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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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편의 추리소설 또는 범죄소설을 실은 작품집. <약속>, <사고> 둘 다 되게 매력적인 범죄소설이다. 뒤렌마트가 쓴 추리소설 또는 범죄소설 전반에 걸친 짧은 고찰은 이 책의 뒤에 실린 작품해설에서 상세하게 나오니 참고하면 되겠다. 작품해설을 참고하란 말씀은 직접 책을 사서 읽어볼 만하다는 뜻이다. 도서관 이용도 좋은 방법이긴 하겠지만 이렇게 특색 있는 추리 또는 범죄소설은 책꽂이의 한 자리를 차지할 권리를 갖는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번에 작가가 쓴 추리소설집 《판사와 형리》를 재미있게 읽어서이다. 역시 뒤렌마트, 나는 그의 책을 읽고 실망해본 적이 없다. 20세기 스위스 문학을 넘어 독일어 문화권의 찬란한 두 별, 막스 프리슈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를 연속해 읽는 우연도 재미있다. 비슷한 시기를 살면서 현상을 보는 기본적 시각은 비슷한데도 표현방식이 이다지도 다를 수가 있을까. 열 살 차이가 나지만 살아생전 두 명이 돈독한 관계를 맺었을 거 같다. 성격 다른 사람들이 한 번 친하면 진짜 친해지는 일이 왕왕 있으니.
  두 편의 소설이 다 재미있는데, 독후감은 표제작 <약속>에 대해서만 쓰겠다.
  <약속>은 작가가 쿠어(Chur) 시에서 추리소설의 창작기술에 관한 강연을 하고 우연히 자신의 강연에 참석했던 전직 취리히 주 경찰국장 H 박사와 만나 그의 차를 타고 취리히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선생의 강연은 졸렬하기 짝이 없더군요.” 라고 독설을 펼쳤던 박사는 추리소설이 현실을 왜곡한다고 비난한다. 겨울이라 빙판과 눈 녹은 물이 아스팔트에 번갈아 깔리는 바람에 긴장을 멈출 수 없던 이들은 도중에 들른 주유소에서 벤진을 보충하는 동안 맛없는 커피를 한 잔 씩 마신다. 당시엔 휘발유 대신 벤진을 사용했었나보다. 하여간 주유하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한때 H 박사의 부하로 경감 직위에 있었으며 추리소설의 화자를 능가하는 천재로 바젤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까지 보유한 ‘마태’라는 이름의 노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후로 H 박사가 취리히까지 오는 차 안에서, 그리고 취리히에서 따로 ‘나’를 만나 마태 박사가 연루된 마지막 사건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한다.
  마태는 유능하기는 하지만 너무 유능한 것도 세상 사는데 결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거니와 사물이나 사건에 유난히 집착하는 성격도 있어서 인기가 없는 인물이었다. H 박사가 은퇴를 염두에 두었을 때 당연히 마태가 후보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올랐지만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부적격자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때  마침 요르단에서 경찰 전문가 한 명을 파견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당시 50세인 마태를 추천했으며, 이에 자신도 매우 흡족해 해 기꺼이 수락을 하고 이제 책상을 정리할 시간이 왔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마태의 책상 위에서 전화기가 그를 호출한다. 전화는 그의 오랜 단골 피의자이며 14세 여자 아이를 추행한 전과가 있는 폰 군텐에게서 왔다. 지금 취리히 근교 메겐도르프에 있는 식당 겸 술집 ‘사슴’에 있으며, 자신이 숲에서 성추행 후 죽임을 당한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마태가 현장에 가보니 그리틀리 모저란 이름의 소녀가 면도칼로 잔인하게 목을 유린당한 채 죽어 있어서 마태를 제외한 경찰들도 고개를 돌릴 지경이었다.
