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냐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101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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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작가 마이크 레즈닉에 대해. 원래 이름은 마이클 다이아몬드 레즈닉 Michael Diamond Resnick. 1942년생. 아래 첨부사진은 2005년에 찍은 것으로 보시다시피 놀랍게도 백인이다. 표지를 벗긴 하드커버만 들고 다니며 읽어서, 작가가 흑인이겠지만 혹시 백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시카고 토박이. 시카고 대학을 다니다 아직까지는 유일한 아내 캐롤을 만나 학교를 때려치우고 곧바로 단편소설 작업에 착수하는데 무려 10년 동안 200~300편을 썼다. 소설 쓰는 기계냐고? 그렇게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소설은 야설뿐 아닐까? 맞다. 10년간 야설작가로 필명을 날리던 레즈닉은 그후 13년 동안 아주 훌륭한 개 사육인으로도 살았다. 얼마나 훌륭했느냐 하면, 13년 동안 스물일곱 번이나 최우수 콜리 종을 키워냈을 정도. 최우수 콜리. 흠. 그 ‘최우수’ 자리에 스물일곱 마리의 개가 오르기까지 개 몇 백 마리가 얼마나 특별한 운동과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는지는 물론 일반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터. 그러다가 개 냄새가 지긋지긋해졌는지 1981년의 어느 날 문득 레즈닉은 다시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아 이번엔 SF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다작하는 성향을 가진 레즈닉은 그 후 2000년 현재까지 20년 동안 백 편이 넘는 단편을 발표했다고 하며, 오늘 독후감을 쓰는 <키리냐가>도 처음엔 단편으로 썼으나 줄거리가 이어지는 후속 작을 연달아 발표하여 결국엔 열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연작장편이 된다.
 작가가 백인이라서 놀란 이유는, 소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무대가 아프리카 케냐. 본문 여덟 편은 유럽인들이 관리하는 지구형 행성 속 아프리카의 토속신 ‘응가이’가 거처했던 신령스러운 산 ‘키리냐가’의 이름을 딴 사바나 지역이며, 작품 속에 무수한 흑인 사이에서 등장하는 백인은 모두 세 명으로, 우주선 폭발로 인해 중상을 당한 금발의 남자 우주선 조종사, 이 사람을 응급처치하고 후송하기 위해 도착한 여자 의사, 주인공인 주술사 코리바가 악마가 조종해 발부터 세상에 나온 신생아를 목 졸라 죽여 이에 항의하러 키리냐가에 온 금발의 여자 관리인뿐이라서 이다.
 주인공인 늙은 코리바는 케냐 지역 일대에 거주하던 세 부족, 마사이, 캄바, 키쿠유족이 유럽 문명의 침입으로 부족의 순결함을 잃고 검은 유럽인으로 변모한 채 케냐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참을 수 없어 우주선을 타고 키리냐가에 가 주술사 ‘문두무구’의 자리에 오른다. 그곳에서 코리바는 진정한 키쿠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훌륭하게 주술사의 역할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인 비를 부르는 일은 행성을 관리하는 유럽인들과의 컴퓨터를 이용한 교신으로 해결한다. 주술사로서 코리바가 가진 능력은 일찍이 케임브리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예일에서 두 개의 학위를 가진 지식과 우화를 만들어내는 문학적 소양이다. 그러나 그는 키리냐가의 문두무구, 키쿠유족의 정신적 아버지라는 자리에 앉아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종족의 순결을 지켜나가기로 결심을 한다. 유럽의 문명 일체를 거부하는 것. 예를 들어 아픈 아이가 있다고 하자. 코리바는 아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만든 약과 고약으로 병을 다스리려 하지 유럽인주술사로 하여금 금속침으로 아픈 아이의 살갗을 뚫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열병을 고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유럽의 의술을 받아들이면 다음엔 그들이 만든 편리한 기계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이어서 옷, 음식, 집, 농업 등 일체의 고유한 문화가 절멸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역사나 정치, 경제 역시 다 마찬가지다.
