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7
에드워드 올비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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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어디가 안 그렇겠는가만, 미합중국 사람들 얘기하는 거, 특히 헐리우드에서 찍은 영화를 보면 유독 미국인이 '가족'에게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 같다. 근데 에드워드 올비가 쓴 드라마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읽어보니까 미국인들이 가치를 둔다고 대한민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위로는 할아버지 할머니, 중간에 엄마 아빠, 밑으로 아들 딸들이 졸망졸망 달려있는 가족, 가능하면 흰 페인트가 칠해진 이층집에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자식들과 함께 사는데 가끔 아이들의 설익은 연애담이 부모 가슴에 안타까운 상실을 안기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럭저럭 만족해가며 사는 중산층 이상의 가족, 할아버지 할머니는 차 타고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옛집에 살며 적어도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엔 큼직한 칠면조를 잡아 자손들 모두를 불러 시끌벅적한 파티를 여는, 실선이 아니라 점선으로나마 거의 완벽하게 질서가 잡힌 일종의 대가족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거 같다. 뭐 이런 가족이 이젠 비단 미합중국에서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선망의 대상이 된 지도 꽤 오래인 것 같지만.

 그러나 눈을 가족에서 좀 더 분화된 부부로 돌리면 얘기는 좀 이상하게 변질한다. 에드워드 올비는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 미국의 중년부부와 신혼부부를 한 집에 모이게 하여 각 부부들이 만들어가는 부부간의 권력투쟁, 의사불통, 가치의 상실, 그리하여 발생하는 개별적 존재의 소외와 고독, 기어이 상대를 경멸하고 상처를 주고 싶어하는 가학성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물론 이 작품과 장면들은 지식적으로만 상류층, 그것도 어느 한 부부를 특정하여 소외와 고독, 불통, 경멸과 가학의 극단적 샘플을 채취했겠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부부가 살면서 작게나마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런 행위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거나, 적어도 마음 속에서 저질러보지 않은 부부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미혼 남녀는 모르겠고, 결혼생활을 한 번 이상 해본 사람들이 이 책에 깊은 공감, 아니면 가벼운 긍정 정도는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믿는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새벽 두시가 되어 파티에서 돌아온 마사/조지 부부. 마사는 벌써 술에 만땅 취한 상태인데 두 명의 프로필을 한 번 보자.


 마사 : 덩치 크고 사나운 여인. 52세지만 다소 젊어 보인다. 풍만하나 지나친 편은 아니다.

 조지 : 마사의 남편. 46세로 말랐으며 머리가 세는 중이다.

 위의 프로필 말고도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조건이 있으니, 마사의 아버지가 지금 조지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창립자이자 현 총장이다. 조지의 행정능력이 조금만 더 향상된 것을 마사의 아버지가 인정하면 조만간에 총장의 자리까지 따 놓은 당상이지만 암만해도 거기까지 조지가 이루기엔 힘이 많이 부치는 상태. 미국에서도 나이가 여섯살 정도 많으면 부부간에 그것도 권력이 되는 모양이다. 너, 내가 나이 많다고 지금 싫증내는 거 아냐, 그지? 내가 너보다 훨씬 늙고 못나서 나하고 못하는 건 이해 하는데 그러면 비아그라도 먹어 봐야지 그건 안 먹는 거야, 왜? 좋아 좋아, 다 봐줄 테니까 가서 물이나 한 잔 따라와. 얼음 두 조각 넣는 거 잊지 말고. 

 여기에 낀 젊은 부부 허니와 닉. 닉은 같은 대학의 서른 살 먹은 젊은 생물학과 교수이자 현명한 처세가.

 두 부부가 만들어가는 비극적 의사불통과 소외와 고독과 가학과 절망의 드라마.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한 불통의 현상학.


