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모략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후줄근하게 구겨진 진회색 외투가 아니라, 점잖은 코트와 실크 양복이 몸매를 멋지게 드러내고 있었다(사실 별로 대단한 몸매는 아니었다).

그는 생긴 모습 그대로 괜찮아 보였고, 멍청하거나 시시한 사람은 결코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다.

비록 그 마음은 신경질적이긴 했지만 화석처럼 굳어 있지 않았고, 그 중심에는 다른 남자들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다정다감한 부분이 있었다. 그랬으므로 소박한 태도로 어린아이와 사귀고 여자나 소녀 들과도 친하게 지냈던 것이다. 그들에게 역정을 내기는 해도 분명 친화력을 지니고 있었고, 전반적으로 남자들보다는 여자들과 사이가 더 좋았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뽈 선생은 내 의무 불이행을 너무나 비극적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므로, 속을 태워 마땅했다. 그래서 나는 태연히 상자를 쥐고서 돌덩이처럼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연설 도중에 어떻게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 땅에 상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영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를 즐겁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운명이 그것을 허락하려 들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었으나 잘 놀라지도 안색이 변하지도 않았다. 그는 배짱이 좋았다.

당신이 가식적이고 냉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하지만 당신은 일생일대의 잘못을 저질렀소. 내 생각에 당신의 판단은 왜곡되어 있소. 감사해야 할 곳에서는 무관심하고, 스노우라는 당신의 이름처럼 차가워져야 할 데 가서는 아마 비이성적으로 헌신을 바칠 거라는 생각이 드오.

‘이제 우리는 친구예요.’ 나는 생각했다. ‘다음에 싸울 때까지는.’

우리는 아마 바로 그날 저녁에 싸울수도 있었으나 멋지게도 이번만큼은 싸우지 않고 사이 좋게 지냈다.

침묵은 예전과는 다른 종류였으며 다른 의미를 내뿜고 있었다.

19세기 영국사회에서 여성은 삶의 주체이기보다는 남성에 대한 헌신 속에서만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로 정의되었다.

여성은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희생을 통해서만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있었다.

남성은 창조자, 발견자, 행동하는 사람인 데 반해 여성은 집안일이나 사소한 결정에 능한 존재라고 보았다.

가정이 여성의 영역이라고는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재산과 수입은 모두 남편의 소유였다.

영국 여성은 지난한 투쟁 끝에 1918년에 이르러서야 보통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가정교사는 연평균 20~30파운드의 보수를 받았는데, 이는 요리사나 집사보다 적었고, 가정부나 마부나 하녀보다 그다지 높지 않았다. 심리적인 면에서는 일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채 유모나 하녀의 일까지 겸해서 해야 했으며, 또한 고용주의 다른 피고용인들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 때문에 고립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브론테의 마지막 작품인 『빌레뜨』는 가난한 중간계급 여성의 사랑을 다룬 점이나 여주인공이 독립된 삶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남성에게 종속되고자 하는 모순된 욕망에 차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품과 유사하나 『셜리』에서 사회로 확대된 시선이 이번에는 여주인공의 깊은 내면세계로 집중된다.

폴리, 지네브라, 베끄 부인 등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무척 자세한데, 이것은 곧 루시 자신의 일면에 대한 간접적인 성찰이기도 하다.

루시는 자신이 에덴에 와 있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이 관계의 기초는 뽈이 베풀고 루시는 감사해하는 것이다. 루시는 뽈을 왕이라 부르며 그의 손에 입맞춘다.

작품 전체의 완성도로 본다면 『빌레뜨』는 『제인 에어』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 불안정함과 불완전함 속에 『제인 에어』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 숨어 있다. 그 매력은 가능성,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 같은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내가 "본 에 빠 뜨로 페블"4하다고(즉 배울 자세가 되어 있고,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아직 지적 발달이 비참하게 낮다"는 생각이 든다고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어떤 일이건 시작할 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둔했다. 일상적인 일을 익히는 데도 평균적인 지능이 된다고 할 수도, 그것을 증명할 수도 없었다. 내가 넘기는 인생이라는 책의 모든 페이지의 첫 단락은 늘 어렵고 침울했다.

