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7 #시라는별 37 

가장 늙고 가장 젊은 날 
- 행복한책읽기 

오늘은 내가
살아온 나날 중 가장 늙은 날
살아갈 나날 중 가장 젊은 날 
내가 가장 늙고 가장 젊은 날
늙어 서럽고 젊어 설레는 날 ​

이 나이쯤 되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더니 
뭔가 쥐고 있을 줄 알았더니
별거 없는 나를 보게 될 줄이야 
이럴 리 없는 나와 마주할 줄이야  

그렇다 해도 
별거였던 일들을 별것 아닌 일들로
만든 별별스런 내가 있었고 
별것 아닌 나를 세상 별것인 양 
바라보는 이들이 있기에 

오 늘 도 산 다 


엄마 생일이라고 딸이 건넨 책들을 받아들고 속으로 피식 웃고 겉으로 푸하 웃었다. 

˝내 어머니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한 번씩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괴물을 사랑한다. 그 힘이 나마저 괴물이 되지 않게 했다.˝( 《푸른 침실로 가는 길》)

딸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책으로 대신 전하는 듯했다. ‘엄마, 괴물은 되지 말아 주세요.‘ 괴물까진 되고 싶지 않은데, 흠, 중딩 딸보다 내가 더 격한 사춘기를 겪는 듯하다. ㅠㅠ

딸은 3년 전부터 엄마 생일 선물로 책을 고른다. 재작년엔 초딩 딸의 안목에 깜놀했고, 작년엔 내가 원하는 책을 사주었으며, 올해는 엄마 취향을 크게 빗나갔다. 물론 내색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읽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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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7 04: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느것 하나 멋지지 않은 선물이 없네요. 꽃, 책, 케잌..행복한님은 좋으시겠당 ^^ 생일 축하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03   좋아요 3 | URL
하하. 가족은 힘이자 짐입니다. 양가적 감정을 젤 크게 느끼게 하는 존재들이죠. 한님도 아시지요. 축하 달게 받겠슴다. 제가 요즘 응원이 필요한 때라.^^;;;; 고마워요~~~~~

붕붕툐툐 2021-05-17 0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야~ 중학생 딸이 엄마 생일 선물로 책 고르는 거 실환가요? 진짜 기특하네요~👍
행복한 책읽기님 선물이 풍성합니다!! 꽃도 다 너무 예뻐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06   좋아요 3 | URL
히히히. 딸은 클수록 엄마 속을 좀 볼 줄 아네요. 물론 책보다 자신들을 더 사랑해 달라고 말하지요. 툐툐님의 진심 축하가 진심 전해져 이 아침에 기분 업업 됐어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5-17 08: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완전 멋지내요. 시도 좋고 사진은 더 뿌듯하네요 ^^ 행복한 책읽기님의 생일을 축하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09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감사해요. 사실 저 사진 속처럼 뿌듯한 때는 진짜 순간이랍니다. 저런 순간에 기대 긴긴 시간을 버틴답니다.^^

syo 2021-05-17 09: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기님 축하합니다 ㅎㅎㅎㅎ 꽃과 케잌과 책이라니,
뭐 아름다움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노라 하는 조합인가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14   좋아요 4 | URL
ㅎㅎㅎ syo님 따라해봤으유. 사실 생일 돌아오는 거 싫답니다. 세월 가는 건 막을 수 없으니, 굴러가는 세월 마차에 꽃과 케익과 책이라도 싣고 올해도 덜컹덜컹 가볼라구요^^

잠자냥 2021-05-17 10: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꽃, 케익, 책 참 예쁩니다.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16   좋아요 4 | URL
그죠. 인생 뭐, 이 나이에 저 세 가지를 챙겨주는 사람들 옆에 둔 것도 대단한 복이다 싶다가도, 아이고 여태 뭐하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는.^^;;;

미미 2021-05-17 10: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별별스런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별빛같은 아이들이네요!😊😘
예쁘고 근사합니당~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0:18   좋아요 4 | URL
빙고!! 별빛같다는 걸 바로 알아봐 주시는 미미님. 역쉬. 아이들은 애물단지이자 별사탕들이랍니다.^^

scott 2021-05-17 16: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새벽 시에 눈뜨자 마자 댓글 썼는데 ㅠ.ㅠ
짠돌이 알라딘 사이트 넘 불안정,,,

