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뻬루 마을 사람들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지음, 김현숙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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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인류에게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티보 가의 사람들>이다. 스스로 개전부터 종전까지 참여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바로 다음 해부터 무려 20년 동안 집필을 해 1940년에 발표한 대하소설. 이 작품 말고는 열두 해 동안 써왔으나 결국 미완성 유작으로 남은 <모모르 대령에 대한 추억>이 있다고 한다. 뒤 가르가 당시 56세, 최연소 작가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해가 1937년. 그러면 아직 <티보 가의 사람들>을 완성하기 전이라, 사실 내용과 관계없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하기엔 아직 충분한 역량을 보여주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도 할 터이다. 하긴 탁월한 대하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이 7부와 에필로그로 되어 있으니 그 작품을 연재했다면 상을 탈 수도 있었을 듯하다. 뒤 가르가 필생의 역작 <티보 가의 사람들>에 몰두하던 1931년에 단편소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를 발표하고 다음 해에도 짧은 소설 <모뻬루 마을 사람들 Vieille France>도 발표한다. <티보 가의 사람들>을 쓰면서 좀 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작가들이 장편소설을 쓰는 틈틈이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니까. 이 책은 뒤 가르가 1931년과 32년에 발표한 두 중·단편을 한 권에 담았다. 솔 출판사가 2003년에 찍은 책으로 지금은 절판이다.
 우리나라 출판업계의 불만 가운데 하나가 중역의 의심을 받고 있는 동서문화사를 제외하면 <티보 가의 사람들>이 절판이며 오직 이 책의 1부이자 작품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회색노트>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을 제외하고 읽을 수 있는 뒤 가르의 다른 저작들은 아예 구경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비록 헌책이라고 할지언정 어찌 이 책이 눈에 띠자마자 얼른 주워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티보네 집안을 읽어보신 분은 이 심정 동감하면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솔 출판사의 <모뻬루 마을 사람들>의 원 제목 "Vielle France"는 네이버 불한사전을 보면 우리말로 “오래된 프랑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단다. ‘오래된 프랑스’ 말고 더 어울리는 번역은 없을까? 뒤 가르의 관찰의 대상이 되는 모뻬루 마을은 우리나라 읍 정도의 행정단위로 열차 정거장을 중심으로 우체국, 시청(또는 읍사무소), 성당, 빵집, 야채가게, 대장간, 작은 책방, 기타 등등이 있는 작은 시가지와 농사와 목축업을 하는 시골지역을 모두 합친 곳이다. 비록 마을 사람들은 부르주아 적인 사고방식으로 오랜 전통이었던 가톨릭에 입각한 세계관을 벌써 버렸거나 아주 약한 유대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며, 투표를 하면 주민 가운데 90%가 좌파 정당에 표를 던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루한 프랑스 농촌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모뻬루 마을 사람들” 말고 “고루한 프랑스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다른 표현으로 하는 것이 책을 읽으며 빨리 책의 정체를 눈치 채는데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뭐 그건 편집자와 역자가 알아서 했겠지.