 이 행성의 이름이 유토피아. 우리가 알고 있는, 일찍이 토머스 모어 경이 자기 대가리가 잘리기 전에 발명해놓은 Utopia가 아니라 Eutopia, 유럽인들이 만든 유토피아. 행성의 이름에서 벌써 눈치 빠른 독자는 코리바의 원대한 구상이 개꿈으로 끝날 것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 그가 만들어놓은 유토피아로서의 키리냐가는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고, 처음엔 그 균열을 손가락 한 개로 막을 수 있었지만 차츰차츰 더 많은 균열이 더 크게 벌어지는데 그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애초부터 코리바는 착각을 했던 것. 나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는, 빠르거나 늦거나의 문제지 결국은 어떤 형태로라도 운동하는 건 진리다. 부족장과 주술사가 합심해 만든 유토피아 사회는 어느새 푹 고인 물이 돼버려, 젊은이들은 권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또 당연하다. 이웃부족의 침략도 없고, 이웃부족을 침략하지도 않고, 아무런 긴장tension 없이 그냥 번식해서 사는 것이 어찌 유토피아일 수 있을까. 인간이건 사회건 기본적으로 바라는 건, 때로는 과격할 수도 있지만 주로 과격하지 않은 변화와 파동. 코리바와 키쿠유족의 유토피아는 애초부터 생물학적 진보에 너무 무식했다는 결함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힘겹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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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0
야오위안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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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앙. 사마천의 <사기열전> 8편인 상군열전에 의하면, “상군은 위나라 왕의 여러 첩이 낳은 공자로서 이름은 앙이고 성은 공손씨이며 그 조상은 성이 희姬였다.” (김원중 역, 민음사 <사기열전1> 207쪽. 2007) 라고 한다. 희씨 성은 주나라 왕가의 성姓이니 원시 봉건사회였던 주나라 초기에 왕족 하나가 주의 봉토를 받아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위衛’라 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서자라고 해도 왕자는 왕자였겠지만 야오위안은 책에서 상앙을 왕이 아니라 (왕의 아들인)공자가 천한 신분의 여인 ‘희랑’ 사이에 만든 사생아로 등장시킨다. 희랑은 나중에 자신의 손으로 눈을 파 맹인이 됐다가 노예 신분으로 떨어졌음에도 진나라 수도 함양에 도착해 기어이 아들 상앙을 만나는 것으로 각색했다.
 나를 포함해서 상앙에 관해 사전지식이 좀 있는 독자라면 상앙이 변법, 즉 새로 바뀐 ‘상앙의 법’을 시행하기 전에 도성의 남문 앞에다 세 길의 장대를 세우고 이것을 북문으로 옮기면 금 50냥을 주겠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나올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근데, 안 나온다. 대신 <사기열전>의 첫 장면, 자기 집안의 집사 수준인 중서자中庶子로 채용하고 있던 공숙좌가, 상앙이 현명한 줄 알고 있다가 위나라 왕에게 추천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임종의 침상에 드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주의할 건, 상앙은 위衛 왕실의 떨거지 사생아이고, 그를 거두어 자기 수하에 둔 이는 전국칠웅 가운데 하나인 위魏나라의 중신 공숙좌라는 거. 나라 이름이 우리말로 하면 비슷비슷해서 많이 헷갈린다. 위왕이 문병 차 중신 공숙좌의 집에 들렀을 때, 공숙좌가 말하기를 “제 중서자로 있는 공손앙은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재능이 빼어납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나랏일을 그에게 맡기고 다스리는 이치를 들으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중신이라지만 일개 집사에 불과한 젊은이에게 어찌 나라 살림을 맡길 수 있으랴. 이를 눈치 챈 공숙좌는 주위 사람들을 물리고 다시 왕에게 말한다. “왕께서 공손앙을 등용하지 않으시려거든 반드시 그를 죽여 국경을 넘지 못하게 하십시오.”
