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이라는 서물이 워낙 동양 지혜의 정수 쯤으로 자리매김하다 보니,

고래로 유가, 도가, 심지어 불가에서까지 한다 하는 천재들은 한 번쯤 건드려 봤던 것이 주역의 해석사가 되겠다. 

이런 전통은 요즘에도 이어져서 소위 재야의 동양학자, 점술가 등등까지 달라붙어서, 이름이 조금 알려졌다 싶으면 관련서를 한 권씩 내다 보니

가짓수는 번잡하게 많되 정작 독자들이 읽을만한,

꼭 읽어야 할 서적들이 파묻히는 경향이 있다.

 

그야말로 나쁜 책이 좋은 책을 쫓아내는 격.

 

여기 알라딘에도 보니 추천서랍시고 제일 위에 올려놓은 책들 꼬락서니가 ...

 

 

 

자, 이번에는 주역 필독서 한 번 챙겨보자.

 

  

 

먼저 ... 개론서라고나 할까? 두어 권 훑어주는 것도 좋겠다.

 

주역에 나오는 익숙치 않은 개념들을 잡는데 약간의 도움을 줄 것이다.

 

 

 

 

 

 

 

 

 

 

 

 

 

 

 

 

[역학원리강화]는 1950년대에 나왔으니, 거의 '고전'의 반열에 드는 책으로, 주역의 기초, 하도낙서의 원리 등에 대해 문답식으로 재미있게 풀이하였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위한 서론 격이라고 할까 ...

 

이에 비해 [역의 원리]는 요즘 시각으로 잘 풀이한 개론서.

 

이런 개론서 류에서 잘못 빠지면 하도 낙서, 선천 후천, 음양오행, 사주명리, 정역 등등으로 나가게 되니 ... 주의(?)를 요망한다. ^^

 

 

주백곤이나 남회근 선생의 저작들 같은 좀더 학술적인 주역 사상 입문서로 중심을 잡아주도록 하자.

 

 

 

 

 

 

 

 

 

 

 

 

 

 

 

 

 

 

 

개론서를 맛보았으면, 본격적인 탐구로 들어가자.

 

주역에 있어서,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 두 권 있다. 표준이지.

 

먼저, [주역왕한주(周易王韓注)].

 

 

 

 

 

 

 

 

 

 

 

 

 

 

 

 

위나라 때의 요절한 천재소년 왕필(王弼)의 작품이다.

천재다운 시건방짐으로 ... 주역의 역경 부분에 대한 해설이라 볼 수 있는 역전에는 따로 주석을 달지 않으셨다. 역전 지은 놈들이랑은 같은 급이라, 이거지.

해서, 역전 부분에는 한강백(韓康伯)이라는 분께서 주석을 달아서,

합하여 이름하니 [주역왕한주].

 

이 판본은 당나라 때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라는 유교경전 정리작업에

공영달 아저씨의 주소가 덧붙여져서 [주역정의(周易正義)]라는 이름으로 들어가서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요즘은 다행히도 전문 연구가에 의한 번역본이 있다.

 

1998년도에 처음 나왔는데, 두 번인가의 개정을 거쳤다.

번역본은 보지 않아서 번역에 대한 왈가왈부는 생략.

 

 

천 년 가까이 표준적인 판본으로 자리매김한 [주역왕한주]의 아성에 도전한 책이

바로 주자의 [주역본의]. 번역자는 [주자어류] 등에 나온 관련 내용까지 꼼꼼히 훑어서 실어주었다. 참고로, 주자의 주역 입문서인 [역학계몽]도 두 종이 번역되어 있다.

 

 

 

 

 

 

 

 

 

이 책 역시, 정이천의 [역전], 흔히 [이천역전(伊川易傳)]과 함께 편집되어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이라는 이름으로 역시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권위 있는 교과서 역할을 도맡은 [사서오경대전(四書五經大全)]에 포함되었던 판본. 따라서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가장 많이 본 판본이 되겠다.

 

 

 

 

 

 

 

 

가장 먼저 추억의 퍼런 표지로 나왔던 현토완역 주역전의는 좀더 산뜻하고 진중한 옷을 입고 나왔고, 가장 최근에 나온 경학연구원판까지 해서 삼파전이 형성되고 있다.

 

조선 경학사의 최고봉, 다산 선생의 [주역사전]도 번역되어 나왔다.

 

 

 

 

 

 

 

 

 

 

 

 

 

 

 

 

19세기의 갑골문, 20세기의 마왕퇴한묘백서, 곽점초간 등의 고고학적 성과로, 경학에 있어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런 최근의 연구성과들은 기존 통행본들의 애매모호한 부분들을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밝혀주고 있다.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며 구구절절, 중언부언했던 것이 역학사의 한 단면일진데, 잡설을 쏙 빼고 담백하게 읽어보자. [고형의 주역] 및 그 한국어판 번역자인 김상섭 선생의 저서들이 대표적이다.   

 

 

 

 

 

 

 

 

 

 

 

 

 

 

 

 

 

그 외 개성적인 시각으로 주역을 풀이한 책들.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책 한 권.

