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공지다. 방구석과 회사 파티션에 짱박혀 2월 21일부터 4월 말까지 낮술 마시는 날 빼고 만날 읽기를 진행한다. 이번에 무게를 둔 건 산도르 마라이다. 산도르 마라이가 20세기 중반에 쓴 <유언> 1939, <결혼의 변화> 1941, <이혼전야> 1944가 계획되어 있고, 이것으로 산도르 마라이의 번역서는 몽땅 읽게 된다. 독후감 읽으셔도 돈 안 받는다. 구체적인 일정이 아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폴스타프의 산도르 마라이 떨이 하기

 

  1독. 3월 둘째 주, 산도르 마라이 <유언>

 

 

  2독. 3월 둘째 아니면 셋째 주, 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 상>

 

 

.


  3독. 2독 후 곧바로. 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 하>

 

 

.

 

  4독. 3월 셋째 주 아니면 넷째 주, 산도르 마라이 <이혼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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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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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독서 공지다. 독서 공지 하고 연달아 또 책 읽는다고 공지글 쓰는 게 하나도 미안하지 않지만, 독서모임 죽어도 안 하는 나는 이번에도 집구석에서 중국의 현대 희곡을 읽는다.

  출판사 ‘연극과 인간’의 중국현대희곡총서 시리즈의 14번에서 17번까지다. 1번부터 13번까지는 2019년에 읽은 바 있으니 이제 연속성을 확보하게 된다. 2020년에 출간한 책들로 궈스싱의 <바둑인간>, 멍징후이의 <떠돌이 개 두 마리>, 쉬잉의 <로비스트>, 위룽쥔의 <손님>을 3월부터 4월 말까지 두 달에 걸쳐 적당히, 내 맘대로 읽을 예정이다. 현대 중국희곡만 읽으면 좀 섭섭하니까 중국전통희곡총서의 현재까지는 마지막 순서인 <진중자>도 해치울 예정이다.

 

폴스타프의 중국 현대 희곡 읽기

 

  1독. 언젠지 아몰랑. 궈스싱 <바둑인간>

 

 

  2독. 글쎄 언제나 읽을까? 멍징후이 <떠돌이 개 두 마리>

 

 

  3독. 내가 언젠지 모르는데. 쉬잉 <로비스트>

 

 

  4독. 설마 네가 알겠니. 위룽쥔 <손님>

 

 

  5독. 언젠가 읽겠지. 왕런제 <진중자>


  21. 01. 24.

 

  어떠셔? 비슷했나? 그 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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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2-24 0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의도 해주셔야 합니다?

Falstaff 2021-02-24 09:10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제 주제에 뭔 강의를요.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2-24 09:34   좋아요 1 | URL
그래야 비슷하죠.^^

noomy 2021-02-24 0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너무 비슷해서 놀랬습니다

Falstaff 2021-02-24 09:34   좋아요 2 | URL
아, 그렇습니까? ㅋㅋㅋㅋ 드디어 한 건 했군요! ㅋㅋㅋㅋㅋㅋ

noomy 2021-02-24 11:24   좋아요 2 | URL
늘 그분의 초인적인 강의 공지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Falstaff 님의 유머도 감탄을 자아 내는군요 ㅋㅋ

Falstaff 2021-02-24 11:2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고맙습니다.
전부터 한 번 써보자고 했다가 오늘에야 ㅋㅋㅋㅋㅋ

han22598 2021-02-24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똑같은데요. 무료인것만 빼고 ㅋ

Falstaff 2021-02-24 10:2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이거 재미난데요. 은근히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재미있어요. ㅋㅋㅋ

잠자냥 2021-02-24 1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촌철살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2-24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맨 마지막줄 안 보고도 알아차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문제는 폴스타프 님은 책 다 *읽으실* 거잖아욬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2-24 10:4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진짜 재밌어요.
한 번 해보시든지. ㅋㅋㅋㅋㅋㅋ
물론 전 위에 올린 것들 적어도 5월 초까지는 다 읽을 겁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1-02-24 19:34   좋아요 2 | URL
아 저도 첫문장 보면서 이 묘한 기시감은 뭐지? 읽으면서 이거 그 분인데...그 분...ㅋㅋㅋㅋ

수이 2021-02-24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강의도 진짜루 해주셔야죠. 온라인으로 어떠세요? 전 중국쪽은 따라갈 자신 없지만 산도르 마라이는 따라갈 자신 있어요. :)

Falstaff 2021-02-24 11:30   좋아요 2 | URL
아이고, 아이고, 완전 아마추어가 자꾸 이런 말씀 들어서 간땡이가 붓기 시작하면 큰 일 생깁니다.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2-24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중 읽은 책이 하나도 없어요^^
폴스타프님의 독서공지에 책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재미있어서 살짝 웃기도 했어요**

