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5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나오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대하고 있었고,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다. 이런 책을 위하여 우리는 기꺼이 ‘명작’이란 호칭을 부여하고는 한다.
  그러나 독후감을 쓰기는 쉽지 않을 터. 서술이 방대하고 소설 안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각기 긴밀하게 연결, 변화하여 선으로든지 악으로든지 특별한 행위로 전위, 확장되기 때문에 책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하기는 뭐, 어떤 책이든지 독자는 정확하게 읽을 수도 없고 그렇게 읽을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책의 주인공 ‘아벨 티포주’는 보베 시에 있는 생크리스토프 중학교에서 가장 왜소한 체격과 비사교적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 제일 약한 아이들마저 지배하고 모욕할 수 있는 놀림감 신세의 소년시절을 보냈으나 약 20년이 지난 지금, 1938년부터 39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무척 큰 키인 191cm에 110kg의 건장한 체격과 엄청난 힘을 가진, 파리 포르트데테른 광장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의 사장이다. 그러나 거의 서진書鎭만큼 두꺼운 안경을 써야 사물의 식별이 가능한 급성 근시와, 성기왜소증을 피할 수 없는 팔자이기도 하다.
  티포주가 스무 살 때, 키는 지금과 같은 191cm이었지만 몸무게는 68kg밖에 나가지 않아 지독한 근시와 더불어 징집대상으로 할 것인가를 군의관들이 오래 토의한 끝에 결국 사격을 할 필요가 없는 통신대로 배치를 시킨 적이 있을 정도였다. 군복무 후에 갑자기 엄청난 식욕을 감당할 수 없어 하루에 2kg의 날고기와 5 리터의 우유를 들이키기 시작해 지금의 덩치와 완력과 근육을 갖게 되었는데, 자신이 고기, 신선한 피와 살을 좋아하는 식인귀 스타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됐을까?
  첫 번째 장 “아벨 티포주의 불길한 기록”은 1938년 초부터 39년 9월 3일까지 티포주가 왼 손으로 쓴 일기로, 위에서 말한 현재 시점과 20년 전 보베의 생크리스토프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교차하여 묘사하고 있다. 남자 기숙 중학교. 16세까지 다니고 이후 대입자격시험의 합격률을 올리기 위해 시험에 떨어질 것이 뻔한 학생들은 시험 전에 퇴학시키는 걸로 악명이 높은 이 학교 학창 시절의 아벨. 여성들은 모를 것 같다. 소년들만 모인 기숙학교라는 정글, 그것도 도망할 곳이 없는 폐쇄공간으로 이루어진 야만의 큐빅 공간.
  이 학교에 파리에서 전학생이 온다. 펠스네르. 튼튼한 체력과 우직한 성격을 가져, 학급의 특별한 서열로 단번에 올라간 건 당연하다. 당시에 문신이 유행했단다. 그래 아벨이 펠스네르에게 제의하기를 허벅지 안쪽 부드러운 살에 “이 생명을 당신에게 A toi pour la vie"라고 새겨주겠다고 해놓고 ”A T pour la vie"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내 생명을 A T에게” A T는 당연히 ‘아벨 티포주.’ 이후 아벨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 도중에 페스네르가 무릎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많이 흘리는 상태가 됐고, 페스네르는 티포주를 지목해서 흐르는 피를 혀로 핥으라고 명령을 해 진흙이 묻은 종아리부터 혀를 내밀다가 결국 벌어진 발간 속살에서 흐르는 피를 핥기 위해 입술을 상처부위에 밀착시켰고, 조금 후 기절해버리고 만다. 왜 기절했을까. 아벨 자신도 몰랐다. 책을 500페이지 가까이 읽어야 아벨 티포주가 까무러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책에서 벌이지는 많은 사건들이 특유의 연관성과 확장과 변위를 거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아벨 티포주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역시 같은 학교 동급생으로 학교 수위의 외동아들. 괴물 같고, 천재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에 비만증에 걸린 엄청난 뚱보로 거의 무제한 적 완력과 힘을 가진 인물인 네스토르.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들까지 네스토르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이의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은 압도하는 분위기. 네스토르가 아벨 티포주에게 접근해 ‘나의 아벨’이란 뜻인 ‘마벨’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하면서 학교 내 아벨의 위상은 높아지고 아무도 아벨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네스토르의 진가는 기호와 기호해석에 있다. 나중에야 기호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절대적 독재 권력자의 중대 관심사인 것을 아벨이 알게 되기는 하지만. 네스토르로 인하여 아벨은 왼손 손 글씨를 익히게 되고 문제의 “불길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된다. 아벨의 거대한 덩치와 완력과 급성근시와 성기왜소증도 네스토르로부터 전위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당연히 네스토르와의 연결끈도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생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라는 성인은 강을 건네주는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이이 앞에 예수라는 어린이가 나타나 자신이 예수이며 무동을 태우고 강을 건너달라고 했단다. 그래 크리스토프는 예수라고 주장하는 어린이를 어깨에 올리고 강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는데 어린이의 무게가 갈수록 마치 태산을 짊어진 것 같았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해 강은 건네주니 예수가 하는 말이 지팡이를 땅에 꽂아 내일 꽃이 피면 내가 예수임을 알 것이다, 했고, 다음날 정말 땅에 꽂아놓은 지팡이에서 꽃이 피어 있어 어제의 어린아이가 예수임을 알았다는 성인聖人 우화.
