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지속가능한 나이듦 - 노년의 질병,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정희원 지음 / 두리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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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를 보여주면서 노화/노쇠/노년/나이듦에 대한 접근과 진료를 하는 경험을 들려주는 것은 좋았지만,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그만큼 미치지 못했던 같다. 하지만 이 책이 한국에서 노인학이 굳건하게 자리 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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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나이듦>을 다 읽고 전영애 선생의 <인생을 배우다>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딸에게 마라톤을 시킨 엄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액의 음악 사교육을 감당 할 형편이 아니라서 음악 대신 세상을 헤쳐 달려갈 수 있도록 마라톤을 시켰다는 엄마. 그런데 그 딸은 마라톤을 하던 힘으로 결국 음악을 하고 전 세계에 연주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내 딸이 또 생각났다. 나는 돈도 없으면서 내 욕심에 빚을 내가면서 고액의 음악 사교육을 시켰더랬는데, 그랬는데도 딸은 음악가는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이제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물론 그렇지만 여전히 음악은 하고 있다. 학교에서 quartet이니 ensemble로 발표회도 하고 한다. 딸아이가 음악가가 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음악을 즐기고 있어서 기쁘다. 물론 그 빚은 다 내 몫이지만. 어리석었던 나는 왜 그랬을까? 후회가 밀려오거나 하진 않지만, 나는 마라톤을 시킨 엄마처럼 현명하지 못한 것은 부끄럽다.


이런 글도 있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무법천지 같아 살아가기 막막하고, 무슨 수든 쓰지 않고는 못 살 듯하지만, 살아보니 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진다. 남을 배려하고 격려하며 살면, 조금 더 잘 살아진다. 쓸데없는 계산하느라, 남들과 비교하느라 힘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제법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기도 하다. 내가 거쳐 온 시간이, 내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게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때로는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서 안절부절했었는데 이제는 전영애 선생의 저 말이 이해가 된다. 나이가 들은 것인가 싶어 새삼스럽기도 하고, 이제 좀 철이 드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괜히 센티멘털해진다.^^;


선생님의 작은 집 근처의 그 작은 시골 카페에서 멋진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고(······) 혼자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실은 그 연주자들이 독일어를 배우는 의대생들인 것을 알고 더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전문 연주자도 아닌 사람들이 그토록 멋진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진짜로 최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어떤 피아노 연주자가 정말로 멋지고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자리에 미래의 위대한 피아노 연주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가볍고 쉽게 연주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대단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한 줌 보잘것없는 청중을 위해서 그토록 혼신의 힘을 쏟던 모습이 어떻게 잊히겠는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사람의 모습 중 하나이다.


또 이 글을 읽으면서는 BTS의 팬도 아닌 내가 이 노래를 들었다. 이 노래를 우주로 날려보낸 사람들도 어쩌면 단테도 썼듯이 "태양과 다른 별을 움직이는 힘인 사랑"이라는 유니버셜 한 이 가사가 나처럼 맘에 콕 박혀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BTS - Mikrokosmos

반짝이는 별빛들

깜빡이는 불 켜진 건물

우린 빛나고 있네

각자의 방 각자의 별에서

어떤 빛은 야망

어떤 빛은 방황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

어두운 밤 (외로워 마)

별처럼 다 (우린 빛나)

사라지지 마

큰 존재니까

Let us shine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별들도 불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

70억 가지의 삶 도시의 야경은

어쩌면 또 다른 도시의 밤

각자만의 꿈 Let us shine

넌 누구보다 밝게 빛나

One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어둠도 달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도시의 불, 이 도시의 별

어릴 적 올려본 밤하늘을 난 떠올려

사람이란 불, 사람이란 별로

가득한 바로 이 곳에서

We shinin'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숨을 쉬어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에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린 우리대로 빛나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리 그 자체로 빛나

Tonight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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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06 18: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되돌아 보면 어려서 정말
많은 학원들을 섭렵했던 것
같습니다.

웅변, 피아노, 컴퓨터 그리고
서예 등등... 그런데 지금까지
하는 건 하나도 없네요 ㅠㅠ

뭐든 자발적인, 그러니까 셀프
모티베이션으로 하는 게 쵝오
라고 생각합니다.

콰르테, 앙상블 왠지 넘 부럽
네요 기래.

라로 2022-11-07 12:13   좋아요 2 | URL
매냐님 제 동생들 또래시군요!!!^^;;
라떼는 학원이 막 시작하던 때였고
동생들 때에 학원들 많이 다녔거든요.^^;;

하나도 없으신 게 아니라
할 시간이 없으신 거 아닐까요??

