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의 아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7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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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에 <세일즈맨의 죽음>을 정말 아무 감동 없이 읽었다. 왜냐하면, 그때 내 나이 너무 어려서 세상이 어떨 것이란 짐작도 못했던 시대였기 때문. 그러니 그게 제대로 읽혔겠는가. 생각해보면 나도 세상에다 대고 늘 엄살만 부리던 허약한 젊은이였다. 뭐 지금도 그리 나아진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세일즈맨의 죽음>은 조만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세일즈맨....>을 다시 읽어볼까 마음먹게 만든 작품이 바로 <모두가 나의 아들>. 이 책을 읽고 얼른 밀러를 검색해서 이이가 공산주의자 아니었나, 확인해봤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본의 톱니바퀴에 해체되는 가족과 개인이라고 할 수 있어서 검색해봤는데, ‘주의자’ 수준은 아니었다.
 총 세 막으로 구성된 희곡. 밀러 자신이 대공황 시절에 집안이 결딴이 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음식점 접시닦이부터 사환, 운전수 등 안 해 본 잡일이 없었고, 수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미시간 대학을 졸업했다고 ‘두산백과’에 씌어있다. 그러니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자본이 인간에게 함부로 행패부리는 건 어려서부터 익히 알고 있었을 거다. 아니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1막에선 그냥 환갑이 지난 늙은 주인공 조/케이트 켈러 부부의 둘째 아들 래리가 2차 세계대전 중 버마 또는 중국 해안 근방에서 실종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일요일의 평화로운 아침. 맏아들 크리스의 초대로 오랫동안 옆집에 살았던 디버 집안의 딸, 앤이 어제 도착해 이제 갓 일어나 식당에서 케이트 여사가 해준 밥을 먹고 있다. 뉴욕에 살고 있던 이 아가씨가 앞으로 사건이 벌어질 이 집에 왜 왔느냐 하면, 크리스가 자기 동생의 애인 앤과 결혼할 것임을 부모에게 통보할 예정이기 때문. 제목이 <모두가 나의 아들>이고, 전쟁 중 비행기 조종사였던 둘째 아들은 버마, 그러니까 미얀마 정글 상공에서 실종, 죽음 또는 전사가 아니라 ‘실종’된 상황이라, 일찍이 메릴린 로빈슨의 공감 가는 소설 <하우스 키핑>에서 봤듯이 사라진 가족을 기다리는 고통과 고독에 대한 작품일 것이라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밀러 또한 뛰어난 드라마 작가들이 늘 그렇듯이 시치미 뚝 떼고 독자(또는 관객)을 그쪽 방향으로 몰아간다. 둘째 래리가 틀림없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어머니 케이트 여사는 결코 첫째 크리스와 앤의 결혼을 허락할 수 없는 것.
 여기에 켈러 가족과 조 켈러 씨가 운영하는 회사의 동업자이자 생산담당 부사장 정도였던 스티브 디버 씨의 가족 사이에 오래됐지만 짙은 안개 속에 묻혀있었던 사건이 틈입해온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켈러-디버 회사에서는 항공기 엔진의 헤드를 만들어 군납을 했었는데, 미국 조달청에서 30분마다 조금이라도 빨리 선적을 하라고 독촉전화를 해대고, 만일 납기를 조금이라도 맞추지 못하면 계약이 파기당할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만 엔진 헤드에 실금이 간 불량품을 만들어내고 만다. 언제나 건강체질이었던 조 켈러 사장이 하필이면 딱 하루 몸살이 나서 집에 몸져누웠던 날, 납기에 극도로 쫓기는 일이 벌어졌고 스티브 디버 씨는 워낙 새가슴에다가 강박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불량 엔진 헤드를 납품해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불량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 스물한 대가 공중에서 폭파되어 조종사 전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져 디버 씨는 지금 교도소에 갇혀 있는 상태인 것.
