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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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은행장의 아들 에두아르 페리쿠르. 열흘만 더 지나면 종전협정에 서명을 할 터인데 얼마 남지 않은 전쟁에서 기어이 공을 세워 진급을 하고 싶은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의 명령과 조작에 의해 벌어진 소규모 전투 도중 어딘가에서 팽팽 날아온 파편에 맞아 아래 턱 전부와 혀를 날려버린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오르부아르>의 후속작품. 전편에서 에두아르가 거의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착한 누나였으나 어려서부터 양가집 딸로 교육받아  속마음은 어땠을지언정 누구에게나 늘 친절을 베풀어왔기 때문에 일찍이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선량한 ‘구식여자’ 마들렌. 마들렌은 이미 <오르부아르> 시절에 생긴 거 딱 하나 보고 동생 에두아르의 철천지원수인 앙리 도네프라델과 결혼해 아들 폴을 낳고 이혼한 상태이다. 주위 사람들은 에두아르가 베르됭전투에서 전사한 줄 알지만 사실은 전쟁 후 고통스럽고 긴 치료를 마치고 원수이자 매형인 앙리에서 복수를 한 후에 호텔 현관 앞에서 하필이면 아버지의 승용차 앞으로 몸을 날려 자살한 시점에서 별로 지나지 않은 1927년에 소설은 시작한다. 에두아르가 죽은 후 날이 갈수록 골골하던 아버지 마르셀 페리쿠르 씨도 삶의 의욕을 조금씩 놓기 시작하더니 몇 십 년 전에 모교인 국립고등공예학교 졸업생 가운데 아깝게 수석졸업의 영예를 놓쳤던 귀스타브 주베르에게 조금씩 권한을 대행시키다가 어느 새 거의 전적으로 경영을 맡기는 수준에 이르렀고, 평생 워크홀릭 상태에 있던 사람이 손에서 일을 놓으면 대개 그러하듯이 어느 날 실없이 그만 숟가락 놓고 말았다. 여기서 조금 이상한 장면이 나온다. 페리쿠르 은행장의 죽음에 파리의 신문은 “프랑스 경제의 한 상징이 사라지다.”는 등을 1면에 대서특필했으며, 춥고도 추운 장례식 날에는 가스통 두메르그 대통령까지 참석할 정도였는데, 작품의 중반에 가면 세계적인 공황이 닥친다면 마르셀 페리쿠르가 세운 것과 같은 중소은행은 도무지 버틸 방도가 없다고 평가한다. 중소은행의 총수의 장례식에 대통령이 떠? 좋다, 뭐. 두메르그 대통령과 마르셀 페리쿠르가 평소에 형, 동생 먹었을 수도 있겠지.
  페리쿠르관館, 페리쿠르 저택이라고 불리던 집에서는 할아버지 마르셀, 엄마 마들렌, 아들 폴, 가정교사 앙드레 델쿠르, 여자 집사 수준의 절세미녀 하녀 레옹스 피카르 양, 정원사 레몽과 요리사와 하녀들이 있었으며, 하녀들은 전래대로 지붕 아래 다락방, 가정교사 앙드레는 3층의 작은 방에 거처를 정했다. 일찍이 페리쿠르 씨가 마들렌의 재혼 상대로 점찍은 후계자 귀스타브 주베르에게 마들렌은, 은행을 위해 자기 대신 경영을 해줄 남편을 얻기 위해 결혼은 할지언정 더 이상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전남편 앙리를 떠올리며 정부는 몇 명을 두어도 좋지만 절대 소문이 퍼지지 않게 해달라는 조건을 제시했었다. 그리하여 주베르가 결혼을 기다리는 중에 어처구니없게 마들렌은 가정교사 앙드레와 우연히 한 침대에 들게 되고, 그제서 난생 처음으로 성적 쾌감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보다 열댓 살이 많은 주베르 씨가 눈에 들어올 수는 없는 일. 앙드레의 침실이 있는 3층으로 밤마다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기는 마들렌의 행적을 본인만 모르고 모든 이들은 기대에 넘쳐 발개진 얼굴을 하고 층계를 오르는 마들렌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러니 결혼이 이루어 질 턱이 있나. 이런 작은 소동이 지나가면서 그나마 적수공권에서 일종의 자수성가를 했다고 만족하며 살아왔지만 아직 스스로 성공하지 못한 고용인이라는 한계에 갇힌 주베르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것도 머리 좋고 추진력 있으며 거기다가 인내심과 기획력까지 겸비한 인물이.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눈을 감은 할아버지 마르셀 페리쿠르. 평소에 할아버지를 그리도 따랐으며 할아버지 역시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손자가 함께 놀자고 요구를 할 때 한 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었던 추억을 갖고 있는 폴이 그의 길지 않은 삶에서 완전히 조부를 떠나보내는 심정은 어땠을까. 아니면 평상시에 손자 폴 페리쿠르에게, 또는 유일한 계승자 폴로 대변하는 페리쿠르가家를 향한 끊임없는 저주가 페리쿠르관 위에 떠돌고 있어 누가 슬쩍 밀었을까. 그래서일까. 검은색 천개를 아래 할아버지의 관이 빠져나올 때를 맞춰 저택의 3층 꼭대기에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흰 셔츠를 조금 풀어놓은 폴이 양 팔을 벌린 채 위태롭게 서 있다가 그만 자유낙하를 해버린다. 폴의 몸체는 검은 차일, 천개에 한 번 튕기고 다시 붕 떠오르다가 할아버지의 단단한 참나무 관에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져 박히고 만다. 내출혈로 인해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하고 마침 가까운 자리에 서 있던 의사 푸르니에 박사가 얼른 폴에게 다가가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앰뷸런스가 도착해 엄마 마들렌, 앙드레, 레옹스와 함께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대통령까지 참석한 장례식은 엉망이 되고 만다. 폴은 며칠 만에 깨어나긴 했지만 이후 대마비對痲痺 상태, 즉 영원히 두 발로 서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원래는 장례행렬에 마들렌과 폴의 뒤에서 줄레줄레 따라갈 예정이었던 마르셀의 동생 샤를 페리쿠르가 난데없이 상주가 되어버린다. 샤를은 몇 선을 거친 국회의원으로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그들의 뜻을 모아 정치적 진영을 초월해 많은 사람을 결집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게 끝이다. 무슨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따지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로 선거 때마다 수많은 자금을 쏟아 부은 바람에 형 마르셀의 지원을 받아야 했으나, 이런 종류의 사람과 주위 인물들이 보통 생각하는 건 정작 도움을 준 은인의 공을 폄하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에게 가혹했다고 하는 원망의 마음을 갖는 일이다. 실제로 샤를은 좀 덜하지만 그의 처, 나중에 난소암으로 추정되는 질병으로 생을 마감하는 오르탕스는 마르셀과 그의 딸에 대한 악감정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한다.
