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있나이다 1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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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8쪽에 이르는 장편소설. 그래도 워낙 재미있어 나흘이면 다 읽고 독후감 쓰고, 쐬주 한 병 마시고 입가심으로 맥주도 한 캔 딸 수 있다. 포어가 쓴 픽션 작품이 오늘까지 모두 네 편이라고 위키피디어에 나와 있는데, 민음사가 우리말로 세 편을 출간했고, 이 책으로 그의 우리말 번역본 소설을 몽땅 읽은 셈이다. 데뷔 이후 출간 순으로 하면 <모든 것이 밝혀졌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그리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읽은 순서로는 2-1-3.
  앞에 읽은 책들을 통해 이미 포어의 입심에 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었으나, <엄청나게...> 이후 11년 만의 작품으로 11년 동안 자신의 입담을 더욱 빛나게 절차탁마하여 이젠 거의 포르노 수준의 짧은 묘사를 마구 구사하면서도, 더할 수 없는 미국적 농담이 범지구적 가정, 가족, 결혼생활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보여주었다. 웃기지? 포르노 수준의 묘사와 미국적 농담이라면서 지극히 보수적인 극동 아시아의 가정과 결혼생활에서도 그대로 통할 수 있는 교훈이라니. 글쎄 그렇다니까.
  이 책 역시 유대인 가족 이야기다. 첫 번째 작품인 <모든 것이....>에서와 같이 유럽에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폴란드 유대인 가정이 나치의 침략을 맞아 두 형제만 피신시킨 채 몰살을 당하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 그중 한 명은 이스라엘로, 다른 한 명인 아이작은 성姓을 미국식으로 ‘블록’이라 개명해 아메리카로 향한다. 작 중 아이작은 증손자 샘이 열세 살을 맞아 성인식, 이걸 ‘바르 미츠바’라고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유대 행사인 증손자의 바르 미츠바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이스라엘의 파괴가 시작 되었을 때 자살할지 유대인 요양원으로 옮길지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늙은 몸이라도 자기 집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밥을 지어 먹는 것도, 라면 한 봉 끓이는 것도 쉽지 않고, 용변을 보려 화장실 가는 건 산소통 없이 캉첸중가에 오르는 것만큼 숨이 차고, 심지어 건조한 등을 긁기 위해 효자손을 들어 올리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 더 연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들어가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파괴라고? 그렇다. 이스라엘 서안지역에 강한 지진이 발생해 이스라엘의 일부가 조금 파괴되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팔레스타인은 훨씬 더 처참하게 파괴되어,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치료를 위해 병원이 있는 이스라엘로 몰려들어, 원주민들과 다툼이 있었고 이게 과열되어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전시상태에 접어든 것을 말하는데, 염병을, 이스라엘이 이슬람하고 대가리 박고 싸움질 한 것이 한 두 번이어야 알지, 내 아무리 검색해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작품의 줄거리로 짐작하자면 2006년가량 되어야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그럼 증손자 샘의 성인식, 바르 미츠바는? 샘이 유대학교에 다니는데, 그의 책상에서 인종차별적 내용이 담긴 메모를 발견한 교장이자 랍비 선생이 엄마 줄리아와 아빠 제이컵을 소환해 말씀을 하시기를, 우리 민족 스스로가 끔찍한 인종차별로 인해 수백만 명이 희생당했으면서도 피부색이나 다른 이유로 다른 인종을 차별한다는 건 말로 되지 않으며, 심지어 샘이 쓴 메모에는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깜”뭐라뭐라 하는 단어까지 있어서 도무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아, 자신이 한 행동을 교사와 학생 전체에 사과하지 않으면 일정 기간 정학에 처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바르 미츠바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부모가 샘에게 묻기를, 이거 네가 한 거야? 샘이 답하기를, 아냐, 내가 한 거 아니예요! 아빠 제이컵이 보기에 분명 샘의 필적이 맞다. 그럼에도 아들이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하니 그건 아들이 한 짓이 아닐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엄마 줄리아는 맏아들 샘의 필적이 틀림없는 만큼 이건 분명히 샘이 한 짓이다, 라고 하고.
  좋다. 인물 탐구를 심화시켜보자. 증조부, 증손자까지 했지. 그럼 샘의 부모.
  때가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대강 2005년이라고 치자. 이때도 스마트 폰이 있었나? 있었다고 치자. 아빠 제이컵이 스마트 폰을 하나 장만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한 명 빼고. 유난히 눈치가 재고 조숙한 샘. 얘가 ‘저기 저기 저, 구석 끝자리’에 숨겨놓은 스마트 폰을 발견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아빠가 지정해놓은 암호를 단 몇 번의 시도 끝에 풀어낸 다음 아빠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한국 여자와 사이에 오간 하드 코어 포르노 수준의 문자를 발견하고, 아 우리 아빠가 바람을 피우려 스마트 폰을 사서 혼자만 몰래 보시는구나, 이렇게 이해하려는 순간 갑자기 엄마가 들이닥쳐 문제의 스마트 폰을 변기 구석에 허겁지겁 숨겨놓고 만다. (얼마나 야한 문자인지 차마 여기다 옮기지 못할 수준이다.) 그런데 아니나 달라, 엄마의 눈에 함부로 숨겨져 있는 스마트 폰이 띄고, 이 방면에 도가 튼 샘을 호출해서 문자를 읽게 된 순간, 정말이라니까, 하도 음란해 당신더러 이 책을 읽어보란 얘기를 못할 수준이라고, 엄마 줄리아의 눈이 휘까닥 뒤집혀버린다.