  아벨 티포주는 생긴 것이야 누백 년 동안 이탄층의 옷을 입고 이탄층에서 살며 아이를 망토에 숨겨 유괴하는 마왕의 모습일지언정, 약한 아이를 품에 안아 보살피면서 황홀감을 맛보는 종류의 인간이다. 물론 성격이 좀 이상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리하여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누명을 뒤집어써서 중죄재판소에서 넘겨져 20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을 틀림없이 받을 찰라, 2차 세계대전을 앞둔 프랑스는 전국에 동원령을 내리고 1차 소집 대상인 아벨 티포주는 형벌 대신 입대하게 된다.
  이어서 소설은 본격적인 무대로 옮아가니 1939년부터 종전까지. 프랑스 군에 입대해 곧바로 포로가 되어 독일 북부, 예전의 동프로이센 지역의 수용소에 수감, 자연스럽게 독일과 독일군에 흡수되어 포로 신분으로 로민텐하이데 자연보호구역에서 일하다가 이후 열 살 이상의 소년병을 양성하는 군사교육기관인 나폴라에서 거대한 말을 타고 주변지역의 아이들을 수집하는 일을 하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애초부터 제대로 스토리를 소개하기가 어려운 복잡다단한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으며, 이야기의 큰 줄거리보다는 세부적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훨씬 더 놀라운 작품이다.
  책의 광고문구에 “<양철북>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쟁소설”이라고 씌어있어 틀림없이 과장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광고문구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쓴 2차 세계대전 소설 가운데 이만한 작품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분명 명작. 거기다가 재미도 있다. 이 독후감을 보신 분들은 다음번에 읽을 책 목록에 올려보심이 어떤지 제안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내가 돈 도로 돌려드린다. 물론 농담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직 토이숍
안젤라 카터 지음, 이영아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세 번째 읽은 앤젤라 Y. 카터. 이름을 다 풀어서 쓰면, 앤젤라 ‘엽기’ 카터. <피로 물든 방>에서 푸른 수염의 성castle을 봤었는데, 또다시 <매직 토이숍>에서 등장한 필립 플라워 씨라는 이름의 푸른 수염은 “필립 플라워의 진기한 장난감”이라는 간판을 단 장난감 가게 건물, 1층은 완전히 수공업에 의지하여 플라워 씨가 만든 고전적이고 비싼 장난감을 파는 상점이고, 2층과 3층은 플라워 가족과 처가 식구인 아일랜드 사람들인 자울 형제, 그리고 나중에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누이의 남매들이 묵을, 이른바 도시 중산층용 주택의, 거대한 몸집과 완력의 주인이다.
  이 책을 예전에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멜라니>라는 제목으로 판매했다. 그러니 먼저 주인공 멜러니를 소개하기로 하자. 우리나라로 치면 중3, 열다섯 살이 되자 멜러니는 자신의 몸이 피와 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한다. 가끔 옷을 모두 벗고 자기 방에 달린 전신거울에 몇 시간 씩 자기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데이지 꽃을 꽂아보기도 하고, 조금씩 변하고 있는 몸을 더듬어보기도 하면서, 쥴리엣은 열네 살에 로미오와 격정적인 사랑을 했거늘 어찌 나는 열다섯이 되도록 비슷한 연애 경험이 없을까 한숨을 쉬는 본격적 사춘기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혼인과 성에 관한 농밀한 관심과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 해 여름에는 유명작가인 아빠가 엄마와 함께 미국 전역을 순회강연을 하느라 집에는 뚱뚱하고 늙고 못생겼으며 결혼해본 적이 없지만 처녀는 아닌 넉넉한 마음씨의 가정부 런들 부인과 범선 모형 제작에 인생을 건 것처럼 보이는 동생 조너선, 이제 유아 단계를 간신히 벗어난 빅토리아, 그리고 맏이 멜러니, 이렇게 네 명만 머물고 있는 중이다. 집에 어른이 없으니 아이들 간덩이가 조금씩 부을 수밖에. 결혼. 이것에 관한 호기심이 돋은 멜러니는 자연스럽게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떠올리게 되고, 엄마가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가 생각나서 어느 날 밤 부모 방에 들어가 침대를 내려다보며 부부생활을 하는 부모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으나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장롱 속 선반에서 엄마의 옷상자에 든 화관과 드레스를 기어이 꺼내 입어본다. 참 이상도 하지. 사람들은 왜 오직 처녀성을 잃어버리기 위해서일 뿐인데 이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일까.
