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의 판도라 세계문학의 천재들 8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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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오해를 했던 것 같다. 출판사에 대해서. 도서출판 들녘. 이 회사가 지난 세기부터 좋은 사회과학 책을 많이 찍은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줄 착각을 했나보다. 그래 이 회사에서 낸 소설책, 그것도 530쪽이 넘는 장편소설 <콩고의 판도라>를 냈다면 벨기에,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세계가 20세기 초까지 콩고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가장 악랄한 악행을 기록한 책인 것으로 짐작했다. 근대사에서 가장 포악했던 식민통치자로 이름을 올린 레오폴드 2세, 천연고무의 생산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1차로 손목을 자르고, 그래도 달성하지 못하면 팔을 자르고, 마지막 3차까지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목을 잘라버렸던 진정한 흡혈황제. 3천만 명의 콩고 인구를 9백만으로 줄어들게 만든 이 극악한 벨기에 통치시절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을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던 거였다. 그래 <콩고의 판도라>라는 제목을 단 장편소설이 진보적 출판사라고 ‘착각하고 있던 곳’에서 나왔다니 어찌 한시인들 머뭇댈 수 있었을까. 이 심정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1965년에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이 (내가 좋아하는 학문인) 문화인류학자이며 작가라고 한다. 게다가 2000년에 아프리카 독재자들을 그린 풍자 수필을 낸 적이 있다고 하니, 기대는 더욱 커져만 갔다. (여전히 들녘을 진보적 인문학서적 전문 출판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이 책이 놀랍게도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라는 이름의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란 거. 말 하면 뭐하나.
  책은 1974년에서 78년까지의 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토머스 톰슨이라는 이름의 여든 살이 넘은 노 작가가 60년 전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콩고.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전 국토를 합한 광활한 대지를 상상하라. 그리고 그곳을 온통 6~60미터 높이의 나무들이 뒤덮고 있는 광경을 떠올려라.”


  1914년 여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 이때 화자 ‘나’, 토머스 톰슨은 국가가 운영하는 보육원을 나온 열아홉 살의 반쪽 천식환자, 반쪽 평화주의자, 반쪽 작가였단다. ‘반쪽 작가’라는 건 자기 이름으로 글을 써 출간하지 못하고, 지금은 잊힌 존재지만 당시엔 대단한 성가를 누리던 대중문학의 선구자 루서 플래그 박사가 건네준 지침에 따라 80쪽 분량의 후딱 읽히는 소설을 루서 플래그 박사의 이름으로 대필해주고 푼돈이나 얻어 쓰는 대필 작가를 말하는데 한 단어로 그냥 ‘노예 작가’라 일컬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니 ‘나’는 플래그 박사가 글을 써 가져오라고 한 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에 불과했던 거다. 이 해 재하청 작가에게 원청 작가가 원고를 받는 순간 난데없이 교통사고가 나 원청과 재하청 작가가 같은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는 바람에 공동묘지를 방문한 ‘나’에게 접근하는 인간이 있었으니 야심찬 변호사 에드워드 노튼.
  노튼 변호사는 ‘나’가 루서 플래그 박사의 이름으로 절찬리에 판매하고 있는 책들을 진짜 쓴 인물인줄 알고 다가와 1912년 콩고의 밀림 속으로 황금을 찾아 떠난 리처드와 윌리엄 크레이브를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질지 모르는 마커스 가비라는 작자를 교도소에서 접근해 그와 크레이브 형제가 콩고에서 했던 일을 소설 형식으로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를 실행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나’는 교도소를 방문해 난쟁이나 다름없는 집시의 아들 마커스 가비를 취재해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나’는 변호사가 아닌지라 자기가 쓰는 작품을 보다 진실성 있게 만들기 위해 살해당한 형제의 아버지 찰스 크레이버 공작에게 면담을 신청, 작품의 초고가 완성되면 복사본 한 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이를 승낙 받는다.
  주의를 압도하는 거구로 여섯 살 소녀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연루되어 군대에서 쫓겨난 리처드와 크레이버 공작 가문의 명성이 아니었으면 족히 20년 형에 처해졌을 경제사범 윌리엄 형제는 보육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엄마를 통해 불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집시 난쟁이 비슷한 하인 마커스 가비를 데리고 콩고로 향한다. 약 백 명에 이르는 짐꾼을 모질게 독려하며 밀림의 중심까지 진출하고, 우연히 금광을 발견해 그들을 노동시키는 데까지 형제들의 잔인한 행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형제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마커스의 살육까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정도에서 독자는 심각한 갈등에 빠진다.
  이 책을 더 읽어, 말아.