  당신에게 묻겠다. 노골적이고 완전 변태인 성행위를 서로에게 문자로 해댄 남편이 혼외 연애를 했겠는가, 아닌가. 아내 줄리아는 아니라고 딱 결론을 낸다. 남편이 도덕적으로 완벽해서? 남편의, 아니라고, 그냥 문자로만 장난삼아 해본 거라는 변명에 설득당해? 천만의 말씀. 줄리아가 ‘혀’라는 긴 칼을 휘두르며 하시는 말씀은, “당신은 그럴 용기가 없어서 죽어도 못해.” 따옴표의 문장에서 숨겨진 목적어는 당연히 엽기, 포르노, 변태적인 성행위를 일컫는다. 근데 제이컵이 정말 했냐고? 그거야 안 알려주지.
  하여간 이렇게 아들 삼형제가 있는 집안에 급격하게 균열이 생긴다. 십여 년 전 줄리아와 제이컵이 결혼하던 날, 제이컵의 엄마가 하신 말씀 중에 명언이 있었다.
  “병들 때나 병들 때나, 그게 내가 너희에게 내가 바라는 거란다. 기적을 찾거나 기대하지 마. 기적 같은 건 없어. 더는 없단다. 그리고 가장 아픈 상처에 쓸 치료제도 없어. 서로의 고통을 믿고 그것을 위해 있어주는 것만이 약이란다.” (‘병들 때’가 두 번 연속으로 씌어있다.)
  여기다가 우여곡절 끝에 바르 미츠바를 끝냈으면서도 자신은 절대로 성년이 되지 않겠다고 주장한 샘은 자신의 바르 미츠바 연설에서 유대 캠프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누구에게나 원자폭탄이 주어질 수 있지만 그걸 꼭 터뜨리라는 건 아니라고 설파하기도 한다.
  이 원자폭탄은 여러 의미가 있다. 이혼이라는 가정의 폭파를 뜻하기도 하고,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핵전쟁을 뜻할 수도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하자.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하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앞에서 강조한, 어쩌면 그렇게 재미난 장면도 나오니 참고하라고 유혹할 의도도 있었는지 모른 하드코어 포르노 수준의 일부 묘사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있었던 이스라엘과 이슬람 사이의 다툼을, 지독스럽고도 당연하게, 책이 끝날 때까지, 유대인의 편에 서서 발언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동감하면서 읽을 줄 모르지만, 솔직하게 말해 난 역겨웠다.
  이 정도면 이야기 다 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재미있고 유쾌하기도 한) 미국식 유머, 디아스포라의 종막에 선 이스라엘과 미국에 자리를 잡은 유대인의 갈등, 한 가정에 깃든 이별의 그림자, 성인식 바르 미츠바, 그리고 과한 이스라엘과 이슬람 간의 전쟁 이야기. 매력적인 작가이지만 언제나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그래도 이이가 다음 작품을 내면 꼭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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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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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해 장안의 종이 값을 올린 책. 전라남도 장흥이 물이 좋은지 그곳 출신으로 글 잘 쓰는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두 사람이 이청준과 한승원. 하나만 더 꼽으라면 이승우. 한승원의 딸이 한강인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나는 한승원을 좋아하여 그가 80년대 초반에 쓴 작품까지는 웬만한 건 다 읽어보았다. 이청준과 같은 동네 출신이지만 지향하는 것이 조금 달라서 작품 속에 갯내, 토속적 운동성 같은 것이 읽기에 좋았다. 그래 그이의 따님이 책을 냈다고 해 한강의 첫 번째 작품집 《여수의 사랑》을 읽어본 게 199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책꽂이 저 깊은 곳에 꽂혀있기는 하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여수의 사랑》에 실린 몇 편의 단편소설들이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기본적으로 내 정서하고 맞지 않았다는 점. 그리하여 데뷔 작품집 하나로 이후에 한강을 읽어볼 생각은 다시 해본 적이 없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은 이후 각종 문학상을 수집해가며 잘 나가는 작가로 자리매김을 해, 나의 문학적 소양이 정말로 하잘 것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해외 문학상 가운데 내가 신뢰하는 부커 상,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비교해서 말하자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으니, 나는 그간 버릇없게 스물 몇 해 동안 한강 알기를 우습게 안 죄를 사과하는 의미에서 기특하게도<채식주의자>를 사 읽어보게 된 거디었던 거디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극단적이다. 참혹하다. 비정상적이다. 얼마나 우울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희한도 하지. 책에 등장하는 남자새끼들은 하나같이 개새끼들이다. 아버지는 목수 출신으로 다른 건 몰라도 급한 성질하고 완력, 이렇게 둘은 어디 가서 하나도 꿀리지 않아 아내와 새끼들 잡도리하는 것을 취미생활 비슷하게 했다. 아들 영호는 아버지한테 얻어터지면 밖에 다가 다른 남자새끼들 두드려 패는 걸로 욕구불만을 해소했고, 엄마를 작신하게 두드려 패고 난 다음날 아침 엄마 대신 술국을 끓어주니까 큰딸은 좀 덜 팼는데, 막내딸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영혜는 한 번 반항하지도 않은 채 두드리면 두드리는 대로 얻어맞았단다. 