예쁜 따님의 꽃다발과 케익 책 선물 옆에
전 이런거 놓고 갑니다~~

(`“ •. (`“•.¸🌹¸.•“´) ¸. •“´)
🌸«•🍃 LOVING MOM🍃•“»🌸
(¸. • “´(¸.•“´🌹 `“•)` “° •.¸)

사랑스러운 따님 맛나는거 많이 해주기~

전 저나이때 부모님 생신날 선물 조공하고
제 생일 날 더 큰거 바랬었음 (=‘▼‘=)

행복한책읽기 2021-05-17 23:59   좋아요 1 | URL
scott 님~~~~ 넘넘넘넘 예쁘다요. 아. 이모티콘 꽃다발 같아요. 감사감사. 울애들도 scott님처럼 되로 주고 말로 받으려 해요. 특히 딸이 그렇습니다. ㅋㅋㅋ
알라딘은 제가 이노~~옴 할게요.^^

희선 2021-05-17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 님 태어난 날 축하합니다 좋은 날이었을 것 같네요 그날이 지나도 늘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18 00:00   좋아요 1 | URL
희선님 고마워요. 비 내리는 좋은 날이었어요. 힘 내 살아볼 작정입니다. 얼마나 힘을 내려나 몰겠지만요^^;;;
 

20210513 #시라는별 36

쓸데없는 게 어딨어
- 김상순

니는 남의 아아들한테 씰데없는 넘, 이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이.

그 말 않고 살기 어렵소.

세상에 씰데없는 말은 있어도 씰데없는 사람은 없는 기라. 하매(하물며), 나뭇가지를 봐라. 곧은 건 괭이자루, 휘어진 건 톱자루, 갈라진 건 멍에, 벌어진 건 지게, 약한 건 빗자루, 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넘이 있고 작은 넘이 있는 것이나, 여문 넘이나 무른 기 다 이유가 있는 기다.

그래도 쓸데없는 사람은 있소.

아이다. 니 눈에 그리 보여도 안 그렇다. 사람도 한 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나면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노? 밥 하는 놈 있고 묵는 놈 있듯이, 말 잘 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 있고 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 다 있어야 하는 기다. 하나라도 없어 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겠나.

요새 세상은 그런 사람 없어도 잘만 돌아가요.

내사 잘 모르지만 사람 사는 기 별 다르지 않다. 지 눈에 안 찬다고 괄시하는 기 아이라. 내사 살아 보니 짜다라 잘난 넘 없고, 못 볼 듯 못난 넘도 없더라.


허수경을 시들이 무거워 팝콘처럼 가볍게 통통 튀는 김상순의 입말 시로 돌아왔다. 게다가 곧 스승의 날이지 않은가.  

초등학교 교사 홍정욱은 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어머니 김상순에게 언제나 타박을 듣는다. 비가 많이 오겠나? 라는 질문에 내가 우찌 아오? 라고 답하면 김상순은 ˝선생이 배운 게 짧네. 하루 일기도 못 봐서. 그래가 크는 아이들 똑띠 갈치겠나.˝ 라고 핀잔을 주고, 힘드니 뭘 자꾸 하지 말라는 아들의 염려 섞인 말에는 ˝안 힘든 일이 있으며 갖고 와 봐라. / 다 그리 산다. 니는 사는 게 수월하냐?˝ 라고 도로 묻는다.

살아 보니 나이를 먹는다고 지혜까지 먹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겠다. 가방끈이 길다고 지헤의 끈까지 길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겠다. 김상순이 책보다 흙을 만지고 살면서 몸과 마음에 익힌 세상 사는 지혜를 꿀꺽꿀꺽 삼켜야지.

세상에 씰데없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그러니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스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상순은 흙이 길러낸 스승이다.

