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보급판 문고본, 양장본, 2001년에 나왔던 구판. 저렴하고 휴대하기 편한 문고본을 사도 무방하겠다.)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 선생의 [공자 노자 석가]란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뭐 그렇고 그런 입문서려니"라고 생각하고 무심히 넘어갔다. 한 학자의 TV 동양고전 강의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후끈 달아오른 시류를 타고 쏟아져 나온 책들 중의 한 권이겠지 한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이번 동아시아 출판사 이전에 [공자 노자 석가 한 자리에 하시다](민족사, 1991), [공자 노자 석가 삼성회담](늘푸른나무, 1991)이라는 제목으로 두 출판사에서 번역된 바 있다.) 하지만 꽤나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는 이 책의 저력을 보고는 약간의 압박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구한 이 책은 과연 잘 짜인 구성으로 세 성인의 회담장소를 정하는 문제에서부터 그들의 일생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세 성인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독자를 빨아들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도 세 성인의 대표적인 사상을, 소크라테스 이래 가장 오래된 철학책 글쓰기였던 문답법을 사용하여 나 자신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느껴질 정도로 긴장감 있게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책이 명저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다른 서평들에서도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니 여기서는 약간의 불만사항만을 이야기하겠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공자 노자 석가]란 책, 별거 아니쟎아?"라고 생각하시지는 말도록.

먼저 이 작품이 취하고 있는 형식에서는 피할수 없는 문제일수도 있을 것인데, 대조적인 사상들의 비교에 치우쳐 정작 각 사상가에게 중요한 근본 사상에 대한 소개에 약간 미흡한 감이 없지않아 있다. 즉, 석존에서는 공(空)을 이야기하고 공자에서는 천(天)을 이야기했으니 노자는 무(無)를 이야기하자, 는 식인데, 이런 무리한 대조를 하다보니 마치 천(天)이나 무(無)가 공자와 노자의 사상적 근간인 듯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노자에서 무(無)를 강조하는 것은 상당히 낡은 노자관이 아닌가.

또 하나, 저자도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불교 사상에 대한 전반적 미흡함이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을 커버하고자 반야심경을 통채로 해석해주고 있지만, 과연 한 장을 따로 떼어내서 반야심경 해설만 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같진 않아 보인다. 비록 반야심경에 불교사상의 많은 부분이 녹아있기는 하지만, 결코 이게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뭐 이런 것은 어찌 보면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화사전]을 지은 모로하시 선생도 약한 부분이 있구나, 하는 후학으로서의 안심 내지 도전의식 같은 것 말이다. 하기야 흠 하나 없이 유불도를 다 소화한 책을 펴내었다면 얼마나 인간미가 떨어졌을 것이며, 후학들은 뭐하고 먹고 살겠는가.

그리고 간혹 질문 중에는 '꼭 이런 문제까지 걸고 넘어져야 되나'싶은 것들이나 진행에서의 매끄럽지 못함이 눈에 뜨인다. 예컨데 248쪽의 관중론에 대한 질문은, 물론 수천년간 많은 논란이 되어 온 것이기는 하지만 굳이 이 책에서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는 듯 하다.

끝으로 번역본을 낸 출판사에 바라고 싶은 것은, 글 속에 나오는 각 사상가의 글에 대해 단순히 출전만 밝히지 말고 원문도 옆날개에 병기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어떻게 출전까지 밝히면서 원문을 안 적어 놓았을까. 조금만 더 신경쓰면 될 걸...

