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 이상하게 안 읽히는 작가였다. 그래 이번에도 <별을 먹는 사람들>을 사놓고 4백 쪽이 넘어가는 장편인데 이걸 어떻게 읽을까, 조금 근심을 했었다. 하지만 기우. 재미있게 잘 읽었다. 로맹 가리가, 이번에 처음에 알았는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처럼 러시아 태생으로 어려서 서유럽으로 이주한 사람이었다. 물론 나보코프처럼 대 귀족 출신도 아니고, 이미 혁명도 한참 지난 1928년에야 프랑스 니스에 정착한 차이는 있지만. 중요한 경력으로 가리가 불가리아, 미국, 볼리비아, 이중에서 특히 라틴 아메리카인 볼리비아에서 외교관으로 체류한 적이 있다는 점으로 보인다. 그래 이이의 작품 가운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등의 라틴 아메리카를 무대로 하는 것들이 있나보다. 내가 가리에 대해 뭘 알아서 이렇게 말하는 건 전혀 아니고 그냥 이이의 라이브러리를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하는 수준. 이번에 읽은 <별을 먹는 사람들> 역시 라틴 아메리카의 가상 국가에서 한 독재자의 마지막 하루를 좇았다.
  책을 열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호아트 박사. 보잉기 조종석 보다 아스텍 피라미드 꼭대기의 제사장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기장이 모는 비행기를 타고 자포츨란 반도 상공을 날고 있는 중이다. 자포츨란이 어디 있는지 구태여 찾아볼 필요 없다. 내가 먼저 검색해봤다. 그런 곳, 없다. 하여간 그랬는데, 비행기가 예정에도 없던 공군기지에 착륙하더니 한 노부인을 태우는 것. 세상에, 비행기를 도중에 세워서 부인 한 명을 태워? 그렇다. 시기는 대충 1970년대 초 같고, 당시 라틴 아메리카는 못 말릴 수준의 독재와 밀림 속 인민혁명군의 무장투쟁이 한참일 때였으니, 쿠바 사태 이후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의 적화를 방지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독재자들을 지원하던 시기였고, 특히 북부 라틴 아메리카의 독재자들은 저 유라시아 반도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대한민국의 독재자보다 훨씬 더한 무소불위의 권세를 자랑했으니, 독재자가 자기 엄마 한 명을 수도로 불러들이기 위해 그깟 하늘을 나는 보잉기 한 대를 공군 기지에 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호아트 박사는 미국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 수준의 기돗발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어 비록 가톨릭 국가이기는 하지만 노부인의 아들이자 이 나라의 지배자인 알마요 장군이 정식으로 초청해 막 영공을 넘어온 차이다. ‘금발의 천사장’이란 별명과 천부의 쇼맨십, 설득력과 무대매너, 여기다가 드라마틱한 효과를 연출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자주, 유명 영화배우보다 잦은 빈도로 신문기사에 등장하지만 찬사와 거의 비슷한 비율로 비난, 불만, 악의에 찬 야유의 논평을 받는 목사. 신기한 건 비난과 야유를 받는 것과 비례해 이이의 인기가 치솟는다는 것. 뭐 우리나라에도 비난을 받을수록 인기가 치솟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하다. 장관을 비롯한 집권자들한테 욕을 먹을수록 지지도가 올라가는 사람. 하여간 호아트 박사는 매년 세후 백만 달러 이상을 교회에 벌어다주면서 자신은 교회로부터 받는 봉급만 수령해 딱 그 수준에 안분하는 청렴한 인물인데, 그만큼 종교적으로는 까다롭다는 이야기겠지 뭐.
  이 목사가 공항에 도착하니, 독재자의 초청에 의한 방문이니까 당연하게 별도의 수속 없이 곧바로 리무진에 승차를 하는데, 자연스레 자기 혼자 탑승하는 줄 알았으나 동행이 있는 거였다. 마른 몸매에 키가 큰 매력적인 외모의 코펜하겐 출신 덴마크 사람 아게 올슨. 그리고 올슨의 어깨 위에 앉은 올레 옌슨. 옌슨 씨는 살과 뼈와 내장과 피 대신 목재로 만든 인형이다. 덴마크 인이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삼은 복화술의 주인공. 복화술? 이 이야기 하니까 떠오르는 소녀가 한 명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이건 한 번 보고 가자.