  진짜다. 도서출판 들녘은 <콩고의 판도라>를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란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내가 읽기로는 그러나 완벽한 2류 소설. 서미싯 몸은 자신 스스로가 “최고의 2류 작가”라고 정의한 바 있어서, 혹시 내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려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하실 필요 없다. 작가의 다른 책은 당연히 안 읽어봤으니 모르지만(안 읽어볼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이 책만 가지고 판단하면, 아니, 판단은 했으나 더 이상 말로는 하지 않겠다.
  책 속에서는 자신이 대단한 문학적 재질을 갖고 있고, 이 책이 문학적으로 거의 최상급의 성취를 이룬 것처럼 자주 묘사한다. 그런데 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셋 중에 하나, 이건 습작이거나, 열심히는 하지만 천부적 자질이 부족한 불운한 작가이거나, 번역 도중 역자가 우리말로 너무 서툴게 옮긴 것처럼 읽었을까. 더구나 이 책은 헌책방에서 중고품을 산 것도 아니고 큰 기대를 갖고 산 새 책이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SF나 장르문학이나 이 비슷한 것들을 견디지 못한 순문학 지향의 속물의식 때문에 그렇게 읽었다고? 뭐 당신이 굳이 그렇게 우긴다면 할 말이 크게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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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 40년 - 4판 범우문고 20
변영로 지음 / 범우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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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군수의 직을 하던 변정상卞鼎相에게 아들 삼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보성전문을 졸업한 후 판사를 하다가 “왜놈의 사냥개 노릇은 죽어도 못한다.”며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해 안중근을 변호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해방 후에도 반민특위 재판장을 역임했던 강골의 변영만이요, 둘째는 제 1회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후에 신흥공화국의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역임하는 변영태이며, 셋째이자 막내가 죽기까지 불의와 악수는커녕 타협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당대의 세월을 보내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크게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명정酩酊 40년을 보내게 되는 영문학자, 교육자, 신문기자,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이니, 변 군수께서 다른 건 몰라도 아들 농사 하나는 근사하게 지었겠다.
  수주가 어렸을 때 이름이 ‘영복’이니, 변 군수께서 일찌감치 외출하신 하루는 아침부터 술에 잔뜩 취해 아버지 아니 계신 사랑에 누워 있는데, 존장의 벗인 정영택 옹께서(당시엔 30대였지만) 사랑 미닫이를 열고 보니 열 살도 아니 된 쬐그만 게 주인 없는 사랑에 홀로 누웠던 것. 그리하여 정옹이 진중치 아니한 어조로 말씀하시기를,
  “영복아!”
  “……”
  “아 이놈 영복아!”
  “원숭이 왔나?”
  성미를 잘 아는 정 교관은 못 들은 체,
  “어르신네 어디 가셨니?”
  “어디 출입하셨어.”
  “어딜 가셨을까?”
  “모르지.”
  “이놈, 어린 놈이 대낮부터 술이 취해서 학교도 가지 않고.”
  “대낮이라니, 술은 밤에만 먹는 거야?”
  기경(奇驚)하기로 유명한 정 선생도 이에는 어안이 벙벙,
  “에익, 고자식.”
  하고 떠나려 할 때 나(수주)는 한걸음 더 내치어,
  “여보게, 히로(우리나라에 처음 수입된 양담배) 한 개만 주고 가게.”
  망설망설하다가 홱 한 개를 던져 주고 총총 문을 나시었다. 는 거 아닌가.


  수주 자신도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저 먼먼 옛 시절부터 술 한 바가지 얻어 마시기 위해 자기 키보다도 더 큰 술독을 기어오르기도 하고, 혹시 개평 술이라도 얻어 걸릴까 싶어 아버지와 벗들의 술상을 지키다가 아이 놈이 술 좋아하는 걸 이미 아는 어른들이 약만 올리고 술을 주지 않자 자리를 박차고 나서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 유쾌하고 때론 창자가 아플 정도로 웃긴 《명정 40년》을 시작한다.
  실로 전설적인 이야기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숱하게 들은 수주 변영로의 술에 얽힌 기행들. 그저 교사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온, 거의 신화 수준이라 믿기 어려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공초 오상순, 횡보 염상섭, 성재 이관구와 더불어 네 명의 돈 없는 룸펜 인텔리겐치아들이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하던 고하 송진우에게 나중에 좋은 글 한 편을 기고할 테니 원고료로 50원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써 얻은 돈으로 술과 고기를 사들고 성균관 위에 올라 대취했던 일이다. 잔뜩 술을 퍼마신 것 까지는 좋았는데, 난데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큰 비를 맞고 누웠다가 공초가 선언하기를 옷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을 이간시키는 쓸데없는 물건이라 칭하며 옷을 찢어버리고 네 명의 나한이 몸에 일호一毫의 천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소를 타고 혜화동까지 진출한 일이었다.