어찌되었건 동양의 3대 사상가들의 정수를 쉽게 추려놓은 이 책은 백수의 대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초학자에게는 너무나 좋은 길라잡이가 될, 전문가에게는 사상의 대중화에 전범이 될 자상한 눈높이 입문서이다. 서가 한 귀퉁이의 [대한화사전]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인상깊은구절]
배움에만 열중한 나머지 '생각'을 소홀히 하게 되면 사물에 대한 투철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생각'에만 열중하고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식견이 좁아져서 자칫하면 터무니 없는 과오에 빠지기 쉽습니다.그러므로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난폭해지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고 가르치치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2001-07-08
 

 

사족 1. 동양학계에 길이 남을 기념비인 [대한화사전]을 제외하고, 저자의 작품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책 중의 하나가 [중국 고전 명언 사전]이겠다. 정식 판본 이전에 국내에서 (물론 정식 판권계약을 거치지 않은 해적판으로) 무시히 많이 나온 고사성어 사전류의 원작이 되는 작품이다. 근자의 국내 드라마를 보면 고사성어나 속담 등을 꼭 한두 글자씩 틀리게 말하는 것으로 주인공의 무식함을 드러내곤 하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웃어야 할 순간에 웃지 못하는 스타일이라면 한 번쯤 통독할 만 하다. 국내에서 나온 책으로는 김원중 선생의 책이 미더우면서도 가격 또한 [중국 고전 명언 사전]의 1/3에 불과하다는 미덕이 있고, 임종욱 선생의 책은 [중국 고전 명언 사전]과 맞먹는 포스를 뿜어낸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 하다. 

  

 

 

 

  

 

 

 

사족 2. 노자와 함께 도가의 양대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장자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도 출간되었다. (이 책 역시나, [오리다리가 짧다고 이어줄 수는 없다: 장자이야기](문지사, 1991)라는 제목으로 기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의 작품은 [십이지 이야기]가 되겠고. 이번에는 또 얼마나 구수한 입담을 풀어놓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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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스로 분한 영화 [트로이]가 나왔던데...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이야기들은 고전 헬라스 시대에도 많이 나왔었고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를 위시, 이 주제를 다룬 작품군을 따로 '서사시권 서사시'라 한다), 현대에도 각종 개작물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 출판 시장에서 [삼국지]가 차지하는 지위쯤 되려나?).
   

          

  

 

 

 

 

 

(왼쪽부터,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뒷세우스의 이야기, [아이네이스]는 오뒷세우스의 꾀에 넘어가 함락된 고국을 탈출하여 방랑하다가 결국 로마를 세우게 되는 트로이 왕자 아이네아스의 이야기이다.) 

그 작품들 중, 원전에 바탕을 둔 권위있는 번역으로는 역시 천병희 선생의 작품(단국대출판부에서 나왔다가 절판되고, 현재는 숲에서 간행되고 있다)을 들어야겠지만, 현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으로 추천할 만한 것이 바로 아래 서적이 아닌가 한다. 약간 오래 된 감상이지만 한번 올려 본다. 

 

 

그렇다. 그녀는 유명한 베스트셀러였던(또한 드라마로도 제작된) 『가시나무새』의 작가다.
그리고, 국내에서 그닥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정로마시대의 인간 군상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 The First Man in Rome (로마의 일인자, 교원)과 The Grass Crown (풀잎관, 교원) 등을 지은 작가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물로 고대 로마시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과시한 작가이니만치 고전고대 헬라스를 다룬 이 책도 나에게 은근한 기대와 흥분을 갖게 했다. 

        

 

 

 

 

 

  
 

 

 

 

 

 

 

 

『트로이의 노래』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책이다. 내가 작가의 입장이라면 같은 주제를 다루었고, 아니 그로 인해서 주제 자체가 길이길이 기억되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한 작품의 후광이 너무나 크지 않을까, 의구심과 망설임을 가질 법도 한데 말이다. 상대는 고전의 드높은 반열에 우뚝 솟아 있는 저 『일리아스』아닌가. 그러고 보니 '일리아드'는 트로이의 다른 이름인 '일리오스'의 노래란 뜻이다. 여기서 작가의 대결 의식을 엿볼 수 있지 않나라고 추측한다면 지나친 걸까?