 모뻬루 마을 우체국, 그래봐야 콧구멍만 한 우체국이겠지만, 거기 역시 우체국장이자 배달원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이 ‘주아노’라고 했다. 이야기는 이 주아노가 하루 온종일 모뻬루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가상의 시골마을 사람들의 ‘인간적’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떤 것이 ‘인간적’인 거냐고? 알려드리지. 먼저 우리의 주인공 주아노에 관해 말해보자. 주아노는 젊어서부터 모뻬루 마을의 우체국, 아냐, 아냐, 자꾸 우체국이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해보이니 이런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체국을 조금 작게 보이게 하기 위해 앞으로는 ‘우편소’라고 부르기로 하자, 우편소에 직업을 얻은 사내로 도로道路 인부 페주를 제외하고는 아직 모뻬루 마을 주민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새벽에 일어나 곧 도착할 우편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정거장을 향해 가는 인물. 당연히 결혼을 했다. 오래 전에. 근데, 문제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혼자 우편소를 독식하려면 자기가 우체부를 할 동안 우편소 내부를 관리해야 할 터. 그러다가 여차하면 자기 밥벌이를 잃을 수도 있을까 싶어 어떤 조치를 했느냐 하면, 아내에게 우편소 관리 일을 시키는 것.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니 만일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육아, 수유, 가사에다가 또 우편소 관리까지는 도무지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어떤 결론을 내렸느냐 하면, 결혼과 동시에 출산의 희망에 부푼 아내에게 자기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땅, 땅, 땅, 나무망치를 세 번 내려쳤다. 설마 우리의 주인공 주아노를 진짜 직업정신이 투철한 우체부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이 인간의 주된 여흥이 무엇인가 하면, 몇 십 년 눈썰미로 척 보면 어떤 것이 중요한 편지인지 알아채, 주전자 증기를 뿜어 쥐도 새도 모르게, 아무 흔적도 없이 편지를 개봉해 은밀한 내용을 미리 읽어보고 자기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위해 최선의 사기를 치는 것도 있는데, 이때 눈부시게 발휘되는 것은 바로 윤활유가 듬뿍 묻은 혀. 이익을 위해서는 온갖 감언이설이 청산유수. 그러나 마누라 앞에만 앉으면 밥 먹을 때, 물 마실 때 말고는 절대 입조차 열리지 않는 인간이다.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그리는 고루한 프랑스 시골마을의 사람들이 도시 사람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순박하고 정직하고 정이 넘치지 않는다는 점. 하나같이 구두쇠에다가 자기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체면 차리려 다른 이를 무시하며, 작은 이익을 위해 험담하는 건 기본이며, 종교적 자비심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다. 프랑스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에 기대하는 소위 ‘시골인심’이란 건 애초에 없다는 진실을 뒤 가르는 매정하게 가르쳐 주고야 만다. 시골이나 도시나, 프랑스나 한국이나, 인간의 모습은 다 그게 그거. 대강 그림이 그려지실 듯. 그러면 여기까지.
 함께 실린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는 단편소설이라 재미는 있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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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9
궈스싱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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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궈스싱은 몇 년 전에 대표작 <물고기 인간 魚人>을 읽은 적 있다. <물고기 인간>은 초기 궈스싱의 희곡에서 <새 인간 鳥人>, <바둑 인간 棋人>과 합해 소위 한량 삼부작이라고 칭한단다. 눈치를 보니 궈스싱이 현대 중국 극작가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청개구리>가 올해 봄에 한국에서 낭독공연을 했고, <물고기 인간> 역시 작년에 낭독공연의 형식으로 초연을 했다고 역자 해설에 쓰여 있다. <물고기 인간>도 그렇고 <청개구리>도 그런데, 이런 형식의 작품을 부조리극이라고 한단다. 부조리극, 이라고 해서 괜히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현대극이라고 이해해도 별 탈이 없을 듯. 이미 고전이 된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앨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등을 이제 부조리극이라고 하면서 괜히 어렵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희곡을 읽거나 공연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냥 기존의 연극적 (또는 통틀어 문학적)방법인 발단-전개-갈등-절정-결말의 단계를 차곡차곡 밟는 대신 그냥 하고 싶은 행위를 순서에 입각하지 않고 펼쳐 보이는 형식쯤이라 설명하면 된다. 나 같은 일반 독자가 드라마를 공부하는 사람처럼 장르의 기원과 내용, 형식 등을 굳이 시간을 내 찾아보고 읽을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시도 반시가 있고, 소설도 반소설이 있듯이 연극에서도 어찌 반연극反演劇이 없을까. 반연극을 통째로 부조리극이라고 생각해도, 이미 부조리극이 등장한지 80년이 넘어가는 지금에 와서는 시비를 따질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청개구리>에서 청개구리가 진짜로 등장하느냐고? 그렇다. 작품의 맨 끝부분에 청개구리가 팔딱 거리는 장면이 나오고 당연히 울음소리도 들리는데 어떤 방식으로 청개구리를 뛰게 만들지는 전적으로 연출가 마음이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청개구리를 잡아와서 무대에 풀어놓지는 않겠지? 내 생각도 그렇다.