심지어 오토바이에 자기 딸을 문 개를 끈으로 연결해 죽을 때까지 달리게 만들고, 죽으면 개를 잡아 한 가족이 먹은 추억담이 나오고, 이 때 극심한 개 누린내에도 불구하고 모두 맛있게 먹어야, 먹는 척해야 했단다. 한강이 딱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행과 기행이 영혜의 이상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혜의 남편새끼는 세상에 자기만 알고 마누라는 자신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 하녀 취급을 할 뿐이다. 조금 이상한 행위가 벌어지면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과 의학의 힘을 빌려야 하거늘 이 철딱서니 없는 남편새끼는 대신 처갓집에 전화를 해 문제해결을 도모한다. 이상하게 변해 전혀 고기류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진짜로 완벽한 채식만 하기 시작해 피골이 상접해진 아내한테, 장인이 폭력을 행사해가며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할 때에도 장인을 말리기는커녕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하다 사고를 친 아내와 이혼해버리고 만다.
  영혜의 형부새끼는 비디오 예술을 빙자해 환자상태가 된 처제의 몸에 현란한 꽃그림을 그리고 역시 전신에 꽃그림을 그린 자신의 남자 후배와 교합하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실패하자 이미 헤어져 남의 아내가 된 화가 출신 옛 애인을 불러 자신의 몸에다 꽃을 그리게 하고 처제와 다양한 체위로 리얼 비디오 촬영을 하고야 만다. 예술의 이름으로. 그러나 이러한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모르는 아내에게 걸려 법정소송에 휘말린 끝에 거의 거덜이 난다.
  참 골고루 나쁜 새끼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반면에 주인공 영혜에 관해 썼다가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을 하고, 영혜의 언니 이야기를 하자면, 조그만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가 타고난 성실성으로 차츰 가게를 확장해 남편이 아무런 경제적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도 예술행위에 전념할 수 있게 했으며, 빈손으로 상경한 어린 여자가 나이 들어 결혼을 했지만 아직 아이가 댓살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면서, 나중엔 영혜의 모든 비용까지 부담할 정도로 능력 있는 여자다. 그러나 인생의 굴곡을 몇 번 겪으면서 뒤돌아보니, 자신의 결혼생활은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배제된 시간”이었으며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씁쓸하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가족’이란 테두리를 만들어 그 속에 살면, 두 사람 다 자신의 기쁨과 자연스러움을 ‘전적으로는’ 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야말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건 전혀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다. 한 마디로 작가마저 문장의 뜻을 잘 모르고 마구 쓰는 거 아닌가 싶다.
  한강이 결혼을 했는지, 해본 적이 있는지, 지금도 결혼 생활 중인지, 사생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지만(이건 참 잘했다.) 확실한 건, 이 칠공년 개띠 여사님이 결혼이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책을 발간한 2007년, 이이의 나이 서른일곱 살 때까지는 모르고 살았음이 확실하다. 결혼은 애초부터 여자나 남자나를 막론하고 자신의 기쁨과 자연스러움의 ‘일부’ 또는 '상당량'을 희생시키는 일이고, 배우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인내와 배려를 해주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깨질 수밖에 없는 허약한 유리그릇이라는 것을.
  과도한 우울함과 통곡할 수밖에 없는 운명, 고통, 그것을 너머 죽음. 전체적으로 지독하게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분위기의 작품. 나하고는 정말 맞지 않는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니 문학적 관점에서는 탁월한 소설이겠지만, 모든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중심에 선 자는 나 하나다. 아무리 좋은 소설도 나하고 맞지 않으면 말짱 쓸데없다.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책에 별점을, 큰 상을 탔다니까 하나를 더 추가해서, 세 개 주는 바이며, 앞으로 한강이 쓴 책을 읽지 않으려고 가일층 노력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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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0-03-26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만 읽어도 피곤합니다. ㅜㅜ 역시 읽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저는 서양 ‘남자‘들이 여성들이 학대당하는 동양의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게 너무 화가 나요. 전 그들이 자기네 나라에서는 감히 표현하지 못하는 학대 장면을 보며 본인들의 욕구를 대리 충족하고 있다는 순전히 제 느낌에 기초한 아주 비합리적인 의심을 항상 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그래 역시 동양은 아직 우리보단 열등하다 우월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전 그래서 프랑스에서 열광했다는 우리나라 영화나 소설은 믿고 거른답니다. =_= 팔스타프님 리뷰 덕분에 스트레스 받을 일을 하나 덜었습니다. 리뷰 항상 감사드려요!