어쩌면 너무 쉽게 화해했는지도 모른다. 더 버텨야 했으나 그가 친절하고 선량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손을 내밀자 그에게 핍박받던 순간들이 내 뇌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화해는 늘 달콤한 것이니까!

그의 다음 주제는 "지적인 여성들"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에 의하면 "지적인 여성"은 일종의 "기형"으로, 불운한 우연이며 창조에서 차지할 위상이나 효용성이 없고 아내로나 노동자로나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여성의 최고 덕목이라고 여겼다. 사랑스럽고 온화하고 수동적이고 평범한 여성이야말로 남성다운 사고와 분별로 골치가 아플 때 쉴 수 있는 유일한 베개라고 마음 깊이 믿었다. 그리고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남성의 정신만이 훌륭하고 실용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용기를 내, 루시 스노우! 지금 절약하며 참고 살면서 계속 노력하다보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야. 목표가 너무 이기적이고 협소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마. 그것을 이룬 후에 더 높은 곳을 넘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까진, 독립을 위해 애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해. 하지만 그후에도 내게 그 이상은 불가능할까? 내게 진정한 가정은 없는 걸까? 내게는 나 자신보다 소중히 여길 가정은 없는 걸까? 나 자신을 계발하기보다는 더없이 값진 가정을 위해 나 자신의 더 훌륭한 자질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 이기주의라는 짐을 기꺼이 모두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며 사는 고결한 영예는 주어지지 않는 걸까? 루시 스노우, 네 인생의 궤적이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는 걸 알아. 네게는 초승달만 떠도 충분해. 좋아. 그보다 나을 게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 수많은 남자와 그보다 더 많은 여자가 극기와 박탈감 속에서 인생을 보내고 있어. 내가 소수의 운좋은 사람 속에 끼어야 할 이유는 없지. 가장 열악한 운명에도 희망과 햇살이 섞여 있다는 것을, 현세가 전부가 아니며 시작도 끝도 아니라는 것을 난 믿어.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떨고 있어.2 그렇게 믿고 흐느껴 울고 있어."

글씨는 그의 얼굴, 조각 같은 그의 이목구비와 똑같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신을 먼저 섬기고 나서 인간을 섬겨야 한다고 하지만, 아빠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하느님도 질투하시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세번이나 편지를 고쳐 썼어요. 다시 쓸 때마다 문장을 차분하게 다듬었어요. 졸이고 졸여 마침내 아주 작은 과일이나 설탕으로 맛을 낸 얼음 조각처럼 되자 봉인을 해 부쳤어요.

"서두를 필요 없어요, 폴리나. ‘시간’과 당신의 친절한 ‘운명’에 맡겨요. 나는 운명이 당신을 얼마나 친절하게 보살피는지 봐왔어요. 운명이 순조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적절한 시간을 정해주는 것에 대해선 염려하지 말아요. 그래요. 당신이 자신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듯이 나도 당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비교를 해보기도 했고요. 앞날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순조로웠잖아요.

서로 사랑하는 당신과 그레이엄은 내게 약속과 계획과 조화처럼 보여요. 밝고 젊은 당신들은 둘 다 폭풍 같은 시대의 선구자가 되진 않을 거예요. 당신들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사처럼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중 극소수의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산다는 거죠. 그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존재하죠. 그게 하느님의 뜻이에요.

그는 그녀를 가식적인 허영 덩어리라고 생각했고, 그녀는 그를 간섭이 심하고 말이 안 통하는 지긋지긋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도 그날 그 이후의 시간 동안 너무나 부드럽게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너무나 다정해서 슬프기까지 했다. 차라리 평소처럼 벌컥 화를 내면서 변덕을 부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에마뉘엘 선생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작은 일에는 관대하지 않은 적이 많았지만 큰일에는 정말 너그러운 분이구나!"