어쨌든 자발적인 것이 최고인데
왜 부모는 다 시키고 싶어지는 걸까요??^^;

콰르텟, 앙상블, 오케스트라, 그런 거
하니까 좋아요,, 아무래도 솔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psyche 2022-11-06 20: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H양이 계속 음악을 하고 있는 건 라로님 덕분이죠. 저는 음악가가 되는 것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은 취미로 하면서 즐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게 딱히 좋은 거 같지 않거든요.

저는 제가 좋아서 피아노를 오래 배웠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강요를 하지 않았거든요. 연습하라고 하지도 않고. 그래도 엔양과 엠군은 악기를 꽤 오래 배웠는데 대학 가더니 거들떠도 안 보네요. ㅜㅜ. 사실 저도 지금은 딱히 음악을 즐기지도 않고 피아노 앞에 앉아본 지 십 년도 넘었습니다만..... 좀 아쉽기는 하더라고요. 가족 콰르테? 뭐 이렇게 까지는 아니어도 가족이 모여 연주하는 게 결혼 전 꿈이었는데 ㅠㅠ

그리고 라로님 왜 자꾸 BTS 팬이 아니라고 하세요? 팬 맞습니다. 거부하지 마세요. ㅎㅎㅎㅎㅎ

라로 2022-11-07 12:19   좋아요 2 | URL
그럴까요? ^^
하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고달플 것 같은데
또 화가나 작가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면 좋은 것 같아요.
제 남편은 직업 만족도가 아주 높더라구요. 뭐 어쨌든.ㅎㅎ

저는 프님이 참 부러워요!! 피아노 잘 치시니까요!!
자기가 잘 하면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제가 못해서 아이들에게 강요를 했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잘 따라와줬던 거 같고요.
그런데 가장 안 따라주던 엔 군이 이젠 음악을 젤 좋아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 보면 좀 안타까와요,
특히 악기 배우는 건 사실 나이가 있잖아요?
그런데 프님 댁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요??
이제 아이들 다 대학 가고 자리잡고 하니까 아이들과 얘기해 보세요.
결혼 전 꿈을 꼭 이루시길 바라고, 잘 되시면 저도 초대해서 연주
구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선생이
주민들을 위해서 연주회 열었다는 부분이 넘 부러웟어요.
나중에 우리 시골에서 같이 살게 되면 연주회 열어요!!!
저는 연주를 못하니까 연주회 주최(?)ㅎㅎㅎㅎ

BTS!!! 저는 BTS를 좋아하시는 프님의 팬입니닷!!!^^

거리의화가 2022-11-07 1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 넘 좋아해요.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고~^^
어렸을 적 음악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몇 년전의 버킷 리스트에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 꿈의 간절함이 조금 퇴색되었지만. 따님이 라로님에게 했던 교육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전혀 마음이 없었다면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따님이 어떤 형태로든 좋으니까 하고 있다는 것! 콰르테며 앙상블이며 정말 멋집니다.

라로 2022-11-07 13:49   좋아요 2 | URL
이 노래 정말 가사랑 멜로디가 넘 좋죠!!
거리의화가님도 음악!!! 버킷 리스트까지!!! 퇴색하지 마요!!! 왜 제가 안타깝죠???^^;;;
맞아요!! 자기도 좋아하는 것이겠죠? 더구나 학교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 있다고 하니까 넘 좋아요. 학생들이 바쁜데도 그런 것을 하는 거 보면 더 놀랍구요. 음악은 사랑이죠!!!^^
 

현재 나와 동행한 4명의 대원이 4대의 차량과 약 10명의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 충분치가 않다. 나는 그녀의 상황에 너무 깊이 말려드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휘관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나는 충격으로 넋이 나간 채 길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묻는다.

"저 좀 도와줄 수 있으세요?" 내가 묻는다.
그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면서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어떨 때는 돕고자 하는 열망과 아드레날린으로 가득 찬 너무 열성적인 구경꾼들이 구조 작업에 방해가 될 때도 있다.