  이 작품은 전작인 <오르부아르>와 비슷하게 주인공에게 누가 악행을 하고, 이것을 되갚아 주는 형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당이 존재해야 한다. 누굴까. 앞에서 본 귀스타브 주베르씨. 약혼까지 이르렀다가 파혼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냥 흐지부지된 50대 초반의 남자. 아무 이유 없이. 사생활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 그냥 소문만 지저분하게 나지 않게 해달라는 건 비단 주베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마들렌의 경우도 마찬가지니 앙드레와의 관계가 크게 걸림이 되지는 않는다고 믿는 사람. 그는 이 수치의 경험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고 한다. 대신 마음속에 꽉 박아두겠다고 맹세한다. 게다가 작품이 더 진행하면 아직도 마들렌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때, 마들렌은 폴의 불구로 인해 마음이 약해진 것과 절묘하게 분위기가 어울려 주베르씨가 착각에 빠져 키스를 하게 된다. 이때 마들렌은 주베르에게 매운 귀싸대기를 날려 주베르의 자존심을 뒤꿈치로 완전히 짓이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마들렌도 실수였음을 자각하고 그래서 사과의 편지로 화해하는 듯했으나 그런 건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 법. 가뜩이나 주베르씨는 페리쿠르 가문에 수십 년 간 기껏해야 부잣집 마름 같은 대우만 받아왔다는 피해의식이 가득한 상태였으니.
  문제는 돈이다. 역시. 페리쿠르 씨의 유언장 낭독. 딸 마들렌에게 600만 이상의 현금과 저택. 참고로 현금이라고 하는 건 단위가 프랑스 프랑이며 1년 이내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 채권과 주식 등을 포함한다. 손자 폴에게는 21세까지 마들렌이 관리하는 국채 3백만. 아우 샤를에게 현금 20만, 전사한 아들 에두아르를 기념하기 위해 참전용사클럽에 20만, 귀스타브 주베르에게 10만, 샤를의 지독하게 못생긴 두 딸 로즈와 자생트에게 각각 5만, 조케클럽과 서부자동차클럽과 기타 몇몇 클럽에 각각 5만, 저택의 직원 일동에게 1만5천을 유증한다. 이를 평생 돈 관리 업무에 매진해온 귀스타브 주베르 씨가 평가하기를 마르셀 페리쿠르 씨가 죽으면서 아우 샤를의 따귀를 후려 친 격이며 자신한테는 적선을 베풀어주었다고, 즉 한 푼 던져주었다고 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봐도 귀스타브와 샤를에게는 마르셀 페리쿠르의 남은 재산을 더 빼앗을 조금의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여기에 앙드레 델쿠르. 이 청년은 작가, 아니면 적어도 저널리스트 또는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자인데 돈에 대해서 거의 청렴한 수준이고, 명예욕은 있으나 마들렌을 제외한 다른 여성을 탐하는 것 같지도 않으며, 심지어 마들렌에게조차도 그리 큰 욕정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다. 폴이 추락해 이제 더 이상 아이에게 가정교사 역할을 할 수도 없는데 그냥 저택에 머무는 것은 페리쿠르관에 있어야 봉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마들렌이 주선을 해 파리에서 가장 판매부수가 많은 일간지 “수아르 드 파리”지 1면에 페리쿠르 씨의 장례식 장면을 취재해 실을 수 있게 해주었는데 그날 아주 딱 맞춰 집의 손자 폴이 3층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는 바람에 현장취재도 못하고 함께 병원으로 가 밤을 새워야 하는 처지에 떨어진다. 비록 밤을 새워 현장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상력 하나로 장례식 기사를 써 생생한 르포 기사를 신문에 게재할 수 있어서 신문사 사장 쥘 기요토씨로 하여금 그가 기자로서의 장점 두 가지, 자기가 못 본 사건을 묘사하는 능력과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인정을 받는다.
  그래서 독자는 돈과 관련해 마들렌을 망하게 하는 원흉들로 귀스타브 주베르, 샤를 페리쿠르, 앙드레 델쿠르를 지목하고 이들이 서로 연계해서 페리쿠르가를 몰락시키리라고 짐작을 할 수 있으나, 여기까지 읽었음에도 풀리지 않는 건 왜 폴이 할아버지 장례식 날, 많고 많은 날 중에서 하필이며 딱 그날을 골라 3층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더 읽어야 한다. 이 정도면 독후감을 읽는 분께 충분히 호기심을 품게 했다고 생각해 나는 이쯤에서 마감하려 한다. 20세기 초반에 프랑스에서 곱게 자란 규방의 여인이 혼자 험한 세상 속의 악당들을 처치할 도리는 없을 것. 그리하여 한 명의 흑기사가 등장하니 뒤프레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평민 신분으로 전편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들이 어떤 연대를 누구와 맺는지, 어떻게 마음먹은 대로 한 번도 어긋나지 않고 1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차례대로 해치우는지, 또 내가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다른 악당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처치하는지 궁금하시지? 간단하다. 읽어보시면 된다. 6백 쪽이 넘는 장편이지만 재미있어서 후다닥 읽어치우게 된다. 그러나 진짜로 읽어보시기 전에 명심할 것은 진짜 인생은 이들의 활극과 달리 절대로 마음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 슬프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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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인 안녕 문학과지성 시인선 528
하재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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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시작을 “19xx년생.” 이렇게 했는데, 시집의 앞날개에 시인이 자신의 나이와 학력을 밝히지 않았는데 구태여 일종의 개인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 싶었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시겠지 뭐. 이 시집에 하재연의 세 번째이며 두 번째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을 낸 이후 7년 만에 빛을 봤다고 한다. 7년 만에 시집 한 권. 좋다. 한 시절 내가 참 좋아했던 시인이 있었다. 달달한 시어로 희망과 풍경과 슬픔과 기쁨과 현실을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했던 시인. 그러다가 정신 차려 다시 보니 이 양반이 마치 풀빵 기계에서 붕어빵 찍어내듯이 비슷비슷하게, 즉 정형화된 시편들을 대량생산하고 있더란 거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젠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 회사들마다 경쟁적으로 요란한 사보 만들기 시합이 벌어졌을 때, 한 달에 수십 권의 사보에 비슷한 수필이면 수필, 시론이면 시론 등 온갖 아는 척 잘난 척 같은 걸 끼적여주고 편 당 한 30만 원 가량 수금을 하던, 아직도 이름만 대면 누군지 알 정도의 잘 나가는 시인, 아니 희망과 슬픔 도매업자. 누구라고? 맞습니다, 그이. 지금도 그이 이름 검색해보면 다른 시인들과의 모음 시집 말고 자신만의 이름을 단 시집, 동화, 수필집 중에서 절판이나 품절 빼고 당장 살 수 있는 것들만 서른한 권이다. 그이에 비해 7년에 한 권 시집을 낸 하재연이 얼마나 시에 관해 구두쇠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시집의 가장 앞에 내세운 시 <양양>을, 마침 짧기도 하니 읽어보자.