"그의 가슴은 늘 그녀를 애도할 거요. 에마뉘엘의 성격의 핵심은…… 지조요."

"그대는 운명이정해준 대로 되리니!"

그 사람처럼 자기 능력에 넘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쓸데없이 자진해서 책임을 떠맡는 사람도 또 없을 거예요.

음식도 들고 포도주도 마셔요, 내 친구. 천사고 노파고, 그리고 무엇보다 에마뉘엘 선생이고 뭐고 다 잊어버려요. 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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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에 대해 네가 으쓱해하지 않는 게 이상해."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단 말이지. 내가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정말 시시한 사람인데도 그러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뻔뻔해서일 거야."

나는 단지 점잖게 처신했을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녀는 팔짱을 낄 때면 언제나 내게 몸을 바짝 기댔다. 하지만 난 신사나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자세가 싫었다.

"그래." 그녀는 직설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그런 태도야말로 그녀의 가장 훌륭한 장점으로, 거짓말을 할 때조차도 솔직하고 숨김이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태도는 간단히 말해서 소금, 즉 그녀의 인격을 보존해주는 저장용 양념으로, 그것이 없었다면 그녀의 인격은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알아줄 만한 곳에서 나를 알아주기만 하면 충분히 정신적인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나머지는 내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 관심사와 사고 속에 신분이니 사회적인 지위니 박식함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같은 공간과 위치를 차지했다. 그것들은 나의 삼류 하숙생들이었고, 그것들에게 나는 작은 거실과 후미진 작은 침실만 내주었다. 식당과 큰 거실이 비어 있을 때조차도 그것들의 처지로 보아 작은 방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되긴 했다.

지위가 낮다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인맥이 없는 게 곧 자존심에 치명타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의 타락을 막아주는 안전판 구실을 하는 지위나 인맥을 높이 사는 것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자신의 조상이 신사가 아니고 평민이었으며, 부자가 아니고 가난했으며, 자본가가 아니고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경우 자기비하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치명적인 사실을 숨기려 들고 그런 사실이 폭로될까봐 떨며 놀라서 움츠러든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오래 살면 살수록 경험은 더 넓어진다. 이웃의 행동을 덜 비판하고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의심하는 경우도 줄어든다. 조신한 척하는 미덕이건 세속적인 점잖음이건, 작은 방어들이 쌓이는 것은 분명히 그런 방어가 필요해서이다.

나는 ‘강연’을 할 교수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학자 중 하나가 연단에 나가서, 아떼네의 학생들을 향해 교조주의가 반, 왕자에게 바치는 아첨이 반인 형식적인 연설을 하려니 막연히 예측할 뿐이었다.

그런 순간에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신경을 쓰지도 묻지도 말았어야 했지만 그는분명히 신경을 썼으며 너무나 소탈해서 그것을 감추지 못했고, 너무나 충동적이어서 욕망을 억누르지도 못했다.

마음속에 칭찬의 말이 가득했으나, 내 입술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는 부자가 접근해오면 늘 다소 뒤로 빼는 편이었다. 그에게는 질기고 강한 독립심이 있었다. 그의 성격을 알고 나면 눈에 거슬리기보다는 기분 좋아지는 특징이었다.

자연의 손길이 팬쇼 양의 경우에는 아무렇게나 슬쩍 스쳐가며 이목구비를 만들었으나, 바송삐에르 양의 경우에는 고도의 섬세한 필치로 이런 세세한 특징을 완벽하게 다듬어놓은 것 같았다.

바송삐에르 씨는 이 점에 대해서도 만족했다. 그는 언어에 대해 아주 까다로운 편이었다.

폴리나의 우아함과 지성은 이 사색적인 프랑스인들을 매료했다. 그녀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와 미숙하나 진실한 타고난 재치는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썩 잘 맞았다.