우리는 ‘골든아워’ 원칙에 따라 일을 하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후 한 시간 이내에 모든 부상자들이 병원에 이송되도록 조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응급 처치는 첫 한 시간 이내에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이미 사고가 일어난 지 15분이나 지났다.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15분 거리이므로, 30분 이내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차의 잔해에서 꺼내 구급차에 실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본능적으로 대응해야 하고, 내 직관을 믿어야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가슴에 공기가 차서 폐를 압박하는 기흉으로 천천히 질식해가고 있었다.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 확인된 후 느끼는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당시 내 손에 있던 퍼즐 조각들에 기초한 판단일 뿐 아니라 사고의 큰 그림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게드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서 거기 인력을 집중했으면 그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 빠르고 직관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서 최선의 행동 방식을 논리적으로 분석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내 직감에 의존한 것이다. 앞 장에서 나는 퍼즐의 그림 전체를 고려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뿐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까지 예측해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만한 정신과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때도 있다. 퍼즐 조각 하나하나가 보태질 때마다 직감과 직관에 의존해서 즉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그 작업은 연구를 하는 우리에게뿐 아니라 지휘관들에게도 도움이 됐다. 그중 한 지휘관은 영상에 나오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얘기했다.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의 이미지와는 큰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차분하고, 신중하며,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상에 담긴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떨리고 있는지, 얼마나 초조한 몸짓을 하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영상을 본 후, 그는 자신의 태도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는커녕 더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다. 유능하고 근면한 소방관이었던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소방서의 모든 지휘관들이 카메라를 장착한 헬멧을 쓰고 각자의 경험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지휘관들은 80퍼센트의 비율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전의 경험을 활용한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 얼마나 잘 결정을 내리느냐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분석적 경로와 직관적 경로, 둘 중 어느 쪽을 따르는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두 경로는 두뇌의 매우 다른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분석적, 이성적 결정은 뇌의 신피질, 즉 생각하는 영역과 연결되어 있고, 직관과 연상 작용에 의지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변연계와 같이(진화학적 관점에서 볼 때) 더 오래되고 더 감정적인 뇌의 영역과 관련 있다. 양쪽 모두 저마다의 유용한 기능이 있고, 우리가 보이는 반응은 지금 처해 있는 상황, 이전의 경험, 기억, 그 순간 마주한 특정한 압박감과 그것에 대한 대처 능력 등 다양한 요인에 기반한다.

둘 다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가장 덜 나쁜 선택지’가 어느 쪽인지를 판단해야만 했다.

나는 우리가 의존하는 두뇌의 자연스러운 작동 과정을 인정하고 실제로 두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반영한 사고틀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우리 뇌의 작동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북돋는 기법 말이다.
그 일을 하는 것이 바로 결정 제어 프로세스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분석을 거친 후 내리는 결정과 직관적 결정, 두 가지 모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기법이다.

직감에 의존할 때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의사 결정 과정의 함정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고, 따라서 나는 그것을 돕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 기법은 의식적으로 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결과를 예상해보고, 내리려는 결정에 따른 이득과 위험을 이성적으로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련의 프롬프터들을 제시한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그것이 분석적이든 직관적이든)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지휘관들에게 스스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빠르게 던져보게 하는 것이다.

?목표 - 이 결정으로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측 - 이 결정으로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이라 예측하는가?
?위험 vs. 이득 - 이득이 위험을 얼마나 능가하는가?

결정을 내릴 때 직감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또 하나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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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배려해주었던 친구 에리카. 그녀는 아름다운 글라디올러스 밭을 내게 보여주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온 힘을 다해 걸었다. 그리고 꽃을 지고 가는 내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선물로 보내주었다. 그 자신은 골수암 말기 환자로 며칠을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형편이었다. 무엇일까, 마지막 문턱 앞에서 사람에게 그런 초인적인 배려와 아름다움을 부여한 힘은.

삶 자체로 기쁨이고 선물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든든한지.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전하고 싶은 욕심,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딸에게 마라톤을 시킨 어머니. 하나 뿐인 자식이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시류에 따른 고액의 음악 사교육을 감당할 형편이 아니었을 병 깊은 어머니는 딸에게 세상을 헤쳐갈 힘을 길러주기 위해 마라톤을 시켰다. 세상을 떠날 어머니가 딸에게 길러주고 싶었던 것이 마라톤 기술일 리 없다. 머지않아 자기처럼 엄마 없이 살아야 할 딸에게,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스스로 두 발로 서서 삶을 헤쳐가 달라는 간곡한 당부였고, 아무런 힘도 없는 엄마가 해줄 수 있었던 마지막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 딸은 마라톤 하던 힘으로 빛나는 음악인이 되어 지금 전 세계에 연주 여행을 다니고 있다.

물론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이 있을 리 없고, 해서 살인적으로 살았다.

