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초의, 체계적인 정리물은 일본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의 조선총독부 보고서, 저 유명한 [조선의 풍수] 되겠다. 일본인이 지은 보고서 답게, 간략한 요점 정리가 돋보인다.

 

 

 

 

원래 민음사에서 최길성 선생 번역으로 나왔더랬는데, 찾을 수가 없어 일단 명문당판과 민속원 일본어 원본 복각판을 올려놓는다.  

참고로, 해방 이후 당대 일본 학자의 시각으로 우리의 풍수라는 현상을 관찰한 저작도 상재된 바 있다. 노자키 미츠히코(野崎充彦)가 지은 [한국의 풍수사들].  

  

 

 

 

 

한국 지리학계에서 풍수에 대한 학문적 정립에 힘쓴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의 작업물도 많다. 

먼저, 대우학술총서로 나왔던 [한국의 풍수사상]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선정을 중심으로 한 도읍풍수 부분에 대한 서술이 많고, 서해문집에서 나왔던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같은 서적은 '한국풍수의 이론과 실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풍수의 기초이론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이고, [한국의 풍수지리]는 다양한 내용들이 골고루, 약간은 이야기식으로 나온다.

 

  

풍수학 최고의 경전인 [청오경](장경) 및 [금낭경](장서) 번역물. 

 

 

 

 

 [터잡기의 예술] 같이 서구에서 받아들여진 풍수(Fengshui) 이론을 소개한 책도 있고.

이후의 책들은 틈틈이 잡지 등에 발표하는 글들을 모은 것들이 위주인데, 조금 비슷비슷한 주제들을 반복하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풍수잡설'의 범주에 들어갈 내용들이고, '새로운' 풍수이론이라고 나온 책도 이전에 나온 몇 권의 책들, 특히 민음사와 같은 계열사인 판미동에서 나온 [도시풍수] 등에 나온 내용이나 일화들이 유사하게 반복된다. 소위 '자생풍수'나 '양택풍수', '도시풍수' 등의 용어와 '명당은 만드는 것이다' '좋은 땅이 아니라 나와 맞는 땅을 찾아라' 등의 지론들... 

 

 

그나마 [북한문화유산답사기] 정도가 조금 새로운 내용이 있고... 

 

 

 

 

 

 

독문학자 김두규도 풍수 고전의 번역 및 신작의 꾸준한 집필을 병행하고 있다. 

 

 

 

 

[지리신법], [명산론], [갑룡경], [의룡경] 등을 번역하여 고전을 죄다 번역하고, 

 

 

 

 

사전에다가, 강의록까지 펴냈다. 오히려 풍수이론의 체계적인 소개는 김두규 교수가 도맡아 하는 느낌이다.  

 

조인철 씨는 건축가 답게 실제 부동산의 측면에서 풍수를 접근하고 있고. [우리시대의 풍수]는 강의교재 같은 분위기의 책으로, 다양한 풍수 고전을 섭렵한 저자가 풍수 기초 이론을 잘 정리한 책. 특히 도판들이 괜찮다. 나머지 두 권도 일반인들이 재미 삼아 보기 좋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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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왜 점집에 갔을까? 라는 얄궂은(독자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그다지 그 목적에는...) 제목의 책.  

스스로 점집 순례에 상당한 시간과 돈을 바쳤다는 저자가, 점집의 가장 주요 고객이라는 2~30대 여성들(흔히 아줌마들이나 가는 곳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정말 의외다)을 위해 친절히 작성한 점집 안내서.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저자의 내공에 비해서는 조금 초보자들을 위한 내용들 위주로 쓰여졌으므로, 처음 점집이란 곳을 가는 이들이 가볍게 한 번 훑어보고 가면 좋겠다. 본문 중에 건질만한 내용은 "점집, 이런 곳은 절대 피해라"는 식의 체크리스트 정도?  

아예 실제 점집들에 대한 과감한 품평 정도가 들어갔으면 더 좋았을 듯도 싶다. 이런 점집 포탈 같은 인터넷 사이트는 어디 없나? 다녀온 네티즌들이 평점도 부여하고 할 수 있는...    

     

반면 조용헌의 책은 동양학(특히 그가 말하는 소위 '강호 동양학')의 한 분야로서의 사주명리학 주변 이야기들을 담담히 적어놓은 책이다. 그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 칼럼 연재글들을 모아 책으로 낸 듯 하다.  

대상은 위의 책이 신점과 사주명리를 모두 다룬다면, 이 책은 사주명리 분야만 다루고 있어, 분야도 한정되고, 약간 무게감도 있다고 할까? (20대 대상 여성잡지와 40대 대상 시사월간지의 차이 정도지만) 

사주명리학을 배우는 초보가 약간의 가십이 섞인 배경지식을 쌓기 좋은 책이니, 역시 가볍게 한 번 훑어보면 좋겠다. 

