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박사의 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7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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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영문으로 쓰인 중요 소설 목록에 있는 작품이란 얘기 듣고 산 책.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두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책소개에 있는 걸 그대로 옮기겠다.

 "말론 브랜도와 발 키머 주연의 영화(닥터 모로의 DNA : 1996년)로도 잘 알려진 H.G.웰스의 SF 고전 <모로 박사의 섬>이 국내 처음으로 완역되었다."

 이 작품을 처음 발표한 것이 1896년. 책이 나온 시점이 2010년 7월 26일. 아, 이 책을 대한민국에서 번역하기 위해 무려 114년이 필요했던 거디다. 문예출판사가 책을 찍은 시점이 2010년. 잘 기억해두시라.

 다음. 역자 김붕구 옹. 심상치 않으시지? 김옹으로 말씀드리자면, 물론 알라딘의 저자 파일에 있는 거 그대로 옮긴 건데,

 "1922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담(石潭 짱돌연못)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 에서 수학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후 불어불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럼 김붕구 옹은 만 88세, 미수米壽에 이책을 우리나라 최초로 완역하여 출간했으니 대단한 노익장.

 근데 한 줄 떼고 뭐라 써있나 하면,

 "1953년(만 31세)부터 1991년 작고할 때까지 약 40년간 서울대학교 교수 및 명예교수로 재직했다."

 엥? 이거 뭥미? 그럼 죽은지 19년 되는 해에 김옹의 귀신께서 친히 강림하시어 책을 완역했단 말씀? 난 이 엽기적인 책을 읽기도 전에 김옹의 불가사의를 초월하는 신비에 화들짝 놀란 건 물론이고, '아! 김붕구 옹 같은 분의 영혼을 일러 소위 '초인'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영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더 근데. 김옹의 이력을 유심히 보면 도무지 어떤 보이지 않는 내공을 갖췄기에 영어책을 완역했을까 싶다. 그러다가 10초쯤 지나면 나도 모르게 무릎 탁!

 아하! 1922년 생. 스물 세살까지 일본어를 모국어인줄 알고 산 사람. 와세다 대학 졸업, 아니, 수학! 일본어로 된 책을 다시 중역했단 거에 만원 건다.

 문예출판사, 이렇게 안 봤는데 말야. 너 솔직히 얘기해봐. 저작권은 줬니? 아니지? 걍 이조시대 때 김옹이 일본말 책을 다시 번역해둔 걸 요새 말에 맞게 윤문해서, 김옹의 후손들에게 몇 푼 주고 걍 찍은 거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 완역, 요 지랄 했지? 입 크게 벌리고 아~ 해봐. 속 좀 보자.


 어쨌든.


 에드워드 프렌딕, 이라는 이름의 영국 남자가 있었는데 젊었을 적에 헉슬리 교수를 사사한 생물학도였다. 이 양반이 남위 1도 가량의 태평양에서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가게 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무인도엔 섬주인 모로박사가 조수 몽고메리와 더불어 온갖 포유류를 인간과 유사하게 변형시키는 실험 또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서, 분명히 직립보행을 하긴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혐오스럽고 경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외모와 성격과 이상행동을 하는 인간 또는 인간 비슷한 것들이 70 명 혹은 70 마리 조금 안 되게 거주하고 있다.