무슨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젊은 시절 나는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무얼 좀 배우고 싶었고, 그냥 무슨 수 쓰지 않고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무법천지 같아 살아가기 막막하고, 무슨 수든 쓰지 않고는 못 살 듯하지만, 살아보니 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진다. 남을 배려하고 격려하며 살면, 조금 더 잘 살아진다. 쓸데없는 계산하느라, 남들과 비교하느라 힘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제법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기도 하다. 내가 거쳐 온 시간이, 내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게 했다.

책만 보면 일일이 한지에다 필사를 하여 그것이 낱장이 되어 흩어지도록 읽어 다 외우셨던 어머니의 그 간절한 필사본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책이 그토록 귀하게 읽혔던 전통을 알려주고 싶다.

언젠가 몸져누운 내게 열한 살 딸이 쓴 편지("저는 어머니께서 어려운 일도 맡은 일이라면 건강도 잊고 열심히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지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어머니 마음속의 시, 바로 좋은 착한 마음 때문이에요.").

"맑은 사람들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시詩를 위하여"
그것이 맑은 사람들의 집, 여백서원의 모토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자신만의 문체에 담아낸 작가이다.

카프카는 수많은 편지와 일기를 남겼다.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그의 문학작품 못지않은 밀도를 지닌 글들이다.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과 진가가 있다. 하지만 찾아질 리 없는 그 인형 편지가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그런 ‘한순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카프카가 도라와 함께 지내던 시절, 그는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소녀 하나가 슬피 우는 모습을 보았다. 아끼던 인형을 잃은 것이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카프카가 다가가서 말했다.
"네 인형은 말이야, 그냥 여행을 떠난 거란다."
놀라 쳐다보는 소녀에게 카프카가 덧붙였다.
"나한테 편지를 보내서 그렇게 말하던걸."
"잘 있대요? 편지는 어디 있죠?"
"편지를 마침 집에 두고 왔구나. 내일 다시 여기로 오면 내가 가져다주마."

그날 밤 카프카는 인형의 편지를 썼다. 다음 날 같은 자리로 가서 아직 글을 못 읽는 소녀에게 그 편지를 읽어주었다. 3주일이 넘게 이 만남은 계속되었다. 인형이 사랑에 빠지고,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신혼살림을 꾸리고, 마침내 소녀에게 다시 만나기가 어렵게 된 데에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편지는 마무리되었다.

인간의 고통에 눈 밝기에 거짓말인 그런 글을 쓰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또 그런 글과 그런 인간이 소중한 줄 알기에 몇 장의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이 삭막한 세상에 빛을 밝힌다.

허구로써 현실을 감내해 보려는 것, 그것이 문학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런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인문학의 진면목일 것이다.

물론 문학시장이라는 난장亂場 너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이득 없는 일에 연구비까지 대는 한 사회의 정신적 여유 속에서 빛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세상은 이런 미친 짓으로 잠시 빛나는 게 아닐까.

매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서도 아이들은 커갔고 그러다 보니 나도 확실한 직장까지 갖게 되었다. 그것도 남 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한 직장을 말이다.

뒤늦게 취직을 하여 내 연구실까지 생겼다.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치러야 할 ‘방값’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해야 하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내 공부도 절대로 대충 할 수 없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니 그 어떤 경우에도 힘과 마음을 모두 다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한 스무 해가 그렇게 가고 났을 때, 나는 몹시 피폐해 있었다. 무엇보다 내 글을 쓸 수 없어서, 도무지 그럴 여유가 없어서 황폐해 있었다

어쩌다 기회가 있을 때면 탄식 겸 소망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글을 쓸 수 있는 오두막이 하나 있었으면, 개집만 한 것이라도, 드러누울 수는 없더라도 소반 놓고 쪼그리고 앉아 오로지 나를 위한 글만 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토록 나만을 위한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땅도 집도 나의 소유는 아니지만, 글 쓸 곳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도 기쁘고 감사해서 이 작은 마을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텔레비전과 동네 스피커에서 나오는 유행가 말고도 세상에는 훨씬 더 고운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러다 시를 읽고 책을 읽는 모임이 되었으면 했다. 마을에 아이들은 적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했다.

선생님의 작은 집 근처의 그 작은 시골 카페에서 멋진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고(······) 혼자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실은 그 연주자들이 독일어를 배우는 의대생들인 것을 알고 더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전문 연주자도 아닌 사람들이 그토록 멋진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진짜로 최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어떤 피아노 연주자가 정말로 멋지고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자리에 미래의 위대한 피아노 연주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가볍고 쉽게 연주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대단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한 줌 보잘것없는 청중을 위해서 그토록 혼신의 힘을 쏟던 모습이 어떻게 잊히겠는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사람의 모습 중 하나이다.