 

 

 

 

 

 

 

 

 

참고로, [최고의 고전 번역] 주역 부분 비평자 곽신환 교수의 코멘트 :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주역 번역서는 적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출간된 것만 대충 추려봐도 서정기 역, 김석진 역, 박병대 역, 김상섭 역, 양학형 역, 김인환 역, 임채우 역, 이기동 역, 백은기 역, 서대원 역, 성백효 역, 김흥호 역 등이 있다. 이들은 주역을 번역했지만 제목이 반드시 ‘주역’이라 돼있진 않다. 관심을 끌려고 부제가 주제를 덮어버린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들 번역서 중엔 번역서라 보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주역이라는 경전이 갖는 특징때문이다. 우선 판본의 문제가 있고, 해석의 갈래 문제가 있다. 현재 통용되는 주역은 經 부분과 이른바 10翼이라 불리는 傳 부분이 붙어있다. 경 부분은 64개의 괘와 이 괘에 붙어있는 판단의 말로 구성돼있다. 10익은 그동안 공자의 저작, 또는 적어도 공자 문하생들이 스승의 철학을 바탕으로 저작한 것을 통설로 여긴다. 翼, 곧 날개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주역은 이 열개의 날개를 얻음으로 인해 그 공간적 확대와 시간의 시련을 견디어내는 보편성과 탄력성을 획득한 것도 사실이다. 한대 이래로 10익으로 經을 해석하는 것과 10익을 나눠 해당 경문아래 붙여둬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의 표준으로 삼아온 전통이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 대한 반발도 결코 약하지 않다. 우선 ‘周易本義’라는 저술을 통해 기존의 주역 이해에 강력하게 도전한 주희도 경과 전을 분리해 주역 해석에 傳에 의한 선입견을 배제하려했다. 조선조 유학자들의 주역 이해에는 주희의 관점이 상당히 반영돼있다.


위의 번역들은 경만을 번역한 것, 경과 전 모두 번역한 것, 그리고 특정인의 주석을 번역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또 ‘주역전의대전’처럼 주석을 합쳐 놓은 것에 대한 번역도 있다. 그런데 경 또는 경과 전을 함께 번역한 경우엔 대부분 역자의 해석이 장황하게 붙어있다. 특정 역학자의 주석을 곁들여 번역한 경우는 번역 자체에만 충실하려 했다.  


또 번역자들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주역 번역은 대학전공자보다는 江湖에 숨은 고수가 이름을 드러낸 경우가 많다. 長短이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건 강호의 제현들에게서 발견되는 문제는 공자가 말한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는 폐단, 즉 주관적 사유와 개인적 체험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객관성의 결여나 비뚤어진 통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주역번역엔 여러 고전연구가들과 한학자들도 상당수 합류하고 있다. 여기에다 역술가들까지 합치면 어지러울 정도다. 이율곡은 “무릇 역은 만사의 근본으로 善惡과 邪正이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역을 배우다가 잘못돼 그 큰 뜻을 잃고 사특한 이론에로 들어간 경우도 있다”라고 해 주역 공부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주역번역에 있어서 얼마나 원전에 충실하며 쉽게 읽히느냐의 문제만을 다루긴 어렵다. 전혀 방향이 다른 주해서가 많다는 것과 해석의 갈래가 심하다는 것, 여전히 의미가 모호한 글자와 구절들이 많다는 것 등이 그 이유다. 예컨대 건괘의 괘사이며 주역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구절인 元·亨·利·貞을 원, 형, 이, 정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원형, 이정으로 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권위적인 학자들이 여전히 대립하고 있는데 어느 하나만 고집하긴 어려운 현실이다. 왜냐하면 양갈래 길이 너무나 길고 찬란하게 전개되고 있기에 한쪽만 취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것이 모험에 가까우며, 또 이후 이뤄진 길이 아깝기 때문이다. 역자들 대부분이 여기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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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 2015-05-13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주역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으로서 어떻게 입문을 해야할지 헤매다가 이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도움 받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비로자나 2015-05-13 13:12   좋아요 1 | URL
음 ... 다시 읽어보니 너무 이런저런 책이 많이 나열되어 있군요.
개인적으로는 김상섭 선생의 번역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

표맥(漂麥) 2016-03-15 0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괜찮은, 개념있는 정보글이군요...감탄^^
 

Zen in der Kunst des Bogenschiessens 

 

von  Eugen Herrigel

 

 

 

 

 

 

 

 

 

 

 

 

 

 

 

 

 

선불교와 궁도 양쪽에 걸친 유명한 책인데, 한참 절판이다가 출판사가 바뀌면서 표지도 바꾸고 제목도 바꿔서 새로 나왔다.

 

제일 왼쪽의 초판도 나쁘지 않았는데, 굳이 표지를 바꿨어야 했나 싶었는데...

새 출판사에서는 독특한 표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 왜 책등을 사진으로 찍어놓고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책표지였다니.

뭔가 바우하우스 느낌이 나지 않는가?

 

그나저나 새 제목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려나...

 

 

 

 

 

 

젊은 시절 신비주의 전통에 경도된 적이 있던 독일 신칸트학파 철학교수가,

일본 東北帝國大學에 부임해 와서 활쏘기를 배워가며 선의 정신에 도달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몸의 모든 행위(와 무위)를 연마하는 기예와,

그 수련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를 현대적 개념으로 서술했다.

이성적인 관점에서의 이해와 궁리의 시도가 포기되자 비로소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것'.