 이런 상황.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대량주문을 받아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며 주문량의 일부씩을 납품하고 있는데, 만일 한 번이라도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대량주문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하는 거. 이건 갑질이 아니라 계약에 의거한 정당한 요구다. 돈 많은 거대 회사가 하는 짓이라고 다 갑질은 아니다. 중소기업이 납기 안에 정상제품을 납품할 수 있다고 처음부터 약속을 해서 성립한 계약이다. 근데 눈앞에 납기일이 닥친 순간 불량제품이 쏟아졌다면? 게다가 대량주문 취소가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치명상을 초래한다면? 당연히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일반 상식적 대답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디버 씨는 가족과 나의 복지를 위해 납품을 해버렸고, 그래서 스물한 명의 튼튼한 청년들이 이국의 하늘에서 폭발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사업하는 게 즐겁고 쉬울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속 편한 건 역시 봉급쟁이다. 디버 씨 봐라. 자기는 진심으로 처자식의 복지와 잘 나가는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불량품을 납품해 지금 교도소에 박혀 있지만, 자식들은 아버지가 너무 불명예스러워 면회는커녕 편지 한 장 써본 적이 없다. 하! 아빠가 날 위해 전투기에 들어갈 불량품을 납품했다고요? 뻔히 공중에서 폭발할 걸 다 알면서도. 그러고도 그게 나를 위해 저지른 거라고요? 내가 언제 회사 물려달라고 부탁한 적 있어요? 자식 키우는 거 다 이런 법이다. 고까워 말아라.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이 <모두가 나의 아들>이라?
 천만의 말씀. 난 지금 이 독후감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드라마의 진짜배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다른 얘기들만 열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진짜로 밀러의 <모두가 나의 아들>을 읽은 분들이 이 독후감을 본다면, 참 희한하게도 수박 겉만 핥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여기서 말아야지. 연극을 진짜 연극답게 만드는 마지막 반전의 순간을 확 밝혀버릴 용기까지는 다행스럽게 나는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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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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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이런 내용인줄 몰랐다. 예전에 이리 노니는 골짜기, 포천군 이동면 낭유리에서 군역을 치룰 때 국내개봉을 해, 야한 영화라고 소문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못보고 그냥 지나갔는데 이제야 원작 소설로 읽었다. 뭐, 야하게 연출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 있겠지만 굳이 베드 씬을 강조할 필요까진 없을 듯.
 언제나 길 위에 있어야 하는 팔자를 타고난 화자 ‘나’ 프랭크 체임버스. 초장부터 술에 잔뜩 취해 캘리포니아 로스 엔젤레스 근교를 달리는 건초트럭의 짐칸에 누워 정신없이 자다가 발목이 덮개 밖으로 비죽 튀어나오는 바람에 쫓겨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이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쌍둥이 떡갈나무 선술집’ 영화에 자주 보다시피 펍pub 정도로 보이는 미국식 휴게소에 들어가 무전취식을 하고, 마음 좋은 그리스 이민자 닉 파파다키스의 호의로 점심도 얻어먹고 휴게소에서 취직도 하는 것이 첫째 장章. 총 열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길지 않은 소설 가운데 1장을 읽으면서, 분명히 이 책은 로드 무비, 아니면 <길 위에서>를 쓴 잭 케루악 류의 비트 문학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케인이 이 책을 쓴 시기도 1934년의 미국. 어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아, 뭐 그렇다고 꼭 집어서 <포스트맨은....>을 비트 문학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다. 소설 한 편 읽는데 그까짓 장르에 대한 잡소리는 안 해도 충분하니까.
 실제로 등장인물 프랭크 체임버스는 팔자에 역마살이 끼어 늘 길 위에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인종 같아 보인다. 소설 속에서 형사에게 신문을 받을 때 보면, 정말로 프랭크는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를 다 섭렵했고, 거의 모든 도시에서 크고 작은 말썽을 피웠으며 사소하게 유치장이나 구치소를 들락거린 전력이 있다. 이런 인간이 한 장소에 머무는 경우는? 예, 맞습니다. 여자가 개입을 한 것. 그것도 프랭크의 관습을 초월한 자유분방함, 아니,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저질러버리는 배은망덕은 자신을 어여쁘게 여겨 음식과 일자리를 준 선술집의 주인 닉 파파다키스의 어린 아내 코라와 사랑의 화염을 활활 태워버리기에 이른다.