  공초와 횡보는 늘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어서 이 일화를 나 역시 구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때 문제의 한 명, 성재 이관구가 여간해 생각나지 않았었다. 책을 읽어보니 이관구라는 동아일보 기자와 그의 춘부장을 비롯한 집안사람들과 얽힌 허리가 끊어지고 창자가 아프게 웃기는 술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었으나, 그건 일독의 가치가 넘치고도 넘치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시고 내 말이 과장인지 확인하시기 바란다.
  나 역시 애주가로 불리지 않으면 매우 섭섭한 정도의 술꾼이지만 감히 수주와 곁을 대할 수 있을까보냐. 수주는 나이 쉰이 넘도록 약 한 봉지 먹어본 적 없는 강골의 사내였단다. 당시 사람들이 자시던 소주는 지금처럼 20도도 되지 않아 술인지 물인지 밍밍한 소주가 아니라 똑 부러지게 40도짜리였다. 그것을 되, 1.8리터 단위로 몇 병을 앉은 자리에서 마셨으며 당연히 지구 온난화 전이라 오줌줄기까지 얼려버릴 정도로 추운 겨울밤에 술에 취해 떡이 되어 길거리에 횡와 취침橫臥就寢 가로누워 자면서 그새 내린 백설로 이불을 삼아도 다음 날엔 어김없이 학교나 신문사로 출근을 해 우우풍풍雨雨風風,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었다는 사내였다.
  수주, 하면 《명정 40년》. 그러나 《명정 40년》으로 그의 이름을 취생몽사의 대명사로 알면 오산이리라. 그 역시 백형이나 중형을 닮아 이화여전, 중앙학교, 성균관대학 선생을 거쳐 동아일보 신문기자를 하면서 한 번도 일본을 위한 문장을 써 본 적 없고, 창씨개명은 그의 앞에서 거론조차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손기정 일장기 말살까지 획책했던 울분의 지사였다.


  인터넷 공간의 오랜 벗들은 몇 번 들으셨을 터이지만, 내게도 수주 못지않은 명정의 시절이 있었으니 그 일탈의 광태를 한 번 소개한다.
  때는 1981년 봄. 서울대를 다녔고 지금은 내가 사는 동네의 대학에서 훈장을 하는 김군과 나는 날이 좋다는 핑계로 학교 앞 청화식당에서 아침 아홉시부터 막걸리 잔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한 말斗(약 18리터, 즉 일인당 9천cc)을 마시니 점심 때가 됐다. 밥 대신 막걸리 한 말을 더 마시고 나니까 수업을 파한 후배 아이들 둘이 고개를 디밀었다. 산업공학을 하는 남자 후배, 화학을 전공하는 여자 후배. 둘이 무슨 썸을 타는 관계는 분명히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만나서 한 잔 하자고 의기투합한 것이 틀림없었다. 후배들에게 동무를 소개하고 반 말을 더 시켜 마저 마시니 이제 석양이 내리려는 듯. 우리는 밀주 막걸리 몇 통을 더 달라고 해 손에 들고 모교 운동장을 둘러싼 잔디밭으로 진출해 두어 되를 더 비웠다. 잔디에 누워 청하디 청한 하늘을 보다가 내가 동무에게 말했다.
  “벗어버리자.”
  그래 나하고 멀리 관악산에서 온 동무하고 둘이는 예전 성균관의 네 나한처럼 일호의 천조각도 몸에 걸치지 아니하고, 내 옷은 화학 공부하는 아이한테, 동무의 옷은 산업공학을 하는 아이한테 봐달라고 한 채 운동장을 감싸 안은 도로 위를 뛰기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늦봄의 황혼이라, 교정을 바라보고 오른 편의 중앙도서관에서 한 떼의 학생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학생식당으로 교정 밖의 밥집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오직 하나, 발바닥이 무척 아프다는 거. 남학생들은 우리를 손가락질 하며 웃기에 바빴고, 여학생들은 갑자기 자기들 시선을 정면으로 하고 정색을 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옆 눈으로 우리의 알몸이 다 보일 터이니까. 교정 정면에 있는 본관 건물 오른 편으로 들어가 교무과, 학적과 등의 사무실을 거쳐 왼편으로 나와 강당 옆을 끼고 다시 운동장을 두른 잔디밭으로 돌아오니 후배 아이들은 서로의 등을 두드려가며 아까 마신 막걸리를 게워내고 있었다.
  벌써 그게 40년 전이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귀밑까지 뜨거워지는 게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당시 내 나이 이십 대였다는 것이 유일한 변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몸질주는 내 일생 가장 큰 수치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가 포경수술을 하기 전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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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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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생애를 짧게 이해하려면 <문맹>을 읽어보면 충분하다. 이이의 정체성은 망명자. 망명지에 떨어져 이국의 문자로 작품 활동을 하는 불리한 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프를 읽으면 간혹 섬찟한 느낌이 든다. 불멸의 작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다.