 등장인물은 네 명. 이발사, 손님, 나그네, 여자. 이발사와 손님은 1막부터 3막까지 쉼 없이 한 명은 이발의자에 앉아 있고 이발사는 가위를 손에 걸고 있다. 내용만 퉁 쳐서 이야기하면, 말 많은 손님과 이발사가 끊이지 않는 수다를 떨고 있는 와중에 나그네가 도착해 이발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그들의 수다도, 이발 행위도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래 면도를 하고 싶어 하는 나그네는 이들과 말을 섞다가 여자한테 1막에 한 번, 2막과 3막에서는 두 번씩 귀싸대기를 얻어맞고 결국 그냥 발길을 돌린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연극에서 대사를 떼어내면 별 거 없는 드라마이지만, 여기에 현대와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무수한 사건과 자연현상이 첨가된다. 현대의 여자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고, 자기 복제는 앞으로 남성을 더욱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며, 큰 나라의 큰 도시에선 비행기 두 대가 똑같이 생긴 큰 건물 두 동을 무너뜨리고, 인도네시아에서 강도 9.1의 강진의 여파로 쓰나미가 발생해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거쳐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북극의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인간의 쓰레기통을 뒤진다는 등의 말잔치가 벌어지는 와중에, 무대가 되는 중국의 평야지대 역시 점점 물이 들어차 이발사와 손님의 다리에 굴과 조개가 번식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대강의 줄거리인데 극작가가 독자, 관객에게 무엇을 주장하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 에티켓. 사실이 또 그렇다. 어찌 모든 예술 장르에 스토리나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하나. 만일 고도가 무대에 쓱 등장해서, 만장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그동안 미천한 저를 기다리시느라 수고 겁나게 하셨습니다, 라고 인사하면 그게 베케트의 문제작이 될 수 있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청개구리>엔 메시지가 있다. 아니, 적어도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극작가 궈스싱은 그것이 사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썼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자(또는 관객) 역시 그것이 똑 부러지게 무슨 메시지인지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어차피 소통은 불확실한 것. 코러스가 무대에 등장해 집단으로 노래하고 사연을 전하던 시절이나, 투명 플라스틱이 프롬프터를 대신하는 시대나 마찬가지로 연출가와 관객, 극작가와 독자 사이에 한 번도 정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러니 문학에 반대할 수밖에. 그 일환으로 나온 것이 소위 반연극, 즉 부조리극 아니겠는가. 독자 또는 관객인 당신이 이 책을 읽거나 연극을 보면서 느낀 것, 그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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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 씨, 홀로 죽다 / 누런 개 / 센 강의 춤집에서 / 리버티 바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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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만 보면 네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선집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출판사 열린책들의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작가 12인”이라는 세트 가운데 한 권으로 <갈레 씨, 홀로 죽다>, <누런 개>, <센 강의 춤집에서>, <리버티 바> 이렇게 네 편의 짧은 장편을 한 권에 담아 본문만 752쪽에 달한다. 출판사는 2016년에 한시적으로 이 세트를 판매했는데 목록 가운데 <장미의 이름>, <야만스런 탐정들>, <죄와 벌>, <소설>, <핑거 스미스>, <개미> 등은 기존에 분책되어 발간했던 걸 한 권으로 묶어 일괄 9천원에 판매했다. <갈레 씨, 홀로 죽다외 3편>은 심농이 1931년에 쓴 메그레 시리즈 가운데 네 편을 모아 역시 한 권, 9천원에 팔았었다. 네 권을 따로 구입하면 10% 할인가격으로 35,280원. 열린책들이 좋은 일 한 번 했다. 하지만 2016년 당시엔 왜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까. 대부분 이미 읽은 책들이었기 때문이었을 확률이 높다. 이젠 대표작가 12인 세트 가운데 아직 품절되지 않은 채 팔리고 있는 책이 별로 없어서, 나도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을, 새 책 같은 헌책으로 샀다. 한 권에 6,500원 주고. 완전히 길 가다가 만 원짜리 주운 기분이다. 그래 별점으로 만점을 때린 건 백퍼 편집 때문이다.