  터무니없이 거추장스러운 화관과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처음엔 그저 나쁘지 않았다가 차츰 드레스 속의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허파에 바람이 들어버린 멜러니는 드레스를 입은 채 정원에 나가고 싶어진다. 늦은 여름밤, 엄마의 고급 공단 드레스를 입은 모습의 멜러니. 그러나 자동 현관문은 멜러니 뒤에서 저절로 철커덕, 잠겨버린 것을 잊고 때마침 환하게 땅을 비추고 있는 둥근 달, 조용한 새소리, 고요한 공기, 향기 나는 꽃의 숨결에 취한 듯 맴을 돌다가, 갑자기, 풀더미 속에서 런들 부인이 키우는 고양이가 부스럭거리며 도망가는 검은 형체와 소리에 화들짝 놀랐고, 이것을 시작으로 등을 따라, 팔뚝을 따라 자잘한 소름이 쪽 끼쳤으며 말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이고 만다.
  이제야 현관문이 잠긴 것을 안 멜러니는 집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모르고 잠에 떨어진 런들 부인을 깨우기 위해 돌을 던져 부인 방의 창문을 깨버리든지, 아니면 어렸을 때 몇 번 해봤듯이 사과나무를 타고 열어놓은 이층 자기 방 창문으로 들어가는 방법만 있을 뿐이었다. 생각을 해보자. 맨발은 벌써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의 뾰족한 돌에 찔려 피가 나기 시작하는데, 말이 공단이지 이게 고급 비단을 뜻하는 건데 눈처럼 흰 비단 드레스를 입은 채 거친 가지도 많고 풋사과까지 많이 달린 나무를 타고 이층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말이 되나? 거기다가 도망갔던 고양이까지 다시 나타나 자기 몸을 문지르다가 날선 손톱으로 드레스를 건드리는 바람에 죽 찢어지기까지 한 것을 입고. 그래도 워낙 밤의 공포에 질린 멜러니는 기어이 나무에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도저히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나뭇가지 위에서 옷과 화관을 벗어 창문을 향해 던져버렸는데, 드레스는 제대로 들어갔으나 긴 꼬리가 달린 화관은 사과나무 꼭대기로 휘익 날아가 길게 걸쳐지고 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옷의 중요한 용도 가운데 하나는 몸을 보호하는 것인데 이제 나신이 된 상태에서 나무를 타려니 온몸이 까지고 찔리고 긁혀 엉망진창이 된 채 겨우 방에 들어가게 된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드레스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피가 묻어 있고(처녀성을 잃기 위해서 흰 드레스를 입는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더렵혀지고 찢어진 상태. 가뜩이나 머릿속이 황황한 찰나에 때맞추어 엄마 아빠가 있는 미국에서 전보가 한 장 도착한다. 무슨 전보일까. 멜러니는 전보의 내용도 모른 채, 전보를 통째로 이로 물고 생각한다. 내 잘못이야. 내가 엄마 드레스를 입어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엄마 드레스를 망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화장실에 가서 배 속의 것들을 다 게워내고 여전히 전보를 이 사이에 문 채 자기 방에 걸려 있는 전신거울을 산산이 부셔버린다. 눈에 띄는 거의 모든 것, 자기 힘으로 가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다 던져버리고 망가뜨려버린 멜러니는 이어서 부모 침실로 가서 먼저 결혼식 사진이 든 액자를 깨고 혼인사진을 짝짝 찢어발긴 후 역시 난장판을 만들어버린다.
  저녁 식사 시간에 이르러서야 런들 부인이 시간이 지나서도 밥 먹으러 내려오지 않는 멜러니를 찾아 이층으로 올라, 난장판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로 물고 있는 전보를 가지고 내려와 벽난로에 기대 돋보기를 찾아 귀에 걸고 읽어보고는, 남동생 조너선에게 누나가 몸이 좋지 않으니 의사를 불러오라고 시킨 다음 고기 한 조각을 천천히 씹어 삼킨 후, 자신의 고양이에게 말한다. 너랑 나랑 이제 새 집을 찾아야겠구나, 야옹아.