  상도르, 라는 이름의 남자.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 헝가리(로 추정하는 나라)의 작은 마을, 작은 학교에 단 한 명의 교사라 모든 학년을 담당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선한, 아니면 적어도 악하지 않은 심성을 지난 사람이다. 몇 년 전, 일단의 집시무리가 지나가면서 고을에 열여섯 살 먹은 예쁘게 생긴 소녀 에스테르를 혼자 떨어뜨려놓고 간 적이 있다. 상도르는 이 아가씨를 보살피다가 처녀성을 훼손시켰고, 이어서 아들 하나를 만들어놓고 만다. 이후 어린 에스테르는 시골이라 마땅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질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먹고 살기 위해 대부분 농민으로 구성된 마을의 모든 남자에게 몸을 팔아 돈이면 돈, 양식이면 양식을 얻어, 마을에서 벗어난 공동묘지 입구에 작은 움집을 짓고 살아왔다. 에스테르가 낳은 상도르의 아들, 토비아스 호르바츠. 나이가 차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보니, 가끔 집에 찾아오던 아저씨가 담임선생일 줄이야. 게다가 옆자리에 앉은 같은 학년의 꼬마 아가씨 카롤린. 카롤린이 말한다. 너는 우리 오빠의 옷과 신발을 신고 있구나.
  옷과 신발은 상도르 선생이 입학식 때 입고 가라고 큰 아이가 입던 옷을 물려준 거였다. 카롤린의 아래로 사내아이가 하나 더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미덕이라 훈시를 했고, 아내 역시 남편의 뜻이 합당하다고 여겨 토비아스에게 건네준 것. 그러나 교실에서 토비아스의 책상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책도 없고, 문방구도, 도시락도. 그날 밤 상도르는 다시 토비아스의 집을 방문하고, 엄마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채 한참을 있다가 갔는데,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교과서와 공책을 비롯한 모든 문방구가 다 놓여 있었으며, 이후 카롤린이 넉넉하게 가져온 도시락을 기꺼이 나누어 먹게 된다. 토비아스는 자존심이 상해 먹지 않으려 했지만 도무지 너무 배가 고파 그런 것까지 차릴 여유가 없었단다.
  세월이 흘러 이제 졸업을 해야 할 즈음, 상도르 선생이 토비아스의 집을 다시 찾아 머리가 좋고 똑똑해 성적이 최상급인 토비아스를 상급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돈이 없어도 무료 기숙학교가 있으니 그곳에 보내면 된다고 엄마 에스테르를 설득하려 한다. 에스테르는 상도르가 자식을 자신에게서 떼어놓으려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있고, 토비아스는 이제 일을 해 한 푼이라도 보태야 하는 처지라고 주장해 이에 반대하는 입장. 에스테르가 묻는다.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지요?”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 너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 나는 네 얼굴과 눈과 입과 몸뚱이에 홀렸던 거야. 너 때문에 잠시 눈이 멀었을 뿐이야. 하지만 토비아스는 사랑해. 그 아이는 내 거야. 비록 네 몸에서 나왔지만 이제 더는 너를 참을 수가 없어. 너는 내 젊은 시절의 실수일 뿐 아니라, 내 생애 최대의 오점이야.”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늘 하던 것을 하기 시작한다. 토비아스가 소원하는 단 한 가지. 이곳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다가 죽는 것. 열두 살의 토비아스는 서랍에서 제일 큰, 고기 써는 칼을 꺼내 방으로 들어간다. 그가 그녀 위에 포개진 채 잠을 자고 있다. 달 밝은 밤이었다. 토비아스는 팔을 번쩍 들고 상도르의 등을 향해, 있는 힘껏 칼을 찔러 넣었다. 큰 칼이 그의 몸을 통과해 엄마의 몸뚱이까지 찌를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해. 그리고 집을 나서 서쪽으로, 다른 나라들이 있다고 배운 서쪽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가면서, 우리말로 번역한 원고가 겨우 사백 장에 불과한 중편 소설의 막이 올라간다.