 때는 본격적인 전국시대. 천하의 영재가 있으면 영재를 채용하든지 죽여야 했다. 살려두면 다른 나라로 망명해 자신의 영재를 휘날려 창을 거꾸로 잡을 터이니 말이다. 죽어가는 공숙좌가 왕에게 그리 말을 했는데 그래도 좀 찜찜한 구석이 있어 상앙을 부르더니 그것도 훈수라고 한 마디 한다. “오늘 왕께서 재상이 될 만한 인물을 묻기에 나는 너를 추천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더라. 그래 만일 기용하지 않으시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고했다. 그러니 너는 이 길로 빨리 위나라를 떠라.” 이 말을 들은 상앙이 답하기를, “저 왕께서는 당신 말을 듣고도 저를 임용하지 않는데, 또 어찌 당신 말을 들어 저를 죽이겠나이까.” 하면서 공숙좌의 장사까지 다 지내고난 다음에 진나라로 가서 스물한 살의 젊은 군주 효공과 세 번에 걸친 면담을 통해 한 자리를 꿰어 찬다.
 ‘상앙의 법’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엄정한 신상필벌의 법칙이다. 잘 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반드시 벌을 주는 법. 이런 신법을 수립하기 위해 상앙은 당연히 무리하게 기득권 집단, 특히 왕족인 영嬴씨들과 다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기존의 질서를 다 무시하고 신분, 토지, 사법, 과학, 심지어 계량형까지 통일시키는 등 놀라운 개혁을 일으켜 진나라를 천하무적의 강국으로 만든 반면, 개혁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문벌들과의 권력다툼 덕에 인간으로는 그리 큰 대접을 받지 못한다. 사마천도 “상군은 타고난 성품이 각박한 사람이다. 효공에게 벼슬을 얻고자 제왕의 도로 유세한 것을 보면 내용이 없고 화려한 말을 늘어놓은 것이지 마음속으로 하려던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군주의 총애를 받고 있던 신하를 이용하고, 자리에 오른 뒤에는 공자 건에게 형벌을 가하고, 위나라 장군 앙을 속이고, 조량의 충언을 따르지 않은 것도 상군이 은혜가 적은 것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나는 일찍이 상군이 지은 책들을 읽었는데 책의 내용도 그가 행동한 궤적과 비슷하였다. 결국 상군이 진나라에서 좋지 않은 평판을 얻게 된 데는 까닭이 있었구나!” 라고 말한다. 사마천이 말한 상앙의 유세나, 공자 건에게 가한 형벌 등도 다 야오위안의 희곡에 조금 모습을 달리해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법가로 칭하는 이들, 상앙을 비롯해 오기, 한비자, 이사 등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는 것. 상앙은 자기가 모시던 효공의 아들 혜왕에 의해 거열형으로 몸통이 다섯 토막이 나서 죽고, 오기는 초나라 임금의 시신 위에 엎드려 왕족이 쏜 무수한 화살을 맞고 죽으며, 한비자는 그를 영입했지만 시기했던 이사의 모함으로 사약을 먹고 죽으며, 이사는 환관 조고의 모략에 의하여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을 당한다. 더불어 사마천을 비롯한 후대의 사가들에게 현대적 해석이 내리기 전까지는 좋은 평판을 듣지도 못하니 이들의 팔자가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사상을 좇는 나라는 계속 발전을 하고, 그걸 거두는 나라는 종말을 향해 간다. 드라마 <상앙>에서도 결국 진나라 혜왕의 손에 거열형을 당해 죽음을 당하는 와중에도, 진나라의 대를 이은 신하 공손고와 <사기열전>에서는 코가 베어지는 반면 희곡 <상앙>에선 왼쪽 다리의 절단형을 당하는 공자 건은 한 목소리로 상앙의 법은 계속 실행하되 상앙이라는 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상앙의 엄격한 법률체계를 이어간 진나라는 서기전 230년대에 법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던 재상 이사와 더불어 한나라에서 영입한 한비자의 활약으로 전국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개인은 불행하고 그들의 생각을 실천한 나라는 융성했던 시대의 풍운아, 그를 돌아보기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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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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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랜 동안 읽기를 망설였던 작품.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표지는 이렇다.

