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 열하 1
임종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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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거다. 1780년이면 바야흐로 아메리카에서 미국 독립을 위한 전쟁이 극렬하게 벌어지고 있어 지구 상에 거의 처음으로 인권 및 평등, 그리고 자유 사상이 싹을 트기 시작하던 때로 5년 후면 미국이 독립을 하고 그후 4년 더 있으면 드디어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바스티유의 공고한 벽을 인민의 힘으로 무너뜨리게 되는 그런 시점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눈을 아시아로 돌려보면 명조 시절 정화의 원정 이후 굳게 문을 닫아버린 중국은 폐쇄정책으로 인하여 국가경쟁력을 스스로 묶어버렸으며 교류가 세계최정상의 문명과 문화를 누리고 있는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 없다는 판단으로 오히려 공고한 만리장성을 굳건하게 보강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런 모든 조치들이 자신들이 세계에서 최강이라는 오만에서 나온 것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급격하게 중국과 동아시아의 세계적 정력은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아이러니. 중국으로부터 총기제작술을 받아들여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라비아 민족들을 먼저 쓸어버린 다음, 총과 대포기술과 더불어, 인류 발전 역사를 2차 함수 곡선으로 발전시킨 항해술의 발달을 기초로, 라틴 아메리카 인류의 대대적 학살과 희생을 바탕으로, 유럽이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 세계사의 영광은 동아시아에서 한 순간에 유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후 3세기 가량이 흘러 유럽의 여러나라가 최종적으로 중국을 침탈할 목적으로 아시아에 접근을 시도하였지만 헛된 중화의식에 빠져버린 청조는 이를 유럽이 청조에 조공을 하기 위해 알아서 설설 기는 줄로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고, 하다못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태평성대라고 곳곳에 함포고복의 격양가가 높았던 시절이다. 문명국 가운데선 가장 야만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조선엔 정조라고 불리울 젊은 왕이 등극해 나름대로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의 뜻을 세우기 위해 애를 썼으나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노론으로 대표하는 수구세력, 썩어자빠져 이미 멸망해 백골마저 흩어져버린 명나라를 잊지못해 대명의리론大明義理論에 입각해 청조를 치느니 마느니 헛소리로 날밤 까는지도 모르는 세력들을 견제하느라 자신의 친위대 양성에 힘을 쏟아 군권을 손에 쥐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와중이다.

 작가 임종욱이 딱 이 시기를 잡아,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을 북학파의 거두 연암 박지원을 등장시켜 제목도 근사하고 책 껍데기 역시 근사하며 900쪽이 넘는 화려한 디자인의 <1780 열하>를 썼으니 어찌 관심이 없을 수 있었으랴. 그리하여 일찌감치 이 책을 한 번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가, 작년 말에 기쁜 마음으로 책을 산 다음, 드디어 지난 주에 금요일에 책을 읽기 시작해 일요일 오전까지 바득바득 책을 다 읽어치웠으니 어찌 감상 한 마디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공들여 쓴 작가 임종욱은 "습작"을 자신있게 책으로 만들어, 즉 아무리 책일지라도 독자의 기대와 감동과 감동까지는 아니라면 적어도 동감을 주는 대신 자신과 출판사는 돈를 받을 '상품'으로 만들어냈으니 여기서 임종욱의 기개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독자서평을 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습작이라고 표현한 독자가 한 명 있었고, 그에 대해 굳이 답글을 단 저자 임종욱은 '자신의 작업을 습작이라고 하니 민망하다'는 취지로 이야기 했다. 임종욱의 유감표현에는 동감을 한다. 나름대론 아니라고 여기겠지.

 내가 <1780 열하> 1권에서만 습작이라고 결론 낸 것들을 조금 이야기해보겠다.

