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즈 엔드 1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77
포드 매독스 포드 지음, 김일영 옮김 / 한국문화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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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권 구입가 93,000원. 합해서 정확하게 1,600쪽의 장편소설. 완독에 걸린 시간은 닷새 반나절. 93,000원이면 내가 즐기는 진로 골드 25% 소주가 70병이다. 두 달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걸 닷새 반 만에 홀랑 없애버려? 그렇게 하시라. 이게 네 권, 총 10부, 1,600쪽을 방금 전에 다 읽은 정직하지만 짧은 감상이다.
 포드 매독스 포드는 문예출판사의 “문예 세계문학선” 시리즈에서 놓치면 아쉬운 작품인 <훌륭한 군인>을 읽고 단박에 매료되었던 작가다. 전형적인 부르주아 신사계급들을 스위스의 한 요양시설에 모아놓고 등장인물 각각이 서로 처한 갈등과 갈증을 매력적으로 묘사해놓은 것에 완전히 넘어가버렸었다.
 <훌륭한 군인>은 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5년에 출간해 원 제목이었던 “가장 슬픈 이야기”를 바꾸어야 했던 반면, 9년이 지나 1924년에 집필을 끝낸 <퍼레이즈 엔드>는 크게 나누어 1권에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2권은 처음 참전을 하고 전쟁신경증을 판정받아 영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전장에 복귀할 때까지, 3권은 복귀한 전장부터 1918년 빼빼로 데이인 11월 11일 종전기념일 장면까지, 마지막 4권은 전후 다시 찾은 삶에 관하여 묘사를 하고 있다. 누가 1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전쟁 전후까지를 아우르는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퍼레이즈 엔드>보다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작품 <티보가의 사람들>을 권하겠지만, 이 책도 만만하지 않은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고, <티보가....>를 읽은 다음에 기회가 또 있으면 읽어보라고 권하겠다.
 긴 장편소설이니 당연히 스토리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책은 영국의 티전스Titjens 가문의 네 번째 아들 크리스토퍼의 삼각관계를 그린 이야기이다. 물론 이렇게만 이야기한다면 전혀 감흥이 오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1910년대 크리스는 아직도 17, 18세기 적 의식인 신사도와 명예에 목을 매고 사는 마지막 토리주의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당시 토리주의자를 21세기 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진정한 꼰대’ 정도? 또는 ‘진정한 보수’? 당연히 여자가 등장한다. 삼각관계니까. 큰 키에 늘씬한 외모와 천성적으로 귀티가 줄줄 흐르는 경국지색의 미인 실비아. 그러나 전형적인 팜 파탈. 크리스의 법적 아내다. 드디어 막이 오르면 크리스는 잉글랜드라는 섬에, 실비아는 대륙에 있어, 부부 사이엔 북대서양이 가로막는 형상. 영국 육군에 대단한 겁쟁이 장교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을 ‘퍼론’이라 하고 계급이 소령이었는데, 생긴 건 뭐 그리 나쁘지 않아 실비아가 퍼론 소령을 옆에 끼고 무도회에서 야반도주(책에선 ‘야간도주’)를 벌였던 것. 이를 안 실비아의 총명한 어머니 세터스웨이트 부인께서는 딸의 불륜 소식이 런던 사교계에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양 차 스위스로 떠나며, 조만간에 딸이 합류하여 자신을 간호해 줄 것이란 소문을 퍼뜨린다. 그러나 그런 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된다.
 그러면 실비아는 왜 크리스의 이마에 뿔이 돋게 했을까. 실비아가 아직 결혼 전일 때 드레이크라고 하는 유부남하고 정을 통해왔었다. 20세기 초반에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생기면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임신. 자신이 임신을 한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실비아는 자기보다 나이어린 크리스토퍼 티전스를 꼬드겨 결혼을 하고 아홉 달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 아들 마크 티전스 2세를 출산한다. 