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예방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한다.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발생을 차단하는 것을 1차 예방이라고 하고,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을 2차 예방이라고 한다. 생긴 후에 빨리 발견하는 것보다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터이다. 따라서 나는 갑상선암과 갑상선기능저하증의 예방을 위해서라도 노후된 핵발전소는 점진적으로 폐쇄해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지극히 예방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처음엔 트랜스젠더들이 한 명 한 명 구별되지 않고 그저 ‘트랜스젠더’ 혹은 ‘트랜스여성’, ‘트랜스남성’으로만 보였다고 한다. 몇 명 만나지 않았을 때는 ‘트랜스여성은 이렇군, 트랜스남성은 저렇군’ 하고 생각했다고. 이를테면 ‘어머, 트랜스여성들은 일반 여자들보다 더 예쁘게 꾸미고 다니네’, ‘트랜스남성들은 완전 아저씨잖아’같이 말이다.

특정 조건을 가진 사람을 단 몇 사람 만나보았을 땐 선입관이 생기기 쉽지만, 오히려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나보면 선입관이 사라지게 되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다운증후군은 선천적으로 지니는 공통점이 있다. 심장 기형이 많다. 관절이 약해서 무릎, 발목, 손목에 퇴행성관절염이 잘 생기고, 얼굴 피부와 두피에 지루성 피부염이 잘 생긴다. 이 지루성 피부염이 외이도에도 생겨, 귀지의 양이 많고 끈적한 편인 데다 외이도가 곧지 않고 꺾여 있어 귀지가 잘 빠져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분비적으로는 갑상선이 약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잘 생기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여러 신체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대체로 온화한 편이고 사회성이 좋아 종종 ‘천사’라고 불린다. 신이 이 땅에 천사를 내려보내실 수 없어, 다운증후군 아기들을 보내주셨다는 것.

다운증후군인 명운 씨는 욕을 잘 한다. 자기 이름은 읽고 쓸 줄 모르면서 육두문자는 아주 구수하게 날리는데, 발음이 불명확한 탓에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잘 안 들린다. 대체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하자고 할 때, 이를테면 "명운 씨, 치아를 닦읍시다"라고 할 때, 명운 씨의 ‘안 해, 싫어, 이쒸’에 이어지는 길고 긴 욕을 들을 수 있다.

누가 다운증후군이 천사라 했던가. 누가 지적장애인들은 똑같은 단순노동을 반복해도 지루함을 덜 느낀다고 했던가. 의천 씨는 직장에 가기 귀찮고 지루해 꾀병이 생긴 거였다. 일상에 자극이 될 만한 것이 생길 때까지 복통은 낫지 않고 있었다.

의천 씨의 꾀병이나 명운 씨의 자해 아닌 자해 소동을 비롯하여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알게 되자, ‘다운증후군은 천사’라는 말보다 매력적이고 생생한 캐릭터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훨씬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촉탁의 생활이 내게 열렸다. 장애인 시설의 촉탁의 경험 덕분에 너무 다정한 치료 방법들을 배웠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는 나라 미국에선, 민간의료보험이 없는 학생이 혹시라도 다칠까 봐 공립 고등학교 체육 수업 시간을 줄인다고 한다. 민간의료보험이 없는데 골절이라도 생기면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의 가정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게 되니까, 미식축구니 농구니 하다가 격렬한 부딪힘 끝에 다칠까 봐 아예 학교에서 운동을 못 하게 하고 체육관을 폐쇄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덜 다치면 이게 더 건강한 건가? 사실 이것이야말로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더 심한 학대가 아닌가?

만약 진짜 시설 내에서 학대가 있었다면, 우선은 다치는 위치가 다르다. 법의학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처럼, 자해와 타해의 흔적이 다르다. 자해 시에는 주저흔이 생기고 타해 시에는 방어흔이 생긴다.

큰 소리가 날 때나 생활교사들이 가까이 다가갈 때 깜짝 놀라거나 몸을 움츠리는 행동이 여러 장애인들에게 패턴화되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학대를 의심해야 한다.

학대가 있는 시설이라면 이렇게까지 실습 학생에게 개방적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외부인인 나 같은 사람들이 더 외부인인 의대 실습 학생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기껍지 않을 수 있다. 이곳은 시설에 있는 장애인의 가족, 지역 자원활동가, 학교 선생님 들이 적절한 허가를 받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시설이다. 그렇다면 학대나 방임이 이뤄지고 있는 장소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

요즘 장애인 인권운동의 화두는 탈시설이다. 장애인들끼리만 고립되어 생활하는 장애인 시설에 평생 사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로 나와 다른 주민들과 어울려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시설을 떠나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길도 필요하고 발달장애인이 등록할 수 있는 운동센터도 필요하다. 장애인 친구와 함께 차를 마시러 갈 수 있는 카페도 필요하고 식당도 도서관도 필요하다. 집들과 골목도 장애인이 살 수 있도록 수리되어야 한다.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려면 동네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폭력과 학대를 예방하는 것도, 탈시설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모두 지역사회 시민의 힘인 것이다.

두부 외상의 흔적은 없었지만, 의식 상태를 평가할 수 없으면 응급실에서는 머리 CT를 찍어야 한다. 문제는 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종종 의대생 후배들이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멘토링을 부탁해올 때가 있다. 나는 사실 의대에서 요구받는 공부를 따라가는 것만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기에 뭘 더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무엇을 배워도 다 써먹을 데가 있다는 얘기는 들려주곤 한다.

