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엄중한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실은 37명의 사제가 차마 신도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어 잠적하여 일본에 남아 있었다. 페레이라도 이들 잠복 사제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우네메는 결국 말로써는 신부들의 결심을 바꾸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다른 수단을 사용할 작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운젠(雲仙) 지옥의 열탕으로 그들을 고문하는 일이었습니다.

여자들이 오랫동안 종교를 버릴 것을 강요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고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일곱 명은 각각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연못이 있는 기슭으로 한 사람씩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온천의 비말(飛沫)을 바라보면서, 전율하는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맛보기 전에 그리스도교를 버리도록 권유받았습니다.

안토니오 신부와 프란체스코와 베아트리체는 다른 사람들보다 장시간에 걸쳐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특히 베아트리체의 경우는 더욱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수많은 고문과 여러 권고에도 남자들 못지않은 용기를 보였기 때문에 열탕의 고통 이외에 다른 고문도 받았습니다.

그녀는 관리가 아무리 광포해질지라도 겁에 질리거나 기세를 꺾지 않았습니다.

폭군이 미리 계획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모두 굳은 신앙심으로 버티어 폭군이 오히려 당하게 된 싸움의 혁혁한 결말입니다."

당시 유럽인의 눈으로 보면 세계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은 나라에서 페레이라가 배교를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 개인의 좌절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신앙과 사상 면에서 굴욕적인 패배처럼 생각되었다.

자신들이 오랜 여행을 계속한 후에 맞이하게 될 운명은 여행 이상으로 가혹한 시련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은 처음부터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맑고 푸른 눈과 온화하고 부드러운 빛을 얼굴에 가득 담고 있던 페레이라 신부의 인자한 모습이 일본인들의 잔인한 고문으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토록 인자한 신부의 얼굴 위에 굴욕으로 일그러진 또 다른 표정을 상상한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계획이란 얼마나 부서지기 쉽고 덧없는 것일까요?

이들 중국인 선원들은 마치 몇 달이나 식사를 하지 못한 병자처럼 몹시 야위어 있습니다만, 그 철사 같은 손에서 나오는 힘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들은 그 가느다란 팔로 어떤 무거운 식량 상자라도 거뜬히 운반합니다. 그것은 마치 철로 만든 부젓가락을 연상시킵니다. 이제는 항해에 필요한 적당한 바람을 기다릴 뿐입니다.

지금 저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에게 상당히 교활한 성격이 있으며 그 교활함이 이 남자의 연약한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그 태도는 그리스도교적인 인내의 덕과는 너무 거리가 먼, 바로 겁쟁이의 나약함과 비겁함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썼다고 해서 저희의 사기가 약해져 있다고는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오히려 저는 기치지로와 같은 사람에게 제 미래를 위탁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왠지 웃음이 나옵니다. 생각하면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운명을 믿을 수 없는 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경우에는 믿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런 방법이 없으니 기치지로를 믿기로 하겠습니다.

남자가 그의 연인의 얼굴에 끌리듯이 저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언제나 마음이 끌립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은 모두 선한 일. 그가 머지않아 이루어야 할 그 사명을, 하나님은 은밀히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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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9-04 0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밑줄 긋기 하시는 거 사진찍어서 글자 옮기는 북플 기능 사용하시나요?
어쩜 부지런히 잘 정리하시는지 본받고 싶어요.

전 그냥 읽고 .... 말아서
지나고 나서 후회 되더라고요

라로 2022-09-04 15:47   좋아요 0 | URL
종이책인 경우는 사진찍어서 사용하는데 저도 좀 귀찮아요. 시간 투자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종이책은 잘 안 하고 있고요, 전자책은 밑줄 긋고 올리는 것이 편하긴 한데 이건 또 어떤 책은 되고 어떤 책은 안 되는 단점이 있어요.
만두님은 그냥 읽고 말았다고 하시지만 안 믿어집니다. 😅 저는 엉터리에요. 늘 좋게 봐주시니 제가 좀 부끄러워요! 만두에 찐심 라로.

순오기 2022-09-04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침묵은 나에게도 큰 영향을 준 책이었어요~ 기억의 자동재생 고마워요!^^

라로 2022-09-04 15:49   좋아요 0 | URL
언니 방기방가요!!! 이 책 북플에서 많은 분들이 읽고 별 5을 주기에 넘 궁금해서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좋아요!! 언니가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기대됩니다. 늘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영향을 줄 책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

다락방 2022-09-05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에 대해서 라로 님의 완독후 감상이 궁금합니다!!

라로 2022-09-08 16:52   좋아요 0 | URL
벌써 너무 좋아요!!! 한 절반 읽었는데 말이죠!!^^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읽는데 이런 글이 나온다.














