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잔자책만 읽다가 우리방으로 가는 복도(?) 옆의 책장에 손가락을 올려서 책을 고으는 듯한 동작으로 수많은(?) 책등을 검지로 지나가다가 최승자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에서 멈추고 책을 뽑아 침대로 왔다. 첫 장을 펼치는데 첫 문단부터 먹먹해서 계속 읽기 힘드네. 누군가는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음의 근처를 응시하는 눈을 갖게 되다니… 나같은 게 어떻게 이 책을 계속 읽어 나려 갈 수 있을까.

쓸쓸함이 다리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다. 스멀스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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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10-05 0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찬바람 부니 더 쓸쓸해요. 햇빛도 옅어지고..

라로 2022-10-05 16:35   좋아요 1 | URL
그죠!! 여기도 그런데 낮엔 더워요,, 뭔 조화속인지..ㅠㅠ

blanca 2022-10-05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시인의 문장을 다르네요. 제가 새벽에 느끼는 막연한 쓸쓸함이 뭔지 알겠어요.

라로 2022-10-05 16:36   좋아요 1 | URL
그죠!! 젊어서, 20 대에 저런 생각을 하다니... 뒷 장을 읽으니 더 숙연해 지네요..

mini74 2022-10-05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있어요. 표지가 정말 스산하니 가을느낌이 확 납니다. ~

라로 2022-10-05 16:37   좋아요 1 | URL
이 책 읽으셨나요?? 두껍진 않은데 꼭꼭 씹어서 읽게 될 것 같아요.

새파랑 2022-10-05 15: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문장만 봐도 쓸쓸합니다 ㅜㅜ 가을이 맞나 봅니다 ㅋ

라로 2022-10-05 16:37   좋아요 2 | URL
가을 맞죠!! 손이 가는 책이 가을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희망으로 2022-10-05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 가기전에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책 사서 딸 방에 뒀더니 까먹었어요. 오전엔 어두운 구름이 낮게 깔려 이 책의 분위기와 느낌이 비슷했어요.

라로 2022-10-06 14:17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샀다는 걸 잊었다가 발견했는데 역시 시인의 고뇌는 다르네요. 저 빨리 읽지 못하고 있어요,, 같이 읽으시면 희망으로님이 훨 빨리 끝마치실 것 같아요!!^^

psyche 2022-10-07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그잔에 혹해서 이 책 사두고 펴보지도 않았네요. ㅜㅜ

라로 2022-10-08 14:5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저는 머그잔 없이 책만 샀어요!!!!! 이 책 너무 잘 산 것 같아욥!! 프님도 이참에 읽으시길!!😍😍😍
 

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 깨고 나면 달콤했던 예전의 쓸쓸함이 아니고 쓸쓸함은 이제 내 머릿골속에서 중력을 갖는다. 쓸쓸함이 뿌리를 내리고 인생의 뒤켠 죽음의 근처를 응시하는 눈을 갖는다. 어떤 거대한 힘에의해 보이지도 않게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는 기분이 들기때문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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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 마음으로 프님이 내게 풋고추를 아침에 따가지고 나를 만나는 날 가져오셨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과 그 고추로 밥을 먹으면서 정말 어쩜 이렇게 부드러울까! 프님의 마음처럼 부드럽고 순하고 이뻤다. 고추가 한입 베어 물기 딱 좋을 정도로 날씬하고 적당히 길었다. 다음에 깻잎이 잘 되면 씨를 받아주시겠노라 하셨는데 제발 잘 되기를!!! 



2. 지난번 동네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남편이 그림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날 일하느라 참석하지 못하고 시어머니는 참석하셔서 그림을 배워서 그리셨다. 선생이 제법 괜찮았나 시엄니 그림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날 남편이 참석한 사람들에게 낸 퀴즈 중 하나가 바람돌이님께서 맞추신 모나리자도 있고 다른 퀴즈도 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나는 역시 못 맞췄고, 이 문제를 맞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하지만, 미술작품에 대해 아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미술은 거의 종합예술이다. 특히 현대 설치미술은 음악을 첨가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가 내겐 종합예술로 느껴진다. 거두절미하고 남편이 낸 퀴즈의 답은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제목의 작품이다.


1991년의 작품이다. 

