 붉게 물든 동녘에 온갖 잡새가 날아드는 모양이 정말 그림이라, 왜 새만 날 수 있는 거지? 같은 샌데 닭과 타조는 왜 날지 못했을까? 이렇게 별똥별과 하늘을 가르며 나는 새를 연관시키는 건 동화, 아동문학의 영역이다. 그리하여 동화작가이기도 한 척추질환 환자 카렐 차페크는 별똥별을 하늘의 천사가 낳은 알이라고 탁, 가정 하고나서, 이때 공룡의 후예인 온갖 잡새들이 별똥별로 모여들어 뜨거운 알을 잠깐씩이라도 품었지만 땅 속 벌레잡기에 미쳐서 알을 품지 않은 닭은, 다른 새들과 달리 천사의 가호를 입지 못해 날지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게 성인adult 문학이라면, 그 천사도 참 칠칠맞은 것이 어떻게 자기가 낳은 알을 간수하지 못하고 세상에 흘리고 다녀? 그러고 나서 자기 알을 품어준 모든 새들은 대가로 세상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게 만든다고?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해야겠지만, 동화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 자체를 받아들여야 하는 법. 기가 막힌 이야기 아닌가. 하늘에서 천사가 알을 낳아 빛나는 별똥으로 세상에 내려 보내 새들로 하여금 품게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알을 만진 황새는 뜨거운 별똥을 만져 다리가 붉게 변한 채 하도 뜨거워 오늘도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으며, 칠면조도 별똥이 식지 않았을 때 품어서 가슴이 붉게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 칠면조는 내가 꾸며낸 거다. 당신들도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으면(지금 절판 상태니까), 차페크가 이야기한 것 위에 당신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다른 새를, 아이가 있다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같이 얘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모두 여섯 편의 동화가 실려 있는 선집이며 표제작 <작은 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는 그 가운데 가장 짧은 이야기다. 여섯 편 모두 “…… 이야기”라는 제목을 갖고 있어서, 차페크가 어린이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준다는 느낌이 들도록 동화를 썼다. 이 가운데 첫째와 두 번째 동화 <어느 의사 선생님의 길고 긴 이야기>와 <어느 경찰 아저씨의 길고 긴 이야기>는 마치 <팔리아치>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같은 “극 중 극” 형식처럼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즉 ‘짧은 이야기’를 연결시켜 크게 하나로 만드는, 동화에선 신선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카렐 차페크가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반인 1938년에 죽었으니 지금 시대에 특히 도시 아이들이 읽으면 어색한 장면이나 묘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기만 하면, 또는 도시 아이들에게 왜 특정 장면이나 묘사가 어색한지 설명해줄 수 있기만 하면 아직도 이 책을 권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차페크 작품의 특징인 기발한 상상력이, 도롱뇽과 인간 사이의 전쟁이나 곤충들이 의인화한 인간들의 먹고 사는 것과 번식하는 문제, 300년 이상을 사는 인간이 삶에 대해 취하는 비정상적 멸시 같은 건 성인을 위한 소설과 드라마로, 도깨비와 요정과 마법사 같은 대상이나 정직함, 도움, 선함 같은 깨끗한 이미지는 동화로 모습을 바꾼 건 아주 상쾌하며 정당한 선택이었지 않을까.
 그러나, 내 경우에도 아이들에게 외국 동화를 권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읽고 후에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사주었는데(인정! 동화‘책’에 관해선 내가 좀 유별나다) 주로 창비아동도서 시리즈나 산하아동도서 시리즈에서 선택 했었으며(벌써 2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다) 권정생(당연히!), 이 책을 다듬은 이오덕, 이상권, 노경실 등이 떠오른다. 위인전은 전봉준, 우장춘, 이육사, 신채호 등이 기억에 남고. 전적으로 내 생각인데, 아이들이 읽을 동화책은 보다 흡수력이 좋을 수밖에 없는 한국 작품이 낫지 않을까 싶으며, 요샌 좋은 동화작가도 무척 많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그거 있잖은가, 전집. 무슨 동화 전집이니, 아동 과학전집이니, 그림책 전집 같은 거, 제발 좀 사들이지 마시라. 동화책은 상대적으로 많이 얇으니까 부모가 책방에서 길어야 한 시간만 서서 읽어보면 어떤 책이 좋을 듯하다는 거 금방 안다. 그런 거 골라주면 안 될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8-01-1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페크의 동화까지 찾아 읽으셨군요. ㅎㅎㅎ. 전 차페크 작품 다 읽어보고 싶어도 동화에는 손이 안 가던데 ㅎㅎ

혹시 앞으로 차페크 책 더 찾아 읽으시려다가 <프라하 -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 이거 보시면 그냥 패스하세요. 전 이 책이 헌책방에 있어서 찾아가서 직접 펼쳐봤는데, 거기 담긴 차페크 작품은 ‘영수증‘이라고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에 있는 단편과 똑같고요, 그나마 그 짧은 단편을 다 수록하지도 않았더라고요. 원 대체 뭔 생각인지...;;

Falstaff 2018-01-16 10:02   좋아요 0 | URL
옙. 오른쪽 왼쪽 이야기 다 장만해놓았습죠. ㅎㅎㅎ
영수증은 한국의 출판사에서 찢어다 놓은 것이겠지요. 다행히 그런 옴니버스 책은 좋아하지 않거든요. ^^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3
이반 부닌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불민한 독후감 때문에 전문全文이 화면에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친애하는 서재친구 잠자냥 님의 서평이 기막혀 선택한 책.