 그러나, 난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이 훌륭한 드라마에 가혹하게 추가되는, 두 부부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치명적 허위와 위선에 관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장치를 직접 확인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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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4-2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을 동명의 영화로 보고(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원작에 관심이 가서 읽어 볼 요량으로 챙겨뒀어요. 영화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ㅎㅎ

Falstaff 2017-04-26 15:19   좋아요 0 | URL
옙! 근데 전 못 봤어요. ㅠㅠ
DVD 하나 사야겠어요. 근데 공간이 워낙 한정된 작품이라 영화로 하면 좀 심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영화까지 봐야겠습니다. ㅎㅎㅎ

윽! 근데 DVD 가격이 그새 왤케 올랐을까요? 이거 공포수준이네요. ㅠㅠ

잠자냥 2017-04-2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블루레이로 나오면서 가격 정말 후덜덜하네요.

Falstaff 2017-04-26 15:38   좋아요 0 | URL
하여간 봉급 빼곤 다 오른다니까요!!
 
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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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진작 좀 읽을 것을. 10년 전 만해도 일생의 로망이 한국산 SUV를 운전해 장안(지금의 시안)을 출발해서 감숙성甘肅省간쑤성을 지나고 사막 한 가운데 윈깡석불과 위구르 자치구역을 통과해 키르기스스탄과 가자흐스탄 고원, 늑대와 고산표범이 배회하는 광활한 고원지대까지 질주해보는 것이었다. 아니면 울란바토르를 출발해 고비사막을 관통하여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것도 염두에 두었었는데 이건 고비사막에서 바라보는 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에 혹해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럽 문명, 주로 기독교 성당과 봉건시대 왕들과 귀족의 성으로 축약하는 유럽문명에 관해서는 도통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대신 스무살 무렵부터 내 희망사항은 궁극적으로 눈 닫는 곳까지 이어지는 사막을 지나, 드넓은 초원이 지평선을 채우는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언덕배기에 오르는 것이었다. 젊어서는 걸어서, 조금 나이 먹어서는 카라반에 동행해서, 더 나이 들어는 SUV 차량을 운전해서, 이젠 꿈에서나마. 그리하여 지금 생각해보니 4월 14일 독후감 올린 단편집 산월기에서도 <이릉>을 제일 재미나게 읽었을 것이고 <둔황>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생각 안 하고 단번에 읽어버렸을 것이다. 나한테는 <둔황>이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작, 단, 나 한 명을 위해 쓴, 말 그대로 '나홀로 명작'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행위의 마지막 목표점은 감상하는 자의 쾌락에 바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대단한 쾌락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둔황>이 명작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통일 중국 역사상 가장 약골이었던 북송시대. 어려서부터 동네 천재로 이름을 날리던 조행덕이란 32세의 장정이 과거급제를 목표로 황제의 궁궐이 있던 개봉(지금 이름: 카이펑)에 와 과거를 봤는데 1차 합격, 2차 합격 이렇게 n차 합격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형식적으로 치루는 면접시험을 대기하는 도중에 이 패 죽일 게으름뱅이 놈이 바위그늘에 앉아 그만 깜박 잠이 들어 면접시험을 치루지 못해 낙방을 해버리고 말았다. 문화와 과학수준은 세계 최고였지만 무력을 키우는데 결정적으로 실패한 송. 나라의 수도 개봉, 카이펑은 지금 (한반도보다 낮은 위도에 위치한)중국의 하남성(허난성)에 있는 바, 당나라까지 수도 장안과 원나라 이후 수도 북경을 생각해보면 개봉에 도읍을 정한 송나라는 처음부터 북쪽 오랑캐의 시도 때도 없는 침공에 맞서 대차게 대처하기보단 오랑캐의 침공을 어떻게 좀 무마하는 수준에서 처리하려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5호 16국 시대의 무차별한 칼싸움에 넌더리가 난 때문이기도 하겠다 싶기도 하고. 하여간 이러한 때 과거 낙방한 조행덕이 개봉시내를 어슬렁거리다가 모종의 사건을 우연히 보고 (역사는 중대한 우연이 매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법이라서) 단박에 장안 서쪽 저 사막 멀리 새로이 탕구르 족이 세운 서하西夏라는 나라에 한 번 가보겠다고 결심을 해버린다. 명색이 장편소설의 주인공이니 마음 먹은대로 진짜 서하로 가긴 갔지만 가자마자 서하의 포로가 되어 포로 한족으로 결성된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자, 여기까지.