  열 마리 모래무지를 담아두었는데
  바다로 돌려보낼 때
  배를 드러낸 채 헤엄치지 못했다고 했다.


  집에 와 찾아보니
  모래무지는 민물고기라고 했다.


  누군가의 생일이라 쏘아 올린 십 연발 축포는
  일곱 발만 터져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르겠다고


  노란 눈알이 예뻤는데


  물고기는 눈을 감지 못하니까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고 했다.  (전문)



  이거 참. 나이가 몇인데 모래무지를 돌려보낸다고 바다에다 방생을 하나 그래. 시인은 좋은 마음에서 모래무지에게 넓고 넓은 바다의 자유로운 삶을 돌려주려 했으나 바다에 살이 닿은 순간 눈알이 노란 모래무지는 죽어 배를 내놓고 둥둥 떠오르고 만다. 하긴 바다라는 무한의 공간과 죽음이란 것이 우주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동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생일 기념으로 쏘아올린 십 연발 축포와 대구를 만들어놓는 건 좀 그렇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닌데, 열 발이 터져야 비싸게 주고 산 축포가 제 값을 하는 셈이지만 겨우 일곱 발만 터졌으니 30퍼센트의 실패인가, 아니면 행운의 숫자인 일곱이 나왔으니 행운의 별점인가 헛갈린다는 의미, 이것이 바다라는 무한의 자유 또는 죽음을 맞은 노란 눈알의 모래무지 방생하고 비슷한 기분이기는 힘들지 않겠나 하는 것뿐이다. 아닌가? 민물고기 모래무지를 바다에 방생하는 장소가 양양, 날마다, 밤마다 양양의 바닷가에서는 누군가의 생일 기념 축포가 쏘아져 올라가니 모래무지를 방생해 살거나 죽거나 할 확률 7할과 3할의 경계, 그날도 일상적인 축포가 터진 장면을 묘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고.
  시집 2부의 첫 시도 제목을 <양양>으로 했다. 그 시에서는 모래무지 대신 해마가 등장한다. “(전략) 눈 뜬 해마는 식물 같아, /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지. // 너는 해마가 약으로도 쓰인다고 / 멸종 위기라고 // 물에 사는 고기들이 / 다 고기인 건 아니라고. // 다음 날이 도착했는데 // 죽은 해마와 / 나는 사람이 먹어야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문제는 대한민국 강원도 양양군과 접해있는 바다에는 해마가 살지 않는다는 거. 그러니 이건 시인이 머릿속에서 바다와 해마라는 특이한 생물을 상상하면서 쓴 것일 텐데 독자인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해마와 수컷이 자기 배 속에 수정란을 포란하고 있다가 새끼를 낳은 습성과, 다음 날이 도착했을 때까지, 아니면 도착함과 동시에 “죽은”해마, 그리고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에 관하여 생각했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시인은 음절 ‘양’ 또는 ‘영’처럼 입술이 벌어지는 ‘ㅇ’과 닫히는 ‘ㅇ’에 관심이 있다. 대표적인 단어가 “안녕.” 사실 ‘안’은 입술이 벌어지게 하는 것은 ‘ㅇ’이 아니라 모음 ‘ㅏ’이지만 시인도 알고 썼으니 독자도 맞춰서 읽어야 에티켓일 것이다. 입술이 닫히는 ‘ㅇ’도 받침 ‘ㅇ’이 아니라 입술이 (조금) 닫히는 모음 ‘ㅕ’인 것과 마찬가지로. 근데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니, 아닐 확률이 거의 100퍼센트지만 시인은 ‘ㅇ’을 쓰기 시작할 때의 점과 끝날 때 마지막 연필이, 볼펜이, 만년필이 시작점과 맞추느냐, 마주치지 못하느냐 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다. 만일 처음과 끝이 만나 원을 이룬다면 윤회, 우주가 되는 것이고, 마주치지 못한다면 처음은 탄생, 끝은 죽음의 한 사이클에 머무는 거라고. 맞아? 그건 독자 개개인이 판단하실 일. 하여간 시인이 보기엔 “안녕, 하는 입술이 벌어지는 ㅇ과 닫히는 ㅇ을 / 소리 없이 흉내 내며 눈이 그칠 줄 모”르는데 눈 속에서 “토성의 고리가 되어버린 어떤 죽음을 생각”한단다. (<양피지의 밤>) 이 죽음은 말할 것도 없이 W.G. 제발트일 터.