 

좋은 책이다!

 

(번역에 있어서는 글쎄, 일본의 한자 개념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옮기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번역 과정에서 일본어 번역본을 좀더 참조하는 것이 좋았을 듯)

 

 

 

 

 

 

 

아래는 본문 중 일부. 띄어쓰기는 임의로 다시 하였다. 

 

3. 올바른 호흡법

맨 처음의 시도에서 이미 나는 중간 강도의 연습용 활을 당기기 위해서도

안간힘을 , 다시 말해 온몸의 힘을 다 쏟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이 목표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면서 연습을 계속했다.

선생은 주의 깊게 나의 노력을 지켜보고,

조용히 나의 어색한 자세를 교정했으며,

열심히 한다고 칭찬했고, 너무 힘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위대한 명인은 동시에 위대한 스승입니다.

우리에게 이 두 가지가 한데 속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만약 수업을 호흡법에서 시작했다면,

아마도 호흡에 결정적인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먼저 스스로의 거듭된 시도를 통해서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던져주는 구명 튜브를 움켜쥘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5. 연습 또 연습

정신은 아무런 특정한 장소에 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곳에 현존한다.

또한 정신은 이것 또는 저것과 관계하지만 그에 얽매이지 않으며,

동시에 근원적인 운동성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현존한다.

 

마치 연못을 채우고 있으나 언제라도 흘러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물과도 같이,

정신은 자유롭기 때문에 매 수난 고갈되지 않는 힘을 발휘하고,

또 비어 있기 때문에 만물에 스스로를 개방한다.

이 상태가 진정 근원적인 상태로서, 이는 텅 빈 원으로 상징되는 바,

텅 빈 원은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자에게는 모종의 의미로서 다가온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궁사는 어떠한 숨겨진 의도에 교란되지 않고,

오로지 정신의 현존의 충만 속에서 기예를 수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자기 자신을 잊고 창조적인 과정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기예를 수련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 속에 침잠한 자가 본능적으로 뛰어들 수는 없는 상황에

대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먼저 그 상황을 의식으로 가져가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전에 벗어던졌던 저 모든 관계로 다시 들어서야 할 것이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그날의 일정을 살펴보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겠지만,

깨달음을 얻어 근원적인 상태에 살면서

거기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람에게 비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행위 과정의 각 마디가 신의 섭리를 통해서

비로소 그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8. 어둠 속의 표적

나는 대답했다.

"도대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장 단순 명로한 것조차 혼란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제가 활을 당기는 것인지,

아니면 활이 저를 최대의 긴장으로 당기는 것인지.

 

제가 목표를 명중시키는지,

아니면 목표가 저를 맞추는 것인지.

 

'그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면 정신적이고,

정신의 눈으로 보면 육체적인지,

또는 둘 다인지.

그도 아니면 둘 중 아무 것도 아닌지.

 

활, 화살, 목표, 그리고 저 자신,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어서 더 이상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분리하려는 욕구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활을 잡고 쏘는 순간 모든 것이 너무도 맑고 명료하며,

그저 우습게 느껴지기..."

 

 때 나의 말을 끊으며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방금

마침내

활시위가

당신의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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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문고 책 몇 종 구경합시다.

 

최근 다시 출간되고 있는 이을호 선생의 [한글 논어], [한글 맹자]가 즈려밟힙니다.

 

그리고 [대학 중용] ... 아니지 [중용 대학]이로구나.

 

 

 

 

 

 

(알라딘 DB에는 박영사 [중용 대학]은 안 보이고

[정다산의 대학공의]라는, 명문당에서 1974년에 나온 책만 있군요.)

 

물론 다산 선생의 경학 저술들은 전주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국역 여유당전서]에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대학공의]뿐만이 아니라 [대학강의], [중용자잠], [중용강의보] 등도 함께...

다산 경학은 정말 엄청난 역작이죠...

 

 

 

 

 

 

 

 

찾아보니, [국역 여유당전서]의 經集 부분을 오종일 선생과 공역했던 박완식 선생이 최근에 [대학공의]와 [대학강의]를 묶어서 [다산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펴냈네요. [국역 여유당전서] 판의 개역판으로 사료됩니다.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던 책이었던지라, 너무나 반갑습니다.  조금 이름 있는 곳에서 나왔었으면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을텐데... 전주대 말고 서울대나 고려대출판부였다면... 이번에 나온 천잠이라는 출판사도 낯선 이름이네요. 아마 앞으로 [다산 중용]이라는 이름으로도 한 권 나오겠죠?

 

 

옆에 보이는 건 아마도 서문문고로 보이는데 ...

 

이태백의 시를 ... 무려 신석초 선생께서 번역했습니다.

 

신석초 선생은 또 ... 무려 위당 정인보 선생께 한학을 배웠다는 ...

 

사실, 신석초 선생의 한시 번역물로 더 유명한 작업은

 

바로 [시경] 번역. 역시 서문당에서 나왔고...

 

 

 

영미권의 시경 번역으로 유명한 것이 에즈라 파운드의 작업이니...