 

위 두 책을 읽고서, 나도 점이나 한 번 보러 가 볼까? 에서부터 나도 사주명리 한 번 배워서 판이라도 깔아볼까? 정도까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게 된 독자라면 아래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60갑자와 시간 그리고 동양의학]이란 제목으로 한의사(누구보다 '60갑자 바이러스'에 제대로 감염되었다 할 수 있는 집단이라 할 수 있는!)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홍성국의 이 책은 사주학의 근간이 되는 60갑자의 기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사주학의 허허실실을 밝혀주고 있다. 소위 역술인은 많았으나 이런 성격의 책은 없었던 풍토에서 어렵사리 나온 사계의 명저가 그저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출판사를 바꿔 새로 나왔다. 

 

 

참, 위 저서와 비슷한 성격으로, 저자 나름대로 주역의 실체를 해부했노라는 이런 책도 있었는데... 너무 굴비 엮듯 줄줄이 흘러가면 곤란하니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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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그리고 호오포노포노의 작가 조 "바이텔" 

 

 

 

 

우연히, 조 "비테일" "바이테일" "바이텔리" 등으로 불리는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 철자로는 똑같은데, 불성실한 국내 출판사에서 저자명이 정확히 어떻게 발음되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던 것. 이탈리아 계통으로 보이는 그의 외모로 볼 때, 처음 미국에 이민왔을 당시 그의 선조들은 "비탈레"로 불렸을 것 같다.)

 

 

 

 

이상의 책들은 마케팅 쪽이고...  

(<꽂히는 글쓰기>는 뭐냐고? 카피라이팅은... 마케팅에 포함된다)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던 대표적인 먹튀, 시크릿 류의 자기계발서와 마케팅의 경계선에 선 책들... 

 

 

 

 

얘들은 무려 수필 쯤 되는 듯 하다. 

현재 읽고 있는 <바잉 트랜스>로 볼 때, 다른 책들도 응용심리 쪽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읽어볼 만 할 듯. 아니, 최소한 읽어봐야만 할 것처럼... 끌린다.  

(최면과 심리요법을 연구한 사람 답게, 자기 책도 독자를 확~ 끌어당길 수 있게 의도적으로 구성했다. 이 사람과는 협상 따위는 해서는 안 될... 독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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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wo Worlds

 먼저 이 책 『빼앗긴 자들』(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2002)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저자 르 귄은 갖가지 환경의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를 치밀하게 가상하여 그려낸 일련의 작품들로 미국 문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휴고 상, 네뷸러 상 등 기라성 같은 상을 휩쓴 과학 소설 작가이다. 이 책은 헤인 시리즈라 불리는 일련의 불연속적인 작품군의 한 권으로, 한 때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 시작하는 두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행성 우라스(Urras). 아름다운 자연을 가지고 있으며 고도로 발달된 문명 체제를 가진 인종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문명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과 고혈의 산물일 수 밖에 없는 터. 산업화된 소유 경제의 정점에 선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가 계속 긴장 상태와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소유를 위한 지배욕은 사회 구조에도 반영되어, 남자는 여자를 억압하고 소유하고,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착취하고 부려먹는다. 이 세계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어떤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비록 소설 속에 따로 ‘테라’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지구인들이 나오지만.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다 풍족하게 갖춰진 우라스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행성 아나레스(Anarres)의 사람들, 즉 외부에서 주어진 체제와 억압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들이었다. 인간의 근원적인 지배욕구가 이루어낸 구조 자체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그들은, 우라스에서 수용될 수 없었고, 이들은 결국 우라스의 형제 행성인 아나레스로 이주당한 것이다. 뭍짐승들마저 생존을 포기해버린 황량한 사막에,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이.

 그들이 도착한 세계는 ‘온통 먼지투성이에 메마른 언덕뿐’(p. 317)인 곳이었다. 우라스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충분히 존재했던 공기, 풀, 비, 바다, 음식, 건물, 공장, 책, 음악 등의 모든 것이 결핍된 곳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원이 풍족한 고도화된 문명 상태(즉, 우라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형성된 자유인들의 억압받지 않는 연대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메마르고 헐벗은 적대적인 땅에서 먼저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따분하고 안락한 온실 속이 아니라, 역경과 고난 속에서 자유를 쟁취해야 했다.