 

 

 소설 제목으로 <소설>이 뭐야. 시인이 자기 시의 제목을 <시>라고 짓는 건 괜찮을 거 같은데 어째 소설 제목으로 <소설>은 덜 소설적인 거 같았다. 이유라고는 딱 그거 하나. 아니면 벌써 읽었을 터. 그러다가 열린책들의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작가 12인” 세트에 두 권을 한 권으로 묶어 포함한 것을 발견, 서슴없이 사 지금 막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느낌을 한 마디로 쓰자면, ‘대박’. 더 놀라운 건, 이 작품을 출간했을 때 작가의 나이가 무려 84세. 이후에도 미치너는 세 편의 소설, 한 편의 미완성 소설, 그리고 자서전을 쓴다. 노익장이란 건 이런 경우에 어울리는 단어. 짚단 한 단 들 힘이 있으면 글을 쓰는 인종들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목차를 보면, 모두 네 개의 부로 나누어져 있고, 각 부의 제목이 “작가 루카스 요더”, “편집자 이본 마멜”, “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 “독자 제인 갈런드”라 씌어 있다. 그러니까 소설의 유통과정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소설이란 생명체를 담당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네 개의 기관/장기臟器로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로 나누어, 각자의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문학을 만들고, 수정하고, 구별하고, 읽는 행위에 관해 숙고하는 책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인 작가 루카스 요더가 펜실베이니아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독일 출신 이민자 마을을 무대로 쓴 필생의 역작인 8부작이지만, 그것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내가 읽은 <소설>의 진정한 주장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함께 변할 수밖에 없는 문학적 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사실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갈등관계는, 구시대 또는 기존의 소설방식을 구사하는 주인공 루카스 요더와, 이제 문학이라고 함은 특출하게 뛰어난 문학적 자질/소양을 갖춘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으로 생각하는 작가와 평론가 베노 레트너, 칼 스트라이버트, 티모시 툴 사이의 관계라고 읽었다. 이 작품에서 거론하는 무수한 것들 가운데 아마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했던 부분이었으리라.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가운데 문학의 방식에 관해 가장 늦게 눈을 뜨는 인물은 당연히 문학 또는 소설을 생업으로 하지 않는 독자일 것이다. 미치너도 기꺼이 꾸준하게 많은 독서를 한 독자의 경우에 저절로 문학의 진보나 진화라는 시각을 갖게 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아 놓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좋은 작품(작가), 저건 나쁜 작품(작가)라고 선을 그을 필요가 있을까?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문학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에 국한하지 않을까? 나도 나름대로 전문 독자의 말석에는 있다고 자만하는 인간이지만, 책을 읽으며 (위대하거나 천박하거나 간에) 극한 지대에 있는 것들을 빼고는 내 주장을 악착같이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던데. 그러나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다른가보다. 책에서 대표적인 평론가 칼 스트라이버트의 스승인 옥스퍼드의 데블런 교수는 영국문학에서 의미 있는 작가로 네 명, 즉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라드를 선택하고, 평가절하 해야 하는 작가로 다른 네 명, 윌리엄 셰커리,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존 골즈워디를 고른다. 앞의 네 명은 진정한 서사의 비밀을 품고 있는 작품을 썼다고 주장하는데, 여성이자 영국인이 두 명이고 한 남자는 미국인, 또 다른 남자 역시 외국인인 폴란드 사람이다. 속물인 나는 속으로, 이 네 명이 쓴 한국어판을 거의 읽어봤다는데 안도를 했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겠다. 평가절하 해야 하는 작가들 가운데 존 골즈워디는 아직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인물이다.