사진 출처: Houston Chronicle

이 작품의 작가인 Damien Hirst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사진 출처: The Times

여러 기사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Damien Hirst의 작품


데미언 허스트의 이 작품은 처음 Saachi 미술관에서 전시가 되었고 그 이후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영국의 Tate 미술관에서 전시가 되었다고 하는데 2004년에 스티브 코헨이라는 사람에게 팔렸는데 8밀리언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팔렸을 거라고 한다. 어쨌든 이 작품으로 허스트는 터너상 (Turner Prize) 후보로 지목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상은 정작 다른 사람이 수상했다고.


그럼 여기서 남편이 낸 문제는 바로 "피카소나 고흐의 작품을 누르고 새로운 경매 기록을 세운 작품은?"이라고 한다. 그 당시 (나는 기억 안 나지만) 그것이 굉장한 이슈였다고. 젊은 허스트 (그 당시 40살도 안 되었다고..)가 고흐나 피카소 보다 더 많은 가격으로 작품이 경매가 되었다고 하니까. 하지만 이 작품이 이렇게 높은 가격에 경매가 된 이후에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단 동물 애호가들에게서 허스트는 공격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이게 무슨 예술작품이냐 등등. 시각이 변했다는 것을 이 작품이 잘 전달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 미술의 난해함을 떠나서. 


방부제에 담겨있는 상어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인간인 우리는 상어를 볼 수 있지만 만지진 못한다. 삶과 죽음은 유리 탱크 안에 있는 저 방부제 속의 상어처럼 침묵 속에 떠있는 것 같다, 움켜잡을 수 없이. 


근데 내가 이 얘길 왜 하고 있지??ㅎㅎㅎㅎ


3. 어제 남편과 함께 느긋하게 <Forrest Gump>를 다시 봤다. 너무 오랜만에 봤는데도 다 기억이 나더라. 삶에 대해 이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허구인 줄 알면서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Stupid is as stupid does."는 요즘처럼 내가 바보같이 느껴질 때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런 대사뿐 아니라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영화. 전반부에서 눈물이 흐르고 후반부에서 또 눈물이 흘렀다. 


검프에게 달리기였던 것이 나에겐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에겐 그런 것이 있기나 한가?


4. 바쁘다는 핑계로 음식을 잘 안 만들어 먹게 되었는데 요즘은 자꾸 가족과 나를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 사는 게 특별하다면 맛있는 음식이 함께 할 때아닐까?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도.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사람은 살아 있음을 긍정하는 사람"이라는 오은 시인의 말에 고개가 주억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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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0-04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인데도 풋고추의 부드럽고 여린 질감이 느껴져요. 깻잎사진도 올라오면 좋겠네요. 상어가 엄청 사실적이라 생각했는데, 방부처리한 작품이었군요.

라로 2022-10-05 16:38   좋아요 1 | URL
여린 질감이라는 표현 좋아요!! 그 생각이 왜 안 나는지,,ㅋㅋ
아주 유명한 작품이에요,, 방부처리액에 담겨진 상어죠,, 엄밀히 말하면..

책읽는나무 2022-10-04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농사 잘 지으셨어요..프시케님^^
껍질이 야들야들~~ 해 보입니다.
오호~ 오이도 따서 드셨다고 하시고, 농사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나중에 깻잎 농사도 꼭 성공하셨음 좋겠어요. 그럼 그 씨를 받아 라로님 남편 분이 신나서 깻잎 농사를!!^^
고추를 싸가지고 와서 라로님께서 받으셨을 땐 꼭 친정언니가 챙겨주는 듯한 느낌이 드셨을 것 같아요.ㅋㅋ 보기 좋군요^^
시어머님 솜씨도?? 남편분이 어머님의 그림 재주를 물려 받으신 건 아니신지???
퀴즈는 미술 문외한인 저에겐 좀 어렵네요??
미니님 어디 가셨나요?? 아님 그레이스님도 맞추시려나??