 내용은 여기까지. 물론 다음 장면은 눈치 빠른 분들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터. 이 책이 나오기 67년 전인 1867년에 이와 비슷한 구도의 소설을 며칠 전에 소개한 적이 있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 여기서도 나이 많은 닉 파파다키스 씨와 그의 젊은 아내 코라. 부부 사이에 어느 날 불쑥 등장한 젊고 기운찬 남자 프랭크. 크! 감 확실하게 잡히실 듯. 맞다. 당신의 감이 맞다. 일은 그렇게 흘러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지는 건 20세기. 보다 적극적인 불륜과 범죄의 하모니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설을 뭐라 해야 좋을까? 동시대를 누빈 알프레드 히치콕과 비견하는 고전적 범죄소설이라고 하면 어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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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 바디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8
헨릭 시엔키에비츠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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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유명한 영화. 오래 전, 연말연시에 연휴 3일 있던 시절, 연휴 기간에 TV만 틀었다하면 어느 채널이건 간에 일 년에 한 번은 구경할 수 있던 영화. 로버트 테일러와 데버러 커가 주인공 비니키우스와 리기아 역할을 했던 바로 그거. 근데 <쿠오 바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에 다 본 기억이 없다. 하도 오랜 세월 조금 조금씩 보다보니 장면이 연결되어 마치 다 본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던 것. 영화 자체도 그리 재미가 없었던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마 그랬던 거 같다. 그리하여 <쿠오 바디스>를 여태까지 작가의 이름은 모르지만 스페인 사람이 썼을 거라고 짐작해왔던 것인데(왜 스페인이라고 생각해왔는지 나도 모르겠어!), 놀랍게도 폴란드 작가의 작품이다. 그것도 1905년이긴 하지만 어쨌든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내겐 철저하게 무명씨인)헨릭 시엔키에비츠. 이 책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8/129호. 비교적 앞 번호라 초판이 2005년 12월. 내 책은 2009년 8월 초판 5쇄. 일단 5쇄니까 좀 팔린 책이란 얘긴데 왜 난 읽을 생각을 여태 하지 않았을까. 암만해도 영화 탓인 거다.
 아직 이 책 안 읽어보신 분, 거수. 놀라지 마시라. 겁나 재밌다. 두 권에 1천 쪽 넘는 분량인데 하루 종일 책만 읽는다고 가정해도 이틀 동안 밤마다 쐬주 한 병 마실 수 있다. 한 번 책을 들었다하면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얼굴에 물만 칠하고 읽기 시작하면, 때 돼서 밥만 먹고 오후 일곱 시까지 하루에 한 권 독파 가능. 내 연세에 눈이 침침해 나흘 걸렸지 그거만 아니었으면 이틀이면 뚝딱 해치운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종류의 책인지 아시겠지?