 조르주 심농이란 작가는 내가 주목해온 사람이 아니다. 그저 추리소설 작가로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고, 이번에 그의 책들을 읽은 것도 저렴한 가격의 두꺼운 책을 발견했다는 이유 하나였다. 그의 ‘메그레 시리즈’는 파리 경찰청의 메그레 반장이 펼치는 추리소설로 장편 75편, 단편 28편, 이렇게 모두 103편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시리즈의 완독은 꿈도 꾸지 마시라. 장편 한 권에 할인가 8,820원, 단편 네 개가 책 한 권으로 치면, 필요한 책값이 (75+28/4)*8820 = 696,780원이며, 79권을 읽으려면 최소한 한 넉 달 정도 필요하겠지? 그러니 포기하시라. 나처럼 맛만 보고 얼른 메그레 반장의 매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현명할 듯.
 메그레 반장을 한 번 보자. 나이는 45세. 유부남이고 아내는 20세기 유럽 여성스럽지 않게 남편밖에 모르고, 여름 휴가기간에는 한 한 달 기한으로 알자스 근처에 있는 알프스 주변으로 피서를 떠나 그곳의 처제네 집에 머문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는 전형적 중산층이며, 경찰청의 수사반장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프랑스 각처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의 해결을 위해 자주 장기 출장을 떠나기도 한다. 1930년대 기준으로 거구라 할 수 있는 180cm가 넘는 키, 100kg을 초과하는 몸무게를 지녔음에도 그리 둔하지 않는 순발력을 지녔다. 사시사철 검정색 정장을 고집하고, 출장지에서 이동할 때는 주로 택시를 타는 것으로 미루어 택시비는 경찰 당국의 활동 경비로 올리는 것이 분명하다. 근데 줄창 마셔대는 맥주 값은 모르겠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그래 내가 아는 한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대표적인 탐정인 셜록 홈즈는 얘기가 필요하지 않을 천재 형이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하나 가지고 그의 외모와 성격, 나이를 다 추리할 수 있는 건 기본이고, 산만 한 식인개가 날뛰는 한밤의 벌판에서 홀로 밤을 새울 수 있는 담력, 슈거레이 레너드 뺨치는 복싱 테크닉과 펀치력 등등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크게 한 자리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 브라운 신부. 이이는 직업인 신부답게 사람의 본성에 관한 깊은 이해심을 갖고 있는 이로 주로 사건의 원인을 추적함으로써 심리수사, 즉 최초의 프로파일러 쯤 될 것이다. 이에 반해 메그레 반장은 추리소설에 참 어울리지 않게 스스로 시간 날 때마다 자신은 추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만 확인할 뿐이고. 후, 어느 수사관, 탐정이 그러지 않을까. 사실을 확인하고, 사실에서 다른 사실, 가능성들을 확산하다가 한 가닥으로 집중시키는 행위를 추리라고 하는 거 아닌가? 메그레 반장이 다른 주인공들과 변별될 수 있는 건 그의 말대로 사실을 확인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각 사건이 처한 상황을 최선의 방향으로 왜곡시킨다는 데 있다. 나는 솔직히 첫 작품 <갈레 씨, 홀로 죽다>의 결말을 읽고 깜짝 놀랐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열린 독후감을 쓰면서 수사반장 시리즈의 결말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만큼 지탄받을 일이 있을까. 그래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이 메그레 씨가 수사반장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방식은 정말 상식 밖이다. <갈레 씨……>에서도 특출한 수사력을 보유한 메그레 반장이 사건의 기승전결을 이미 다 꿰고 언제나처럼 살인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뻔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픽, 인간사에 대한 조롱인지, 이미 세상일에 달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실과 다르게 사건을 마감하는 건 조르주 심농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사관 또는 경찰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비록 심농의 103편에 달하는 메그레 반장 시리즈에서 겨우 네 편의 장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메그레 반장이 사건을 해결하고 결과를 왜곡, 말이 왜곡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직업적 거짓을 의미할 수도 있는 그런 수준의 왜곡이 가능한 건, 이 두꺼운 책에서 살인 피해자가 악당이거나 악당 비슷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싹수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대 범죄에서는 거의 어김없이 등장하는 돈이 개입한다. 그래 범죄는 거의 어김없이 이전구투의 와중에 벌어지는데, 원래부터 인간에 대한 조소가 충만한 메그레 반장은 독자들의 속내를 꿰뚫고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니면 적어도 그 방향 비슷하게 끝을 맺어줌으로 해서, 무려 103편의 길고 긴 시리즈도 가능했고, 이 가운데 수 십 편이 영화화되어 돈 방석에 오르기도 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다 그런 거지 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껏 범인을 잡아놓고 그걸…… 더 말을 말자,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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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8-16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리즈 중에 <야만스런 탐정들>하고 <소설> 사두었어요. 메그레 반장 시리즈는 책 나올 때마다 한 권씩 사서 봤기 때문에 나중에 네 작품이 한 권으로 합쳐서 나온 거 보고 좀 배가 아프기도 했습니다. ㅎㅎ 지금 보니 다 품절이군요. 참 좋은 기획이었습니다! 별 다섯 줄만 해요. ㅋㅋㅋ

암튼 전 메그레 반장의 그 연민이 참으로 좋더라고요.

