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이었던 남자 - 악몽 펭귄클래식 76
G. K. 체스터튼 지음, 김성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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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체스터턴 선생이라면, 당연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완결 번역판이 나온 <브라운 신부> 시리즈다. 나도 가지고 있다. 다른 탐정 시리즈하고 비교하면 다분히 소프트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운...>이 흥미를 끌었던 이유는, 일반적인 사람, 그러니까 나하고 비슷한 종자들이 늘 생각하고 있는, 여기서 난 '생각하고 있는'이라고 말하지 '추리할 만한'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에 주의하시고, 그러니까 일반인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삐딱한지, 실상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지를 콕 집어내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다. 시중엔 전부 일시품절. 중고책은 구할 수 있을 거다. 근데 특별한 재미는 없어서 악착같이 읽어보실 필요는 없고 싼 값에 중고책이 눈에 띄면 걍 한 번 구경이나 하심이....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고전에 능통한 한 시인이 살인 강도의 누명을 쓰게 되는데, 다분히 주위 인간들이 그의 외모,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서 과장되게 커보이는 눈과 매일 책상에 앉아 책 읽고 글 쓰는데 시간을 죽이느라 만들어진 똥배, 흐트러지고 듬성듬성한 머리칼, 늘 싯구를 떠올리느라 신경질적인 인상 등을 감안하여 전체적으로 범죄형이라 판단해, 동일 조건의 용의자 여러명 가운데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라는 점. 근데 체스터턴의 분신인 작은 키에 까만 얼굴을 가진 브라운 신부는, 그의 후줄근한 외모로 인해 생겼을 법한 열등감 등이 그를 책읽기와 시 쓰기를 집중하게 만들어 시인이 됐을 거란 인생철학을 설파하기에 이른다. 이런 식. 사실 우리나라 문학계에서도 작은 키에 놀림감이 되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죽자고 책 읽고 소설 써서 성공한 이가 최일남, 최인호 등 여러 작가가 고백했고, 거꾸로 큰 키로 인해 여럿이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가 돼버려 소설가가 된 인간이 <아베의 가족>을 쓴 전상국 등이 있다. 열등감, 알고 보면 성공의 씨앗일 수 있다.

 이를 미리 알고 체스터턴의 작품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었다. 글쎄 이게 추리물이라던지, 수사반장이나 형사 콜롬보 류의 범죄소설이라고 하기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그것보다는 세기말과 전쟁 전의 혼돈, 불안 같은 대중의 심리를 기호상징적으로 쓴 소설이라고 해야할 듯.

 시인 가브리엘 사림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날 느닷없이 이름도 떠르르한 영국 경시청 지하의 어두운 방으로 인도되어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거구의 사내로 부터 영국 경찰로 임명된다. 런던 서부지역 사프론 파크 주택가의 한 정원에서 사림은 또다른 시인이자 무정부주의자인 그레고리와의 대화끝에 대규모 폭탄 테러를 꾸미고 있는 집단에 잠입하게 된다. 그 집단의 우두머리가 일요일. 이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모두 일곱 명의 주요멤버가 있는데 시인 사림은 그중에 목요일로 불린다. 그리하여 제목이 한때 목요일이라고 불렸던 남자가 되는 것. 도버 해협 건너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황제와 러시아 황제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어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두 명의 황제를 동시에 골로 보낸다는 목표를 정한 무정부주의자 집단. 애초 사림이 이들 속에 잠입할 시기에 맺었던 또다른 시인 그레고리와의 맹세 때문에 자신은 이들을 체포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부터가 사실 웃기기 시작한다. 이어서 벌어지는 황당한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도 웃지못할 한 판이 벌어지고, 아쉽게도 책이 중간을 넘어설 대 부턴 머리회전이 좀 둔한 독자도 집단의 막강한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도한다.