 남자 주인공 로버트 테일러 비니키우스는 옛 집정관의 아들이면서 장교로 오랜 소아시아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온 청년. 귀향 도중에 약간의  부상을 당해 은퇴한 장군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의 집에서 치료를 받느라 세월을 좀 죽이는데 (폴란드 민족임을 은유하는)북부 유럽의 친 로마 성향을 띤 리기족族에서 인질로 와 훌륭한 아울루스와 정숙한 폼포니아 그레키나 부부의 양딸 정도로 잘 자란 아가씨 ‘리기나’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다친 것을 다 치료하고 이제 로마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외삼촌 페트로니우스를 방문해 리기나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 고민을 털어놓자, 삼촌이 직접 아울루스 장군을 방문하여 리기나를 품평한 다음, 곧바로 황제 네로를 찾아가 리기나는 인질로 로마에 와 있는 것이라 황궁에서 보호하는 것이 옳다고 고하여 아가씨의 충실한 자유인 신분의 하인 우르수스를 동행해 입궁하게 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여기서 주인공 비니키우스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또 다른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외삼촌인 페트로니우스(1권 표지에서 나신의 여자가 키스를 퍼붓는 조각상의 주인공이 바로 페트로니우스). 애초부터 종교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책, 페트로니우스 한 명을 읽기 위해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쾌락주의자. 회의주의자. 이 정도로 소개할 수 있는 사람.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난 정말로 종교, 특히 기독교에 관해선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서양 역사에 가장 큰 비극은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와 분방하고 자유스럽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헬레니즘 문화가 뚝 부러졌다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페트로니우스, <쿠오 바디스>의 진정한 영웅이자 주인공인 이 인물이 헬레니즘의 축복을 받은 마지막 인물 비슷하다. 시, 음악, 연극 등에 달통하고, 세 치 혀를 적재적소에 촌철살인으로 날릴 줄 알고, 뛰어난 인물 중에서도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이. 네로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 당대 유일한 인물.


 “폐하. 앞으로 만수무강하시더라도 제발 대중 앞에서 노래는 하지 마십시오. 양민을 학살하시더라도, 아무튼 시는 쓰지 말아주십시오. 사람들을 독살하시더라도, 부디 춤은 추지 마십시오. 또다시 불을 지르시더라도, 부탁이니 그 서투른 키타라 연주는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폐하의 벗이자 ‘고상한 판관’인 페트로니우스가 폐하께 드리는 충고입니다.”


 내가 비록 종교엔 아무 관심도 없지만 이 책에서 묘사하는 초기 기독교를 읽고 느낀 것이 많았다. 한 마디로 숭고함. 희생. 헌신과, 무엇보다 사랑.
 카타콤. 그리스에서 온 다신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비의적秘儀的 진리를, 위로는 위성국가의 공주님부터 로마 집정권의 아드님에 이어 저 아래로 노예들, 거기다가 황제의 근위병사까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받들어온 기독교. 정확하게 얘기해서 AD 60년대 초기의 카타콤. 로마의 학정 속에서 미미한 카타콤을 기반으로 생명력을 이어온 기독교. 비록 유물론자를 자임하는 나는 종교란 '의식의 아편'임을 주장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위대한 종교.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정점에서 등장한 기독교. 또는 예수. 그래, 여기서도 문제는 권력이다, 권력. 주피터, 헤라를 위시한 숱한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의 다신을 모신 최고의 전성기가 바로 네로 시대. 전성기라 함은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내리막길밖에 없다는 얘기. 맞지? 서양세계에서 내리막길을 대체할 종교로 ‘사랑’을 얘기하는 기독교가 자리 잡은 것도 참으로 기막힌 행운이며, 그걸 넘어 기적이란 것. 이것도 맞지? (이 책에서 묘사한 작가의 모든 것이 옳다면)초기 기독교가 보여준 순결, 순응, 청빈의 미덕이라니! 그러나 참 얘기하기 힘든데,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거.