라로 2022-10-05 16:42   좋아요 1 | URL
야들야들,,, 왜 이 단어도 생각이 안 났는지,,,^^;;;
프님 요즘 농사에 흠뻑 빠지신 것 같아요.
저도 예전 엔군이 한국 학교에서 텃밭 받았을 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때처럼 하면 일 년 내내 야채 살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게을러서...
저희 집은 씨를 받아서 농사하는 건 그런데 저희 집 개가 어떨지..
더구나 동네에 토끼들이,,ㅠ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어요!!! 넘 좋았어요!!! 앞으로 계속 생각 날 것 같은 야들야들한 고추!!ㅎㅎㅎ
시어머니는 솜씨는 모르겠어요,,ㅎㅎㅎ
남편은 아마도 돌아가신 시할머니에게 받은 것 같아요,, 예술에 재능 있으셨다고..
집에 그분이 그리신 풍경화가 액자에 담겨 있어요.
퀴즈는 저 역시 몰랐어요.ㅎㅎㅎ

바람돌이 2022-10-04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풋고추의 싱싱삼과 프시케님 마음이 사진으로도 전해집니다. 마음 따뜻해지는 그런 맛이었을듯요.
가족분들이 모두 그림에 일가견이 있으신것 같은데 그게 시어머님 유전자인건가요? 색채감각이 너무 좋으세요. 그날 배워서 그린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데미안 허스트의 그림은 진짜 비싸게 팔리는데 저는 줘도 안가집니다. 싫어요 ㅠ.ㅠ

라로 2022-10-05 16:45   좋아요 0 | URL
정말 맛있었어요!!! 근데 다 먹었어요,,ㅎㅎㅎㅎㅎㅎ
신선하고,,, 매운 것도 있는데 아주 적당히 매운!!
시어머님은 그림과 관계가 없으신 것 같아요,,
시할머니가 예술가였던 것 같은데 일찍 돌아가셔서..
그래도 그분이 남겨주신 100년이 넘은 바이올린과 풍경화가 존재해요.
딸아이가 바이올린은 물려받았고
그림은 집안에..

저 역시 줘도 안 가져요...무서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psyche 2022-10-05 0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라로님이 맛있게 드셨다니 넘 좋아요. 이번에 고추 농사가 잘 되었거든요. 근처 살았다면 수시로 드렸을텐데 아쉬워요. ㅜㅜ
남편분의 재능은 유전자에 있는 걸까요? 시어머니도 잘 그리셨네요. 해든이도 잘 그리던데.
저는 저 상어를 보면서 저런 것도 예술작품인가 했는데 라로님 말씀을 읽으니 아!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거네요.

라로 2022-10-05 16:47   좋아요 1 | URL
너무 맛있었어요!! 마트에서 파는 건 겉이 너무 질기잖아요!!
다음엔 어떻게 키우셨는지도 알려주세요.
저희도 고추 농사 해볼래요.ㅎㅎㅎㅎㅎ
남편의 재능은 아무래도 시아버님의 어머니였던 시할머니에게서
온 것 같고요,, 우리 애들은 아마도 남편??^^;;
현대의 예술작품은 갈수록 난해하죠??

 

그녀는 길고 편안한 숨을 들이쉬었다. 인생에 걱정거리라고는 놀랄 만큼 적고, 자기 일을 좋아하며, 딸과 잘 지내고, 결혼 생활도 기대만큼 평탄한 여자.

"매덕스를 데려온 우리가 참 순진했어." 재니스가 말했다. "어린 여자애를 엄마한테서, 살던 동네에서, 학교에서 떼어내 데려와서는, 그냥 그 모든 것에 잘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다니." 그녀의 시선이 허드슨 강 쪽으로 향했다. "어떻게 그 애가 그냥 고마워할 거라고 여겼나 몰라."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점차로 희미해지다가, 마침내는 누구나 살아가다 겪는 불쾌한 기억 중 하나가 될 운명이었다.

지하철역은 겨우 몇 블록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타임스 스퀘어의 인파 사이를 걸어갔다. 범죄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는 부류와 정신없는 관광객들이 뒤섞이는 시간대였다.

시간이 지난 뒤에 아이들이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는 것과 완전히 다를 수 있으니까. 혹은 어른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쩌면 그 애는 애초에 그렇게 살게끔, 그 암울하고 불 꺼진 곳에서 죽게끔 운명지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는 건 단 한 가지다. 내게 있어, 그리고 모든 부모에게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란 그저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가는 것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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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고인을 위해 한마디 해야죠!" 그가 외쳤다. "그 아가씨는 말했어요,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라고.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는 감정이 북받쳐 얼굴이 벌게진 채 다시 앉았다.

그는 궁금해졌다. 만약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했다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했을까?

제일 좋아하는 단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환한 곳」으로, 해야 할 말을 다 했고 깊은 감정과 이해를 불러오며, 그 모든 것을 깨끗하고 환한 문장으로 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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