  이번 시집의 중요한 시적 소재 가운데 하나는 음악. 아예 시의 제목을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박아놓고 시작하는 시는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를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은데, 필립 글래스의 작품을 듣는 일 자체가 지적 수준이 어느 단계에 오르지 않은 나 같은 이들에게는 고문일 뿐이라서 그런지 “검은 지구의 밤하늘이 조금 더 / 검어졌습니다.”로 끝나는 시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저 감감할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페이지를 넘기면 <평균율>. 피아노 공부하는 분들이 피아노의 구약성서라고 한다는 바흐의 작품이지만 나도 평균율 1집과 2집, 합해서 넉 장의 CD를 한 번에 다 들은 경험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녹음으로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솔직히 음악 감상이 아니라 인내심 테스트 수준이었음을 고백하겠다. 그런 음악을 “오늘 엄마와 손잡는 꿈을 꾸었어, / 내일도 손을 잡아줘 조금 힘껏, 아프지 않게 // 세계를 열두 가지 색으로 나누면 무지갯빛이 아니라 / 희고 검은 색들만이 나는다.”라고 하면서 엄마와 손을 잡는 꿈을 꾸는 소년시기임에도 세계가 일곱 개의 흰 건반과 다섯 개의 검은 건반, 합해서 열둘의 희고 검은 색만 남는다는 건, 피아노를 연습하는 고통을 이야기한 것인지, 평균율이 세상을 대표하는 예술이라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하재연의 시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과하게 우울하다는 거. 첫 시 <양양>에서 민물고기 모래무지를 무지하게끔 바닷가에다 쏟아버려 죽이는 것으로 시작해 마지막 시 <행성의 고리>에서 “우리는 어디선가 이어져 있겠지 / 찌그러진 타원형의 바깥들에 매달려 / 계속해서 바깥이 되어가고 있겠지 // 검은 우주처럼 // 끝없이 돌면서 / 팽창하면서”라고 노래하며 기어이 안착하지 못하고 안쪽 행성 대신 행성의 고리에 머무는 우울한 코다로 마감한다. 오늘 독후감을 시작할 때 저 위에서 예로 든 시인은 당시 우울의 극에 달했던 사회분위기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슬픔과 동시에 기쁨을 노래했던 바, 당시 독자들에게 새로이, 아름다움은 슬픔 속에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밝혀, 반백년에 조금 모자란 세월 동안 그걸로, 아직도 먹고 산다. 그러나 우울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극도의 우울로 나름의 터전을 잡은 극소수의 몇몇 시인을 제외하고, 아니, 그들이 이미 우울과 절망의 효용을 다 소진해버렸기 때문에 아직까지 남은 우울은 우중충함 또는 개인 화장실과 비슷한 것 외 새로운 우울의 전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다. 시인들이? 그럴 리가 있나. 독자인 내가 그렇다는 말이지.
  나는 너무나 자주 우울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1 이젠 색다른 우울, 우울의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당분간 옛 시인들의 노래를 감상해보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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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수영의 시 <거미>,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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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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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부산에서 출생해 인천에서 성장한 소설가. 서른 살에 등단해 몇 권의 단편선을 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출간해 2018년 파주 출판단지의 종이 값을 한정 없이 올려놓고, 2020년엔 지적재산권과 관련해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을 거부해 그나마 이 문학상으로 거의 끊어져가는 명목을 가늘게 이어가던 문학사상사의 마지막 뻘짓을 세상에 드러낸 작가. 1979년 출생치고는 마치 고모님, 심지어 이모할머니 같은 이름을 가진 김금희는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이름에 관한 억하심정을 풀어놓듯 당숙모 이름 비슷한 ‘경애’라는 35세 독신 인물을 선택했다. 2018년에 하도 <경애의 마음>이 인터넷 책방마다 폭풍으로 몰아쳐 이런 작품은 일단 한 숨 들이고 읽어야 제대로 라는 엉뚱한 고정관념이 있어서 이제야 읽어봤다. 당시 열광했던 독자의 평과 작품의 내용이 더는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요즘 작가들은 대체로 우울하다. 이 작품은 1999년에 실제로 있었던 인천호프집화재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이 화재 사건은 두산백과에도 나와 있으며 <경애의 마음>으로 다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이젠 네이버에 ‘인천 화재’ 검색만 해도 저절로 ‘인천호프집화재사건’이 뜰 정도가 됐다. 짧게 두산백과를 인용하면 “1999년 10월 30일 오후 7시경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에 위치한 4층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2층 라이브호프집과 3층 그린당구장에 있던 10대 중·고교생들과 20대 초반의 청소년 등 손님 56명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진 사건이다. 주인공 박경애가 이 장소에 있었다. 물론 맥주도 조금 마셨다. 경애가 1981년생이니 고3의 10월 말. 소설에 의하면 인천 소재 모 고등학교에 축제가 있었고, 이때 소규모의 영화제 비슷한 행사에 경애의 남자친구 E가 단편영화 <마음>을 찍어 상영을 하고 뒤풀이로 호프집에서 한 잔 꺾은 걸로 설정을 했다. 뭐 그럴 수 있지. 2000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아직도 19일이나 남았으니까. E와 경애는 당시 하이텔 영화동호회 멤버로 번개를 포함한 각종 감상회에 참가함으로서 친분을 쌓았고,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상대를 소위 첫사랑이라 생각하는 단계로 올라, 만일 첫 경험을 한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파트너가 되리라고 서로 믿어온 사이였다고 전제한다. 문제의 장소, 문제의 시간에 경애는 집에 전화를 하기 위해 건물 밖에서 공중전화를 걸고 있었고, 통화가 끝나 계단에 오를 때는 벌써 삽시간에 불길과 연기가 계단을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10대 후반에 꾸밈없이 사랑했던 남자애를 눈앞에서 잃어야 했던 경애의 트라우마. 이건 평생을 짊어지어야 할 내상으로,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경애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내적 우울의 발화점으로 지배하게 된다. 