 데블런 교수의 제자를 자칭하는 칼 스트라이버트는 편집자 이본 마멜 앞에서 이 기준을 영국문학이 아닌 미국문학의 범주에 적용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그가 선택한 진정한 서사를 품은 네 명의 작가는 허먼 멜빌, 스티븐 크레인, 이디스 워튼, 윌리엄 포크너. 흠. 스티븐 크레인(이이는 작품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과 이디스 워튼은 동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쩌랴, 난 미국 사람이 아니어서 작품이 주는 감동과 동감을 미국인처럼 느끼지는 못하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근데 문제는 반드시 평가절하 되어야 하는 네 명의 작가들 명단이다. 싱클레어 루이스, 펄 벅,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어어. 펄 벅은 당연한 거고, 싱클레어 루이스는 한 작품만 읽어봤으니 뭐라 주장하기 곤란하지만 그의 역작 <베빗>이 상당히 좋았던 걸로 기억하며, 스타인벡이 명단에 오른 사실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이를 상쇄하고 남는 것이 헤밍웨이가 이 명단에 올랐다는 점. 이렇게 상쾌할 수가. 그래, 헤밍웨이 속에서 위악을 감지한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거야. 좀 위안이 된다. 하여간 이 책 때문에 또 다른 책 좀 샀다. 책 속에서 여러 권의 책을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한 댓 권 주문했다.
 언제나처럼 여태까지 쓴 독후감으로 나는 변죽만 울렸다. 여기까지가 내 역할인 듯.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권한다. 내가 읽은 열린책들 30주년 특별판이 절판이지만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4번과 5번으로 판매하고 있다. 본문만 672쪽인데 참 재미있어서 이틀이면 독파한다.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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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열매들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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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으로 페나크의 말로센 시리즈는 그만 읽기로 했다. 책이 재미가 없거나 읽기에 부족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럼? 식상했다. 나는 프랑스어를 이해하기는커녕 제대로 발음할 줄도 모른다. 그래 잘 한 번역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어 문장으로만 보면 정말 기막히게 맛있는 번역을 한 김운비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원작인 말로센 시리즈, 동화작가이기도 한 다니엘 페낙의 엉뚱하고 비과학적이고, 우화적이고, 무엇보다 동화적인 이야기를 시리즈로 좇아가며 더 이상 읽는 건 도무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역시 장남 말로센을 비롯한 일곱 명의, 아버지가 다 다른 형제자매들, 자매들이 낳은 아이들과 자기 아들이 연계되어 큰 사고를 치고 또는 큰 사고에 연루되어, 이 ‘부족’ 가운데 한 명의 범인으로 지목을 받지만 동네사람들을 비롯해 직장동료 및 사장인 자보 여왕, 심지어 두 명의 경찰과 아랍인 건달까지를 아우르는 우호적인 커뮤니티의 협조와 주인공 말로센의 눈부신 활약으로 혐의를 벗는 건 물론이고 사건까지 해결한다는 공식이, 이제는 지겹기가 한량이 없어서.
 이 책 제목이 말하는 ‘정열의 열매들’은 일종의 유아 돌봄 시설의 간판이다. 수녀이며 한 때 형사로 활약하기도 했던 제르베즈 수녀가 운영을 하는데 말로센의 조카와 친아들도 여기에 다니며 유아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주로 지역의 창녀들이 자기 뜻과는 달리 만들어놓은 자식들이 대부분으로, 제르베즈는 이 아이들을 위한 시설의 이름으로 아이들의 정체성과 반대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 던져질 때는 어땠는지 모르나 살면서 그렇게 자라나길 바란다는 소망을 담아 시설의 이름을 ‘정열의 열매들’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제목이 확정되는 순간은 거의 언제나 마찬가지로 작품의 맨 끝에 가야 해명이 되는 바, 거기까지는 알려드리지 않겠다. <산문팔이 소녀>에서는 누이동생 클라라가 교도소장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날, 결혼식장인 교도소로 온 부족을 동반해 가고 있는 도중, 드디어 결혼식장이자 교도소가 눈앞에 보일 때 쯤, 예상지도 않았던 폭발사고가 발생, 와중에 신랑이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바람에 아이만 하나 덜렁 낳는 일이 벌어지고, 클라라는 이후 사진 찍기에 집착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클라라의 동생 테레즈는 카드점, 손금, 관상, 점성술, 심지어 동양의 사주, 팔괘, 산가지 등 모든 점술에 능통한 일종의 무녀로 체코 산 캠핑카를 얻어 거기서 온갖 민족 출신의 앞날과 운명을 놀랄만한 정확성을 가지고 예언하고 있으며, 바로 그런 능력으로 인하여 이번 책 <정열의 열매들>의 주인공이 된다. 테레즈가 클라라와 다른 점은, 클라라가 과부가 된 후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반면 테레즈는 결혼을 해 숫처녀 상태를 벗어나면서 여태 잘 타고 놀던 작두날에서 내려온다.
