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출근이라 7시 10분쯤 화장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차지 널스가 전화를 했다. 여기 사람들 어지간히 바쁘지 않으면 전화 안 하는데 뭔가 급한 일인 것이 분명해서 전화를 받았다. 자기가 스케줄링을 잘못해서 L이라는 직원이 이번 주에 2일만 일을 하게 됐다면서 나더러 오늘 쉬고 싶으면 L을 내 시간에 일하게 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이건 강요가 아니라 완전 자발적으로 해야 하니까 어떻게 할 거냐고 해서 Flex하라고 했다. L은 이번 주 2일 일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 3일을 일하게 되었고, 나는 3일을 일하게 되었지만 결국 하루만 일을 했다는. 아 놔~~~~. ㅎㅎㅎ 내가 그 말을 했으면 다른 사람이 Flex 되었겠지만, 할 것도 많고 해서 사실 은근 기뻤다. 요즘 다시 슬럼프가 왔는지 엄청 일하기 싫어하고 있다는. ㅠㅠ

그래서 집에 있으면 잠만 잘 것 같아서 책이랑 아이패드랑 아이파드랑등등 잔뜩 챙겨서 스벅에 왔다. 드라이브 드루는 가끔 했지만, 간호대 이후로 이렇게 맘먹고 온 것은 오랜만이다. 익숙한 얼굴의 직원이 있어서 어색한 기분이 덜 들었다. 이 직원은 몇 년 전에 와이프가 출산을 한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여기서 일하는 구나. 어째튼 참 친절한 직원이다.

<과학자들의 자화상>을 여전히 읽고 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인터뷰 형식이라 쓸데없는 글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다. 인터뷰어는 모두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지만 조금씩 다르고 중요한 것을 간략하게 물어본다. 인터뷰이들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인터뷰어인 헤를린데 쾰블이 자기가 인터뷰하는 모든 과학자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이제 내 글을 써야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책만 읽어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꾸 써야하는 것 같다. 읽어보고 고치고 또 읽어보고 또 고치고를 마감 전까지 무한반복.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지만 혹시 알아? 좋은 글이 만들어 질지?

저 잉크는 필사하는 사람들 중에 좀 알려진 잉크이다. 보라색 잉크에 금속성 초록 태가 뜨는 잉크인데(종이나 만년필에 상관없이)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인다. 내 앞에 있는 실물은 너무 잘 보이는데. 이렇게 태가 뜨는 걸 잘 찍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오 웰…

어쨌든 나도 비올라 포겔 교수의 말에 100% 동의한다. 미국은 여성이 직업과 가족을 하나로 결합하는 데 훨씬 관용적이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에게도 그렇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의 내 처지에(여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님, 나이많음, 경력없음, 재정능력 부족 등)(?) 계속 공부를 하고 더 나은 것을 위해 꿈을 꾸는 것은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다 포기했겠지. 포기하지 않아도 되어서 기쁘다. Flex 되어도 좋다. 모두 좋다. 감사하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2-12-16 0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예쁜 손글씨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라로 2022-12-16 15:07   좋아요 2 | URL
저는 유뷰만두님처럼 똑똑하고 멋지면 좋겠어요. 진심!

프레이야 2022-12-16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내가 좋아하는 글씨체 라로님 글씨 ㅎㅎ
더 예뻐졌네요. 잉크색도 예뻐요.

라로 2022-12-16 19:40   좋아요 1 | URL
‘라로체‘라고 반열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좋아요. ^^;;
근데 저는 프야님의 시원시원한 필체가 좋아요, 프레이야체!!^^
고마와요, 잉크색 이쁘죠?^^

책읽는나무 2022-12-16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간 사진도 예뻐 캡쳐 사진인 줄 알았어요.
댓글을 보고...정말 라로님 손글씨입니까?
넘 이쁘네요. 손글씨체 이쁜 사람 젤로 부럽던뎅~^^
얼마 전 미국 살던 시동생이 왔다 갔었는데 얘기 나누다 보면 확실히 미국은 여성의 나이를 막론하고 직업을 갖는 것에 좀 더 관대하다는 걸 느끼게 되더군요.
라로님도 더 열심히 하셔서 더더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라로 2022-12-16 15:10   좋아요 2 | URL
진짜요? 힛 좋아라~~.^^
시동생이 미국에 사시는 군요!! 그럼 여기 놀러 오셔야죠!!^^
어느쪽에 사시나요?? 이쪽이면 겸사겸사 여기도 오시길요.^^
넵! 열심히 해서 점점 더더 나아가고 싶어요.^^