˝배우긴 어디서 배워? 날마다 뭘 해 봐라. 일머리가 보이고 길이 보이지. 손이 일을 하면 머리는 또 제대로 일을 찾는다 아이가. 그기 일머리다.˝

사진은 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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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13 09: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흙으로, 삶으로 똑띠.단디 배우는 인생공부^^♡

행복한책읽기 2021-05-13 10:42   좋아요 4 | URL
ㅋㅋ 똑디. 단디. 이 말 넘 좋아요. 넵. 단디 배우겠습니다^^

새파랑 2021-05-13 1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쓸데없는 사람은 없다. 좋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3 12:08   좋아요 4 | URL
어. 이상합니다. 분명 댓글 달았는데 없어졌음요.🤔🤔🤔 지는 늘 방문해 댓글 달아주는 새파랑님 좋아요~~~~완전^^

새파랑 2021-05-13 12:18   좋아요 3 | URL
행복한책읽기님 덕분에 좋은 시랑 글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

scott 2021-05-13 17: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세상에 쓸데없는 사람 없고
쓸모 없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은 있는 ~ㅎ
마지막 사진
행복한 책읽기님 사진에 포착된 생명들 모두
생기가 가득 (。♥‿♥。)

행복한책읽기 2021-05-13 22:45   좋아요 2 | URL
명언 등록이요^^ 매달리지 않겄어라~~~^^

붕붕툐툐 2021-05-13 2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쓸데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리~ 아마 김상순님도 저랑 한 달만 같이 살면 쓸데 없는 사람 있다고 맘 바꾸실지도;;;;ㅎㅎㅎㅎㅎ
이팝나무 넘 멋져요!! 저도 좋아라 하는 나무예용!

행복한책읽기 2021-05-13 22:48   좋아요 2 | URL
어머 무슨 말씀. 아마 툐툐님이 김상순님께 감화돼, 내가 엄청 잘났구나로 맘을 바꾸실듯요. ㅋ 이팝나무꽃이 지려해요. 다른 곳에서 같은 맘으로 보아요^^

희선 2021-05-16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말이네요 쓸데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꼭 큰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이 세상에 왔다가 자기 삶이라도 잘 살고 가면 괜찮겠지요 살다가 비뚤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남한테 해만 끼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희선
 

20210510 #시라는별 35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수경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나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이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겠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속에는 눈물이 없다 
다만 짤막한 안부 인사만, 이렇게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허수경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를 절반 가량 읽었다. 대체적으로 슬프다. 시인이 죽기 2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는 걸 알고 읽어서인지 허 시인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가 특히 더 그랬다.

이 시는 지난 번 소개한 <엄마의 나의 간격>처럼 존재의 원초적 고독을 노래한다. 우리 모두는 별개로 존재하는 섬이다. 허수경 시인이 ‘섬이 보내는 편지‘라 하지 않고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라고 쓴 까닭은 무엇일까. 이어지는 연에서 나는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일찍이 정현종 시인은 <섬>이라는 짧은 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말했다. 정 시인이 사람 간의 소통 열망을 노래했다면, 허 시인은 사람 간의 소통 불가를 꼬집는다. 서늘한 통찰이다. 서늘한데 또 뭉클한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당신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소통을 염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전하려 해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가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섬과 섬 사이의 간격처럼 절대 메워지지 않는다. 메울 수 없기에 그 간격을 허수경 시인은 ˝세기의 차이˝이자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고독˝이라 부른다. 원초적 고독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책이 있다.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고독하다. 뇌 속에서는, 우리는 특히 고독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뇌 속에까지 놀러와 주지는 않는다.˝(132)
˝격렬한 아픔을 견디고 있을 때, 가장 또렷하게 자기 자신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을 하나하나 전부 눈으로 쫓아가듯, 자신의 아픔을 ‘아파하는‘ 것이 가능하다. /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 난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1초1초마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저주하게 된다. / 그러나 고통뿐 아니라 애초에 신체적 감각을 느끼는 일 자체가 내가 나한테 얽매여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134)