  엄마, 아빠는 오하이오 주에 있는 사막에서 관광용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시신조차 추렴하지 못하는 상태로 전원이 사망한 사건 속의 두 명이 되고, 이제 엄마, 아빠라는 호칭 대신 어머니, 아버지라 불리게 됐으며, 순서대로 멜러니, 조너선, 빅토리아, 삼남매는 남부 런던의 쇠락한 변두리에 음산하게 자리 잡은 필립 플라워라는 이름의 외삼촌이자 푸른 수염이 사는 성의 입주자가 된다. 이렇게 멜러니의 소녀시대는 종막을 고한다.
  푸른 수염의 성에서 벌어지는 앤젤라 카터 식 엽기발랄한 고딕 사건들, 붉은 머리를 한 아일랜드인 세 명과 거대한 몸집의 푸른 수염, 그리고 여기에 가세한 전형적인 잉글랜드 삼남매의 아슬아슬한 동거에 관해서는, 안 알려줌. 역시 앤절라 카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금열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구판) 4
나탈리 사로트 지음, 남수인 옮김 / 열림원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나탈리 사로트라면 1950년대 누보로망의 기수로 알고 있었는데, 책의 앞날개를 보니 “이제는 그와 같은 분류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는 독자적인 시학을 가진 세계적인 대가로 평가되고 있다.”고 쓰여 있다. 책의 한국어 초판이 2002년. 사로트는 1900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1999년까지 살았다. 그러니까 러시아 출생에, 프랑스에서 살면서 파리 문과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옥스퍼드에서 수학한데다가 1921~22년엔 베를린에서 역사와 사회학을 수강하며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 학사 자격증을 획득했단다. 이 정도면 언어에 수재가 있다고 봐야 하겠다. 어떤 이유로 사로트를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는지 벌써 잊었다. 이번에 사로트를 두 권 장만해서 1963년에 출간한 <황금열매>를 먼저 읽고 며칠 후에 83년, 작가의 나이 여든세 살에 출간한 <어린 시절>을 읽을 예정이다.
  먼저 <황금열매>를 읽었다. 1963년 작품이면 이이가 누보로망의 간판을 달고 활동할 때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듯하다. 당연히 책은 읽기 쉽지 않다. 나도 첫 페이지를 열고 읽어나가긴 했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근 50쪽까지 진도를 빼며, 읽어나가다 보면 저절로 스토리를 알 수 있겠지 싶었는데, 천만의 말씀.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이하동문일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들었다. 이럴 때 해결방법의 하나, 최후의 방법이기도 하고. 조금 쪽팔리지만 어쩔 수 없다. 책의 제일 뒤편, 해설을 조금 읽어보는 것이다. 그래 역자해설 세 페이지를 읽고 다시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두 번째로 읽었더니, 거봐라, 쪽팔린 건 순간이고 재미있는 건 적어도 며칠은 간다.
  첫 장면에 <세상의 기원>으로 유명한 화가 쿠르베의 전시회를 나서는 커플이 등장한다. (<세상의 기원>은 네이버 이미지 검색에는 나오지만 구글 이미지에선 19금 처리해서 보기 힘들다. 세상에 야만스런 구글 같으니라고. 교양과목을 말이지.) 누군가가 쿠르베의 복제화가 그려진 그림엽서를 건네자 남자는 엽서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고 여자에게 건넨다. 엽서를 준 인물은 당연히 기분이 나빠 남자를 째려보고, 민망해진 여자는 남자의 에티켓 없는 태도에 불만을 표시한다. 알고 보니 남자는 며칠 전 관객이 뜸한 평일을 골라 쿠르베 전에 다녀왔단다. 이때 하필이면 신문에 미술평론을 쓰는 ‘뒤뤼’라는 작자와 마주쳤는데 입에 침을 튀며 “대단한 전시회예요. 모두 걸작이더군요. 특히 <개의 두상>이 끝내줬어요.”라고 허풍을 떨었단다. 그러면서 평론가들의 몇 가지 모습, 형편없는 졸작을 끝없이 치켜세우는 벨록, 콩과 팥을 구별 봇하고 언제나 터무니없는 평론을 써 갈겨대는 마자유 등을 거론하며 이런 짓은 영화, 연극, 소설, 연주회, 전시회가 다 마찬가지라고 23쪽까지 떠들어댄다.
  그럼 <황금열매>라는 그림이 나오느냐고? 아니다. 브레이에라는 사람이 쓴 <황금열매>라는 길지 않은 소설이 진짜 주인공, 主人公? 사람이 아니니까 주물공主物公 혹은 주작품공主作品公 정도 되겠구나. 작품은 ‘황금열매’라는 소설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한 사이클을 그린다.