실제로 경애는 대학에 진학하고, 선배 산주와 연애를 하면서도 2002년, 평소 E가 좋아하던 감독 데이비드 린치 특별전 가운데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기 위해 동인천의 한 극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홀로 관람을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E가 죽고 나서 3년이나 지난 후에 경애가 동인천의 극장까지 <멀홀랜드 드라이버>를 보러 갔을 때, 같은 줄의 저 끝에 드레이닝 복을 입은 고도비만 급의 뚱뚱한 청년이 얼굴에 깁스를 한 채 훌쩍훌쩍 울고 있었던 것을 13년이 흐른 어느 날에도 어렴풋하게 기억을 하는데, 이 청년은 2002년 당시 전직 재선 국회의원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에 도저히 진학할 자신이 없다고, 그래서 4수는 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결심을 사뢰었다가 주먹으로 얻어터져 코뼈가 부러져 병원에서 깁스를 했던 터였다. 청년은 그때부터 13년이 흘러 전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재수학원 동기가 운영하는 재봉틀, 그러니까 반도미싱 주식회사의 팀장대리로 근무하는 공상수라는 이름의 간부사원으로 성장한다. 팀장 대리란 것은 팀장이기는 하지만 팀원이 한 명도 없는 이름뿐인 자리다. 공상수, 회사의 회장과 상수의 부친이 아직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결정적으로는 회장 사모님과 상수의 새어머니가 여전히 함께 골프 라운딩을 하고 있기 때문에 희망퇴직을 시켜버리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붙여준 직급이고 직책이었으나, 상수는 자신이 낙하산이 결코 아님을 우기고 다닌다. 상수는 부장을 찾아가 팀원이 한 명도 없는 팀장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다가, 이와 같은 주민등록부를 상기한 부장이 회사에서 가장 골치 아픈 직원인 박경애를 상수의 영업팀으로 보내버려 둘은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13년 만에 상봉을 하게 된다. 상수네는 어려서 부모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일본 삿포로에 있는 이모네 집에 체류하다가 병사하고, 현지에서 장례를 치루고, 화장하고 뼈를 추슬러 모르긴 몰라도 현지 사찰에 위패를 모셨던 일, 그 가운데서도 특히 어머니의 뼈를 추스르는 일이 기억에 박혀 역시 소극적이고 우울한 성격으로 고착되고 만다. 여기에 작고 근육질인 형의 폭력과 아버지의 완고함까지 겹쳐서. 그런데 알고 보니 상수 역시 하이텔 영화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한 전력이 있었다. 동호회를 통해 만난 다른 학교 친구 은총이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고 모든 고민을 서로 나누는 관계였으나, 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의 호프집 화재로 죽어버린 다음엔 우울과 고독과 아버지, 새어머니, 형이 쉬지 않고 쏟아내는 가정 내 스트레스와, 재수, 삼수 시절 사관학교식 재수학원의 엄한 규율로 인해 과체중을 넘어, 비만, 그것을 초과해 고도비만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 이때 경애를 처음 만났고, 팀장과 팀원으로 두 번째 만났을 때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12년 후, 상수의 반도미싱 짬밥 경력이 벌써 10년 이상일 때는 키만 크고 홀쭉한 몸매를 지녔음에도 변변한 연애경험도 한 번 없고 매력도 없는 그저 그런 남자였다. 독자는 상수의 친구 이름이 ‘은총’이라고 나올 때 단박에 은총이가 E임을 눈치 챈다.
  * 상수가 아버지한테 코뼈가 부러지는 수난을 겪은 것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즌. 다음 해 입학해 2003년 학번이라 치자. 대학 4년, 군대 2년이면 2009년 졸업. 10년 이상의 경력이라니까 딱 10년 잡으면 이 책이 나오고 1년이 더 흐른 2019년. 하지만 작품의 시간적 공간은 상수와 동갑인 경애가 서른다섯 살인 2015년. 만 나이라면 2016년. 작가는 이리 꼬치꼬치 따지는 독자가 별로 달갑지 않겠지?
  경애의 E에 관한 상실보다 더 중요한 건 선배 산주와의 연애 사건이었다. 캠퍼스 커플로 소문이 자자했던 산주-경애라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이가 차 결혼을 염두에 두어야 할 시기가 도래하니 산주는 구로동에서 미용실 운영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경애 대신에 남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정 속에서 곱게 자란 동창 가운데 한 아가씨를 선택하고, 경애에게 딱 부러지게 이별을 통보한다. 밸 없는 경애는 결혼 후에도 산주의 결혼이 자기의 영혼을 전혀 잠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산주가 참석할 수도 있는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고 발을 들여놓은 것은 물론이고 겉으로도 스스럼없이 산주와 지내려 하는데, 동창들 눈에 이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경애와 산주가 모텔에 들었고, 경애가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 산주는 양말 하나 벗지 않은 채, 가야겠다고, 자기가 태워줄 테니 옷을 입으라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 제의를 거절한 경애는 그길로 택시를 타고 강북 강변도로를 질주해 집에 들어가고 둘은 완전한 종막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15년 늦봄 또는 초여름. 한 시절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파업에 앞장서던 홍보팀 박경애가 파업 중 성희롱 사건으로 파업이 실패로 끝나버리자 총무팀에서 사무용품 배급 업무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영업3팀으로 발령받고 며칠 후, 점심시간에 회사 앞에서 경애를 불러낸다. 다시 이어지는 감정의 끈. 몇 년 전 경애는 사랑의 고통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에 관해 인터넷 애정 고민 상담 SNS인 ‘언니는 죄가 없다’ 약칭 ‘언죄다’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고, 언죄다의 운영자 ‘언니’로부터 일상적인 조언을 들은 바도 있었다. 새로이 산주가 등장함에 따라, 너랑 자고 싶어 다시 따뜻하게, 경애는 몇 년 만에 또다시 언죄다를 방문해 자신의 고민을 탈탈 털어놓는다.
  상수의 또 다른 고민은 자신이 마치 여자인 것처럼, 처음에는 사소하게 시작한 여성 상대 연애관계 상담 SNS가 최근에 심각한 해킹을 당해 근 십년 동안 자신에게 고민을 호소한 여성들의 연애 스토리가 다른 계정에 올라가면서 희롱과 조롱과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예전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은총의 여자친구, 이미 죽은 은총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긴,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 인터넷 닉네임 ‘피조’의 고민을 날 것으로 알게 된 것 등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심지어 일상적 업무에도 큰 방해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
  문학작품, 시나 소설에서 우울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정답은 없겠지. 내가 생각하는 문학작품 속의 슬픔과 우울은 보라색이다. 이 색의 특징은 저 한 귀퉁이에서 작게 앉아 자기존재를 찬란한 광휘에 담아 반짝인다. 만일 보라색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면 그림은 천박해진다.