 이반 부닌의 글이 정말 아름답다. 부닌을 번역한 이항재의 글과 단어 선택도 참 좋다. 물론 번역자와 출판사의 합의로 그랬겠지만, 작품의 80% 이상이 자서전 적 글이란 것을 처음부터 숱한 각주를 통해 독자에게 말해주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 좋은 글을 읽어가며 독자가 작가의 내밀한 유년시대, 소년시대, 청년시대를 고백한 작품인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매력 있었을 텐데.

 검색해보니 이반 부닌,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란다. 책 읽어봐도 시를 먼저 썼고 후에 산문도 쓰는 과정이 나온다. 아시다시피 난 우리나라 시인이 쓴 소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부닌은 며칠 전 읽어본 <내 책상 위의 천사>를 쓴 재닛 프레임처럼 참 저릿저릿하게 문장을 쓰면서도 글을 읽는 것이 담담한 동감, 격렬하지 않아 오히려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지닌다. 그러고 보니 <내 책상……> 역시 자서전.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놀라운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을 수 있겠다.
 왜 난데없이 재닛 프레임을 들먹이는가 하면, 두 명 다 시를 먼저 쓰고 후에 소설을 썼으며, 나로 하여금 자서전이나 거의 자서전 격인 소설을 그들의 첫 작품으로 읽게 했고, 비슷한 수준의 동감으로 심금을 울렸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당히 다르다.
 그래, 말 나온 김에 한 번 비교해보자.
 부닌은 농노를 거느린 지주계급이니까 러시아에선 귀족집안 축신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드라마틱하게 몰락해가는 지주. 19세기를 통틀어 땅만 가지고 떵떵거리던 러시아 시골 귀족들이 백 년 동안 차근차근 몰락해가는 모습을 당대 소설가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골, 투르게네프 등을 통해 익히 읽어본 바 있듯이, 그게 당대엔 일종의 트렌드였던 모양이다. 부닌의 아버지 알렉산더 부닌께서도 읽어본 러시아 소설에서처럼 (가진 건 쥐뿔밖에 없으면서도)최상류 계급의 취향과 도박으로 1차 거덜이 났다가, 그나마 다행으로 후손 없는 고모님이 죽어주는 바람에 잠깐 기사회생했으나 자신의 버릇을 개에게 주지 못해 또다시 넓은 영지를 자신의 “취향”에 갖다 바친다. 아버지를 닮은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이라 읽히는 주인공)은, 가난하게 지내다가도 일을 조금 했거나 쥐꼬리만 한 인세를 받기라도 하면 곧바로 최고급 호텔에 가서 먹고 자고, 옷도 맞춰 입고 뭐 이러다가 돈 떨어지면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반면, 오스트레일리아도 아니고 뉴질랜드 깡촌년 재닛 프레임은 정말로 지지리 궁상 빈민의 가정에 태어나서 오빠는 간질, 언니와 여동생은 일찌감치 물에 빠져죽고, 자신도 멀쩡한 정상상태에서 전전두엽 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는 위기상황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는 여성. 이반 부닌과 제닛 프레임을 같이 이야기하는 이유가 이렇다. 이왕이면 두 사람의 인생을 다 읽어보시는 편이 좋지 않겠나, 하는 거.
 혁명 후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귀족자제 시인과, 다수와 다르다는 거 하나 때문에 비정상 판정을 받은 하층계급 출신의 시인.