고독은 허수경 시인의 말처럼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이기도 하나, 기시 마사히코의 지적처럼 내가 나임을 오롯이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나의 고독을 모른다. 나의 고통을 모른다. 나의 아픔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나 나나 그리 쓸쓸하게, 그리 처절하게, 그리 헛헛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서로가 알아봐 줄 수 있다. 비록 창백하게 빛나는 별이고 잊혀질 손이고 사라질 섬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 시인의 말따나 짤막한 안부 인사 뿐일지도. 고독이 고독에게 악수를 청할 때, 그 손은 꼬옥 잡아주자. 비록 실오라기 같은 공감밖에 나눌 수 없다 해도, 악수를 하는 그 순간만큼 뜨거워질 수 있을 테니까. 따뜻함이 피처럼 온몸으로 퍼질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누구나 그런 순간의 힘으로 영원을 사는 존재들이니까.

지금은 오월의 싱그러움에 기대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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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0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독과 섬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때론 고독하지만,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너무 싱그러워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1 15:27   좋아요 3 | URL
그죠. 고독과 섬은 정말 환상의 콤비.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 캬! 맞습니다. 맞아요. 그 시간들이 있어 마음의 평화도 찾았던 것 같아요.^^

scott 2021-05-10 16: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허수경 님의 유고집 같은 이 시집도 정말 좋지만
행복한 책읽기님의 시! 평이 떠 좋아요
한번에 묶어서 나만 읽고 싶어라~~
마지막 사진까지
이런 재능 ,아끼지 말귀 ( *ฅ́˘ฅ̀*)

행복한책읽기 2021-05-11 15:28   좋아요 3 | URL
아니 이런. AI scott님한테 칭찬 들은 겁니까. 저. 아이 좋아라. 아이 기뻐라. 햇빛 찰랑거리는 이 오후에 혼자 어깨 들썩들썩 춤을 춥니다요. 감솨감솨~~~~~^^

희선 2021-05-12 0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이 나오고 다른 책도 나오기는 했는데 그것도 못 봤네요 거기엔 더 죽음을 말하는 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밖에 공감할 수 없는, 그렇겠지요 그것도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인 듯합니다 그래도 그런 때가 있다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12 09:5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아주 조금이고 아주 짧은 순간이어도, 그런 순간이 여러 겹이 되면 공감 또한 쌓이는 게 아니겠어요. 알라딘 서재도 공감의 공간인 것 같아요. 그죠.^^
 

20210506 #시라는별 34 

엄마와 나의 간격 
- 허수경 

엄마의 자궁 안에서 
나는 엄마, 속의 
섬이었다

섬은 엄마에게서 
몸의 식량 공급을 받았다 
영혼도 넙죽 식량 공급을 받았겠지 

날을 채우고 
섬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와 나의 간격이라는 
원초 비극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 영혼의 모어가 생겼다 
엄마 말이 아닌 내 말로 

그 생각을 하니 웃기고도 서글프다 
겨울 숲에서 혼자 병들어 죽어 
풍장되는 늑대의 아가리처럼 


이 시는 허수경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에 실려 있다. 어버이날이 코앞이어서인지 62편의 시들 중 이 시가 콕 눈에 들어왔다.

자식은 ˝엄마, 속의 / 섬이었다˝가 엄마, 밖의 섬이 된다. 속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엄마의 나의 간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간격은 자식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벌어진다. 어느 날 자식은 부모의 손을 놓고 부모의 말을 버리고 자신의 말과 길을 찾는다. 말이 좋아 ‘독립‘이다. 그것을 두고 시인은 ˝웃기고도 서글프다˝라고 말한다. 웃긴 것은 ˝내 영혼의 모어˝가 생겼기 때문이고, 서글픈 것은 그렇기에 ˝혼자 병들˝다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허수경 시인은 2018년 10월 3일 타계했다. 암 투병 끝에 자신이 쓴 시 제목 그대로 혼자 먼 길을 갔다. 그의 나이 겨우 54세였다.