  이렇게 동시에 부모살해를 꿈꾸고 실행하고, 유랑에 나서는 이십 세기의 저주받은 오레스테스, 토비아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새로이 상도르 레스테르라는 이름으로 망명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음속의 한 여인 ‘린’을 그려놓고 권태와 나태와 싫증과 죽음의 유혹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워나간다. 망명지에서 외국어로 쓰인 작품을 시도하며 언젠가는 책 한 권을 내겠다는 최소한의 희망으로 숨을 이어가고 있다. 망명한 동포들은 이곳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음을 맞고, 욕조에서 동맥을 끊기도 하고, 유서로 ‘너희들은 내 똥이나 먹어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목을 매달고, 가스밸브를 열고 머리통을 오븐에 밀어 넣은 채 죽어가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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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6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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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역사를 찾는 이야기. 19세기 위대한 영국의 시인 가운데 한 명이라면서 가상인물 랜돌프 헨리 애쉬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한 세기가 흐른 1986년, 군의회의 하급관리인 아버지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뜻을 접은 것도 모자라 남편과 아들에게 좌절감을 느끼며 사는 어머니 사이의 스물아홉 살 아들 롤런드 미첼이 등장한다. 롤런드 미첼은 78년에 런던 프린스 앨버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작년에 같은 대학에서 “역사가와 시? 랜돌프 헨리 애쉬의 시에 나타난 역사적 ‘증거’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스물여덟 살에 박사학위를 얻은 재원이라면 재원인데, 문학을 전공하는 바람에 1980년대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의 서릿발 같은 신자유주의 치하의 영국식 문사철 홀대 덕택에, 1951년부터 무려 35년간 애쉬의 《전집》을 편집하고 있는 블랙커더 교수의 연구실에서 시간제 연구원, 그러니까 쉬운 말로 ‘따까리’ 신세로 푸트니가街의 다 쓰러져가는 빅토리아 풍 주택의 지하실에서 애인 ‘발’과 함께 영화 <기생충> 가족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
  애인 ‘발’로 말할 것 같으면, 나름대로 괜찮은 자질의 영문학도였건만, 하필이면 논문의 주제로 역시 랜돌프 헨리 애쉬를 선택하는 불운을 당해, 전력을 다해 학부생 치고는 훌륭한 논문을 작성했으나, 논문을 읽은 (복수의)채점자들이 모두 애인인 롤런드 미첼이 무지하게 도움을 주었고 심지어 일부는 대필해주었을 것이라 단정하는 바람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IBM 볼타자기를 한 대 사서 남의 논문이나 견적서, 선적서류, 소장訴狀 등을 타이핑해주고 돈을 벌어 애인인 롤런드를 거의 먹여 살리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발 역시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비누질 열심히 해 세수만 해도 얼굴에서 광이 날 정도로 미인이지만 고양이 오줌 냄새가 하루 종일 빠지지 않는 지하방에서 고단한 살림살이를 하느라 그따위 것에 신경 쓸 여지가 없어 언제나 자다 부스스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들 커플 신세는 짐작을 하실 터.
  롤런드가 발의 눈치를 뒤통수 가득 받으면서 1986년 9월의 어느 날 오전 열 시에 들른 곳이 런던도서관. 오늘도 롤런드는 랜돌프 애쉬와 관련한 자료를 찾던 중 오랜 세월 서가에 묻혀 먼저만 두껍게 쌓인 책을 열람하는데, 예전에 애쉬의 서재를 장식하던 비코가 쓴 책 <프로세르피나>를 골랐다. 서가에 보관한 다음에 한 번도 열람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게 균일한 농도의 먼지가 네 귀퉁이를 딱 맞춰서 책을 덮고 있었다. 사서가 먼지를 털고 드디어 백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뛰어 롤런드가 책을 열었더니, 책갈피 사이에 숱하게 난삽한 메모들이 삽입되어 있었다. 구둣가게 청구서, 담뱃갑을 찢어 써놓은 누군가의 이름,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초대장 등등의 속에 놀랍게도 애쉬가 미지의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 두 통이 들어 있는 거였다. 여태까지 애쉬는 사이에 아이가 없는 아내 엘렌 부인만 죽자사자, 죽을 때까지 사랑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 롤런드는 은근히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두 장의 편지 원본에, 연구원이라면 당연하게 느낄 법한 ‘소유’ 욕심이 들어, 결국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슬쩍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고 만다. 이 같은 남자 주인공 롤런드의 호기심 어린 일종의 절도행위로 말미암아 900쪽에 거의 육박하는 장편소설의 막이 올라가게 되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롤런드가 실력도 있고, 그만하면 인물도 나쁘지 않은데 이렇게 빌빌거리는 건, 롤런드 정도(보다 약간 밀리는 수준)의 실력도 있고, 인물은 훨씬 좋은데다가 성공을 위한 필살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또는 선생들을 매료시켜버리는 천부의 능력을 지닌 퍼거스 월프라는 인간에게 자리를 뺏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롤런드는 퍼거스를 여전히 친구로 여겨 자기가 훔쳐낸 랜돌프 애쉬의 편지 초안에 대해, 바보같이, 고백을 하고, 이 사안이 아무래도 신화수집가인 이시도르 라모트의 딸이자 시인인 크리스타벨 라모트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한 술 더 떠버린다. 그래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퍼거스는 여러 가지 계산을 순식간에 해치우면서도 태연하게 크리스타벨 라모트를 전공하고 있는 두 명의 페미니스트이자 적수이자 동시에 내가 독후감에서 얘기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관계를 맺고 있는 플로리다 탈라하세의 레오노라 스턴 교수와 링컨대학의 모드 베일리 박사를 소개해준다. 스턴 교수는 거리가 워낙 멀어 가까운 링컨에 사는 베일리 박사를 찾아가는 롤런드. 엇, 박사가 생각보다 젊다. 물론 롤런드보다는 나이가 많은 거 같은데 영국 사람들은 나이에 관해 큰 차이만 아니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건 아시지? 그럼 뭐가 생각나시지? 불륜? 아님. 롤런드 미첼과 발은 그냥 동거상태. 게다가 둘은 젊은 것들이 벌써 (정말 불쌍하게도) 삶의 무게에 치어 언제나 살얼음판 위에 살고 있고, 베일리 박사는 애인도 없는 미혼.
