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금 황현산 선생님의 책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를 다 읽었다. 트위터에 올린 글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인데 마지막 부분에서 울컥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책 마무리 하신 것!

2. 붉은돼지 님을 위해 맥주 라벨을 벗기려다 망쳤다. 이 맥주의 이름은 Kinshachi 맥주라는 것인데 지난번에 샀던 것보다 더 비싼 $9.99(마트에서 산 가격)인데 병도 맘에 들고 디자인도 고급스럽고 그래서 라벨을 조심해서 벗기는데 도저히 내 수준으로는 벗길 수 없어서 포기. 옛날 맥주 라벨은 풀로 붙여서 떼기 쉬웠을 것 같은데 요즘은 아주 접착력이 좋은 것으로 붙이는지 떨어지지 않더라. 붉은돼지님 아무래도 라벨 보내드린다고 한 건 못할 것 같아요. 제 기술과 인내심이 부족해서요. ㅠㅠ

3. <야생의 위로>를 읽고 있는데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이나 사진이 참 이쁘다. 작가는 시간도 많고, 정리도 질하고, 아주 깔끔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고독한 사람이라 혼자 노는데 도가 트거나? 나는 정리가 잘 안 되는 사람이라 이런 사람들 이야기만 읽어도 좀 주눅이 드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 방은 남편이 정리해서 이제 대충 괜찮지만, 갈수록 책과 다른 잡동사니로 쌓여가는 내 사무실 책상과 서랍장들은 어쩐담. 내 차도 트렁크와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온갖 것들이 눈에 두드러지고 있다. 하아~~~~ 정리맨 남편이 해주면 수리수리마수리 뚝딱 정리가 되겠지만 나도 양심이 있지. ㅠㅠ 스페인어 공부고 피아노 연습이고 다 떠나서 일단 주변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ㅠㅠ

4. 헤어질 결심 영화는 못봤지만, 각본 읽기 시작한다.

5. <침묵> 다 읽어간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영화 찾아서 봐야지. 그런데 처참할 것 같아서 어떻게 보나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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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람들에게 함부로 자폐니 뭐니 이름을 붙이고 자기 멋대로 분류하는 것도 폭력이다. 사람은 사람마다 그 깊이가 있고 그것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바람은 먼 숲으로 지나가고
꽃들은 이울어 다시 피지 않으니
이제는 그대와 나 같이 살 날이 없네.
?18세기 소설 속에 이런 시구가 있다.

하룻밤 자려고 만리장성 쌓는다는 잘 알려진 말. 많은 사람의 인생이 다 그런 것 같다. 그 하룻밤이 거기 이르기까지의 삶을 지켜주기도. 오늘을 즐기라 외치는 사람들조차 그렇다. 저 하룻밤이 오늘의 모델이다. 그 밤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지만.

트윗에 쌀 알레르기 있는 아이에게 강제로 밥 먹여서 아이 병원에 가게 만든 아버지 이야기가 있다. 남자다운 것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고 믿는 아버지들이 아직도 많다.

새희망씨앗의 전화를 나도 받은 적이 있다. 자선 단체를 내걸고 전화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개 사기꾼들이지만 불우 아동 등을 내세우고 있어 전화를 끊기 어렵다. 이럴 때는 ‘나는 이런 전화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기를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다.

닭을 친환경적으로 기르면 계란값은 1000원 이상이 된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요구하는 수준이 높은데, 그만큼의 비용은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이 망해서 우리에게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 설사 좋을 일이 있다 한들 남이 망하기를 바란다는 게 옳은 일인가.

음악인 조동진씨가 별세했다. 조동진씨의 가사에는 한 편도 허투루 쓴 것이 없다. 그의 시에는 진정한 의미의 ‘전’이 있다. 감정의 반전은 스토리의 반전보다 더 심각한 어떤 것이 있음을 그 가사가 보여준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말했다, 설명했다, 주장했다…… 같은 말을 언어학에서 전달사라고 한다. 요즘에 이런 전달사를 아무렇게나 입에 씹히는 대로 붙이는 기사들이 많다. 글쓰기의 능력이 없어서도 그렇고 마음을 비워놓지 못해서도 그렇다.

개나 고양이의 죽음이 다른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개나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작별 인사 같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욕탕에서 일하는 허리 굽은 노인이 거울을 깨끗이 닦아놓고 흐뭇해서 바라본다. "주인집 빨래를 해도 내 발꿈치 희어지는 재미로 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어디서나 자기를 실현할 기회를 찾지만 존중되어야 할 그 열망이 자주 착취되기도 한다.

