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독서정산


오랜 만에 알차게 보낸 5월. 단 여행을 떠나기 전인 5월 21일까지.. 여행 다녀온 후엔 루틴이 망가져 한 달째 애먹고 있다. 5월 독서정산도 이렇게 늦게 쓰게 됐고, 하. 애초에 군대에서 그렇듯 꾸준히 루틴을 가져가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인건가 싶기도 하다. 차라리 '루틴이 망가진 상태, 슬럼프 상태'가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상태라도 내가 최소한의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고민을 하는 게 나을듯 싶다. 


① 신형철 저,『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1판(2008), 완독


평론계에서 꽤 유명했던, 또 유명한 사람인 신형철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평론이 아닌 강의를 통해서였다. (k-mooc에 있는 '문학사를 통해 본 인간상'이라는 강의다) 이 강의와의 만남은 좀 각별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문학 작품을 각 잡고 읽어보기도 했고 문학이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그가 쓴 글도 좋았다. 강의를 듣고는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하여 그가 쓴 글을 찾아보았는데 그 또한 그 관심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그만큼 좋은 글을 써낸 바 있었다. ('신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라던가, 'Passion of Judas, 혹은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위하여'라던가)

하지만 이 책을 통째로 읽는 건 좀 아니었다. (별로였다.) 내용 자체의 난해함 탓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평론이 지닌 특징이 한 몫 했다. 평론은 대개 '구체적인 특정 작품'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그 작품을 읽어봤다면 작품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고 내용도 정리해볼 수 있을 테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솔직히 읽는 게 좀 고역이다. 기본적으로 평론가는 그 구체적 작품을 독자가 읽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를 전개하는 탓에 작품을 읽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는 맥락을 좇는 게 힘들 수밖에 없다. 읽지 않는 작품의 주요 서사, 사건을 알아버리게 된다는 점도 기분을 좀 언짢게 하는 요소다.

그런 사실들 때문에 읽었던 작품에 관한 몇몇 평론은 흥미롭게 봤지만 읽지 않은 작품에 관한 평론은 대개 흥미를 끌지 못했다. 몇몇 평론은 그럼에도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긴 했으나 대부분은 아니었다. 역시 평론집은 한 번에 읽을 책은 아니구나 싶었다. 소장하지 말고 도서관에서 그때그때 빌려보는 게 낫겠다.


 오에 겐자부로 저, 박유하 역,『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문학동네, 1판(2009), 완독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나쁜 건 아닌데, 음, 뭐랄까 재밌진 않았다. 서사는 단순하면서도 몰입감이 있는 편은 아니었고 소설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좀 난해한 측면이 있어 의도를 알지 못하겠는 구절이 여럿 있었다.

단상을 조금 남겨 놓긴 했다. 핵심은 형식에서 느껴지는 난해함의 이유와 주제에 대한 약간의 생각이었다.

'치유'와 '예술(문학)'을 주제로 읽기 좋은 소설이다. 아마 관련 주제에 대한 탐색을 목적으로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보지 않을까 싶다. 

읽고 쓰는 행위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다만, 그 길은 고단하다. 사쿠라가 3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③ 최은영 저, 『밝은 밤』,문학동네, 1판(2021), 완독


읽으면서 몰입보다는 의문이 괜스레 더 많이 떠올랐던 소설. 표지처럼 잔잔한 바다 위의 백야를 느끼고 온 듯하다. 

밀도감이 아쉬웠지만 의의는 있었다. 욕망만 가지고 실천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삶에 대한 맥락을 캐는 일을, 이 소설을 통해 할머니의 삶을 상상해보는 일로 어느 정도 대체해볼 수 있었으니까. '아마도 할머니도 이러셨을 거야, 이런 감정을 느끼셨을 순간이 있었을 거야, 이런 일에는 어떻게 대처하시고 뭘 느끼셨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져본 것으로 만족.





④ 손현주 저, 『가짜 모범생』, 특별한서재, 1판(2021), 완독


5월에 읽은 책 중,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은 느낌을 가져다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사회에 속물이 많은 이유는 학교에서 속물을 기르는 탓이라고 전부터 생각해왔다. 속물이란 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특정 기준으로 상하위계를 설정하고 그 기준을 통해서 만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건 대개 '외모, 성적, 돈, 권력'같은 것들이다.