  산골 풍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메겐도르프에서는 시민들이 생각하기를, 희생자를 발견했으며 본인이 14세 어린이 성추행의 전과가 있는 폰 군텐을 범인으로 지목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린치를 가할 준비를 한 채 경찰차 두 대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마태가 주민들을 설득해 무사히 폰 군텐을 취리히 경찰서에 구금을 해두었으나 그가 가장 중요한 용의자인 것은 확실하다. 행상을 하는 폰 군텐의 가방에서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 속에서 면도칼도 나왔고 상의에 소녀의 피가 묻어 있었으며 해부 결과 피살자의 위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초콜릿을 발견했다. 그날 폰 군텐 역시 초콜릿을 한 상자씩이나 먹었던 거였으니 이것이 우연일까. 물론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한다. 그러나 마태의 자리를 물려받았으며 용의자를 신문하는 방법까지 마태에게서 배운 그의 후임자 헨치가 폰 군텐을 연속해 스무 시간동안 신문을 한 끝에 범행을 자백하게 만든다. 잘 보시라. 자백한 것이 아니라 자백하게 만들었다는 걸. 잠을 안 잔 상태에서 연속으로 스무 시간을 신문했다면 명백한 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나 달라, 폰 군텐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다음 독방에서 목매달아 자살을 해버리고 만다.
  이것으로 사건 끝? 천만의 말씀. 이제 새로이 시작한다. 일찍이 마태는 피해자인 그리틀리 모저의 어머니한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살인범을 잡겠다고 약속을 한 바 있다. 어쨌거나 폰 군텐이 자백을 하고 자살을 해버렸으니 약속을 지켰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 드디어 요르단으로 출발하려는데 마태는 공항에서 숱한 아이들이 노래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바꿔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시 취리히 경찰청사에 나타난다. 요르단에 가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H 박사는 이미 인사이동이 끝나 더 이상 취리히 경찰신분이 아니니 도와줄 수 없다고 선을 딱 긋는 것. 박사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 마태는 폰 군텐이 자백을 했지만 진범이 아니라는 것, 진짜 범인이 언젠가 다시 나타나 또 꽃 같은 어린아이의 목을 면도칼로 난도질 할 것이라는 생각에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범인은 그라우뷘덴과 취리히 사이에 거주하며 미국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덩치 큰 남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라우뷘덴 주 쿠어 시 근방의 목 좋은 주유소를 인수한다. 언젠가는 범인이 이 주유소에 들를 것이란 믿음으로. 그리고 금발의 딸을 가진, 취리히 경찰청의 만년 용의자였던 헬러를 주유소에 들어와 살게 한다. 이른바 낚시가 시작된 것. 금발의 딸 안네마리에게 메겐도르프에서 죽은 여자아이와 같은 빨간 치마를 입히고 주변에서 놀게 만들어 범인의 눈에 들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안네마리의 엄마 헬러가 마태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Sie sind ein Schwein!"
  우리말로 하면, “넌 개새끼야!” 당신이라도 이렇게 악을 쓰겠지? 나 같아도 그런다. 이 문장을 역자 차경아는 그냥 직역을 해놓았다. “당신은 돼지야.”라고.
  어떻게 될까? 면도칼의 소녀 연쇄살인범이 안네마리라는 이름의 미끼를 물까?
  이 범죄소설을 쓴 다음에 뒤렌마트는 추리/범죄소설을 다시는 쓰지 않았다. 왜 그런지 책을 읽어보시면 저절로 알게 된다.
  독후감에서는 소개를 하지 않았지만 함께 실린 <사고>도 아주 흥미로운 범죄소설이다. 미필적 고의가 아닌 악의적 고의를 갖고 금세기의 가장 탁월한, 경탄과 존경을 받을 만한 심리적 살인을 저지른 한 명의 평균치의 인간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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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2-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 살 수가 없네요 ^^두 권 다 사겠습니다!