그래 우리의 크리스토퍼 역시 법적으로는 완벽하게 자신의 아들로 호적에 오른 아들이 자신의 소생인지, 아니면 공무원인 자신의 신분기록에 형편없는 평판을 적어놓은 드레이크의 아들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게 그리 간단하지 않는 이유는, 크리스가 형이 셋 있지만, 첫째 마크는 프랑스 무용수 출신 여성과 아이 없이 동거 중이고 여성은 이미 출산할 수 없는 나이에 처했으며, 둘째와 셋째 형, 그리고 누이동생은 인도와 인도 부근의 바다 위에서 군인과 간호병의 신분으로 전사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작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등장하는 ‘그로비’ 지역의 저택과 철광산을 포함한 대지의 상속권이 크리스의 아버지 마크에서 자기 큰 형 마크에 이어 자기 아들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은 마크 2세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 이런 과정 속에 실비아와 크리스의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건 세상 사람이면 다 이해할 수 있을 터. 크리스는 천성이 신사라 누구의 부탁도 쉽게 거절하지 못해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이 가운데 미치광이 두쉬민 목사의 아내도 포함되어 있으나 목사 부인은 크리스의 친구인 맥마스터란 남자와 눈이 맞고 나중에 동거를 거쳐 혼인까지 하게 된다. 실비아는 이 사실을 악의적으로 비틀어 런던 사교계와 상류층에 자신의 남편 크리스가 두쉬민 목사의 불쌍한 아내, 이디스 에텔 두쉬민과 불륜관계라고 거짓 선전을 하고 다닌다. 경국지색의 미모와 세련된 매너, 훌륭한 치장을 한 귀부인의 우아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말을 누가 있어서 부인하고 의심하겠는가. 런던의 거의 모든 사람은 크리스가 정신 빠진 인간이고 실비아가 불쌍한 피해자인 것으로 단정을 한다. 심지어 아버지의 친한 친구의 딸 발렌타인 워놉 양을 구워삶아 출산까지 했다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퍼뜨려, 이 소식을 믿은 성인聖人같은 어머니는 심적 타격을 받아 죽어버리고, 역시 거짓말을 사실로 이해하고 있던 큰 아들 마크를 찾아와 사실 여부를 확인한 아버지 역시 심상해 자살을 해버린다. 이 정도면 실비아야말로 서양 문학사에 기록할 만한 팜 파탈 정도 아닌가.
 처음부터 비겁하고 찌질한 퍼론 소령을 사랑해 야반도주한 실비아가 아니다. 오직 한 가지 목적. 남편 크리스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 애초 목적에 모자람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실비아는 잠깐 동안의 애인 퍼론 소령을 버리고, 어머니가 평생 의지하던 콘셉 신부와 함께 머무는 스위스의 요양소에 가서 콘셉 신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하지만 실비아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미쳐 쫓아다니게 될 때 실비아의 삶은 지옥으로 변할 거요.”
 원래 소설에서 불길한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 실비아는 사실 남편 크리스토퍼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얻는데 실패함에 따라, 사사건건, 가는 곳마다, 심지어 전쟁터까지 쫓아와 남편에게 치명적 불행을 안기려 하는 것. 실비아한테 나가떨어진 크리스토퍼 앞에 등장하는 아가씨, 발렌타인 워놉 양. 실비아의 선언이 진실이라면, 성 마리아 이후 최초로 순결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인. 이이는 전직 최고의 라틴어 전문가였으며 크리스의 아버지와 막역한 관계였던 죽은 부친과, 17세기 이후 가장 훌륭한 소설을 쓴 어머니를 둔 젊고 가난한 아가씨. 크리스토퍼와 발렌타인, 둘의 순결한 사랑은 오랜 군불을 때듯 묵지근하니 달아오르는데, 모든 인간이 자기 같은 줄 아는 실비아는 콘셉 신부의 예언대로 곧바로 지옥에 빠져 점점 더 극악한 고통을 크리스에게 쏟아 부으려하는 점입가경에 이른다.
 꽤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더 이상은 직접 읽어보시라 이쯤에서 말겠다. 1권 1부 정도만 가비얍게 언급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사실 포드 매독스 포드의 작품을 한 마디로 하면, 유구하고 심심하다. 그러면서도 독자를 깊게 몰두시키는 성격묘사 같은 것이 탁월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 딱 두 편을 읽었으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말도 안 되는 거 알지만, 만일 당신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전쟁터나 사건들을 기대한다면 후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거의 모든 좋은 소설은 근본적으로 심리소설 아닐까 싶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고, 영향을 받으며, 영향을 끼치는지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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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6-1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일로 이렇게 자세하게 줄거리를 밝히실까! 하고 생각하면서 줄거리 부분은 띄엄띄엄 읽었는데, 이게 고작 1권 1부 정도까지의 스토리군요! 기대됩니다. 이 작품. 그런데 책값이 만만치 아니하여,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야겠군요.