 

 

  하여튼 박사는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닌 상태로 사화산 지대를 지나는데, 수백만 년 전에 지축을 흔들며 폭발했던 상처가 이젠 놀라운 경치로 남은 해발 2천7백 미터 고지를 지나면서 보니 목사가 탄 차 뒤로 캐딜락이 네 대가 더 따라오는 거였다.
  먼저 당당한 풍채와 콧수염과 턱수염이 아주 멋진 40대 중년 남자로 자신을 마르세이유에서 온 앙투안이라 소개한다. 앙투안 씨는 공을 열두 개 가지고 공연하는 프랑스 사람으로 2년 전에 샤를 드골에게 직접 레지옹 도뇌르 십자 명예훈장을 받은 권위 있는 예술가. 자칭 18세기의 프랑스 전통을 이어가는 고전주의자로 함께 동행한 나이 든 미국인 공연 캐스터 찰리 쿤으로부터 ‘현재로서는’ 분명한 일인자의 자리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이라는 단서 조항을 유난히 강조해 발음했던 것이 좀 문제이긴 하지만.
  공연 기획자 찰리 쿤은 본명이 ‘메지라 쿠라’이며 시리아 알레프 출생으로 40년도 넘어 전에 미국으로 이주해 공연기획사에서 일을 해와, 지금은 하필이면 알마요 장군이 주식의 75퍼센트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 있는지라 장군의 요구에 맞는 할리우드 여자 영화배우를 물색, 조달하는 채홍사 역할과, 특히, 특이한 공연을 하는 새로운 재능을 찾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존 셸던이란 이름의 변호사도 끼어 있다. 이이는 알마요 장군의 어마어마한 미국 투자 자금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스위스 비밀 계좌에도 깊숙하게 관련이 있다. 이이와 동승한 사람은 허약한 젊은이로 안톤 마누레스코라는 이름의 루마니아 사람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유명 연주자이긴 하다. 루마니아의 유명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게오르게스 에네스코의 애제자로 비발디에서 프로코피예프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엄청난 곡들을 아무 받침대 없이 물구나무로 연주하는 기이한 광대다. 이러한 연주 방식으로 돈을 벌어 이젠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도 한 대 장만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 조만간 똑바로 서서 연주회장에서 연주하는 정식 바이올리니스트로 데뷔할 생각을 하고 있다.
  쿠바 젊은이도 한 명 있는 바, 이 젊은이는 도색, 즉 음란 공연의 대가로 쉬지 않고 열일곱 번의 정사를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벌일 수 있는 쿠바 판 변강쇠다. 이 변강쇠와 동승한 사람이 무지하게 중요한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일찍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세워 타고 도착한 장군의 어머니. 이이는 적도 지방의 무더운 계곡에서 사는 인디언 쿠혼 족으로 (‘쿠혼’ 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검색해보지 마시라. 내가 먼저 해봤으니. 안 나온다. 가리가 만든 가라 원주민 종족이다.) 명품 가방에 마스탈라 잎을 잔뜩 채워 가지고 늘 한입 가득 말린 이파리를 씹고 있다. 이 이파리를 씹으면 잎에 든 성분 때문에 일종의 환각상태에 접어들어 세상사가 그렇게 힘든 줄, 심지어 배고픈 지도 모를 정도라, 마스탈라 잎을 씹는 사람들을 일컬어 “별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단다.
  이들이 수도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길가에 있는, 더럽기가 말할 수 없으나 어울리지 않게 현대식 전화기가 카운터에 놓여 있는 카페에서 차를 세우더니 이들을 호송하던 가르시아 대위가 모처에 전화를 걸고는 갑자기 독한 데킬라를 벌컥벌컥, 마누라 도망가 소주 세 병 마시고 농약 먹는 인간처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큰 소리로, 모랄레스 대령님, 이런 중요한 사안은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야겠습니다. 어쩌구저쩌구 전화통에다 대고 흥분해서 떠들어 댄다. 몇 분 후, 드디어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이자 하늘을 나는 보잉기도 입 한 번 벙긋해서 떨어뜨리는 호세 알마요 장군과의 직접 통화가 이루어졌고, 당연히 그의 지시도 직접 받게 된다.