Falstaff 2020-02-20 09:0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책임지지 않습니다. ^^
 
슈틸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8
막스 프리슈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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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의 작품은 <몬타우크>와 <나를 간텐바인이라 하자>를 읽었는데, 이번에 <슈틸러>를 선택할 때는 고민 좀 했다. 건조한 문장으로 사람들 사이의 삭막한 관계를 모래처럼 그리고 있다는 것이 이이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는데, 이 책은 무려 600쪽을 넘어간다는데 헉, 했던 거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단박에 프리슈가 펼치는 논의를 수긍하며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 화이트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미국과 멕시코에서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다가 이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스위스 취리히로 가던 기차를 타고 있다. 그런데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승객이 기분 나쁘게, 분명히 비 에티켓이라 생각할 수 있는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더니 ‘나’를 몇 년 전에 소련연방의 스파이였던 스미르노프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행방불명된 슈틸러라는 이름의 조각가라고 스위스 경찰에 신고 해버린다. 체포되는 와중에 영문을 모르는 ‘나’는 상당히 취한 채로 한 경찰의 따귀를 후려갈겨 어차피 유치장 구류는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린다. 그래 길이 3.10, 폭 2.40, 높이 2.50미터의 좁은 감방에 수감된다. 감방이 작고 숨을 못 쉴 정도로 청결하며 모든 것이 어찌나 정확하고 적절한지 ‘나’의 가슴까지 답답할 지경이다. 비단 감방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위스라는 작은 나라와 국민들 대부분이 이렇게 꽉 짜여 정형화된 틀에서 단단하게 조직되어 있는 자체가 ‘나’를 숨 못 쉬게 만든다. 스위스의 대도시 취리히에서는 거지나 장애인을 한 명도 만나지 않을 수 있고, 사람들은 우아하지는 않지만 질 좋은 옷을 입어서 결코 동정심을 느낄 필요도 없으며 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깨끗한 상태로 유지가 된다. 이런 나라 안에서 질식할 듯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 이런 ‘나’의 취향이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나와 아주, 아주, 아주 잘 들어맞았다. 그리하여 책의 맨 앞부분부터 그래,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어찌나 신이 나 읽었는지.
  여기에 등장하는 국선변호사 보넨블루스트 씨. 이 사람을 묘사하는 내역을 보자. ① 선량하고 악의 없는 사람, ② 좋은 집안 출신, ③ 약간 주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마저 예의범절의 일부로 그렇게 행동하고, ④ 사소한 일에 까지 정의로운데 그게 과해 절망스러울 정도로 정의로우며, ⑤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특히 스위스의 관심사에 관련해서는 백과사전 수준에다가, ⑥ 스위스를 무조건 칭찬하지 않으면 결국 언제나 부당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단다. 이게 스위스 출신의 작가 막스 프리슈가 조국의 전형적인 중상층 인텔리들에 대한 소묘다. 이런 성향의 보넨블루스트 박사는 피고인을 변호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나톨 루트비히 슈틸러라는 인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독자는 스위스의 특정 집단에 의하여 거대한 음모가 건전한 미국인 ‘나’를 특정인물로 바꾸려 한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변호인은 노트와 펜, 잉크를 주고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예를 들어 직업, 수입, 체류기간, 자녀의 수, 이혼 회수, 종교 등 확인이 가능한 사실을 모두 써보라고 권하고, ‘나’가 이 제의에 응해 무려 일곱 권의 노트를 빽빽하게 채운다. 이게 책의 1부로 무려 506쪽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책의 진짜 조연은 국선변호사가 아닌 ‘롤프’라는 이름의 담당 검사. ‘나’는 나중에 롤프 검사와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만, 굳이 어떤 사이까지 가는지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밝히지 않겠다(야한 생각은 하지 마시고). 14년 전엔 야채장수였다가 직업을 바꿔 교도관이 된 크노벨 씨한테 ‘나’는 전에 아내를 살해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교도관의 보고를 들은 검사는 첫 만남에서 ‘나’에게 “당신은 아내를 살해했지요, 미스터 화이트?”라고 질문함으로써 ‘나’를 헛갈리게 만든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성품이 아주, 아주, 아주 고결한 사람으로 고상하고 우아해서 이런 사람과 산다는 걸 검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아내 앞에서 접시를 벽에 내동댕이친 적이 있는데 마치 자신이 살인범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미국과 멕시코와 남미의 각 지방에서 숱한 사람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며, 지적 수준이 조금 낮아 수감자가 지어낸 스토리를 그대로 믿을뿐더러 즐기기까지 하는 교도관은 이 수감자의 놀라운 고백을 진실로 생각해 그대로 검사에게 보고한 것이다.