 송나라의 경제를 결정적으로 거덜이 나게 한 서하와의 7년 전쟁. 이 와중에 인텔리겐챠 조행덕이란 인물이 사막을 건너 서하까지 기어가 과연 어떤 일을 했을까. 전투에만 나섰다 하면 죽기살기로 전투에 임하지만 원래부터 문관 지망생의 약골이라 언제나 전투 도중에 까무러쳐 말과 몸을 묶은 끈에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 목숨을 부지했던 조행덕. 역시 그의 진가는 붓을 통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저 야만과 불모의 땅, 사막의 도시 서하에서 붓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한 자루 붓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 현대, 20세기에 와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을까.

 직접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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왑샷 가문 몰락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3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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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왑샷 가문 연대기>를 읽어보신 분은 치버의 <왑샷 가문 몰락기>를 그냥 건너뛰기 힘들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재미나는 연작 장편. <....몰락기>에선 <...연대기>의 주인공 리앤더가 한편으론 난데없이 엉뚱하고 한편으론 낭만적이다 싶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후 그의 늙은 여동생 오노라 왑샷이 조그마한 시골 바닷가 세인트보톨프스의 막강한 유지로 등장한다. 저 대서양 건너 영국의 록스포드에 살았던 빌로우스 여사, 시도 때도 없이 충실한 하녀 플로오오오오오렌스! 를 외치면서 동네 경찰서장, 주임목사, 학교 교장, 상인연합회장 등의 의견을 여지없이 묵살해버렸던 빌로우스 여사와 무지 비슷한 캘릭터라고 생각하시면 오차 없을 듯. 하여간 세인트보톨프스의 레이디 오노라 왑샷한테는 조카 둘이 있었는데 둘 다 죽은 리앤더의 아들들로 일찌기 왑샷 여사께서 둘 다 대처로 나가 반드시 성공해 금의환향하라는 엄명을 때려놓은 상태. 그래서 큰 조카 모지스는 도시로, 작은 조카 코벌리는 핵폭탄(을 은유하는 극한 냉전시대의 가공할 만한 무기)을 연구하는 사막 근처 기지에 직장을 얻어 생활을 하는데, 제목이 '몰락기'라고 했으니 궁극적으로 둘이 인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망가뜨리느냐 하는 데 촛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결론을 말하면 왑샷 가문은 말 그대로 산산히 부서져버린다. 정말? 아니, 천만의 말씀. 생물학적으로 몰락이라고 함은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단어인데, 오노라 여사는 뭐 그렇다고 쳐도 조카 둘 다 어쨌든 자신의 Y염색체를 이어나가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사회적으론 모지스의 경우, ………… '작가 치버와 비슷하게' 라고 그의 망가지는 과정에 관해 몇 줄 썼다가 지웠다. 사실 이 재미있는 소설의 제목이 '몰락기'라고 되어 있지만 않았다면 오노라의 두 조카가 망가지는지 성공을 하는지 내색도 하지 않고 시침 뚝 떼고 독후감을 쓰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그건 일찌감치 글렀다. 하지만 어떻게 망가지는지에 관해서는 '양심상' 여기다 밝힐 수 없다.

 다만 우리의 오노라 왑샷 여사의 몰락에 관해선 뭐, 이 정도야.