학교는 이른 나이 때부터 아이들에게 성적이라는 특정 기준으로만 누군가를 평가하고, 그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을 기르게 한다. 많은 아이가 우울해 하는 이유다. 애초에 성적에서 위계의 상층에 진입하는 건 소수의 아이들만이 가능한 일인데, 학교나 한국 사회는 그 상층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을 비하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애초에 성적을 높게 받으려는 이유가 뭔가? 좋은 직업을 위해서란다. 사실 그 좋은 직업이 중요한(중요하기 때문에 좋아진 거겠지만) 이유는 공공의 선, 공공의 이익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이런 맥락의 말을 하지 않았나. 능력 있는 의사는 능력 있는 살인자가 될 수 있고, 능력 있는 검사 판사는 죄가 덜한 사람에게 더 많은 죄를 주는,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덮어 씌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국의 교육 학대는 많은 아이를 우울하게, 나아가 죽게 만들고, 속물적 기준의 상층에 속한 사람은 속물로 만든다.


⑤ 고쿠분 고이치로 저, 박철은 역,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동아시아, 1판(2015), 완독


작년엔가 절반 쯤 읽다가 말았던 걸 올해 다시 처음부터 완독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었다. 금세 다 읽어버렸다. 재밌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만큼 들뢰즈의 사상을 자기 언어로 잘 풀어 쓰고 있는 책은 국내에서 찾기도 어렵다. 철학 책은 읽다가 보면 이 사람이 특정 사상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곱씹었는지가 글에서 다 드러난다. 하지만 대개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두루뭉술한 수준에서 그친다. 철학자의 개념어를 반복해서 말할 뿐 그 언어가 본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의 언어로 바꿔 말하면 어떻게 말해볼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책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가스통 르루 저, 『The Phantom of the Opera』, YBM, 1판(2007), 완독


각색본인데도 재밌다~ 어떻게 될지 조마조마해 하며 읽은 듯. 원저나 영화, 오페라에도 관심이 생겼다.
TV에서 종종 나오는 오페라의 유령 곡도 맥락을 알고 들을 수 있게 됐다.











 창작과 비평 편집부 저『창작과 비평 195호 - 2022 봄』, 창비, 1판(2022), 완독


창비 계간지 그동안 재밌게 읽었지만 정기구독 연장을 하진 않았다. 조금 더 천천히 곱씹어보고 싶은 작품이 계속 쌓여 만 가는데도 정리하지 못하는 내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좁은 집의 사정 상 더는 책을 쌓아둘 곳도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 특히, '특집' 부분을 즐겨 읽었다. 요즘의 논제, 주요 주제에 대한 맥락 잡기도 좋고 내 삶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라 한 번 씩 생각해보면 좋을 이야깃 거리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내가 내놓은 결론은, 전자책으로 정기구독하고 관심 가는 부분만 읽는 것이었다...!! 





 서동욱 저『들뢰즈의 철학』, 민음사, 1판(2002), 부분 독

나온 지 20년이 된 책인데 읽을 때마다 참 잘 쓰인 책이라 생각. 읽다가 말았는데, 당분간 볼 읽은 없을 것 같다.


5월을 돌아보며

- 돌아 볼 5월이 3주나 지나버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랜 만에 알뜰살뜰 잘 살았던 한 달이라는 것 뿐.

- 철학 책, 논문을 좀 붙잡았는데, 진짜 재밌긴 하지만 내가 당면한 삶과는 약간은 무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겨우내 멈췄다. 길게 보고 천천히 보는 게 좋을 듯.

- 현재에 집중하고 평온한 상태(행복)를 최대한 오래 끌고 가기 위해서 심리학 책은 항상 달고 사는 게 좋겠다. 기껏 마음 공부를 해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어버리니까.


6월에 읽고 쓸 계획

- 5월 초에 '가면의 고백', '휴먼 스테인', '영어 책 한 권' 이렇게 적어 놓았는데, 가면의 고백을 빼고는 진전이 없다... 그것도 6월 초에 바짝 읽은 거니까 보름은 지나치게 한량처럼 지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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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독서정산


4월에도 이것저것 많이 붙잡은 거 같은데 근래에 서평이나 독서 단상을 잘 안 남겨서 그런지 머릿속에 든 게 없는 거 같다. ( 그래도 아쉽게 흘려보낸 시간이 많았던 1~3월보다는 알차게 보냈다. 이 느낌, 이 관성 천천히 유지하며 읽고 쓰는 일을 조금 더 습관화하자.


① 로버트 프리츠 저, 박은영 역,『최소 저항의 법칙』, 라이팅하우스, 1판(2022), 완독

이번 달에 읽은 책 중에 하나만 꼽자면 이 책을 꼽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게 될지는 장담 못하겠지만, 내 삶에 왜 그렇게 혼란이 가득했는지, 왜 내 삶은 내가 진정 원하는 삶과 그토록 괴리가 있었던 건지에 대해서는 좀 더 이해하게 됐다. 러프한 이유는 간단했다. 원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프리츠가 이야기 하는 '원하는 삶을 사는 방법'에는 특별한 게 있진 않다. 그가 이야기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1) 원하는 삶을 계속해서 구체화하고 2) 그 구체화한 원하는 삶을 정말로 살기 위해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해 객관화하고 3) 원하는 삶과 나의 현실 사이의 격차를 가능한 효율적으로, 잘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일 이 원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도 살고 있다. 원하는 삶보다 '문제'에 집중한 삶을 사는 탓이다.