 주피터를 정점으로 무수하게 나열된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그들의 권력을 사용해, 카타콤에서 비롯한 겸허한 기독의 정신을 박멸하려 할 때가 전성기였듯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한 3세기 이후 근 1,700년 동안 기독교의 전성기 아니었나? 그동안 쾰른에선 무려 700년 동안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대성당을 건축하였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오늘도 공사 중이다. 만일 기독교의 하느님이 정말로 있다면 그분이 쾰른이나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졌고 벌이고 있는 겁나게 화려하고 겁나게 비싼 건축물을 보고 정말 좋아할까? 대한민국에 모텔의 수만큼 많은 개신교 교회의 난립도 자신을 위한 봉헌으로 여기고 있을까? 나는 왜 이런 것들이 초기 기독교 시절의 그리스 로마 신들을 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느끼지? 종교의 순결이 아니라 종교가 갖는 권력이 진짜 문제라니까. 교회의 권력, 교회 내에서의 권력, 다 마찬가지다. 어디서나 일단 권력을 갖게 되면 그까짓 겸손과 순결과 순응과 청빈을 뭐 하러 귀찮고 고생스럽게 짊어지고 다니겠느냐 말이지. (아직도 목자의 품에 안기지 못한 집 나간 검은 양 한 마리의 의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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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바르와 페퀴셰 1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3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책세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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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에서 플로베르 연구로 석사와 박사를 한 전인혜의 역작力作이자 역작譯作. 일찍이 플로베르를 공부하면서 왜 하필 플로베르를 시작했을까, 후회하고 지루해지고 느슨해졌을 때 이 <부바르와 페퀴셰>를 발견하고는 눈이 번쩍 띄었다고 책 뒤편의 역자소개에 썼다. 그러면 적어도 이이의 <부바르와 페퀴셰>에 대한 애정은 충분히 짐작하고 남을 듯.
 내가 읽어보니까, 이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제 맛을 알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읽고 한 십 년 지나 다시 한 번 읽어야 이 우울한 명상형 은둔자 플로베르가 가난에 찌든 말년에 접어들어 마지막 작품으로 왜 이 책을 쓰고, 기어이 미완성으로 생을 마감했을지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겠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난 엉뚱하게도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주제페 베르디가 여든 살이 넘어 자신의 마지막 작업으로 만든 셰익스피어 원작의 희극 <팔스타프>를 떠올렸다. 베르디와 동시대를 살다 간 플로베르도 자신의 마지막으로 슬픈 희극 <부바르와 페퀴셰>를 선택했다. 평생을 살고 이제 황혼이 찾아와 문득 돌아보니 그거야말로 정말 코미디, 한 판 웃긴 인생극이었더란 깨달음이라도 있었을까? 베토벤도 마지막 죽음의 침상에서 “여봐, 희극은 끝났어!”라고 말하고 숨을 거두었잖은가. 이렇게 희극의 힘은 대단하다. 진정한 슬픔이 없는 희극은 희극이 아니라서.

 

 생 마르탱 운하의 두 수문이 있는 부르동 거리. 한 여름의 일요일에 두 사람이 나타난다. 바스티유에서 한 명이 오고, 다른 이는 식물원 쪽에서 걸어와 하필이면 같은 벤치에 앉아 똑같이 모자를 벗어 각자의 옆에 놓았다. 키 큰 사람의 모자 속에 ‘부바르’라는 글자가 씌어있고, 상대적으로 작은 남자의 모자 속엔 ‘페퀴셰’란 글자가 적혀있어, 이 두 싱거운 남자들은 동시에 아, 당신도 모자 속에 이름을 써 놓는군요. 이런 우연이라니, 이거 반갑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어디 가까운 곳에 가서 곱창구이에 쐬주나 한 잔 하실까요? 이런 절차를 밟아 친구가 된다. 한 잔 술에 마음을 터놓으니 참 이런 우연은 하늘이 만들어준 것이라 같은 필경筆耕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고, 나이도 마흔 일곱으로 같고, 부바르는 삼촌한테 종자돈을 얻어 상점을 차려 좀 여유 있게 사는 남자였으나 결혼하자마자 아내가 금고 속의 현금과 보석들을 홀랑 들고 꽁무니를 빼버린데다가 타고난 게으름 덕택에 지금은 홀아비 신세고, 페퀴셰는 여자 알기를 호환, 마마쯤으로 여겨 독신을 주장하고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놀라지 마시라, 52세 넘어 까지 숫총각 상태를 유지하고 있게 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나이 마흔일곱이면 은퇴까지 삼년 밖에 남지 않은 상태인데, 은퇴를 하고 나면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시골에서 여유롭게 은인자적하고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책 2권의 384쪽엔 이렇게 설명을 해놓았다.