  “잘 듣게,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고. 거기 있는 자들을 모두 총살한다. 즉시 이행하도록. 잘 들었나, 가르시아? 즉시 한다. 시신은 산으로 가져가게.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그리고 모랄레스는 매장하라고 했겠지만 매장은 하지 말게. 사람들 눈에 띄도록 해야 할 걸세. 도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버리게. 잘 보이는 곳에다. 그러고 나서 나한테 보고하도록 하게.”
  지금 알마요 장군은 자신이 직접 초청한 미국 최고의 기돗발 목사와 예술가들, 심지어 자기의 생모, 게다가 변강쇠까지, 다 총살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거였다. 심지어 이곳에 막 도착한 자신의 미국인 애인까지도. 도대체 이거 뭐야. 진짜 이 사람들의 앞날, 앞날은커녕 몇 분 후에 저 먼 이국 땅, 경치만 좋은 화산지대에서 정말 숟가락 놓는 거야? 힌트. 아게 올슨의 어깨 위에 앉은 올레 옌슨은 책의 저 뒤편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음…… 피와 살로 만들어진 당신들 중 누군가 이 지상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라미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4
윌리엄 골딩 지음, 안지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뜬 밤하늘 달이 꽉 차면 정여사 제사다. 정여사 살아생전 고등학교 훈장질을 하셔서 그랬는지, 퇴직은 중학교에서 했지만, 소년들 이야기인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그리 상찬을 했었다. 골딩이 노벨상을 탄 1983년에 번역 출간된 책을, 나는 일 년 후 지긋지긋한 군대생활을 마치고야 읽었던 바, 군역을 마치고도 이런 내용을, 그러니까 매일 밤 인간이 인간에 대한, 같은 병졸이 병졸에 대한 구타와 비인간적 대우에 아직도 학을 질려하는 아들한테, 인간본성 속의 야만과 상호의 이리상태에 대한 책을 권하시다니, 정여사께서 벌써 노망이 들기 시작한 건 아닌지 의심하며, 그저 몇 페이지 읽다가 치워버렸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정여사가 천국의 즐거움을 찾아 가시고도 일곱 해가 더 흐른 2014년에 드디어 <파리대왕>을 정식으로 읽게 되는 바, 이게 과연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소설가의 대표작으로 합당한지 의아했었던 것이, 너무 노골적으로, 침을 튀며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약시로 두꺼운 오목렌즈를 끼고 다니는 아이의 안경알로 태양광을 집중시켜 불을 얻는다고? 이게 웬일이야? 옥스퍼드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던 골딩이 이렇게 썼다면, 실수가 아니라 극한 은유, 아니면 우화일 것인데 나는 그 비의를 밝히지 못했던 바, 차라리 이 우화 또는 극한 은유를 비난하는 치사한 방법을 택했었다.
  그리하여 한참동안 골딩을 선택하지 않았다가 36개월이 흐른 뒤에 <상속자들>을 읽었다. 참신하게도 주인공이 네안데르탈인. 평화를 사랑하는 네안데르탈인들이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사냥을 당한다는 내용. 이 책을 읽고 다시는 윌리엄 골딩을 읽지 않겠다고 했는데, <상속자들>이 후진 책이란 뜻은 ‘절대’ 아니었고 다만 나하고는 극한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런 작가들이 몇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읽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껴야 했던 작가 쿳시. 그러나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상속자들>을 읽고 또다시 36개월이 흐른 2020년 11월에 내 선택은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표지에 실은 <피라미드>였다. 세 권의 골딩은 삼 년 터울로 매 11월에 읽은 꼴이니 2023년 11월에는 어떤 골딩을 읽게 될까. 그때까지 책을 읽을 정도로 시력을 유지할 수 있기는 할까.