  슈틸러라는 인물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기본 군사훈련을 마치고 배치된 슈틸러에게 타호 강변에서 조그마한 나룻배를 지키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탄탄한 참호 속에 혼자 나룻배를 지키고 있는데 파시스트군 네 명이 나룻배를 가져가기 위해 접근을 한다. 그러나 슈틸러는 완벽한 엄폐 참호에서 개활지의 적병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고 총을 든 채 그들에게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들이 먼저 총을 쏘면 자기도 쏘려고. 그런데 이상도 하지, 적병들도 총을 쏘지 않는 거다. 그래 그들에게 포로가 된 슈틸러는 자기 허리띠로 팔과 다리가 묶여 금작화 밭에 그냥 버려져 이틀 만에 갈증으로 실신한 채 아군에게 발견된다. 이 사실은 슈틸러의 우울증 또는 죽음, 자살에 기본적인 관점으로 책의 곳곳에서 이야기 되고는 한다.
  이렇게 작품은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검사는 ‘나’를 조각가 아나톨 슈틸러라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이며 심지어 파리에 사는 ‘나’의 무용가 아내 ‘율리카 슈틸러 추디’와 상봉하게 한다. 아내 율리카 뿐만 아니라 진도를 더해가면서 함께 어머니의 산소에 가보자고 요구하는 착한 동생 빈프리트 슈틸러, 한 시절 남편을 버리고 아들과 함께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났으나 뉴욕에서 정착하다 다시 남편에게 돌아온 옛 시절의 정부도 등장하고, 건축가 슈투르체네거가 나타나며, 더 뒤로 가면, 검사는 ‘나’가 슈틸러임을 밝히기 위하여 현장검증이란 이름으로 변호사와 율리카와 교도관 크노벨을 대동하여 예전에 슈틸러가 사용하던 아틀리에까지 들른다. 그래도 ‘나’는 슈틸러가 아닌 걸 어떻게 하나.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이 1부에서 일곱 권의 노트에 쓰이는데, 홀수는 감방이나 현장검증에서 ‘나’가 당하는 상황을, 짝수에서는 예전에 슈틸러와 관계가 있었던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가 어떤 자초지종으로 엮였는지, 스토리가 몇 개의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짧은 2부에서는 이제 ‘나’가 자유의 몸이 된 이후 어느 새 그의 친구 또는 친구 이상이 된 검사가 돈이 거의 떨어져 제네바 호수 근방에 있는 산골 지역 보에서 ‘보의 농가’에 터를 잡고 희한하게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것과 특징이 비슷한 접시나 그릇을 ‘스위스 자기’라는 이름으로 미국 관광객에게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태까지 쓴 독후감에서 나는 이 독후감이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하여 많은 것을 비틀어 소개했다. 물론 거짓으로 쓴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건 이 책이 막스 프리슈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닐 만큼 흥미롭게 여러 대상, 국가나 인간, 사랑까지를 조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한 여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를 사랑해? 아니면 사랑하지 않아? 지금 모든 게 거기 달려 있어. 오로지 당신한테 달려 있다고.”
  그러나 이러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는 “온전한 끝도 없고 그래서 온전한 의미도 없는 실망스런 이야기야말로 진짜처럼 들리는” 것을, 아하, 어이하리.
  매우 흥미로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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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2-1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러서 얼마 전에 사둔 책인데...

역시 선빵하셨네요 !!!

Falstaff 2020-02-17 15:26   좋아요 0 | URL
아이고, 매냐 님도 무슨 말씀을. 벌써부터 별렀던 건데 좀 망설였던 책입니다. 읽어보니 괜히 쫄았다는 생각이...