 여기서 "울집도 한 사람 있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황현산 선생의 딸인 황은후 씨에 대한 언급인 것 같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608172029466993


이 글 읽고 나도 그랬다. "울집도 한 사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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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모범생으로 살아왔고 늘 일이 잘 풀렸던 사람들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런저런 상처가 많고, 그 기억 때문에 자주 괴로워한다. 어리석었던 순간을 덜 어리석은 순간에 바라보면 다 상처일 수밖에.

영어로 앰퍼샌드ampersand라고 부르는 &는 라틴어 et를 한 글자로 쓴 기호다. 이게 한국에 들어와 온갖 잡일을 다한다. 어제는 ‘울&산 포&항’이라고 쓴 횟집 간판을 보았다.

‘울&산 포&항’은 필시 ‘울하고도 산, 포하고도 항’이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두 눈을 수술하고 나니 맞는 안경이 없다. 먼 데는 보이는데 가까운 데를 보지 못한다. 임시로 돋보기 하나를 사서 책은 읽고 있지만 모니터를 보기 어렵다. 새 안경은 한 달 후에나 맞춰야 한단다. 그 한 달이 참 멀다.

누가 글 잘 쓰는 비결을 물었다. 무슨 비결 같은 것이 있겠는가. 비결이 있다면 일단 빨리 쓰는 것이다. 갈증은 마시면서 가시고 배고픔은 먹으면서 찾아온다는 말이 있는데, 글은 쓰면서 잘 써진다. 일단 쓰는 것이 비결이다.

새벽에 문인수 시집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를 열심히 읽었다. "명랑한 이야기는 왜 시가 잘되지 않는가" 중얼거리며 묶었다는데, 세상의 허망함에 바치는 명랑한 언어가 참 훌륭하다. ‘왜 사냐건 웃지요’의 ‘웃지요’가 최고의 수준으로 표현된 시집.

시민행성과 함께하는 기욤 아폴리네르 강의를 8월 25일에 시작한다. 그런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아폴리네르가 태어난 날이다.

망디아르그는 우리 세대에 일반 독자들보다는 문인들이 좋아했다. 잘된 현실 묘사가 현실을 환상처럼 보이게 하고, 가벼워진 현실이 끝내 죽음으로 이어지고, 거기에 늘 섹스가 개입하고…… 이 탐미주의자가 다시 주목을 받을 수도 있겠다.

아침마다 카톡으로 좋은 말과 좋은 그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늘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그것도 폭력일 때가 많다.

왜 모든 서사가 한국식으로 번안하면 납작해질까. 심지어는 ‘의역’만 해도 납작해진다.

오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가 태어난 날이다. 그는 이 탄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오 처녀좌의 첫 바람이여"라는 그의 시구가 있다. 나는 오늘 시민행성이 주관하는 기욤 아폴리네르

자기를 객관적인 자리에 놓고 본다는 것은 남들의 시선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다. 가능한 한 자기 자신을 합리적이고 윤리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만들어 그 시선으로 본다는 뜻이다.

시인, 소설가들 가운데는 강의료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김영란법으로 강의료가 3분의 1로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5-10-10을 주장하는 의원들도 이 강의료에 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백내장 수술 후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있다. 돋보기를 벗어버리고 새 안경을 쓰니, 어디 놓아두었다가 잃어버렸던 정신을 다시 찾은 것만 같다.

내 딸 친구 하나도 히피이자 국제환경운동가로 살고 있다. 보기 좋고 저런 삶도 있구나 싶다. 그런데 나이들면 어떻게 하지 걱정도 되는데, 그건 내가 늙었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 살아야 할 사람들을 위한 책. 글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그걸로 살아야 할 사람들에겐 실제적인 도움이 되겠다. 울집도 한 사람 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모든 게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는 도시의 삶에서는 이게 쉽지 않다.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그게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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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색채를 탐색한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가능한 한 자주 숲과 산울타리에서 밝은색을 접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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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9-04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표지가 너무 예뻐서 찜하고 있었는데, 어떤가요?

라로 2022-09-04 15:52   좋아요 0 | URL
이 책 저도 시작이에요. 이제 11월 읽기 시작했는데 저는 원래 이런 책 좋아해요. 자연에 대해 혼자 주절거리면서 그림도 그리고 하는 거요. 저는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데요 페이지 수를 보니까 그리 두껍지 않은 것 같아요. 종이책으로 살 걸,,, 좀 후회가 되는 책이에요. 그런데 제가 사는 곳과 분위기가 너무 다은 자연이라 공감은 잘 안 되고요. 동부에 살았다면 달랐을 것 같고요. ㅎㅎㅎ
 

내가 가을의 속임수를 증오한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가을은 종종 올해는 겨울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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