의사는 솔직히 경제적으로 사회 상류층에 속한다. 그런데 비슷하게 상류층에 속하는 직업군 중에서는, 가난하고 힘없고 아픈 사람들을 가장 많이 접하는 직업이다. 고위 공무원이나 대학 교수, 회계사, 변리사, 변호사에 비해 사회적 약자들을 평균적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만나는 절대 숫자 자체가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일하면서 움직이는 범위는 아마도 의사가 가장 좁을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학과 공부에 치여 다른 과 친구들을 거의 사귀지 못하고, 직업을 가진 후에도 거의 좁은 진료실과 병원 안만 종종거리고 돌아다니게 되어, 인간관계와 경험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학생 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좋지 않을까.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 국가, 인종, 성별, 성별 정체성, 종교, 장애 등의 면에서 나와는 다른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여러 친구들을 사귀라고 조언하고 싶다. 의사는 정말 다양한 사람의 삶과 마주치게 되고, 그래서 무엇을 배우더라도 다 써먹을 데가 있으니까.

인지 재활을 위해 말을 걸어드리고 음악과 라디오를 들려드리는 일, 무엇보다 고립되어 있는 보호자를 위로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지지하는 일도 주민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국의 경우 왕진 시 온라인으로 전자 차트를 작성하고, 역시 온라인으로 처방전을 발행하면 약국으로 바로 전송되어, 약사님이 약을 조제하여 직접 배달하고 복약지도를 하는 방식으로 방문 약료가 이뤄지는 곳도 있다.

왕진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들을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이다. 어쩔 수 없이 왕진 후 다시 살림의원으로 돌아가 처방전을 발행하면, 인쇄된 처방전을 누군가 들고 약국으로 가서 약을 조제하여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는 보호자가 이 일을 어찌 해낼까.

"제가 어차피 집이 이 근처예요. 주치의 선생님과 같이 살림의원으로 돌아가서, 처방전 내주시면 그거 받아서 약국 들러 조제해서 배달해드리면 어떨까요? 보호자분만 괜찮으시다면, 저는 운동하는 셈치고 동네 한 바퀴 더 돌지요."

순간 보호자분은 크게 안심되고 위안이 되어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도 든든했다. 이런 왕진이라니…. 여러 규제로 기술 도입이 늦어져도, 그 간극을 메워주는 이런 멋진 동네 친구들이 있다면…!

며칠 후 그 보호자분한테서 연락을 받았다. 그날 풀꽃 님이 약을 배달해주시면서 보호자를 위한 샌드위치도 같이 배달해주셨다고,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달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왕진 시에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를 함께 지원해야 한다고 머릿속으로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왕진을 나가면 환자분 상태에 신경을 빼앗겨 보호자 지원은 뒤로 밀리고 만다. 그런데 나와 같이 그 집을 방문한 졔졔 샘, 봉봉 님, 풀꽃 님은 보호자에게 훨씬 더 신경을 쓰고 계셨던 거다.

나는 동네 주치의로서 우리 동네 주민들이 건강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또 이럴 때 한없이 배운다.

예전 야학에서 선생님을 강학으로, 학생을 학강으로 불렀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가르치며 배우는 사람이기에 강학, 배우면서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학강이라고. 우리는 동네 안에서 이렇게 서로에게 배워간다.

수영장에서든 동네 술집에서든, 여튼 진료실 밖에서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진료실 안에서만, 환자와 의사로만 만나서는 다양한 관계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진짜 에너지를 알 수 없다. 진료실을 찾을 때 사람은 가장 아프고 힘든 상태이자 위로가 필요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료실을 벗어나 동네에서 살아가는 그 사람은 주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역할이 있고 당당하고 밝고 긍정적이다.

세상에! 나에게 항상 찌푸린 표정으로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소연하던 이가 거리에서는 그렇게 밝고 청명하게 웃고 다닐 줄은 몰랐네. 처음엔 배신감도 느꼈다. 왜 나한테만 와서 징징대는 거야! 하지만 그게 내 일이지. 언제고 찾아와서 힘들다고 얘기해도 되는 사람, 아프다고 위로를 구해도 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주치의라 부르니까.

내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의대 본과 1학년 때였다. 의료협동조합은 의사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주민들과 의료인들이 돈과 힘을 합쳐 함께 만드는 병원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는 단박에 꽂히고 말았다.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환자에게 검사와 치료 행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의사·병원이 돈을 버는 행위별수가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환자의 바람은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환자가 아프면 아플수록,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더 많은 행위를 하게 되고 또 이것이 수익으로 직결되니, 환자와 의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소신 있게 진료하는 의사도 많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검사, 더 비싼 치료가 의사의 수익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의사를 전적으로 믿기가 어렵다. 의사가 돈을 벌려고 나에게 저 검사를 하자고 하는 건지, 아니면 꼭 필요하고 내가 걱정되어서 저 검사를 하자고 하는 건지 매번 의심하게 된다. 환자들이 큰 비용을 의료비로 지출하면서도, 이 치료와 검사가 꼭 필요한 것인지, 나의 건강에 최선인지, 비용 대비 가장 합리적 결정인지 등을 확신하기 어려우니, 진료를 받을수록 신뢰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긴가민가한 경험이 쌓인다. 이렇게 의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면 의료 소송이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의료 소송이 증가할수록 환자에 대한 의사의 불신도 늘어나, 소송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더 많은 검사를 하는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의료비의 상승, 특정 전공과목 수련에 대한 젊은 의사들의 기피(주로 의료 분쟁이 많이 생기는 외과 계열이나 산부인과를 기피한다), 결국에는 더 많은 의료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것 없는 악순환의 고리다.

신뢰받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가 사실은 소박하지 않은 어마어마한 목표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나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것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이니까.