 나는 이 두 명의 자서전 또는 자전적 소설을 읽고 부러워 미치는 줄 알았다. 이들이 행복을 찾았을 때 공통점이 있었는데, 가르쳐드릴까? 오직 자신만을 위해, 격하게 얘기해서 이기적인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했다는 거. 불행한 당신, 더욱 불행해지고 싶으면, 어제처럼 내일도 당신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을 위해 살아라.


 * 다시금 알아채는 시간의 위력. 행복은, 만일 그런 것이, 그 비슷한 것이라도 있다면, 왜 언제나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 이 책에 관심 있으면 이 글에 앞서 달린 독자서평 "가슴 절절한 아름다움"을 읽으시라. 난 그만큼 쓸 자신이 없어서 여기서 줄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8-01-1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이렇게 몸 둘 바를 모르게...과찬을... ㅎㅎㅎ 감사합니다.

이 작품 정말 아름답죠? 좋은 책을 읽으신 것 같아 제가 다 기분이 좋습니다. ^_^

‘불행한 당신, 더욱 불행해지고 싶으면, 어제처럼 내일도 당신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을 위해 살아라.‘ 격하게 공감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18-01-15 10: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는 건데요.
덕분에 좋은 책, 즐겁게 읽었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ㅋㅋㅋ
 
과학의 나무 대산세계문학총서 63
피오 바로하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로하에 대해서 찾아보니까, 이이가 1956년에 죽었는데, 그때 관을 운구했던 인물 가운데 글쎄, 헤밍웨이가 있었단다. 원래 헤밍웨이가 스페인 언어권하고, 더 넓게 말하자면 라틴 문화권하고 유난히 친숙하더라니 급기야 대서양을 건너 가 이런 짓도 했다. 바로하가 우리나라에서는 완전 생소한 작가지만 스페인에선 뭐 대단한 찬양을 받는 모양인데, 당연히 나도 이게 처음 읽어보는 소설로, 정작 읽어보니까 사실 별 거 없다. 유럽 소설가들 특유의 철학적 사유가 27쪽 가량 등장하는 거 말고는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거기다가 살을 좀 보태서 쓴 소설책이라 해도 많이는 틀리지 않을 거 같다.
 (당연히 철학적 사유, 주인공 안드레스 우르타도와 외삼촌 닥터 이투리오스가 나누는 대화를 담은 책의 4장, 스물일곱 쪽이, 너무 거창한 예와 비교를 해서 좀 안됐으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끝도 없이 이어질 거 같이 이어지는 조시마 장로 이야기처럼 소설에서 독립적으로 따로 떼어져 있으나 상당히 중요한 주제를 포함하지만, 문학이라기보다 너무도 철학 에세이처럼 읽히는 바람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원래 철학적으로 쓴 글, 추상과 사변을 강요하는 현학적인 것들을 많이 싫어해서 그렇겠다고 그냥 읽어치웠다.)
 위 괄호에서 말한 거 말고는 우리의 주인공 안드레스와 작가 바로하가 정말 많이 닮았다. 작가와 주인공은 똑같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나중엔 박사까지)와 함께 의사면허증을 소지한 정식 의사였으나 의사 직을 때려 치고 주인공은 의학서적 번역 등의 출판업으로, 작가는 문학의 길로 접어들면서 문제의 1898년 사건을 접하게 된다. 1898년 사건이 뭐냐 하면, 이건 스페인 문학을 즐기시는 분은 상식으로 알아두시면 좋은데, 쿠바의 독립운동을 두고 미국인들이 개인 신분으로 참전을 하고, 미국 내에서 쿠바 독립채권 같은 걸 발행하는 것도 모자라 연일 언론으로부터 스페인이 쿠바를 학대했다느니 폭정이라느니 마구 떠는 꼴이 자존심 상해, 1898년 철없는 스페인 정부가 질 걸 뻔히 알면서도 미국에 선전포고 했다가 초전에 박살이 나 쿠바가 독립을 하고, 승전국 미국한테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고스란히 갖다 바친 사건이다. 이것으로 스페인의 모든 해외 식민지는 완전히 없어지고 마는데, 일찍이 무적함대를 자랑했던 위대한 스페인의 그나마 알량하게 남아있던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지는 민족적 참사로 받아들이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책에선 주인공의 현명한 외삼촌 이투리오스 선생은, 20세기가 되기 전에 스페인이 해외의 모든 식민지에서 손을 턴 일을 “다행”이라고 한다. 이거 좀 이상해. 하여간 이 당시 젊은 예술인들의 모임을 ‘98그룹’ 혹은 ‘98세대’라고 했고, 바로하가 이 세대의 가장 앞쪽에서 맹활약을 했던 거 같다. 내가 뭐 아나. 책 읽어보니 그렇다는 얘기지.