책읽는나무 2022-12-16 15:53   좋아요 1 | URL
시동생은 남부 쪽 시골이라고 하더라구요. 앨라배마주?
울동네 소도시보다 더 시골이라고 해서 놀랐습니다ㅋㅋㅋ
미국은 언제쯤이면 가볼 수 있을까요?
비행기값 모으는 것도 쉽지 않겠어요^^;;;

라로 2022-12-18 04:38   좋아요 1 | URL
알라바바주!! 그 곳은 들으면 시골이란 느낌이 드는 주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그래도 역사가 깊고 변화가 별로 없는 곳이라 좋은 것 같아요. 거기 날씨가 어떤지 궁금하네요. 어쨌든 오시게 되면 두루두루 구경하셔야죠!! 요즘 비행기표 값이 금값이라..ㅠㅠ

새파랑 2022-12-16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손글씨 예술이네요~!! 캘리그라피 하셔도 될거 같아요 ^^

라로 2022-12-16 15:11   좋아요 1 | URL
하하 그럴리가요~~. 새파랑님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댓글을 잘 달아주시는 능력이!!^^

꼬마요정 2022-12-16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손글씨 완전 이뻐요. 잉크도 뭔가 더 예쁜 것 같아서 계속 쳐다봤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확실히 한국보다 훨씬 여성의 자아실현에 관용적인 곳이네요. 한국도 얼른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오늘 휴식 좋으셨겠습니다^^

라로 2022-12-18 04:35   좋아요 2 | URL
앗! 꼬마요정님처럼 젊은 분께 칭찬을 들으니 더 기분이 좋네요!!ㅎㅎㅎ잉크 이쁘죠!! 저 색이 보라가 아니라 마젠타에 금속성 그린테가 뜨는 잉크에요. 말라리안 애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잉크에요. 한국은 아직이지만 이렇게 페미니즘이 한창이니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휴식은 언제나 좋죠,, 나이 드니까 더 좋은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다음에 꼬마요정님 필사도 올려주세요~~~~.^^

psyche 2022-12-19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글씨와 잉크가 너무 잘 어울려요!! 실제로는 마젠타네 그린테가 뜬다니. 신기하네요.

라로 2022-12-20 12:00   좋아요 0 | URL
저 잉크 신기해요,, 저런 잉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신기하고요.
제 글씨체는 사실 좀 아이들 글씨체 같죠,, 성장을 하지 못한.ㅎㅎㅎ

기억의집 2022-12-20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페이퍼 읽으니 종이책으로도 살까 고민이 생기네요. 전자책 기다리고 있는데… 이 책 라로님께 땡스투하고 장바구닝에 올려있는데… 아무래도 전자책이 편해 기다리고는 있는데…

필사 부지런하세요. 보라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글씨 이쁩니다~

라로 2022-12-20 12:01   좋아요 1 | URL
전자책으로 나올까요?? 그러면 좋겠어요. 저 책 진짜 맘에 들어요!!!
땡스투 미리 감사합니다.^^
완전 보라색은 아닌 것 같아요. 마젠타니까 좀 핑크빛이죠. 글씨는 기억의집님도 이쁠 것 같은데요??
 

성질 급한 작은 남자는 어디서나 본능적으로 길을 잘 찾는 것 같았다

다락방에서 여자를 굶기는 폭군이나 푸른 수염36으로 매도하겠군. 하지만 난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오.

또다시 지네브라 팬쇼는 여주인공이 되었다. 그녀는 무도회에 참석한 사람 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명랑한 미인이었으며, 무도회의 파트너로 맨 먼저 뽑혔다. 그녀는 아주 사랑스러워 보였고 아주 우아하게 춤을 추었으며 아주 즐겁게 웃었다. 그러한 장면에서 그녀는 대성공을 거두는 사람이었다.