 
각성 열린책들 세계문학 246
케이트 쇼팽 지음, 한애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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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0년에 출생해 1890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미국 페미니즘의 선구적 작가라고 한다. 쇼팽의 연표를 보면1 아일랜드에서 이민 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아버지와 19세기 중반까지 서부로 가는 경계였던 세인트루이스의 프랑스 계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한 어머니로 이루어진 부르주아 가정의 딸로 태어난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고, 자매들은 다들 어려서 죽고, 아버지의 첫 아내 케이트의 큰 어머니가 낳은 배 다른 형제들은 또 전부 남북전쟁의 남부 연합군으로 전사해버린다. 그래 외갓집에서 어머니, 외할머니, 외증조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스무 살에 오스카 쇼팽과 결혼해 쇼팽이란 이름을 갖고 뉴올리언스에 정착해 8년 동안 여섯 아이를 낳는 왕성한 생식력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살던 시기가 나중에 소설을 쓰는데 주요 무대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스물아홉 살 때 남편이 사업을 말아먹고 다시 루이지애나로 거처를 옮기는 것도 잠시 3년 후 이번엔 남편이 모기에 피를 빨려 말라리아로 죽어 과부가 된다. 이때가 쇼팽이 서른두 살. 이후 2년간 당시 양가집 여자답지 않은 생활, 자유연애, 공개 흡연, 홀로 거리를 걷는 행위 등을 서슴지 않고 하고 다니다가 다시 친정이 있는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고 나서 세상이 허전해 우울증이 심해지자 집안 주치의이기도 했던 산부인과 의사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단편소설을 처음 발표를 한 때가 마흔 살이었단다.
  우리나라에서도 마흔에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가, <나목>으로 여성동아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천만 원의 상금을 건 1회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해 등단한 박완서 선생이 있지만 19세기에 나이 마흔이면 지금 나이로 환갑은 훌쩍 넘겼지 않을까? 하여간 케이트 쇼팽은 1904년 쉰네 살에 죽을 때까지 겨우 14년 동안만 작가로 활동하며 두 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을 발표하는데, <각성 Awakening>은 이이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고, 대표작이며 문제작으로 일컫는단다. 쇼팽이 스무 살 이후에 살았던 뉴올리언스와 루이지애나에는 프랑스, 스페인에서 이민 오거나, 캐나다에 살던 프랑스계 이민들의 재 이민이 상류계층을 이루어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각성>에도 주요 등장인물은 빠짐없이 프랑스 어를 적어도 알아듣거나 심지어 능숙하게 구사하는 장면들이 일관되게 나온다.
  흔히 미국하면 유럽에 비해 진보적인 기분이 들고는 하지만 19세기의 미국은 유럽보다 훨씬 보수, 반동적인 지역이었다. 이 책에서도 여성, 이중에서 결혼한 여성들의 미덕은 자식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남편을 공경하며 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없애고 가정의 수호천사가 되어 (암탉처럼2) 날개를 펼쳐 가정과 집안 살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자상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런 관점이라면 미국의 여자들은 전부 다 질식해 제 명대로 살지 못했을 거 같지? 천만의 말씀이다. 낳자마자 이런 환경의 지배 아래 살면 스스로 남성에 의한 보호를 편하게 받아들이며 그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성>을 읽고 주인공 에드나 퐁텔리에의 부정에 흥분한 당시 여자들도 무지하게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우연히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의 한 트랜스젠더가 명문학교인 청파여대에 입학하려다 재학생들의 비판으로 뜻을 꺾은 뉴스가 떴다. 고정관념이 그런 거고 언제나 무서운 것은 기득권과 권력이다. 무엇이든지 새로 시작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쓰여 있듯이 세상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나. 책을 읽어가노라면 저절로 <인형의 집> 노라가 떠오른다.