개인적인 예를 들자면, 나는 사람을 만날 때 '내가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묻기 보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묻는 게 더 익숙하다. 프리츠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창조지향적인 질문(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질문)보다 문제해결을 위한 질문에 익숙한 것이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쉽게 피로함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꼈던 이유는, 내가 원하는 삶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문제(누군가와 사이가 틀어짐 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문제에만 집중한 삶을 살다 보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에 대한 흐릿한 느낌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느낌에 대해서조차 확신하지 못해 어리바리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관성에서 벗어나는 게 쉽진 않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윌리엄 포크너 저, 하창수 역,『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외 11편』, 현대문학, 1판(2022), 완독

 번역이 좀 아쉽긴 했지만(ㅠㅠ, 포크너 글 자체가 좀 난해하고 만연체라 번역이 힘드셨나보다...) 재밌게 읽었다. 이렇게 유명한 포크너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나도 참 ㅎ.. 

 좋았던 작품들을 꼽자면, 아 좋았던 작품이 더 많으니 차라리 그나마 덜 와 닿았던 작품을 꼽자면, '그날의 저녁 놀', '여왕이 있었네', '마르티노 박사' 정도? '마르티노 박사'는 정말, 내용도 그렇지만, 번역이 너무 안 읽혀서....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는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인 '그녀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과거,변화,상처,생성,변하지않음,집착과 같은 키워드는 내 주요 관심사다) '헛간 타오르다'는 영화 '버닝'을, '메마른 9월'은 수전 손택의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이중적 기준'이라는 글을, '반전'은 '오만과 편견'을(로멘틱한 관점에서가 아닌), '브로치'는 필립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특정 작품이 떠올랐다는 건 해당 작품이 지닌 어떤 문제의식, 주제가 내 관심사의 연장에 있다는 뜻이겠다. '곰'은 뭐랄까, 이상적인 삶의 태도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붉은 나뭇잎'이나 '신전의 지붕널'은 조금 더 곱씹어봐야 알 듯한 묘한 느낌을 많이 주는 작품이었다. 


③ 신형철 저,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1판(2008), ~407쪽

사 놓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던 걸 독서 모임 덕에 읽고 있는 중. 좋은 글도 있고 아닌 글도 있고, 지금까진 나쁘진 않지만 주로 딱 꽂히던 그의 글을 골라 읽던 버릇 탓에 아쉬운 점이 꽤 많다. 정기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겠지만, 정말 우러나와서, 진실하게 쓴 글과 추상적인 개념 뒤로 숨어 뭔가 말하는 척 하는 글은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시와 시 평론은, 안 그래도 무지한 소설보다 더 무지한 영역인 탓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읽어보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고 서정시라는 장르에서 과감하게 탈주한, 신형철이 '뉴웨이브'라고 명명한 시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마음에 와 닿는 게 없었다는 점 또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곱씹고 싶은 글, 그리고 문장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 할만한 독서를 하는 중.


④ 가타오카 이치타케 저, 임창석 역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학사, 전자책(2019), 절반 정도

신형철의 평론을 읽다 보니 라캉 이야기가 무지 많이 나오는 바람에, 간편하게 읽을 라캉 입문서를 찾다가 고른 책. 라캉은 6~7년 전 프랑스 철학 수업을 들을 때 잠깐 공부한 적이 있었지만 이 사람이 당최 뭘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잘 몰랐고, 배경지식도 없던 나였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라캉이 무슨 작업을,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했었는지 개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연구서, 그리고 원서로 나아가는 데 좋은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인듯. 굳이 이런 개념어로 이런 작업을 하는 게 적절한 건지, 괜찮은 건지는 의문이 많지만...

"고통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고,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부담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증상을 제거하여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사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정신분석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⑤ 최은영 저, 『밝은 밤』, 문학동네, 1판(2021), ~186

요즘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중 하나. 베스트셀러 소설 읽기. 시간 날 때 30분 정도씩 짬짬이 읽었다. 쉽고, 가독성도 좋고, 그래서 진도는 빠르게 나가는 중이다. 아쉬운 부분도 꽤 있지만(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어서...) 할머니가 사셨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상상력을 기른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며 읽고 있다.