  소설은 또 경애-상수 사이의 유난한 우연을 매개로 하고 있다. 물론 소설이란 장르 자체가 우연, 또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나 사건을 대상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과한 운명적인 우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우울한 분위기로 일관하는 작품을 대단히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부류임에도, 오랜만에 참 괜찮은 우리 장편소설을 읽었다는 것. 2018년에 이 작품을 읽고 상찬하던 이유가 있었다는 것. 다만 한 가지 억지로 까탈을 잡아서 기어코 별점 하나를 깎아야 했던 건 작가가 꼭 결말을 내고 끝을 맺었어야 했는가 하는 점. 소설이 영화 같은 필요는 없으니까. 해피 엔딩이나 언해피 엔딩은 진짜 삶에는 별로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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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2-06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런 책이었군요. 전혀 생각도 못한 전개네요. 제목만 보고는 전 그냥 연애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좋은 정보 잘 알아갑니다.

Falstaff 2020-02-06 12:4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옙. 실전 연애는 경애와 유부남 선배 사이에 연애랄 것도 없는 것만 있더군요. 두 주인공 다 공히 우거지 죽상인데 문장의 힘이 좋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케이 2020-02-06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천시 중구 인현동이면 제가 결혼 전까지 10년 넘게 살았던 동네 주변입니다. 자연히 관심이 가서 책과 작가를 검색해보니 김금희 작가가 심지어 저랑 같은 학교 다녔네요. 불이 났던 건물.. 아직도 동인천에서 영업 잘하고 있답니다. 제가 매일 지나다녔거든요.
1999년도면 저도 인천에서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이라 분위기가 생생한데, 작가가 그 시절을 어떻게 묘사했을지 참 궁금해집니다. 좋은 리뷰 항상 감사드려요.

Falstaff 2020-02-06 14:00   좋아요 1 | URL
작가는 서울 구로동에 사는 경애를 중심으로 했으니 그저 인천이라면 극장이 있는 동인천, 주안, 인하대 근처를 잠깐 묘사하는 정도입니다. 아, 차이나타운 길 건너 동구 화수동 스케치도 나오는군요. E의 집이 화수동에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 아들이었으니까요.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근데 1999년이면 하이텔 동호회는 거의 없어졌을 때 아니었나요? 궁금.... ^^;;

케이 2020-02-06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로 하이텔 가입자여서 기억하는데, 2000년까지는 하이텔 동호회가 꽤나 흥했답니다. 1999년도면 아마도 최전성기였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저 역시도 꽤 큰 하이텔 영화동호회 회원이었어요. (거기서 제 닉네임은 무려 ‘타락천사‘ 였답니다. 푸하하 창피하네요.) 동인천의 극장은 애관극장을 모티브 삼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소설에 잠깐 나오긴 해도, 제가 아는 옛날 인천의 묘사가 궁금해서라도 언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0-02-06 15:02   좋아요 0 | URL
책 속에서도 애관극장, 정확하게 나옵니다. ㅋㅋㅋ
아마 기억하시는 거하고 매우 비슷할 겁니다. 저도 집안이 쫄딱 망해서 20대 초반부터 장가들기 전까지 인천에 살아 대강 알거든요. 재미있습니다 타락천사님. ^^

케이 2020-02-06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부망천‘의 역사가 깊네요. (어떤 정치인이 말한 ˝이혼하면 부천가고 망하면 인천간다.˝는 말의 줄임말) 저희 집 역시 사정이 안좋아서 수도권 최고 싼 지역 찾다가 동인천으로 오게 된거라..
근데 인천의 좋은 점도 있어요. 다같이 못살아서 위화감은 덜 느끼는 점. (이게 좋은 점인진 잘 모르겠지만ㅋㅋ) 분당에 살다 망해서 인천 온 전학생이 인천 너무 더럽고 애들도 불량해서 너무 싫었는데 애들끼리 서로 아빠 직업 뭔지 모르는 거 보고 속은 편했다고 하더군요 ㅋㅋㅋ 저 역시 우리집만 가난하다 이런 생각은 안하고 살았어요. 별것도 아닌 걸로 말이 길었습니다.ㅋㅋ 책은 한번 꼭 읽어볼게요!
 
존재인 척, 아닌 척
박금산 지음 / 뿔(웅진)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재미있는 우울한 소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서사의 진중한 재미라기보다 곳곳에 배치한 경쾌한 스냅들을 이야기하는 거다. 이 책이 2012년에 나왔는데, 당시 작가들, 물론 지금도 많이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들과 책의 편집인들이 가장 신경 쓴 것이 혹시 독자들의 가독성 아니었나 싶다. 여유로운 편집에 널찍한 행간과 자간, 짧은 대화 등은 280여 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순식간에 읽어치우게 만든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 우리 작가 한강에게 맨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게 한 데버러 스미스가 한국 소설의 역자translator로 갖는 이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가독성, 이 가운데서도 ‘짧은 장편’인 점을 꼽았던 것이 기억난다. 전편을 번역하기 위해 다른 나라 문자를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소비하는 시간에 비해 반도 걸리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을 인터뷰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아직 <채식주의자>는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늦어도 3월엔 읽을 예정이다. 이젠 읽을 때가 됐다.) 박금산의 <존재인 척, 아닌 척>을 보면 꽤나 사연이 많은 등장인물 세 사람, 두 커플의 이야기 역시 매우 속도감 있게 진도를 뺀다. 그래서 후다닥 읽어낼 수 있는 미덕이 있지만 그렇게 읽고 나니, 머릿속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아닌 게 아니라 방금 책 읽기를 마쳤음에도, 진짜 책을 덮자마자 랩탑을 켜고 자판을 누르려 하고 있음에도 뭐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없다. 이거 슬픈 일 아냐?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정작 남은 건 별로 없는 현상. 이래서 소설은 조금 머리가 아파야 제 맛이다.