Falstaff 2019-06-10 14:00   좋아요 0 | URL
녭. 현명한 선택입니다.
이런 책은 도서관 대출로 아주 적격입니닷!!! ㅋㅋㅋ
 
느릅나무 아래 욕망 열린책들 세계문학 171
유진 오닐 지음, 손동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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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닐의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를 단장의 슬픔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릅나무 아래 욕망>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에드워드 토머스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를 진짜 재미없게 들어서다.

 

 

 조지 매너헌이 런던 심포니를 지휘하고 당시 미국 국가대표 남성 성악가였던 제리 해들리와 제임스 모리스가 각각 에벤과 케벗 씨 역을 했음에도, 작곡가가 각 소절, 거의 모든 소절을 레가토처럼 쓸데없이 길게 끄는 바람에 어처구니없게도 원작 자체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끄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오페라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저 까마득한 선배 작가들이 만든 <페드라와 이폴리트>, <메데이아>에서 조금씩 재료를 가져와 의붓 엄마와 아들 사이의 성적 접촉, 유아 살해 등을 다루고 있지만, 하여간 오페라는 이번에 읽은 원작과 비교하자면 한참 재미없었다. 그래 지금 뭐라 후회하고 있는가 하면, 아 씨, 진작 읽을 걸.
 엇, 이제 보니 책의 주제를 노출해버렸잖아?
 나는 <밤으로의 긴 여로>의 독후감을 딱 한 줄 썼다. “피를 토해 쓴 백조의 절창”이라고. 이거 말고 더 할 말이 없었다.
 <밤으로의 긴 여로>도 그렇고 <느릅나무 아래 욕망>도 그렇고, 둘 다 이이의 절창이다. 도무지 어떻게 반론을 펼 여지가 없을 만큼의 욕망과 사랑과, 집착과 광기가 몰아친다. 이 책을 이미 읽으신 분은 틀림없이 동의하시리라 믿는다.
 그래서, 다 읽고나면, 심정적으로, 후달린다.
 피곤하지만 않으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의 희곡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뭐랄까, 만만하지 않은 부담감이 한 방에 확 밀려드니 각오하고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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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앤 포터 -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0
캐서린 앤 포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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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집은 미국의 소설가 캐서린 앤 포터가 쓴 세 권의 책, 1972년 판 <처녀 비올레타>, 1950년 판 <순교자>, 1934년 판 <아시엔다>를 옮긴 것이다. 세 권의 중단편선에 있던 작품을 적절하게 배열하여 1편 <꽃피는 유다나무>, 2편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 3편 <기울어진 탑>으로 다시 배열해놓았다. 원본이 되는 세 권의 책, 각각의 표제작은 1편 <꽃피는 유다나무>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출판사 현대문학이 나름대로 타당하게 분류를 했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랬겠지. 아니면 세 권의 책을 860쪽이 넘는 한 권으로 묶지는 않았을 듯하니. 적어도 세계문학 단편선에 관한 한 출판사 현대문학의 이 시리즈는 정말이지 만족을 주니까. 게다가, 캐서린 앤 포터, 이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정작 읽어보니 우리나라 번역문학 수준이, 이런 소설가를 2017년 12월 29일이 돼서야 처음 번역 출간했다는 거 하나 가지고, 야만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장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직접 읽어보시든지.