 테레즈가 16세기부터 "진짜" 귀족이었던 유서 깊은 가문의 마리 콜레르 드 로베르발이란 이름의 ‘회계감사원의 감찰관’ 즉 프랑스의 수재들만 모인 회계감사원들을 감찰하는 감찰관과 결혼을 결정한 것을, 고골의 작품 <감찰관>의 영향이 지대했지만, 마리 콜레르의 경우엔 테레즈의 신통력을 이용, 또는 사용해 프랑스 정치를 안정시키기를 원한다는 대의를 내세운다. 뭐 그런 대의를 내세웠단 거니까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겠지. 만일 이게 진실이라면, 테레즈는 결혼하는 날 밤 처녀성을 상실함으로 해서 남편이 원하는 신통력을 잃게 되니 이들 부부의 앞날이 어떨지는 더 읽어보나마나 뻔하다. 그야말로 알쪼겠지 뭐.
 여기에 테레즈가 부족원들에게 남편이 될 마리 콜레르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아주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 형님은 목매달아 죽었어요.”
 말로센 시리즈, 또는 다른 추리 소설깨나 읽은 사람들은 책의 발단부분에 나오는 이 대사를 읽는 순간, 이게 저 뒤로 가서 갈등부분에 뭔가 영향을 주거나 받겠거니, 하고 정당한 추리를 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 나중에 뭔가가 있다. 알려고는 하지 마시라.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면 됐다. 말로센 시리즈의 특징은 언제나 폭탄이 터지고, 몇몇 사람들이 죽고, 말로센 부족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이 감방에 들어가고, 주위 커뮤니티 사람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주인공의 놀라운 능력 덕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이젠 이 시리즈를 더 읽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말로센 시리즈 읽는 걸 말리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한 두 권정도 읽어보라고 권할 수도 있다. 어찌 세상 사는데 늘 엄숙하고 진지할 수만 있겠는가. 가끔 책 읽다가 웃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고 골때리는 상상력에 넋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지.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김운비의 한국말 실력도 독자를 즐겁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걸 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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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판타지아
아시아 제바르 지음, 김지현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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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아시아 제바르가 총 세 권. 이제 세 번째 제바르를 읽는다. <사랑, 판타지아>. 여기서 ‘판타지아’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출판사 ‘책세상’은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판타지아’를 이렇게 소개한다.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행해지는 아랍 기병들의 기예, 행진을 일컫는다. 화승총이나 화약을 쏘며 화려한 기예를 뽐내는 기마행진은 군대의 사기를 고무시키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행해지지만, 성인(聖人)을 기리는 종교의식, 결혼 예식, 성지순례 행렬에서도 볼 수 있다. 여자들은, 용맹한 기병의 움직임에 아랍 특유의 날카로운 함성인 ‘유유’ 소리로 화답한다. 1830년대에 마그레브 지역을 방문한 화가 외젠 틀라크루아와 외젠 프로망탱은 판타지아 장면을 여러 작품에 담았다.”