 

미국과 한국의 대표 시인이 번역한 중원의 옛 민요들을 나란히 놓고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참, 박영문고 맨 끝에 있는 낯선 일본 저자의 이름을 안다면, 당신은 근세 일본의학사에 기본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

 

 

 

 

 

 

* 위 사진 및, 사진에 보이는 책들은 한문 고전의 번역에 매진하고 계시는 정 모 선생님의 소장품입니다. 올재에서 나온 따끈한 [한글 맹자]를 자랑했더니 저 사진을 딱~ 보내서 기를 팍~ 죽이시는 분...

 

 

 

살아 있네, 살아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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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재출간되어 파란을 일으키며 매진되었던 이을호 선생 번역본 [논어].

어렵사리 구해서 보게 되었다. 

 

물론(?) 책은 못 구하고 ... 복사본으로 ㅠㅜ

 

 

 

 

 

 

 

 

 

 

 

 

 

 

1. 번역에 있어서 맛깔나다 못해 쫀득쫀득한 '조선말'의 아름다운 구사는 높이 살 부분이다. 어떻게 이런 번역을 5~60년대에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아, 이래서 수많은 [논어] 번역서 중에서 '최고의 고전번역'으로 꼽혔구나 싶다.

 

헌데... 그 아름다운 '조선말'이 '한국어' 사용자에게 썩 와닿지는 않더라.

우리가 잊은지 오래된, 생경한 순우리말 단어들이 튀어나오니, 대체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잘 안 가는 부분들이 생기게 된다. 마치 [토지]나 [혼불] 같은 19세기말~20세기 초를 다룬 대하소설을 볼 때처럼 국어사전이라도 하나 끼고 봐야 할 것 같은 분위기(아예 그러라고 [토지사전]인가도 있다는).

 

더구나 [논어]라는 책 자체가 문장이 짧고, 단어의 사용이 대단히 함축적인지라 '아름다운' '조선말'로 번역된 문장에 대한 원문을 보면서 '아, 이 번역문이 내가 알던 그 구절이었구나'라고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있고.

 

이런 경우에는 번역문의 단어 해설을 포함한(!) 자세한 주석이 달리는 편이 좋을텐데, 그러려면 적어도 국문학 전공자와 한문학 내지 동양철학 전공자가 팀을 이뤄 전문적 편집작업을 해야 했겠지만... 

 

이런저런 고려 없이 일단 재출간 자체로 의의를 가지는 작업물이다 보니 언감생심(막말로, 2,900원짜리 책 아닌가!).

 

어쨌든, 지나치게 간결한데다 약간 번역문 핀트가 미묘하게 안 맞는 불친절한 주석만 가지고는 본문 해독이 상당한 고역이었다. (주석이 더 난해하다!) 

 

 

 

이런 정도의 번역은 오히려 다른 번역본과 원문을 통해 [논어]를 조금이나마 접해본 독자에게 알맞지 않을까. 결코 출판자의 취지처럼 청소년들에게 고전을 접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논어]를 처음 읽는 독자를 대상으로 보급할만한 번역본은 되지 못한다고 본다. 위에서 말했듯이 저 아름다운 조선말을 잘 풀어주는, 친절하고 자세한 '한국어 주석'이라도 달린다면 모를까.

 

이을호 선생의 [논어] 번역이 '최고의 번역'인 것은 맞다.

단, 조선말 번역 중에서 최고, 그리고 최후의 번역.

앞으로 이을호 선생의 유려한 조선말 번역을 이어받아 '최고의 한국어 번역'을 써내는 것은 후학들의 몫으로 여전히 남아있고.

 

 

 

2. 번역의 관점 자체가 조금은 고루하다고 할까. 이게 이야기하자면 조금 복잡한데... 그냥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공자와 [논어]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하고, 군데군데 부분적인 자구 해석에서 다산설을 가져오는 정도? 대단히 참신하다거나, 새로운 공자상을 제시한다거나 뭐 그런 정도까지는 아닌...

 

 

 

3. 이게 앞으로 전자책으로도 만들고 해서 보급한다고 하는데... 설마 지금 책 그대로 내지는 않겠지? 일단 이 책의 편집 자체가, 책의 구성과 전혀 맞지가 않는다. 현재의 체제로는 한 편 안에 평균적으로 백 개가 넘는 주석이 달리게 되는데(모두 스무 편이 있으니, 이천 개 가까운 주석이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는 너무나 읽기가 불편하다. 더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조선말 번역에 대한 주석이 없이는 내용 이해가 조금 힘든 경우들도 있다. 

 

이런 경우 당연히, 주석이 각주로 내려가지 말고, 번역문과 원문 바로 밑에 따라붙어줘야 한다. [논어]를 비롯한 많은 동양 고전 번역본들에서 하고 있듯이 말이다.

 

전자책으로는 한 화면 안에 한 구절에 대한 번역문, 원문, 각주, 평설이 함께 뜨도록 화면 구성을 해주는 편이 좋겠다.

한 절을 한 페이지씩 설정해서 화면을 밀면 다음 절로 나갈 수 있게...

각주는 본문에서 클릭하면 바로 팝업창 형식으로 열릴 수 있도록 링크되는 것도 좋겠고, 주석에서 비교 대조해보라는 구절들도 링크로 연결해주는 것도 좋겠고.

뭐 종이책보다 훨씬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줄 요약 : 소문이 왜 났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소문난 잔치라는 느낌.