하지만 독자여, 진실을 말하자면, 어떤 뛰어난 미모도, 완벽한 우아함도, 확실한 세련됨도 그만큼 뛰어난 힘, 그만큼 완벽한 힘, 그만큼 확실한 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유약하고 나태한 사람에게서 매력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뿌리 없고 시들시들한 나무에서 꽃과 열매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레이엄은 날 알아보고 웃음을 짓더니, 방을 가로질러 와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고는 창백해 보인다며 말을 걸었다. 나는 나대로 존 선생이 세달 만에 말을 걸고도 시간이 그렇게 흐른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아니, 내가 네로였어도 그림자처럼 거슬리지 않는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았을 거요."

마음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반항적인 용기가 솟았다.

이제 나는 그가 내 성격과 본성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고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늘 내게 나의 것이 아닌 역할을 부여하려고 했다. 나의 본성은 그에게 반감을 느꼈다.

그때 나는 그의 말을 들어주든지, 아니면 적어도 사랑의 드라마에 감초 같은 하녀 역은 기대하지 말라고 분명히 일깨워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드럽고 열렬한 속삭임에 이어서,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시오, 루시" 하는 그의 애처로운 부탁과 겹쳐, 반대편에서 날카롭게 내지르는 소리가 났다.

존 선생은 일생 동안 성공을 거두는 행운의 남자였다. 왜일까? 기회를 포착하는 눈과 적절한 시기에 행동을 개시하는 열의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담력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친구는," 그가 말했다. "말 한마디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는 법이오. 당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지금까지도 뺨이 달아오른 게 나 때문인지 아니면 그 위대한 잘난 체쟁이 영국놈7" (그는 브레턴 선생을 그렇게 모욕적으로 불렀다.) "때문인지 말해주시오."

"전 선생님을 의식도 안하고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감정을 일으킨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있답니다." 내 대답이었다. 이 말을 할 때 나는 평상시의 내 모습을 억누르고 가식적으로 새침하고 쌀쌀맞게 말하는 데 다시 한번 성공했다.

그녀는 끄레시가에서부터 맹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포세뜨가에 도착하기 전에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진정한 가치와 고상한 품격을 칭찬해주어야만 했고, 그것은 존 녹스가 메리 스튜어트 여왕에게 바친 찬사를 능가할 만큼 소박하고 충성심이 가득찬 것이어야 했다.11 이것이 지네브라에게 걸맞은, 그녀의 수준에 어울리는 교육이었다.

뽈 에마뉘엘 선생은 수업시간에 방해를 받는 데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벌컥 화를 냈다. 수업 중에 교실을 가로질러 가는 일은 선생이건 학생이건, 혼자건 여럿이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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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라이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 몇 장을 보내왔는데 그중에 레몬 사진도 있었고, 우리 집 개 샘의 사진, 우리 가족사진, 그리고 집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려있는 장식품을 찍은 사진이 있다. 오늘 그 사진을 안 올리면 내년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내년엔 내년 사진을 올려야 하니까 지금 생각난 김에 올린다. 

사진: H양 보냄


오래된 라이카로 찍어서 어떻게 저런 사진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색감도 그렇고 다 넘 크리스마스 기분이 막 난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 보니까 오너먼트 하나하나가 다 사랑스러워 보이려고 한다. (사진에 안 나온 것들도.) 저 오너먼트는 딸아이가 3살 때 산 것 같다. 좀 낡아 보이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여전히 이쁘구나.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우리 병원에서는 각 부서마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선발대회(?)를 해서 상금을 줬는데 우리 부서가 전체 3개의 병원 중에 2등을 해서 상금을 받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차지 널스가 오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우리 부서 간호사들에게 다 선물을 줬는데 그중에 아마존 기프트 카드도 있었다.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아직 확인은 안 했지만 $20은 넘겠지?

이 카드로 요즘 계속 아마존에서 나에게 추천하는 책을 살 생각이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지? ^^;

차지 널스의 이름은 로라이다. 간호 경력 겨우 2년이 넘는 동안 한 6명의 차지 널스를 거쳤는데 지금까지 이 로라라는 차지 널스가 최고다. 덕분에 PACU 생활이 햄볶는다는.