 그런 얘기. 다분히 고딕적이고 문명비평적이지만 왜 이런 소설이 중요 영문소설의 위치에 오르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처럼 말론 브랜도 팬들이라면 한 번 읽고 싶으실 지 모르겠다. 근데 아무리 그 사람 팬이라도 왠만하면 관두는 게 당신의 가정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거란 진심어린 말씀을 드리지 아니할 수 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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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초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09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이후지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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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겨. 책 제목 쓰다가 <인간과 초임>이라고 썼다. 써놓고보니 인간이란 것이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초임을 받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새 대한민국에서 회자되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 난 그것도 웃긴다. 세상이 평등해? 진짜 왕후장상과 걸뱅이가 평등하다고 믿어? 영주 부석사에 올라 무량수전을 등에 지고 눈을 크게 뜨면 광활하게 펼쳐지는 산맥들의 파노라마가 가슴을 뻥 뚫어준다. 정말? 그럼. 근데 그게 하필 늦가을이라서 부석사 은행나무 숲 바닥 가득 은행알이 떨어지고 관광객들이 또 하필 은행알을 밟았다면 호연지기를 가득 담은 당신의 폐에 은행 고랑내가 잔뜩 파고들어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하필이면 그때 늦가을에 당신을 영주 부석사로 가게 만드는 힘. 권력을 행사하는 자. 누구? 바로 초인? 부석사 까지 꾸역꾸역 기어 올라갔는데 보도 저편에 뚫려있으나 교묘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샛길로 흰 BMW를 타고 땀 한 방울 없이 무량수전에 오른 늙수그레한 인간. 그가 그러더라. 왕후장상과 걸뱅이가 어떻게 평등할 수 있느냐고. 세상이 만들어진 다음부터 단 한 번도 인간은 평등해본 적이 없었다고. 재수없는 인간이고 누군지도 모르고 이젠 생긴 모습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아 썅, 지극히 맞는 말이기도 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거 자체가 인간과 인간이 처음 세상에 나올 때부터 받는 초임에 관한 거 아니겠는가.

 서론이 길었다. 이래서 마누란 내가 쓴 글은 절대로 읽지 않는다. 그리하야 엄처의 눈길을 피해 마음대로 독후감을 쓰고 서재에 올릴 수 있으니 세상에 다 나쁜 건 없는 법.

 오늘 유독 '초임'에 관해 말이 많았다. 버나드 쇼가 희곡을 간행한 것이 1903년. 초연은 1907년. 버나드 쇼가 우울하고 고집세고 한 주먹하는 아일랜드 태생에다가 제법 밥 잘 먹고 사는 집안에 태어났으나 중간에 쫄딱 망해 잉글랜드로 옮겨 고학 비슷한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과 초인>에선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걸 참지 못하는 인간들에 관해서, 즉 초임 높은 애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써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에 '인간'이라고 해놓은 것이 대단히 마땅하지 않다는 말씀. 1900년대 지극한 초반에도 노동하지 않고 모든 관심이 사랑과 연애와 결혼과 여행과 예술과 철학에만 정열을 쏟을 수 있는 부류는 전체 인간들의 천분의 일도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쇼가 말하는 '인간'이란 저 옛날, 기원전 몇 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인간', 즉 '탁월한 사람'과 비슷한 부류라고 할 수 있을까. 아 고정하셔. 돈이 많아서,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삶을 즐길 수 있고 탐구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지 걔네들이 특별히 고결하다는 뜻은 절대, 절대, 절대, 그리고 또 절대 아니니까.

 그럼 초인은? 이게 골때린데, 제일 긴 막, 3막에서 책의 주인공 잭이 앤의 사랑과 대시(dash 이걸 우리 말로 뭐라 해야 하나?)를 피해 1900년대 초에 스페인 시에라 산맥으로 '차 타고' 도망쳤다가 산적을 만나 산에서 야영을 하다가 꿈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 돈 후안, (대리석상의)기사장, 마왕(혹은 메피스토펠레스), 그리고 돈나 아나가 한 바탕 굿거리를 펼치는 광경이 나온다. 이미 천국과 지옥으로 간 인물들이 지옥에 모여서 참 징글징글한 담론을 나누는 장면. 여기서 인간과 초인에 대한 무지막지한 설레발을 펼치는데 1907년에 초연을 한 연극에서 배우들, 대사 외우느라 고생 깨나 했겠다는 짜한 마음이 들 정도다. 다 아시다시피 버나드 쇼가 니체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평소에 니체하고 친하지 않아 난 기본적으로 초인이 뭔지, 아니면 초인이 누군지 여태까지도 모르겠다. 난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유물론자. 아직 초인을 본 적이 없어서. 아! 몇 번 봤다. 볼테르가 쓴 <미크로메가스>에서 천체를 여행하는 거대한 존재.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에 나오는 크프우프크. 얘네들이 혹시 초인 아녀? 아님 말고. 난 솔직히 이 책의 백미라고들 하는 3막의 꿈 얘기가 도무지 반갑지 아니했고, 읽기에 편하지도 아니했으며,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 도리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읽다가 잘 뻔했다.