블로그에 글을 썼던 사람도 바로 그것이 자기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업무 자세라면서, 지금 자기를 쳐다보고 배우는 사람도 있을 텐데 "어떻게 대강대강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물음으로 글을 맺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이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다시 내 시골집을 찾아왔었다. 엄마 아빠를 빼닮은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영특하던지. 견실하고 견고한 사랑으로 쌓은 한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들이 다녀가고 나서도 오래도록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들이야말로 빛나는 별이다. 별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들도 빛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별들을 하나씩이라도 기억에 품은 우리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다 조금씩 빛나고 있는 것 아닐까.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아이들 키우는 일 말고도 참 많은 일을 함께 해야 해서 늘 내 몸이 여러 개였으면 했다. 그래도 내가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틈이 나는 대로 함께 책을 읽었고, 아이들이 자기 전에는 꼭 책을 읽어주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시간이 나에게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아이들이 좋아했던 이야기들은 지금껏 나에게조차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직도 무슨 일인가가 죄다 틀어져 주저앉고만 싶을 때는 그 옛날 아이들 책에서 보았던 말이 떠오르곤 한다. 힘껏 지어놓은 둥지가 부서져 울고 있는 엄마새를 아빠새가 위로하며 했던 말, "괜찮아, 부서진 둥지는 다시 지으면 되잖아."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책 가운데서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은 아직 글을 못 읽는 어린 아들이 아빠새를 흉내 내며 한껏 의젓한 억양으로 "괜찮아, 부서진 둥지는 다시 지으면 되잖아" 하던 목소리가 고스란히 함께 들리기 때문이다.

샘터출판사에서 나왔던 《장화 신은 고양이》가 그런 책인데, 그 동화집을 엮으면서 내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세상을 헤쳐가는 용기와 슬기였다.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옮긴 이야기들에 〈세 가지 소원〉을 넣은 것은 헤벨이라는 작가가 매우 현명하게 이야기 끝에다 정답을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정답이어서 누구든 이 글을 읽는 이는 잠시 멈추고 스스로 정답을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얼른 세 가지 소원을 말하기가 쉽질 않아서 노부부의 고충도 좀 이해가 되고, 자신이 겨우 찾은 답을 정답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경우 답해야 할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마지막으로 빌어야 할 세 번째 소원이 중요한데, 바로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천사가 내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일은 현실에서는 없다. 내가 천사노릇까지 해야 할밖에 없다. 무엇을 빌어야 할지, 어느 길을 가야 할지 아는 지혜를 누가 내게 주겠는가. 결국 내 스스로 얻은 인식과 경험과 삶에 대한 통찰이 그 지혜이다. 또 빌어야 할 소원을 비는 것이란 온갖 수렁에 빠져가면서도 스스로 이루어야 하는 것, 인생 자체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후회란 얼마나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인가. 마지막 소원이야말로 삶의 지혜 중 지혜인 것 같다.

헤벨의 정답에다 한 가지쯤 사족을 달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인지라 때로 택해서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후회가 아주 없을 수야 없다. 그래도 온 지혜를 모아서 어렵사리 한 선택, 혹은 한때 좋아했던 추억이 묻어 있는 선택, 혹은 정말이지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던 저 어려웠던 선택을 기억하며 견뎌가야 한다고.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또 그래야 사람이 단단해지고 사회도 단단해진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고등연구원에서 제안한 초빙수석연구원직은 꿈조차 꾸어본 적 없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좋은 예우에다 넓은 연구실, 깔끔한 숙소, 조교를 제공하면서 강의를 하려면 하고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꿈같은 그러나 무서운 조건이었다. 절대로 대충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는 오랫동안 전체 연구원을 통틀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왜 저런 깍두기를 끼워주었는가 하는 소리를 안 듣자면 논문 몇 편 쓰고 말 일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살인적으로 일을 했다.

이야기 끝에 자신이나 자기 주변 사람들은 일을 해서 돈은 벌지만 배움이 없다면서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조그만 나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을 드러냈다. 그 후로 내가 밤을 새우고 아직 연구실에 있는 것 같으면 내 방은 살짝 지나가고, 내가 없는 날은 연구실 청소를 말끔하게 해놓고 가셨다.

내 일, meine Arbeit 혹은 my job. 사실 내가 독일에서 가장 자주 듣고 감탄하는 말이다.
세상의 일은 다 어렵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면서, 이를테면 내가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제 일인걸요" 하면서 성실히 임하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일의 성과도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의 삶의 질이 다를 것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 지금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까.