 중간부터 책은 아예 노골적인 코메디 소설로 접어든다. 그런데도 독자는 마음놓고 웃어버릴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을 경험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위험집단으로 공식 인정된 무정부주의자들의 무리, 정체가 밝혀질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져 도대체 얘네들 뭥미? 정말 두 거대국가의 황제,로 대변하는 기존 세상을 뒤엎을 만한 거야? 다이너마이트 몇 개가? 세기말, 세기초 그리고 전쟁 전 당시에 진정으로 위험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눈에 보이기는 하는 거야? 라는 질문을 던진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서 본 거 같은 기시감이자 체스터턴이라는 괴짜 추리소설가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이상한 매력.

 그래도 솔직히 얘기하자면 크게 재미나지는 않다. 정상적인 추리소설의 틀에서 무지하게 많이 벗어나 있는 (당시 시선에선) 실험적 작품이랄 수도 있고,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라 사회소설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어떻게 주장하건 간에 뭘 주장하려면 이 책을 직접 읽어봐야 하는데, 책 뒤표지에 휘황찬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들어 이 작품을 필독서라고까지는 추켜올리고 싶지 않다. 그래도 좀 색다른 책을 좋아하시는 부류의 독자들 입맛에 딱 들어맞을 수 있겠다. 결정은 당신이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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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대산세계문학총서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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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열 서너 페이지 읽으면 단박에 눈치 딱 때릴 수 있다. 신문연재 소설. 각 절節이 두쪽 조금 넘는 분량에서 절대로 많이 왔다갔다 안 한다. 근데 처음부터 끝까지, 문학과지성사 편집으로 370쪽, 현암사 편집으로 414쪽, 전부가 다, 몽땅, 딱 이런 분량의 백 수십개의 절로 되어있다. 어려서 신문보면 항상 아랫면에 달려있던 연재소설 보는 재미를 빼지 않았을 때부터 월간도 아니고 매일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궁금해했다. 일정 분량에서 더하기 빼기 원고지 한 장 가량으로 일년 삼백육십오일 하고한 날 똑같은 긴장을 갖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거, 거 참. 하긴 80년대까지 우리나라 장편소설의 대부분은 신문연재를 마친 원고를 다시 편집, 퇴고, 기타등등을 거쳐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긴 했다.

 이 책은 네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벗 / 형 / 돌아와서 / 번뇌. 첫 장 '벗'을 보면 오사카로 놀러간 책의 화자 나가노 지로가 젊은 시절 집의 서생이었던 오카다의 집에서, 오사카에서 가까운 산에 함께 오르기로 약속했던 벗 미사와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약속한 날이 와도 미사와는 도착하지 않고 조금 늦겠다는 엽서만 도착해 좀 께름칙한 상황, 드디어 연락이 왔다. 오사카에 며칠 전에 도착했는데 평소 좋지 않았던 위에 탈이 나 병원에 입원해 있다나? 옛 서생 오카다의 집을 나와 병원에 가보니 그새 옆 병실에 입원한 게이샤하고 벗 미사와는 벌써 모종의 인연이 있었던 거다. 거참. 이 인연이 뭔지 궁금하시지? 별거 아님. 필름 돌아가면 다시는 해당 게이샤는 등장하지 않으니 신경 끄는 것이 좋다. 분량이 좀 길지만 이거 보다 책 전편에 걸쳐 혹시 뭔 인연이 없을까? 이거 복선 아냐? 라고 짐작을 하게끔 만드는 일화가 훨씬 더 중요하다. 미사와가 사랑했던 한 여인. 이혼당하고 본가에도 들어가지 못해, 중매를 섰던 미사와의 아버지 집에서 기숙했던, 정신이 좀 왔다갔다 하던 젊은 여인. 미사와가 외출이라도 하면 언제나, 한번도 빼지 않고 대문까지 쫓아나와 '나갔다가 일찍 돌아오셔요' 당부하던.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걸로 끝이 아니라 이 미사와 놈이 여인이 죽은 다음에 죽은 시체의 이마에다 대로 키스까지 했다네, 참나.