  작품은 뉴올리언스에서 남쪽으로 80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는 그랜드 아일 섬의 여름 별장에서 시작한다. 나는 첫 장면에서 존 벤빌의 <바다>를 회상했다. 벤빌의 작품에서 보면, 여름휴가를 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엄연하게 계급이 존재하는데, 첫째는 휴가지에 여름별장을 보유한 족속들이고, 둘째가 별장을 통째로 세낸 사람이며, 셋째가 호텔에 숙박하며 여름을 나는 부자들, 넷째가 별장(팬션)에 방을 몇 개 빌려 약식 월세로 여름을 나는 쁘띠 부르주아, 마지막 다섯째가 현지 주민이라 했다. 이걸 보면 주인공 에드나가 안주인인 퐁텔리에 식구들은 기껏해야 네 번째 그룹밖엔 안 되지만3 이들과 또 한 가족인 라티뇰 씨 가족은 뉴올리언스의 최고급 주택가인 에스플러네이트가街의 저택에서 사는 지역의 부르주아들이다. 아일랜드와 미국의 휴양문화에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미국 남부의 휴가지에서는 한 팬션에 부르주아부터 쁘띠부르주아, 서민들이 함께 여름을 나며 놀랍게도 친목까지 다진다.
  주로 뉴올리언스 시내에서 여름을 나기 위해 도착한 이 팬션은 예전 르브룅가家의 호사스런 여름별장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젠 르브룅 여사가 여름별장으로 운영하며 덕택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며 두 아들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아들, 로베르와 빅토르. 남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로베르는 뉴올리언스의 상점의 직원으로 평범한 고용인이기는 하지만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어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하며 지금은 여름휴가를 맞아 어머니와 함께 예전의 자기 집안 별장에서 손님들을 도와주면서 그들의 말벗 역할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 눈치 채셨지? 우리의 주인공 에드나 퐁텔리에 여사는 아들만 둘 둔 스물여덟 살 주부. 이들이 수영을 하고 돌아오며 소설은 시작하는데, 사실 말이 수영이지 에드나는 어떻게 하면 사람의 몸이 물에 뜰 수 있다는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 중간의 내용을 대폭 건너뛰어 이야기해서, 어느 날 에드나 혼자 수영하는 법을 저절로 익히게 되고, 그러면서 보다 더 멀리 헤엄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어느 순간 더 이상 먼 바다로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다는 두려움이 왈칵 솟았던 것을 기점으로, 에드나의 의식은 돌변한다. 남편에 대한 복종을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던 에드나는 남편 레옹스 퐁텔리에가 “당신은 당장 방으로 가.”라고 말하자, “다시는 나한테 그런 식으로 명령하지 말아요.”라고 대꾸하기 시작해, 여태까지는 최고의 남편이고 더 이상 훌륭한 남자는 없는 걸로 알았다가 이젠 자기 자신만의 “삶의 희열”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한다. 물론 “삶의 희열”이란 구체적인 단어는 책 저 뒤편에 나오니, ‘자신만의 삶’으로 대체해 이해해도 충분히 좋다.
  앞에서 언급한 <인형의 집> 노라가 바로 이 지점에서 집구석을 박차고 너른 세상으로 나간다. 그런데 에드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탤 것이 있다. 최고의 남편, 제일 훌륭한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있음에도 어느새 팬션집 큰아들, 기껏해야 상점의 점원에 불과한 나이어린 청년 로베르와 사랑에 빠져버린 것. 에드나는 그것이 사랑인지 모른다. 로베르가 갑작스럽게 오늘 밤 당장 돈을 벌러 멕시코로 떠나기 전까지는. 에드나는 자신의, 자신만의 삶과 떠나버린 사랑을 가슴에 안고 뉴올리언스의 저택으로 돌아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의 벽을 향해 첫 번째 달걀을 던지게 될까.
  짧은 소설이다. 본문이 243쪽에서 끝나는 분량에서 벌써 반 이상 말해버린 거 같다. 세상을 향해 여성의 자아를 외친 소설은 결국 평등의 해협을 건너지 못했다. 케이트 쇼팽이 죽고 60년이 지나 해협에 삐걱거리는 나무다리를 놓은 후에야 비로소 선구적 작품이라 일컫는 <각성Awakening>을 다시 출간할 수 있었으니, 기구하다면 기구한 소설.

________________________

1. 이후 케이트 쇼팽의 일생은 위키백과와 책 뒤편의 역자 해설 참고했음.