그분들에게서 나는 삶의 지혜 한 가지를 배웠다. "제 일인걸요." 그 말을 배워서 그렇게 생각하고 또 말해보니까 무슨 일이든 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어느 아침에 겪은 일이다. 아이에게 온갖 것 다 가르치고 예의까지 가르치려 분주하던 그 젊은 엄마의 허겁지겁하던 모습이며 그 아이의 지쳐빠진 얼굴, 느릿느릿한 걸음걸이가 잊히지 않는다. 교육 문제란 남이 이런저런 말을 하기는 쉬워도 부모가 되면 정신이 없다. 누구든 나름으로야 최선을 다한다. 남 하는 대로 하려고 애쓰느냐 힘들지만, 실은 남 하는 대로 안 하고 기다려주기가 제일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게 부모가 할 일인 것 같다.

벌써 저렇게 지쳐빠진 아이가 과연 엄마가 바라는 대로 가줄까. 어린 시절을 저렇게 보내고 어디서 스스로 의욕이 나서 공부할 힘이 나겠는가.

놀아야 할 때 놀지 못했으니 공부할 때 공부하고 싶겠는가. 일할 때 일인들 하고 싶겠는가. 저렇게 하는 공부에 무슨 재미가 나겠으며, 친구인들 생겨나겠는가. 남을 배려할 틈이 있어야 친구도 있고, 세상도 돌아간다.

내가 걱정스럽게 그 소년 이야기를 했더니 제자 중 한 학생이 그랬다. 교보문고 원서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데, 어떤 엄마가 만화책을 고르려는 아이를 비난하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골라주는 걸 보고 놀랐다고. 사실이 아니기만 바란다. 엄마 자신이 그 책을 단 한 장이라도 열어보았다면 그런 일은 세상에 없었을 테니까.

어릴 때, 이제 어느 언어로든 책을 좀 읽어야 할 시기에, 들들 볶아 가르치는 짧은 외국어는 자라야 할 생각을 다시 퇴행시키는 폐해도 있다. 그렇게 몇 년을 배운 영어는 사실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본인이 필요를 느끼면 빠른 시일에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는 양이다. 그거 몇 마디 가르치겠다고 아이들에게서 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배우려는 마음을 빼앗아버리면 그 마음은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또 한 번 씁쓸한 경험을 했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해 문이 열리고 젊은 엄마가 유모차를 밀며 안으로 들어섰다. 유모차에 앉은 아이를 보니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두 엄지로 화면을 밀어대는 손놀림이 너무나도 능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에도, 타고 나서도 일말의 흔들림 없이 폰 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화면만 들여다본 아이들이 자란 세상은 생각만 해도 조금 무섭다. 그 아이는, 화면이 아닌 현실 속에서 또 얼마나 허약할까. 무엇이든 자신의 시선을 끄는 것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만져보고, 먹어보고, 움직여보며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 갈 시기의 아이였다. 내 아들이 그만할 때 뭐든 먹어보는 통에 나는 약을 감추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언젠가 가위를 보고 어린 아들의 눈이 반짝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사태를 간파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종이를 잘라가며 가위 쓰는 법을 가르쳤다. 가위 쓰는 법을 배운 뒤 슬며시 방으로 들어간 아들은 나중에 보니 커튼이며 이불을 다 거덜내놓았다. 아이는 다치지 않았다. 나중에 유치원에 갔을 때 아들은 가위로 오리기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인자였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때 놀아야 한다. 놀아야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고 주위를 살피며 세상 이치도 깨닫고, 무엇보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해보는 가운데 진정한 창의력이, 생각이 자란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아이 때 아이노릇 잘 해야 학생 때 학생노릇 잘 하고 어른 때 어른 노릇 잘 하는 건 자명한 이치이다. 아이 때는 공부하고, 어른 되어서는 남의 눈치나 보며 그저 놀고 싶어 하고,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 차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좀 더 늙어서 회사원 아저씨 같은 아이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만지는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를 보내줄 부모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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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로 주문한 책이 어제 도착했는데 다른 얘기 하느라 깜빡했다가 방금 휴대폰 사진 지우면서 보니까 자랑하려고 찍어 논 사진이 있다. ^^;; 

늘 저 대천김을 보내주신다는...