Falstaff 2019-08-16 10:13   좋아요 1 | URL
예. 전 메그레 반장이 사건마다 그렇게 결말을 맺을 때, 처음엔 깜짝 놀랐다가 나중에 가서는 은근히 기대하게 되더라고요.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는 책인줄 몰랐답니다. 진짜 재미있더라고요.
전 <야만스런 탐정> 때문에 배가 좀 아프고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19-08-16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성비 덕분에 몇 권 샀었는데
읽기는 힘들어요^^ㅎㅎ
한 권의 책이 끝이 없더라구요.
담부턴 그냥 1,2권 분리 되어 있는 것으로 선택하기로 결심했어요~~

Falstaff 2019-08-16 12:35   좋아요 0 | URL
그냥 취향이지요 뭐. 전 일단 두껍고, 글자 많고, 빽빽한 책들을 선호하는 편이라서요. 아마 팔잔가봐요. ^^;;
 
위선자들의 밀교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김혜란 옮김 / 연극과인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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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은 미하일 불가코프의 희곡. 몰리에르의 마지막 11년을 담았다. 몰리에르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타르튀프>. 지금부터 350년 전에 쓰인 희곡으로 기존 귀족, 성직자 계급을 사정없이 비꼬아버린 유쾌하고 발랄한 작품이며, 원 제목이 <타르튀프 혹은 위선자>이다. 그러면 불가코프의 제목에 나오는 위선자가 누구들인지 대강 짐작이 갈 것.
 그런데. 불가코프를 읽는 독자들에게 숨어있는 꽤 큰 함정이 무엇인가 하면, 불가코프의 작품 속에는 알게 모르게 당시 소비에트의 독재자 스탈린 체제에 대한 은밀한 저항이 작품 속에 들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실제로 불가코프는 스탈린이 집권한 다음에 프롤레타리아 작가동맹을 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작품 활동만 허락을 받았던 불운한 작가 그룹에 포함되기 때문에 독자들의 이런 오해도 한 편으로는 정당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불가코프가 자신이 처한 체제를 풍자했을 것이라는 독자들의 기대와 탐색이 정작 불가코프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위선자들의 밀교>를 읽어가면서 등장하는 루이 14세, 귀족, 성직자, 근위대장 등을 나도 모르게 스탈린과 고위급 정치인, 비밀경찰로 대입하려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이 작품은 1930년에 소비에트 레퍼토리 총국에 의하여 공연불가 판정을 받은 후 1931년에 제목을 <몰리에르>로 바꿔 공연 허가를 얻어낸다. 이후 무려 5년이 넘는 세월을 연습과 리허설에 바쳐 1936년에 이르러 무대에 올렸으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루이 14세 시대에서 벌어진 재판 없는 폭정을 유사하게 풍자했다는 이유로 단 일곱 번의 공연 후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스탈린 시대에 대한 약간의 저항을 포함한 풍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자 했던 것이 정당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20세기 중반이면(그것도 자유진영의 국민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21세기까지 와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작품의 텍스트에 나오는 그대로를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건 350년 전에 쓰인 <타르튀프>를 읽으면서 이제는 더 이상 허리가 부러지게 웃을 필요도 없고, 웃기지도 않는 것과 비슷한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1662년 초에 마흔 살, 당시 기준으로 하면 늙은 몰리에르가 주책이 났는지 여배우 아르망드 베자르라는 이름의 여배우를 임신시키고 결혼에 이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몰리에르가 원래 부르주아 출신이라 첫사랑이자 연상의 여배우였던 마들렌 베자르와의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맺지 못한 바 있어, 마들렌의 동생 아르망드와의 결혼에 작은 뒷소문이 있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데, 위키피디아가 정확한 백과사전은 아니지만, 마들렌과 아르망드가 자매 사이가 아니라 사실은 모녀 사이라는 풍설이 있었던 모양이다. 