못 써도 고결하고 아름다운 글씨가 있고 잘 쓴 것 같은데도 무언가 마뜩지 않은 글씨가 있다. 나는 내 글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글씨가 달라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컴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

스트레스 없는 것이 세상을 잘 사는 것인데.

살아 있는 것 같은 책들이 자주 출판된다.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 저자 이주영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낯선 곳에서 자기를 확인하려는 용기가 아마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내 고향 말에 ‘새수가리 없다’는 표현이 있다. 어떻게 된 말인지 늘 궁금했다. 아마도 새수가리는 소갈머리를 뜻할 것이다. 그러니 새수가리 없다는 ‘속없다’ 곧 ‘생각에 줏대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별게 다 생각나서.

예술이 지향하는 이상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우면서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 것은 이 쓸모없다는 것은 ‘지금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의 쓸모를 찾아내는 것이 문화의 발전이기도 하다.

아내는 홈 쇼핑에서 자기가 이미 구매한 상품의 광고를 보기도 한다. 신상품을 구입한 직후 매우 행복하지만 구입하기 직전만큼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준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미래에 없어질 직업에 첫번째로 번역가를 꼽았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번역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하겠지만, 영혼 없는 번역들이 이런 생각을 부추기기도 했을 것이다.

뜬금없이 장기판과 장기말을 샀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플라스틱이 아닌 나무로 깎은 장기말을 본 것이다. 장기를 두게 될 시간은 끝내 오지 않겠지만.

한국 방송에는 코미디언들이 잠시 군인이 되어 온갖 바보 노릇을 다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한국 군대 그 자체가 코미디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말도로르의 노래』를 출판하기 위한 모든 일을 다 끝냈다. 『현대시학』에 연재하다가 중단했던 번역을 끝냈고, 그 번역을 수정했으며, 책 뒤에 붙여야 할 해설도 썼다. 이 책의 쓸 만한 한국어 번역본이 이제야 나온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이후 제가 쓴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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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해변이 그리워진 나는 살을 에는 추위와 호우 예보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아 에식스Essex로 두 번째 순례에 나선다.

나는 살짝 어지러움을 느낀다. 템스강이 50만 년 넘게 이곳을 흘렀고, 자갈 지층이 완성되었을 때 인간은 겨우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하려는 참이었다니.

이곳에서는 흔해서 찾기 쉬운 데다 붉은 바위층에 묻혀 살짝 녹슨 빛깔이라는 점만 빼면 그렇게 오래전에 쓸려온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엄연히 수백만 년 전의 화석들이다. 나는 오늘 두 번째로 아득한 과거의 흔적을 들여다보며 경이에 젖는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오늘 해변에서 찾은 것들을 지금껏 모은 조개껍질과 화석 옆에 펼쳐 놓는다. 채집한 식물과 화석을 늘어놓고 살펴볼 때 내 마음은 그림을 그리거나 빵을 반죽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내면의 갈등이 누그러지고 평온이 찾아든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발견한 것들을 가지런히 늘어놓는 소위 ‘놀링knolling’이라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은근한 도취감을 준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몇 달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시기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머릿속이 온통 오락가락하고 활력은 빠져나가 버렸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분비 검사를 해보진 않았지만 이런 변화는 분명 12월에서 2월까지 뇌 내에 일어나는 화학작용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이런 상태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광경에 반응하는 능력조차 사라지는 것 같다.

내가 봄과 여름에 유난히 생기 있는 것은 눈에 들어오는 강한 햇살뿐만 아니라 앵초, 체꽃, 민들레, 벚꽃, 양귀비와 진초록빛 잎들이 이루는 현란한 풍경 때문이다.

햇빛이 약해지면 꽃은 시들고 풍경은 색채를 잃어버린다. 내 시냅스는 기력을 앗아가는 이중의 타격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점점 고착되어 시무룩한 삿갓조개처럼 자리에 들러붙는 게 느껴진다.

나도 지난 8월에 여기서 산사나무 열매 수백 개를 따다가 진에 넣고 과일주를 만들었다. 장미과에 속하는 산사나무 열매로 담근 술은 터키시 딜라이트?와 아찔한 여름의 향내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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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계절이면 내가 찾아다니는 이런저런 사소한 광경이 있다. 미세한 식물학적 지표들, 결국에는 봄이 오고 말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주는 기분 좋은 신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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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Olika 만년필, 써보니까 괜찮다. 2,500원짜리 만년필이 Lamy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