 책의 내용은 앤 화이트필드가 자신을 사랑하는 옥타비어스를 물리고 남편감으로 딱 찍어 놓은 존 태너를 얻느냐 마느냐 하는 간단한 얘기다. 여기서 재미난 건 평생 결혼에 관해 무지막지하게 비판적인 견해를 유지했던 버나드 쇼의 촌철살인적 멘트를 구경하는 일. '최대한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여자들의 비즈니스고 최대한 결혼을 늦게까지 미루는 것이 남자들의 비즈니스'라는 등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두 개만 옮겨볼까?

 산적 두목이 산에서 내려와 사업체를 하나 만든 다음 존 태너를 만나는 자리가 생겼다. 여기서 인생 선배로 존에게 한 마디 쾅.

 "인간에겐 두 가지 비극이 있소. 하나는 마음 속 욕망을 잃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이루는 것이오." (296쪽)

 돈나 아나의 아버지 기사장도 젊은 시절이 있던 건 당연한 일. 이 양반이 한땐 무지하게 여자들을 유혹했던 전력이 있었단다. 그 시절에 여자들에게 퍼부었던 유혹의 말들을, 마지막 가까이 가서 난데없이 옥타비어스가 앤에게 속삭인다.

 "나도 늙어요. 앤, 여든이 되면 난 가장 아름답고 젊은 여자의 가장 숱 많은 황금빛 삼단 같은 머리털보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흰 머리털 하나에 더 가슴 떨릴 거예요."

 재미난 희곡이긴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3막의 꿈 속에서 벌어지는 담론이 암만해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니체 좋아하시는 분들은 역시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은데 읽어보시고 싶으면 읽으시고 아니면 마시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가 별점을 두개 밖에 주지 못한 사연. 이건 지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 했다가 심통이 나서. 책 번역한 사람이 이후지 씨란다. 번역의 질에 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과문한 나도 쇼를 번역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얘길 많이 들은지라 그건 넘어가고, 책 초반 13쪽에 이런 무대 묘사가 나온다.

 "왼편엔 존 브라이트의 흉상이며, 오른 편의 다른 하나는 허버트 스펜서의 흉상이다. 두 흉상 사이에 리처드 코브던의 판화 초상이 있으며 마르티노, 헉슬리, 조지 엘리엇의 확대된 사진이 걸려 있고……"

 독자들이 위에 써있는 영국 사람이 누군지 알 도리가 없으니 당연히 각주를 달아 대강 누군지 설명을 해놓았는데, 헉슬리 설명을 한번 보시라.

 "7. Aldous Huxley(1894~1963), 20세기 영국 소설가, 비평가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등의 작품을 썼다."

 이거 정말이야? 정말 올더스 헉슬리 얘기하는 거야? 좀 이상하지 않으신가? 책이 나온 시기가 1903년. 그럼 올더스 헉슬리의 나이가 장장 만 9세. 우리나이로 열 살. 초딩 3학년이다. 이 아이가 나중에 영국의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 조지 버나스 쇼가 일찌감치 떡잎을 알아봤다면 쇼 스스로가 초인이다. 막 그냥 생각나는대로 번역하고 각주달고, 설마 누가 눈치 채겠어? 그지? 

 

 

 

* PS.  위에서 말한 '헉슬리'가 누군지 아시려면 허버트 조지 웰스가 쓴 <모로 박사의 섬>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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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 브리스트 대산세계문학총서 83
테오도르 폰타네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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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36개의 장으로 되어있는 장편소설. 1장, 좀 무딘 독자들도 2장 까지 읽으면 책의 스토리를 거의 알아챌 수 있다.


 에피가 이런 장송곡을 엄숙하게 부르는 동안 네 명의 숙녀는 오솔길을 올라가 매어둔 보트에 올라탄 뒤 작은 돌맹이 때문에 무거워진 신문 봉지를 천천히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

 "헤르타야, 이제 너의 죄는 가라앉았어."라고 에피가 말했다.