안 에 든 것을 꺼내면 짜잔~.

저 유리컵은 와인잔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포아로 탐정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은데 재밌을 것 같다. 아직 한국어로는 검색이 안 되는데 번역이 안 된 건지 뭔지 모르겠다.













그리고 저번에 사 둔 전자책 캐시가 있는데 그것으로 역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책 한 권을 주문할 생각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내가 나에게 주는. 내가 아니면 누가 나에게 주겠는가?^^;; 이 책들 중 한 권을 주문해야지.
















그리고 내가 예전에 페이퍼에 쓴 적이 있는 아웃페이션트 유닛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으시는 S 간호사가 환자들의 서류를 정리하는 것을 맡아서 하고 있는 직원을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냈고 그 사람에게 주기 전에 저렇게 매만지는 모습. 저 선물을 받은 A가 기뻐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참 흐뭇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도 참 좋은 것 같다.

나이가 60이 넘은 S 간호사. 참 좋은 분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우리 유닛에 있는 부엌 탁자가 좀 지저분하지만,, ^^;;


이 팝케이크는 어떤 환자의 보호자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 온 것인데 나는 별로 안 좋아해서 안 먹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지 몇 개 안 남았더라는.


이제 내일이면 크리스마스네요.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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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C 2022-12-24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글과 사진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네요~ 라로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라로 2022-12-26 14: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돌씨님!!^^ 어제가 크리스마스였죠? 여기는 오늘이에요. 덕분에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돌씨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길 바랍니다.^^🎅🎄🎁

순오기 2022-12-26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즐거운 클스마스 보내셨군요~ ^^
나는 올해 죽을만치 일해서 내년부터 일 안하고 쉽니다.
허긴 정년퇴직 나이도 지났네요...ㅋㅋ

라로 2022-12-26 14:46   좋아요 0 | URL
오늘이 크리스마스에요 언니~~.^^;; 여긴 크리스마스를 한 달을 보내는 것 같아요.ㅎㅎㅎ 물론 25일인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보내지만요. 저건 직장에서 생긴 일이에요.
언니 정말 올 여러가지 일을 많이 하셨죠!! 근데 정말 일 안하고 쉬신다는 것 믿어도 되나요??^^;;
언니의 성격상 정년퇴직 나이가 지나도 계속 열일 하실 것 같아요.^^
언니~~~, 크리스마스 온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요??
새해 인사 미리 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언제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벤자민 라바투트의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의 마지막에 

우리집 마당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레몬나무로, 육중하게 늘어진 잔가지들이 넓게 뻗어 있다. 밤의 정원사는 레몬나무가 어떻게 죽는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로 시작하는 레몬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천도복숭아나무가 가장 오래된 나무였는데 천상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는 천도복숭아를 주렁주렁 매달아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육중하게 잔가지들을 넓게 뻗치다가 어느 날 죽어버린 천도복숭아나무가 생각났다. 나무는 죽었지만 그 맛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우리 결혼식을 남편의 집 정원에서 했는데 그때 그 천도복숭아를 먹어 보셨던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때 네 결혼식 때 네 결혼 준비라며 네 시어머니 도와준다고 열심히 그릇들을 닦고 있는데 네 시어머니가 먹어보라며 줬던 천도복숭아 맛이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더랬다.


어려서 먹어 본 맛은 잊히지 않는 경우가 몇 있다, 그러니까 마른 오징어나 오미진 냉면집의 냉면 같은, 50살이 넘어서 먹어 본 맛 중에 기억나는 맛은 거의 없는데 얼마나 맛이 있었으면 50대에 드셨던 천도복숭아의 맛이 74세가 되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잊히지 않았을까? 거름도 안 주고, 비료도 안 주고 자란 나무의 열매라서 그런 것일까?를 생각했었다. 나도 가끔 그 천도복숭아가 먹고 싶어지곤 하니까.