 생소한 작가라서 이이의 인생을 조금 살펴보자. 1890년에 텍사스에서 출생, 1980년 메릴랜드에서 졸. “지극히”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남부 사회에서 불우한 유년기 보냄. 열여섯 살에 남부 출신 마초 존 헨리 쿤츠와 결혼해 8년 동안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함. 남편(새끼)한테 얻어 터져 뼈가 부러지고 유산까지 하는 바람에 당시에 흔치 않던 이혼을 감행하고 남부를 떠나 사회활동 시작. 다섯 명의 남자와 결혼해 다섯 번의 이혼을 거치는 동안 무명작가에서 퓰리처상에 빛나는 인기작가가 됨. 행운은 언제나 불행과 합동으로 들이닥치는 법이라 그동안 결핵과 임질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기도 하고 스페인 독감으로 염라대왕 전殿에도 잠깐 다녀옴. 덴버와 뉴욕,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계까지 종횡무진하며,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문인들과 교류함.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등 안 돌아다닌 곳이 없고, 멕시코에선 혁명에 참가하기도 했다는데, 설마 혁명 수뇌부는 아니었겠지.
 이 정도면 나름대로 자수성가한 작가다. 그러나 부럽지 않다. 불우한 유년기와 완고, 고루한 남편에게 얻어터지던 틴 에이지 어린 신부 시절은 포터의 나머지 생애 내내 깊은 낙인으로 찍혔을 테니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얼마나 치가 떨렸을까. 이 책에 실린 스무 편의 작품의 무대는 그녀의 삶을 보냈던 멕시코, 텍사스 흑토지대의 농장, 유럽, 루이지애나 등 다양하다. 포터의 데뷔작은 <마리아 콘셉시온>. 책에 첫 번째로 실린 단편이다. 1922년 뉴욕에서 썼다고 작품의 마지막 괄호 안에 적혀 있다. 마리아 콘셉시온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남편 후안이 동네 처녀 마리아 로사와 불륜을 벌이는 꼴을 보고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소품으로 무대를 멕시코의 작은 도시로 설정했다. 멕시코에서 혁명이 벌어지자 남편 후안은 혁명군인지 정부군인지 하여간 군대에 징집되어 나가면서 옆구리에 마리아 로사를 차고 떠나, 아이 하나를 둘러메고 탈영해 돌아와, 우리말로 하자면 ‘두 집 살림’을 하는 얘기.
 내가 읽어본 남부 출신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 플래너리 오코너, 카슨 매컬러스, 윌라 캐더, 존 스타인벡 정도인데, 책 뒤에 달린 ‘옮긴이의 말’에도 언급이 되었다시피 캐서린 앤 포터야말로 텍사스 저 촌구석 출신임에도 무대가 세계각지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유년기와 첫 결혼시기를 매우 불행하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거를 지닌 작가들 가운데 흔히 자신의 고통에 천착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음에도, 포터는 과거 경험을 소외당하고, 약하고, 피해를 입는 여러 개별적 영혼에 이입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아울러 많은 작품에서 마리아-해리-미란다, 이 세 명으로 이루어진 남매가 쉬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각별하다. 형제가 더 많을 수도 있는데, 하여간 마리아-해리-미란다 커플은 늘 직접 행위자로 여러 작품에 동시 출현을 하며, 독자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이들 중 미란다와 작가 포터를 한 인격으로 볼 수도 있고, 사실 또 그렇게 된다(‘되더라’라고 쓰자).
 짧은 이야기도 많고, 중편, 긴 중편(혹은 경장편)으로 구성된 작품 하나하나, 재미없는 소설이 없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가슴 속에 약간 아리지 않는 것도 없다. 혹시 모르겠다. 작가가 작품 속에 오롯하게 자신을 담을 때 독자가 이런 느낌을 받는지. 굳이 비교해 서열을 두어 동무님들에게 권한다면, 저번에 읽은 현대문학사 세계문학 단편선 32권 <진 리스 - 한잠 자고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 외 50편>보다 이 책이 좀 더 와닿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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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3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 리스> 단편집 보다는 이 책이 좀 더 좋더라고요. 그나저나 전 이 책 절반정도만 읽고 멈춘 상태인데! ㅋㅋㅋ 폴스타프 님은 한번에 해치우셨군요!