 "이걸 보니 지금 생각나는데 말이야, 옛날에 불쌍하고 불행한 부인들이 이렇게 보트에서 수장 당했대. 그 이유는 물론 부정(不貞)한 행실 때문이지." (17쪽)


 전형적인 19세기 독일 소설. 틴 에이지 아가씨들이 아무 생각없이 지껄이는 복선. 이 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열 일곱살 프로이센 아가씨는 집을 방문한 스물 두살 연상, 엄마의 첫사랑과 약혼을 하고 얼마 후 에피 인스테텐 남작부인이 된다. 그럼 얘기 끝난 거 아냐? 더구나 나이 많은 남편이 엄격하고, 교육적이고, 하여간 쉽게 얘기해서 잔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진짜 독일 기계 같다면 그런 남편과 같이 사는 말괄량이 출신의 정 많은 부인. 여기다가 1장에 버젓하게 쓴 복선을 더하면 얘긴 끝. 처음부터 오직 하나,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줄달음치는 걸 독자는 그냥 편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만 59세에 처음 소설을 쓴 작가 폰타네는 구질구질하게 문장을 다듬어 아름답게 만드는 따위에다가 정력을 낭비하지 않는 미덕을 발휘하여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게 만들어주지만, 반면에 중세 문학 수준의 터무니 없고 끝내 소동의 원인이나 에피 인스테텐 남작부인과의 연관성에 관한 상세한 설명 없이 난데없는 중국인 남자 귀신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독자로 하여금, 에그 깜짝이야, 실소케 하기도 한다. 귀엽지? 그리고 조금 역겹지?

 이 책, 어디선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적 소설이란 평을 듣고 산 건데, 문제는 '어디선가'가 영/미에서 대단히 유력한 언론매체라는 거. 심지어 이 책을 발간한 문학과지성은 <에피 브리스트>를 일컬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함께 19세기에 여성의 관점으로 쓰인 결혼 이야기 3부작 중 한 작품으로 거론된다."

 라고 해놓았다. '여성의 관점으로 쓴 결혼 이야기'라는덴 반 만 동의한다. 만일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여성 관점의 쓴 결혼'은 반드시 불륜이어야 하며, 비극적인 죽음을 동반해야 하니까. 아, 그러면 이 책에서도 주인공 에피가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나느냐고? 에구. 결론을 말해버렸다. 라고 해야 할 거 같으시지? 설마 내가 결론을 그리 쉽게 얘기했겠나.

 하여간 그건 그렇고 이 책을 <안나...> <마담....>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몰상식한 짓을 문학과지성도 자기네 책 팔아먹겠다는 심사로 아무렇지 않게 해버렸는데, 우리 독자들은 버~얼써 알고 있다.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과 비교해서 독일 소설이 얼마나 재미 없는지. 그래서 문학과지성의 위와 같은 찬사가 얼마나 개소리와 유사한지. 아! 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 책에도 충성스런 개가 등장한다. '롤로'라고. 물론 개보다 못한 인간도 무지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느므느므 도식적인 불륜 이야기. 나이 차 많이 나는 결혼. 근사한 주변 남자 등장. (베드 씬 하나도 안 나오는 재미없는)불륜. 결투와 죽음. 이별. 결말. 딱 그려지시지? 바로 그런 책. 꼭 이 책 사서 읽어보시라. 단, 당신이 지겨울 정도로 돈도 많고 시간도 많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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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85
볼레스와프 프루스 지음, 정병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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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작가가 쓴 19세기 소설. 폴란드 태생의 작가라면 번쩍 떠오르는 사람이 조지프 콘라드와 비톨트 곰브로비치. 이 사람들의 특징. 폴란드 떠서 글 썼다는 거. 콘라드는 영국으로 이민 가 아예 영어로 작품을 쓴 인간이고, 곰브로비치는 아르헨티나에서 오랜 동안 살며 그래도 폴란드 언어로 소설을 썼다. 딱 두 사람만 알고 살았는데 여기에 새로이 볼레스와프 프루스, 라는 생소한 이름을 추가한다.