  <피라미드>는 기본적으로 계급에 관한 이야기다. 무대는 영국의 소도시 스틸본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지역. 비가 오는 여름. 주인공은 18세. 여름이 끝나면 옥스퍼드로 화학을 공부하러 떠나야 하는 나, 올리버가 아마추어치고는 매우 뛰어난 실력으로 쇼팽의 연습곡 12번 다단조를 연주하고 있다. 온 종일. 당연히 작품 10의 12번 <혁명>인줄 알았는데, 저 뒤로 가면 작품 25의 12번 <대양>이었음이 밝혀진다. 나는 <대양Ocean>이란 곡이 있는지도 몰랐다. 올리버는 이 곡을 연주하며 18세 남자의 넘치는 리비도가 필요 이상의 성녀로 승격시켜놓은 여인에 대한 희망 없는 격정적 사랑을 표현하고 있던 거였다. 18세의 남자가 어떠냐고? 당신이 여성이라면 이순원이 쓴 <19세>를 읽어보시라. 우리나라 19세면 만으로 18세니까. 그 시절의 남자들은 참 어렵다. 나는 결코 소년시대로 돌아가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은데, 물론 군대 가기 싫어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다 사춘기를 한 번 더 보내기가 죽기보다 싫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모젠 글렌틀리가 그만 약혼을 해버렸던 것. 이모젠은 스물세 살. 물론 이모젠 아가씨가 올리버의 생각처럼 우아하고 고결한 여성이기는커녕 머리가 비었고 무감각하며 허영심이 충만한 여성이란 건 독자들이 나중에 발견하겠지만 그건 독후감이 끝나고 직접 읽어봐야 아실 터.
  그런데, 무대가 어디? 그렇다, 스틸본. 원문은 Stilbourne 이지만, 사산死産을 뜻하는 Still born과 발음이 같다. 아니면 적어도 매우 비슷하다. 아, 짜증나. 누가 골딩 아니랄까봐. 이랬다. 한 번 이런 마음이 드니까, 이어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직 말도 한 번 붙여보지 않은 열여덟 살 아가씨 이비 베버컴이 과감하게 자신의 창문에 작은 돌을 던져 잠을 깨워 아직 비가 줄줄 내리는 밖으로 불러내는 것도, 옆집 사는 크랜웰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로버트 이완이 그녀와 함께 차를 몰고 가다가 얕은 연못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이제 조금 후면 또다시 골딩 표 엽기 사건이 벌어지리라 예상할 수밖에. 그러나 아니었다. 올리버가 이비를 따라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달려간 작은 연못엔 바지도 못 입고 신발 한 짝도 없어진 채 이들 득득 부딪히며 와들와들 떨고 있는 의사 댁 아드님 로버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 동네 최고 계급이랄 수 있는 돌리시 부인의 2인승 자동차를 훔쳐 타 으슥한 연못가에 와서 둘이 비비적대는 것까진 좋았는데, 누군가의 엉덩이 놀임에 의하여 브레이크가 풀리는 바람에 만유인력에 이끌려 내리막에 있던 연못에 빠져버렸다는 것.
  그러니까 이게 로버트, 올리버, 이비의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고, 또한 독자가 이들로 대변되는 스틸본 지역의 계급 상황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로버트의 이완네 식구들과 올리버의 식구들은 서로 데면데면하다. 로버트와 다른 의사의 아들들이 올리버에게 ‘너는 내 노예다.’라고 선언한 적이 있고, 선언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 그들은 의사의 아들인 반면 올리버는 의사의 지시에 의하여 약을 조제해야만 하는 약사의 아들이라는 점으로, 당연히 아이들은 이 때문에 서로 투닥투닥 싸웠고,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져 공기총으로 상대방의 머리위에다 대고 위협사격까지 하는 선까지 갔다가, 비즈니스를 계속해야 하니까 다시 정상을 찾았던 것. 여기에 이비는, 일단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역인 챈들러스 크로스에 산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처지는데다가, 아버지 베버컴 중사로 말하자면 시청관리인이며 울타리와 교구의 관리인이자 18세기 의상을 걸친 채 마을의 정리, 그러니까 잡부보단 좀 나은 자리에 있었으니, 알기 쉽게 부등호를 사용한 식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로버트 > 올리버 >>> 이비
  근데 어찌하여 로버트와 이비가 차 안에서 서로 부비적댈 수 있었느냐고? 서로 눈이 맞을 때까지는 계급이 없다. 이들의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풀린 걸 알아챘을 때는 로버트의 바지가 발목까지 내려와 있는 상태였고, 이비의 발이 차창 위에 올려 있었기 때문에 눈을 뻔하게 뜬 채 그대로 연못에 잠겨야 했던 것. 이런 상태에서 수습을 위해 올리버가 도착해 성공적으로 이들을 위기에서 구하지만, 다음날 이비의 눈엔 베버컴 중위에 의하여 시퍼런 원이 그려져 있었고, 베버컴 씨는 마을을 돌면서 “호, 와, 호, 와, 호, 와! 찾습니다. 챈들러스 레인에서 채플로피즈와 챈들러스크로스 사이에서 금 십자가 목걸이. 이니셜 E와 B가 있어요. Amor V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고 새겨져 있고요. 찾은 사람에겐 보상금이 있습니다.” 라고 외치며 다닌다. 어제 와중에 목걸이를 잃어버린 거다.