엄마 속에서도 엄마 밖에서도 ‘섬‘일 수밖에 없었던 시인은, 혼자라는 고독의 무게를 지고 살 수밖에 없었던 시인은, 저세상에서는 간격 없이 엄마를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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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6 10: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버이날에 딱 맞는 시네요 ㅜㅜ 부모님과의 간격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6 13:06   좋아요 3 | URL
부모님도, 다른 사람도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넘 가까워지려 해도 서로를 다치게 하더라구요. 그죠. 단 너무 멀리 가진 마세요. 새파랑님 ^^

scott 2021-05-06 1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허수경님의 시
‘엄마와 나의 간격‘
시인이 반평생 살았던 낯선 이국땅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땅 만큼의 간격이네요

오월의 시!
행복한 책읽기님은 ‘
‘시‘
소물리에 이쉼 (ㅅ´ ˘ `)♡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06   좋아요 0 | URL
그죠. 편한 길 마다하고 머나먼 타국에 가서 어려운 공부 다시 하고 남의 말로 글도 쓰시고. 허수경 시인은 얼굴이 참 선하고 어쩐지 슬퍼 보여요. 저를 ‘시‘ 소믈리에로 추천해 주셔 감솨!! scott님 응원 받아 더 분발해야쥐~~~~~ ^^

희선 2021-05-07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하고는 아주 가까운 것보다 좀 먼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이 아니고 많이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구한테든 별로 살갑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기는 하네요 그런 성격이 제 탓만일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안 하는 게 낫겠네요 그냥 제가 그렇게 된 거겠지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09   좋아요 0 | URL
희선님 옆에 계시면 꼭 안아주고 싶곤 해요. 살갑지 않다고 하시지만 실은 속이 말랑말랑 뜨근뜨근할 것 같걸랑요. 글고 부모와 자식 간에는 당근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넘 가까우면 진짜 피곤하답니다. ^^;;;
 

20210503 #시라는별 33 

제 길
- 김상순 

요새 아아들은 똑똑하고 말도 잘 듣제? 

흐흐. 아아들이야 언제나 그렇지요 뭐. 

니는 아이들이 말 안 들어도 넘 아아들을 니 맘대로 할라고 하지 마라이. 

내 맘대로 안 하요. 그게 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요. 

내 말 함 들어봐라. 나도 들은 이야기다만. 

무슨 이야기를 하실라꼬? 

예전에 책만 피면 조불고(졸고) 깨면 항칠하는 (낙서하는) 아아가 있더란다. 선생이 불러내서 궁디를 때리고 벌을 안 세웠겠나. 그 아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자세히 보니 손꾸락으로 눈물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더란다. 산도 그리고, 새도 그리고.

요새도 그런 아아들이 있소. 벌 세우기도 겁나요. 

그래서 선생이 썽이 나서 멀캤단다. 에라이 망할 넘아, 니는 그림이나 그리서 묵고 살아라! 그카니, 세상에! 그 아아가 울음을 뚝 그치고 헤죽 웃음서, 예! 카더란다.

흐흐. 그래서 그 아아는 우찌 됐는고요? 

그건 내사 모르지. 모르긴 해도 글로 벌어먹고 살아겠나? 꿩 새끼 제 길 간다고, 제 길이 다 있는 긴데. 

그게 뭔 말이오? 

모르는 것도 많다. 꿩 새끼를 데려다 닭장에서 키워 봐라. 틈만 나면 산으로 내빼지. 그게 닭장에서 살겠나? 죽지. 본디부터 다른 넘인데. 


어미 김상순의 입말을 옮겨 쓴 홍정욱은 초등학교 교사이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홍정욱은 틈만 나면 아이들과 산과 들과 강을 다니고 방학이면 전국의 강을 따라 걷는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집 <<꼭꼭 씹으면 뭐든지 달다>>를 비롯해 몇 권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이 분 책은 몽땅 읽고 싶어졌다.

1937년생 김상순은 이런 역사를 지닌 분이다. ˝학교 문턱은 넘어 보지도 못하고, 스무 살에 아무것도 없는 남편에게 시집 와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아이 다섯을 낳아 키웠고, 둘째딸을 사고로 잃고, 63년을 함께 산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았다.˝

그런데 학교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는 김상순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너무나 재밌고 무쟈게 웃긴다. 특히 김상순이 들려주는 스포츠 중계는 캐스터들이 수업료 들고 가서 김상순에게 한 수 배워 오라고 하고 싶을 만큼 찰지게 생생하다.글자화된 입말들이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경상도 사투리가 야물딱지게 구수해 자꾸만 소리 내 읽게 된다. 내 고향말이이서 입에 착착 감긴다.