 1. 프롤로그를 시작하면서 정문탁이 송지명 교수의 강연을 찾아가는 데애 대하여 무지막지 우연을 강요하고 있는 거 (45쪽)

 2.강원도 사람이 충청도 사투리 쓰는 거. "아부지, 거 정말 오랜만에 듣는 영양가 있는 소리구먼유. 어서 가서 성사시키세유."  53쪽. 아, 세계를 정복한 충청도 사투리. 잉글랜드 촌놈 토마스 하디가 쓴 <테스>에서도 미모의 여주인공 테스는 거침없이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3. 강력계 형사가 한겨울에 난데없이 양복을 벗었다가 다시 입어서 지나가는 행인이 형사의 겨드랑이에 달려있는 권총을 보게해? (144쪽)

 4. "40, 불혹(不惑)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신 아버지" 218쪽에 이렇게 나오는데, 바로 다음 페이지엔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자 조형사는 어머니와 작별할 수밖에 없었다. 병들고 야윈 아버지 곁에서 남편의 몸을 보살펴야 하는...." 이란다. 그럼 아버지가 스무살이 안 돼 조형사를 낳았다는 얘기. 219쪽에선 굳이 왜 아버지 얘기가 나와야 했는지 혹시 감정팔이 아냐?

 꿈 꾼 이야기가 너무나 자주 뜬다는 것 등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는데, 수첩 옆에 두고 위와 같이 메모하다가 책 한 권 읽으면서 내가 뭔 지랄인가 싶어서 관뒀다.

 그리고 임종욱의 생각과 내 생각이 너무나도 극적으로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을 경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종욱은 예외다. 내가 아무리 나와 다른 의견도 받아들이지만 히틀러 개새끼나 스페인의 프랑코 개자식의 의견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임종욱은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정문탁의 입을 빌려 자신의 의견임에 분명한 다음 발언을 한다.

 "나는 그때(주: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있었던 원자탄 피폭) 좀 더 많은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두 발(주: 당시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로 정신을 차리기엔 일본인은 너무 교만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다. 저지른 짓은 다 잊고, 당한 일만 기억하는 아집은 뇌의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376쪽)

 이 부분을 읽고 임종욱이 순혈 아리안 족으로 독일 땅에서 태어나 1935년에서 1945년 까지 젊은 시절을 보내지 않은 것에 진정으로 안도했고, 같은 이유로 1910년에서 1945년 까지 조선반도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 경찰에 복무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로서는 천만 다행이었으며, 1975년부터 79년까지 캄보디아의 권력층 바로 아래 행동파 책임자로 활동하지 못했던 것을 천우신조라고 여겼다. 뭐 이딴 자가 다 있는가. 20만 명의 일본인, 굳이 일본인이 아니라도 인간의 목숨이 그렇게 우습게 보인다는 거야? 그러나 더 이상 열을 내진 않겠다. 아침이라서. 나, 사람 됐다.

 한 마디로 이런 사람이 쓴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 비록 자신이 낸 책을 한 번 읽어보니 교정이 개판이라 백개의 단어에 육박하는 정오표를 따로 인터넷 책방에 깔아놓는 양심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도 참 우스운 것이, 자기 책이 그렇게 소중했다면 책이 나오기 전에 교정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어야지, 다 나오고 이미 독자도 그걸 끝까지 읽었는데 그제서야 기껏 성의표시를 하고, 교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 책임이 아니라 출판사 교정 담당자 책임이다 이거지? 그것도 이해해주겠다. 책 나온 것이 기쁘고 즐겁고 우쭐하기 한량없어 더 좋은 퀄리티의 책을 발간하기 위해 교정을 본들, 틀린 단어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말이다. 아주 전형적인 습작 작가의 행태.