비싼 의대 학비를 알아서 마련해서 다니고, 저임금의 수련의·전공의 기간을 알아서 잘 보내고, 의원을 개원하여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이 지금의 제도이다. 의원이 망하면? 의사 각자의 책임이다. 의원이 망하면 그 의원에 다니던 환자의 기록과 진료의 연속성이 사라지게 되는데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의원이 폐업하면 진료기록이 보건소에 보존된다고는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그 의료기관이 하던 역할을 진정 책임지는 곳은 없다.

환자의 불건강이 의사·병원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시스템, 공적 역할이 기대되는 1차 의료에 공적 자원은 전혀 투입되지 않는 시스템에서 어떻게 신뢰받는 동네 주치의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이 고민의 해답을 의료협동조합에서 찾고자 했다.

만약 환자가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의사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라면(그 보상이 금전적인 보상이든 심리적인 보상이든 관계적인 보상이든 간에), 시민들이 건강할수록 의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구조라면 상황은 다르지 않을까? 그런 구조라면, 환자는 의사를 불신하기보다는 건강의 안내자로, 동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의사가 의원을 개원하기 위해 목돈을 은행에서 빌려서 허덕이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개원에 필요한 자금을 공동으로 모아서 마련하는 구조라면 어떨까? 주민들이 의원의 경영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책임지는 구조라면?

나는 의료협동조합에 꽂혔고, 페미니즘(여성주의)에 꽂혔다. 여성주의적으로 운영되는 병원을 의료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병원 만들 돈을 다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 의료기관을 원하는 사람들이 직접 돈을 모으고 운영에 참여하는 것. 그래야 내가 일하더라도, 다른 어떤 의료인과 직원들이 일하더라도 여성주의 원칙에 맞게 운영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성주의 의료기관은 여성들만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성별, 성별 정체성, 직업, 계급, 인종, 나이, 학력 등에 관계없이 차별 없이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다. 진료실 안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지식 차이로 인한 권력 차이가 생기지 않게, 환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충분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의사가 적절한 조언자이자 동료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여성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 무시당하지 않는 곳이다. 직원들도 누구나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준비 기간부터 하면 10년 이상을 해온 지금, 그래서 ‘이상적인 의료기관’이 되었느냐 하면, 그건 직접 와서 경험해보시라.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도 좋다. 아니, 완성형이 아니라서 좋다. 새로운 조합원, 직원의 들고 남과 함께 매일 달라질 수 있는 조직이 의료협동조합이니까. 의료협동조합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 좋겠다. 그래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이 뿌리 깊은 불신을 함께 해결해나갈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문득 깨달았다. 아하,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이럴 수 있겠구나. 지식의 차이는 가끔 불신을 만든다. 어떤 환자분이 우리 진료실을 찾아와서 그러셨다. 무릎이 아파 정형외과에 갔더니 이런 치료를 받으라 하고, 재활의학과에 갔더니 저런 치료를 받으라 하고, 통증의학과에 갔더니 또 다른 치료를 받으라 한다고. 의사들 말이 다 다르니 누구 말도 믿을 수 없다고 말이다. 또 다른 환자분은 토로하시길, 어떤 의사는 운동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 하고 또 다른 의사는 재활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니, 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거냐고 하셨다. 이 렇듯 병원마다 다른 치료를 권유한다며 투덜거리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내가 들어봤을 때 그것은 용어만 다를 뿐 사실은 같은 내용의 치료법이었던 적도 있다.

의학은 원래 정답이 딱 하나밖에 없는 그런 학문이 아니다. 특히 통증이나 만성 질환과 같은 문제들에는 여러 치료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의사들마다 가장 자신 있고 환자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치료 방법을 권하게 된다. 고혈압약이나 당뇨약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가. 중요한 건, 치료나 약을 의학적 근거 있게, 환자에 맞게 추천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내가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미용사에게 품었던 의심과 오해도 풀렸다.

당장 의료 시스템이 바뀌지 못하더라도, 의료 전문가와 일반인 환자 사이에 믿을 수 있는 통역자는 언제나 필요한 법이다. 나는 동네 주치의로서 때로는 통역자, 때로는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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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이 무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그 의미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의미 없는 것들의 무자비함을. 이 무자비함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은 자기 내면에 의미를 세워 자연을 해석해야만 한다.

자연을 닮아 인생의 나날로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비와 눈과 바람 같은 일들이 느닷없이 벌어지곤 했다.

"제가 여러분 나이였을 때만 해도 21세기가 되면 세끼 식사 대신에 알약처럼 생긴 캡슐을 먹고, 귀찮은 집안일은 인공지능 로봇이 해결해주는 세상에서 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바뀌지 않네요. 아직도 꼬박꼬박 세끼 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그러자면 돈을 벌어야 하고, 게다가 이제는 이렇게 마스크까지 쓰고 다녀야만 하니까요. 여러분이 살아갈 미래는 좀더 나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힘든 일이 생길 때도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오늘이 생각나면 좋겠습니다. 코로나가 유행해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그해 겨울, 섬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서울에서 온 소설가가 이런 시를 읽어주었었지, 하고 기억해준다면 제가 무척 기쁠 겁니다."

자기는 동아리 사람들처럼 까탈스럽지 않아 순문학은 어렵겠고 추리소설은 꼭 한번 쓰고 싶다고 말한 일도 생각났다.