2.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씀.

3. 책 속에 이들의 숙소를 펜션이라 써놓았으며 여러 식구들이 하루에 세 번 한 자리에서 식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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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4
이솝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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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한 것들이 있는 줄 알았다. 어릴 적부터 흔하게 들은 우화가, 어렸을 적 읽은, 동화작가의 윤문작업을 거친 것보다 덜 재미있게 읽힌다. 금도끼, 은도끼도 이솝 우화일 줄이야. 어느날 나무꾼이 실수로 도끼를 연못에 빠뜨렸는데 수염이 허연 산신령님이 연못에서 불쑥 솟아나와 금도끼를 손에 들고 나무꾼에게 얘야 울지 말고 이걸 봐라,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물었다는 그림책 기억나시지? 이솝의 우화에는 산신령이 아니라 헤르메스, 즉 전령, 여행, 상업, 도둑의 신이다. 내용은 산신령 이야기하고 똑같다.
  우화가 재미있는 것이 읽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 사는 데 다양하게 적용시킬 수 있다는 점. 노인이 나귀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적군이 몰려오는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이 어마뜨거라 싶어서 나귀에게 외치기를,
  “빨리 도망쳐라, 적들에게 붙잡히지 않으려면.”
  그러나 나귀가 콧방귀를 픽 뀌더니, “영감님, 만약에 적들이 쳐들어오면 쇤네한테 짐을 두 곱으로 지게 하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었다.
  “네가 무쇠로 만든 마징가 제트로 아닌데 설마 그리 하겠느냐.”
  라고 답을 해주니 나귀는 이렇게 말했다나.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년이다 다 똑같은데 내가 무엇을 한다고 적을 피하겠습니까.”
  사람 사는 세상, 새삼스럽게 이솝 우화를 다시 들춰볼 거 없이 그냥 여태 산대로 살아도 무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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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0-02-13 1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어렸을 때 무거운 소금 나르는 것이 싫어 개울에서 일부러 넘어졌다가 나중에 물에 젖어 무거운 솜을 짊어지게 된 당나귀 얘기를 읽으며 인간이 참 못됐다고 생각했답니다. 너무 무겁고 힘들면 당나귀가 그럴 수도 있지. 꼭 그렇게 벌을 주어야만 하는가... 당나귀가 너무 불쌍하다 생각도 했어요. 혹시 양치기 소년도 이솝우화 인가요? 저는 양치기 소년도 얼마나 심심했으면 그랬을까 싶고 ㅋㅋ 이솝우화가 지금 생각해보면 애들이 읽기엔 좀 가혹한 면이 있었던 거 같네요.

Falstaff 2020-02-13 10:4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케이 님은 어려서 참 착한 어린이였을 거 같아요.
양치기 소년은 유럽 쪽 아닌가 싶네요. 저도 그림동화집 1편만 한 번 읽어볼까 궁리중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솝은 역시 여우의 신포도입니다. ^^

케이 2020-02-13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우의 신포도 얘기하시니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 삽화까지 떠오르네요. (역시 책은 어려서 읽어야 하나 봅니다) 여우의 정신승리 참 긍정적이고 귀엽고 본받을만 해요 ㅋㅋㅋ 오늘 리뷰도 감사합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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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작가상에 빛나는 김혜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정크>를 2018년에 읽고 나서 참으로 징글징글하게 징징거린다고 불평을 하고는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행크 치나스키가 등장할 것인가 하고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다. 행크 치나스키? 찰스 부코스키가 쓴 일련의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골통 남자다. 많이들 아실 듯. 네 개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 작품집 《대도시의 사랑법》에 등장하는 주인공 박X영이 조금은 행크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 남성 동성연애자라는 것. 그렇다. 이 책은 퀴어 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책 뒤에 실린 평론가 강지희의 작품해설 앞부분을 보면, 남성 동성애자의 침대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광화문 광장으로 확장시키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표 출판사 창비가 선택한 평론가가 하시는 말씀이니 틀림없는 진실이겠지만, 솔직히 동성애자들이 나하고 무슨 관계인가, 그들이 동성애를 하건 말건 그건 그들 소관일 뿐이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나는 더 이상 강지희의 놀라운 크레센도를 읽어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책은 그냥 퀴어 소설집이고, 동성애자도 그냥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다만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을 일컬을 뿐이다.