9만 원의 배송비가 들었던 주문은 총 97,920원의 상품 가격과 9만 원의 배송비를 합해서 187,920원의 주문이었다. 이번 주문 보고 정말 배가 많이 아팠다. 우드 리더기와 전영애 선생의 책 <맺음의 말>이 아니었다면 주문하지 않았을 책 들인데, 또 사람이 간사해서 그런가 주문하고 받은 책들이 다 좋았다. <자린고비>는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얇아서 무게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줬을 것 같진 않다.


마호가니로 주문했는데 마감이 미끄럽게 되어 있지 않고 좀 거칠었다. 그래서 그런가 마호가니 느낌 1도 안 났다는. 좀 아쉽. 하지만 진짜 크고 너무 잘 보인다!!!

눈이 침침해서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더 많이 읽었는데 이제 우드 리더가 있으니 집에 있는 종이책 읽는 것이 별로 겁 안 난다.






사진은 좀 엉망인데 (급하게 찍냐고) 책이 최소한 3배로 커 보인다. 글자도 그렇다. 불빛에 반사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안 그런 돋보기 없으니까 감수해야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보면 요령을 터득해서 더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맘에 든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표지나 만듦새가 괜찮았다. 표지 왜 저렇게 흐리멍덩하게 나온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암튼, 이 책 받고 많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10년의 노력을, 인내를 읽게 되는구나 싶어서!

뭐든 하려면 최소한 10년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는 분의 글이라 그런가 만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이 책 역시 블랑카님이 좋다고 하셔서 주문했는데 이런 책은 전자책보다 당근 종이책이다.

예전에 <도쿄의 부엌>을 읽었을 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의 이야기 무척 좋아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만나 볼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더구나 그 사람들의 외모와 옷 입는 것을 보면서 나 혼자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고, 내 이해의 폭도 더 넓어질 것 같다.


며칠 전 환자를 맡았는데 65세의 남성 환자인데 머리가 길었고 마리화나를 피운다고 했다. ER에서 일하다가 PACU로 온 다른 동료가 그 사람의 히스토리를 읽으면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환자들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해줘서 그 환자를 맡게 되었을 때 솔직히 나는 직업적으로만 대하고 싶었는데 너무 잘 웃고 대답을 잘하고 친절하고 간호사를 존중해 줘서 그 환자를 돌보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나이 차이도 느끼지 못했고, 계속 만나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사람은 그래서 느낌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데 나는 아직 덜 된 인간이라 그런가, 아니면 그게 습관으로 굳어져서 그런가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간호사가 되어서 그나마 나아지고 있다.


나도 계속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 사람의 할아버지처럼 열린 사람이 될 수 있겠지! 


이 할아버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 동의하지 않는다. 노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아직 그 시기에 진입하지 않았지만;;) 인생의 어느 계절이든 지금이 가장 최고의 황금기라고 어떤 의사샘이 그러셨다. 그분은 78세다. 지금이 자기 인생의 최고인 시기라고. 그분은 유전병도 갖고 있다. 죽을 날이 곧 올지도 모르는데.. 아니 올 거다.



생각보다 너무 얇고 그림은 아주 크고...

아직 읽지는 않고 대강 넘겨봤는데...

뭐 그렇다고요.











이 책은 무슨 도록 입미꽈? 왜 이렇게 크고 두껍!!

자린고비 빼고 나머지 책들이 다 두꺼워서 무게가 많이 나가서 배송료가 많이 나온 것 같은데

다른 책보다도 이 책이 그 주범인 것 같다. 하지만 책이 크니까 사진도 커서 아주 맘에 든다. 물론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뜯어보진 않고 표지만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내가 돈을 내고 산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아야 할 책처럼 아우라가 있는 책이다.^^;;

비닐 뜯기 아까워서 아직 안 열어봤는데 나중에 여유를 가지고 들쳐봐야지.








사유 식탁의 전자책 출간 알림을 신청했는데 책 만듦새가 멋지다고 하니까 이 책은 종이책으로 갖고 싶다. 일주일만 먼저 나왔어도 이 주문하고 같이 하는 거였는데 너무 아쉽다.

잊어버리자.

인연이 아닐 수도 있지. 어떻게 갖고 싶다고 모두 가질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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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5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대천김 맛있는데..... 저 좋아하는 김입니다. 배송료가 9만원이라니 진짜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을 실감하겠네요. 그렇게 받으면 받은 물건들이 더 애틋하고 소중할 듯합니다. 마호가니 리더기가 뭔가 했더니 저런 식이었군요. 저는 아직은 괜찮은데 얼마 안있어 저도 저런 물건이 필요해질듯요. ㅠ.ㅠ 잘 기억해놨다가 나중에 필요해질 때 장만하기요.