정현이 기억하는 은정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하는 친구였다. 은정의 말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는 그저 은정이 이야기를 재밌게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섬에서는 가을부터 겨울이 끝날 때까지 두툼하고 기름진 삼치회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삼치회는 양념장에 푹 찍어 파김치와 함께 김에 싸서 먹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섬에서 맛볼 수 있는 신선한 해산물들, 예컨대 보말이나 한치 등으로 만든 음식 이야기로 이어진 대화는 이윽고 이 섬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들로 옮겨갔다. 에그타르트, 평양냉면, 치아바타 등등. 당연하겠지만 정현 앞에서 두 사람이 토로하는 섬 생활의 불편함은 음식에 국한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계획 같은 게 있잖아. 거창하게 꿈이라거나 소원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하자면 새해가 밝았을 때 수첩에다가 끼적이는 것들. 살을 빼겠다거나 달리기를 하겠다거나 가족들을 친절하게 대하겠다거나 하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하거나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맹세 같은 게 전혀 불필요한, 말 그대로 평범한 계획.

‘은정아, 인생 별거 아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가 넘어지면 그만이야. 지금은 그거 연습하는 중이야. 얼른 소주나 줘’라고 대답하더라니까요.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구요. 동양 챔피언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흉내내서 젠체하는 거였는데, 나중에 그 ‘두번째 바람’이라는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지요."

세컨드 윈드
요약: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
제2차 정상상태라고도 한다. 운동 초반에는 호흡곤란, 가슴 통증, 두통 등 고통으로 인해 운동을 중지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이 시점을 사점死點, dead point이라고 한다. 이 사점이 지나면 고통이 줄어들고 호흡이 순조로우며 운동을 계속할 의욕이 생기는데, 이 상태를 세컨드 윈드라고 한다. 숨막힘이 없어지고, 호흡이 깊어지며, 심장박동수도 안정되고, 부정맥도 없어지게 되어 힘차게 운동할 수 있게 된다. 속도가 빠를수록 일찍 나타난다. 이는 환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누구나 운동하는 중에 경험하는 것이다.
대개 운동 초기의 호흡곤란으로부터 환기가 적응되고, 운동 초기에 산소 부족으로 생성된 락트산이 혈액의 흐름 증가 등으로 인해 산화되고 땀과 소변을 통해 제거되며 호흡근이 적응하여 운동 초기의 피로에서 회복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또 한 가지는 초조·공포 등이 증가했다가 운동이 지속되는 동안 이런 현상들이 해소되므로 세컨드 윈드가 촉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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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그냥 놔두소, 내 칵 죽지 뭐"라며 내 잔소리를 미리 가로막았다. 말이 잘리자 순간적으로 발끈한 나는 답했다.
"그냥 죽을 것 같죠? 요즘은 뇌경색이 와도 바로 죽지를 않습니다. 뇌경색 상태로, 마비가 생긴 상태로도 5년, 10년을 더 살아야 해요."
순간 그의 눈동자에 스친 크나큰 두려움을 목격했다. 의사들이 검투사처럼 노리는 그 미묘한 갈등의 순간이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진료실에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협박’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다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적절한 조언을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심장마비에 걸리고 말 거야’, ‘당신 뇌경색에 걸리고 싶어?’ 하는 협박처럼 말이 나온다.

나는 협박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무관심할 수도 없다. 어디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까. 금연 매뉴얼엔 담백하게 "담배를 아직 피우시나요?"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되어 있다. 혹은 "담배를 끊고 싶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정도로도 효과가 있다고.

성폭력 피해자를 대리하여 그 자리에 나간 나에게 담배는 일종의 경고이자 무기였고, 자기방어의 수단이었다.

병원 내에서의 무수한 여성 차별을 버텨내는 데도 흡연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위 연차 전공의들에게도 보란 듯이 보여주었고, 그것은 내가 병원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길이 되었다. 나는 특히 순박하고 착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담배가 더욱 유용했다.

사실 진짜로 원한 건 흡연이 아니라 잠깐 이렇게 이완할 시간, 일에서 조금 멀어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내가 담배를 끊은 방법이기도 하다.

직장에서만 피운다는 사람,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에만 피운다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에서 하루 중 유일한 쉬는 시간이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갈 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은, 담배가 아닌 다른 것을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휴식, 이완, 생각 중지, 자기에의 집중, 혹은 탈출.

가난한 여성들이 담배 끊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면서 가족도 돌봐야 하는 그녀들이, 하루 중 스스로를 위해 쓰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담배 피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홀로 즐길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어서, 그것이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자원이어서, 끊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제는 흡연자들을 만나면 협박을 하기보다는 진짜로 욕망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내가 담배를 끊은 건, 가정의학과 전문의씩이나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금연해야 한다고 설득할 때 내 말에 힘이 실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나 끊었을 때나, 같은 것을 욕망한 셈이다. 내 말에 적당한 힘이 실리는 것,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는 것.

처음 살림의원을 만들 때 우리 조합원들은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의원을 만들고 싶었다.

협동조합의 1원칙은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이다. 가입과 탈퇴의 자유가 있음은 물론, 협동조합의 설립 목적에 동의하여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협동조합은 다르다.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라는 것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요"라고 말로만 내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들어오려고 했을 때 그 진입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물리적, 사회적 장벽을 낮추고 없애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개방성’이 유지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계단이나 문턱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까지, 진입을 망설이게 할 법한 것들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원 개원 성공의 첫 번째 열쇠는 입지라고 한다. 두 번째 열쇠는 목이고, 세 번째 열쇠는 유동인구. 유동인구가 많고 뒤에 주택가를 끼고 있으면서도, 거리에서 진료실까지 바로 휠체어 진입이 가능해야 하고 월세는 많이 비싸지 않은, 누구나 원할 만한 입지를 찾아야 했다. 그런 게 있다면 그건 유니콘이다. 상상의 동물, 상상 속의 입지.