  처음에는 “그런데 저.... 황금열매 읽어보셨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가 만나는 사람마다 반드시 물어봐야 하는 지식인들의 필수 대화소재가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간혹 극소수 조심스레 “황금열매가, 글쎄요, 난 별로인데요. 온통 그 얘기뿐이기는 하지만 말이지요.”라고 솔직하고도 용기 있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훌륭하다. 우리 문학에서 그에 비견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탕달 이후로, 뱅자맹 콩스탕 이후에 쓰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브륄레가 신문에 기고한 이후에 감히 ‘황금열매’에 대해 저항하는 분위기는 단번에 분쇄되어 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르그리 박사가 ‘황금열매’의 구성에 약간의 결함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박사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발현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건 “언어가 고전적인 것 같지 않고, 복잡하고 바로크적이고 무겁고 때로는 어색하기까지 하며 기본적으로 어려운 책이지만, 현대성 때문에 작품은 마음에 든다.”는 수준에서 멈춘다.
  책 ‘황금열매’를 처음에 사람들이 규정하기를, 속된 말들에 실려 가는 모든 것들, 예컨대 ① 물컹한 것, 흐리멍덩한 것, 줄줄 흐르는 것, 끈적이는 것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② 요란한 웃음, 이글거리는 눈초리, 흥분된 몸짓, 땀에 젖은 손 같은 것 없이, 품격 있는 조심성, 더없이 우아한 정중함, 수줍음, 당당한 자부심으로 충만하다는 거였다.
  이러던 것이 조금 더 시간이 가면 오랜 친구들끼리 비밀리에 속삭이기 시작하기를,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사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황금열매’가 과즙이 풍부한 과육을 기대하는데 씹기만 하면 이를 부러뜨리는 금속 열매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들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들의 눈과 미소에는 호의, 공모성, 친밀감, 감탄이 동반되는 건 당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열매’가 아주 멋진 책이라는 판결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어느 날 누군가가 감히 큰 소리로 말을 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옆에 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근데 이거 모조품 같은데요, 그렇죠?”라고 의문을 표시하기에 이른다.
  정말 브레이에가 누구를 차용해서 ‘황금열매’를 썼을까, 아니면 작가가 창조해낸 작품을 평론가와 독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헤쳐보고 해부하고 심지어 발기발기 찢어 뒤져본 후에 이 부분은 틀림없이 셰익스피어야, 여긴 토마스 만인데? 근데 브레이에가 독일어는 할 줄 알아? 프랑스어 판이 나왔잖아, 아냐, 조이스를 참고한 것이 분명해. 등등의 숱한 뒷이야기들. 그 후에 이 책은 어떻게 됐을까? 그것까지는 독후감에서 얘기해주지 못하겠다. 괜찮은 책이니 직접 읽어보시고 알아내시라. 근데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으니 각오는 하시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임스 서버 - 윈십 부부의 결별 외 35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9
제임스 서버 지음, 오세원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흥미롭게 읽고 제임스 서버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책의 앞날개를 보면 마크 트웨인을 잇는 20세기 미국 최고의 유머작가라고 소개한다. 짧은 소개 글을 봐도 이이의 인생 자체가 유머....라기보다는 우화 같다. 세 형제 가운데 둘째였는데 일곱 살 때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활 쏘는 장난을 하다가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아 그 자리에서 실명을 한다. 이 일을 기점으로 서버는 우울한 소년기를 맞이하게 되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해 혼자 그림을 끼적인 것이 나중에 괜찮은 삽화가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단다.
  그리하여 이 단편집 《제임스 서버》에 실린 서른여섯 편의 작품엔 소설책에서는 드물게도 작가 자신이 그린 삽화가 꽤 많이 들어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근데 위의 문단에서 서버를 가리켜 ‘유머작가’라고도 하고 ‘우울한 소년기’라고도 했다. 서버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을 하고 나중에 뉴욕에서 산 모양이다. 이 단편집의 무대 역시 콜럼버스와 뉴욕이 대부분. 거의 모든 작품이 조금 특별한 인물을 관찰한 기록이다. 특별? 그게 아니면 적어도 기이한 사람들. 주인공이거나 화자 ‘나’가 관찰한 등장인물은 대부분 뭔가가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기이함, 책을 읽는 독자와의 다름을 서버는 유머로 치환시켜 놓지 않았나 싶다.