Falstaff 2021-02-24 11:31   좋아요 2 | URL
저도 저 책들 가운데 읽은 거 하나도 없어요. ㅋㅋㅋㅋㅋ
웃으셨다니 기분도 좋고 어깨도 으쓱으쓱 거립니다. ^^

단발머리 2021-02-24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고 유익한 공지사항이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모두 즐거워하시는군요.
그 분이 이 글 읽으셨나 모르겠네요. 그게 궁금하군요^^

Falstaff 2021-02-24 20: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설마 그분께서 일개 서생이 장난으로 한 번 해 본 걸 보고 설마, 설마, 설마, 언짢았겠습니까.
상쾌했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이제 패러디도 생길 만큼 유명해진 거니까요. ^^

coolcat329 2021-02-24 1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하하 🤣🤣🤣🤣🤣카레 맛있게 먹다 뿜을 뻔 했습니다. 노란 색 안 지워지는데 큰일날 뻔 했어용!

Falstaff 2021-02-24 20:33   좋아요 2 | URL
아하, 재미 있으셨다면 백퍼 이상 성공입니다. 처음부터 웃자고, 웃자고 한 얘기거든요. ㅋㅋㅋㅋㅋ

막시무스 2021-02-24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쟈체에 반해서 수강신청을 하려는데 어캐해야 해요?ㅎ

Falstaff 2021-02-24 20:35   좋아요 2 | URL
음하하하.... 그건 제가 조언을 드릴 수 없는 문제네요.

붕붕툐툐 2021-02-2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폴스타프님의 이런 재치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읽는 동안 너무너무 재밌고 즐거웠어요~ 저에겐 함께 읽자는 얘기로 들리네용!!ㅎㅎ

Falstaff 2021-02-25 09:1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렇게 얘기해주시니, 아이 고마워라... ㅋㅋ
산도르 마라이는 함께 읽어도 괜찮은데 책이 다 품절이나 절판이고요,
중국희곡은 워낙 대중적이지 않아서 권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

수이 2021-02-2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ㅋㅋㅋㅋ 선생님이 댓글 다셨네요 저기 위에 ㅋㅋㅋㅋㅋ 거기에 댓글 달고 싶은데 차마 못 달고 ㅋㅋㅋ폴스타프님 댓글 보고 또 한참 웃었어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2-26 16:11   좋아요 0 | URL
ㅋㅋㅋ 거기 직접 다셔도 되는데요.
그분이 직접 왕림해주시고, 이거 참 가문의 영광입니다. ㅋㅋㅋㅋㅋ
조금 신경이 쓰였나봅니다. 뭐 유명인이 그런 거 한두번 겪었겠습니까. ㅎㅎㅎㅎ

수이 2021-02-26 16:1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러시아 문학에 빠지지 않는 로쟈님 ㅋㅋㅋㅋ 저 책 방금 샀어요 나는 고백한다 2권 사면서

Falstaff 2021-02-26 16:19   좋아요 0 | URL
나는 고백한다, 읽기 시작하셨어요? 와우, 좋습니다.
그분이 노어 전공이던가 그러니까요. ㅎㅎ 하여간 재미난 세상입니다. ㅋㅋㅋㅋ
 

 

1. 아놔, 시장의 애인 가족을?

  연휴에 아내하고 나들이 갔다가 발견한 현수막.

  전에 먼저 밝힐 것은, 운전하던 내 눈에 색이 더 많이 들어간 아래쪽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는 것.

  천안시장 애인가족 지원센터.

  야, 청남도 천안시는 시에서 시장의 애인가족도 지원해주는구나! 별유천지비인간이로세!

  하긴 시장의 애인이라고 바이러스가 그냥 지나갈 턱이 없으니 지원해주어야지. 좋은 세상이야.




2. 바지교복? 치마교복을 허하라!

  아, 예쁘기도 하지. 요즘 여학교에서 그림처럼 바지로 된 교복을 동복에 한해 적용한단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발상은 항상 전환해야 하는 법. 그동안 얼마나 추웠겠느냐 말이지.

  나 고등학교 다닐 때도 바지 교복을 입는 여학교가 있었다. 동덕여고의 좀 촌스럽지만 귀여운 바지, 창덕여고도 바지교복이 있었던 것 같고. 창덕여고는 고바우 모자까지 쓰고 다녔다. 또 몇 군데 더 있던 거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서 그치지 말자.

  이젠 남학생들에게 치마 교복을 허하라!