  곧바로 직진하자.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인 랜돌프 애쉬는 정말로 사석에서 크리스타벨 라모트를 만난 적이 있고, 애쉬가 편지를 보내 상당한 기간 동안 서로 편지로 우정을 돈독하게 한 적이 있다. 그래 롤런드와 모드는 의기투합, 크리스타벨이 만년을 보낸 링컨 근방의 실코트 성城 근처를 둘러보러 갔다가, 때마침 휠체어에 문제가 생겨 곤경에 빠진 베일리 부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어 생각하지도 못하게 진짜로 실코트 성과 크리스타벨이 최후의 숨을 쉰 탑의 방에까지 들어가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모드 베일리는 라모트의 시 가운데 인형에 얽힌 작품을 암송하며 놀랍게도 랜도프 애쉬와 크리스타벨 사이에 오간 수십 통의 편지, 처음엔 문학과 시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해 점점 열렬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변하는 (숨긴)편지뭉치를 발견하게 되면서 작품은 극적인 장면에 돌입하게 된다.
  크리스타벨 라모트는 1825년생으로, 조부모 장 밥티스트 라모트와 에밀리 라모트 시절이었던 1793년 공포정치를 피해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영국으로 넘어온 가문의 후예로, 독신 고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서레이의 리치몬드에 집을 얻어 블랑슈 글로버와 동거를 하다가, 블랑슈의 독려에 힘입어 대표작 <요정 멜루지나>를 발표한, 당대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세월이 가면서 진가가 밝혀진 시인, 이라고 설정했다. 역자 윤희기의 해설을 보면, 랜도프 헨리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는 실제 19세기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를 모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번역시는 전혀 읽지 않는 나는 별 관심이 없었고, 블랑슈 글로버 양이 74쪽에선 1861년에 테임즈 강에 빠져 자살해버리고 만다고 했으면서 401쪽에선 또 1860년에 ‘물에 빠져 자살’한다고 했을까가 더 궁금했다. 물론 블랑슈의 자살에 관해서도 입을 떼면 좋을 일이 없을 듯.
  책은 이렇게 두 커플, 1980년대 롤런드 미첼과 모드 베일리, 1860년대 랜도프 헨리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 커플을 대비시키고 있으며, 현재 시점에 거론되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총 출동해서 연구 자료를  갖고자 하는 소유욕의 끝장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가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내용은 더욱 모르는 무엇인가를 소유하려 벌이는 난장판. 이야기가 거창하고 장황해서 그렇지 자기 취향하고 맞기만 하면 날밤 새우는 건 일도 아닐 작품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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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29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거 사놓고 아직 안 읽은 책인데, 제 취향에는 맞을 거 같은데... 이번 연휴에 읽어볼까요? ㅎㅎㅎ 근데 이것도 인물 관계도 그리면서 읽어야 하는 책인가요?!!!

Falstaff 2020-04-29 14:23   좋아요 0 | URL
옙.
한 세기가 넘게 복잡하게 꼬인 인간들이 등장하니 관계도는 그리셔야 할 거 같네요.
뭐 4대조모가 누구인지 막 언급을 하는데, 흑흑... 제가 잘 못 살았나봅니다. 증조부 이름도 모르고 살았으니요. ^^;;
 
찬란한 길 대산세계문학총서 156
마거릿 드래블 지음, 가주연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꼬박 나흘을 바쳐 책 한 권을 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출현하고 각자의 스토리와 고통과 갈등과 사랑과 이별과, 젊은이의 성장과 늙은이의 죽음까지 모두 들어있는 작지 않은 이야기. 등장한 무수한 인물들은 짧게 이름과 현재 계급과 빈부의 정도와 정치적 성향과 성격만 언급되고 무대에서 사라지고, 그보다 적은 사람들은 세 명의 여자 주인공 속에서 에피소드를 만든 후 역시 사라진다. 그리하여 책은 아기자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재미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도를 빼기가 쉽지 않다.