사실 잘 써야 본전이요, 못 쓰면 '그럼 그렇지, 어디 원작만 하겠어?'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주제에 겁없이 달려들 때에는 원작을 능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이는 섣불리 나설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맥컬로우는 용감히 돌진한다.
연인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을 복수키 위하여
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갑옷을 걸치고 매섭게 돌진하는 아킬레스 마냥.
 
작가는 장이 바뀔 때마다 작중 화자를 바꾸는 전략을 통해 해당 인물의 내면 심리, 각자의 처지에서 바라본 당시의 상황을 공감가게 보여준다. 그런 각각의 시선을 모두 접하는 독자는 다중 시점을 통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되고 말이다. (물론 전쟁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복잡하게 얽힌 신화시대부터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시선의 이동을 통해 신화시대의 사건들을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도 하고(아킬레스의 새 갑옷은 사실 오뒷세우스가 빌려주면서 병사들에게는 그냥 어머니가 새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하라고 충고한 것이었다는 둥...), 영웅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헬라스 군 진영 내의 이전투구들을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한 자작극으로 해석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원작의 진부함을 벗어나기 위한 기발하고 비판적인 독해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헬라스 신화 붐이 문화계를 강타하기도 하였지만, 이 책은 왠일인지 거기서 약간 벗어난 듯 하다. 하지만 헬라스 신화를 말하는데 결코 빠질 수 없는 책이 바로 『일리아스』가 아닌가. 서구 문명의 시원을 살펴 보기 위해서는 한번쯤 원작과 함께 볼 만한 책이다. 덤으로(?) '전쟁과 사랑'이라는 영원한 인간 드라마 속에서 번뇌하는 개인의 고뇌에 동참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200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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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죽었다 깨어나면’ 모를까, 이 땅 위에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할 수 없는 ‘하늘나라’의 경험을 하고 온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이 경험을 통해 독실한 ‘지구교’ 신도가 된 특별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여 그들이 겪은 지고의 체험(peak experience)에 대한 ‘간증’을 얻어낸다.

‘회개’할진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우주비행사로 지구궤도를 돌거나, 달까지 갔다 오거나 하며 광막한 우주라는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우리의 터전인 지구가 얼마나 가냘픈 것인지를 순식간에 깨우쳐버린 사건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는 이들의 이후 인생 여정을 봐도 알 수 있다: 달에서 神의 존재를 깨달아 전도사가 된 이나 환경 기업을 차리게 된 이가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충격으로 장성 진급 직전에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이도 있다.

우주비행사로 얻은 인기와 지명도를 세속적으로 이용하여 상원의원에 출마하거나 재계에 진출한 이가 있는 반면, 정신능력의 비상한 고양을 경험하고 초감각적지각(ESP) 연구소[Institute for Noetic Science]를 세운 Edgar Mitchell 같은 이나 기존의 종교 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통찰을 얻은 Gibson이나 Carr 같은 이도 있다.