  한 여름에 다리 사이에 뭘 매단 채 그걸 좁은 바지 가랑이에 담고 다니는 고충을 여성들은 아는가. 그저 여름만 되면 임시로 좀 떼서 냉장고 신선실에 보관했다가 가을에 다시 달고 다니고 싶은 심정을. 이의 해결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스코틀랜드나 옛 로마에서처럼 치마를 입히는 거다. 그저 남자들은 거기가 사계절 션~해야 한다는 건 다 아시지? 근데 왜 남학생들의 치마 교복이 없느냐는 말.

  이게 다 우리나라의 인구 정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일 수도 있다.




3. 리얼돌, 그리고

  아이고, 민망해라. 리얼돌 사진 좀 올려보려고 이미지 검색했다가, 이거 참, 사무실에서 여직원이 보면 성추행으로 신고할까봐 겁나서 얼른 빠져나왔다. 그거 참.

  근데 리얼돌을 여성계에선 여성을 성폭행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며. 법원에선 문제 없다고 넘어갔지만 세관에서는 수입할 때마다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통관을 시켜주지 않아 그때마다 법원에 호소해야 한다고 뉴스를 통해 들었다.

  이 얘기 하다가 아내가 피식 웃었다. 세상에 별걸 다 막는다고. 연애 못하는 남자들 어쩌고 저쩌고는 다 생략한다. 그냥 흔히 듣는 이야기니까. 기절초풍을 한 사연.

  아내 말씀이, 리얼돌 사용이 남자들을 여성을 성폭력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면, 국회는 얼른 법 하나를 제정해야 한단다. 남자 청소년들이 자위를 하면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무슨 체위를 상상하는지, 그런 생각이 리얼돌과 유사 성교를 하는 것보다 절대 사회적으로 덜 위험하지 않으니, 남성을 대상으로 "자위 금지법" 또는 "자위 중 상상 금지법"인 속칭 "금딸법"을 제정해야 한단다.

  맞다. 이거 백퍼 아내가 나한테 한 얘기다.




4. 꼰대가 어때서

  나이 먹으면 꼰대가 되는 거다. 내 친구 가운데 한 놈이 있는데, 얘가 우리나라 최초로 파리에서 건축전시회를 했으니 나름대로 유명 건축가인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땅만 사면 자기가 설계를 해주겠다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설계료 비싸게 받아처먹는 걸로 유명한 놈이 정말 무료로 설계를 해줄 수 있을까?

  하여튼 대학 교수이기도 한 얘가 요즘 고민이, 자긴 절대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거. 이런 네미럴. 꼰대가 뭐 어때서. 다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거다.

  그렇지만 가끔 살기 어려울 때도 있다.

  며칠 전, 퇴근하는 셔틀 버스에서 예쁘고 어린 여직원, 아마 스물네 살? 나이만 가지고도 충분이 예쁠 수 있는 시절. 이 아가씨가 생글생글 웃으며 스마트 폰의 카톡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거야 뭐 어때. 문제는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고, 셔틀 안에서, 울 회사는 KF-94 지급해주고 KF-94 안 쓰면 징계하겠다는 회산데, 밀폐된 셔틀 버스 안에서 그러고 있더란 것.

  못봤으면 모르겠는데 봤으니 이걸 어째. 한 마디 하려다, 고 어여쁜 입술에서 이런 소리 나올까봐 꾹 참고 그냥 집에까지 가고 말았다.

  "꼰대가 재수없게 잔소리야."



5. 미더덕

  이거 처음 먹어봤을 때가 아마 1970년대 초순이었을 거다. 외할머니가 시장 갔다 오시더니, 세상에 이걸 서울에서도 팔고 있더라고, 하시면서 보여주시는데, 뭐 외계행성에서 온 생물체 같았다. 그걸 넣고 무슨 요리를 했느냐 하면, 된장찌게를 끓이셨다. 야, 얼마나 맛있던지.

  당시 된장찌게는 그저 버터 넣고 쓱쓱 비벼먹는 게 제일 좋은 섭식법이었지만, 이거 하나 들어갔다고 이렇게나 맛이 바뀌니 신기할 밖에. 두터운 껍질 부분도 꼭꼭 씹어 먹어야 진짜라고 배웠다.

  그래 손자가 묻기를, 외할머니, 이게 뭐예요?

  응. 미드득이야.

  미드득이요?

  그래, 미드득.

  하면서 얘기를 해주시는 바, 외갓집이 제법 살아서 한국전쟁이 터지자 종로 경운동에서 트럭을 타고 한강다리를 건너 마산으로 피란을 갔는데, 마산 아줌마들이 이상하게 생긴 걸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팔더란다. 행상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그걸 넣고 된장찌게를 자박자박하게 끓여 먹으면 그리 맛나다고. 그래서 레시피대로 끓였더니 진짜로 맛이 있더라나?