 그러면서 외젠 틀라크루아의 작품 <모로코의 기마 놀이>를 흑백으로 실었다. Wikipedia 검색하면 이런 그림을 볼 수 있다.

 

 

 

 1830년부터 시작한 프랑스의 알제 침공으로 알제리의 식민 상태가 시작되었다고 하면 1962년 독립할 때까지 무려 132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셈이다.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로 떨어지게 된 내력을 보면, 참 아쉽게도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르다. 이전부터 알제를 향해 군침을 흘리며 군대를 파견하곤 했던 스페인 해군에 대항해 승전을 거둔 경험으로 사기가 충천하고 있던 알제. 그러나 1830년 6월 13일, 대구경 대포를 장착하고 수만의 병사를 몰고 온 프랑스 군대를 견디지 못해 수도 알제를 넘겨주고 만다. 이 전투에서 알제에서는 여인들까지 손톱으로 프랑스 병사의 심장을 후벼내 ‘한 명은 피투성이 손에 프랑스 병사의 심장을 쥐고 있고, 다른 한 명의 알제 여인은 봄의 석류 같은 아이의 머리통을 필사적으로 산산조각 내’며 항전했다고, 당시 바르슈 남작은 회상했다. 몇 명의 술탄들이 모여 나라를 통째로 가져다 바치는 문서에 서명을 한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한 도시, 한 도시 수많은 목숨을 신의 뜻에 맡기고 필사의 항전을 해가며 함락되었던 거다. 이 책에서도 1830년 프랑스의 알제 함락 이외 그 후 10여 년에 걸친 항불전쟁과 그에 따른 비참함 같은 것들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몇 십 년에 걸친 독립운동 역시 그리고 있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독립운동이었다는 알제리 해방투쟁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와 세 남자 형제를 모두 잃고 만다. 소설은 픽션이니 책에 나오는 내용이 전부 아시아 제바르가 직접 체험한 것을 서술하고 있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물론 곳곳에 틀림없는 작가의 자전적 모습이 등장하기는 하겠지만, 작가는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회고록일지라도 모국의 언어가 아니라 적enemy의 언어로 회고록을 쓴다면 그것은 반드시 픽션으로 변하기 마련이라고.
 소설가이자 영화 제작자이자 또한 역사학자이기도 한 아시아 제바르는 ① 식민지 알제리에서 반식민 투쟁과 ② 회교 사회 안에서 여성의 정체성, 그리고 ③ 피식민지 지식인이 한때 분명히 ‘적의 언어’였던 프랑스어로 문학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심사숙고를 이 책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알제리의 독립 과정도 부럽기만 하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자기들의 식민지에 독립을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한반도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해방이 아니라, 백범이 그리도 원했듯 인민들이 스스로 무장투쟁을 벌여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얻어낸 독립이었다. 그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고 살벌하고 잔혹했었는지는 <프랑스 식 전쟁술>에 잘 묘사가 되어 있다. 1945년 프랑스는 알제리의 지방에서 벌어진 소요사태에 개입해 1만부터 4만까지로 추정되는 민간인을 무참하게 학살했으며 이것을 계기로 태동하기 시작해 1962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막판 8년간의 알제리 전쟁에서 비행기를 동원해 소이탄을 무한정 폭격한 야만적 학살에 대하여, 아직, 단 한 번의 사과도 한 적이 없다. 올랑드 전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게 유일하다. 지네딘 지단이 백 명 나와도 프랑스는 요지부동이다. 대신 아시아 제바르를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3국출신 최초로 아카데미프랑세즈의 종신회원으로 임명하고, 제바르 역시 이 제의를 받아들인다. 아카데미프랑세즈 종신회원? 전 세계에서 프랑스어를 제일 잘 구사하는 몇 몇 사람들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래 사학자로서 프랑스의 알제리 침공과 독립전쟁에 대하여, 여성으로 아랍 하렘 속의 여인들의 삶과 베일에 대하여, 소설가로서 프랑스어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일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제바르에게 프랑스어는 무엇일까. 정답은 스스로 입지 않을 수 없는 네소스의 셔츠. 네소스의 셔츠가 무엇인가.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족 네소스가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을 맞고 죽으면서 자신의 피가 묻은 셔츠를 데이아네이라에게 주며 헤라클레스에게 입히면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유언을 남긴 그 셔츠. 결국 헤라클레스는 셔츠를 입게 되고, 독이 퍼지는 걸 느끼면서 셔츠를 벗어버리다가 살점이 뜯겨져 죽고 마는 것. 작가는 자신에게 적의 언어, 프랑스어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흐릿한 과거에 자리 잡은 언어이며, 적에게서 얻은 그 언어로는 사랑의 말을 나눌 수 없다면서.