라바투트의 소설에 나오는 레몬나무의 모습은 바로 우리 집 레몬나무의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저 레몬나무도 천도복숭아나무처럼 죽어버리는 걸까? 열매를 너무 많이 맺고 있으니까? "일생의 끝에 이른 나무에서는 마지막으로 무수한 레몬이 달린다."고 이 소설에서 얘기하니까?


예전에 우리 집 레몬나무에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사진 올린 것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다. 늘 충분한 태그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보다. 더 자세한 태그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멀리 보이지만 저 빨간 동그라미 안에 있는 것이 어쩌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집 레몬나무다. 


딸아이가 여기 와 있으면서 자기 시할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라이카 카메라로 찍어서 현상을 해서 받은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역시 필름 카메라의 느낌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 H양 보냄

가까이 보면 저렇게 노랑노랑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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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기가 나지는 않았지만 약간 필사적인 심정이 되었다. 종종 필사적인 심정은 용기 대신 나서서 용기가 할 일을 하기도 한다.

선생이 될 수 있고 또 개인 지도를 할 수도 있지만, 가정교사가 되거나 말상대가 되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어떤 훌륭한 집안의 가정교사가 되느니 차라리 하녀가 되어 질긴 장갑을 사서 끼고 침실과 층계를 쓸고 난로와 자물쇠를 청소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 편이 더 마음 편하고 독립적이었다. 말상대가 되느니 차라리 셔츠를 만들다 굶어 죽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빛나는 숙녀의 그림자, 바송삐에르 양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내가 침울한 성격이고 가끔 우울해하긴 했지만, 우울해하거나 눈에 띄지 않게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원해서였다.

나는 그때그때 전환되고 나를 맞추는 사람이 못됐다.

"쌩삐에르 양에게야 충실하게 근무해준 데 대해 물질적인 보상을 해야겠지만, 당신에게 그런 보상을 하면 우리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아마 소원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내가할 수 있는 일이 한가지 있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혼자 내버려두는 거죠. 앞으론 그렇게 할게요."6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그 순간부터 여태껏 강요하던 모든 미미한 구속을 조용히 없애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기꺼이 그녀의 규칙들을 존중했다. 즉, 내게 맡겨진 학생들에게 기꺼이 두배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일에 만족했다.

그레이엄과 함께 있을 때는 원래 수줍어했는데 지금은 더욱더 수줍어했다. 가끔씩은 그에게 냉담하려고 애쓰고 때로는 그를 피하기도 했다. 그의 발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랐고 그가 들어오면 말이 없어졌다. 그가 말을 걸면 더듬거리기 일쑤였고, 그가 떠날 때면 난처해하며 어쩔 줄 몰랐다. 그녀의 아버지조차 이런 태도를 눈치챌 정도였다.

그도 말을 많이 하지는 않던데요. 저를 겁내는 걸까요, 아빠?"
"오, 물론이지! 어떤 남자가 이렇게 조용한 작은 아가씨를 겁내지 않겠니?"

그는 그녀를 아주 조심스럽게 대했고, 몹시 부드러운 어조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마치 너무 크게 숨을 쉬면 공중에 매달린 행복이라는 거미줄이 망가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몹시 수줍어했지만 우정을 진척시키려는 진지한 태도에 분명히 아주 섬세하고 요정 같은 매력이 있었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아빠의 억양은 에든버러식인가요 아니면 애버딘식인가요?"
"귀여운 아가야, 둘 다란다. 게다가 물론 글래스고식이기도 하지. 이런 억양 덕분에 프랑스어를 잘하는 거란다. 스코틀랜드 말을 잘하는 사람은 그 프랑스어도 능숙하게 하거든."