Falstaff 2020-03-26 10:40   좋아요 1 | URL
예. 이 작품은 독자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책 읽는 것 자체가 고문일 수 있겠더라고요. 적어도 제겐 고역이었습니다.
언제나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제가 훨씬 더 고맙지요. ^^

케이 2020-03-26 10:55   좋아요 1 | URL
팔스타프‘님‘ 이라는 말을 빼먹은 걸 이제 봐서 추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Falstaff 2020-03-26 11:14   좋아요 0 | URL
ㅋㅋㅋ 별걸 다 신경쓰십니다. 그래도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잠자냥 2020-03-26 12:06   좋아요 1 | URL
이 책 저도 취향에 맞지는 않았어요. 심정적으로 불쾌하고 좀 힘든 작품이었달까요. 그 후로 한강 작품은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작별>에서 한 작품 읽었는데, 그때도 혹시 이것도 불쾌한 내용 아닌가 하고 움츠렀던 기억이 납니다.

수다맨 2020-03-26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십여 년 전에 이 책을 읽었고 재작년에 우연한 기회로 한 번 더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데 작가가 세계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이분법적이었다는 것은 기억에 남습니다. 강자와 약자, 육식과 채식, 야만과 순수, 악과 선을 작가가 일방적으로 나누려고 하기에 이야기 흐름이나 인물 형상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육식(주의)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드러내고자 비현실적인 꿈을 반복해서 보여준다던지, 현실성 떨어지는 장면(예컨대 영혜의 아버지가 딸의 뺨을 때리고 반강제로 탕수육을 먹이는 부분)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그만 아연해지더군요. 저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너무나도 ‘후진‘ 소설이었습니다.
팔스타프님 감상평 늘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Falstaff 2020-03-26 12:42   좋아요 1 | URL
하여튼 이제 저는 한강의 책을 읽지 않을 겁니다. 다만 우리나라 최초로 다른 상도 아니고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탔다하나, 기념할 만한, 후대의 교과서에 한 줄 정도 자국을 남길 책이 될 것 같아서.... 읽어보았지요.
별 거 없는 독후감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린체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조구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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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우라 아스키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번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작가. 전작에서는 자신이 평생 결혼도 하지 못하고 부모님 뒷바라지나 하다가 늙을 팔자인 것을 알고는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슬퍼서 앵앵 울며 끝까지 나오지 않으려 했던 한 부엌데기가 음식을 매개로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소위 붐 문학, 라틴 아메리카 표 환상문학의 하나였다. 작가가 1950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멕시코 사람. 피부색을 보면 유색인, 그러니까 인디오의 피가 조금 섞인 듯한데, 그렇지 않은 멕시코 인이 있기나 하나. 스스로를 에스파냐에서 온 백인의 후손이라고 으스대는 족속들도 알고 보면 자신 속에 검은 피부 무어인의 DNA가 섞여 있을 것이다.

 

 