 

 

 

 

 

P.S. 전자책이 드디어 나오긴 했는데... 본문을 그대로 변환만 시킨 PDF 파일 이다. 제발 이렇게는 나오지 말았으면 하던 바로 그 방식으로...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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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밖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경악스럽게도 이틀만에 판매용 4천 부가 매진되어버렸다는 1차분의 학습효과 덕분인지, 교보문고 매장에는 요거 한 번 사 보겠다고 길다란 줄이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에게 한 권씩만 판매.

 

간신히 마지막 남은 [한글 맹자] 입수하는데 성공. 나머지 책들은 냉정하게 패스. 

 

동시에,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서도 구매. 종류별로 3권 이상은 구매할 수 없도록 제한조치. 

 

그럼에도, 오후에 재접속하니 이미 매진. 

 

결국 '고리타분한' 인문학 고전 네 권, 각각 사천 부 가량이 하루이틀만에 매진 사례.

21세기 한국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나?

동양 고전이 이 정도의 판매 돌풍을 일으키는 것은

텔레비전 강의까지 하시는 도올 김용옥 선생 말고는 ...

신영복 선생의 [강의] 정도?

 

이런 초반의 열풍은 언론에서 많이들 떠들어준 덕도 크겠지만,

상당 부분은 이름만 높았을 뿐 그동안 구하기 힘들었던

이을호 선생의 [한글 논어]와 [한글 맹자]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이기도 했을 것이다.

 

 

 

 

 

 

 

 

 

 

 

 

 

 

역시, 박영문고로 나왔었던 이을호 선생의 번역본을 재단장.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맹자요의]의 정신으로 번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지형 선생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감상평

 

1. 책날개 정도는 하는 편이 어떨까 ... 물론 문고판, 페이퍼백 컨셉이긴 하지만 ...

지금 분위기는 한정판으로 발매된 바람에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희귀본이 되어버렸는데 ...

막 모서리 닳아서 헤어지고 그러면 안 좋을 듯.

 

2. 번역은 좋다. [한글 논어]처럼 최상급이다, 는 평가까지는 못 내리겠다.

군데군데 약간 어색한 부분들도 보이는데 ... 그냥 번역문만 읽어서는 무슨 말인지 갸우뚱.

[한글 논어]의 경우 짧은 단편들이라 톡톡 튀는 찰진 번역의 느낌이라면, [한글 맹자]는 구수한 입말을 잘 살린 느낌.

 

3. 번역문도 군데군데 오자가 눈에 띄는데, 주석과 원문으로 넘어가면 이건 뭐 거의 재앙 수준.

비전공자가 교정을 봤다는 티가 팍팍 나는 초보적인 실수들이 좀 많다.

[맹자]에 대한 최초의 주석가인 '趙岐'를 '趙峻'으로 오기한다든지 하는 민망한 경우들.

(이런 오자의 경우는 전산입력을 하는 요즘에는 드물고, 활자인쇄 시절의 실수가 이번에 전산입력을 하면서 그대로 이어진 듯 한데, 당연히 1) 해당 분야에 해박한, 전문가 급의 2) 유능한 편집자가 걸러줬어야 하는 부분. 그런데 이걸 다 갖춘 인력이 많지가 않지...)  

 

4. 원문도 정말 무성의하게 그냥 형식적으로 실었다.

일단 구두점이 없다. 다행히 가끔씩 띄어쓰기는 해주셨다. 

물론 해야 할 곳을 안 하거나, 안 해도 될 곳을 한 경우들이 많고.

유일한 구두점은 曰(왈) 뒤에 붙은 쉼표인데, 이것도 한 경우도 있고 안 한 경우도 있고.

한 경우와 안 한 경우도 무슨 ... 원칙에 따랐다기 보다는 어디는 하고, 어디는 그냥 빼먹은 느낌.

 

5. 평설 부분은 나름대로 이을호 선생의 목소리인데, 주석과 함께 몰아넣기 보다는 본문으로 올려서 번역문 뒤에 넣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폴로기아] 및 [크리톤], [심포시온] 등등이 수록되었고, 이미 언급했듯이 삼성출판사 세계사상전집판의 분책이라 볼 수 있다.   대본으로는 고색창연한 Benjamin Jowett 의 영역본을 사용했다. 조우현 선생이 작업할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21세기에 영역본, 그것도 19세기 영역본의 중역본이 다시 나오다니 ...

 

 

이런 상황이니 혹시 구매를 못 하였다 하더라도, 플라톤 대화편의 입문서 정도의 위치인지라 너무나 많은 번역본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으니 걱정 마시라. 물론 박종현 선생의 원전 번역을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제목부터가 [변론]이라고, 좀더 적합하게 바뀌었지 않은가.

 

 

 

 

 

 

 

 

 

 

 

이 책이야 너무나 유명한 고전이지만, 번역자에도 주목해야 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바로 그 주요섭 선생이 언제 이런 번역서를 내셨나... 나름 이을호 선생 못지않게 찰진 번역일 듯 하다. 재미있게도, 주요섭 선생이 코리아헤럴드의 전신인 코리안리퍼블릭 이사장을 지냈었다고. 꼭 이런 이유 때문에 선정한 것은 아니겠지만. 