그들이 원하는 자유는 국가로 대표되는 권력기관으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국가의 신화를 밀어놓고서야 진정한 상호 관계와, 사회와 개인간의 상호 의존이 뚜렷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오직 사회만이 안전과 안정성을 줄 수 있다고는 해도, 도덕적 선택의 힘, 생명의 필수기능인 변화의 힘을 지닌 것은 오로지 개개의 사람들뿐이기에.’(pp 458~459) 이러한 자유인들의 연대 속에서 ‘개인의 의무는 어떤 규칙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그 자신의 행동의 주체가 도는 것,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만 ‘사회도 생동하고, 변화하고, 적응하고, 살아남을 것’(p. 494)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원칙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상호 협력이라는 하나의 원칙 외에는 어떤 법률도 없’고, ‘자유로운 유대라는 하나의 원칙 외에는 어떤 정부도 없’는 사회이다. ‘국가도, 국민도, 대통령도, 국무 총리도, 장관도, 장군도, 두목도, 은행가도, 지주도, 임금도, 적선도, 경찰도, 군인도, 전쟁도 없’다. 그들은 ‘소유하는 자들이 아니라, 나누는 자들’이며, 유복하지 않고 강력하지도 않다. 오직 ‘고통 속에서, 굶주림 속에서, 가난 속에서, 희망 속에서’ 나눔의 의미를 깨닫고 그 속에서 형제애로 뭉친 것이다. 세계를 기본적으로 고통으로 인식하는 주인공 쉐벡의 세계관 속에서 서로에게 손을 뻗어 서로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면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pp 414~415에서 부분인용)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두 세계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주인공 쉐벡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네는 가졌고 우리는 가지지 못했소. 여긴 모든 게 아름답지. 얼굴들만 빼고. 아나레스에는 아무것도 아름다운 게 없어. 얼굴들을 빼면. … 우리에겐 그것밖에 없소, 오직 서로밖에. 여기 당신들은 보석을 보지만 거기서는 눈동자를 봐요. 그리고 그 눈속에서 장려함을, 인간 영혼의 장려함을 보는 거요. 우리의 남자와 여자들은 자유롭기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자유롭소. 그리고 당신들 소유자들은 소유당하지. 모두들 감옥 속에 있어. 각각이 외롭게, 고립되어, 소유하고 있는 쓰레기더미와 함께.”(p. 318)

 이런 정도의 모습이 춘추전국이라는 혼돈과 격동의 시대 속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깊이 통찰했던 한 현인이 말한 이상향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현대의 복잡다기한 문명의 상황 속에서, 각종 사상의 실험이 이루어진 뒤에 도달할 수 있는 한 근사치는 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모든 인위의 산물을 제거하고 남는 것은 평등의 땅 위에 어깨를 나란히 한 자유인들의 느슨한 연대가 될 것이기에. ‘小國寡民’을 끊임없는 동사적 상태로 볼 때 그 궁극에는 어떠한 국가의 조직도 거부하는 자족적인 소규모 공동체, 또한 당연히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만을 가지는 자율적이 개인만이 남을 수 있을 것이기에. (김용옥이 『노자철학 이것이다』에서 시경의 한 싯귀를 분석해가며 설파했던 里制論이 고대 중국의 이러한 소규모 공동체의 한 근사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자의 사회상과 차이가 있다면 아나레스의 사회는 지방 분권이 철저히 이루어지고 각각의 공동체는 필수적인 산물을 즉각 취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자연스레 규모가 제한되어 있으나, 모든 공동체는 통신과 이동 수단으로 연결되어 원하는 곳에서 상품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될 것이다. 노자가 이웃 마을간에도 서로 왕래가 없는 폐쇄적인 원시 자급자족 사회를 상정했다면, 아나레스는 서로의 연대와 소통을 최우선시하기에 황량한 자연환경 속에서 드문드문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는 공동체들이지만 도로와 통신의 연결이 마을의 건설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정된다. 인간이 단순히 원시상태로 회귀할 것이 아니라 문명과 문화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이런 상호 유기성을 가진 전체로서의 사회상이 더 생태계와 유사하고, 타당해 보인다. 그것이 ‘스스로 그러한’ 한에 있어서는 말이다. 

 물론 아나레스 공동체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공동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는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중심지, 관료기구, 지배자 등이 없는 평등한 것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지 않는 관료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p. 137)
 관료기구 대신에 인간의 의지가 들어가지 않는 자원배분 컴퓨터가 자원과 사람들을 배치하고, 누구나 뽑힐 수 있는 위원회에서 공동체의 중요한 사항들을 결정하지만, 그 속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이지 않는 권력의 집중이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혁명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법률에 기초한 국가의 백성이 아니라 혁명에 근거한 사회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이기에, 끊임없이 자체의 오류와 모순들을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은 개인의 영혼 속에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혁명에 끝이 있다고 보인다면 진정 시작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p. 494 : 최초의 혁명가 오도의 말) 주인공은 바로 이런 아나레스의 자기모순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일깨우고, 투쟁해 나가고 있다. 또다른 혁명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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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 민해연의 말처럼, 대개 서너 권 이상, 심지어는 열 몇 권은 되어야 좀 썼네, 하는 소리를 듣는 무협소설계에서 단편이라... 게다가 그 단편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다...  

척박한 한국의 장르문학계에서 일견 무모하게까지 보여질 수 있는 기획이건만, 버젓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온 단편집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어떻게? 바로 진산이니까. 

작가는 그 명성에 걸맞게, 빼어난 필력과 치밀한 구성을 양념 삼아 독특한 향취를 풍기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국 무협소설의 감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확인이다. 무협소설이라는, 크게는 장르소설이라는 범주는 다만 소재와 배경을 위한 틀일 뿐, 그것만으로 규정짓기 곤란한 수준 높은 주제 또한 보여주고 있다. 武의 추구가 그 궁극에서 道의 경지와 합일하듯.  

正과 邪를 나누고 딱지 붙이는 시정 잡배들의 속좁은 구분은 되려 그 본질을 못 보게 할 뿐, 이미 경계를 넘어선 대가에게 그것은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계속 훨훨 날아다니며 춤추었으면 좋겠다, 그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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