  내가 처음 읽어본 퀴어 소설은 윌리엄 S. 버로스가 쓴 <퀴어>였고, 두 번째가 이것도 퀴어 문학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모두에 얘기한 김혜나의 <정크>였으며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셔우드의 <싱글 맨>에 이어 네 번째 작품(집)이 된다. 아, E.M 포스터의 <모리스>가 퀴어 소설의 조상님 쯤 되려나? <퀴어>도 그렇고 <정크>도 그랬는데, 박상영의 작품집에서도 제일 앞에 실린 <재희>도 마찬가지로 '거칠다.' <재희> 때문에 행크 치나스키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강지희의 평론에 쓰여 있는 줄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박상영의 작품을 퀴어 문학으로만 읽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퀴어 소설이라는 측면 또는 희소성 때문에 독후감을 쓰며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상찬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리라.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소설이기 전에 연애소설이다. 아쉽게도 연애 중, 흔히들 말하기를 ~ing 형은 한 편도 없고 다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한다. 어차피 연애소설이란 건 근본적으로 이별과 상처, 더 나아가 추억에 관한 소설이다.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중단편도 마찬가지다.
  잘 쓴 연애소설 네 편을 읽을 수 있는 기회. 난 더 이상 퀴어 소설이니 레즈 소설이니 하는 말은 듣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다. 그냥 연애소설이이라고 하면 될 것을. 내가 읽어본 어떤 남성 작가도 사랑과 이별과 추억과 기다림과 아픔과 상처를 박상영처럼 감각적으로 쓴 것을 읽어보지 못했다. 이 책의 미덕은 박상영이 꾸려내는 이야기의 행렬matrix이 우울의 골짜기로 빠지지 않고 슬픔의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중단편 소설의 줄거리를 공개하는 우스운 일은 하지 못하겠다.
  근데, 본문이 309 페이지에서 끝나는 이 책의 편집이 매우 불량하다. 처음 책을 들춰보고 겉표지를 확인했다. 이거 창비가 만든 책 맞아? 맞다. 한 페이지에 열아홉 줄1. 한 줄에 원고지로 30자. 총 본문 302쪽. 200자 원고지로 계산해보면 19*30*302/200 = 원고지 861 매로 책 한 권을 만드는 신기의 편집술을 과시했다. 책의 여백을 생각하면 850매도 들지 않았을 거다. 박상영도 마찬가지다. 책을 내주겠다고 해도 좀 기다리라고, 아직 책을 만들 분량이 아니라고 했어야지. 이런 현상을 우리는 쉬운 말로 양심불량이라 일컫는다. 이렇게 네 편의 중단편, 원고지 850매 정도를 모아놓고 정가 14,000원, 10% 깎아서 12,600원을 받고 싶을까? 이런 편집을 하면 불쌍한 건, 뭐 독자들이야 돈을 좀 더 내야 하는 거밖엔 미치지 않겠지만, 제일 불쌍한 건 열대우림의 나무들이다. 309쪽 읽는데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책을 만들기는 해야 하겠는데 너무 얇으면 보기 뭐 하니까 책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이런 편집을 했으리라. 에라 이.... 이 책 나오기 한 달 반 전, 창비는 계간지 <창작과 비평 2019. 여름>호에 4년 만에 신경숙의 작품을 실었다. 이런 편집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양심이 집나갔던 시기. 결국 창비도 신자유주의의 기수가 되고 말았던 거디었던 거디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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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출판사 창비에서 나온 같은 사이즈의 <밀크맨>은 한 쪽에 스물세 줄로 편집했다. 네 줄 차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시지? 무려 20퍼센트 이상, 본문을 240여쪽으로 만들 수도 있는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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