휠체어가 없는 건물들도 사실 몇 번 후보에 올랐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은 월세가 워낙 비쌌기 때문이다. 지하철역과의 거리, 주변 주거지 분포, 지역사회에서의 교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며, 유기 농산물과 로컬 푸드, 공정무역 식품들을 판매하는 생협 매장 2층에 들어가려 했다. 그 건물은 낡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를 올릴 수 있는 리프트를 건물 외곽에 만들기로 했다.

MRI를 찍고 나니 알아서 낫는다고, 의사들끼리는 이것을 ‘MRI 치료’라고도 한다. 죽을 만큼 아팠는데 MRI 찍어보니 수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밝혀지면, 그 즉시 슬슬 덜 아프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일을 겪은 후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의원’은 ‘누구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이기도 한 거라며 자부심 넘쳐 있다가, 내가 의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면, 청소 노동자이거나 간호사이기라도 했다면, 아마도 휠체어를 타고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은 쉽게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것은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물리적인 장벽 문제가 아니다.

간호사만 해도 경미한 지체장애조차 가진 이가 별로 없다. 반면 장애를 가진 의사들은 종종 만난다. 외국 병원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는 간간이 휠체어를 타고 진료하는 의사들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모두 ‘의사’들이었다.

그러니까 아주 특정한 장애 유형에 속하는, 아주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이 ‘장애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게 아닐까.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의원, 갈 길이 멀고 멀다.

부모 자식 간에 얼굴이 닮는 건 익숙하다. 사실 얼굴이 닮으려면 골격이 닮아야 하고, 그러면 두개골의 모양이나 코뼈 내부의 구조 같은 것들도 닮아야 할 테다. 그래야 안와의 크기, 안구의 모양도 닮고, 최종적으로 바깥에서 보이는 쌍꺼풀이 있니 없니, 광대가 나왔니 아니니 하는 외모들도 다 닮는 게 아닌가.

아무튼 나는 믿을 만한 친구들에게 유언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의향을 남겼다. 내가 나중에 뇌졸중으로 연하장애(연하곤란, 삼킴곤란)가 생기면 일명 트라키오tracheostomy를 뚫으라고 얘기해놓았다. 트라키오는 기관을 절개하여 숨을 쉴 수 있는 호스를 꽂는 것을 말한다. 뇌졸중으로 인해 연하장애가 생긴 환자분들 중 음식이 기도로 자주 넘어가 흡인성 폐렴에 걸리는 분들이 트라키오를 뚫는다. 사레는 음식이 식도와 기도가 나뉘는 부근에서 기도로 넘어갈 뻔하다가 크게 기침을 하여 도로 튕겨 나오는 현상을 말하는데, 사레가 잘 걸린다는 얘기는 식도와 기도가 그만큼 기능적으로 가깝다는 뜻이다. 즉 사레가 아니었으면 그 음식은 기도로 넘어갈 판이었고, 사레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 방어였다는 것이다. 연하장애가 생긴 분들은 사레가 걸리지 않고, 그래서 음식물이 폐로 넘어가 흡인성 폐렴에 걸린다.

당연히 말하는 것보다 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말을 선택하는 친구들도 많더라.

전공의 시절 자주 사망선언을 하고 사망진단서를 썼던 것에 비하여, 동네 의사로 살아온 지난 몇 년 동안에는 죽음이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 동네 주민분들이나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에서 마주치는 정도였을까. 특히나 내가 의사로서 돌보던 분이 돌아가셔서 죽음을 준비하거나 맞이해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친한 치프 선생님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알아요? 그 선생님은 살짝 난감해하며 ‘경험이 쌓이면 자연히 알게 된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정말 그것 이외에는 잘 설명할 말이 없었다. 나도 1년차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선배님들의 지시가 있기 전부터 환자와 보호자분들을 ‘준비’하시도록 알려드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의사로서, 그 준비를 알려드리는 것을 넘어 돕는 것은 쉽지 않다. 정확하게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배우지 못했다. 더 좋아지시려면 현대 의학이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한계 없이 생각을 밀고 나가도록 훈련받았으나, 잘 돌아가시도록 하기 위해 어디까지 의료인들이 개입해야 하고 어디서부터는 순리대로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집에서 죽고 싶다’고 한 말씀이야말로 이제 와 가장 큰 바람일 텐데, 그것이나마 방향타가 되어주는 것이 어디냐 싶다.

응급의학과 과장님은 사망은 확인해줄 수 있되, 사망‘진단서’는 써주지 못한다고 설명하셨다. 지난 2일 이내에 진료받은 적이 없고 평소 앓던 질환이 없으면 진단명이 불상不詳 즉 ‘알 수 없음’이다.

이처럼 집에서 돌아가실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사망진단서이다. 사망진단서는 말 그대로 사망‘진단서’이다. 어떠한 이유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코드표에 맞춰 찾아서 넣어야 한다. 정확한 사망 원인이 되는 병명을 알아야 쓸 수 있다.

진단서이니 당연히 의사(치과 의사, 한의사 포함)만이 작성할 수 있고, 의사라 하더라도 사인을 알 수 없는 의사는 쓸 수 없다. 사망 전 입원 기간 동안 진료를 맡았던 의사,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목격한 응급실 의사, 최소한 같은 의료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어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진료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의사들이 작성할 수 있다.