 소설의 분위기는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재미난 책,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경이로운 도시> 참조)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과학에서 거의 완전히 변방으로 밀린 스페인의 후진성이 전반적으로 배경으로 깔려있고, 한 젊은이가 의사란 직업에 관한 투철한 목표의식 없이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사가 됐다가 지방소도시와 수도에서 의사 직을 수행하며 회의를 느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독자가 스페인 사람이라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스페인에서 의사(과학자)가 겪어야 했던 숱한 시대적 난관을 체험하는 동시에, 선진 유럽국에서는 이미 과정을 거친 철학적 논의를 이제야 고민할 수밖에 없던 시대적 문제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었겠다. 이 사람의 이 작품도 그렇게, 미겔 데 우나무노의 <사랑과 교육>도 그렇고, 후발 유럽국, 그러나 화려했던 과거를 갖고 있는 후진국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재미? 글쎄. 권하지 않겠음. 4장의 철학적 대화 장면 아니면 그냥 한 지식인의 이야기 책. 4장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뭐 이젠 유효기간이 지난 과학 철학적 논의.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 “아, 이런 책이 있구나.” 하는 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나라의 사각형 수학 오디세이 5
에드윈 A. 애벗 지음, 신경희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서 주인공 얌보가 어린 시절에 감명을 받아 이후 기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그리고 전혀 몰랐던 작품인데 예상 외로 찬사를 누리고 있는 작품인 것을 알게 되어 읽어보기로 결심한 책.
 모든 건 포인트, 점에서 시작한다. 에벗은 작 중에 구球ball의 입을 통해 점을 “하찮은 산물이고 차원을 갖지 못하지만 …… 우리와 같이 실제로 존재”하며, “점 하나가 자신의 세계이고 우주”라고 정의하면서도 자신이 하나이며 모두인, 오직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자기만족일 뿐이라 하는데, 에드윈 애벗이 언제 적 사람인가 하면, 1838년에 나서 1926년에 졸한 사람으로 이 책을 1884년에 썼으니 이 정도는 이해해주고 넘어가기로 한다.
 점이 무수하게, 말 그대로 무한대만큼 똑바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선. 무한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수자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그걸 N이라고 하자. 그런데 엉뚱한 한 숫자가 있어서 우리는 그걸 n이라고 부르는 것이 툭 튀어나왔다. 허, 알고 보니까 이 n이란 놈이 N보다 더 큰 수 아냐? 이때 n 정도의 숫자를 무한대라고 하는 거다. 이게 현대 해석학에서 무한의 의미. 사실은 n보다 1/n, 한 점에서 사방 1/n 거리 안에 있는 근방boundary 안에 들어오면 그것들은 “같다”라고 하는 걸 설명할 때 더 자주 쓰인다. 왜 그거 아시려나? 1이 크겠습니까, 아니면 0.99999……가 크겠습니까. 답은, 맞습니다. 언젠가는 두 수의 차이가 1/n 안에 들어올 테니, 그건 같은 숫자입니다. 이래서 화살은 과녁에 꽂히는 겁니다.
 하여간 그렇게 점들이 늘어서서 이제 1차원, 즉 선이 생겼다. 선의 나라 라인랜드에 가보니 한 가운데에 왕이 양쪽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좌우, 책에선 남북 쪽으로 아무리 많은 백성들이 늘어서 있다고 해도, 왕이 볼 수 있는 유이한 백성은 자기하고 가장 가까운 남쪽과 북쪽의 백성 두 명밖에 없다. 그렇잖아? 점들이 죽 늘어서 있는 것이 선이니까 왕이 볼 수 있는 건 그저 왼쪽 오른쪽의 점 하나밖에 더 있겠어?