  그리고 다시 계급이야기. 올리버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로버트는 다음날 아침 올리버에게 약간의 비웃음을 받고는 곧바로 싸움을 청해 투닥투닥 주먹다짐을 벌여 코가 깨진다. 베버컴 씨는 딸의 눈에 안와골절을 입혔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단단한 주먹을 날린 반면에 마을의 유일한 가톨릭 신자인 베버컴 부인 생각엔, 로버트 이완 군은 도무지 올라갈 수 없는 나무이지만 그래도 올리버 집안 정도는 적어도 넘볼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 여겨 올리버를 볼 때마다 호의 가득한 웃음을 보낸다.
  그럼 이비는? 로버트에겐 대단히 유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토바이. 날씬하고 키가 크다는 거. 올리버는 단단하지만 투박하다. 1920년대에 오토바이가 있는 젊은이가 그리 흔했을까. 그러나 로버트는 크랜웰로 돌아가야 했고, 아직 옥스퍼드에 입학하려면 시간이 남아 있는 올리버는 시시때때로 이비에게 돌진하는데, 어떻게 됐을까? 이들의 나이 18세. 이비로 하여금 올리버의 깊은 상흔, 이모젠의 그림자를 지우게 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안 알려줌.
  골딩의 작품으로는 예외적으로 재미있기까지 하다. 뒤에 해설엔 리얼리즘 작품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깟 사조야 무슨 관계가 있으랴. 여태 이야기한 건 전체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먼 훗날 이제 중년 또는 노년을 맞은 올리버가 고급 승용차를 몰고 스틸본 시로 돌아와 추억이 서린 장소를 돌아볼 때까지 굵직한 에피소드 세 개가 들어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페터 바이스 지음 / 한국문화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에잇.

독자가 책 읽고 독후감 쓰면 그걸로 끝이지, 역자, 출판사가 구질구질하게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이 짜증나 내용은 다 삭제해버렸다.

한 번 책을 내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거, 모르시나?

 

독자여, 도서관에 가서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해보시라. 내가 뭐라 썼겠는지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랑캐꽃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이용악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용악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1914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경성이 청진 바로 아래에 있긴 하지만 심지어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삼수, 갑산보다 높은 위도에 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 정도의 위도라면 고구려-당-거란-여진-원-고려-조선이 땅 주인 노릇을 했을 터.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내 귀로 듣기엔 참 독특한 방언을 쓰는 지역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보면 이용악의 집안이 대대로 두만강변에 터를 잡고 소금 밀수를 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용악이 어린 시절에 부친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래 고학으로 경성고보, 지금 이름으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부터 역시 극도의 궁핍 속에서 동경의 상지대 신문학과를 다녔는데, 22세인 1935년에 “신인문학”이라는 잡지를 통해 식민지 경성에서 등단했고 36년엔 도쿄에서 김종한과 동인지 “이인二人”을 간행, 37년에 역시 도쿄의 출판사에서 첫 시집 《분수령》, 38년에도 같은 출판사에서 《낡은 집》을 출간하고 39년에 귀국하니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다.