 제바르에게 프랑스어는 법정에서 판사와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들만이 쓰던 언어로 요구와 소송과 폭력을 표현할 뿐이다. 그러나 자기 피부에 닿아 자신에게 독을 퍼뜨리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지 않으면 스스로 죽고야 마는 네소스의 셔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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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8-2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절판인 책을 잘 구하셨네요!

Falstaff 2019-08-29 09:57   좋아요 1 | URL
옙. 구하는 방법은요, 절판이라도 일단 보관함에 넣는 겁니다. 책 구경하면서 보관함을 가끔 보면 저처럼 알라딘 중고를 정가 대비 절반 가격으로 살 수 있더라고요. 상태도 높을 ‘상‘을요. ㅋㅋㅋ

케이 2019-08-29 1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14년 월드컵에서 라마단 기간이라 쫄쫄 굶고 나온 알제리 선수들이 독일 상대로 연장전까지 가며 대단한 접전을 펼쳤던 경기가 있어요. 세계 최강이던 독일 선수들 앞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뛰던 알제리 선수들의 투지에 감동받아, 끝내 알제리가 독일에 졌을 땐 알제리 사람도 아닌 주제에 펑펑 울었지 뭐예요. ㅋㅋㅋ 결국 약자는 죽어라 노력해도 지는 건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도 결국은 결국은 지는 결말인가!! 싶어서 어찌나 슬프던지요. 경기 끝나고 알제리 선수들도 서럽게 울더라고요. 팔스타프님 글을 보니 그 경기에서 알제리 선수들이 보여줬던, 품위와 투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알제리에 대해 궁금해집니다. 댓글은 안 달지만 언제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그 해 월드컵 우승은 결국 독일이 했습니다.)

Falstaff 2019-08-29 10:58   좋아요 1 | URL
별거 없는 독후감을 즐겁게 읽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우리나라하고 경기할 때 저는 4:1로 한국이 진다는 데 만원 걸었었습니다. 4:2로 지는 바람에 좀 아쉬웠지요.ㅋㅋ 당시 독일축구는 (준결승에서 주최국 브라질한테 7:1로 이기지 않았나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었잖아요. 그들을 상대로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었다는 것 가지고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이겼다면 더욱 감격적이었겠지만요.
이 책이 절판된 건 정말 안 좋은 일입니다. ‘책세상‘에서는 더 이상 이런 책을 찍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판권을 다른 출판사에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독자들이 계속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레삭매냐 2019-08-2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먼저 접한 아시아 제바르 아지매의
책인데 여적 못 읽고 있네요.

절판 책이라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다가
중고로 사들였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프랑스어의 실종>을 먼저 읽었
네요.

우리와 정말 먼 나라 알제리에 대해 생각
해 보게 만들어준 책이었지 싶습니다.

Falstaff 2019-08-29 20:35   좋아요 0 | URL
레삭메냐 님은 진짜 책 부자예요. 안 읽은 책들, 언젠가는 읽습니다. ㅋㅋㅋㅋ
저도 아시아 제바르 세 권 다 읽었는데 <프랑스어의 실종>이 가장 좋았습니다. 레삭매냐 님의 서평 덕에 제바르 아줌마한테 홀딱 빠져버렸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