  주인공은 남자 김병호이며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작가는 김병호를 줄곧 ‘그’라고 부른다. 공무원 아버지는 봄이 오면 바다로 낚시를 다녔고, 할아버지는 일흔 살에 머리를 민 후 섬에 들어가 중처럼 멋진 죽음을 맞았다. 일곱 살 많은 형은 전방 하사관으로 근무하다 추석 특식을 지게에 지고 GP로 오르는 중에 아군이 깔아놓은 지뢰를 밟아 폭사하여 ‘그’로 하여금 군대 면제를 받게 해주었다.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어머니(그 당시에!)는 아빠하고 스키 여행을 가서 아빠로 하여금 사랑하는 아내하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뜰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세상의 때가 왕창 묻은 내가 대강 책을 읽으며 짐작하기를, 군대에서 죽은 맏이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버지는 부정부패 공무원 비슷해서 차남 김병호가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해군사관학교를 가려 하는 걸 알고 나자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권할 정도의 뇌물을 챙겨놓은 것 같다. 그런데 왜 장남은 장교도 아니고 하사관으로 군복무 중에 죽었을까? 요트로 하는 세계일주와 육군 하사관이 어울려? 하긴 이런 거 다 아퀴가 맞으면 한국 소설이 아니긴 하다. 현재 아내와 별거 중으로 아들 림을 보모 김명임 씨, 남편과 사별하고 생계가 막막했던 여자로 다섯 살짜리 아들 키우며 문학 전공했고 교육학을 부전공한 40대 여자에게 월 25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함께 키우고 있다. 책이 나온 시점이 2012년이라 밝혔는데, 그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월 250만 원 준다면 보모 하겠다고 나설 지원자가 한 250 미터쯤 줄을 설 거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하기 싫어 대학원에 진학하고, 어떻게 하다 보니 박사과정에 들어섰을 때 아내 이진진을 만나 결혼, 지금은 애 딸린 별거남이자 작은 회사의 오너 비슷해 보인다.
  이진진. 남편 김병호와 동갑. 열일곱 살 때 미대에 진학할 목적이 아니라 그냥 해보고 싶어서 유화 한 점을 그려 항공회사가 주최하는 공모전에 움직이는 계단 같이 생긴 용dragon 그림을 그려 냈다가 덜컥, 상을 받은 재원. 대학 졸업하고 굴지의 회사에 입사 성공. 이제 며칠 후에 정식 입사하게 된 시점에 김병호를 만나 마음이 끌려서 출장 간 아버지 차 빌려 서울 외곽의 모처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서 차가 들썩거리도록 허겁지겁 흠흠. 이후 입사는 했으나 주 52시간 근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이라 애인 김병호와 제대로 된 데이트 할 시간도 없고, 정신 제대로 박힌 여자 직원들은 육아하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시점이면 도무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는 반면 후배 여자 직원한테는 범 같은, 깡패 남자 같은 선배 노릇을 하는 대신 상사한텐 천생 여자처럼 살살 애교부리며 뒤로 챙길 건 다 챙기는 ‘년’들은 승승장구하는 꼴을 보고 자신이 여자를 증오하는 여자가 되기 싫어 팍 때려치운다. 아, 부럽도록 질투난다. 그러면서도 아들 보모한테 월 300만 원씩 주자고 주장할 수 있는 여성 가장이 아무 대책 없이 앞으로 딱 4년만 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는, 적어도 시댁이나 친정 둘 가운데 하나가 막강한 재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얘긴데, 그렇게 집안에 아무 돈벌이 없이 고시 공부를 하다가 4년을 채우지 못하고 난데없이 산골로 귀촌, 성공리에 자리를 잡아 남편더러 애 데리고 들어와 함께 산골에서 살자고, 자기는 죽어도 다시 도시로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중이다.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김병호. 어느 날 외근을 나갔다가 갑자기 몇 년 전에 자기가 쓰던 피디에이를 판 Y시의 수협 구판장에서 일하는 신미애라는 이름의 여성이 문득 생각났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러다가 난데없이 한 때는 따오기 섬, 곡도라고 불렸던 백령도가 떠오르고, 생각난 김에 오늘 갔다가 내일 오자는 마음이 생겨 보모 김명임 씨에게 아들 림을 하루만 댁에 재워달라고 부탁해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사는 일 가운데 내 맘대로 되는 게 뭐 하나나 있나? 휴대전화를 배터리와 분리해 승용차 사물함에다 처박아 놓고, 차 문을 닫은 다음 정작 그가 가기로 결심한 곳은 신미애가 살고 있는 Y시. 급기야 고속열차도 아니고 무궁화호 막차에 오른다. 누구나 열차를 타면, 특히 그게 밤 열차라면 옆에 근사한 이성이 앉아 더 근사한 밤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그런 행운은 거의 언제나 나를 외면한다. 늙은 남자가 신발을 벗은 채 앞좌석에 발을 올려놓고 잠을 청하는 걸 보고 그는 식당차와 다른 빈 좌석을 왔다 갔다 하며 밤을 보내고, 그의 행적을 수상하게 본 여객전무는 승무원을 시켜, 아니, 승무원은 고속열차의 경우를 칭하는 것이고 그냥 열차에선 차장이라고 한다니 차장이라 다시 말하자, 차장은 혹시라도 그가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려 시도하다 실패하면 행패나 부리지 않을까 싶어(요샌 열차 문이 전동식이라 사람이 열 수 없단다.) 유난히 그에게 친절을 가장해 접근한다. 차장의 이름이 안영. 해녀 겸 소규모 밀수업에 종사하는 엄마와 밀입국 브로커로 재산을 불리고 진짜 돈이 생기자 온갖 여자 수집에 열을 올리는 아빠 사이의 외동딸이 아침에 퇴근해 Y시에 있는 집으로 가던 길에 역에서 그, 김병호를 만나 아침 식사로 장어탕에다 소주 세 병을 까고, 몽돌 해변에서 2차로 맥주도 마시고, 술김에 집에도 함께 간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안영은 열 번 만나기 전까진 절대 몸을 허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에. 말했다시피 그는 하루 기한으로 여행을 왔고. 그리하여 둘은 맺어지지 않을 거 같지? 인생이 다 애초에 결심한 대로 살 수 있으면 그게 인생인가 어디. 안영의 집에서 작가 스스로 고백하듯 이상李箱이 쓴 <날개>의 주인공처럼 그는 안영이 출근한 낮 시간 동안 그녀의 옷들을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고, 심지어 팬티와 브래지어를 착용해보기도 하면서 열흘을 뭉개버린다. 드디어 열하루 째가 됐을 때, 둘은 근처 호텔에서 이틀 밤을 보내며 만리장성을 쌓게 되는데, 김병호는 안영에게 처자식 다 버리고 올 테니 우리 둘이 한 번 살아보자, 라고 호소를 할까?