 가스통 르루 저, 『The Phantom of the Opera』, YBM, 1판(2007), ~211

거의 다 읽었다. 10~20페이지 정도 남은 듯. 이건 아무래도 영화나 오페라로 유명하다 보니 따로 챙겨보면 더 재밌을듯.


 문학동네 편집부 저, 『문학동네 110호 - 2022 봄』, 문학동네, 1판(2022), ~76

 창작과 비평 편집부 저, 『창작과 비평 195호 - 2022 봄』, 창비, 1판(2022), ~186

문학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 읽고 있는데 역시 쉽지 않다. 관련 평론이나 작가론은 작품을 읽은 게 거의 없다 보니 글의 맥락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 관심 있는 주제 위주로 읽는 게 답이려나? 2021년 겨울호 발췌도 아직 끝내지 못했는데....



한 달을 돌아보며

- 나쁘지 않았던 4월. 아직 쓰는 일에 관성이 붙진 않았지만 읽는 일에는 슬슬 관성이 붙고 있다. 4월에는 주로 도서관같이 조용한 곳에서 밀도 있게 읽기 보다, 책을 주로 지하철이나 시간이 날 때 짬을 내서 조금씩 읽는 식으로 독서를 했던 게 잘한 점이자 아쉬웠던 점인 듯. 책을 들고 나가 최소 2시간 정도는 앉아서 꾸준히 독서하는 버릇을 들일 필요가 있다. 마스크 쓰기가 귀찮아서 밖으로 나가기 보다 집에서 책을 읽게 되는데, 집에는 방해 요인이 많아 흐름이 뚝뚝 끊길 때가 많으니까. 일단 독서실은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저번 정액권도 그렇고 이번 정액권도 그렇고 절반도 못 쓰고 날려버렸다. 그냥 가끔 땡길 때 가서 시간권을 끊고 이용하는 게 낫겠다. 슬슬 도서관 거리두기 정도가 약해지면 자전거 타고 도서관으로 나가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고.

- 예전에 썼던 독후감, 서평 글을 4월에는 좀 많이 올렸다. 지금까지 올릴 글의 절반 정도 업로드 한 듯한데, 이걸 빨리 끝내고 새로운 글로 블로그를 채우고 싶다. 블로그에 업로드가 끝나면 그 글을 알라딘 서재에도 올릴 예정이다.

- 사고 싶은 책이 많지만 계속해서 참는 중이다.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먼지도 감당이 안 되고.. ㅠ 

- 오랜만에 작년 연말 독서 정산을 짧게 훑으니 내가 작년에 끼적였던 올해의 계획, 방향성을 기준으로 지금까지의 독서생활을 점검하고 싶어졌다.

  -> 계획적인 독서 : 인생 참 계획대로 된 게 없었는데 역시 독서도 마찬가지다. 1,2,3,4월까지의 독서는 좀 중구난방이고 마땅한 줄기가 없었던 것 같다. 로스, 소세키, 쿤데라, 부코스키 소설 책은 계속해서 끼고 살고 싶었는데,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2월 초에 거진 다 읽어 놓고 끝장을 못 본 뒤로 따로 붙잡고 있는 작품이 없다. 치유적 독서 및 글쓰기와 철학, 종교, 과학적 관심사와 관련된 도서도 마찬가지다. 아, 너무 욕심이 많은 탓인가..?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많으면 딴짓을 안 해야 하는데 딴짓도 많이 하니 참...

   -> 함께 책 읽기 : 적절히 하는 중.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려면 내가 직접 독서모임을 만드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필립로스 전집 읽기나 로스 책 몇 권 읽기 모임 같은 거.

    -> 읽고 쓴 걸 나누기 : 아, 정말 어렵다. 읽고 쓰는 행위는 늘 '나'와 관련된 행위, 범위를 확장시켜도 지인 정도까지와 관련된 행위였어서 그 이상으로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는 게 좋을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SNS 독서 기록 : 이건 좀 꾸준히 하는 중. 월간 독서정산 꾸준히 올리는 것만 해도 뭐~

    -> 규칙적 루틴 : 그런 거 없다... 이건 마감이 있는 글을 쓰거나 글을 써내야 하는 독서모임에 들지 않는 한 불가능할 듯. 아니, 그런 건 커녕, 애초에 글이 한 참 잘 쓰일 때는 눈에 띄는 문장, 생각을 정말 쉼 없이 메모하고 연결하고 정리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그게 잘 안 된다. 일상부터 글쓰기 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할 듯

     -> 글쓰기 대회 응모 : 기회가 여럿 있었는데 내가 다 날려 먹었다. 이러다 올해도 작년처럼 한 두 개 내놓고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도 그럴게 대상 작품이 내 스타일이 아닌 것도 많고, 읽고 나서도 그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여전히 너무 어려운 탓도 있다. 서평 대회에 비하면 독후감 대회는 정말 체감 난도나 부담감이 열 배 이상은 되는 듯. 