  근데 이게 이름이 뭘까, 이렇게 의문을 품었던 사람들이 결론을 내기를, 입에 넣고 저 우둘투둘한 껍데기를 어금니로 콱 씹으면 나는 소리, 미드득, 이라고 하자. 그래서 그때부터 미드득이 되었단다.

  이게 세월이 지나 지금은 미더덕으로 굳어진 거다.

  급똥 사태가 생겨 변기에 앉아 힘쓰면 나는 소리가 푸드득, 에서 푸더덕으로 바뀐 것처럼.




6. 명절 보내기

  명절만 되면 짜증나는 기사가, 여자들은 부엌에서 일하고 남자새끼들은 TV 보면서 술 처먹는다는 얘기. 사실 나도 그랬지 뭐. 근데 좀 이상하긴 했다. 언젠가는 고쳐야 할 것으로 찍어 놓았다.

  근데 쉽지 않다. 제사, 차례. 즉 우리나라의 관혼상제 가운데 하나로 근본적인 것을 고치지 않으면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아버지 가시고, 어머니 가시고, 5년이 흘러, 이제 어머니도 제삿밥 5년을 자셨을 때, 형한테 말했다.

  나 죽으면 화장해 바람에 날리고, 새끼들한테 제사, 차례 지내지 말라고 했어.

  형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거기다 대고, 형도 그럴 거 아냐?

  형이 대답을 안 한다. 제삿밥은 먹고 싶은 모양이다. 옆구리 한 번 질러봐야지 싶어서 또 한 마디.

  나도 제사, 차례 안 지낼 건데, 우리도 부모 제사, 차례 지내지 맙시다.

  형이 음복 잔을 연거푸 몇 번 들이키더니, 해야 돼.

  흐흐, 나도 첫 술에 배부르지 않을 줄 알았다. 다음부터 제사, 명절 때마다 꼭 한 마디씩 해대서 결국, 어머니 제삿밥 열 번 자신 다음부터 제사는 지내되 명절에 차례는 지내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봤다. 제사는 나하고 아내만 가서 절 두 번 반 하면 끝이다.

  명절? 아내가 며느리한테 전화해서, 얘, 다섯 명 이상 모이지 말라는데 굳이 올 필요 없다.

  며느리 님이 하시는 말씀이, 걸리면요, 이번에 제가 보너스 받았거든요, 쿨하게 벌금 낼 게요.

  설날 오전 열한 시에 와서 떡만둣국 끓여먹고 세 시에 보냈다.

  바이러스 끝나면 명절 때 굳이 오지말고 여행이라도 가라고 했다. 안 와서 찜찜한 생각 들면, 택배로 좋은 술 한 병만 보내라 했다. 그잖여, 차례도 안 지내는데 구태여 올 필요 읎잖여? 차례를 지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면 여성이 명절 노동을 없애기가 무척 힘들 거다.

  새끼들 오면 우리는 편한 줄 알아? 아이고, 집안 대청소 해야지, 반찬 만들어 놔야지, 하을이 줄 달지 않은 영양과자 사 놓아야지, 우리도 걔네들 왔다 가면 나가 떨어진다고.

  여자들을 명절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키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차례를 지내지 말아라. 그럼 거의 모든 문제가 풀린다. 어떤 것이라도 인식을 바꾸면 거의 해결이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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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2-15 11: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얼돌은 참..ㅋㅋㅋㅋ처음엔 저도 그냥 싫기만 했는데 뉴스를 보니 일면 여성에 대한 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고도하고. 딜×도 있으니 마찬가지 같기도하고.
영화 A.I처럼 주드로닮은 로봇이 나오면 여성들도 구매할것 같아서 반대는 안할래요ㅋㅋ

Falstaff 2021-02-15 11:39   좋아요 6 | URL
ㅋㅋㅋ 저는요, 리얼돌을, 사용할 땐 좋았지만 이제 결혼을 한다든지, 새로 애인이 생긴다든지 해서 버려야 할 일이 생기면 진짜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저는 소주병 버리는 것도 동네 사람들한테 창피하던데 리얼돌은 어떻게 버려야 할지 ㅋㅋㅋㅋㅋ 토막 살해 후 재생 플라스틱? 아이고, 난감하겠다 싶더라고요.