 2권 100쪽 못미쳐 난 심각하게 고민했느니, 이걸 마저 다 읽어? 말어? 습작작가의 전형적인 모습, 기본이 안 된 증거들이 끊임없이 발견되는데다가  위에서 말한 원자폭탄 이야기가 거슬르기 한이 없었지만 역시 아까운 건 책값이었다. 그래, 책값은 비교적 저렴하다. 두 권에 2만원. 그것도 아까워 끝까지 다 읽었으나, 읽자마자 곧바로 '버릴 책들'로 구분해서 책꽂이에 꽂히지도 못하고 그냥 방 구석에 옆으로 쌓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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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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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아자르, 하니깐 생각나는 것이 1978년 김만준이 노래한 가요 <모모>와 이 노래의 주인공 모모가 미카엘 엔데의 <모모>에서 남의 말 잘 들어주는 소년 모모가 아니라 바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온 모모라는 거. 연애하던 아가씨한테 '모모'란 별명을 지어주었더니 좋아하더란 기억. 평생 저지른 바보같은 일 가운데 하나가 약대 다니던 그 아가씨 놓친 일인데 물론 백퍼 경제적 이유로 바보같은 일이었다는 것이지만 하여간 그 아가씬 털이 많아 무릎 아래(무릎 위에 관해선 노 코멘트) 다리털이 피부에 밀착한 나일론 스타킹 때문에 옆으로 마구 누워 있는 건 물론이고 일부는 스타킹을 뚫고 비죽 나오기도 해서 털이 많다는 의미로 '모모' 즉 우리 말로 '털털'이라고 별명을 지었다는 걸 무슨 심사인지 하루는 그녀에게 알려주었고 하마터면 그날로 세상 하직하는 줄 알았다. 그날 이후로도 하필이면 약학과 재학중인 아가씨가 어느날 시침 뚝 떼고 극미량의 시안화칼륨을 내 소주잔 주둥이에 싸악, 발라놓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간혹가다가 으드득 몸을 떨기도 했다. 아, 물론 조금 과장해서 그랬다는 거다.

 당시엔 에밀 아자르가 세계적으로 문제적인 작가 로맹 가리와 동일인인지 아무도 몰랐고, 나도 여태까지 몰랐다가 어제 <가면의 생>을 표지 앞날개에 나온 연표를 보고야, 아 그새끼가 이새끼였어? 이거 완전 사기꾼이네, 알았다. 전혀 몰랐던 쇼킹한 이야기를, 사실이 밝혀진 후 36년 반이 지나 알아채면서도 이렇게 험하게 욕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숱한 독자들이 <가면의 생>을 느므느므 좋은 작품이라고 평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도무지 이 작품에 동의하지도 못하겠고 공감하지도 못하겠고 만일 문학적인 성과가 있다면 그 성과가 무언지도 도무지 모르겠어서이다. 이게 소설이야? 암, 소설은 소설인데 진짜 잘 쓴...., 하이고 내가 뭐라고 위대하다고 알려진 한 작가가 쓴 소설을 잘 썼네 아니네 까탈을 잡고 지랄이냐고 물으신다면 차마 어떻게 여쭈어야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이건 내가 쓰는 독후감이니만큼 전적으로 내 의견을 말씀드리면, 한 우울증 환자의 사색과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데에 대한 변명,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지적 애로사항 같은 걸 늘어놓은 넋두리를 소설의 형식을 빌어 써 갈겨놓은 거다.

 그런 의미에서 썅, 아마추어가 겁없이 주둥이를 한 번 열어보자면 이 소설은 전립선 비대증을 심각하게 앓고 있는 에밀 아자르가 이미 죽어버린 로맹 가리의 시체 위로 힘없는 오줌줄기를 졸졸졸졸졸졸 흘려놓은 자국이다. 방광은 터질 거 같이 부풀었는데 그만큼 비대해진 전립선 때문에 그치지도 않고 시원하지도 않게 그냥 질질 새서 흘러나오기만 하는 에밀 아자르의 가느다란 오줌줄기(漏尿)가 이미 죽어버린 스스로의 몸뚱이 위로 떨어지는 낙루를 댓 발자국 가량 떨어져 지켜보는 일, 이게 이 책을 읽는 일.

 적극적으로 비추! 이름 값에 속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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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2-0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毛毛) 푸하하하하하. ㅋㅋㅋㅋ 아침부터 터졌습니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마음산책 시리즈는 작품 편차가 크더라고요. 어떤 것은 좋은데, 어떤 것은 왜 읽었나 싶고. 암튼 전 로맹 가리 최고 작품은 아무래도 <자기 앞의 생>인 것 같습니다...