불가코프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 몰리에르의 아내 아르망드가, 첫사랑 마들렌과 몰리에르 사이에서 출생한 사생아일 수 있다고, 당사자 마들렌의 입을 통해 발언한다. 마들렌이 예전에 동시에 두 남자와 함께 산 적이 있는데 이때 한 명이 몰리에르이며, 임신을 해서 아르망드를 낳은 건 사실이나 아이가 누구의 딸인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죽음을 앞두고 파리의 대주교 샤롱에게 고백하는 장면. 샤롱은 <타르튀프>에서 성직자를 모독한 몰리에르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터, 아르망드가 틀림없이 몰리에르의 아내이자 딸이라고 루이 14세에게 고변을 해 궁정극장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극장에서 거의 마지막 작품인 <상상병 환자>을 공연하다가 무대에서 죽는 것으로 처리한다. 실제로 몰리에르가 공연장에서 쓰러진 것은 맞지만 집으로 옮겨져 침상 위에서 죽음을 맞는데 그러면 재미가 덜 하니까 독자가 이해하자.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빼고 초장과 막장만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정작 작품 <위선자들의 밀교>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연출가 스따니슬라프스끼의 연출 노트다. 연극을 연습하고 리허설을 하면서 공연하는 배우, 극작가인 불가코프 등과 의견을 나눈 속기록을 옮긴 것으로 65쪽에 이른다. 서양 사람들은 원고의 분량을 이야기할 때 단어 수를 세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단어 수로 하자면 틀림없이 본문인 희곡보다 더 많은 분량이다. 이 재미있는 노트에서 연출가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천재 가운데 한 명인 몰리에르에게 더 극적인 장면을 부여하지 않는 것에 유감을 표명한 반면, 불가코프는 몰리에르 역시 보통의 한 사람으로 보다 더 자연스러운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시 <타르튀프>를 보면, 작품 내내 귀족과 성직자들의 비도덕적이고 부패한 측면을 신랄하게 야유하고 있지만, 극작가 자신도 결국은 루이 14세의 극장에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 난데없이 “국왕폐하 만세”로 아첨할 수밖에 없던 생활인 아니었나. 뭐 이런 담화보다, 더 인상 깊게 받은 느낌은, 독자 또는 관객 입장에서는 그냥 돈 내고 에어컨이 잘 작동되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한 편의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지만, 작가, 연출가, 배우, 스태프 등은 한 권의 책, 한 편의 연극을 위해 그렇게나 진지하게 궁리하고, 토론하고, 실제로 연기해보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맞다. 한 편의 좋은 작품이 어떤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부록 격인 ‘연출 노트’를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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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1 펭귄클래식 46
브램 스토커 지음, 박종윤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여름엔 역시 공포물.
 난 두 편의 <드라큘라> 영화를 보았다. 하나는 1975년에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테렌스 피셔 감독, 크리스토퍼 리가 타이틀 롤을 한 것으로 짐작하는데, 크리스토퍼 리가 드라큘라를 연기한 것이 몇 편 되는 모양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마차 바퀴살로 드라큘라의 심장을 찔러 죽이는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당시엔 또 공포영화 유행이 시작되던 무렵이어서 이미 클래식 급으로 여겨지는 <엑소시스트>, 몇 년 후에 <오멘> 같은 영화가 줄줄이 개봉한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진정한 클래식 공포영화는 도금봉 여사가 열연하는 <월하의 공동묘지>였지만.