 

 “부바르는 항상 말horse과 모든 여행 장비, 부르고뉴 지방의 특급 포도원, 그리고 화려한 저택에 친절하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소유하고 싶었다. 페퀴셰는 철학적인 지식에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 특별한 사람들이 몇 있는데, 부바르도 그런 족속 가운데 한 명이라서 여태까지 삼촌인줄만 알았던 은인, 은인은 은인이지, 상점을 차려 그런대로 여유롭게 살게 종자돈 대준 사람이니까, 하여간 그 삼촌이란 사람이 알고 보니까 자신의 생부라는 거였으며,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생부가 죽으면서 유서에 그동안 직접 돌봐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을 가득 담아 호적상 친아들 말고, 호적상 조카, 생물학적 맏아들한테 전 재산의 절반을 뚝 떼 주었다는 편지를 공증인으로부터 받았던 거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부바르는 부르고뉴 지방의 농장과 저택을 구입하고자 했으나, 아이고, 돈이 조금 모자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페퀴셰는 자신의 전 재산을 홀랑 보태 부바르의 꿈을 이루어지게 해주고 자신도 은퇴하면 곧바로 합류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부바르가 천성적으로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깟 삼 년도 남지 않은 은퇴, 지금 당장 해버리라고 강권하여 드디어 둘이 함께 칼바도스로 낙향하는데 성공한다. 칼바도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외투 주머니에 손을 질러 넣고 안개가 잔뜩 낀 한밤중에 돌다리를 건너다 우연히 마주 걸어오는 한 여인 조앙 마두를 만난 라비크가 주점에 들러 주문하는 술. “술을 주시오. 쓴 술을 주시오.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는 매우 쓴 술이 아니면 안 되오. 칼바도스로.” 1992년 잠실 롯데호텔 바에서 미친 척하고 칼바도스 한 병 주문해 조그만 한국 남자 둘이서 앉은 자리에 한 병을 다 마셔버리니까 옆 자리에 앉아있던 거구의 백인들이 멀뚱멀뚱 쳐다보던 바로 그 술. 쓰긴 정말 오지게 쓴 술이다.
 바로 칼바도스의 쓴 맛. 부바르와 페퀴셰를 기다리고 있는 전원생활의 맛이다. 제일 앞에서 이 책을 나는 ‘슬픈 희극’이라고 단정했고, ‘진정한 비극이 없는 희극은 희극이 아니다’라고 허튼 소리를 했다. 인생의 차분한 마지막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부르고뉴로 내려온 두 장년. 이들이 장년을 넘어 노년에 이르도록 부르고뉴의 칼바도스에서 그들을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온갖 실패의 연속이다. 도착하자마자 토질과 토양을 핑계로 온갖 불평만 해대는 소작인을 해고하고 스스로 농사를 짓고,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고, 당연히 과수원도 하려는 주인공들. 평생 사무실이나 상점에서 물건을 팔거나 필경을 해온 이들이 아무런 경험도 없이, 현지인들의 불순한 호기심어린 눈길에 싸여 시도하는 것은 농업, 화훼, 수목학 전문 서적. 철석같이 믿고 책에 나온 대로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가지치기를 하고, 피를 뽑고, 별 난리를 다 부려도 두 명의 도시인이 한 일 년 농사는 완전 폭망. 그들의 ‘은퇴 후 활동’은 이제 농사에서 화석과 지질학으로 바뀌고, 다시 문학과 연극으로, 병자에 대한 치유법으로, 하여간 온갖 방향으로 개구리 뜀박질 하듯 하는데, 독자가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귀엽고 슬픈 실패들로 완전하게 점철된다.