Falstaff 2017-02-06 10:43   좋아요 0 | URL
^^;;
제가 그렇게 살았습죠. 에휴.....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 1
장마리 블라 드 로블레스 지음, 김병욱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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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할 것은, 알라딘 서재에서 다른 가게 얘기하는 게 좀 안됐지만, 인터넷 서점 가운데 Yes24 딱 한 군데만 2017년 2월 2일 현재 품절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이 책이야말로 출판사 열린책들이 가끔 하는 기특한 일, 숨어있는 훌륭한 작품을 소개하는 작업 가운데에서도 앞줄에 서야한다는 거. 눈치채셨으면 얼른얼른 주문하시는 편이 좋을 듯. 거기도 재고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르니. 

 우리나라 독자들이 이 책의 제목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흠, 그거 아시나? 오늘의 독후감을 쓰기 위해 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일부분을 다시 읽어봤으며 흡족하지 않아 그걸 각색하여 오페라로 만든 베르디의 <막베트> 4막 대본을 들춰가며 기어이 문제의 이탈리아어 아리아 가사를 노트에 적어온 거. 4막의 테너 아리아, 맥더프, 오페라에선 막두프가 이렇게 노래한다.

 "Ah, fra gli artigli di quel tigre to lasciani la madre e i figli?"

 이걸 구글 번역기(이탈리아어 → 영어)를 돌리면 다음과 같이 된다.

 "Ah, between the claws of the tiger that I leave the mother and the children?"

 또 위 영어를 순화된 한국말로 해볼까?

 "아, 이 곤란한 처지를 맞아 내가 처자식을 버렸단 말인가?"

 흠. 나답지 않다. 너무 순화한 훈민정음이다. 좀 솔직한 정서로 바꿔보자.

 "아, 처자식을 맥베스 개같은 새끼의 발 아래 버려둬야 한단 말이냐?"

 내가 우리 말로 번역하면 어떤 경우에도 본문에서 나온 tigre 혹은 tiger 즉 호랑이 또는 범이 나오지 않는다. 직역해서 "아, 처자식을 범의 발톱 아래 두고...." 라 할 경우에 구닥다리 한국인들이 범을 생각할 때 떠오를지도 모를 은근한 경외 같은 게 앞설 수 있고, 하여간 복잡하다. 또 어려서부터 무수히 들어온 동화 때문이라도 이 책의 제목 "La Ou Les Tigres Sont Chez Eux"를 그대로 번역하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제목의 구태의연함 때문에 책을 읽고싶은 마음이 뚝 떨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됐든 간에 책의 제목을 역시 순화한 훈민정음으로 바꾸면 '폭력과 야만이 판치는 나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여러말 할 거 없다, 어쨌든 우리말로 직역한 제목은 후지다.


 근데 책은 절대로 그러하지 않으니, 작가 로블레스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십수년 간을 자료도 모으고 궁리도 하고 세계 각지로 여행도 다니고 했다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이 모든 준비와 준비기간이 그의 융숭한 지식적 밑받침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호랑이....> 같은 대단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1,000 쪽이 넘는 장편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움베르토 에코, 그래봤자 아직 그의 책은 <장미의 이름> 한 밖엔 읽어본 게 없지만 하여간 에코가 떠올랐는데 그건 이 책을 끌고가는 주요 에피소드, 17세기를 살았던 과학자, 천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가톨릭 신부의 명함을 가지고 다니던 아나타시우스 키르허의 일생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20세기 말에도 여전히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에서 바로 그 키르허를 연구하는 남자 엘레아자르 폰 보가우의 일가족, 즉 브라질 통신원 엘레아자르, 이혼소속 중에 있는 처 고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인 일라이니, 민속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공부보단 프리섹스와 마약에 더 몰입하고 있는 철딱서니 없는 딸 모에마, 그리고 이 세 사람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참여하는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20세기적 혼돈이 책의 주 내용이다.