 정신이 이상한 여인이 미사와를 사랑했을까? 하는 고민, 글쎄 고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사숙고를 누가 하느냐 하면 '나' 나가노 지로가 아니고 '나'의 형 나가노 이치로가 한다. 이치로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당시 일본 최고 지성인의 하나로 대학에서 철학인지 뭔지를 가르치고 있는 대단한 수재. 그럼 행복할 거 같지? 천만에. 하루는 동생을 불러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암만해도 내 마누라 나오가 너한테 반한 거 같은데, 아버지를 닮은 네가 아니라고 하니까 너는 아닌 줄 알겠다. 하지만 나오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으니 가까운 시일 안에 나오하고 너하고 짧게 길을 떠나 여관에 들어 하루 밤을 새우고 와라. 글쎄 정말이라니까. 여기까지 읽으면 독자는 이 책에서 중심이 뭘까? 미사와와 죽은 여인의 사랑, 이치로와 아내와 지로의 삼각관계.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난데없이 <디미니의 프란체스카> 생각이 벌떡 들게 된다. 단테의 <신곡> 1권, 지옥편에서 거의 제일 앞대가리에 나오는 불타는 지옥불 장면.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본격적으로 지옥 구경에 나설 때 첫빠따로 보는 광경이 "제일 불행핼 때 제일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하는 것보다 불행한 건 없다" 아우성치는 젊은 남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다들 아다시피, 프란체스카의 남편 란체오토 말라테스타가 암만봐도 미남 동생 파올로하고 마누라가 뜨거운 관계인 거 같아 증거를 잡기 위해 전쟁에 나간다고 거짓말을 꾸며 전 군을 이끌고 나갔다가 살짝 돌아와보니,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두 잡년놈들이 귀네비어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흥분, 그만 서로 막 더듬기 시작하는 걸 눈으로 봐버린다. 그리하여 그걸 본 눈알이 확 뒤집어져 허리에서 긴 칼을 꺼내 단칼에 허리를 두 동강 내 죽여버린 사건. 난 이 장면이 머리 속에서 제일 먼저 확 떠오르며 이 작품이 결국 이 비슷한 비극으로 끝나고야 말겠구나, 짐작을 했다(책 속에서도 이치로의 입을 통해 이 일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나처럼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화자 '나' 지로와 형수 '나오' 사이의 러브라인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그까짓 거야 작가가 마음 먹으면 한 시간 안에라도 벌써 불씨 튕겨 황소라도 한 마리 잡아먹고 남게 만들 수 있는 거니까.

 형으로부터 이런 지시 또는 부탁을 받은 지로는 어떻게 했을까? 1913년. 이 책이 나온 시기인데, 설마 시동생하고의 불륜을, 남편의 권고로 만들어내는 여인이 발생할 수 있다고 믿지 않으시겠지? 지로는 거절한다.

 여기까지가 2장 까지 내용. 근데 3장, 4장으로 진입하면 또다른 주제가 등장해버린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장편소설의 경우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제가 진짜 주제. 이걸 여기서 얘기해야하나? 마지막 주제가 진짜 주제라는 말도 괜히 한 거 같은데 말씀이야. 그게 진짜 주제면 1장과 2장에서 나오는 흥미진진한, 흥미진진할 거 같은 주제는 다 구라야? 아이고, 입 간지러워.

 하여간 소세키, 이야기는 정말 잘 만들어낸다. 비록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나쓰메 소세키답게 부르주아 인텔리겐챠를 위한 그들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참 흥미를 자아내는 에피소드를 만들고 그걸 또 이리저리 얽어매 진짜 하고 싶은 얘기로 이어가는 거. 근데, 읽어보라고 권하지는 않을 거 같다. 물론 당시에 했던 문명비판이 오늘날까지 유효하긴 하지만 좀 진부하거든. 물론 내 생각에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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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7-2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는 신문연재때문에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ㅎㅎ 그게 또 그냥 잘 읽힌단 말이죠. 암튼 이 사람은 별것아닌 이야기를 길게 잘 풀어놓는 재주만큼은 매우 빼어난 것 같습니다.