미미 2021-02-15 11:41   좋아요 3 | URL
웃다가 눈물났어요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2-15 11: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3,저 먼저 리얼돌에 대해 검색해보고 다시 왔습니다~~그런 역할을 하는 로봇을 리얼돌이라고 하는군요.
2, 여름에 남성들의 고충을 이해했습니다.그럴수도 있겠군요^^
4, 미더덕에 대해서 할 말이 참 많아요~~
제 고향이 마산 아입니꺼^^
참고로 서울에서 파는 건 미더덕의 미자에도 못미칩니다.
전 지금도 엄마가 미더덕과 콩나물 듬뿍 넣어 만들어준 미더덕찜이 그립습니다.
된장에 들어가도 맛있구요^^
6, 저의 지인의 시어머니께서 당신이 벌금 내어주신다고 가족들 다 모이라고 했다네요 ㅎㅎ

Falstaff 2021-02-15 12:23   좋아요 4 | URL
아, 마산 분이세요?
ㅋㅋㅋㅋ 저 어머니가 피란가서 마산고녀 졸업하셨습니다. 외삼촌은 마산고.
그래 외갓집에 가면 마산 이야기 많이 했어요.
리얼돌은 아직 로봇수준...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그냥 돌, 인형 수준이랍니다. ㅋㅋ

hnine 2021-02-15 1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기만은 꼰대 말고 쿨한 어른 소리 듣고 싶어, 마음에 없는 소리와 마음에 없는 행동 흉내내기 보다는, 차라리 떳떳하게 꼰대소리 들을 각오 하고 필요할때 필요한 소신을 밝히는 것이 진짜 쿨한 어른 아닐까 생각해요.
미더덕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는 말에 그렇게 하다가 그 안에 든 뜨거운 국물 입속에서 터지는 바람에 입천장 다 헐었던 기억이 있어요 ㅠㅠ
천안시장님이 이 글 보시면 ... ㅋㅋ

Falstaff 2021-02-15 13:16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다 나름대로 역할이 있으니 스스로 꼰대라고 나설 필요는 없지만 자리에 어울리는 언행을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hnine님도 경험이 있으시군요. 입천장 데보지 않은 사람은 미더덕 이야기 하지 말라! ㅋㅋㅋ 그것도 나중엔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coolcat329 2021-02-15 14: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남자가 치마를 입는게 더 맞는거 같네요. ㅎㅎ
미더덕 맛있어요♡근데 저도 터뜨려 먹다가 입 안 다 데인적이 있어요 ㅋㅋ
근데 며느님이 안 와도 되는데, 걸리면 벌금 낸다며 부모님 인사드리러 오고 또 시부모님은 앞으로 명절 때 굳이 오지 말고 여행가라고 하시니 서로 배려, 이해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Falstaff 2021-02-15 14:27   좋아요 3 | URL
글쎄 울집은 저도 좀 이상하게 생각해요.
아들 내외, 특히 며느리는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와야 한다고 하고, 시어미는 될 수 있으면 안 왔으면 하고... 시어미는 사실 청소하고, 맛난 거 해서 싸줘야 하고 그런 게 귀찮아서 같아요.
저는 팔자 좋게 굿이나 보면서 하을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백화수복만 따땃하니 데워 마신답니다. ㅋㅋㅋㅋ 요즘 집안들이 다 이럴 거예요.

stella.K 2021-02-15 14: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생각 잘 하셨네요.
저의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신데 조금 더 급진적이시죠.
사람이 죽으면 그만인데 제사 지낸다고 그 혼이 와서 먹고 갈 거냐
먹을 걸 싸 가지고 갈 거냐, 산 사람 고생시킨다고
30년 전에 돌아가신 아부지도 1주기 추도예배만 딱 드리고
여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울엄니는 그 부분에서만 그렇지 옛날분이긴 하죠.ㅠㅋ

Falstaff 2021-02-15 14:30   좋아요 4 | URL
그죠? 근데 전 형도 있고, 큰집도 있고, 고모들도 있어서 가끔 전화해
˝이번 제사 언제니? 오빠 생각이 나서. 나도 함 가볼까?˝
이 정도거든요. 우와.... 여기까지 온 것도 무려 어머니 가시고 10년이 걸려서 억지로 진짜 꼰대 형을 설득한 겁니다. 지금은 자기도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지만요. ㅋㅋ

수이 2021-02-15 14: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박수 백만번 쳤습니다 폴스타프님 완전 멋지다 👍🏻

Falstaff 2021-02-15 15:06   좋아요 3 | URL
ㅋㅋㅋ 고맙습니다.
 