김상순은 ˝우리 겉은 뒷글도 배우지 못한 늙은이 말이 어디 쓸데가 있다고?˝ ˝다 늙은 우리 이야기를 어디다 쓰겠노?˝라고 말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어디에서도 씨잘데기 없는 말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상순의 이야기는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산 자의 해학과 혜안으로 넘쳐난다. 삶의 지혜라는 모종을 땅에 심어 기르고 거둔 듯하다. 배움의 눈과 맘을 지닌 자에게는 세상 모든 곳이 학교다.

교사 아들에게 넘의 자식 니 맘대로 할려고 들지 말라면서, 그 까닭을 김상순은 기가 막힌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꿩 새끼를 닭장에서 키워 봐라. 틈만 나면 산으로 내빼지. 그게 닭장에서 살겠나? 죽지. 본디부터 다른 넘인데.˝ 

아동심리학자들과 상담사들이 흔히 말하는 ‘자존감 상실‘보다 훨씬 강력하고 훨씬 설득력 있는 한마디. ˝죽지.˝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잘 살게 하는 길은 꿩 새끼는 꿩 새끼로, 닭 새끼는 닭 새끼로 자라게 해주는 것이다.

˝오월은 푸르고 어린이는 자란다. 나무처럼 자란다. 숲을 이루게 해주자.˝(<<어린이라는 세계>> 2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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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3 07: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왠지 진주 사투리? 아닌가요? 제 친구가 이런 말투 쓰던데 ㅎㅎ 뀡 새끼에 비유한 어머니의 통찰력에 감탄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03   좋아요 3 | URL
경남 함안이래요. 저자는 현재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구요. 친구분이 경상도 남자면 좀 무뚝뚝할 텐데 그런가요? 어머님 통찰력 진짜 감탄스럽죠. 어머님도 선조들께 배워 체득한 지혜였을 텐데, 그 지혜수 받아 마시며 자란 저자의 심성도 헤아릴 만한더라구요.^^

scott 2021-05-03 11: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행복한 책읽기님
아드님 그림??
역동성이 느껴지는데요
꼬리에 별표까지!
오월은 신록처럼 푸릇푸릇한
어린이들 처럼
우리모두 건강하게!!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05   좋아요 3 | URL
역동성!!! scott님 역시 예리하십니다. 이 친구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저 ‘역동성‘이거든요. 마구 꿈틀거리지요. ㅋㅋ 이 친구는 제 눈물 꾹꾹 찍어 그림 그리는 경지까진 이르지 못했구요. 공룡과 포켓몬 그리는 걸 무지 좋아한답니다.^^

미미 2021-05-03 11: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삶의 지혜라는 모종~♡ 으아~😆오늘 왜들 이렇게 명언을 쏟으시는지 👍👍
마지막 포켓몬?그림 넘여워요!!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07   좋아요 3 | URL
ㅎㅎㅎ 저 명언 남긴 거예요. 저도 저 글을 써놓고는 어라, 내가 왜 이리 멋진 문장을 생각해낸 거지 했습니다요. 미미님이 이런 제 맘 들여다본 것처럼 알아봐 주셔 아, 기분 좋습니다.^^ 포켓몬 이뿌지요. 멋있는 그림은 더 많아요^^

붕붕툐툐 2021-05-03 20: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 너무 지혜로우신 어른이세요~
<꼭꼭 씹으면 뭐든지 달다>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이런 어머니께 교육을 받은 자녀의 글은 어떤지 궁금!!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11   좋아요 3 | URL
그죠. 말 지혜와 해학으로 똘똘 뭉친 어르신 같아요. 그 고생 하시고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느긋함을 저도 갖고 싶어요. <꼭꼭 씹으면>은 책은 툐툐님과 같이 읽는 것으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