알고 보니 값싸고 성능 좋은, 거의 일회용에 가까운 만년필들이 많구나. 프레피, 파카 벡터도 써봐야겠다. 검은색이나 청색 잉크 만년필과 함께 붉은색 잉크 만년필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공부에 별 뜻이 없다가 외국에 나가 어떻게 박사학위를 얻어온 사람이 있다. 조심해야 할 사람이지만 특히 그 번역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내가 최근에 읽은 번역은 시종 한 문장도 맞지 않았다. 번역 전문가의 검증을 받는 게 좋으련만,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기 번역이 문제투성이라는 것을 죽을 때까지 모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가 교수라도 되는 날에는 누가 그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변증법과 관련된 용어 가운데 하나인 ‘지양(止揚)’을 ‘벗어남’ ‘삼감’으로 순화했다는 것을 오늘 알았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느와르’는 프랑스어 noir를 발음 그대로 적은 것이다. 그런데 문교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누아르’라고 적어야 맞다. 그런데 왜 유독 이 단어만은 ‘느와르’라고 쓰는지 모르겠다.

비판에 비평 개념은 없고 비난 개념만 있으면 그것도 지옥이다.

누구의 책을 비판하려면 최소한 그 책을 읽어라. 신문 기사를 자동인형처럼 반복하며 그게 자기 의견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인간은 복잡하고 섬세해서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늘 타자화한다.

가을 소금, 여름 소금은 우리 어머니도 구분하셨다. 초여름의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으로 쳤다.

구절판은 대갓집에서 아이들에게 젓가락질 연습을 시키기 위한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그 집에서 들었다.

우리도 영미권처럼 방학중엔 교사들에게 월급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칼럼이 있다. 방학에 월급을 주지 않는 나라는 다른 기간에 월급을 많이 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군. 연봉 개념이 익숙하지 않아선가. 이 나라 지식인들은 다른 직군에 대한 질투가 심하다.

원고 한 꼭지 마감했다. 한 번 읽고 보내야 하는데 읽기 싫다. 자고 나서 내일 보내기로 한다. 읽지 않아도 하루저녁을 묵혀둔다는 게 작은 위안은 된다.

나는 가끔 山林處士 선생의 트윗을 읽으면서 이거 고종석 선생 트윗 아닌가 의심할 때가 많다. 그 박식함하며, 그 문장의 또렷함하며, 그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증오하며.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말들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말들의 가짓수가 많기도 하다. 아이를 그렇게 먹물 단지 조심하듯 조심해서만 키우는 게 아이에게 꼭 이로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도 걸러서 들을 줄 안다. 아이의 판단력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연한 인기를 권력으로 바꾸고 싶어하면 대개는 좋지 않게 끝나더군.

우리 선생님은 『악의 꽃』을 번역하다 돌아가셨다. 시 한 편에 100페이지 200페이지의 자료를 모으는 식으로 번역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루에 5편도 번역한다. 생각을 더 해도 덜 해도 결과는 같으니까. 일종의 포기.

옛날에는 전자 기기 사면 매뉴얼 다 읽고 그대로 했다. 그후론 매뉴얼 안 읽고 대충 했다. 요즘은 읽어도 모르겠다.

칠레에서 여친을 때리고 눈을 도려낸 범인을 대법원이 23년형에서 18년형으로 감형하면서 살해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살해 의도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법이란 게 그렇다. 잔인성에 대한 죄도 있어야 한다. 인간성에 대한 모욕이니까.

(요즘은 농담에도 시비 거는 사람이 많아서.)

동네에 벽화를 그리는 것은 남의 생활 공간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리는 사람은 자기에게 그럴 능력과 권력이 있는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를 읽을 사람은 공짜로 읽을 생각 하지 말고 시집을 사서 읽어라.

요즘 가나다라……의 순서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종이 사전은 사용할 수가 없겠다. 심각한 문제 아닌가.

한국은 연구자 시장이 좁다. 대학이 대학원생들을 1/3도 수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젊은 시절 미국에서 이력을 쌓는다. 쓸 만한 논문은 거기서 다 쓰고 지쳐서 한국에 온다.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은 연구자들을 기르는 곳이자 걸러내는 곳이다.

인문계, 그중에서 문사철 교수는 미국에서도 시장이 좁다. 문사철 대학원생들은 그걸 뻔히 알면서도 거의 열정만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걸 또 착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왕좌의 게임〉을 복습하다 새삼 느낀 바지만 인간의 죄 중 비열함이 가장 큰 죄 같다. 그건 인간 전체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것이고 인간 자체를 모욕한 것이다. 비록 허위라 하더라도 용기와 신의에 열광하는 것은 인간이면 그렇게 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국 문학과 외국 문학의 관계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관계와 같다. 외국 문학이 보편성을 확보하는 것은 언어 국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현장 작품과 고전과의 관계도 마찬가진데 이제는 어떤 나라 문학도 자국 문학만으로 이 관계가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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