 이렇게 생긴 직선을, 1차원인 라인랜드의 왕에겐 무도한 반역적 의사표시일지언정 옆으로 좌악 밀어버리면 직선이 지나온 자국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사각형. 맞지? 이제 면적이 생긴 거고, 그 면적의 넓이를 알기 위해서는 가로 길이에 세로 길이(라인랜드의 왕과 백성들은 죽어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세로”)를 곱해주거나, 라이프니츠가 발명을 해주었으니 함수를 적분하면 간단하게 구할 수 있다. 이제 면의 세계가 도래하여 이름을 플랫랜드flatland라고 칭하면 이 책의 원래 제목 <Flatland - A Romance of Many Dimensions> 평면나라-다양한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2차원 세계만 해도 구성원이 매우 많은 각을 가진 다각형인데 얼마나 다각형이냐 하면 거의 원에 가까운 성직자, 오각형 이상 N각형 미만의 톱클래스 귀족과 학자 변호사 등 지식인 계급인 사각형, 상인 및 부르주아의 정삼각형, 군인, 일반백성의 이등변 삼각형, 최하위 매우 뾰족해서 접근하면 곧바로 찔려 죽을 수도 있는 특별한 도형, 자세하게 보면 일종의 평행사변형이지만 하여튼 바늘처럼 무지하게 뾰족한 침을 가지고 있는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매우 엄격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삼각형이건, 사각형이건 N각형이건, 하다못해 무한대 n각형, 즉 원이건 간에 보는 사람은 그걸 직선으로만 인식한다는 점. 동그라미 그려놓고 눈을 종이와 같은 높이로 해보셔. 원도 직선처럼 보이겠지? (그럼 어떤 모순이 나오나 하면, 2차원에서 서로를 인식하는데 모든 것이 직선이라고 보이는 건 뭔가가 위도 도톰하니 솟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높이, 즉 3차원의 도형이 필요하다는 거. 물론 앞에서 말했던 1차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에 관해서는 그냥 넘어가자.) 그래도 2차원엔 선과 달리 움직일 수 있는 평면 공간이 있어서 서로 옮겨가며 서로를 만져가며 이게 몇 각형인지 구분할 수도 있고, 거리감으로도 대강 알 수 있단다. 물론 거리감, 즉 시각으로 정확하게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1차원 라인랜드에선 아무도 자신들의 2차원 세계에서 한 차원을 더 늘여 공간을 만들려고 생각하지 못한다. 당연하지. 점과 선의 나라에서도 아무도 자신들의 세계를 확장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하다못해 3차원의 세계에서도 이 책이 나오고 21년 후인 1905년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 이전엔 마찬가지였으니. 이렇게 생각하시지? 천만의 말씀. 그건 일반인들이 그렇게 짐작하고 있는 것이고 사실은 차원의 초월은 대수학algebra代數學에서 먼저 출현한다. 대수학에선 4차원도 아닌 n차원까지, 당연히 수학적 이론으로 가능이 아닌 “확정”을 하고 있었다. 책에서도 “정확하게 유추법에 들어맞는다.” (171쪽)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2차원 세계에서 사각형 학자 앞에 크기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원 하나가 등장해, 자신이 3차원 세계에서 왔다고, 당신의 모습 사각형을 동서남북이 아닌 위로 확장할 수 있으며 그러면 부피를 갖는 육면체가 된다고 설득한다. 세상에, 2차원 세상에서 충분하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던 사각형은 완전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거다. 어떻게 ‘위’로 자신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 이 시점이 1999년의 마지막 날. 사실은 천 년에 한 번씩 3차원에서 2차원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틈을 타고 공 하나가 플랫랜드에 들어온 것이다. 설득과 설명을 하다하다 진이 빠진 공이 엇다 모르겠다, 사각형을 데리고 3차원 스페이스 랜드로 빠져나와보니, 자신의 집에 있는 모든 다각형과 집의 구조, 돈과 영수증이 있는 금고 안까지 훤하게 보이는 거 아닌가. 그리하여 드디어 3차원에 대하여 이해를 하게 되고, 워낙 머리가 좋은 사각형은 여기서 n차원 세계까지 유추하고 만다. 공한테 하는 질문. 4차원에 가면 당신 내장도 다 보이는 거예요? 3차원에 와보니 2차원 다각형들의 몸속까지 훤히 보이니까 분명 4차원에 가면 3차원 생물들, 부피를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속까지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이어서 5차원, 6차원 이런 것들까지. 사실 공의 부피를 알려면 방법이 아주 까다롭기는 하지만 원의 방정식을 두 번 적분하면 구할 수 있고, 이젠 방법이 아무리 까다로워도 아 컴퓨터가 있잖아, 그냥 식만 구해서 입력하면 금방 나온다(아마 엑셀에선 안 될 걸?). 그렇다고 내가 4차원으로 가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미적분 이야기하니까 조금 수학 같아?
 천만의 말씀.
 난 이 소설을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읽었다. 이 작품을 보고 수학의 차원에 대하여 뭔가 배우려 하면 오산. 더 이상 새로운 티칭teaching으로는 도저히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를 위하여 무수한 대중을 희생시키는 당대 제국주의로의 대영제국을 확 비튼 비평적 소설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상당히 유명한 책이다. 이름값만 믿고 한 번쯤 읽어봐도 무방한데, 수학에 관심 없으신 분들은 동네 도서관으로 가실 것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