라로 2022-11-06 09:5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유명한 김을 보내주셨네요.^^ 정말 배송비 때문에 이제 배송하는 주문은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책 주문하시고 무료 배송을 받으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아직은 괜찮으시다니 바람돌이님은 정말 눈이 젊으셨군요!! 부러워요!!!

난티나무 2022-11-06 0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린고비>는 그림책이에요.^^ 전 받아보고 생각보다 두껍네 했는데 ㅎㅎㅎ

라로 2022-11-06 10:48   좋아요 1 | URL
그림책인 줄 알았는데 욕심이 많아서,,ㅎㅎㅎㅎㅎㅎ
그런데 기대하고 있어요!! 읽고 있는 책도 있고 써야 하는 글도 있어서 그런가 그림이 눈에 안 들어와요.ㅠㅠ 제가 땡투하고 산 거 아시죵?? (생색ㅋㅋ)

psyche 2022-11-06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지난 번 라로님 글 읽고 알라딘 중고 서점으로 달려가서 우드 리더 샀어요. 좀 비싼데 종이책 읽을 때 유용할 거라고, 집에 있는 종이책 열심히 읽을 거라고 다짐? 하며 샀어요. ㅎㅎ

라로 2022-11-07 12:27   좋아요 1 | URL
사셨군요!!! 좋죠!! 어떤 나무로 사셨어요?? 프님은 직접 가서 사셨으니까 나무를 고를 수 있으셨겠어요!! 많이 비싸더라구요,, 저도 프님하고 똑같은 심정으로 샀어요!!!ㅎㅎㅎㅎ

stella.K 2022-11-07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쿡에서 김이 귀하다고 들었는데 라로님 생일이셨겠어요. ㅎ 누가 보내셨는지 대충 알 것같기도 한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친애하는 그분 맞으시죠? 맛있게 드십시오.^^

라로 2022-11-07 12:30   좋아요 2 | URL
미국에서 김이 귀하다는 말은 옛날인 것 같아요. 요즘은 코스트코에서도 김 많이 팔아요. 한국 음식이 인기가 많으니까 한국 마트도 있구요 근데 스텔라님 댓글 읽고 빵 터졌어요!!!ㅎㅎㅎ 친애하는 그분이 누구죠??? 알려주세요!! 누군가 보내주셨으면 더 좋았을까요? ^^;;; 근데 이거 제가 주문해서 배송 신청해서 받은 거에요.^^;; 제 서재에 가끔 오시니까 예전 글을 안 읽으셔서 그렇게 오해하신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친애하는 분이 누굴지 넘 궁금해요,,, 혹 팜므느와르(다크아이) 님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혹시 알라딘에 있는 누가 저에게 저렇게 통 크게 보내주신다면 보내주실 분은 제 생각엔 팜언니 말고는 없거든요.^^;;; 아 궁금해라, 스텔라님이 생각하시는 그분!!^^

stella.K 2022-11-07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그럼 완전 헛다리 짚었네요. 얼마전에 기억의 집님과 무슨 댓글 나누시는 걸 우연히 본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이거였구나 한건데ᆢ ㅠ
그래도 제가 오늘 라로님 웃게 만들었으니까 용서해 주실거죠? 😂

라로 2022-11-07 12:58   좋아요 3 | URL
아!! ㅎㅎㅎ 기억의집님이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그건 제가 거절(?) 했어요!! 너무 고마우면 거절하게 되잖아요.^^;; 당근이죠!!ㅎㅎㅎ 용서할 것도 없구요. 제 서재에 찾아오셔서 댓글 달아주시고 좋아요 눌러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한데요!!^^

mini74 2022-11-07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년잔 유학 간 친구가 임신해서 찜닭이 너무 먹고싶어 파는 곳을 찾아 남편과 왕복8시간 달렸다던 이야기 생각나요. 지금은 진짜 라떼는 ~~~ 김 배송료랑 해서 엄청 비싸군요.

라로 2022-11-08 20:08   좋아요 0 | URL
20년 전에는 그랬다는 말이 믿어져요,, 저도 그랬어요.^^;; 저는 30년 전인가??ㅎㅎㅎㅎ
책 배송료가 특별 배송료를 붙이더라고요? 6만 얼마 나왔는데 거기에 이만 얼마가 더 붙어요,, 사실 그래서 다음에 배송 하게 되면 여쭤보고 싶었어요,, 우체국에. 왜 책이라 저 우드리더 뿐인데 특별 배송비가 왜 붙는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