라우라 아스키벨


  지금의 멕시코가 아니라 16세기 이전의 멕시코에서는 이야기를 후손에게 전할 때 ‘코덱스’라는 이름의 그림을 그려 일종의 책으로 만들어 왔는데, 이것이 지금 시대엔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학적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예로부터도 마찬가지라 이 코덱스를 만드는 또는 작성하는 작가들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간주했으며, 코덱스 작성을 성스러운 행위로 인식해서 세금까지 면제해주었다고 한다는데, 책에서는 이 주장의 근거를 밝히지는 않는다. 하여간 그런가 보다.
  고대 멕시코와 아즈데카 문명을 합해 그냥 멕시코라고 부르고 이들이 만든 문명을 아즈데카 문명이라고들 한다. 조금 구분을 해야 하지만 여차 잘못 아느니 차라리 나도 그대로 쓰겠다. 레이날도 아레나스가 쓴 <현란한 세상>을 보면, 1765년에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태어난 풍운의 수도사 세르반도 테레사 데 미에르가 1531년에 멕시코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멕시코 수호성인 과달루페의 성모는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아직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정복하지 못했을 때인데 어떻게 기독교의 성모가 출현할 수 있느냐고 했다가 평생을 감옥생활과 탈옥을 반복해야 하는 촌극을 재미있게 그렸는데, 이 책에서는 과달루페의 성모가 어렴풋하게나마 1531년 부근에 등장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백인 또는 유럽인의 눈으로 과달루페의 성모를 보는 건 어림도 없고 오직 인디오 고유문화에서 나오는 어머니 신인 ‘토난친’을 이해할 수 있는 인디오의 시선에서만 모습을 허락했을 것이라 시사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로마 가톨릭은 우리나라 불교와 비슷하게 토속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었다고 들었는데, 전문가가 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심스럽긴 하다.
  주인공은 말리날리. 멕시코의 마지막 황제 목테수마가 인신공양을 벌인 날 밤,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우레와 같은 폭발음이 들리며 은색 뱀(번개)이 하늘에 나타나던 날, 난산 끝에 탯줄이 입술 사이에 물려 있어 할머니가 탯줄을 잘라내 세상에 나오게 된 아기. 말리날리는 이렇게 ‘파이날라’라는 작은 나라의 왕 틀라토아니의 딸로 세상 구경을 한다. 말리날리가 나중에 숨을 거둘 때까지 이이의 한 평생을 그린 소설. 그렇다고 전기적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말리날리의 생몰연대에 관해서는 이론이 있지만 이이가 에스파냐의 에르난 코르테스의 통역사로, 때론 정략적으로 도움을 주며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에 한 힘을 보탰다는 게 정설인 모양이다. 그래서 당연히 멕시코 인들에게 오랜 세월 미움을 받았던 모양인데 라우라 에스키벨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색다르게 해석을 한 듯.
  말리날리가 어려서 아버지는 목테수마 혹은 그의 부하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고, 어머니는 재혼을 하는 바람에 현명한 할머니,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지만 시력상실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현명해지는 전형적 ‘인디오 어머니의 신의 현명함’으로 손녀를 양육하며 특히 언어 구사에 관한 교훈을 전해준다. 할머니는 말한다. “만약 말이 다른 사람에게 물(좋은 영향)을 주고, 그럼으로써 신들의 기억을 꽃피우게 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면, 말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된단다.” 할머니에 의하여 만들어진 더없이 보석 같은 유년시절이 마감될 다섯 살 즈음, 할머니는 땅으로 돌아가고, 어머니는 새 남편과 살기 위하여 염소 한 마리 값도 받지 못했음에도 기꺼이 말리날리를 노예로 팔아버린다.
  1504년에 처음으로 아메리카의 라 에스파뇰라(도미니카와 아이티가 있는 섬)에 첫발을 디딘 에르난 코르테스는 외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자신이 원하면 뭐든지 갖고야 말겠다는 성취욕이 누구보다도 강한 집착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최고로 빠른 출셋길이었던 군대에 입대하기에는 키가 너무 작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는 ① 궁정시동, ② 사제, ③ 공부밖에 없어, 에이 씨, 나 그딴 거 안 해, 라며 배타고 아메리카로 향한다. 그곳에서 누구보다 더 큰 땅의 정복자이자 영주이자 지배자, 누구보다 더 위대한 남자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하여 상관인 쿠바 총독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그저 관찰 업무에 불과했던 멕시코 탐험을 끝내 원정과 정복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데, 처음부터 잔혹한 살인마였던 것은 아니어서 대화와 타협을 최고의 정책으로 삼아 어려서부터 노예로 생활해 에스파냐어와 현지 언어를 두루 사용할 줄 아는 말리날리를 자신의 ‘혀’로 부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한 명을 더 보태자면, 멕시코의 마지막 황제 목테수마. 그는 멕시코 전역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피라미드 위에서 인신공양의 축제를 벌이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 자신들의 신 케찰코아틀이 돌아오면 자신에게 멕시코 평정 동안 벌어진 살육과 인신공양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 확실하다는 쓸데없는 고민에 갇힌 사내이기도 했다. 딱 이런 찰나에 등장하는 키 작은 사나이 에르난 코르테스. 키가 작다고 해도 인디오의 키에 비하면 결코 작은 키도 아니었고, 거기다가 하늘같은 말을 타고 있었던 거다. 또 수염이 난데다가 머리카락이 옥수수수염처럼 황금빛을 띠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가장 상서러운 표식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의 신 같은 두 화산 포포카테페를과 이스탁시아우틀 사이를 신에게 공양할 아이들과 걷는 꿈을 꾼 후, 아이들의 두개골을 자신의 물잔으로 사용하겠다고 생각하던 목테수마는 갑작스러운 바람과 햇빛을 보고 아연 공포에 싸여, 에스파냐 사람들의 도래를 케찰코아틀이 귀환하는 것으로 확신하게 된다. 이런 바보 멍청이 같은 황제라니. 신의 징벌에 관한 공포 때문에 군대의 총지휘자 목테수마는 엄청난 전투능력을 마비시켜버렸던 거였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그깟 한 줌의 에스파냐 군대 정도는 단 하루 만에 격퇴시킬 수 있었을 것을.