독자여, 그녀가 파트너인 뽈 선생만을 위해 활짝 피어 빛을 낸다거나, 홀을 채우고 벽에 늘어선 친구들이나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들에게 보이려고 가장 우아한 모습을 뽐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따분하고 제약이 많은 환경에서 그렇게 무미건조하고 김빠지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지네브라는 까드리유 한번도 다 추기 전에 생기나 즐거움을 다 잃고 피곤해하고 초조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무거운 축제 분위기 전체를 들뜨게 해줄 원동력을 찾아내고, 축제에 맛을 더해주는 양념을 맛보았다. 자신의 가장 멋진 매력을 과시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감지해낸 것이었다.

평범한 식사와 음료에 대해서는 보는 것마다 입을 삐쭉거리면서도 크림과 아이스크림을 보면 벌새가 벌꿀에 달려들듯이 먹어댔다. 달콤한 술은 그녀의 성체성사이고 달콤한 케이크는 그녀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지네브라는 무도회에서는 삶을 마음껏 꽃피웠고, 다른 곳에서는 기운 없이 처졌다.

베끄 부인은 세상물정을 좀 알고 있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아주 훤히 알고 있었다.

우선 이 젊은이들은 부모들의 중재하에 들어온 것이니만치 부모들도 공범자였다. 둘째, 이처럼 매혹적이고 위험한 방울뱀들을 들여보냄으로써 부인의 최대 강점인 일등급의 감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셋째, 그들의 존재는 여흥에 가장 자극적인 요소였다. 여학생들은 젊은이들의 존재를 의식했으며, 멀리서 빛나는 황금 사과49를 보면 활기가 돌고 생기를 띠었다. 그런 활기는 다른 어떤 환경에서도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나 어때? 오늘밤에 나 어때?" 그녀가 물었다.
"보통 때와 같아." 내가 말했다. "터무니없이 허영심에 찬 것처럼 보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와 아들은 친밀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요하나는 1957년 결핵이 재발하여 세상을 떴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자 아예 삭발을 했는데, 머리통은 완벽한 달걀꼴이었다. 사진 속의 그는 미셸 푸코와 일란성 쌍둥이처럼 보인다.

유능한 권투 선수였고 베토벤의 후기 4중주곡과 바흐에 열광했으며 자연을 사랑했고 "태양과 생명으로 가득한, 자그맣고 나이 많은 올리브나무"를 존경했지만, 수학을 비롯한 이 세상 무엇보다 더 몰두한 것은 글쓰기였다.

그로텐디크는 자신이 발견한 개념에 대한 르 모 쥐스트(딱 맞아떨어지는 낱말)를 고르는 일에서 재미를 느꼈다. 이것은 개념을 길들이고 친숙하게 만들어 온전히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를테면 그의에탈 개념은 썰물의 잔잔하고 온순한 파도, 거울처럼 고요한 바다, 끝까지 펼친 날개의 표면, 갓난아기를 감싼 흰 배내옷을 연상시킨다.

그의 친구 이브 라드겔레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천재와 함께 연구하는 일은 매혹적이었다. 이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로텐디크는 다른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는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웠는데, 그것은 이 남자가 어떤 인간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텐디크가 불러일으킨 수학적 풍경은 아무리 급진적이었을지언정 인위적이라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수학자의 훈련된 눈으로 보면 이 풍경은 마치 자연환경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텐디크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보다는 풍경이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기를 바랐다. 그 결과는 마치 각각의 개념이 제 나름의 생명 충동을 따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듯한 유기적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그가 20년간 수학계를 어찌나 확고하게 지배했던지 또다른 명민한 필즈상 수상자 르네 톰은 그로텐디크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능력에 "주눅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나를 고무하는 것은 야심이나 권력욕이 아니다. 거대하면서도 매우 섬세한 것을 예리하게 지각하는 것이다."

지구를 파괴할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몽유병자처럼 종말을 향해 행진하"는 그들 같은 과학자라고 말했다.

인류가 심장의 심장에 도달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까?

그로텐디크는 "수학을 하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다"고 썼다.

Le reveur n’est autre que Dieu.(꿈꾸는 자는 다름 아닌 하느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장선생은 무척 신중했지만 대담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수녀원과 고해성사가 있는 이 나라에서 ‘여자기숙학교’에 그렇게 젊은 남자가 뻔뻔스럽게 드나드는 것은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어느정도는 음흉한 구석이 있었음에도, 그녀의 유능한 태도와 숙련된 솜씨, 강인한 성격, 확고한 결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마음속으로 "브라보!"를 외쳤다.