  이래서 저 위에 내가 말하기를, 등장인물 세 명과 두 커플이 만드는 이야기라고 했다. 소설의 요지는 김병호의 삶, 그냥 한 번 저질러버리는 거, 아무 뜻 없이 되는 대로 한 번 해보는 일탈에 관한 것인데, 곳곳에 유머 코드가 잔뜩 숨어 있기는 하나 정작 읽어보면 장착되어 있는 우울의 크레모아, 정확한 군사 용어로 하자면 M18A1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잠복해 있어서 읽고나면, 글쎄 내 경우에만 그랬는지 몰라도 감정이 헤쳐놓은 벌집 모습으로 너덜너덜해질 수 있다. 물론 나는 책의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조금도 말하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말이 언제나 독자로 하여금 충격을 받게 하는 건 아니라는 점.
  이상해. 휴일에 독후감 쓰면 꼭 길어진다는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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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04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원제목은 <Atmospheric Disturbances> 그냥 <대기 불안정>이다. 제목을 그대로 하면 책을 많이 팔 만한 호소력이 없으니 원제목에다가 굳이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을 붙였다. 말 그대로 사족.
  작가 리브카 갈첸으로 말할 거 같으면, 캐나다에서 출생해 유년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 1981년 다섯 살 때부터 94년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오클라호마의 노먼에서 살았단다. 아버지는 오클라호마 대학의 기상학과 교수, 엄마는 국립재해기상연구소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니 전형적인 이과 인텔리 집안의 따님이다. 이이의 재능은 오클라호마를 떠난 후에 빛을 발한다. 프린스턴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2학년이 되자 때려치우고 원래는 미국 내 유대인의 치료를 위해 남북전쟁 전에 세운 의학교, 시나이 산 의과대학 (Mount Sinai School of Medicine)으로 전학해 2003년에 신경정신과 의학박사(사실은 박사급과 거의 동급이긴 하지만 박사는 아닌 MD) 학위를 받는다. 그럼 의사로 일을 하면 될 것을 아직도 학문에 미련이 남아 3년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예술학위(Master of Fine Arts)까지 얻었으니, 이이는 20대에 박사학위 두 개를, 그것도 이과-문과로 수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다. 여기다가 외모도 매력적으로 생겼다. 한 마디로 밥맛없다. 공부를 잘하면 좀 덜 생겨도 되잖아. 나 같이 못 생기고 공부 못하는 인종은 어떻게 살라고 말이야. 큼.
  리브라 갈첸은 아버지 츠비 갈첸을 존경했던 것 같다. <대기 불안정>은 이이가 쓴 첫 번째 소설인데, 작품 속에 이미 죽었다고 하는 츠비 갈첸의 애매모호한 모습이 그가 쓴 논문, 가족사진, 작가 리브라를 안고 찍은 사진이 직접 등장할뿐더러, 심지어 논문 속의 기상도와 논문의 내용까지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며, 진짜 죽었는지 아니면 죽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영국의 왕립기상학회의 간부급 비밀요원으로 일하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츠비 갈첸의 이름을 빌어 기상의 무기화를 연구하고 있는지 많이 혼돈스럽게 만든다. 여기에 작가 리브라의 직업 가운데 하나인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그의 전공과목인 분열증에 관한 소견과 물리학적 정의 같은 것이 마구 섞여 있어서, 이렇게 말하면 잘난 척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지만, 문과만 공부하신 분들은 아예 책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만수무강에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문제 하나를 소개해보자. 50대에 접어든 신경정신과 의사 ‘나’ 레오 리벤슈타인이 어느 날 집에 있는데, 아내 레마와 똑같이 생긴 도플 갱어가 자신이 레마입네, 하고 다리가 긴 똥개 한 마리를 데리고 오는 거였다. 이 가짜 레마가 하는 행동, 하는 말이 자신의 아내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나’는 단박에 가짜인 사실을 알아내고 즉시 사랑하는 진짜 아내를 찾을 결심을 하고 만다. 이것을 읽는 순간 독자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나’가 분열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를 의심하게 되고, 이후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그가 생각하는 온갖 잡다한 논리에 설득을 당해야 하는데 그 가운데 ‘도플러 효과’가 나온다. 도플러 효과는 파동에 관한 물리학적 현상으로 (1970년대의)고등학교 2~3학년 이과 물리 교과서에 소개가 됐던 것으로, 쉽게 얘기하면 앰뷸런스가 내가 탄 차로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의 소리 크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작가는 이 도플러 효과를 애정문제에도 적용시켜 특정한 사람이 내게 다가올 때의 애정의 크기와 멀어져갈 때의 크기가 사실은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낀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후반에 가면 한술 더 떠서 ‘도플 갱어’를 넘어 ‘도플러 갱어’라는 걸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책의 내용은 레마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그녀를 찾아 간 ‘나’가 레마의 엄마 마그다를 만나고, 자신의 분열증 환자 하비가 자신이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영국의 왕립기상학회의 비밀조직원들과 연락이 닿아 그들의 지령을 수행하려 파타고니아 섬까지 가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다. 겉으로는 ‘나’ 레오 리벤슈타인 박사가 사랑하는 아내 레마가 혹시 전남편 또는 애인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대신 ‘나’에게 가짜 레마를 보낸 것으로 짐작해 진짜 아내를 찾아가는 오디세이아지만 다 읽으면 작가가 죽은 아빠 츠비 갈첸 박사에게 보내는 경의라고 결론을 낼 수 있을 듯하다. 읽어보실 분은 읽어보시라. 다만 나는 경고했다. 물리학을 배우지 않은 문과 졸업생들은 자신의 만수무강을 위해 이 책을 멀리 하시는 것이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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