5월에 읽고 쓸 계획

 - 일단 "오페라의 유령"을 끝내고 YBM 영어판 "위대한 유산"을 읽을 계획

 - "몰락의 에티카"는 독서모임에서 읽고 있으니 완독하겠고

 - "창비 계간지"도 스위치 창비에서 모임을 하고 있으니 완독해야 한다.

 - "밝은 밤"은 하루에 2~30페이지씩 지금처럼만 읽으면 금방 다 읽을 듯.

 - "문학동네 계간지"도 읽긴 해야 하는데, 손에 잘 안 잡힌다.

 - "힐빌리의 노래" 한번 훑어볼 것 같고

 - 읽다가 말았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완독하자.

 - "라캉은 정신 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뉴욕 3부작", "숙향의 주식 투자 이야기", "나인"도 읽긴 해야하는데, 여기서는 볼 수 있는 것만 보자. 

 - 그리고 그냥 땡기는 거 읽기

 - 어떻게 보면 쓰는 게 더 중요한데, 가능하면 책 한 권에 대한 독후감이나 간단한 독서 단상이라도 남겼으면 좋겠다. 에세이도 하나 쓰고 싶은데, 일단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주제를 붙여놓고 생각 좀 해보자. 피곤하니 이만 자야겠다. 너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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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독서정산


시간 참 빨리 간다. 두꺼운 옷 껴입고 출근하니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는 더워 벗게 됐고 앙상한 가지에는 초록빛 새싹이랑 형형색색의 봉우리가 보인다. 봄맞이하느라 정신없는 동식물처럼 나도 좀 이 무기력하고 늘어지는 일상에서 벗어나 변화해야 할 텐데.

이번 달에는 완독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붙잡았던 책 등으로는


클레어 콜브록 저, 한정헌 역, 『들뢰즈 이해하기』, 그린비, 1판(2007), ~237쪽

서동욱 저, 『들뢰즈의 철학』, 민음사, 1판(2002), 3장, 에필로그

서동욱 저, 「들뢰즈 존재론에서 일의성 개념의 수립」, 새한철학회 철학논총 제74집(2013) 완독(책이 아닌 논문)

조현수 저, 「들뢰즈의 '존재의 일의성'의 두 구성요건인 '존재의 공통성'과 '존재=차이'는 어떻게 니체의 영원회귀에 의해 동시에 긍정될 수 있는가?」, 대동철학 제79집(2017), 완독(책이 아닌 논문)

폴 오스터 저, 황보석 역, 『뉴욕 3부작』, 열린책들, 전자책(2014), ~15%

Gaston Leroux, Retold by Adam Edwards, 『The Phantom Of The Opera』, THe Text, 초판(2007), ~106p

숙향 저, 『이웃집 워런 버핏, 숙향의 주식 투자 이야기』, 초판(2020), 기억 안 남


정도다. 따분하고 무기력해서 유튜브 보거나 딴짓할 바에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를 만들어줬던 것들,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 둘 다시 곁에 둬보자는 마음에서 붙잡은 책이 주로 들뢰즈와 관련된 저서였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역시 들뢰즈의 '내재성', '일의성'과 같은 개념은 매력적이지만 가타리와의 정치철학 작업은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내재성, 일의성, 차이, 창조 등 주요 개념을 위주로 들뢰즈의 작품을 읽으며 천천히 정리해나가야겠다, 오래 걸리겠지만.


평상시에 노트를 들고 다니며 조금씩 쓰다 보니 어색했던 글쓰기가 천천히 다시 익숙해지는 중이다. 블로그를 빨리 정리한 뒤 알라딘 서재에도 서평이나 리뷰를 옮겨 쓰고 일상적인 글도 꾸준히 써볼 필요가 있겠다. 할 일이 많다.


피아노를 질렀고, 출근길에 종종 코노에 가서 노래를 연습하고 있고, 음악을 다시 많이 듣고 있다.


4월의 독서 목표는 관성 만들기다. 읽고 쓰는 행위를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으로 만들기. 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창비 2022년 봄호, 문학동네 2022년 봄호, 최은영 『밝은 밤』, 읽다 만 천선란 『나인』, 윌리엄 포크너 현대문학 단편선, 읽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The Text 버전 정도를 읽을 계획이다. 창비 2022년 봄호랑 '몰락의 에티카'는 아마 5월까지 붙잡을 듯하다. 읽었지만 쓸만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창비 2012년 겨울호, 문학동네 2021년 겨울호는 관심 가는 글귀들 발췌 정도는 남겨야 할 듯하고 아트앤스터디에서 수강 중인 '들뢰즈의 친구들 - 스피노자'편은 들뢰즈의 일의성 개념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정리글을 남겨둘 예정이다. 여기에 숙향 어르신의 투자 책 정도? 