 재미있거나 흥미를 돋을 만큼 훌륭한 책일수록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야박한 나는, 이 책의 경우엔 아직도 책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더 스토리를 숨길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다만 이 책을 읽는 재미 가운데 첫번째는 17세기의 현자 키르허 신부의 과학적 발견과 발명, 심지어 이집트 상형문자의 성공적 해석이 세월이 몇 백년이 지난 지금 시선으론 허황하기 짝이 없고, 게다가 그가 발견 또는 해석해낸 모든 진리가, 세상의 진리란 어느 하나 예외없이 기독교적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는 아전인수로 귀결하는 거, 엉뚱하기 짝이 없는 당대의 진실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낄낄거릴 수 있는 독자의 권리를 누리는 일이다. 자신이 발견한 모든 헛된 진리를 죽을 때까지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으며, 죽음의 침상에서조차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나가는지 저울로 달아보라는 유언을 하는 위대한 신학자이자 과학자. 아, 그리고 책이 끝나는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기막힌 반전. 비록 시점을 현재로 돌려 키르허를 연구하는 엘레아자르 가족사가 하도 기가 막혀 그리 큰 충격은 주지 못하지만 17세기의 사건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실로 어이없어 할 실소와 어처구니 없는 반전도, 사람을, 돌아가시게 한다. 그러나, 흐흐흐, 이젠 그게 뭐냐고 묻지도 못하시겠지? 절대 알려드리지 않을 테니까.

 20세기 말의 라틴 아메리카는 여전히 야만과 폭력이 창궐한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들로 사방으로 진흙탕을 튀었고, 진흙탕 속에선 여전히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것을 가졌으며, 없는 자들은 가진 자들에게 그나마도 빼았기고 있었다. 그리고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에 사는 인간들의 앞날엔 여전히 자욱한 안개만 뒤덮고 있었고.


 장마리 블라 드 로블레스, 이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비록 아직 번역해 나온 그의 책은 이것 말고는 없지만.... 눈에 띄었다만 봐라! 파리를 낚아채는 카멜레온처럼 낼름, 잽싸게 읽어치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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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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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근사하지? 근데 그림을 잘 못 그렸다. 책을 읽어보면 저렇게 등판대기에 용 문신을 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주인공이기도 한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등장하지만 종이 위에 활자로 써 있기를, 오른쪽 견갑골에서 허리 쪽으로 용 문신을 새겼다고 했다. 저게 어디 오른쪽 견갑골이냔 말이지. 아 왼쪽 오른쪽 헷갈리면 옛날 어른들 말하듯 밥먹는 쪽, 아닌쪽 이렇게 구분하면 될 걸 말야.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왕 문신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의 아시아건 아메리카건 아니면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살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이건 여염집 교육 잘 받은 아가씨가 자기 몸뚱이에 커다랗게 용 한 마리 새기고 다닐 수는 없는 걸로 미루어, 이 아가씨의 정체를 부랑집단 혹은 펑크족, 혹은 하드록 계열의 악마주의 광팬, 어쨌든지간에 사회 일반에 말 그대로 일반상식에 입각한 적응에는 계속적으로 실패해온 아가씨라고 짐작을 할 수 있고, 전적으로 그 의견은 맞는다. 리스베트의 유일한 취미는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정보처리 관련 놀이, 특기는 그리하여 습득할 수 있었던 세계 최고 수준의 해킹능력. 원래 진정한 천재는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법이라 리스베트 역시 코흘리던 유년시절부터 자신의 주변에 완벽한 벽을 둘러치고 오직 그 속에서만 자아를 키워나가는데 그걸 우리는 사회부적응이라고 부르고 일종의 정신병 취급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스웨덴의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정책은 말한다. 그리하여 스웨덴의 선량한 정부는 이미 스무살이 넘어 완벽하게 성인이 된 리스베트에게 여전히 금치산 비슷한 명목을 붙여 그녀를 후견인의 관리하에 두는 친절을 베푸는데 리스베트가 운이 좋아 나같이 선량한 후견인을 만난다면 별 문제가 없을 뿐더러 그나마 사회에 적응하며 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주변에 가끔 섞여 있지만 결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개또라이 사이코 변태 사디스트 같은 작자한테 걸려버리면 그야말로 인생 조져버리는 첩경으로 접어들게 되는 거다. 논리적이고 사회복지적인 나라 스웨덴의 선량한 정부는 결코 금치산 사회부적응자, 쉬운 말로 하자면 미친년의 호소에 절대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사냥꾼 이야기다. 책 제목이 결코 즐겁지 아니하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니. 먼저 제목에 관해 왈가왈부를 해보자면, 여기서 말하는 남자들은 세상의 모든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증오하는 일부 남자들이고, 여자를 증오한다는 건 해당 여자가 해당 남자에게 이해하지 못할 사기를 쳤다든지 남자가 사는 집구석에 확 불을 싸질렀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갑자기 자신의 블라우스를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버리더니 냅다 파출소로 쳐들어가 저 새끼가 날 겁간하려 했어요, 새빨간 거짓말을 해서 남자로 하여금 황당하지만 빼도박도 못할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든지 해서 타당하게 여자를 증오하는 정상적인 남자를 일컫지 않는다. 그럼 왜 여자를 증오하느냐 하면, 그냥 증오하는 거다. 만일 내게 그들이 왜 여자를 증오하는지 굳이 얘기를 해보라면, 여자이기 때문에, 이 빌빌한 남자새끼들 보다 근육에서 발현하는 체력이 약해 이 빌빌한 남자새끼가 쉽게 제압할 수 있으며 제압의 과정에 이 빌빌한 남자새끼에게 야릇한 쾌감을 유발해 쾌감의 증폭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성폭행을 할 수도 있으며, 그 후에도 완벽하게 굴복시키다가 이제 흥미가 떨어지면 기꺼이 목숨을 거두어 상대적으로 남자보다 체중이 가볍기 때문에 죽은 시신을 처리하기 쉽기 때문에, 그래서 여자를 골라 연쇄적으로 죽이는 행위를 눈꺼풀 하나 까닥하지 않고 행할 수 있는 일부 사이코 개또라이 빌빌한 새끼들이 희생의 제물인 여자를, 증오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견해는 솔직히 말해서 내 견해가 아니라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빼빼마른 아가씨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의견이다.