 <인형>. 진짜 소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괜히 철학적, 감상적感傷的 사유도 없고 사물에 관한 과도한 세밀화도, 인물 생김새에 관한 관상학적 주절거림도 없고 그냥 스토리가지고 밀어부치는 작품.(아 그렇다고 철학적 감상적 사유도 많고 세밀화적 묘사를 싫어한다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두 권 1,250쪽. 꼬박 나흘이 걸렸다. 물론 그 중에 사흘은 쐬주 마시느라 밤 독서를 하지 못하긴 했지만. 진짜 소설이기 때문에 감각적인 문장이나 특별히 매력적인 서술방법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겐 권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난 이 책을 읽으면서 19세기 후반, 1870년대 폴란드의 상황을 알고 싶어서, 이 책에 묘사되어 있는 광경들이 어떠한 사회적 배경에서 벌어지는지 안다면 이 책을 더욱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폴란드 근대사의 대강을 검색해봤다. 주인공 보쿨스키Wokulsky, 한 대귀족 처녀를 얻기 위해, 모스크바 상인(얘 이름이 뭐더라? 잊었다. 근데 한국인 이름 비슷하다)의 도움을 받아 불가리아인지 터키인지 하여간 전쟁터로 달려가 군수물자를 공급해 떼돈을 벌어오니 무려 25만 루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보신 분들은 딱 아실 것이다. 25만 루블이라는 돈이 바르샤바에선 무지막지하게 큰 돈일지 모르지만 상트 배째라부르크나 오스크바 대귀족에겐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하여간 이 돈을 아가씨 이자벨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책에 나오는 단어를 그대로 쓰자면) 개나 노예를 자임하면서 하나도 아낌없이 펑펑 써제낀다. 거액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을 가난에서 한 방에 구제해줄 수 있지만 좀 나이 많은 상인 계급의 홀아비. 어디서 보신 거 같지? 호프만슈탈의 <아라벨라>에 나오는 아라벨라와 만드리카. 정말 분위기 끝내주게 비슷하다. 완전 몰락한 이자벨라의 아빠. 어여쁜 이자벨라를, 내일 아니면 늦어도 모레엔 나무 상자에 담겨 땅 속에 들어갈 거 같은 이빨 몽땅 빠지고 발기부전 확률이 95% 이상인 호호 할아버지들, 의회 의장이나 남작에게 시집보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이른 한없는 속물 아빠. 이자벨라로 말씀드리자면 아빠한테 가정교육 잘 받아 얼굴 반반하고 몸매 잘 빠지고, 19세기적的 혁신 사상을 가져서.... 이하 이자벨라에 관하여 짧지 않은 글을 썼다가 지금 지웠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가 저 멀리서 칙칙폭폭 달려오는 기차를 보더니....에서 독후감을 끝내는 심정으로.

 19세기 말 폴란드의 귀족. 왜 여기서 유럽 귀족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면, 책을 읽어보니 유럽귀족과 동일시하기엔 폴란드의 귀족, 특히 대귀족들은 유럽과는 너무 멀고 러시아 귀족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노동과 돈을 벌기 위한 부르주아적 노력을 천시하면서 신흥 부르주아들로부터 갖은 방법으로 한 푼이라도 뜯어내려는. 동시에 한없이 그들에 비하여 '고귀한' 혈통에서 우러나오는 아우라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천박하고 천박한 인종들. 이에 대하여 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신랄한 말의 비수를 던지고 긋는다. 그리하여 근본적으로 폴란드가 현재 발전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가장 큰 이유를 한심하게 나태하면서 오직 허영에만 찬 지독한 계급주의, 영지에서 저절로 나오는 수입에 의존하여 탈봉건의 씨앗을 발뒤꿈치로 뭉개버리는 귀족들에게 전가하는데, 이쯤에서 난 폴란드의 근대사가 무지하게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 좀 알아봤더니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1863년 7월 봉기가 무참한 실패로 끝났고, 소설을 비롯한 창작물도 출간을 위해선 검열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쓸 수밖에 없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주인공 보쿨스키와 이자벨라의 사랑이 어떻게 맺어지는지, 아름다운 이자벨라가 호프만슈탈의 아라벨라처럼 얼마큼 사내의 애간장을 태우면서 밀땅을 하며, 이자벨라보다 더 아름다운 연정을 불태우는 홀아비 보쿨스키가 사랑을 얻기 위해 독자의 마음 속에 얼마나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때에 따라 분노와 미움까지 일으키는지에 집중할 수도 있다.