 

 

 

 

 

 

 

자, 역시나 올재 판을 구하지 못하셨을 당신을 위해 : 

 

 

 

 

 

 

 

 

 

 

 

 

 

2005년도에 나온 서해문집판은 올재 [정치학]의 번역자로 친숙한 라종일 교수의 번역. 아름다운 도판들이 눈길을 끌고, 주석을 찬찬히 보면 분명히 라틴어판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도에 나온 을유문화사판은 같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의 번역. 이 책 아니면 접하기 힘들 다양한 관련 사료들과 자세한 해제가 돋보이는, 공이 많이 들어간 역작이다.

 

 

 

 

 

 

 

 

 

 

 

 

 

 

 

폴 터너 교수는 영문판 펭귄 문고에서 원래 라틴어로 쓰인 이 작품(1516년)을 현대 영어로 새로 번역했는데, 2008년도에 나온 한국어판도 이 새로운 영어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기존의 무수한 번역본들과는 저본이 다른 셈. 자세한 주석은 덤. 펭귄의 역량은 기본적으로 이런 정도다. 올재, 보고 있나?

 

 

자, 이제 끝판 대장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이, 영국인인 토마스 모어가 당연히 [유토피아]를 영어로 썼을 것이라는 생각인데, 사실 당시의 유럽 공용어였던 라틴어를 놔두고 불완전한 지방어였던 영어를 썼을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 수많은 [유토피아] 판본은 모두 원저가 발표된지 40여 년 뒤에 나온 랄프 로빈슨의 영어판(1551년) 등을 저본으로 삼아와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드디어(!) 라틴어판 원전 번역이 소개되었다. 주인공은 그동안 별다른 히트작을 못내던 문예출판사. 이제부터 [유토피아]의 결정본은 바로 이 책이다! 앞으로 올재 클래식스에서도 영문판 펭귄 문고나, 문예출판사 원전 번역본 정도의 의미있는 작업물이 나오길 기원한다. 

 

 

 

 

 

 

 

 

 

 

 

 

 

 

 

 

 

대박이다. 실제로 보니 정말 두껍다. 5백 쪽 이상의 분량.

이전에 민문추에서 나온 것 말고는 다른 판본도 없다.

이번 출시분의 진짜 완소 아이템은 바로 이 책이다 ! 

 

 

 

 

 

 

 

 

 

 

뱀발 내밀어라 ▼  

 

장서가의 변명 Apologia Bibliophilia

 

워낙 언론에서 주목한데다, 한정판으로 나온 물량이 이틀만에 매진되는 사단이 나고 보니 인터넷 서점 등의 중고 코너에는 벌써부터 이 시리즈가 정가의 열배, 스무배 가까운 가격으로 나와 있다. 물론 파는 이가 그렇게 부른다고 하여 덥석, 사지는 않겠지만들. 이런 모습에 혹자는 지나친 폭리이다, 고상한 선의를 무시한 악질적인 매매행위이다 등의 비판을 하는 모습이 올재 게시판 등지에서 목격된다. 물론 애시당초 경제적 소외계층을 위해 염가로 팔자는 취지의 서적을 대상으로 지나친 영리추구를 하는 모습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헌데 이를 어쩌나. 어린 시절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골목에서, 머리가 굵어지고서는 서울 시내 전 지역의 헌책방을 섭렵하며 책을 수집했던 내가 보기에 이건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다. 절판본, 희귀본의 경우에 정가의 수십배 내지 수백배까지 나가기도 하는데, 몇 만원 정도는 애교 수준. 올재 클래식스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찌 보면 자랑스럽고 좋지 아니한가. 책이 출판사에서 매긴 가격의 열배 스무배로 팔린다는 것은 달리 생각해 보면 출판사에게는 무한한 영광(물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의 출판사라면 그걸 영광이로소이다~ 하고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하필이면 '비영리' 사단법인에서 펴내었으니, 그냥 영광을 조용히 음미하면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버는 모습을 바라볼 밖에).  

 

왜 이런 작태가 벌어질까. 정리 좀 해보자.

요즘 말로 '사기'(사기캐릭!)에 가까운, 완벽한 이력을 가진 명망가의 야심찬 프로젝트.

각종 언론을 통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공짜로 누린 엄청난 홍보 효과.

고매한 이상과 대의명분까지 덤으로.

더구나 웃기는 것이, 정작 책은 널리 보급은 되어야 하지만 너무 많이 팔려서도 안되는 (어쩌라고?!) 말도 안 되게 역설적인 숙명. 

 

이건, 희귀본으로서의 완벽한 조건이다.   

 

앞으로도 올재 클래식스의 가격은 더 오를 일만 남았다. 잠재력이 매우 풍부한 우량주인 셈이다. 아니 IT 혁명 때의 코스닥 주식이나 2000년대 초반의 중국 주식, 아니 그 옛날 네델란드의 튤립 뿌리 수준이다. 물건을 산 그 다음날로 열 배가 되어 있다니... 

 

당신에게 자본이 있다면 올재 클래식스에 투자하라 !  

 

  

누군가 말했던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이렇게 말해보자.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헌책방 업계에서 '나까마'라 불리는 이들, 헌책 애호가, 장서가들이 한국 출판계에 다시 오기 힘들 이런 '대박 아이템'을 놓칠 리 없다. 여기다 대고 고상한 목적으로 펴내는 책을 악용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부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자 맹자가 살던 시절에도 다 그랬다. 세상의 이치야.  