  첫 작품 <에마 인치, 떠나다>는 메사추세스 케이프코드 연안의 고급한 휴양 섬 마서스비니어드로 휴가를 떠나는 부부가 그곳에 있을 동안 요리사로 에마 인치 여사를 고용을 하고, 고용계약을 해지할 때까지의 이야기다. 겉으로 보면 호리호리한 몸매를 한, 기억에 특별히 남을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중년 여인이지만, 인치 여사가 커다란 갈색가방을 들고 열일곱 살 먹은 보스턴 불테리어 종인 늙어 죽기 직전의 개 ‘필리’를 안고 도착한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보니, 요리사는 모든 이동을 자신의 두 발을 이용한 도보를 통하지 않으면 매우 불안해하며, 언제 죽을지 모를 늙은 필리를 안거나 걸리거나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는 강박증 증세가 있는 여인이다.
  두 번째 작품 <토파즈 커프스단추 미스터리>의 주제는 놀랍게도, 고양이의 눈동자는 늦은 밤에 번쩍번쩍 빛나는데 왜 사람 눈은 그렇지 않을까,에서 시작한 부부간의 일상적인 다툼이 남편으로 하여금 고양이 눈과 같은 높이를 하게하고, 즉 네 발로 엎드려 있게 만든 다음 차 전조등을 비치는 실험을 야밤에, 진짜 도로에서, 부인께서는 한 방울의 알코올도 흡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생각해보시라 자정이 넘은 시간 깜깜한 밤에 남자가 네 발로 아스팔트 위에 엎드려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순찰 중이던 경찰관들이 발견하자, 변명을 하기를 길 위에 토파즈로 만든 커프스단추를 떨어뜨렸다고 둘러댄다는 이야기다.
  서버가 만든 가장 유명한 우스갯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음식은 웨딩 케이크”라는 말이 있단다. 당연히 결혼을 경험한 남자들, 아니다, 여자들도 포함한 (거의)모든 결혼 경험이 있는 인류들은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하겠지만 서버는 유독 힘겨운 첫 번째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작품 속에 유별나게 드센 여자와 소심한 남자 커플이 많다고 역시 책 앞날개에 씌어 있는 바, <토파즈 커프스단추 미스터리>가 처음 읽을 수 있는 그런 류의 작품이다.
  단편소설이라고는 하나 단편이라기보다 콩트 수준에 어울릴 분량의 작품이 많아서 더 이상 책의 내용을 밝히기는 좀 면구한 느낌이 들어 그만두겠으나, 편편이 말 그대로 유머 또는 가벼운 고소를 흘릴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고, 가끔은 (역시 유머 코드를 그대로 포함한 채)생각지도 않게 굵직하게 각 시대의 ‘웃긴 모습’,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역적으로 웃기고 있는 장면을 포착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생각날 때마다 한 편씩 읽어도 좋고, 나처럼 연이어 한 권을 몽땅 읽어도 괜찮겠다. 서양, 특히 미국식 유머이기는 하지만 100년 전에 쓴 작품도 있어서 이젠 극동의 독자가 읽어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유머코드이며, 그러기 때문이겠지만 배를 잡고 웃어야 하는 장면은 없다. 이이의 삽화를 보기만 해도, 아,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구나, 하실 수 있을 것.
  근데, 당신이 미국인이라고 가정하고, 당신은 그레타 가르보가 좋은가 아니면 도널드 덕이 더 좋은가? 왜 묻느냐고? 그거야 책을 읽어보시면 알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4-10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반쯤 읽다가 말았는데, 우울한 유머 작가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웃기려고 읽었는데, 웃기기보다는 우울해져서 걍 책을 살포시 내려놓은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남은 절반을 다시 읽어야겠어요!

Falstaff 2020-04-10 11:59   좋아요 0 | URL
예. 어느 하나 개운하게 웃기고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꼭 뒷맛이 떱떠름하니... ㅋㅋ

CREBBP 2020-04-1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반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무슨 새 소리 강박증 생기는 얘기가 인상깊었어요.^^

Falstaff 2020-04-13 12:32   좋아요 0 | URL
기묘하게 분명 희극인데 뭔가 캥기는 게 꼭 들어 있어서 편하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의식 속의 별의 별 것들을 다 나열했더라고요. 하여간 흥미있는 작가였습니다. ^^
 
고향 - 이기영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0
이기영 지음, 이상경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0년대에 중등교육을 마친 나는 이기영이란 작가의 이름을 그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 유행하던 카프 문학에 종사한 인물, 이 정도로만 알았다. 예비고사, 본고사에 카프 문학에 대한 문제는 절대로 나오지 않으니 사실 이름마저 거의 잊고 지내다 이번에야 읽어봤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노동쟁의와 소작쟁의를 다룬 <고향>이 문제제기의 범위와 해결 방법에 다양한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자본주의의 변화 속에서 몰락해가는 대부분의 농민계급과, 재빨리 신문물의 흐름에 편승해 단번에 상위계급으로 상승하는 일부 자본가를 그리는 리얼리즘적 성취가 매우 놀라운 수준이라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됐다. 이런 작품과 작가가 단지 휴전선을 넘었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경험한)국어시간 현대문학사 강講에서 소홀히 지나쳤다는 건 대단히 큰 손실이었던 것 아니었겠나 싶었다. 적어도 내가 읽기로는, 이기영의 3년 선배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을 쓴 이광수의 어떤 작품보다 <고향>이 더 낫다.