  1979년 12월 31일, 새해전야 파티가 열릴 리즈와 찰스 헤들린드 부부의 W.1 할리스트리트의 크고 화려한 5층 저택에서 이 만만하지 않은 소설은 시작한다. 찰스는 첫 번째 아내 나오미가 아들 셋을 두고 교통사고로 죽고, 리즈는 첫 번째 남편 에드가 린토트와 겨우 10개월의 결혼생활을 끝낸 후, 둘이 다시 결혼해 딸 샐리를 낳아 이제 아이가 넷이 됐다. 가족이 커지고 아이도 더 생길지도 모르는데다(진짜로 이후에 딸 하나가 더 생긴다.) 가정부와 입주 도우미도 두게 될 터, 죽은 나오미가 가져온 지참금을 이용해 1960년에 4만 파운드를 주고 구입한 저택이다. 그동안 런던의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뛰어 지금은 무려 백만 파운드를 넘어가며, 1층에는 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헤들린드 박사의 진료실과 동료 두 명의 진료실로 쓰고 있다. 그러니까 리즈는 성공한 인물이다.
  같은 시간, 런던에서 북쪽으로 320km 떨어진 북부도시 노썸에는 다른 풍경이 벌어지고 있으니 리즈의 여동생 셜리 하퍼. 과부 리타 에이블화이트에게 딸이 둘 있었다. 리즈와 셜리. 리즈는 지긋지긋한 북부도시의 누추한 집에서 합법적으로 가출하기 위하여 죽을 듯이 공부에 전념해 처음부터 의대진학을 목표로 한 자연과학 전공으로 케임브리지 전액 장학생의 신분으로 입학, 리타와 노썸의 자랑이 된다. 반면 셜리는 애초부터 반항아로 고집이 세고 물러나지 않는 성격에 거짓말과 교활한 수를 부리고 다녔다고 리즈는 기억한다. 셜리 자신 역시 전후 내핍의 시기에 불량소녀가 되기를 갈망했으나 착한 소녀에서 벗어날 수 없어 결국 ‘안심의 영역’에 머무르고 만다. 노썸의 사람들은 파티에 셜리를 초대하지 않고, 그녀의 통거위 요리로 꾸민 저녁만찬에 초대받기를 바라지만 이 ‘만찬’의 정도는 헤들린드 부부가 베푸는 파티에 비교하면 부엌 부뚜막에 앉아 식은 밥 한 술씩 뜨는 수준. 비록 셜리가 엄마의 바람과 달리 학교도 중도작파하고 바라지 않는 결혼을 했을지언정, 결코 집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를 위해 5년 동안 매 끼 음식을 해 나르는 일을 해왔다. 리즈는 오늘도 엄마한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영국이나 한국이나, 굽은 소나무가 선영을 지킨다. 리타 에이블화이트, “셜리의 어머니는 물론, 미쳤다.”(87쪽)
  리즈는 45세. 남편 찰스가 50세. 찰스는 새해가 오자마자 새 직장을 얻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길 것이다. 영국 방송계의 거물이 된 찰스가 젊은 시절이었던 1965년, 영국의 불운한 교육제도의 유산에 내재한 악을 유려하고 감동적으로 조명한 도큐먼트 시리즈, <찬란한 길 The Radiant Way>을 제작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후 이제는 영국 방송의 대표자격으로 거액의 연봉과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를 제공하는 조건의, 한 마디로 영국의 국가대표 자격으로 파견되는 거였다.
  이제 성생활의 끝 비슷한 느낌이 들자 리즈는 오히려 그것이 일종의 권력, 확실성과 능력으로 무장한 난공불락이 된 것 같은 믿음이 들었다. 그동안 여섯 명과 잠자리를 같이 했으니 남자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첫 남편 에드가를 시작으로, 조이, 찰스, 필립, 줄스, 그리고 이름도 물어보지 않은 덩치 큰 네덜란드 남자 한 명. 리즈가 결국 모르고 넘어가는 네덜란드 남자는 책의 뒤편에, 역시 리즈도 모르는 사이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레오 스틴이라는 이름의, 야코포 델라 케르치아가 조각한 성모 마리아 상에 금색 페인트를 몰래 칠해 신문에도 나고 콩밥도 먹게 되는 인간인 것으로. 물론 이 작품의 후속작에 다시 등장하게 될지 모르지만 하여간 나는 이 인간의 난데없는 등장이 적어도 이 책 <찬란한 길>에서 발견한 마거릿 드래블의 장난기라고 읽었다. 이들 가운데 필립과는 복수하는 기분으로, 줄스와는 무모한 장난처럼 관계를 맺었는데 이들 모두, 물론 네덜란드 남자는 빼고 다 자기가 주최하는 1979년 12월 31일의 파티에 참석한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리즈는 몰랐다. 파티가 다 파한 1980년 1월 1일 새벽, 자신이 흐느끼고, 거세게 흐느끼다가 기어이 동물의 울부짖음 같은 거친 소리로 통곡을 하며, 왜 찰스가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하는지를 묻게 될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찰스가 이렇게 말할 줄은.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이렇게, 음, 진부하게 나올 줄 몰랐어. 사실 나는 당신이 내게서 벗어나서 안심할 줄 알았어.”