 그래, 그게 사는 방법이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몇 번이나 여행했던 부유한 청춘이었던 플로베르가 이제 병상에 누워, 조카딸의 파산을 면해주기 위해 마치 고리오 영감처럼 선택한 자발적 가난에 허덕이며, 동네에 있는 마자린 도서관의 명예직에서 나오는 약간의 수입과 미미한 수준의 연금에 기대 마지막으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니 부바로와 페퀴셰가 저질렀던 것처럼 완전한 실패의 연속에 불과했던 것. 자신의 눈엔 그렇게 보였겠지. 지나고 보니 그저 한 바탕 코미디로. 그리하여 미완성 유작이 출판된 지 130여 년이 흘러 작품을 읽는 저 아시아 변방의 사내도 부바르와 페퀴셰가 벌이는 칼바도스 맛의 실패를 보며, 그래, 그게 사는 거야, 오늘 밤에도 쐬주 한 병 해야겠다, 라고 마음먹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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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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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알제리에 파견나간 프랑스 군인 드강 대위가 현지 왕족의 따님 한 분과 연애를 하더니 딸을 낳았다. 왕족의 따님은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까운 명을 다해, 아무리 식민지라도 남의 나라 땅 알제에서 남자 혼자 젖먹이를 키우기 난감한 장교는 두 살 먹은 딸을 데리고 잠깐 귀국, 베르농에서 잡화상을 하는 사촌누이 라캥 부인을 찾아와 어린 딸 테레즈를 맡기고 다시 알제리로 갔다가, 곧바로 전사해버렸다. 테레즈는 군인 아버지와 혈통 좋은 왕족 엄마를 닮아 튼튼하고 씩씩한 떡잎을 자랑하는 건강한 소녀로 자라났다.
 라캥 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아들 하나만 둔 과부인데, 테레즈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들 카미유가 어려서부터 도무지 알통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어 늘 병치레를 해야 했다. 그래서 늘 약을 먹어야 하는데, 불쌍한 카미유가 약을 먹지 않겠다고 징징거리는 걸 마음이 약해 억지로 먹이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던 라캥 여사는, 테레즈더러 카미유하고 같이 약을 먹으라고 은근히 달래서 천애고아 카미유도 약을 먹게 하는 잔머리를 몇 년 동안이나 굴려, 이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고 튼튼하기만 한 테레즈 역시 매일 한 움큼의 약을 입 안으로 털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골골거리는 카미유와 어려서부터 한 방에서 잠을 잔 테레즈는 본능적으로 카미유와 결혼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숙명을 체득하고 있었다. 평생 골골거리는 카미유의 병수발을 할 별자리를 타고났다는 걸. 이 결과로 몸과 마음이 튼튼 강건했던 테레즈는 몸은 몰라도 정신적으로 어딘가 좀 이상한 강박에 휩싸인 청춘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미유와 테레즈가 점점 자라 각 스무 살, 열여덟 살이 되고 이제 각방을 쓰게 되었을 때, 라캥 부인은 카미유에게 테레즈가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는 결혼할 수 없다고 선언을 하고, 기어이 그때가 될 때까지 굳세게 기다렸다가 스케쥴에 따라 둘을 결혼시켜버린다. 아무 사랑의 감정도 없이 그냥 그렇게 되기로 예정했던 거니까. 그리고 곧바로 라캥 집안은 베르농에서 25년 동안 운영해온 잡화상과 살림을 접고 파리의 습기 많은 지역, 퐁네프 파사주로 옮겨 역시 작은 잡화상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좁고, 습기 많고, 어두컴컴하고, 끈적이고, 냄새나는 지역. 프랑스 소설 가운데 퐁네프 지역이 가끔 등장한다. 밤이 깊으면 주로 도둑떼, 거지들, 적어도 노숙자들이 행인을 협박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음습한 지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얼핏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오른다, 이 책에서도 결코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불쑥 나타나는 카미유의 어릴 적 소학교 친구 로랑. 적당한 키에 완강한 몸매와 두텁고 짧은 목. 솥뚜껑만한 손바닥의 건강체질. 일찍이 아버지가 파리로 보내 대학공부를 시켜주었지만 짜식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등록금 가지고 그림 그리는 친구들하고 몇 년 잘 때려 먹었다가 아버지한테 들켜 거의 부자의 연이 끊어지고 만 처지다. 서양의 아버지는 이렇게 겁난다. 한 번 삐딱하면 부자지간도 그걸로 끝. 심지어 로랑이 결혼하겠다고 허락해달라고 편지를 보내자, 베르농의 농부 아버지가 답장을 하길, 결혼을 하든지 목을 매달든지 선생님 마음대로 하세요.