 그녀는 난데없이 탈세의 죄목으로 인생이 끝날 위기에 처한다. 옛날 여성 오노라는 많은 재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해 가볍지 아니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걸, 당연히 이해는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비슷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돈을 받는 게, 내가 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데 뭐 어때서? 이 의미가 아니라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도무지 진짜로 실행할 생각은 못하는 딱 그런 세대의 대표선수였다는 의미. 그리하여 동네에 같이 늙어가는 지방판사의 조언을 듣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니 바로 해외도피. 그러나 다 늙은 할머니가 홀로 해외도피를 한 들 그게 맘먹은 대로 쉽나? 이제는 바닷가의 쓰러져가는 집에서 유령으로 출몰하는데 만족하는 그이의 동생 리앤더 왑샷을 만나러 가는 길 말고는 남지 않게 된다.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리앤더의 유령. 모잽이 수영으로 저 먼 바다로 헤엄쳐간 리앤더는 자신이 살던 집에 가끔 출몰해서 아들 둘이 똑같은 지분을 갖고 있는, 한땐 제법 규모도 크고 가격도 만만치 않던 집의 월세값 혹은 집값을 뚝! 떨어뜨리기만 한다. 유령출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둘째 아들 코벌리가 하루는 영 터무니 없는 소문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옛 고향을 한 번 들렀다가 우연히 옛집에서 하루밤 잠을 자러 들렀는데, 왑샷가문이 뭔 햄릿 가문인 거 처럼 코벌리의 아버지가 쿵쿵쿵 마루장을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코벌리 앞에 우뚝 섰다가 또 쿵쿵 걸어가지만, 확실한 건 코벌리는 죽었다 깨도 햄릿이 아니라서 아버지의 유령을 보자마자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쳐버렸다는 얘기.

 근데 여태까지 이 재미난 책의 스토리와 등장인물에 관해서만 열나 이야기했다. 하지만 진짜 이 책을 재미나게 하는 건 스토리보다도 무수한 문장들과 단락에서 마구 쏟아지는 해학과 풍자와 시절의 그리움과 익살과, 코미디 속에 잠들어 있는 비극성,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비록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 치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반 가량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반 정도만 제대로 잡아챘다면 기꺼이 이 책을 읽고 다른 이한테도 권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책을 읽는 진짜 이유는 스토리와 그 속에 스파이처럼 잠입해 있는 시절과 감정들을 나꿔채는 일일진대, 치버의 <왑샷 가문 몰락기>는 이런 면에서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즐기기 전에 <왑샷 가문 연대기>를 먼저 경험하시는 편이 매우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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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밀라 - 미다스 세계문학 1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이양준 옮김 / 미다스북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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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밀라, 라는 젊은 유부녀 바람피는 이야기. 그걸 보고 '세상'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광고하는 책장사 사장님. 흑흑흑.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세상에나 돈이 그렇게 좋니?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의 다른 작품 <백년보다 긴 하루>를 읽어보신 분은 딱 그거 하나 갖고 아이트마토프(아쒸, 이름이 길기도 하다. 술 덜 깨서 타이프하기도 쉽지 않은데)한테 홀딱 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얼마나 <백년보다....>가 좋은지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오랜만에 시내 나갈 일이 있어서 커피 파는 중고책 가게에 습관적으로 들렀다가 만일 눈에 이 책 <자밀라>가 들어왔다면 덥썩 주워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좀 과장해 말하자면 커피 한 잔 마실 동안 종업원이 보내는 무언의 사인, 손님, 커피 다 마셨으면 이젠 제발 그만 꺼져주실래요? 이 은밀한 사인을 받을 때 쯤 <자밀라>를 몽땅 읽을 수 있었을 것이고, 종업원이 보내는 무언의 사인에 대한 답례로 2층 커피 파는 중고책 가게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 책 괜히 샀고 괜히 읽었다는 후회를,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란 전제로 말하자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트마토프에 대한 환상을 확실하게 깨주는 고마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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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헤치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8
아이리스 머독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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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머독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한다. 근데 난 이거 읽기 전에 <바다여, 바다여>, 정년퇴직해서 이미 늙은이가 된 교수가 첫사랑, 그녀도 늙어(늙은 서양 여인들의 특징인 것 같은) 코 밑 검은 수염이 돋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여인을 찾아 스코틀랜드 최북단의 바닷가로 이사해서 벌어지는 난장판이 딱 마음에 들어(왜 난 늙은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몰라.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그렇고 <바다여...>도 그렇고 말씀이지), 이이가 쓴 <그물을 헤치고>도 꼭 읽고 말리라 작정했었다가 게을음에 관한 한 한 게을음하는 처지라 이제서야 읽게 됐다. <바다여, 바다여>와 이 책의 공통점을 굳이 얘기하자면, 여류작가가 남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에 목 매달다가 정말 죽기 일보직전에 득도를 한다는 것.