  이렇게 세 명이 벌인 역사적 사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인디오 문명과 문화, 아름다움, 독특하고 현명하고 자연 친화적인 것들이 어떻게 천박한 에스파냐의 배금주의에 의하여 무너져갔는지,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말리날리가 정말 동족을 배신하기나 한 것인지, 대지를 닮은 한 여성으로서의 비폭력과 작물의 연속적 생산 등등, 심지어 (작품해설에 의하면) 여성주의적 시각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읽기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디오들의 다양한 신과 자연에 동화하는 방식이었다. 이 책의 결론도 그리하여 여신의 출현으로 귀결이 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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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복한 가족들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경주.김정하 옮김 / 뿔(웅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그동안 읽은 푸엔테스가, <아우라>, <의지와 운명>, 그리고 “미국은 섹스를 한다.”라고 우리말 제목을 뽑았던 <다이아나, 혹은 외로운 사냥꾼>. 네 번째 푸엔테스로 옴니버스 소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을 골랐다. 푸엔테스는, 눈에 띄면 읽는다. 파나마시티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살며 라틴 아메리카 작가가 늘 그렇듯이 중남미 아메리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 작품의 무대로 삼는데 당연히 8할이 넘게 멕시코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 내가 읽은 한도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뜻. 왜 내가 웹 서핑하다 푸엔테스만 발견하면 장바구니로 건져 올리느냐고? 당연히 재미있어서이다. <다이아나, 혹은 외로운 사냥꾼>의 작품해설을 보면,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푸엔테스 스스로가 엄청난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이 카를로스 푸엔테스이며 일인칭 시점으로 쓴 소설이기도 하다. 옴니버스 소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의 몇 작품에서도 이름은 카를로스가 아니지만 여러 명의 푸엔테스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다 작가의 체험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 생각으로 말하자면, 작가 스스로가 가족 또는 가정생활에 그리 바람직하지 못할 정도의 바람둥이라서 오히려 그런 외도 성향이 이 소설을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정도.
  소설을 읽는 재미. 이것의 상당부분은 당연히 문장에서 나온다. 세 번째 작품이 <매력 없는 사촌>인데, 아내의 사촌 언니 중에 나이 마흔이 넘겼고, 너무 못생겨서 여태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는 더 결혼할 가망이 없는 좀 불쌍한 여자 발렌티나다. 이 여인에게 한 눈에 넘어가는 미남자이자 ‘아내’의 남편이 드디어 발렌티나의 방에 들어 침대에 눕히고 키스를 퍼부으며 하는 말을 잠깐, 아니, 조금 길더라도 인용해보자. 어차피 책이 절판이니 당신이 이 글을 기억하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우선 내게 1분만 줘. 더 이상은 안 바라. 그런 다음 내게 선물로 한 시간만 줘. 그런 다음 너와 함께 밤을 보내게 해줘. 말하고 또 생각하면서 발렌티나 너의 쏘는 듯한 쓰디쓴 냄새는 나를 미치게 해. 뱀들의 밀림 같은 너의 풀어 헤친 머리 너의 경직된 얼굴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네 수녀 복장 뒤에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그렇게 완전하고 그렇게 동그란 네 벗은 몸의 아름다움, 너는 몸을 숨기기 위한 얼굴을 가졌어. 몸은 가면을 쓸 수 없어. 가면은 몸을 눈부시게 폭로해 버려. 발렌티나, 넌 그걸 알아. 얼굴을 가리지 마. 몸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얼굴, 그것이 너의 비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 감히 너의 옷을 벗기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널 상상했겠어? 네게 나를 데려온 사람은 발렌티나 네가 아니었기 때문이야. 지금부터 온 사람은 나야. 너를 발견하고 너로부터 더 이상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너의 마법에 걸린 나 헤수스 아니발,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기다리며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조용히 그렇게 인내한 너를 발견한 것 때문에. 발렌티나, 이거 알아? 진실은 나를 죽이고 있었고, 너와 나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기만이라면 그땐 거짓이 내게 삶을 주는 나의 삶이야. 나의 사랑 나의 여인 초조해하며 기다려 왔던 발렌티나 소로야, 네가 날 떨리게 하는 것을 알고 있니, 날 미치게 하는 것을, 사촌 발렌티나 널 갖게 될 때 내 안에 생기는 부드러운 야수성을? 너와 나 사이에 일어나 이것 때문에 넌 나를 미워할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네가 날 싫어하면 할수록 난 널 더욱더 사랑할 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아무것도 해명하려 들지 마. 그냥 받아들이면 돼. 너라는 자체로 나를 사로잡았어. 너는 내가 알지 못했던 기쁨이야 네 시간이 회전할 때마다 텅 비어 있던 내 영혼의 모래시계가 채워져, 발렌티나. 우리 두 사람 서로 떨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워, 나의 사랑. 날 함부로 대해 봐. 그러면 네가 나에게 아무리 상처를 줘도 너는 네가 내게 주는 행복을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네 모두를 키스하고, 발부터 머리까지 키스하면서 너를 순례할 거야. 네 인생의 처음도 마지막도 되고 싶지 않아. 유일하고 싶어. 사촌 발렌티나,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은 고질적인 사랑이야. 너의 폭로는 나를 고집쟁이 헤수스로 만들어버려. 네가 날 버린다면 난 평안 없는 날들만 맞이하겠지. 넌 내 평화이고 나의 자유, 나의 배꼽, 나의 손톱, 나의 영양분, 나의 꿈. 발렌티나, 너는 나를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양심, 의무, 신의, 습관의 짐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줘. (헥헥... 이제 문단의 한 사분의 일 썼다. 더는 못 쓰겠다.)”