Falstaff 2017-07-24 11:4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옙. 그래 앞에서 열라 했던 이야기가 뒤에선 전혀 안 나오는 재미난 경우도 그렇고요. 소세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그의 작품을 이리 많이 읽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이라서 그런가봐요. ㅋㅋㅋ

han22598 2023-08-17 0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팬은 아니지만 많이 읽으셨단 말씀이죠? ㅎㅎㅎ

Falstaff 2023-08-17 05:55   좋아요 0 | URL
옙. 팬 까지는 아닙니다. 책은 좀 읽었습지요. ㅎㅎㅎ
저는 겐자부로 팬입니다. 요새 새 책이 나와 다음 달에 읽을 거 같습니다. ^^
 
모피를 입은 비너스 펭귄클래식 61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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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취향 아님. 사드 남작이 쓴 <미덕의 불운>을 읽었을 때의 불쾌감하고 거의 완전히 반대방향에 자리잡은 불쾌감. 에잇. 언젠가 한 번 인용한 거 같은데, 맞다, 플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국일미디어 판의 독후감이었다, 김정은과 임원희 주연의 <재밌는 영화>에서 와타나베 형사로 분장한 김응수가 김정은과 호텔에 들어 하신다는 말씀이, "자기 나 좀 더 때려줘, 아 좋아, 더 때려줘!" 배꼽을 잡은 적이 있다. 바로 이 현상의 원조가 기어이 책을 다 읽고 책 뒷장에 써놓은 걸 읽고서야 알았는데 바로 이 책의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라는 인간이란다. "사도마조히즘의 성적 강박"을 보고서야, 아하, 마조히즘,할 때 마조흐가 이 책의 저자 자허-마조흐라는 거구나! 이런 형광등. 그걸 이제 알았다니. 그러니 당연히 사드의 정 반대편에 딱 그만큼의 불쾌감을 느낀 것이지.

 어제 읽은 소위 여성문학, 그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은 혹시 모르겠다. 이 책 읽으며 통쾌감을 만끽하실 수 있을지. 주로 담비 가죽을 대표로 하는 최고급 모피를 입은 비너스. 남국의 따뜻한 기후 속에서 사랑과 섹스와 질투와 장난을 무차별적으로 해대던 여신 비너스가 추운 나라 독일로 왔으니 여신은 모피를 입을 수밖에. 비너스를 찬미하여 찬 대리석 석상의 발가락에 입맞춤하면서 성장한 제베린은 모피를 입은 비너스와 딱 비슷하게 생긴 스물 네살의 어마어마한 부자 과부한테 홀딱 빠져, 그이의 남편이 되길 요구하지만 뺀찌. 그러자 기어이 젊은 부자 과부 반다의 노예가 되길 희망하여, 드디어 나온다, 자기 나 좀 더 때려줘, 아 좋아, 더 때려줘! 연발탄.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학대하고 다른 남자새끼와 깊은 관계를 맺어 몸과 마음에 치명적인 아픔/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여인을 사랑하는 완벽한 변태. 아참, 변태성욕을 가진 사람도 '성소수자'에 포함시키는 건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다. 아시는 분 있으면 진정 답글 바람. 난 변태성욕을 가졌건 말았건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다. 남한테 원하지 않는 고통을 주지 않는 한, 그분들이 서로 고통을 주고 받으며 아 좋아, 하건 말건 그건 내 일이 아니다. 알아서 즐기시면 될 일. 나하고 다른 것일 뿐.

 근데 자허-마조흐Sacher-Masoch 이 양반이 19세기 초반 1836년 태생이라 당시 분위기 상 노골적인 변태성욕을 설파하진 못했을 터. 그리하여 불행하게도 사드 남작만큼 용감한 초지일관으로 밀어부치지 못하고 반다Wanda 여사께서 제베린에게 모진 고통을 통해 노예가 되고싶어 하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게 했다는 결론으로 가는 건, 비록 내가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경멸하지만, 참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뭐 세상이 그랬으니.