책과는 상관없지만 피아노나 보컬 연습은 책이나 글이 잘 안 잡힐 때 하면 되겠고 천용성, 김제형 앨범 다 들어보기나 마음에 드는 포크 가수 찾기도 시간 날 때. 4월에는 재밌게 보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사내 맞선' 완결이 나는 만큼 간략한 감상 정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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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독서정산


뒤늦은 2월 독서정산이다. 밀도있게 읽은 책이 얼마 없는 데다가 붙잡았던 책들을 기록도 안 해둬서 뭘 어떻게 읽었는지 많이 까먹었다. 계획한 책은커녕 지난 달에 붙잡았던 책들 갈무리도 안 했으니...


① 토니 모리슨 저, 이다희 역,『보이지 않는 잉크』, 바다출판사, 1판(2021), 완독 


 토니 모리슨이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빌러비드』가 대표적으로 유명하며 1993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유명한데 읽어본 작품은 전무한지라 이 책을 읽는 데는 좀 애를 먹었다. 자기 이야기를, 특히 자기 소설 이야기를 매우 많이 하는데 읽어본 게 없어서...

 되돌아보니 크게 두 가지가 인상 깊게 남았다. 하나는 모리슨이 기존의 역사를, 서사를 비틀어 독자가 생각하게 함으로써 기존의 생각의 틀, 사고의 틀을 뒤흔드는 소설을 쓰기 원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그가 집요하리 만큼 천착했던 인종과 관련된 꾸준한 문제의식이다. 모리슨의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게 괜찮은 작품일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건 바로 첫 번째 사실 때문이다. 나 또한 모리슨이 그러는 것처럼 뭔가 불편하게 하는 작품,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책에서 나의 생각을 찾기 위한 게 아니라, 책을 읽고 내 삶이 변화하고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좋은 책을 읽는 거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으로 읽는 거도 중요한데... 요즘 그러질 않는다.) 두 번째 사실이 인상깊었던 이유는, 내게도 모리슨의 '인종'과 같은 인생의 주요 키워드가 무엇인지, 그 키워드를 위해 얼마나 발싸심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 때문이었다. 


 허태연 저,『플라멩코 추는 남자』,다산북스, 1판(2021), 완독


 편하게 읽기 좋았던 책이었다.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머리를 싸매고 읽을 필요도 없었고, 글도 매우 쉽게 쓰여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 봤던 기억이 난다.  60대 이상의 남성이라는,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렵고 때로는 그 꼰대스러움에 기분이 나빠져 가까이 하기 싫어지는 캐릭터에 대한 따뜻한 애정, 이해의 노력이 엿보였다고 해야 할까. 그 캐릭터, 즉 '남훈'의 노력하는 자세, 책임지는 자세도 좋아 보였다. 성장은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어른들도 한다. 아니, 어떻게 보면 성장은 아이들보다 어른에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옳다는, 틀리지 않다는 자만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가깝고, 그런 자만이 세상의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남훈의 성장 이야기였다.


③ 도스토예프스키 저, Adam Edwards 편역,『The Brothers Karamazov』, The Text a YBM Company, 1판(2008), 완독


 The Text A YBM Company에서 간행한 The Classic House 시리즈의 59번째 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영어 편역본이다. 이 시리즈를 알게 된 건 9년 전. 서울 시청에서 공공근로를 했을 때 거기에서 일하던 학과 선배 형이 영어 공부하기에 좋다며 추천해줬던 것이다. 산 건 16년도였던 거 같고 그 해에 한 번 읽었고, 거의 6년 만에 다시 봤다. 올 해 매달 한 권씩 이 시리즈를 보는 게 목표였는데 쉽진 않을 듯하고 적어도 두 달에 한 권씩은 보고싶다.

 읽고 보면 원전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지는 걸 보면 편역 자체도 괜찮게 되어 있다. 나쁘지 않았다.





④ 창작과 비평 편집부 저, 『창작과 비평 194호, 2021 겨울』, 창비, 1판(2021), 완독


 처음으로 읽어본 문학 계간지. 모르는 국내 문학 작품이 많이 다뤄져서 솔직히 글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계간지를 읽으니 현재 문학계에서 어떤 부분을 관심에 두고 있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항은 어떤 부분인지 등 현황을 좇을 수 있어서 좋았다. 