  제목 그대로 행복한 가족들에 관한 열여섯 개의 스케치, 또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을 넘기면 “행복한 가족들은 모두 서로 비슷하게 닮아 있다. 그러나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 적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푸엔테스는 위에 내가 길게 인용한 사랑의 속삭임을 처사촌 언니에게 퍼부은 가족의 장남이자 회계사인 헤수스 아니발처럼 ‘가족’의 구분이 대단히 애매모호해서, 작가가 계속해서 “행복한 가족들”이라고 주장하는 가족의 구성원들이 매우 색다른 조합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행복한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서로 행복하기 위해 “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는” 모습을 보인다.
  52세에 회사로부터 명예퇴직을 당한 가장 파스토르 파간 씨에게는 대학 다니다가 도무지 학문에 뜻을 세우지 못해 중도작파하고 하필이면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 취업해 잠깐 잘 나가다가 거렁뱅이가 된 후 다시 돌아와 부모의 육아낭으로 쏙 들어온 아들 아벨 캥거루와 국내선 스튜어디스를 비롯해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역시 부모네 집 꼭대기 좁은 다락방에 박혀버린 딸 알마 캥거루와 함께 살게 된다. 파간 씨의 아내 엘비라는 젊은 시절 꽤 유망한 볼레로 가수였는데 파간 씨를 만나는 바람에 꿈을 접고 육아와 가사에 전념했으며 이제 다시 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을 먼 먼 시절을 되돌려보면서 열심히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푸엔테스는 첫 번째 작품으로 이 가족을 소개하며 행복한, 어쨌든 안정되고 행복한 가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에 길게 인용한 시사촌 언니 꼬드겨 애인으로 삼는 것이 네 번째 작품이고, 심지어 동거 40년 만에 둘 사이에 새로운 남자가 비집고 들어오는 남성 동성애 커플도 있는데, 새로운 젊은 남자에서 상대방의 젊은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니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옴니버스 소설은 읽기엔 재미있다. 그런데 일관된 뚜렷한 발자국이 없어서 정작 다 읽은 다음에는 또 별로 남는 게 없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그러나 열여섯 작품이 모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심지어 장군이 국가에 반역을 한 장남과 장남이 숨어 있는 현장을 고발한 차남 이야기 같은 것까지, 원래 출판사 [뿔>이 숱한 문학작품을 절판시키기는 했지만, 이 책의 출간 포기를 아쉽게 생각하게 만든다.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 당연히 아니면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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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집 범우문고 46
서정주 지음 / 범우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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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증. 시나 좀 못 쓰든지. 어찌 이런 절창을 세상에 떨구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서정주가 1915년생. 그의 나이 서른일 때 조선은 식민지에서 벗어난다. 조금만 더 참지 그걸 바로 눈앞에 둔 채 변절을 하다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제가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1940년대, 황순원은 평양에서 교사를 하다가 고향인 빙장리로 돌아와 은둔한 채 남몰래 조선어로 소설을 썼고, 서정주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던 김동리도 절필을 선언하고 사천의 양곡배급소에 들어가 일을 하기에 이른다. 당시 만 나이로 스물일곱 살의 미당은 일본어로, 황군에 입대해 영미 귀축 타도하기 위해 조선 젊은이의 한 목숨 깨끗하게 산화시키자고 노래를 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그를 변호하지 못하겠다. 미당의 시는 국보급이다. 하지만 국보급 시를 더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앞에서 말했듯, 시나 좀 우습게 쓰던지 하지 이리 피 끓는 절창을 세상에 부려놓고 이젠 돌아오지 않으니 이걸 어찌하리.
  미당은 특별한 시각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그의 초기 시 꽃뱀, <花蛇>에서는 ‘아름다운 배암’이 사향 박하麝香 薄荷의 뒤안길에 나타난다. 화려한 무늬의 뱀을 본 미당은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라고 영탄하고 결국은 뭇사람들의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길 /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 石油 먹은듯… 石油 먹은듯… 가쁜 숨결이야” 한 번 에로티시즘을 자극하고는 결국 “우리 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 같은 고흔 입설… 슴여라! 배암.” 한 여인의 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본다. 가수 송창식이 불러 더 유명해진 <푸르른 날>에서도 단풍은 그냥 드는 것이 아니라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하필이면 가을꽃이 필 자리에서 그만 초록이 지쳐, 초록이 이젠 지쳐서 단풍이 든단다.
  이 양반 생전에 공덕동이던가 대흥동이던가 또는 염리동인가에서 살았는데, 친구 집에 놀러가려면 댁의 낮고 긴 담을 따라가다 담을 지나치자마자 언덕빼기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 담 넘어 미당(으로 짐작되는 노인)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홍수환이 카라스키야를 때려눕히던 그날인가 싶은데 확실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미당 부부가 그리도 금슬이 좋았단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등지자 깊은 시름을 하다 곧이어 자신도 뒤를 따라 갔다는 기사를 읽고 감회에 젖었던 일이 엊그제 같다. 그게 무려 20년 전 일이다. 그는 <내 아내>라는 시를 지어 시 속에서 아내를 이렇게 그렸다.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섬천 사발의 냉숫물.