  찰스가 왜 이혼을 요구하는지는 그냥 궁금해 하시도록 내버려두겠다.
  독후감의 첫 단락에 세 명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리즈는 확실하게 주인공이고 나머지 두 명을 소개한다. 1952년에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 장학생으로 합격을 하고 케임브리지를 선택한 두 명의 똑똑한 친구, 알릭스 보웬과 에스터 브로이어.
  좀 복잡한 가계를 그려보자. 리즈의 동생 셜리의 아랫동서의 삼촌이 알릭스 보웬의 시아버지다. 모르시겠나? 쉽게 그냥 똑똑한 알릭스의 남편 브라이언 보웬 역시 노썸 출신이라는 것. 알릭스는 케임브리지에서 영국문학을 공부했고 정의파 브라이언은 좌파 지식인이자 소설가로 “1970년대와 80년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상투적이고 사실적인 대작”을 구성하고 있으나 여간해서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며, 1980년엔 재정이 위태로운 성인교육원의 인문학장으로 박봉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알릭스는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들만 수용하고 있는 가필드 교도소에서 주 1회 영문학 강좌를 하며 재소자들의 건전한 의식을 함양하는 대가로 차비에도 못 미치는 강의료를 받고 있다. 첫 남편 세바스찬과 결혼했던 날 밤까지 처녀의 몸이었으며 결혼을 하자마자 자신이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걸 알아버려 아들 니콜라스만 돌보며 살던 중 세바스찬이 캐나다 비트족과 어울리다 익숙하지 않은 마리화나에 취해 별장 수영장에 빠져 죽는 바람에 과부가 됐다가 브라이언을 만났다. 첫 아들 니콜라스는 스물두 살이지만 실업급여를 받아 생활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대언어학을 전공한 에스터 브로이어는 양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엔 처자식이 있는 콜린 린지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친오빠 솔Saul과 사랑하는 사이라고 고백하며 이상하게도 조카라고 주장하는 젊은 여자와 작은 아파트에서 동거를 했다. 나중엔 이탈리아의 천재 괴짜에다가 괴물인 이탈리아 유부남 클라우디오 볼페와 깊은 유대를 지니는데 그가 선물한 야자나무를 위도가 높은 런던에서 화분에 심어 키우다가, 키우다가, 키우다가 결국 반半 고의적으로 얼려 죽이는 날 클라우디오의 부음을 전해 듣는다. 평생 홀로 살고 미술사에 거의 독보적 지식을 갖고 있지만 딱 그 수준에 만족해 사는 숨은 수재. 이는 오스트리아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1935년에 극적으로 가족을 이끌고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던 유대인의 딸이라는 정체성도 한 역할을 했을 터이다.
  위와 같은 주인공 소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명백하게 “1980년대 초반 영국의 지역과 계급에 대한 상투적이고 사실적인 대작“이다. 여기에 다분히 제인 오스틴이 말한 것처럼(책에서 직접 오스틴의 말을 인용한다.) 세 개 가량의 가문에 집중하면서 심리상태까지 치밀하게 묘사를 해놓았다. 1979년에 집권에 성공한 마거릿 대처와 1981년에 임기를 시작한 로널드 레이건의 등장으로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손아귀가 장악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과학적 발전과, GDP적 증가를 별개로 하고, 개인적 행복은 급격하게 하락하게 된다. 인류는 비로소 1980년대에 와서야 선진국이라고 하는 건, 가장家長 혼자 벌어서 가족을 다 먹여 살릴 수 없는 나라를 일컫는 것임을 자각하게 되며, 신자유주의의 극단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2020년 3월과 4월에 걸쳐 5주 만에 아메리카에 창궐한 COVID-19 바이러스 하나로 미국 내에서만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2,600만 명의 실직자가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예상해서가 아니라 선량한 사회주의자인 알릭스의 남편 브라이언은 지하철 입구에 손으로 쓴 “탄광 파업자에게 온정을 베풀어주셔요.”란 피켓을 들고 동전을 떨어뜨려주는 시민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던지며,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를 본 알릭스로 하여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오열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1987년에 출간한 이 책은 런던과 북부 도시 노썸으로 대표하는 자본과 노동의 양 측면을 조망하는 “사회진단소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처음부터 시리즈로 쓰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타고난 호기심>, <상아의 문>이 이 책의 후속작이 되면서 삼부작의 첫 권이란 타이틀을 달게 된단다. 흥미로운 책이지만 책의 내용을 따라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만일 읽어보시려면 메모장을 옆에 두고 적어도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노트해가며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힌트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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