나는 고백한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9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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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기 시작해 110쪽 부근. 한 단어, 한 단어 꼭꼭 씹어먹고 있음. 세상에 이런 작가를 어찌 이제야 알게 됐나. 민음사 웬일이니? 교정도 합격! Jaume Cabre 자우메 카브레. 바르셀로나 출생. Jose Carreras도 바르셀로나 출생. 그럼 호세 카레라스가 아니라 조세 카레라스 아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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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1-02-04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웬일이니‘ 에서 이책 찜이요ㅋㅋ🤔

Falstaff 2021-02-04 16:53   좋아요 3 | URL
ㅋㅋㅋ 아직까지는 만족, 만족입니다.
이게 카탈루냐어 직역이랍니다. 되게 재미있어요, 아직까지는. ㅋㅋㅋ
민음사가 다른 건 몰라도 특히 세계문학전집에선 아주 고른 분포로 오탈자를 내거든요. 그래 너무 오래 오탈자가 안 나오면 이제쯤 나오겠지 기대할 정도였는데, 이 책은 거의 보이지 않는군요. 물론 있기는 있습니다만 이 정도면 뭐. ㅎㅎㅎ

수이 2021-02-04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랏 폴스타프님 읽고 계시네요?! 저도 도서관 가려구요 이 책 빌리러

Falstaff 2021-02-04 16:54   좋아요 3 | URL
오, 아직까지는 이라는 단서를 달고 말하면, 이 책은 대여가 아니라 소장 각인뎁쇼!

수이 2021-02-04 18:5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2월에 책 안 사려고 했는데 😳

coolcat329 2021-02-04 1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우메라고 해야하는거죠? ㅎㅎ

coolcat329 2021-02-04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는 많이 다르다네요. 스페인어에서 ㅎ 발음인 j가 카탈루나에서는 j발음이라네요. 오~~작가가 카탈리나인이니 자우메라고 읽는게 맞는거같아요. 그럼 조세 카레라스인가요??ㅋㅋ

황금모자 2021-02-04 18: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세 카레라스도 카탈루냐 발음 식으로 조세로 읽는 게 정석이지만, 프랑코 집권 시기에 유명해져서 스페인어 발음으로 굳어졌다는, 위키피디아 피셜입니다.

coolcat329 2021-02-04 18:14   좋아요 2 | URL
오 그렇군요~~감사합니다

Falstaff 2021-02-04 19:59   좋아요 3 | URL
스페인이 생각보다 여러 종족들이 있더라고요. 대표적인 것이 마드리드를 기반으로 하는 카스티야 언어,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언어,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게 바스크 말이라고 하던데요, 전 처음으로 헷갈린 것이 Jordi Savall 처음엔 호르디 사발로 알고 몇 십 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이이가 조르디 사발이라는 거예요. ㅋㅋㅋ 그래 곧바로 딴지 걸었던 이름이, 그럼 호세 카레라스가 아니라, 조세, 조세 카레라스냣, 그랬더니 여러가지 말이 나와 걍 모른 척 했던 적이..... 벌써 한 15년 전이군요. ㅋㅋㅋㅋ
세월 겁나 빨라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2-04 18: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 리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잠자냥 2021-02-04 19:11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빨랑 읽으시려면 폴스타프 님 똥줄 빠지겠어요. 이거 무려 전 3권 ㅋㅋㅋ

Falstaff 2021-02-04 19:59   좋아요 5 | URL
담주에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설이 있어서 이거 또 주님의 우편에 계시려면 말입죠!

붕붕툐툐 2021-02-04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연님이 읽고 싶은 책장에 넣어둔 거 봤는데 두 분 찌찌뽕이시네용? 두분이 읽으시고 좋은 평을 하시면 곧 북플에서 이 책 열풍이 불테고, 저도 그 바람을 타고 이 책과 만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Falstaff 2021-02-04 20:01   좋아요 3 | URL
흠. 아직 초장인데 제가 넘 거품을 뿜은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더 읽어봐야 하는데 아이고, 참... ㅋㅋㅋㅋ
 