아주 복잡한 얘기 같지만, 실제 의미는 간단하다. 이론적으로는 2일에 한 번씩 왕진을 나가면 나 같은 동네 의사들도 사망진단서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야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하시니, 나도 최대한, 정말 최대한 집에서 있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 중이다. 그래서 왕진을 갈 때 소견서를 챙겨 가거나 써드리고 올 때가 종종 있다. 혹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 사망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때, 사체검안서가 아닌 사망진단서를 받기 위해서는 최근까지 진료해온 의사의 소견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분이 어느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통해 췌장암 말기 진단을 언제 받았고, 암은 어디까지 전이되어 있고 최근까지 어떤 상태였으므로,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그 형식적인 진단을 위해서 굳이 부검을 받지 않으셔도 되도록 말이다. 이런 부분들이 제도적으로 좀 보완이 된다면 더 많은 분들이 소원대로 집에서 머물다 안식을 맞이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아파트에서 지난달에 아기도 태어났고, 오늘 초상도 났네. 옛날 사람들은 집이 집다우려면 사람이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해야 한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오늘에서야 여기가 진짜로 집이 된 거야. 진짜 집다운 집이 된 거야."
엄마 말씀대로라면 모든 죽음이 병원에서만 이루어지는, 죽음이 실종된 동네는 ‘진짜’ 동네가 아닐 터였다. ‘진짜’ 동네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나도 우리도 조금 더 채비가 필요하다.

기증 전 건강한지를 체크하기 위해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를 방문했을 때, 교수님은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다. 내가 700년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조혈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중 100년 치를 환자에게 기증하는 것이라고. 700년 중에 100년이라…. 남에게 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비율인 것도 아니지만, 또 기증했을 때 충분히 뿌듯함을 느낄 정도의 하찮지 않은, 딱 매력적인 숫자가 아닌가.

내 조혈모세포가 어떤 환자에게 가는지 전혀 모른다. 그저 혈액암 환자이고 나보다 몸무게가 덜 나간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이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몇 주 후면 내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기 위해 그 환자는 자신의 골수를 거의 태워 없애버릴 지경의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막판에 가서 내가 이식을 포기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꼭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통증을 묘사하는 여러 가지 말들을 알고 있다. ‘욱신거리는’, ‘찌르는’, ‘뒤틀리는’, ‘조이는’ 등 설명하는 말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는 통증들은 내가 직접 겪지 않았어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골수가 자라는 느낌은 완전히 생소해서, 묘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언어화되지 못하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분명 통증의 크기가 절대적으로 큰 것은 아닌데, 뭔가 알 수 없는, 인식 너머에 있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공여가 모두 끝나고 나니, 조혈모세포를 모으기 위해 기계에 연결되었던 내 오른팔 정맥 혈관 하나가 염증으로 사라졌다. 정맥 혈관 하나쯤이야. 혈관 하나에 한 생명을 구했으니, 좋은 거래였다.

담담한 듯 말하지만, 마치 나의 실패를, 현대 의료의 실패를 고백하는 것 같다. 죽음은 환자의 실패도 아니고 보호자의 실패도, 의사의 실패도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죽음 자체가 실패가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그 순간에 엄습해오는 실패감과 무력감은 실존이다.

사망선언을 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누구도 나를 힐난하지 않아도 그 순간 내가 나의 최선을 계속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죽음 앞에서 치료의 실패를 정리하지 못하고 자신을 의심하고 탓하고 구석에 몰아넣었던 스스로를 겨우 꺼내놓는 울음, 오래전 환자와 가족들 앞에서는 차마 보이지 못하고 우리끼리였기에 이해받을 수 있다고 여겨 간신히 꺼낸 그런 울음이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소화하지 못했던 환자들의 죽음….

그제야 나는 항상 사망선고를 할 때마다 사실은 외로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 좌절, 놀람, 분노, 고통 앞에 홀로 마주해야 할 때, 미친 듯이 외로웠던 거다.

왕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니,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돌보던 분들이 하나둘 돌아가시기 시작했다. 대부분 말기 암, 말기 신부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인 우리가 더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남겨지는 가족들을 향한 공감과 위로, 충분한 설명일 터이다. 그리고 이 일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지지일 터이다.

어쨌든 나는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텐데, 뭔가 막연하게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멋진 성인으로 자라는 데는, 어렸을 때 만난 ‘우리 동네 의사 선생님’의 존재가 중요하리란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님들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부부 상담을 하고 스님들도 자녀를 키우지 않았지만 자녀 교육과 가정생활에 대해서 조언을 하는 것처럼, 전문가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고유성이 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를 ‘젊은 여자’라고 지칭하는 것이, 내가 사회 물정과 육아를 모른다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은 아주 자~알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내 얼굴을 아는 의사’가 필요하며 ‘나를 다른 아이, 특히 형제자매와 구별해주는 의사’, ‘엄마 아빠가 아닌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의사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프고 힘들 때 온전히 나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고 내 얘기를 믿어주는 그런 존재가 아이들에게는 필요하고, 진료실은 마침 그렇게 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선생님, 아이 키워보셨어요? 아이 키워본 적 없으시죠? 아이들 한번 데리고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시죠?"
그 엄마의 피곤과 어려움은 안타까우나, 나에게는 보호자뿐 아니라 소아 환자들과도 지켜나가고 싶은 관계라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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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턴 부인은 권위적이고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기까지 했지만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편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주시했다. 작은 팔꿈치를 작은 무릎에 대고 턱을 괴고 있는 모습과, 인형옷 같은 치마의 주머니에서 평방 1, 2인치밖에 안되는 손수건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기도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속삭이며 기도를 해서였다. 게다가 때로는 전혀 중얼거리지도 않고 묵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다 내 귀에 들리는 구절은 항상 "아빠! 사랑하는 아빠!"였다. 이 아이가 강박적인 성격, 즉 편집광적 성향을 지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성향은 남자건 여자건 인간이 받는 저주 중 가장 불행한 저주일 것이다.