  34년에서 38년까지를 온통 도쿄에서 있었다는 것은 이용악이 당시 경성의 문학판을 흔들던 카프에서 자유로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특히 1935년에 경성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카프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임화처럼 고문 끝에 죽음의 위협을 견디지 못해 조선문인보국회에라도 가입해 명을 이어갔을까? 이 질문은 1942년 이용악이 아예 붓을 꺾어버린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얻어터지고 서대문에 다녀왔어도 문인보국회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거 같다. 대신 1942년에 그렇듯 함경북도 경성의 고향집에 틀어박혀 조용히, 언제 올지 모르는, 결코 올 것 같지 않은 해방을 기다렸겠지.
  그런데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는데 어떻게 경성고보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단히 총명했던 거 같다. 어디서 읽을 듯한데 이이를 우리나라 3대던가 5대던가, 하여간 몇대 천재 가운데 한 명으로 꼽는 것 같다. 함께 꼽힌 사람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천재 수준이 아니면 째지게 가난한 집에서 아이가 노동을 해 먹을 것을 벌어야지 어떻게 학교엘 다닐 수 있었겠나. 1930년대에.
  이이는 대학에 다닐 때 방학이면 집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만주, 아라사, ‘우라지오’라고 부르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여러 곳을 답사하며 식민지 조선의 인민들이 겪는 고초를 많이 경험했다고 한다. 이때 직접 보고 느낀 것이 시집 《오랑캐꽃》에서 여러 편 시화되고 있으며 동시에 깊은 호소력을 확보한다. 나는 이용악의 시를 처음 읽는 바, 애초에 공산주의자로 알고 있던 이용악이 아무런 운동의 메시지 없이 간도에 흘러든 조선의 유민들을 이리 노래할 수 있었는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어쩌다가 이제야 이 사람의 시를 읽게 됐는지 한탄을 할 수밖에. 그리하여 인용하기엔 조금 길지만 전문을 옮긴다.



  전라도 가시내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승냥이 또는 범)도 인젠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 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궈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전문)



  그냥 시를 읽으면 시인이 어떤 노래를 하고 있는지 그대로 알 수 있다.
  문제는 4연인데, ‘불술기’는 “기차를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라고 한다. 옛 시를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모르는 단어가 속출하면 그게 어떤 뜻인지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새롭게 배우는 거다. (참고: 3연의 ‘방자’는 “남이 못되거나 재앙을 받도록 귀신에게 빌어 저주하거나 그런 방술을 쓰는 일”) 시를 읽으면 그냥 사정이 눈에 그려지니 새삼스레 내가 읽은 감상을 쓸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 마디만 하자면, 저 먼 북국에서 마주친 동포 처녀를 바라보는 시, 이런 건 처음 봤다.
  총 50편의 시가 실려 있다. 내 정서엔 위에 인용한 <전라도 가시내> 같은 간도 땅 혹은 러시아 지역까지 널리 퍼져 있던 조선인들을 그린 시가 제일 좋았다. 이용악 자신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해 그런지 없는 사람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는 장면을 스케치 한 시편들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 전부 다는 아니지만 거의 다는 슬픈 사람들이다. 그들이 불가에 모였다.



  슬픈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면 알아 못 볼
  사람들끼리
  비웃이 타는 데서
  타래곱과 도루모기와
  피 터진 닭의 볏 찌르르 타는
  아스라한 연기 속에서
  목이랑 껴안고
  웃음으로 웃음으로 헤어져야
  마음 편쿠나
  슬픈 사람들끼리  (전문)


  비웃은 겨울에 제철인 생선 청어, 타래곱은 곱창의 함경도 사투리고, 도루모기는 도루묵이다. 가난해 슬픈 사람들이 조그맣게 피운 불 주위에 모여 싸구려 생선인 청어와 도루묵, 곱창과 닭 머리를 구워 먹는다. 이 밤에 또는 날이 새자마자 서로 갈 길 떠나야 할 사람들이. 시를 읽는 독자마저 슬프고 쓸쓸한 웃음 웃게 만드는 시.