 

사유재산도 없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어 쓰는 이상사회는 그야말로 유토피아, 어디에도 없는 곳. 우리나라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 그 중에서도 제일 저질인 약육강식의 천민 자본주의. 자신의 소유물을 정당한 수단으로 판매한다는데 이를 제지할 방도는 더군다나 없다. 왜 하필이면 이런 데서만 이상을 내세우시는가, 오직 이윤이 있을 뿐이다(何必曰義 亦有利而已矣) !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하자. '정가'의 수십 배의 가격을 치르고 책을 사는 행위가 터무니없어 보이는가? 그래봐야 몇 만원이다. 왜 책 한 권에 몇 만원씩이라면 그렇게 화들짝 놀라시는가. 한 권에 수천만원, 수억원을 줘도 못 사는 책들도 수두룩하다. 나에겐 '원가'의 수백, 수천 배의 가격을 치르고 값비싼 수입 화장품이니 모모 브랜드의 가방 따위를 사는 행위가 더 터무니없어 보인다. 1억원 짜리 피부관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으신다는 분들의 행태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린다. 믿고 싶지가 않아서. 하룻밤 술값으로 기백만원씩 쓰기도 하는데, 두고두고 평생의 지혜를 살찌워줄 책에 쓰는 돈이 뭐 그리 아까운가. (오해하지 마시라. 물론 이건 궤변이다. 책이 매진되자마자 득달같이 인터넷 중고서점에 책을 내놓은 '나까마'에게 지불한 돈은 책을 만드느라 수고한 이들에게 절대 돌아가지 못하고, 만든 이들의 고상한 목적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 맞다. 차라리 올재에 그 돈을 기부하고 책을 받는다면 뿌듯하기나 하지, 이건 뭐...)    

 

새로 책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려 꼬박꼬박 책을 사보겠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당신부터가 이제부터 꼼짝없이 고전 애호가, 장서가의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이런 세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셨으니 앞으로 부지런히 책 나올 때마다 사모으시도록. 그리고 행여 다음 기회에 책을 못 사게 되더라도 너무 열불내지는 마시도록. 올재에서 나올 책들은 워낙에 유명한 고전들인 덕분에, 꼭 올재 판이 아니더라도 대개는 다른 수준 높은 다양한 판본들이 있으니. 그러라고 내가 다른 판본들도 열심히 소개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고.

 

여기에 대해 올재에서 할 수 있는 일? 없다. 지들이 무슨 공정거래위원회도 아니고...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어떻게든 좀 해결을 하긴 해야 할 것이다. 처음의 취지는 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나까마'들로 하여금 희귀본을 싼 값에 더 많이 매입하도록 도움을 주기나 하고, 기껏 책을 펴내면 발매 하루, 혹은 이틀만에 절판되어 버리니 정작 책을 봐주었으면 하는 이들은 미처 다 못 사게 되고. (꼭 사려면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해야 되고 말이다!)  

  

 

 

올재에서 취할 수 있는 대응방안이라면... 뭐 이런 것들이 있겠지. 

 

1. 판매부수를 늘린다. 보급용 도서에 한정판이 무슨 말이냐! 전국민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사볼 수 있게, 몇 만 부 씩 찍어서는 미친년 떡 돌리듯이 팔아제끼는 것이다. 더이상 희귀본이 아니니 '나까마'들이 거들떠도 안 볼 것이다. 몇 년 뒤에는 다른 전집들처럼 헌책방 한 구석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겠지. 하지만 한정판 발행이라는 방침상 이는 절대 불가.   

 

(왜 책을 보고 싶은 독자들의 바램을 외면하냐고? 그 바램, 그대로 들어줬다가는 한국 출판업계는 괴멸하게 되니까. 사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가격이 가능했던 것은 각종 기업체의 후원과, 서적의 가격 결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유통업체의 배려 덕분이다. 그나마 비영리 사단법인이란 곳에서 고상한 목적으로 딱, 4천 부만 팔겠다고 하니 그냥 보고 있는 거지,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대기업에서, 후원이 아닌 계열사 밀어주기 식으로 이런 일을 벌인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건 시장질서를 문란시키는 '덤핑'이라는 불공정 거래이며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되어 버리니 말이다.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동네 구멍가게가 다 죽어나가듯, 대기업에서 마음 먹고 이런 일을 벌였다면 영세한 가내수공업 형태를 못 벗어나고 있는 한국의 출판업계는 멸망해버릴 것이다! 만약 올재에서 계속 [한글 논어]를 단돈 2,900원에 판다면 [논어]를 펴내던 다른 출판사들은 자기네 책을 절판시켜야 할 것이다. 새로운 번역서 같은 것은 앞으로 출판되기 힘들테고. 그러면 우리는 이을호의 [한글 논어] 말고는 다른 번역본이 없는, 참으로 척박한 출판 문화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2. 책의 수준을 확, 떨어트린다. 영미권의 페이퍼백처럼 저질의 갱지를 쓴다든지, 70년대에 대충 일본 책 베껴서 잡탕으로 펴낸 형편없는 중역본을 가져와서 알뜰하게 재활용 해준다든지. 내가 '나까마'니 뭐니 하며 약간은 비하하는 식으로 말했지만, 사실 이들은 출판업계의 사정에 대해 빠삭하게 꿰고 있으며, 인문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높은 감식안의 소유자들이다. 올재에서 이딴 식으로 별볼일 없는 책들을 자꾸 만들어낸다면, 그들은 올재에 대한 관심을 뚝 끊을 것이다. 지금도 정체불명의 번역자들만 골라서, 아무도 안 사주는 책을 자꾸 펴내는 이상한 전집이 몇 종류 있는데, 사정을 조금 아는 장서가는 이런 류에는 눈길도 안 준다. 하지만 이것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 