젊거나 젊음 특유의 명랑한 우아함은 없어도 기분을 좋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지겹지 않았다. 그녀는 단조롭거나 무미건조하거나 흐리멍덩하거나 시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세지 않은 머리카락과 온화한 푸른 눈과 싱싱한 과일빛을 띤 뺨, 이 모든 것이 적당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호감을 주었다.

그는 잘생기고 성격도 좋긴 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럴 뜻도 없으면서 장난으로 부추긴 것이라면 그는 아주 나쁜 사람임에 분명했다.

베끄 부인이 비록 열네살 정도 연상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늙지도 시들지도 쇠약해지지도 않을 사람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사이가 좋았다.그가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정말로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적어도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우리는 결말을 기다렸다.

정중한 인사였지만, 여전히 그는 원치 않는 관심을 너무 받아 지겹고 넌더리가 난 모양이었다.

땋은 밤색 머리 사이로 흰 머리카락 하나가 보였다. 그녀는 부르르 떨면서 흰머리를 뽑아냈다.

그렇다면, 젊음의 자태는 어디로 갔는가? 아, 부인! 현명한당신도 약점이 있으시군요

그녀에게는 사실 극복해야 할 정도로 강한 감정도, 비참하게 고통에 빠질 애정도 없었다.

길이 외지고 음침한 것이 내게는 매력적이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오랫동안 이 길을 멀리했지만 사람들이 차츰 나와 내 습관에 대해, 그리고 내 고질적인 성격 중 특이하게 그늘진 구석?관심을 끌 만큼 두드러지거나 불쾌감을 줄 만큼 눈에 띄는 건 아니었으나, 타고난 나의 일부이며 나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것?에 익숙해짐에 따라 나는 서서히 이 좁은 오솔길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금욕적인 편이 나았다. 미래, 나의 미래와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이런 강직증과 마비된 무아의 상태에서 나는 내 본성 중 민감한 부분을 누르기 위해 애썼다.

그 당시 날 흥분시키는 것이 무엇이든, 예를 들면 날씨 같은 우연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게 기억난다.

깜깜하고 천둥소리가 노호하며 언어로는 결코 인간에게 전달되지 않는 송시가 울려퍼지는 광폭한 시간이 주는 기쁨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는 야엘이 시스라에게 한 대로 갈망의 이마에 못을 박았다.8 그러나 갈망은 시스라처럼 죽지 않았다. 그것은 잠시 잠잠해졌다가 가끔씩 반항적으로 몸을 뒤틀며 못을 뽑아내려 했다. 그러면 관자놀이에서 피가 흐르고 골은 한가운데까지 흔들렸다.

나와 관련된 한 그의 푸른 눈은 결백했고, 하늘빛을 닮은 그의 눈은 하늘만큼이나 고요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종종 그들의 명랑함과 확신과 자기만족이 의심스러웠지만, 그들이 그다지도 확신에 차서 걷고 있는 길을 애써 올려다보거나 곁눈질하지 않았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 볼 때, 그녀가 부드럽고 다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수상쩍은 생각을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하느님 맙소사! (경건하게 하는 말이다.)

움직이는 소리나 숨소리나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서가 아니었다. 완전히 ‘비어 있지’ 않고 ‘고독’이 감돌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하는 일마다 아주 솜씨 좋게, 말끔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해냈다. 어떤 사람들의 동작은 서투르고 부정확해 짜증이 나지만 그녀의 동작은 깔끔해서 만족스러웠다.

나는 그녀의 눈을,그녀는 내 눈을 들여다보아야 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시는 함께 일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의심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에 오도되어 벌이는 소동은 정말이지 우스웠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하자. 내가 해를 입은 것도 없는데 악의를 품을 이유는 없잖아?"

내가 그토록 묻고 싶은데도 용기와 재주가 없어 꺼내지 못한 말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먼 곳에 어떤 사람은 순식간에 도달하는구나!