 아, 너무 나갔다. 이 이야기는 하지 말고 단지 스웨덴의 거대 그룹사를 이끄는 방예르 가문에서 40년 전에 있었던 한 여자아이의 실종 사건만 얘기하고 위에서 써 놓은 사건은 시침 뚝, 그냥 넘어갔어야 하는 건데. 지금 막 그러려고 했지만 하이고 위에 써 놓은 것이 너무 길어서 걍 놔두기로 했다. 어차피 이 책은 웅진[뿔>에서 절판을 만들었고 다신 찍을 생각이 없어보이니 진짜로 읽어보실 수 있는 분이 그리 많지 않아 좀 덜 캥기기는 한다.

 이 책은 스티그 라르손이 '밀레니엄 시리즈'로 장편소설 한 열편 가량을 구상해서 쓴 최초의 작품인데, 여기서 말한 밀레니엄이 100년 마다 한 번 씩 출현하는 그 밀레니엄인지, 아니면 이 책의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근무하는 잡지 출판사 밀레니엄을 가리키는지, 이 책에선 분명하지 않다. 내용으로 보면 두번째 경우인 거 같긴 하다. 근데 스티그 라르손, 이 재미난 이야기꾼이 밀레니엄 시리즈를 마구 써내려 가다가 세번째 작품을 완료하고는 어느 날 갑자기, 그때가 2004년인데 밤에 잠을 자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밀레니엄 시리즈는 세개의 장편소설로만 남게 되었고, 난 반드시 이 세 밀레니엄 시리즈를 다 읽고 말 것이다. 왜? 왜긴 왜겠어, 재미나니까 그렇지.

 다시 방예르 가문의 40년 전 실종사건으로 돌아오면, 물론 내 경우이지만 2권에 들어서면 40년 전에 실종된 하리예트 방예르가 적어도 어떤 상태인지는 알아챌 수 있는 것이 흔히 말하는 '옥의 티'지만 삼사백년에 걸친 방예르 가문의 온갖 오욕에 전 가족사 속의 흉물스런 흔적들을 보는 재미, 예컨데 메이드 인 스웨덴의 파시즘, 스웨덴 내에서의 나치 추종자들, 그들이 가족 내에서 행했던 정치색 등도 굉장히 흥미로울뿐더러 그거 말고도 여러가지 재미난 에피소드가 그야말로 널.려.있.다.