 결론. 이 책 읽고 좋다하시는 분 수없이 많다. 근데 난 추천 않는다. 읽고 싶은 분은 내가 굳이 추천하지 않아도 찾아 읽으실 것이니 이 정도면 뭐,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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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의 여명 - 신화와 민담과 판타지 펭귄클래식 44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서혜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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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전래 구전 이야기. 한 겨울 밤이라면 화로에서 군 밤 꺼내 까먹으며 할머니한테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 말로만 들었던 예이츠의 명문을 기대했다가, 억지로 다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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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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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펭귄클래식코리아의 책 소개에 의하면 톨스토이의 '단편' 네 작품을 모아 책을 냈다고 한다. 요새 우리나라 대표적 출판사들(꼭히 문학동네, 창비, 열린책들, 민음사를 꼽지는 않겠지만)이라면 당당하게 네 권의 장정본을 만들고나서 뭐라고 주장하느냐 하면, 이름도 찬란한 "경장편" 네 작품이라 주장할 것이다. 경장편? 세상에 그런게 어딨어. 양심없이 돈벌이에만 눈이 벌건 출판사에 비하면 펭귄클래식코리아 거 참 괜찮다. 더구나 오역 여부는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읽은 펭귄 시리즈에선 비문이나 크게 맞춤법 이상한 거 또는 단어를 연속해서 잘못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몇몇 유명 출판사하고 비교해도 기본에 충실하다는 뜻. 디자인이 좀 그래서 그렇지 이 출판사, 괜찮다. 특히 문학동네가 이 책 속의 모든 작품을 찍었다고 가정한다면 네 권의 "경장편" 양장본을 구입해 읽어보기 위해 최소한 4만원은 들 것인데, 난 최상급 중고책을 4,200원 주고 사서, 잘 읽었다.

 그건 그거고, 책 이야기를 하자. 오늘도 서두가 길었다.

 레프 톨스토이. 우리 나이로 50세 전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써서 이제 문호의 반열에 오른 그는, 자신의 넘쳐나는 성적 욕구를 느끼는 만큼, 그것을 억제하는 신앙의 삶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의 아내 입장에서 말할 거 같으면 이제 16세 연하, 그니깐 34세의 젊은 아내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입장에서 보면, 서방은 젊어서 온갖 난잡한 섹스와 성병까지, 거기다가 도박, 술에 젖어 할 거 실컷 해보고, 이제 나이들어 연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니 금욕주의네 수도생활이네 지랄을 하지만 자신은 불꽃같은 인생의 절정기 30대 중반의 여인으로 본격적으로 맛을 알아가고 있는 와중에 그게 무슨 말같지 않은 허무맹랑한 짓인가 말이다. 소피야 입장에선 명색이 그래도 톨스토이 백작님이라, 얼굴과 아랫도리를 동시에 그냥 확 쥐어 뜯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은 길고 긴 인생, 바늘로 자신의 허벅지 콕콕 찌르며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밤이면 밤마다 면벽참선 할 수도 없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 영감이 나이를 조금 더 먹으니 뭐라? 저작권을 포기하고 언제든지 자신의 작품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게 하겠다고? 남이라도 그럼 섭섭할 텐데 이걸 서방이라고 그래도 몇 십년을 함께 살아준 댓가라는 말이냐고. 당신 같으면 레프 톨스토이 같은 남편을 그냥 내비 두시겄어? 밖으로 폼만 나지 안에선 그야말로 하나 내실 없는 속물 덩어리. 아, 물론 젊은 아내 입장에서 말이다. 그러니 날이면 날마다 바가지 벅벅. 이게 소피야 잘못이야? 톨 백작 잘못이지.

 톨스토이 백작의 집구석에 평화가 전혀 깃들지 아니할 즈음해서, 몇 십년 동안 가정의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톨스토이는 근본적으로 결혼제도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우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결혼한 가정을 면밀히 조사, 탐색해보니 다 거기서 거기. 하고한날 부부간의 쌈박질에 생활고까지 겹치면 한때는 죽고 못살았던 부부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하면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지 모색하게 되고, 치명적 언어의 화살촉을 발견하는 즉시 그것이 잘 듣는지 궁금한 걸 참지 못해 즉각 상대를 향해 비상을 듬뿍 묻혀 발사해마지않는 현상을 발견해낸다. 때는 19세기 말. 당시 러시아의 몇몇 귀족 가정에선 부부 간에 서로가 서로에 대한 독립을 인정하여 서로 눈치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적 증거를 발견하기를 서로 꺼려하며 부부가 공히 각자의 정부를 한 두명씩 부양하고 있는 것이 유행이었다, 라고 오해할 만한 문학작품을 우리는 읽은 바 있다.