이런 돌발적이고 위험한 성격, 소위예민한 성격은 갑작스러운 변덕을 부리지 않는 침착한 사람들이 보기에 여러가지 신기한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그의 무릎에 기대고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대답했다. "폴리의 아빠는 잘 지내셨어요?"
그것은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재회가 아니었다. 그 점에 대해선 고마웠다. 그러나 감정이 너무 가득 채워진 광경, 넘칠 듯하면서도 컵 위로 거품이 일거나 광폭하게 넘쳐흐르지 않아서 더욱 답답하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격렬하게 무한정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라면 피곤한 구경꾼은 경멸이나 조롱을 보냄으로써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러나 의지로 제어되는 그런 종류의 감성은 아주 부담스러웠다. 거인 노예가 훌륭한 양식을 지닌 주인의 지배를 받는 모양새였다.

그는 자부심이 강하고 동시에 따뜻해 보였다.

당시에 그레이엄은 열여섯살 난, 왠지 신뢰할 수 없어 보이는 미남이었다. 내가 신뢰할 수 없어 보인다고 한 것은 그가 정말로 신의를 저버릴 것 같은 기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옅은 적갈색 곱슬머리와 균형 잡힌 유연한 몸매와 종종 매력적이면서도 미묘한(결코 나쁜 의미가 아니다) 미소를 짓는 그의 준수한 용모가 풍기는 켈트적인(쌕슨적이 아니고) 특징을 묘사하는 데 이 말이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당시 그는 정말 변덕스러운 응석받이였다!

그녀는 브레턴 부인과 나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했으나 과연 그레이엄도 같은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망설이는 듯했다.

"무슨 짓이에요, 그레이엄 씨!" 그녀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내려주세요!" 그리고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자 말했다. "내가 당신을 그런 식으로 손으로 들어올렸다면," (그 거창한 손을 올리면서) "날 어떻게 생각했겠어요? 워런이 작은 고양이를 드는 것처럼 하셨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떠났다.

"좋아, 그렇다면 가져도 돼." 그레이엄이 말했다.
그녀는 망설이는 듯했다. 갖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받아들이면 품위가 깎이는 타협이 될 것 같았다. 안돼. 그녀는 그림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정말이지 장난꾸러기에다 세상에서 가장 무례하고 못된 거짓말쟁이."

사흘째 되던 날 저녁 무렵 그녀는 지쳐서 조용히 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레이엄이 들어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가만히 안아올렸다. 그녀는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피곤한 듯이 그의 품에 안겼다. 그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그에게 머리를 기대고 곧 잠이 들었고, 그는 그녀를 위층의 침대로 데려갔다. 그다음 날 아침 그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 "그레이엄 씨는 어디에 있어요?"인 것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맺어진 우정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약해지기는커녕 반대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견고해졌다. 이 두 사람은 나이나 성별이나 하는 일 등으로 미루어볼 때 어울리지 않는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서로 할 말이 늘 많았다.

그녀는 그레이엄 안에서 자신을 잊었다.

이제 아버지가 곁에 없자 그레이엄에게 안착해 그의 감정대로 느끼고 그라는 존재 안에 존재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의 학교 친구들의 이름을 순식간에 외웠다. 그의 말만 듣고도, 즉 한번만 이야기해주면 그 주변 사람들의 성격까지 훤히 알았다. 그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잊거나 혼동하는 법이 없었다. 전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 대해 저녁 내내 그와 이야기하곤 했으며, 그들의 외모와 행동거지와 성격까지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은 흉내까지 낼 줄 알게 되었다. 그레이엄이 싫어하는 어느 괴팍한 선생에 대해서는 설명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특징을 파악해, 그를 웃기기 위해서 그 선생의 흉내를 그대로 냈다.

그 한쌍은 모든 면에서 너무나 불평등했다.

"내가 무슨 요일에 그레이엄을 가장 좋아하는지 알아요?"
"그렇게 이상한 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일주일 중에 그가 다른 엿새와 다른 날이 있는 거야?"
"물론이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일요일 날 가장 멋져요. 하루 종일 함께 있을 수 있고 아주 조용한데다 저녁이 되면아주 친절하거든요."

그레이엄은 여느 소년들과 달랐다. 그는 활동적인 것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했다. 또한 독서를 즐길 줄도 알았다. 아무렇게나 책을 골라 읽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선택하는 책들에는 어렴풋이 독특한 기호와 본능적인 취향이 드러났다. 사실 그가 읽은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법은 거의 없었지만,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긴 모습을 본 적은 있었다.

본성이 위험한데다 반밖에 길이 들지 않은 위험한 동물이 무분별하게 사랑받고 있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는 남자고 너는 여자라서 그래. 그는 열여섯살이고 넌 여섯살밖에 안됐잖아. 그는 성격이 강하고 명랑하지만 너는 안 그렇고."

"그를 아주 좋아해요?"
"조금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렇게 좋아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니? 그도 결점투성인데."
"그래요?"
"남자아이들은 다 그래."
"여자아이들보다 더요?"
"아주 그럴걸. 현인들은 어떤 사람이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다고 했어. 그리고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고 어느 누구도 숭배해서는 안된다고 했어."

"이 아이가 어떻게 이 세상을 헤치고 싸워나갈까? 책이나 내 이성에 따르면 모든 인간이 겪게 마련인 충격과 거절, 굴욕과 외로움을 이 아이가 어떻게 견딘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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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말은 내 삶의 모토와 같다. - p.51


는 말은 오늘 읽었던 책에 나온 글이다.