 아, 처음에 했던 사냥꾼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거. 주로 여자들을 골라 잡아다가 갖은 변태적 방법으로 성폭행을 하고 기어이 죽여버린 다음에 시신을 유기하는 개또라이 사이코들도 사냥꾼이랄 수 있고, 또 그걸 잡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사냥꾼을 사냥하는 또다른 사냥(이걸 '역사냥'이라고 하자)꾼일 수 있어서 한 얘기다. 이야기가 이러니 묘사 중에는 아주 간혹 잔혹스러운 장면도 등장하는데 견디기 힘든 수준은 아니고 숱한 사냥과 역사냥을 건너면서 근본적으로 울컥, 화딱지가 나기도 하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독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감정에 빠지게 하는 작품. 우린 이런 작품을 가지고 재미나다, 라고 말한다.

 힌트 하나 더 드릴까? 위에서 말한 역사냥꾼이 누구게? 흐흐, 얼핏보면 열 두살 가량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키 작고 빼빼마른 아가씨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두고 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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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필즈 1
마틴 에이미스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부터 3일간 출판사 열린책들과 웅진[뿔>에서 발간했으나 절판된 장편소설 세 편을 올린다. 이 책들은 적어도 내가 읽은 바로 얘기하자면, 대단한 성가를 누릴 만한 참신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출판사를 잘못 만나 광고에 실패했든지, 출판의 방향을 달리해(웅진은 요새 어린이 책과 비문학 도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하여간 제대로 명을 누리지 못하고 한국의 독자로 하여금 이젠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들이다. 오늘은 첫순서로 마틴 에이미스가 쓴 문제작 <런던 필즈>. 일찌기 서구적 유머로 유럽인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그러나 극동 아시아 독자에겐 웃음의 코드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한 <럭키 짐>을 쓴 킹슬리 에이미스의 친아들인 마틴이, 이번엔 세계 누구라도 참 흥미롭고 재미나고 가끔가다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작품을 썼다. 난 런던엔 가보지 못해 잘 모르지만 거기 가면 런던 필즈라고 하는 공원이 있는 모양이다. 제목은 그 공원에서 따왔으나 소설의 무대는 그냥 런던의 거의 전지역을 망라하며 진행한다. 굳이 제목에 집중할 필요는 없을 듯.