 머독, 이 여자가 마음에 드는 건, 잉글랜드의 철학자라면 세계 철학계를 앞자리에서 이끄는 유구한 전통과 광배를 둘렀을 텐데도 (잉글랜드와 쌍벽을 겨루는 프랑스 철학의 계승자 사르트르가 개떡같은 소설 속에서마저도 오지게 잘난 척하는 걸로 일관한 것과 비교해서) 전혀 어렵지 않은 문장들과 내용으로, 그리고 넘쳐넘쳐 흐르는 농담과 해학과 익살과 심지어 허언까지를 총동원하여 쉽게 읽히는 작품을 썼다는 거. 물론 소설 읽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궁합이 다른 어떤 것보다 앞에 서는지라 이런 평가 혹은 감상은 오직 나한테만 적용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물을...>의 주인공, 중요할 땐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만 사소할 땐 도둑놈이고 사기꾼이고 거짓말장이인, 지극한 게으름뱅이이자 세계사의 발전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도움이 되지 못했던 유일한 계급인 룸펜 프롤레타리아 인텔리겐챠의 대표선수 제이크가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과 함께 런던과 파리에서 저지르는, 되돌릴 수 없는 젊음과 사랑의 뒤죽박죽, 그물처럼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크게 보면 사랑 이야기. A는 B한테 미친 듯 빠져있고, B는 C 없이 하루도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으면서 A한텐 전혀 관심도 없는데, 정작 C의 모든 인생은 오직 D를 위해 있는 듯하지만 B가 자신한테 바치는 지극정성보다 아스팔트 위 푸짐한 개똥이 훨씬 중요하며, D의 뇌활동과 근육의 움직임은 자신을 머리 속에 슬어있는 이蝨하고 별로 차이나게 생각하지 않는 A를 위해서만 기능하면서도 C는 옆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잘 감각할 수 없다. 이런 얽힘. 이게 사랑의 경우만 그래? 사랑을 한 모티프로 해서 표현을 해놓았을 뿐 거의 모든 인간사에서 이런 짝사랑의 사이클은 오늘도 당신한테도 (아 죽일년!) 그녀한테도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책에선 제이크-애너-휴고-새디. 이 네명이 사분의 사박자, 즉 행진곡 풍으로, 런던이니까 영국의 대표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가 작곡한 <위풍당당한 행진곡>의 속도감으로, 그러나 곳곳에 숨겨놓은 익살과 해학과 농담의 지뢰를 펑펑 터뜨려가며 서로가 서로를 향한 짝사랑의 그물같은 사이클을 펼쳐놓고 있는 가운데, 인생사에 도가 통한 철인, 마치 중국 청구땅의 풍산風山 위에서 구름 타고 노니는 신선 같은 이가 둘이나 등장해 독자로 하여금 그이들의 높은 도에 감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내가 여기서 어떤 풍모가 감탄할 만하더냐, 하는 건 얘기해주지 않겠지만 그 가운데 한 명의 직업에 관해서만 짧게 말해주겠다. 이름은 팅컴 부인. 직업은 구멍가게 쥔.

 아, 오늘은 스토리에 관해 너무 많은 말을 한 거 같다. 반성하겠다.

 하여간 재미나게 읽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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