 톨스토이 선생은 그리하여 작품 속에 자신이 본 특별하지 않은 부부를 등장시켜 신혼여행 부터 결혼생활이 작살나기 바로 직전까지 전혀 우아하지 않게 펼쳐지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집중사격, 거기다가 오해받을 만한 행위를 보태 비극적 결말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가장조 작품 47의 1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에 이어진 프레스토를 곁들여 격하게 토해낸다. 이게 책의 두번째 단편 <크로이체르 소나타>.


https://youtu.be/kpf1DXDSajg
(베토벤의 바이올린 연주에 관하여는 난 무조건 헨릭 셰링이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말고 <가정의 행복>, <악마>, <신부 세르게이> 세 편이 더 실려 있는데 이거 참. 톨스토이는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적어도 하나 이상을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작가라서 어쩔 수 없이 좀 재미없고 재수없는 장면들이 나온다. 단편들을 쓴 시점이 19세기 말이고, 늙은 톨스토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종교적 금욕주의에 퐁당 빠져버려, 젊은 시절 방탕했던 자신을 채근하듯 남자 주인공들이 함부로 놀려댄 아랫도리에 체벌을 가하는데 말 그대로 가차없다. 아 씨. 자기는 할 거 다 해놓고 말야. 당시 러시아, 물론 러시아만 그랬겠어, 유럽이 다 마찬가지였겠지. 하여간 거기선 젊은 귀족들은 15세 혹은 16세부터 정기적으로 여자와 성적 접촉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다. 근데 문제는 적절한 피임 방법이 없었던 거. 그들의 건강을 이유로 숱한 일반 백성의 처녀, 유부녀들은 1루블을 받고 무수한 사생아를 만들어냈던 건데, 톨스토이 자신이 젊어서는 이런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다가 50이 넘고 60이 넘고, 하여간 나이들면서 세상의 죄악이 다 거기서 시작한다고 자각을 했단다. 왜? 이제 늙어 그게 마음대로 작동하지 않으니까? 난 그의 개심, 금욕주의가 별로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 족속이다.
 그러다가 기어이 80이 넘어 도를 닦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한적한 시골역에서 생을 마감하는 톨스토이. 그의 마지막은 벌써 몇십년 전에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거다. 정말이라니까! 한 번 읽어보시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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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7-1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오간 결혼에 대한 신랄한 대화가 떠오르는군요. ㅋㅋ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문학작품은 정말 독하게 쓰고, 음악은 참~ 아름다운 재미난 작품입니다. 하긴 어쩔 때 들으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부부싸움 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어요. ㅎㅎ

Falstaff 2017-07-18 10:0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거기다가 첼로까지 끼어들어 삼중주가 되면 그야말로 삼국지 장판파 싸움이 됩니다. 이중주와 삼중주 까지는 그렇게 치열한 경쟁이 또 지독한 별미이기도 하잖아요.
근데 톨백작께서 쓰신 이 네편은 하나같이 정말 꼰대스러운지라 ^^;
암만 생각해도 21세기엔 별로 효용이 없지않나....해요.

잠자냥 2017-07-1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톨백작님은 도덕교과서 읽는 것 같아서 눈쌀이 찌푸려질 때도 있지요. 그런데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이런 구절이었던가... ‘짧은 기간의 창녀는 경멸 당하고, 긴 기간의 창녀는 존경 받는다‘ 이런 촌철살인은 기억에 오래 남더군요. 그리고 ‘신부 세르게이‘였나요? ㅋㅋㅋㅋ 욕정을 참지 못해서 자기 손가락까지 자르고 마는 ㅋㅋㅋㅋ 아 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17-07-18 12:42   좋아요 0 | URL
손가락 자르기 바로 전에 램프에다가 자기 손가락 지지는 장면 나옵니다. ㅋㅋㅋ
근데 너무 뜨거워 이러느니 차라리 걍 짧게 끝내버리자는 취지에서 싹둑 잘랐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습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