Carr의 경우 우주의 패턴에 대한 직관적 이해가 흥미로운데, ‘우주에서는 만물에게 질서가 부여되어 있고, 모든 사물과 현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균형을 있다는 것, 즉’(300쪽) ‘모든 것이 어떤 패턴에 따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모든 신은 이런 현실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명사에 지나지 않는다’(301쪽)는 그의 통찰은 옥에 난 결[패턴]을 뜻하는 단어인 理(玉+里)로 세상의 질서를 설명했던 송학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경험담을 보면, 지구를 벗어나 오싹할 정도로 아무 것도 없는 암흑뿐인 우주 공간 속에서 신의 관점으로 하잘것없는 지구를 보는 것은 깨달음의 즉각적이고 새로운 (그리고 아직은 불공평하고 비싼)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십년간 산 속에서, 혹은 광야에서 뼈를 깎는 수행을 한 것도 아닌 보통 사람들, 그것도 성찰적인 사고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는 기술 전공자나 군인 출신인 이들에게 ‘단박 깨침’[頓悟]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수십년간 수행을 한 수도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러한 각성 상태를 유지한다는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주 여행의 기회가 오게 되는 먼 훗날이 오면, 인간 의식은 분명 한 단계 더 고양될 것이다(차라리 모든 지구 사람들이 수행과 명상을 하는 것이 더 싸고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단기속성 수행법만 개발된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당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이라면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인식의 틀이 아니라 물질의 영향을 받는 변수라는 상대성 이론을 대강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는 세계는 아직도 뉴턴적 세계에 머물러 있다. 현실의 지각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 인간에게는 이미지로 떠오르지 않는다. 우주 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인간은 아인슈타인적 세계를 아주 잠깐 현실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331쪽, 미첼의 말) 따라서 우주에 대한 인식이 심화된 지금, 원시적 관념 체계에 기반을 둔 기존 사고방식은 성립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더 크고 더 넓은 의미를 가지는 새 관념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모든 지구인이 지구 바깥에서 우주를 볼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잠깐의 유예 기간은 있는 셈이다). 예컨대 ‘天地’라는, 고대 동아시아의 이분적 사고의 틀이 되는 관념 체계는 우주적 측면에서 보면 한 점 티끌도 안 되는 흙덩이와, 그 흙덩이를 아주 얇게 덮고 있는 보잘것없는 공기덩이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 낡아빠진 개념은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아예 그냥 폐기처분 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새로운 인식의 지평에서 펼쳐지는 철학, 혹은 사고의 틀은 어떤 모습일까. “We do not realize what we have on Earth until we leave it.” 이라 했던 James Lovell의 말처럼, 우주선을 타든, 죽어서 비루한 몸을 빠져나가든, 우리도 지구를 떠나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책이 한 움큼의 글을 통해 전해주는 것 역시 그 자그마한 단서에 불과할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손가락일 뿐, (우주비행사들이 뛰어놀다 온 바로 그!) 달은 아니기에. 혹여 ‘죽었다 깨어나면’ 나도 이런 경험이 가능할까 궁금한 사람은 다치바나 선생의 저서 『임사체험』(청어람미디어)을 보시라.  




 

 

 

 

 

 

 

 

蛇足 1. 인간 인식의 지평이 완전히 달라지는 체험을 하고 온 이들의 내면 의식은, 의외로 제대로 조사되거나 규명되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갔다고 한다. 임무 수행 후 이루어지는 자세한 보고 과정은 대개 임무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진행되었을 뿐이고, 군인과 과학자들로 구성된 NASA라는 집단에서 이런 정신적이고 일견 신비적인 주제는 그들 서로 간에도 터놓고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한창 우주계획이 활발하던 때로부터 20년 가까이나 지나 이루어진 다치바나 선생의 이 인터뷰가 우주비행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정신적 측면의 탐구로는 최초의 것이었다. 우주비행사들의 반응 또한,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거나, 다른 비행사도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미국 출판시장을 대상으로 한 영어판의 출간을 고려할 만도 했을 텐데 말이다. 어차피 인터뷰도 영어로 진행된 것이었으니 원고의 작성도 식은 죽 먹기였겠고...



蛇足 2. 이 책은 1981년 11월부터 『中央公論』에 연재되어 83년도에 책으로 나왔는데, 아무리 당시에 일본의 경제력이 욱일승천의 기세였다고는 하나,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곳곳을 누비며 취재 활동을 벌인다는 것은 역시 대단하다고 밖에는 말 할 수 없을 듯 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태평양까지 건너게 하였을까. 우주의식의 탐구를 위해서는 태평양도 얕은 물웅덩이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20년이 지나서야 겨우 번역본이 나오는 우리 풍토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蛇足 3. ‘회개’는 헬라스어 ‘메타노이아’의 번역어로, ‘나쁜 짓을 하고 나서 반성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계를 완전히 다른 시점으로 보면 신적 세계가 이미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327쪽). 
 