황정아 교수의 글 "'문학의 정치'를 다시 생각한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문학적 정치 수행의 까다로움, 협소하게 규정된 PC에 속박된 채로 제대로된 정치성을 탐구하지 않는 문학의 현실, 공적 장소를 개인적 감수성에 예속화한 탓에 사라지는 공공성 등 재미있는 논점이 많았다.




한 달을 돌아보며


 무료하고, 무기력하고,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다. 책도 쇼핑만 하고 욕심만 많았지 정작 끈덕지게 읽고 생각을 꼼꼼하게 정리한 적도 얼마 없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아무래도 회사랑 코로나 영향이 큰 것 같지만 그 탓을 하며 자꾸만 아쉽게 허송세월하는 나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진 않다. 일단은 좀 비우기로 했다.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저거도 중요하고, 이거도 중요하고.' 욕심만 많아지니 부담감만 심해지고, 읽지도 않을 뿐더러 쓰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단 책 말고 한 권 가지고 다니는 거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무료하고, 무기력하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공허해지는 이유는 꾸준히 쓰지 않아서다. 그게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인데, 그게 없어서 그런 거였다. 좋은 음악, 편안한 공간에서 노트 한 권이면 족하다. 책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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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독서정산


21년 12월 월간독서정산은 21년 연말독서정산으로 갈음했다. 12월은 연말을 정리한다고 책을 거의 보지 않았다. 1월은 인사 이동 후 적응한다는 핑계로 책을 잘 붙잡지 않았고 동기부여도 안 되었으나 사실 이건 다 핑계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제 독서실을 끊었다. 집에서 책 보겠다는 헛소리는 그만해야지, 망할.


① 허먼 멜빌 저, 김석희 역,『모비 딕』, 작가정신, 1판(2011), 완독


  그나마 이 책은 완독해서 다행이다. 멜빌의 『모비 딕』. 멜빌을 처음 알게 된 건 6년 전,『필경사 바틀비』를 통해서였다. 세계문학 단편선에서 왜 멜빌의 그 작품만을 찾아 읽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문학을 거의 읽지 않던 때에 찾아 읽은 얼마 되지 않는 문학 작품 중 하나였고 이런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소설을 쓴 멜빌이라는 작가를 뇌리에 새기며 독서 일기를 썼던 기억은 난다. 16년 3월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멜빌이 『모비 딕』이라는 대작을 썼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계속 몰랐을 테다.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네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서사가 약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모비 딕은 서사가 흥미진진하진 않다. 끝내 마주한 결말은 사실 소설 초반부터 충분히 예측 가능할 정도로 멜빌이 힌트를 많이 준다. 서사가 약하니 이야기의 흡입력은 떨어진다. 대중의 관심을 못 받은 이유가 있었다. 두 번째는, 안 그래도 약한 서사의 몰입도를 더 떨어뜨리는, 이야기 중간에 많이 삽입된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식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멜빌이 왜 이렇게 많은 고래 이야기를 했는지 명확히 이해하진 못하겠다. 고래를 신비화하면서 이렇게 분석적인 관점에서 고래를 해체해 묘사하는 양가적인 관점을 취한 이유도. 세 번째는,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들 사이에 백과사전식 이야기를 끼어놓아 장르적 특성이 굉장히 모호해졌다는 점 때문이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멜빌답게 희극이라는 장르를 상당히 뒤섞기도 했는데, 멜빌이 이렇게 장르를 섞고 뒤틀어 노리고자 했던 효과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이해를 잘 못하겠다. 마지막으로는, 멜빌이 소설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삼았던 신학적 논제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소설은 신비주의적, 종교적 상징과 그러한 문제의식으로 가득한데, 그걸 많이 짚어낼 정도의 지식은 없던 탓에 멜빌이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읽기 어렵게 만드는 부분을 뒤집어 보고 논점을 모아 줄기를 잡아보면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지기도 했다. 맞춰낸 퍼즐은 뭐랄까, '이 소설은 19세기에 신정론을 다룬 변형된 욥기다.'라고 하면 괜찮을까. 그러면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어차피 서사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신정론에 대한 논제는 핵심인물의 고통이 핵심인 만큼 어차피 그는 고통받았고, 고통받을 운명이니까. 그게 바로 에이해브고. 소설 초반에 펠레그 선장은 에이해브가 "좋은 사람"이며 "위엄있고, 신앙심은 없지만 신 같은 사람", "왕관을 쓴 왕"같은 사람이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뒤 행복한 가정을 꾸리자마자 다리를 잃었다. 갑작스러운 비극을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 비극의 불가해함 앞에서 분노하다가 결국 체념하지만, 에이해브는 그렇지 않았다. 미쳐버린 핍이 영적인 지혜를 얻은 것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에이해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실 - 신의 이중적 면모 - 을 보는 인물이었고 그는 그것을 끝까지 파헤치고자 했다. 그 면모가 구체적인 사물로 형상화된 게 고래였던 것이고. (흰색이라는 색깔이 상징하는 것처럼) 하지만 고래에 대한 그 수많은 지식이 있음에도 이슈메일이 고래를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신도 멜빌에게 그런 대상이었던 것 같다. 멜빌은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때로는 말이 되지도 않는 신학적 논제를 들춰내고 그에 대해 분노하고 개탄했을 뿐 명료하게 갈무리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여튼, 읽기 힘들었지만 말하자면 할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었다. 특히, 에이해브가 매력적이었다. 오이디푸스나 욥, 스네이프를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었다. 선과 악의 저편에 있는 그 욕망에 대해 언젠가 구체적으로 더 생각해보고 끼적여 볼 필요가 있겠다.