  <고향> 첫머리는 김희준이라는 양반 찌끄레기가 5년간의 동경유학을 마치고 고향 원터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이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열네 살, 말이 열네 살이지 만으로 열 셋도 되지 않아 할머니 회갑을 맞아 두 살이 더 많은 복임이한테 싫은데도 억지로 장가를 들었다. 큰누이 같고 못생긴 아내하고는 정 없이 살다가 도무지 버틸 수가 없어서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을 했던 터. 그래도 그냥 내빼지는 못했던지 5년 만에 집에 와보니, 이런, 네 살 먹은 아들 정식이가 있어 생전 처음으로 한 번 안아 보았던 것.
  실제의 이기영을 보자면, 나이 열네 살을 먹어 조모의 회갑을 더욱 경사롭게 만들기 위해 열여덟 살 처녀 조병기와 결혼하고 기영이 혼인하느라 쌓인 빚에 가세가 쪼들려 다니던 학교를 중도 퇴학하기에 이른다. 이 혼인을 아내 조병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열여덟 먹은 처녀에게 열네 살 소년이 서방이라고? 아이고 이를 어째. 거기다가 보통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 머리통을 밀어 발간 중대가리일 테고, 첫날밤은커녕 오줌이나 안 쌌으면 다행이라 생각했을 터. 하여간 이기영은 어찌어찌 변통을 해서 학교를 다시 다녔는지 소학교를 졸업하고 반 년 간 잠업강습소에 다녔다 하며, 이이의 고향인 충남 아산군 배방면 인근에 동방방적이라는 방적회사가 있어서 (지금은 없어졌다. 이후 아산과 천안 인근의 가장 큰 규모의 ‘동방마트’를 거쳐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나중에 노동쟁의가 벌어지는 장소를 인조견 생산 공장으로 특정하지는 않았을까 싶다. 주인공 김희준 속에서 다양한 이기영의 모습을 발견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하다.
  김희준은 5년간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도시에서 하다못해 펜대 잡고 월급 받는 일을 하지 않고 대신 농촌 현장에 들어가 스스로 소작농이 됨으로써 농민들을 의식화시키고 이들이 지주와 마름에게 타당한 권리를 요구하게 만든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건, 그렇다고 농민, 소작인들이 김희준의 뜻에 맞을 정도로 의식화되느냐 하면 그게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 이 부분이 러시아 작가들, 한 번 마음먹었다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죽음과 고문 따위도 겁내지 않고 오직 투쟁과 혁명의 선두에 서길 마다하지 않는 막심 고리키,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 지난주에 읽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작품 속의 영웅적 투사들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이기영이 만든 대부분의 소작인들은 쟁의 중에도 자그마한 이득을 위해 같은 소작인들끼리 주먹질하고, 혹시 소작이 떼인다든지 하는 일신상 불이익이 닥치지는 않을까 불안해한다. 배고파 우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못해 쟁의규약을 충분히 어길 수도 있는 선 위에서 갈팡질팡하여 이의 해결을 위해 쟁의 지도자 김희준은 기적 같은 행운과 만나야 한다. 그러다 결국 쟁의를 승리로 이끌게 하는 무기는 큰 희생을 담보로 한 지주 또는 지주의 대역인 마름과의 투쟁이 아니라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지주의 사생활과 연관된 불명예로 협박하는 것이다.
  이 내용을 고리키나 오스트롭스키가 썼다면 소작인들은 차돌처럼 단단하게 단결하여 죽창을 들고 마름의 집에 쳐들어가 눈에 보이는 족족 무릎을 꿇리고 승리를 얻어낸 다음, 장검과 소총으로 무장한 동네 헌병한테 전부 총 맞아 죽었을 거다. 고리키, 오스트롭스키를 폄하하는 뜻이 아니다. 러시아나 식민지 조선이나 당시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들이 당면했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농민을 계몽하는 것이었으리라. 러시아 작가들은 계몽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접근방식이 과하게 혁명적이라서 오히려 비과학적일 정도로 리얼하지 않았던 반면에 이기영은 보다 실제적이라 리얼하기는 하지만 덜 교화적이라는 건데, 이제 세월이 지나 이기영의 작품이 더 나아 보인다는 뜻 정도.