  그러나 해방을 맞아, 오랜 절필을 끝내고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들은 오직 혁명을 위하여 복무할 뿐이라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신념에 의한 시작詩作이었겠으나 작게는 이용악의, 크게는 우리 국문학을 위해 작지 않은 손실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조정연구소 아모르문디 세계문학 5
아흐멧 함디 탄피나르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모르문디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선 이름의 작가이지만 터키에선 ‘근대문학의 거장’이라거나 ‘터키문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작가라고 한단다. 탄피나르가 터키의 로컬 작가로만 명성을 유지하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이 그의 수필에서 탄피나르를 “네 명의 외롭고 슬픈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는 바람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역자의 해설에 적혀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간조정연구소>는 1954년 작품으로 1962년 작가가 죽은 후 출간이 된 장편소설이다.
  아흐멧 함디 탄피나르는 1901년생. 완전한 20세기 사람. 이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터키 공화국 수립 와중의 혼란과 이어지는 독재정치를 온통 다 겪었다는 의미인데, 1962년에 세상을 떴으니 평생 좋은 꼴 한 번 못 보고 이런 와중 속을 살다 간 인물이다. 탄피나르는 다른 지식인, 작가 등과 달리 체제에 대놓고 저항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게 큰 까탈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다 투사가 될 필요는 없으니.
  책의 제목이 <시간조정연구소>. 나는 책을 읽기 전에 혹시 오스만 투르크의 위대한 전통과 문화에 입각한 ‘시간개념’ 또는 ‘시간철학’이 소설 속에 담겨 있지 않을까 궁금했고, 한편으론 SF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조금쯤은 기대했지만, 정작 읽어보니 전적으로 이런 내용이 아니라고는 하지 못하겠으나, 그것보다는 20세기 초중반까지 작게는 터키 사회, 넓게는 당대 문명, 체제, 문화 등에 대한 풍자 또는 희화화라고 읽는 것이 타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내가 지레짐작했던 시간 개념 또는 20세기 초반에 주로 독일어를 상용하는 과학자들이 밝힌 ‘시간도 변한다!’는 새로운 발견에 과도하게 집착했기 때문에 환갑, 진갑이 지난 늙은이 하이리 아르달이 등장해 자신이 쓴 책 <세이흐 아흐멧 자마니와 그의 업적>이란 책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주 조금 어리둥절했다. 심지어 읽기를 중도에서 그만 두고 몇 시간을 흘려보낸 다음에야 다시 읽기를 시도했을 정도로.
  ‘세이흐’를 굳이 번역하자면 ‘maestro’ ‘장인’ 정도로 할 수 있다. 아흐멧 자마니로 말할 것 같으면, 17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 술탄 메메트 4세 시대의 인물로 세계최초로 시간을 초 단위로 세분한 시간 과학자. 일찍이 그의 어록을 보자 하면, “신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모범을 따라 시계를 만들었다.”라든지, “시계는 인간의 내적 우주와 공존하고 있다.”, “시계와 시간이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적인 역할을 한다.” 비슷한 명언, 명구가 가득하다. 물론 많은 부분이 20세기 초반을 살다 간 걸출한 시계공 누리 에펜디가 평소에 즐겨 쓰던 말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기는 하지만.
  화자이자 주인공 두 명 가운데 한 명인 하이리 아르달은, 숱한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자주 그러하듯이 무진장한 거부의 가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재산의 거의 모두를 거덜 냈고, 이어 쥐꼬리만큼 남은 나머지 재산도 아버지가 말짱 말아먹어 이제 성당의 생쥐처럼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다. 어려서부터 읽기와 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나중에 자그마치 18개 언어로 번역되고 비평을 받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세이흐 아흐멧 자마니와 그의 업적>의 저자가 되는 별자리를 타고 났는데, 사실 알고 보면 어릴 때부터 공부에 관심이 없어 최종학력이 중학교 중퇴에다가, 동네 시계수리공 누리 에펜디의 공방에 놀러가 어깨너머로 시계 만드는 법이나 고치는 기술을 좀 배우려 했지만 손재주와 한 가지 태스크에 집중하는 힘이 천부적으로 부족해 전형적인 아마추어임이 금방 드러났다. 하지만 이이의 관심은 온통 시계에만 집중되어 있었으니 이 아니 비극이랄까.