 또한 이기심과 특권의식과 차별과 노동을 멸시하는 시각과 경제감각에 대한 극적인 무지까지 온갖 부덕이란 부덕은 다 갖추었으면서도 도덕적으로도 무지막지하게 해이한 귀족들의 파노라마를 구경하며 낄낄거릴 수도 있다.

 소설의 시공간인 1877년부터 79년까지도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폴란드 일반 사회의 안타까움을 1876년 제물포 항을 개방하면서 굴욕의 역사를 시작한 확장한 우리 근대사와 비교하여 비극적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것들 말고도 이 재미있는 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일 것이고 당신이 <인형>을 읽으면서 나와는 또 다른 책읽는 법을 찾을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근데 '인형'의 뜻이 뭐냐고? 하나는 가르쳐드리지. 책의 여주인공 이자벨라를 '인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 더? 에이 이만하면 된 거 같다. 더 이상은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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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스 다이어리
조지 그로스미스.위든 그로스미스 지음, 최명희 옮김 / 동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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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에 글 잘 쓰는 스뚜르가츠키 형제가 있어 숙고해볼 만한 소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십억년>을 썼듯이 영국에서도 글 잘 쓰는 형제가 나타나 100대 영문학 소설 리스트에 이름을 당당히 올리는 <노바디스 다이어리: The Dairy of a Nobody>를 썼는데 제목을 우리말로 하자면 <무명씨의 일기> 정도? '무명씨의 일기'보단 '노바디스 다이어리'가 더 멋있나? 뭐 출판사 맘대로긴 하지만 글쎄.

 이거, 희극 소설. 1888년부터 89년까지 잡지 <펀치>에 연재해 공전의 안타를 쳤다는데, 이것도 영어로 해볼까? 센세이셔널한 히트를 쳐 런던의 종이값이 하늘 높은 줄 몰랐다는 뒷 얘기.  세계 75대 영문 소설의 반열에 오른 킹슬리 에이미스의 <럭키 짐> 독후감에서도 한 번 짚어봤듯이 특히 희극의 경우는 비극이나 일반 작품들과는 달리 지구 북반구의 정 반대편에 있는 극동 아시아 인종이 그리니치 표준시를 사용하는 인간들의 웃음 코드를 이해하는데 매우 애로가 있다. 더구나 <노바디스...>에선 영어 발음 상 동음이의어나 유사발음 단어를 가지고 나름대로 진지하고 희한하고 기발하고 요절복통인 유머를 줄창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난 서양 사람들이 그깟 말장난 가지고 그토록 통절하게, 작은 창자가 끊어지게 웃어제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선 잘 해봤자 아재개그 이상이 아닐 텐데 말이지.

 물론 전혀 웃기지 않아서 재미 없었단 얘기는 아닌데, 역시 이 책도 희극인지 비극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영미의 유명 미디어에 의해 100대 세계명작, 100대 영어소설 이 비슷한 평가만 믿고 덜컥 샀다가 쉬운 얘기로 똥 밟았다. 이건 위에서 얘기한 거 다시 얘기하지만 전적으로 동서양의 문화차이고 19세기와 21세기의 세대차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차이'들을 더하여 말씀드리자면 지금의 동아시아 독자한텐 그냥 그런 작품.

 작은 판형의 260쪽. 삽화가 많아서 한 나절이면 후딱 읽어치울 수 있는 짧고 (에잇!)재미난 책이지만 다른 독자에겐 권하지 않겠다. 이거 말고도 읽을 책이 없냐, 돈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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