독자가 로진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전체적으로 사람이 나쁜 건 아니었는데, 단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움켜쥐는 것이 수치라거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사를 붙잡고 까치처럼 재잘대는 것이 실례라는 걸 전혀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활기찬 사람들이 가득한 집에 살고 있었으며, 친구를 사귈 수도 있지만 스스로 고독을 택한 것이었다.

선생들은 모두 차례로 내게 특별한 친밀감을 표시했고 나도 그들 하나하나를 고려해보았다.

한 선생은 정직하지만 생각이 편협하고 감정이 조야한 이기주의자였다. 두번째 선생은 빠리 여자로 겉으로는 세련되었지만 속은 썩어빠졌고, 신념도 원칙도 감정도 없었다. 이 인물은 예절이라는 겉껍질을 뚫고 들어가보면 속에는 허물밖에 없었다. 그녀는 선물에 열광했다. 뚜렷한 개성도 없고 보잘것없는 세번째 선생도 선물에 열광한다는 점에서는 그녀와 똑같았다. 이 마지막 선생은 한가지 더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탐욕이었다.

그녀는 돈 자체에 대한 사랑이 제일 중요했다. 금붙이를 보기만 해도 그녀의 눈에는 괴상한 푸른빛이 감돌곤 했다.

그 빠리 여자는 늘 빚을 지고 있었다. 월급 때가 다가오면 옷만 사는 것이 아니라 향수와 화장품과 과자와 향료 등속까지 샀다. 얼마나 속속들이 냉담하고 무감각한 쾌락주의자인지!

일하기는 죽어라 싫어하고 자신이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사랑했다. 그녀가 말하는 쾌락은 무미건조하고 열정도 없는 멍청한 시간낭비였다.

미친 듯이 몰입해보란 말이야! 생명과 영혼을 가지란 말이야!"

하루 종일 따뜻한 햇볕을 쬐고 나무 사이에서 쉬면서 나 자신의 생각을 벗 삼아 홀로 거닐거나 앉아 있었다.

‘적절함과 점잖음’이야말로 베끄 부인이 숭배하는 고요한 두 여신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와 아들은 친밀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요하나는 1957년 결핵이 재발하여 세상을 떴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자 아예 삭발을 했는데, 머리통은 완벽한 달걀꼴이었다. 사진 속의 그는 미셸 푸코와 일란성 쌍둥이처럼 보인다.

유능한 권투 선수였고 베토벤의 후기 4중주곡과 바흐에 열광했으며 자연을 사랑했고 "태양과 생명으로 가득한, 자그맣고 나이 많은 올리브나무"를 존경했지만, 수학을 비롯한 이 세상 무엇보다 더 몰두한 것은 글쓰기였다.

그로텐디크는 자신이 발견한 개념에 대한 르 모 쥐스트(딱 맞아떨어지는 낱말)를 고르는 일에서 재미를 느꼈다. 이것은 개념을 길들이고 친숙하게 만들어 온전히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를테면 그의에탈 개념은 썰물의 잔잔하고 온순한 파도, 거울처럼 고요한 바다, 끝까지 펼친 날개의 표면, 갓난아기를 감싼 흰 배내옷을 연상시킨다.

그의 친구 이브 라드겔레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천재와 함께 연구하는 일은 매혹적이었다. 이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로텐디크는 다른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는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웠는데, 그것은 이 남자가 어떤 인간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텐디크가 불러일으킨 수학적 풍경은 아무리 급진적이었을지언정 인위적이라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수학자의 훈련된 눈으로 보면 이 풍경은 마치 자연환경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텐디크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보다는 풍경이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기를 바랐다. 그 결과는 마치 각각의 개념이 제 나름의 생명 충동을 따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듯한 유기적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그가 20년간 수학계를 어찌나 확고하게 지배했던지 또다른 명민한 필즈상 수상자 르네 톰은 그로텐디크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능력에 "주눅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나를 고무하는 것은 야심이나 권력욕이 아니다. 거대하면서도 매우 섬세한 것을 예리하게 지각하는 것이다."

지구를 파괴할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몽유병자처럼 종말을 향해 행진하"는 그들 같은 과학자라고 말했다.

인류가 심장의 심장에 도달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까?

그로텐디크는 "수학을 하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다"고 썼다.

Le reveur n’est autre que Dieu.(꿈꾸는 자는 다름 아닌 하느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