 자, 냄새 나시지? 건강체질의 테레즈와 시들시들, 골골한 남편. 그리하여 결혼은 했지만 숫처녀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젊디젊은 테레즈의 눈에 근육이 불뚝불뚝한 로랑이 들어온 것. 로랑도 한 눈에 보니까 별로 예뻐 보이지는 않지만 묘하게 끌리는 테레즈의 무뚝뚝한 모습이 눈에 삼삼한데다가 여인을 품어본 지 하도 오래라 밀려오는 욕정이 뿜뿜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그래. 당연히 교통사고 난다. 거의 매일 카미유의 집에 찾아오던 그가 어느 날 하루 방 안에 테레즈와 단 둘이 남겨진 잠깐의 순간, 그녀의 허리를 부여안고 깊게 키스를 해버리고 만다. 안 돼 이 작자야! 거칠게 반항하는 것도 아주 잠깐. 이내 양 팔을 아래로 축 내리고 근육질의 무자비한 입술을 고스란히, 맛나게 받아들이는 테레즈.
 자, 여기까지.
 이 작품으로 스물여섯 살의 에밀 졸라는 처음으로 문제적 작가의 위치에 올랐다고 한다. 소설 자체를 놓고 당시 비평가들은 비도덕적이네, 더럽네, 말이 많았던 반면, 특히 세잔, 마네, 드가 등의 화가들에겐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는데, 화가들과의 교류는 아시다시피 졸라가 평생을 걸쳐 집필하던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한 권이며, 제르베즈 아줌마의 장남 클로드가 주인공 화가로 나오는 <작품>의 출판시점까지 계속된다. (솔직히 <작품> 중에서 클로드를 너무 미친놈으로 그려놓기는 했다. 열받은 세잔이 졸라에게 절교를 선언한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그러니까 졸라는 자신의 문학인생이 막 시작하던 시점인 스물여섯 살부터 소위 자연주의적 작품을 생산했던 것이다.
 그렇다. 지금 나는 <테레즈 라캥>도 자연주의 장르에 포함시켜버렸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 한 단어 가지고 다음 스토리를 짐작할 수도 있으리라. 연애 백과사전 8장엔 남녀가 걸어갈 때 서로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나오고, 9장엔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10장엔 뭐가 나올까? 그렇다. 테레즈와 로랑 역시 마지막 10장까지 진도를 빼고, 자연주의 작품에 특별한 감미료인 범죄가 나온다. 무슨 범죄? 다 짐작하시리라 믿음.
 범죄는 또 다른 범죄를 부르는 법. 작 후반에 가면 졸라의 장황한 설명에 좀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분명히 그건 마지막 장면의 정당성을 위해 열심히 준비작업을 하는 것일 테다. 나도 눈치 좀 있는 편. 벌써 짐작하고 남음이 있음에도 젊은 졸라, 참 구구절절 말도 많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범죄의 ‘방법’이 의외이기는 했다. 짐작도 못했다.) 그래서, 그리고,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를 몇 권 읽어본 내 감상으로는, 나중에 졸라가 그야말로 ‘무르익어서’ 어떤 글을 썼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테레즈 라캥>이 그리 훌륭한 졸라는 아니란 의견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 대신 젊은 졸라의 팔팔한 미숙(‘졸라의 미숙’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작가적 미숙’이란 말은 절대 아니다. 오해 마시라!)을 구경하는 심정이라면 일독을 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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