 책은 한 관찰자, 즉 소설을 쓰는 에이미스의 분신이랄 수 있는 '샘 영'이란 이름의 미국 소설가. 근데 이 인간은 소설가이기는 하지만 자기의 뇌로 하여금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딱 자기가 런던에 체류하려는 기간에 벌어지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벌이는 엽기 살인사건을 그대로 취재하여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삼류인간이다. 이 인간 앞에 런던의 젊은 난봉꾼이자 양아치이자 제대로 되지도 못하는 잡사기꾼이자 임균성 요도염에 걸려 이에 항의하는 아내를 무조건 패버림으로 해서 자기로부터의 전염을 부인하는 파렴치한 남편이자, 어여쁜 젖먹이 딸아이의 엉덩이를 담배불로 세군데 지져버리는 비정의 호로새끼이자 기타등등을 다 합쳐 개 썅노무새끼인 키스 탤런트란 살인 예정자가 등장한다. '키스'라고 하니깐 두 사람이 입술 맞대고 쭙쭙쩝쩝대는 그 키스가 생각나시겠지만 그거 말고 재즈와 바흐의 연주에 일가견이 있는 키스 쟈렛의 그 키스Keith를 말하는 것인데, 그가 앞으로 죽이기로 예정되어 있는 인간은, 키스가 세상의 파렴치한임을 감안하면 무쇠팔 무쇠주먹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 연약하기 짝이 없거나 적어도 완력으로는 체력 빌빌한 자신이 그나마 해치울 수 있는 상대로서, 여성이란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으며, 그녀는 또한 가히 한 소설의 주인공이란 타이틀에 걸맞을 정도로 재색을 겸비한 뛰어난 미모와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정조관념 따위는 개한테 던져준 이른바 개방적 또는 여혐자들의 개삐딱한 의미에서 이른바 진보적 여성의 최첨단에 우뚝 선 미모의 니컬라 식스. 우리가 흔히 범하곤 하는 잘못 가운데 가장 큰 거 하나가, 주로 소설에 등장하는 경국지색 미모의 주인공은 마음씨가 비단이거나 아니면 운명의 장난으로 말미암아 비련의 수렁텅이에 빠지겠거니 하지만 니컬라 식스는 가히 20세기 말인 1989년에 등장한 히로인답게 무참하게 한 남성 가이 클린치를,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 입에 물고 빨아대며 나온 귀족출신에다가 제대로 된 집구석의 제대로 된 부자님 도련님이 대개 그렇듯이 인간 하나 진국이라 반듯하기 그지없어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하기 짝이없단 평을 듣는 무골호인 하나를 치명적으로 유혹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 두루두루 여러방면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렁으로 푹 빠뜨려버리고 만다. 작가 마틴 에이미스 혹은 화자 샘 영이 말하기를 천하의 잡놈 개썅노무새끼 키스 탤런트를 살인자, 미모의 팜파탈 니컬라 식스를 피살자, 순진한 멍청이 가이 클린치를 조연이라 칭하며 이 세명이 대책없게 벌이는 좌충우돌을 정말 재미나게 그리고 있다.

 몰론 내가 오늘 비교적 상세하게 책의 이것저것을 소개하는 건 이 책이 절판 상태라서 따로 읽어보실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겠으나 사실 이 정도의 양념으로 책 읽는 재미를 넘겨짚기란 일곱명의 봉사가 코끼리를 더듬어 어떤 동물인지 분간하려는데 하필이면 그 큰 부랄 하나를 콱 쥔 거하고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 등장인물 소개만 읽고 그저그런 소설이려니 생각하다간 부랄을 잡혀 난리를 치는 코끼리 코에 한 방 얻어맞을 수 있듯이 책이 주는 진짜 재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선 솔직히 말씀드려서, 좀 건전한 대중소설인줄 알았다. 나란 인간이 원래부터 대중적인 것도 좋아하고 특히 허리 아래쪽으로 대중소설적 묘사 나오면 좋아 죽어넘어가지만 그것도 아니면서도 대중소설이라 분류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을 즈음부터, 그게 1권의 한 150쪽 쯤이었는데, 그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걸, 1권 150쪽 가량에서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뭐랄까, 내가 문학적 소양이 아직도 부족해서 정확하게 뭐라 콕 집어 얘기하기 쉽지 않지만, 위에서 얘기한 등장인물들의 개차반 생활과 삶의 조건들을 난삽하게 그리는 와중에도 바로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그들을 향한 블랙 유머 그리고 그 유머 속의 애잔한 동정 같은 것들이 숨어 있었던 거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혀 믿을 필요는 없지만 내 감상이 그렇다면 적어도 나한텐 그런 거니까. 이런 나홀로 감상 같은 거 한 두 번 지껄인 것이 아니라서 비록 내 감상이 어림도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더라도 이젠 쪽팔리지도 않다. 그러니 감안하시기 바람. 근데 말씀이지, 더 솔직히 말해서, 혹 이 책이 절판이라 적어도 당분간 다시 나올 확률이 별로 없으니까 내 감상을 쓰는데 더 용감한 거 아냐? 에이 몰라, 감안해서 읽으시면 되지 뭘 그려.

 분명하게 말씀드립자면, 이 책, 좋다. 요샌 비록 중고책이라도 이름만 중고책이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그런 중고책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한 번 큰 맘 먹고 찾아 읽을 만하다. 마틴의 아버지 킹슬리가 쓴 <럭키 짐>이 어디어디 추천 세계 75대 영문소설이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지만, 내가 읽기론 이 <런던 필즈>가 훨씬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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