  하이리 아르달은 1914년에 열아홉 살이었다. 당연히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꼬박 4년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돌아와, 조국을 위해 싸웠으니 정부가 알아서 잘 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알아서 잘 해줄 대상이 너무 많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는 걸 감수해가며, 별 하는 일 없이 빌빌대다가, 첫 번째 아내 에미네와 결혼을 해서 딸 제흐라와 아들 아흐멧을 낳고, 에미네가 젊어서 죽는 바람에 어린 남매를 어미 없이 키울 수 없어 열여섯 살 어린 두 번째 아내 파키제와 처형, 처제와 새 가족을 이루어 이럭저럭, 사실은 지긋지긋하게 살게 되는데, 하이리가 마흔 너머까지 그의 생활에 공통점이라고는 언제나 가난하다는 거. 그래 이런 가난한 터키 인의 이스탄불 광경이 묘사되던 중에, 언제나 자기 코를 꿰고 있는 질곡, 가족들과 될 수 있는 대로 좀 떨어져 있기 위해 커피하우스 단골이 되고, 몇 년이 지나 아내와 처형, 처제의 드레스를 제외한 집안의 거의 모든 살림과 의복을 팔아먹었을 때 쯤, 혜성같이 등장하는 하이리 필생의 은인 ‘할리트 아야르시’를 만난다. 이이는 하이리가 모종의 유산 비슷한 소송에 휩싸여 원치 않게 끌려간 정신병원에서 터키 최초로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라미즈 박사의 소개로 만나고, 할리트 아야르시는 하이리, 라미즈 박사를 규합해 정부 연구기관인 <시간조정연구소>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훗날 할리트 아야르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에 대한 회상록을 쓰기에 이르니 바로 이 작품, <시간조정연구소>가 되겠다.
  졸지에 <시간조정연구소>의 부소장에 등극한 하이리는 연구소 직원의 절반을 자기 친척이나 친지로 채우고, 나머지 절반은 할리트 아야르시의 친척과 친지로 구성하는데, 처음엔 이스탄불 시와 정부로부터 거액의 예산을 받아 운영하다가, 나중에 연구소의 위상이 커지게 되면서 전 국민으로부터 벌금 또는 범칙금을 받아 운영비로 사용하는 수준에 이른다. 어떤 경우에 범칙금을 내야 하느냐 하면,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시계가 구역의 공식 시계와 맞지 않으면 5 쿠르쉬의 범칙금을 물리고, 인근의 또 다른 시계와 안 맞으면 두 배에 해당하는 범칙금을 내야 한다. 물론 이 법령이 국회를 통과했는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자. 근데 어떤 시계라도 정확한 현재 시간을 측정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잖은가. 이리하여 사람들이 좀 북적이는 거리에서 범칙금을 거두면 순식간에 거액을 모을 수 있어서 이것도 약간의 문제가 되긴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하이리가 예리한 아이디어를 냈으니, 대다수의 시민들로부터 극적인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한 바, 여러 차례 위반했을 경우엔 10~30 퍼센트의 벌금을 할인해 준다는 것. 정말로 난리가 났다. 이스탄불 시에서만 시행했을 때, 정말로 할인이 가능한지 터키의 온갖 다른 도시 사람들이 이 기적 같은 벌금 할인 제도를 체험하기 위해 이스탄불로 몰려오는 바람에 기차 노선을 증편했을 정도이며,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도 혁신적인 범칙금 규정을 실감하기 위해 너도나도 이스탄불 행을 감행해 때 아닌 숙박, 요식업 등의 관광수지가 폭등했다고 주장한다.
  이거 도대체 뭐야? 풍차를 향해 로시난테에게 전속력 돌격을 명하는 돈키호테. 할리트 아야르시에게 키호테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키호테는 둘시네아 공주도 구하지 못하고 풍차 날개에 걷어차여 늙은 몸이 엉망이 되지만, 능력 있고 행운이 따르는 하이리란 이름의 산초 판사를 거느린 할리트 아야르시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대단한 <시간조정연구소>의 소장 자리를 향유한다. 참 살다가 보니 성공한 돈 키호테도 다 만난다.
  그런데, 벗들이여, 친애하는 이웃들이여. 잘 나가는, 성공한 돈키호테를 우리는 따로 이렇게 부르기도 하는 것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사기꾼.”
  재미있는 작품이다. 20세기 터키를 제대로 한 번 비틀어 놓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