콜롬비아 아스무까에스 톨리마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6월
평점 :
품절


뭉카제 1.3kg 구입 이후 0.5kg 사서 마심. 맛있음. 순한 맛. 산미 약간 못 미치지만 가격 대비 대박. 뭘 더 바라?
진하게 마시면 더 좋음. (여기에 ˝죽임!˝이라 썼었는데 어감이 좀 그래서 삭제) 여리게 마시면 약간 덜 죽이지만 그래도 홀랑 넘어감. 다만, 구입한 후에 얼른 얼른 드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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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저란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진혜.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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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하게 몇 년 전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열여섯 살의 소년일 때, 그는 대단한 첫사랑을 했다. 상대의 이름을 ‘사라’라고 하자. 소년과 사라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을 했고, 키스를 나누었지만 더 이상은 없었다. 소년은 동정이었고 사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믿는다. 사라는 자신의 풋풋한 마음을 부모에게 알렸다. 호기심이 생긴 부모는 외동딸의 남자친구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 그를 저녁 만찬에 초청했다. 사라의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소년은 다림질한 흰 셔츠와 넥타이, 양복을 차려입고 사라의 현관문을 들어섰다. 광을 낸 구두를 신은 발을 응접실 마루에 들여놓자 소년의 코에는 마루 광택용 왁스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사라의 부모는 소년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하여, 어머니는 자꾸 생선요리를 접시에 담아주었고, 아버지는 진짜 백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백포도주 네댓 잔을 곁들인 만찬이 끝나자 이미 깊은 밤이었다. 사라의 아버지는, 결코 소년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점잖게 너무 늦은 시간이니 하루 자고 가라 은근하게 권했고, 소년 역시 정중하게 마음은 그러고 싶으나 초면에 그리 신세를 질 수 없다고 거절을 했다. 잠시 후 사라의 아버지가 다시 한 번 자고 갈 것을 권했을 때 소년은 마침내 그러하기로 했다.
  방문 앞에서 사라의 키스를 받고 침실에 든 소년은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기뻐 어찌할 줄 몰랐다. 고양된 기분에 고급 백포도주의 취기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그리고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깊은 밤인지는 몰랐다. 자면서 뭔가 축축한 느낌. 방이 온통 물에 젖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소년은 한 순간에 잠이 확 깨면서, 아차, 하필이면 몽정을 했구나, 라고 당황했다. 적신 리넨 위에 남을 흔적에 대한 집중으로 잠깐 고통스럽던 소년은 곧이어 그것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고, 그것이기는커녕, 차라리 몽정이었으면 귀엽기라도 했을 텐데, 배불리 먹은 저녁식사와 백포도주 전부를 침대 위에다가 토해놓은 거였다. 심지어 똥까지 싸놓았으니 이 불쌍한 소년을 어찌할까. 그의 나이 겨우 열여섯 살, 고1 정도에 불과한데. 소년은 벌떡 일어나 의자 위에 벗어놓은 셔츠와 양복과 양말을 들고, 구두를 신은 채 살금살금, 사라의 부모가 눈치 채지 못하게 집을 벗어나 벌판을 뛰기 시작했다. 수치심으로 울부짖으면서. 이후 소년은 단 한 번도 사라와 마주치치 않았다.
  <파저란트>는 이 소년이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의 성인남자가 된 후 연이은 여행을 떠났던 이야기다. 나는 두 번째 장chapter에 나오는 위의 에피소드를 주목했다. 열여섯 살 때 저런 경험을 당했다면, 이 소년, 이젠 소설의 화자 ‘나’가 평생 짊어지고 다녀야 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작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독일 각지에 친구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독일의 모든 곳을 다녀본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자신이 벌었는지, 가문으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소년, ‘나’는 고급 호텔에 숙박하며 비싼 술을 마시고 싶을 때까지 마실 수 있는 부르주아이며, 심지어 프롤레타리아들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물론 친구들 가운데는 프롤레타리아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어서 일부러 다 해진 옷과 신발을 신고 다니기도 한다. ‘나’와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 역시 최고급 승용차인 S시리즈 메르세데스 벤츠에 카폰을 달고 다니고, 거대한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라한 카페나 아파트에서 열리는 파티를 찾아다니며 프롤레타리아들과 마약에 취하기도 한다. 대단한 재산의 상속자 자격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인텔리나 부르주아 떨거지들을 불러 파티를 열어주기도 해야 한다. ‘나’는 이미 상당한 단계까지 알코올 의존증에 도달해 있으며 고급 담배를 거의 체인처럼 물고 다니는데 결코 아름답지 않은 담배연기를 비행기 금연석에 앉아 뿜어내는 취미가 있기도 하다. 책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나’의 대표적인 경향은 남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는 것.
  책을 열면 ‘나’가 있는 곳이 독일 최북단, 누드 비치로 유명한 쥘트 섬이다. 한때 몸이 대단히 비대한 괴링이 여름을 보내곤 한 휴양지. 한 번은 그가 ‘피와 명예의 단도’를 분실해 포상금을 걸고 해변을 샅샅이 뒤져 보이 자르센이란 젊은 농부가 포상금을 탄 적도 있는 곳. 이젠 늙은이들의 누드 비치. 이렇게 곳곳에서 ‘나’는 과거 나치의 흔적이나, 이제 나치의 적어도 일부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는 사민당-나치를 곳곳에서 불쑥 발견하기도 한다. 일찍이 나치를 탄생시켜본 경험이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 이건 마치 열여섯 살 때 겪었던 치명적인 수치스러움을 평생 지녀야 하는 ‘나’의 원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상대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오직 하나의 꿈을 가지고 산다. 여배우 이사벨라 로셀리니와 결혼 해 아이도 두엇 두고, 저 북쪽의 황량한 섬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겨울 내내 두꺼운 옷을 입은 채 세상과 연을 끊고 사는 일.
  그건 그냥 희망이다.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나’하고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아마 없을 거 같다. 그러면 희망이라기보다 꿈이다. 독일의 몇 군데를 다니면서, 당일치기로 그리스의 동성애자 해변이 있는 섬에까지 다녀와 봐도 ‘나’는 뚜렷한 정체도 없고, 목적도 없고, 그저 술을 마시고, 구토하고,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에도 어쩔 수 없이 마약 또는 신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알약도 한 번 먹어보고, 무엇보다 정처가 없다. 스위스 취리히에 닿기 전까지. 하이델베르크와 비슷하지만 보행자 전용도로도 없고 아직도 전차가 다니는 취리히.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아하, 토마스 만이 취리히에 묻혔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취리히 근교, 토마스 만이 잠든 공동묘지를 찾아가지만 날이 어두워져 만의 무덤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어서, 독자인 나는 뻥! 머리가 어질어질. 결말이 이런 거였어?