 

3. 가격을 올린다. 솔직히, 아무리 후원을 받니 어쩌니 해도 현재의 가격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가격이다. 2,900원? 길거리에 파는 별똥별이니 천사표니 하는 커피 한 잔도 못 사 먹는 돈이다. 아무런 경제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그냥 상징적인 수준의 가격이니, 수집가들은 앞뒤 안 재고 부담없이 사재기나 하게 되고, 안그래도 희귀본인 책들에 오히려 아우라를 덧씌우는 결과를 낳는다(정가는 얼마인데 나는 열 배를 받고 팔았다, 누구는 스무 배에 샀다더라, 뭐 이렇게 말이다. 열 배라 해봐야 얼마 하지도 않으니, 자기들끼리 희희낙락하기에 딱 좋다. 한 점에 십원 하는 고스톱 느낌?).

 

이럴 거면, 그냥 조금만 더 올리시라. 다른 문고판들이랑 비슷한데 조금 더 저렴한 정도로. 해서 그 돈으로 훌륭한 번역가에게 의뢰도 하고, 좋은 편집진도 상주시켜서 권위있는 번역본도 펴내주고 하자. 언제까지 옛날 번역본들 뒤져가면서 '발굴'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지금 올재에서 '발굴'하고 있는 한 세대 전의 번역본들은 일본어판 베끼기나 원문 누락, 대리번역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을호 선생처럼 참신한 원전번역을 아름다운 한국어로 딱, 한 경우가 그리 많지 못하다는 말. 

 

단순 계산으로, 책값을 2,000원만 더 올려서 그 돈을 번역자에게 지급한다면... 꽤 많은 일급 번역가들이 앞다투어 올재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작금의 일부 비정상적인 중고가 형성은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더 올려도 된다는. 맨큐 교수의 경제학 강의 시간에 뭐 이 정도는 다 배우셨을테니...   

 

인간적으로, 지금 책값 2,900원이 3,900원이 되나, 4,900원이 되나 다 거기서 거기다(더 넘어가면... 조금 생각해 봐야겠다^^). 어차피 볼 책이면 아무리 값이 나가도 다 보게 되어 있다. 책값이 비싸서 못 사본다고? 정말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책에 돈 쓰기가 아깝다는 소리일 뿐이다. 

 

지금처럼 인쇄비도 못 건지는 낮은 가격을 고수하다가는, 당신들이 사줬으면 하는 가난한 이들은 영영 올재 클래식스를 구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책 좀 사볼까, 하기도 전에 벌서 책이 동나는데 어떻게 하나? 이상한 말 같지만, 가난한 이들이 올재를 볼 수 있으려면, 책값을 좀더 올려야 한다. 그래야 지금같은 유한계급들의 묻지마 식의 사재기도 수그러들 것이고. 역설적이지만, 할 수 없다.

 

  

4. 자, 이도저도 안 된다면, 마지막 대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아예 올재 홈페이지에 따로 아나바다와 사고팔기 장터를 열자.  

 

 

내가 가진 다 본 책을 희망하는 책과 교환해서 돌려 보는 아름다운 올재만의 전통을 만드는 것이다.

정말 책이 보고 싶은데 금전적 여유가 부족하다면 (앞으로 나올 예정이라는 전자책을 볼 수 있는 전자기기마저 없다면!) 이런 식의 돌려 보기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각종 도서관 및 문고 등에 더 많은 보급을 해서 접근성을 높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진짜 그대들의 모토처럼 "지혜를 나누는" 행위 아니겠는가.  

 

교환이 아니라 팔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판매액의 일정 비율을 올재 재단에 기부하게 하자. 화끈하게 경매 같은 방식도 재미있겠다. 이왕이면 경매 수익금에서 정가 및 택배비를 제외한 나머지 차액을 모조리 기부하는 자선 경매로. 그리고, 이런 기부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자(다음 번에 책 나올 때 이름도 좀 실어주고 뭐 그런 거 있쟎은가). 다른 인터넷 중고서점 등에다가 올재 책을 올려서 파는 행위는 뭔가 찌질해 보이게. 눈치 보이고 손가락질 받게.

값은 얼마든지 주고서라도 책을 사겠다는 사람은 좀더 쉽게 책을 구할 수 있고, 책을 판 사람도 올재에 기부했다는 뿌듯한 느낌을 받고. 그러다가 여기에 재미 붙여서 다른 단체에 기부도 좀 해보고, 뭐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에 고전 독서 열풍 뿐만 아니라 건강한 기부 열풍도 좀 불러주고 하면, 좋쟎아?

 

올재여, 지혜를 나누자. 세상을 바꾸자 ! 

 

뱀발 오무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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