 

 

 

200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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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교양인(고양이…) 다치바나 선생은 우리나라에도 독서인들을 중심으로 워낙 많이 알려져서 새삼 소개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밝힌 독서법이나 책 보관을 위한 건물, 소위 고양이 빌딩을 지은 이야기 등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일본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란 책에 자세한 사정이 설명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 책 「뇌를 단련하다」는 저자가 1996년 여름학기에 고마바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중간에 『신조(新潮)』 誌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2000년의 일이고). 

문제가 되는 도쿄대 강의를 하며 붕괴 직전에 이른 도쿄대생들의 지적 수준에 놀란 저자가, 그 원인이 되는 사회적, 교육적 원인을 통시적 측면에서 해부한 것이 앞의 책이라면 이 책은 그 실제 강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강사 다치바나가 직접 작성한 보고서이다.
 
그 외에도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수강생들의 강의 결과물을 가공하여 책으로 낸 것들도 있으니, 상당히 생산적이고 창발적인 강의였던 셈이다(강의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우려낸 것은 아닌지…). 
  
이렇게 그 태생이 같기에,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다치바나 식 교양론이 여기에서도 수강생들에 대한 충고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어, 일단은 이것만으로도 배움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대학생들에게 일독의 가치가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고교과정에서 이수과목의 축소(정확히 말하면 수능시험 반영과목의 축소)로 인해 그 전에 비해 경악스러울 정도로 기초 지식이 결여된 채로 대학에 들어오고, 장기적인 인생 목표보다는 점수에 맞춰 들어온 채, 입학하자마자 잠깐의 유흥적 일탈의 시기를 거쳐 곧장 고시니 자격증 취득 전선에 뛰어드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구구절절 들려주고픈 내용 뿐이다. “강의는 제끼기를 위해서 존재한다”니 “유급을 권함” 같은, 얼핏 보기에 불량스러워 보이는 내용들도 말이다.
 
단답형 질문으로 평가된 단세포적 지식이 들어가는 대학을 결정할지는 모르지만, 정보의 창의적인 처리, 기획 능력 등 종합적인 능력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 
 
이런저런 면에서, 이 글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아무래도 우리 ‘관악 이만 학우’들이 아닐까. 단 한번의 시험으로 얻은 과분한 특권에 안주한 채, “나는 도쿄대생입네”에 버금가는 “나는 서울대생입네”하는 자만에 빠져, ‘자기들이 전두엽이 미발달된 모자란 인간이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가슴을 펴고 활보하고’ 다니는 ‘비대한 자존심 덩어리’들이 예나 지금이나 꽤 많이 있을 터이니. 

 

200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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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독교도라면 한번쯤은 종교에 대한 회의니 교리체계에 대한 의문이니 하는 것을 품어보았을 것이다. 필자도 일순간 밀려온 회의의 소용돌이에 못이기고 지금까지 회의의 장벽을 높이 쌓아올리고 살아온 탕아의 부류에 속한다고 할까.

필연적인 그 모든 것이 그러하듯 우연히 다가와 거대한 충격을 주고 지나간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당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 한국에서도 폭발적 반응을 일으켜 이 땅의 기독교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였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어떤 이유에서 이 책에 반응하지 않았을까. 한국 기독교계의 내면을 알 수 없는 필자로서는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둥바둥 마지못해 살아가던 한 중년 남성이 있다. 그는 어느날 새벽 자신을 이렇게 만든 주범인 신에게 직접 분풀이나 해보겠답시고 휘갈겨 내려가던 일련의 절규어린 질문들에 신이 직접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아, 나도 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아마 누구라도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혹은 그렇게 배워왔을) 것이다. 신에게 말할 수는 있으되 신과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요는 신은 응답해주지 않으리라는 얘기." - 5쪽 머리말에서

우리는 이제껏 우리의 기도를 들어는 주되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 신에게 제물을 바쳐왔다. 그 신은 수천년전 서남아 사막의 선택받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신비한 힘을 내려 책 몇 권을 쓰게 하고는 사라졌고 그 뒤로 쭈욱 묵묵부답인 신이다. 하지만 이제 한 사내가 용감히 일어나 신은 착한자에게도, 악한자에게도, 당신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노라고 말한다. 수없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렇게 당신이 마침내 귀기울일 때까지.