  내 襤褸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전문) * 첫 연 세 번째 줄 ‘섬천’은 ‘삼천’의 오식 같다.


  셋째 연에 등장하는 ‘피리’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피리인 것이 시집을 다 읽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모든 파란을 잠재울 수 있는 피리. 아내가 먼저 죽으면, 숨결을 달라고 해서 피리에 담겠다. 그러고 나면 피리를 불 때마다 자신의 모든 시름을 이길 수 있는 소리가 될 거라는 의미. 내가 먼저 죽으면 내 숨결이 아내의 빈 사발에 담겨 있어 냉수 한 사발을 마실 때마다 항상 냉수 냄새로 아내의 옆에 있을 수 있다니 미당은 참 운 좋은 한 세상 살다 갔다.
  나는 부모 얘기해가며 청승떠는 걸 무지하게 싫어한다. 그런데 미당의 시 <어머니> 끝 구절엔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네 꿈의 마지막 한 겹 홑이불은
  永遠과, 그리고는 어머니뿐이다.


  아니 그런가. 어머니가 “꿈의 마지막 한 겹 홑이불”이라니. 세상에 어떤 빌어먹을 시인 나부랭이가 있어서 이리 마음 저리는 한 줄 싯귀를 만들어놓고 갔는지. 이런 것들 말고도 편편이 절창이고 명시들이다. 그래 서정주가 더 미운 거다. 읽을 수도, 읽지 않을 수도 없는 시인. 그리하여 말 그대로 애증의 시인. 어쩔 수 없다. 책장 저 속에 숨겨놓고, 겉으로는 절대 서정주를 읽지 않는다고 거짓 주장을 하며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훔쳐볼 수밖에. 어떻게 이런 시를 읽지 않고 한 세월을 살 수 있겠는가 말이지.


  歸 蜀 途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三萬里.
  흰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오진 못하는 巴蜀 三萬里.


  신이나 삼어줄ㅅ걸 슲은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메투리.
  은장도 푸른날로 이냥 베혀서
  부즐없은 이머리털 엮어 드릴ㅅ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구비 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을로 가신 님아.  (전문)


 * 옥날메투리는, 신 중에서는 으뜸인 메투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신발이였느니라. 귀촉도는, 행용 우리들이 두견이라고도 하고 솟작새라고도 하고 접동새라고도 하고 子規라고도 하는 새가 귀촉도… 귀촉도… 그런 發音으로 우는 것이라고 地下에 도라간 우리들의 祖上 때부터 들어 온 데서 생긴 말슴이니라. (시인의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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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3-20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는* 참 잘 써요... 정말. 중고등학교 때 이 사람 시 읽고 느낀 센세이션이란!
정말 애증의 시인입니다. ㅎㅎ 오랜만에 봐도 또 좋군요.

Falstaff 2020-03-20 15:3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차라리 그러지나 말지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