  계몽의 정도도 이광수의 <흙>에서 보는 무결점의 허숭과 비교하면 김희준은 사회운동의 뜻을 실천으로 옮기는 실천가이기는 하지만 못생기고 자기보다 두 살이 많아 도무지 여자 같아 보이지는 않는 아내를 두고 읍내에서 술집을 하는 과부의 막내딸 음전이의 덜퍽진 엉덩이가 눈에 꽂혀 허리를 한 번 부르르 떨기도 하고, 어린 시절 감꽃을 따 소꿉장난을 하던 갑숙이,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자신의 진정한 적수인 민참판댁 마름인 안승학의 맏딸을 여전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사람 냄새가 난다. 등장인물들한테.
  다만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부자인 민참판댁 마름 안승학과 읍내에서 포목, 잡화상에 고리대금까지 하는 권상철 두 명은 개전의 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악질로 묘사했다. 하긴, 정의의 사회주의자의 이름으로 무찔러야 할 상대가 조금이라도 선한 면이 있으면 그들의 투쟁이 타당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어서이기는 하겠지만.
  아쉬운 점을 조금만 더 들자면, 1930년대 당시 장편소설은 대개 신문연재를 하는 편이었고, <고향>역시 1933년부터 약 일 년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했기 때문에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 그리하여 소작인 거개가 문맹이라 그랬던지 소작쟁의는 그나마 자유롭게 쓸 수 있었겠지만 노동쟁의 부분은 며칠 연재분량을 통째로 편집 당해 어떻게 전개가 됐고 승리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고향>은 거의 완전히 조선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풀린다. 이것 역시 검열 때문이겠지만 ‘개명’을 수반하는 식민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 또한 크게 우회하여 설명할 뿐 (검열을 당해 삭제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직접적인 반反식민, 그게 불가능했다면 우회적인 반反식민적인 메시지도 전혀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 심지어 5년간 일본 유학을 한 김희준이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한 경호더러 방으로 들어오라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하이리나사이.おはいりなさい.”
  이외에도 무수한 일어 표현이 등장하는데, 자꾸 이이를 비교해서 유감이긴 하나, 일어 표현이 이광수보다 더 잦다.
  <고향>은 위에서 이야기한 아쉬운 한계, 또는 문제점이 있음에도 내가 읽어본 우리나라의 현대 고전 가운데 제일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으로 꼽을 수 있겠다. 이런 책을 이제야 읽다니 참으로 만시지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뜻이 있으면 한 번 읽어보시라고 작품의 스토리는 거의 다 숨겼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4-09 1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작품 읽고 염상섭의 그 지루한 <삼대>보다도 훨씬 잘 쓰인 작품인데,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지요. 아마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이기영이 월북한 인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Falstaff 2020-04-09 11:09   좋아요 2 | URL
그죠, 그죠? 이 책 괜찮지요?
월북에다가 이광수처럼 북송 도중 죽지도 않고 기어이 영웅 칭호까지 받아 특별한 묘역에 묻혔을 정도니 남쪽 사람들이 읽기를 허락하지 못했겠지요.
근데 이기영의 본처가 낳은 맏아들의 자손들이 아직 아산에서 살고 있다는데 살면서 무슨 불이익 같은 건 안 받았는지, 참 안쓰럽습니다. 받았을 것 같아서요.

유부만두 2020-04-09 15:27   좋아요 1 | URL
아... 전 삼대 재밌게 읽었는데요;;; 주말 드라마랑 도스토예프스키 저리 가라다 했는데 이기영 작품은 또 얼마나 대단한 걸까요!
그나저나 삼대 그 불륜 치정 내용이 고등학교 필독서 였으니 참...

유부만두 2020-04-09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석영이 엮은 한국단편선에 이기영의 북측 가족을 만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남의 가족은 고초를 겪다 조용히 생을 마쳤다고 나오고요.

Falstaff 2020-04-09 15:49   좋아요 1 | URL
예. 이기영의 북쪽 가족은 월북해서 만난 여자가 아니라 네 살 위 아내 조병기하고 도무지 살 수 없어 서울에서 동거하던 신여성 사이에서 생긴 가족이라 하더군요.
아마 거기 태생 아들(인가 손자)이 좀 높은 공무원 계급으로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근데 북한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 죽을 때까지 김일성 찬양 같은 것만 써야 했으니 작가로서는 행복하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