Falstaff 2019-05-31 10:04   좋아요 1 | URL
옙.
전 한 방에 몇 십 권의 책을 사놓고 초간 순으로 읽는 버릇이 있어서, 순서를 지켜야 하거든요. 못된 버릇이지요. ㅠㅠ

목나무 2019-05-3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저도 이 단편집 수록 작품들 다 좋아요. ^^
현대문학의 이 시리즈는 정말이지 계속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덕분에 이런 작가도 알게되니 말이죠. ^^

Falstaff 2019-05-31 11: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현대문학을 급칭찬하게 됐습니다.
다음 달엔 그레이엄 그린을 읽을 겁니다. 그 책도 기대하고 있습지요. ^^

목나무 2019-05-31 11:35   좋아요 1 | URL
저 그레이엄 그린 다 읽었는데 좋아요!
특히 저는 앞부분에 실린 글들이 좋더라구요. 첫번째로 실린 단편(아이들이 집을 부수는 내용)은 진짜 인상깊었어요!
담달에도 즐독하셔요. ^^

Falstaff 2019-05-31 12:0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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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세키. 이 사람이 무려 에도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다. 1867년생. 조선은 소세키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1876년에야 일본에 의해 개항을 하고 마흔세 살 되던 해에 식민지로 떨어지니 얼마나 오래된 인물인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리 오래 묵은 작품 같지가 않아서이다. 물론 요새 사람은 아니지만 이미 죽고 103년이 흘렀다는 게 영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과거의 인물로 인식하게 된다. 서른세 살 되던 1900년에 국비 유학생으로 영국에서 유학했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변방이었던 일본의 젊은이가 태양이지지 않던 나라에서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모든 문화의 최신 경향 속에서 지낸 것이 (당대 일본의 작가들을 포함해) 다른 아시아 작가들에 비해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뭐 제대로 알고 하는 이야기겠는가. 그냥 작가 소개를 읽고 때려 짚으면 그렇다는 말이지.
 <도련님>을 출간한 때가 1906년.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를 밟아버린데 이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아직 시퍼런 왕권을 쥐고 있던 로마노프 집안을 가볍게 물리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콧대를 세우던 시절이다.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러시아까지 쫓아냈으니 숟가락만 들면 조선반도는 저절로 밥상 위에 올라올 예정이니 정권이나 국민들 모두 제국주의적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그러나 소세키는, 적어도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이런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순문학적이고 다분히 사소설로 구분할 작품을 약 십 년가량 만들어낸 후 49세를 일기로 눈을 감는다.
 <도련님> 역시 마찬가지.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성격이 급하고 뭐든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다혈질 소년으로 태어나 성격을 바꾸지 못한 채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저 시코쿠 근방 바닷가 온천을 낀 작은 촌마을의 중학교 수학교사로 임용된다. 거기서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다시 도쿄로 오기까지 만나서 부대끼는, 사람 사는 얘기를 적어놓은 것. 그렇다. 그게 다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그곳에서 ‘나’가 만난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살아가며 만나서 관계를 맺는 다양한 인간들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Gesellschaft에서도 별의 별 인간종이 다 있는 법이다. 그걸 <도련님>의 주인공 ‘나’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어 한 시골마을에서 처음 발견한 것일 뿐. 아무리 읽어봐도 나는 소세키하고 별로 친하지 못하다. 이젠 정말 그만 읽어야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우미인초>, <그 후>, <행인>, <산시로>에 이어 <도련님>까지 여섯 권 읽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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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4호 - 2019.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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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워도, 책 좀 읽으려면 당신네 창비 책을 안 읽을 수 없다는 게 진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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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28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 씨가 창비를 통해 활동을 재개한다는 게 참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입니다.

Falstaff 2019-05-28 14:12   좋아요 1 | URL
창비가 드디어 미친 거예요. 자기 자신한테 취해서 말입죠.

잠자냥 2019-05-28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사태를 보고 정말.... 문학권력이라는 게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창비너마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창비가 제가 알던 그 창비가 아닌거지요. 에휴......

Falstaff 2019-05-28 14:54   좋아요 1 | URL
오랜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군요. 문학권력도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기대했던 독자들이 바보, 호구였던 거고요.

레삭매냐 2019-05-28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절 사태 당시 출판사에서 약속한 게 하나
라도 이루어진 게 있었던 가요.

답이 없어 보이네요.

시간이 지나 슬그머니 돌아오겠다는 그
누구의 행태도 어이가 없네요. 적어도
반성문 하나 정도는 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적폐를 덮고 가자는 어느 정당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해서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羞惡之心 義之端也 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Falstaff 2019-05-28 15:50   좋아요 1 | URL
반성문을 아무리 많이 써도 그이가 지은 표절의 죄는 씻기지 않을 거 같습니다. 외국이라면, 그것도 유럽이라면 회복불가의 공개비난 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출판사는 몰라도 한 때, 시절의 양심이라고도 했던 창비의 행태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고요. 아직 우리나라 문학계는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슬그머니 디밀 것이 따로 있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