 그 후 20세기 말에 드디어 내 기억 속에 남은 최고의 <드라큘라>가 세상에 나오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을 하고 게리 올드만이 타이틀 롤을 하는 영화로 이건 엉뚱하게도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모 극장에서 마누라 손잡고 봤다. 가히 최고의 <드라큘라>. 드라큘라를 넘어서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의 공포영화 안에서는 단연 명작 중의 명작이다.
 굉장히 이상하지 않나? 루마니아와 헝가리 근처에 있는 트란실바니아의 외진 성에 은거하던 드라큘라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선택하는 곳이 영국의 런던이란 설정이? 아, 당연하긴 하다. 원작자 브램 스토커가 고딕 문학의 탄생지이자 성지랄 수 있는 잉글랜드 출신이니 무대를 자기가 익숙한 곳으로 설정했겠지. 근데 드라큘라 백작 입장에서 보면 굳이 자신의 안식처인 관과 트란실바니아의 흙을 싣고 지중해와 대서양을 거쳐 영국까지 보내는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 육지를 따라 관과 흙을 곳곳에 보관하며 조금씩 밤의 제국을 확장해도 저 이베리아 반도에서 시작해 온 유럽을 관통한 다음, 다시 터키, 아라비아, 인도, 중국을 거쳐 캄챠카 반도에다가 베링해협에 이르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 전부를 먹을 수 있거늘. 여기에 비하면 실로 코딱지만 하고 춥기만 한 영국 땅에 무슨 미련이 있어 거기까지 갔다가 오히려 수난을 당하느냐는 말이지.
 이런 의미에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가 진정한 승리자다. 영화에선 십자군 전쟁 중 열악한 통신에서 오해가 생겨 장군의 아내가 자살을 하고, 자살을 했기 때문에 영원히 구천을 떠도는 원귀 또는 지옥을 헤매는 영혼에 머물러야 하는 아내의 운명을 저주해 칼로 십자가를 푹 찌른 대가로 드라큘라 백작은 천상의 하느님으로부터 ‘불멸’이란 진짜 저주를 받아, 죽지 못하는 형벌을 당하던 중,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영국에서 환생한 걸 알아낸다. 그러니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어찌하여 영국행을 머뭇거릴 수 있었단 말이냐 이거지. 더군다나 코폴라의 <드라큘라>에서는 소위 ‘피가름’이란 의식과 매력적인 에로티시즘이 뒤섞인 환상적인 화면이 섞여있어 지금도 내가 이리 상찬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불과 이틀에 걸쳐 한달음에 원전인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1, 2권을 읽은 이유는, 지난 달이던가 두 달 전이던가, 어느 책을 읽다가, 작중 주인공이, 톰 울프가 쓴 <허영의 불꽃>에서 셔먼 아니면, 리처드 라이트가 쓴 <스포츠라이터>의 프랭크인 거 같긴 한데 손에 쥐고 시간 날 때마다 기웃거리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을 골랐다는 것이 타당할 정도로 정말 재미있기는 하다. 근데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바로 여태까지 설레발을 풀었던 드라큘라 백작의 영국 나들이. 많고 많은 나라 중에 폭풍우와 침몰의 위험부담을 안고 왜 섬나라까지 쳐들어갔는가 하는 정당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 거. 이것만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래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한 번 읽어보시라.
 내가 독후감을 이리 막 써나가는 건, 여태까지 <드라큘라>와 비슷한 이야기나 영화, 드라마, 심지어 뮤지컬 같은 소스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스무 살 넘은 사람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을 거 같아서, 새삼스레 작품의 스토리나 등장인물 같은 걸 써 놓아야, 잘해야 본전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 읽기 딱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걸 읽을래, 코폴라 감독의 영화 <드라큘라>를 볼래, 하면, 모르겠다, 나 같으면 영화를 본다. 그게 너무 재미있으면 영화가 원래 어떤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니까 저절로 책을 찾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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