  <망자들>을 인상 깊게 읽어 곧바로 크라흐트의 책 두 권을 샀다. <파저란트>는 1995년에 발표했고, 우리나라에선 2012년에야 번역, 출간했다.  이 책 역시 대단히 인상 깊다. 물론 내 취향하고 맞지 않는 것도 자주 등장한다. 출연진들이 너무 자주 술과 마약을 하고, 구토도 한다. 물론 꼼꼼히 읽어보면 정말로 구토한다기보다 일종의 비유법으로 구토를 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여간 구토, 하면 좀 지저분하다. 다른 과한 장면도 있고. 그것만 아니었으면 누구에게나 권할 텐데.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발표한지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참신한데 말이다.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앞으로도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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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2-0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어나가다가 ‘결말이 이런 거였어?‘ 때문에 급 읽고 싶어졌는데요,
저도 마약과 구토..가 너무 싫어서 또 망설여지네요.

제가 오래전에 읽은 책들 중에서도 이런 게 있었어요.
‘에릭 라인하르트‘의 <신데렐라>라는 책인데요, 검색해보니 2010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이네요.
여기에 보면 주인공이 연정을 품은 상대의 집에 찾아갔다가(사춘기였던 때로 역시 기억합니다) 그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갑자기 설사가 나올 것 같아 그 집 화장실에 찾아갔지만, 옷을 벗는 속도가 다소 늦었던 겁니다. 네...........
그래서 팬티에.... 이 일을 어쩌나,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싶어 난처해 화장실에서 나가지 못하는데 하도 안나오니 바깥에서는 아 유 오케이? 차 준비해놨어, 나와서 마셔~ 하고, 소년은 에라 모르겠다, 냄새나는 팬티를 벗어던지자, 하고는 멍청하게도 그 팬티를 변기에 넣고 돌려버리는 겁니다....


이 책은 이부분만 생각나요. 책이 두꺼웠는데 책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고요. 하하.
으..싫다.

술과 마약, 구토는 너무 싫지만, 머리가 어질어질 결말이 어떤걸까 너무 궁금해서, 저는 또 장바구니에 담으러 갑니다. 그럼 이만..

Falstaff 2020-12-01 09:39   좋아요 0 | URL
으, 술, 구토 싫어하시면 읽지 마세요. 정말 힘듭니다. 소싯적에 술 마시고 똥은 싸본 적 없어도 잠자리에 구토해본 입장에서, 묘사가 너무 리얼해 정나미가 뚝 떨어질 정도입니다. ㅋㅋㅋㅋㅋ
마약 하고 취한 중에 벌어지는 일도 위에다 묘사를 안 해서 그렇지 참 역겹고요. 대신 을유에서 나온 <망자들>을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Falstaff 2020-12-01 09:42   좋아요 0 | URL
결말도 쇼킹한 거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만 팍 공감이 와 닿을 텐데요, 그거 가르쳐드리면 스포일러, 재미가 적어질 거 같아서 제목을 숨겼습지요.

다락방 2020-12-01 09:56   좋아요 1 | URL
망자들 검색해보겠습니다. 아이참, 폴스타프님은 제가 모르는 책을 너무 많이 알고 계셔서 올 때마다 제가 검색하느라 바쁩니다. ㅎㅎ

저는 소설 읽으면서 대부분 잘 공감하는 편이긴한데 유독 마약 얘기는 힘들더라고요. 도무지 공감이 안되고 공감에의 의욕 조차도 안생기는 것 같아요. ㅠㅠ

2020-12-01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