그외에도 기존의 기독교 사상에서 당연히 여겨져왔던 많은 것들이 '신'의 손에 의해 도마 위에 오르고 사정없이 난도질당한다. 자유의지와 정해진 운명, 선과 맞짱뜨는 악이라는 관념, 신의 사랑은 조건적이며 신은 우리의 잘못을 가차없이 심판하고 벌을 내리고 죄악을 응징한다는 관념, 신은 다른 신들(gods)을 인정하지 못하는 '질투하는 신'이라는 생각 등등. 이제까지 수천여년을 이어왔던 유대,기독교의 신학체계와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위험스런 생각이건만 힘차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 어조는(누가 하는 소린데!) 너무도 시원한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을 준다.

"나는 너희가 원하는 걸 원한다"

그리고 신은 창조의 목적과 과정(그노시즘 쪽에 상당히 가까운 내용의),영혼의 문제, 삶과 죽음, 죽음 뒤의 세계, 우리 삶과 삶의 운동방식과 목적과 과제, 소망과 그 실현 등의 굵직굵직한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화려하고 탄탄한 체계를 세우며 훑어갈 뿐만 아니라 성공하는 삶, 인간관계, 직업, 건강, 섹스 등의 소소한 일에까지 친절히 설명해준다.

굳이 골치 아픈 철학적 문제에 골 썩이고 싶지 않은 독자라도 살아가며 얻는 여러 의문들에 대한 근원적인 관점에서의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컨데, 유일한 신을 믿어만 왔던[credo in unum Deum]* 단계의 신앙인들은 그 유일한 신을 이성의 힘으로 명쾌히 이해하고 알게 되는[cognisco unum Deum]* 잊지 못할 감동의 체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런 문제에는 담을 쌓은 독자라도 인생 문제에 대한 '신의 가장 최근 해답'을 듣게 될 것이다.

(* []안은 아시시의 에기디우스의 유명한 구절)  

 

 

"바람의 속삭임과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천지를 울리는 천둥소리와 나직하게 두드리는 빗발 소리에도 내 진리가 깃들어 있다. 내 진리는 대지의 감촉, 백합의 향그러움, 태양의 따스함, 달의 인력이다. 내 진리와 너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항상 도우리라는 진실은 밤하늘만큼이나 외경스럽고, 갓난아기의 옹알이만큼이나 단순하고 자명하다. 내 진리는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만큼이나 크고, 나와의 합일 속에서 쉬는 숨소리만큼이나 고요하다. 나는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또 떠날 수도 없다.너희는 바로 내 소산이요 창조물이고, 내 딸이요 아들이며, 내 목적이자 나... 자신이기에." 

 

 

 

 

 


사족 1: 이 책의 '신'이 자신을 전지전능한 창조자라 주장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이설과 해답도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한 해답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당신의 판단과 자유의지이기에.    

 

사족 2: 1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러니까 지은이의 신산했던 삶의 역정을 담은 영화도 있다. 이 책이 미국에서 불러일으킨 열풍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하는 증거로만 제시해두도록 하겠다. 이 책의 마니아가 아니라면-아니, 마니아라도!-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보면 알게 되겠지...   

(뭔가 포스터부터가 범상치않은 포스를 풍기지 않는가?)

  

 

 

 

 

 

  

 

 

사족 3: 명료한 발음과 알맞은 속도, 훌륭한 내용까지! 영어 공부 하기에 너무 좋은 오디오북... 닐 도날드 월시 역은 닐 도날드 월시 본인.  

 

 

  

 

 

 

 

200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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