바송삐에르 씨가 ‘스노우 양’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나는 내적으로 깨달은 바가 많았다.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때때로 얼마나 상반된 특징들이 우리에게 부여되는가! 베끄 부인은 나를 박식하고 우울한 여자로, 팬쇼 양은 신랄하고 빈정대기 좋아하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홈 씨는 모범적인 선생에다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 즉 다소 관습적이고 엄격하고 편협하며 까다롭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정교사다운 정확성을 지닌 산 표본으로 평가했다. 반면에 다른 사람, 즉 뽈 에마뉘엘 같은 사람은, 알다시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성격이 불같고 무모하며, 모험심이 강하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대담하다고 암시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꼬마 폴리나 메리였다.

그녀와 사귀는 일이 마음에 들고 기분이 좋긴 하지만 급여를 받는 조건으로는 말상대가 되지 않겠다고 하자, 폴리나는 규칙적으로 계속 만날 수 있도록 같이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나를 설득했다. 자기나 나나 독일어가 능숙하지 못하니 함께 독일어 공부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우리는 끄레시가에 여선생을 모셔다 함께 수업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 정해지자 우리는 매주 몇시간은 함께 있게 되었다. 바송삐에르 씨는 아주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미네르바 엄숙 부인’9이 자신의 아름답고 귀여운 딸에게 여가시간의 일부를 할애해주는 데 대찬성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뽈 선생만큼 훌륭한 작은 사람도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보다 심술궂은 작은 독재자도 없었다.

그녀는 독일인답게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이어서 소위 우리 영국인의 신중함이라는 것을 아주 갑갑하게 여기는 듯했다.

사실 우리의 독일어 공부는 진척이 느렸는데도 그녀는 우리의 발전에 놀라는 것 같았다. 좀처럼 스스로 사고하거나 공부를 하려 들지 않는 외국인 여학생들, 즉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거나 사고와 응용으로 풀어보겠다는 생각조차 전혀 없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익숙해 있어서였다. 그녀가 보기에는 우리가 한쌍의 쌀쌀맞은 신동, 냉담하고 자신만만하고 불가사의한 신동이었다.

백작의 딸은 다소 거만하고 까다로운 면이있었다. 그리고 타고난 섬세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이런 감정을 가질 자격이 있기도 했다.

그녀처럼 조용한 경멸이라는 갑옷으로 자신을 방어한 적도 없었다

폴리나를 예쁘장한 운디네15 같은 존재로 여기며 반은 두려워하면서도 반은 숭배했고, 인간적이고 좀더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내게서 휴식을 찾았다.

우리가 읽고 번역하기를 좋아했던 책은 실러의 서정시집이었다. 폴리나는 곧 그 시들을 아름답게 낭독하는 법을 배웠고, 선생은 흐뭇한 웃음을 띤 채 듣다가 그녀가 읽는 소리가 음악 같다고 말하곤 했다. 또 폴리나는 그 시들을 아주 쉽고 유창하면서도 시적인 열정에 찬 언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그녀의 뺨은 발그레해졌고 입술은 떨리며 웃음을 머금었고 아름다운 눈은 빛나거나 옅어지곤 했다. 그녀는 가장 훌륭한 시들을 외워서 단둘이 있을 때면 종종 암송하곤 했다. 그녀가 좋아했던 시 중 하나는 「소녀의 탄식」이었다. 그녀는 음성에 스며 있는 애조 띤 가락을 알아내고 그 단어들을 되풀이하여 읊기를 좋아했지만, 그 시의 의미에 대해서는 비판하곤 했다. 어느날 저녁 우리가 난롯가에 모여 앉아 있을 때 그녀가 그 시를 나지막이 암송했다.

"루시, 나는 그녀가 무례한 사람이며, 거짓말을 했다고 믿어요. 우리 둘 다 브레턴 선생님을 알잖아요. 조심성이 없고 거만한지는 몰라도, 그가 비열하게 굴거나 비굴한 적이 있었나요? 그녀는 매일 자신의 발밑에 꿇어앉아 빌고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그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녀가 아무리 모욕을 주며 물리쳐도 사랑을 구걸하는 그에 대해서 말이에요. 루시, 그게 사실인가요? 사실인 점이 조금이라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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