 필립 로스 저, 김한영 역,『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문학동네, 1판(2013), ~312쪽


  이 작품은 꼭 다 읽었어야 했는데... 흡입력 있는 대단한 작품이지만 생활을 관리하는 내 능력의 부재로 읽다가 말았다. 여기서도 역시나 더 나은 삶을 위해 발악하다가 결국엔 미끄러지는 인물 - 아이라 - 이 나온다. 단상은 완독 후 남겨야겠다.










 김혜령 저,『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가나 출판사, 전자책(2020), 60%정도


  김혜령 상담사는 유튜브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채널에서 나온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다. 지니고 있는 심리적 지식, 생각, 말투 등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책까지 찾아보게 됐다. 출퇴근 시간에 조금씩 조금씩 봤는데 심리학 전문서와 대중서 사이에서 저울질을 잘 한, 읽기도 쉬우면서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도 잃지 않은 보기 드문 양서였다. 내가 관심을 두고 공부했던 심리학적 줄기를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은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나 인용된 책들도 보면 내가 읽거나 관심을 뒀던 저서들이 많았다. 끌린 이유가 있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 부정적 정서에 휘둘리는 사람, 삶이 괴로운 사람이 읽어보면 좋겠다.




④ 김경미 저,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창비, 시요일, 부분독

⑤ 『창작과 비평, 2021년 겨울호』, 창비, ~85쪽

⑥ 김시종 저, 이진경, 카케모또 쓰요시 역 『잃어버린 계절』,창비,1판(2019), 부분독

⑦ 허태연 저,『플라멩코 추는 남자』, 다산책방, 초판(2021), ~45쪽 

⑧ 카라마조프 저, YBM 재구성『The Brothers KARAMAZOV』, The Text, 초판(2008), ~102쪽































두 시집은 제외하고 나머지 세 권은 로스의 책과 함께 이번 달 완독 목록에 올렸어야 했으나 실패했다. 김경미 시집은 창비 스위치에서 참여한 시 필사 모임을 통해 주로 읽었고, 이 과정에서 김시종의 시도 몇 편 필사 했다. 처음으로 구독한 창비 계간지는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있고, 『플라멩코 추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굳굳 bb


한 달을 뒤돌아보며


 할 일이 많이 밀렸다. 일이 밀렸는데 밀린 만큼 하기는 더 싫어져 많은 시간을 딴짓 하며 보냈다. 위쳐라는 재미있는 드라마 본 건 좋았지만... 코로나 이후 2년 동안 집에서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매번 실패하면서도 괜스레 포기하지 않는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해왔는데 이제야 조금 더 확실하게 인정하게 됐다. 나는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집에서 만화를 보든, TV프로를 보든, 게임을 하든 상관없다, 잠만 잘 자고 시간 나면 무조건 독서실에 가자, 라며 집 근처 독서실 100시간 권과 사물함을 끊었다. 읽어야 하는 책을 아예 사물함에 넣어놓았으니 읽으려면 무조건 독서실에 나와야 한다. 다행히 작심삼일은 넘겼다. 2월엔 좀 알차게 보내보자.


2월에 읽어나갈 책


 우선, 밀린 책들을 처리한다.『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와 『플라멩코 추는 남자』, 『창작과 비평 계간지 2021년 겨울호』, 쉽게 재구성 된『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독서모임에서 토니 모리슨의『보이지 않는 잉크』를 읽을 예정이고, 2월에 읽을 The Text의 영어책은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다. 여기에 필립 로스의『미국의 목가1』정도면 괜찮을 듯하다. 일단 이 정도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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