그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쥐트호프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 생각이 더 확장(?)되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많은 이들은 결국 포기한다. 처음 나의 연구소를 이끌기 시작했을 때 나는 깊이 생각했다. ‘무언가 중요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기회가 실제 어디에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아직 건드리지 않았지만, 인간의 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연구 영역은 어디일까?‘ 나는 이런 생각으로 오늘도 전진하고 있다. - P67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지속가능한 나이듦>의 저자 정보를 읽는데 정희원 작가가 문제 풀기를 좋아하나 교조주의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두려워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적인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나도 내가 모르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우연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는 간단한 문장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느꼈던 것인데, 토마스 쥐트호프처럼 나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토마스 쥐트호프의 운과 내 운은 차원이 다른 운이긴 하지만, 또 뭘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 걸 보면 내 자긍심(?)이 많이 단단해 진 것 같기도 하다.


토마스 쥐트호프나 "우연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말을 한 안체 뵈티우스는 아주 유명하면서도 훌륭한 과학자들이다. 그들이 유명한 상을 받고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운이나 우연과 상관없는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도 운이나 우연을 말한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는 것이다. 그들도 그런 생각을 할 줄이야.


토요일 밤에 하바수 호수의 반대편에서 런던다리도 보고 걷기도 많이 걸었던 날이라 저녁을 먹고 남편과 Food Network cable channel에서 하는 Christmas cookie challenge를 보면서 누가 떨어질 것 같고, 누가 이길 것 같다며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오전에 딸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서 "바쁜가 보군" 하고 잊고 있었는데 시간이 났는지 전화를 한 거다. 전화를 하면서 하는 말이 지금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크리스마스 연주회를 하고 있는데 휴식시간이라 짬을 내서 전화했다고 했다. 딸아이가 콰르텟에서 취미로 하는 건 알았는데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건 몰라서 남편과 나는 전화를 끊고 좀 놀라기도 하고 감동을 받았다. 더구나 1st violin이라고 했다. 남편이 더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몰랐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토마스 쥐트호프는 어려서 바이올린과 바순을 연주했다고 하고 학교보다 음악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늘 음악에 본능적으로 끌렸고 음악가가 정말 되고 싶었지만 충분한 재능이 없었다. 창조성은 오직 기술적 숙련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음악을 통해 배웠다. 이 원리는 과학에도 적용된다. 음악을 할 때 중요한 건 악기를 배우는 일이고, 이것은 엄청나게 많은 연습을 의미한다. 나는 과학에서 물질을 배워야 하고, 엄청나게 많이 읽고, 연구하고, 실험해야 한다. - P64


기술과 숙련으로 음악이 완성된다고 하면서 과학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는 사람이 운이 좋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내가 그냥 이해하고 있었다. 토마스 쥐트호프나 다른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가까이는 내 딸아이를 보면서. 


딸아이 역시 어느 정도 음악을 하긴 했지만, 음악가로 성공할 충분한 재능은 없었다. 나는 그것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딸아이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운이란 것, 우연이라는 것이 완성되는 것은 기술과 숙련, 그러니까 엄청나게 많은 노력, 피를 흘리진 않지만 피와 땀을 흘리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이유가 내가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DNP가 되든 되지 않든. 


우리 인간은 정말로 자신을 제대로 잘 평가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문제에서 타고난 무능력자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소통을 하면서 동료와 가족들의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 P66


이 책은 우연히 내게 다가왔지만, 내가 운이 좋아서 받게 되었다. Psyche 님이 마침 한국에 계셨는데 인정이 많고 배려심이 많은 프님이 내가 이 책을 읽고 싶다는 것을 아시고, 더구나 Kira Talent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찡찡 거리는 것을 읽으시고 선뜻 이 책을 선물해 주셨다. 이런 속 깊은 분, 나에 대한 믿음이 있으신 분들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진다. Kira Talent에 합격(?)하면 모두 프님 덕분이다! 그래서 내가 DNP가 되면 내가 SOP에 쓴 대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 여전히 이런 희망이 존재하는 인생이라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오늘은 알라딘에 들어와서 이런 책들의 전자책 출판 알림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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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6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꼭 예술로 대성하지 않아도 음악이든 춤이든 무엇이든 평생 어떤식으로든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이 훨씬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해요. 책도 우리의 삶을 이렇게 풍요롭게 해주고 있잖아요. ^^
우연 역시도 완전히 100% 우연이 어디에 있겠어요. 우리의 노력과 시간이 만나는 곳이 우연이 아닐까 그런 생각. ^^

라로 2022-12-20 12:15   좋아요 0 | URL
제가 이 댓글을 어찌 못 보고 지나쳤을까요??^^;; 맞아요!! 저도 책 덕을 많이 보는 사람 중에 하나에요.^^;; ˝우연 역시도 완전히 100% 우연이 어디에 있겠어요.˝ 이 말 멋져요. 저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우연은 100%라고 생각했는데,,, 우와 새로운 발견이에요!!^^ 우리의 노력과 시간이 만나는 곳이 어디일지 모르지만 분명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죠?^^

psyche 2022-12-19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양은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 허마이니처럼 타임 터너가 있는건가요!! 정말 대단해요. 그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심포니 오케스트라까지!!!!! 라로님과 H을 보면서 매번 감탄하고 존경하고 반성합니다.

라로 2022-12-20 12:17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랐어요,, 펀드레이져까지 했더라구요. 그거 하느라 바느질을 하루 종일 했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그 아이가 시간 쓰는 것을 배우고 싶어요. 저는 아무것도 아닌데 늘 좋게 봐주시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