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세상 모든 것을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기세여서, 나는 늘 아들 앞에서 조마조마했다. 그 마음을 한껏 덜 내색하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어려웠다.

요리 잘하는 사람이야 어디서든 환영받지 않겠는가.

집 안에서 이탈리아어 교본이 눈에 뜨일 때쯤에는 이제부터 아주 요리로 나가나 보다 싶긴 했다. 라틴어 기반이 있으니 이탈리아어쯤은 쉽게 배울 테지. 거기도 사람들이 밥 먹고 사는 곳이니 칼, 도마 들면 살겠지 하고 편하게 생각했다.

좋은 요리를 하고 싶은데 경영하는 주인은 수익을 내야 하고, 수익을 많이 내려 할수록 요리 재료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당연히 음식이 좋아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좋은 요리를 먹는 사람이 다 알아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들은 그때 아주 좋은 프랑스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는데도 그런 말이 나왔다.

요리도 예술과 똑같구나. 정말 좋은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과 시장의 논리는 그 어디서든 충돌하는구나.

오히려 예술 쪽이 요리처럼 즉석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잔을 더 못 사서가 아니고 와인 잔을 다양하게 갖추어놓으면 식당이 럭셔리해서 못쓴다는 것이었다.

평생 허공에다 글을 써온 나와는 비할 바 없이 세상에 유익하게, 거기 화덕 앞에, 아들은 서 있는 것 같다.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치 어려운 삶을 사셨던 내 어머니도 더는 견디기 어려워 그 단정하고 고우신 분이 몸 던지려고 물가에 앉으신 적이 있고, 그때 누군가가 그렇게 살려내셨다. 그래서 나도 세상에 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 그 은인을 찾아낼 길은 없지만, 그이에게 모든 삶의 축복이 내리기를 비는 내 마음이 어떻게든 전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이가 내 아버지를 구해준 것은 내가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라도 갚아야 할 큰 은혜이고, 그러는 것이 어떻게든 나의 감사가 조금이나마 그이에게 전해질 길이라고 믿어본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도 꾹 참곤 했다. 차 한 잔을 끓여 먹자면 지하실에 있는 부엌에 다녀와야 했는데, 부엌까지 도합 열네 번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했다. 그 중 문 둘은 온몸으로 밀어야 할 만큼 무거웠다. 그게 버거워서, 한밤중의 어둑한 지하실이 으스스 해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샤워를 할 엄두는 더더욱 안 났다. 그렇다 해도 아주 안 내려갈 수는 없으니 욕실에 다녀오느라고 타월 한 장을 들고 혹은 찻잔 하나를 들고, 그렇게 열네 차례 문을 지나노라면, 그 인적 없고 괴괴한 건물 어디선가 금방 광인 니체의 부르짖는 소리가 울려 올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다 컸지만 지금도 아이들 생각을 하면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저 혼자들 큰 것 같다. 제아무리 잠을 줄여도 내 아이들을 위해 낼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적었다. 직업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되고는 그 일이 중해서 내 가족, 내 자신은 언제나 맨 마지막이었다.

더 어려운 아이들이 세상에 많은 걸 알기야 하지만, 그래도 남모르게 가엾게 컸고 너무도 일찍 철이 들어버린 내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아주 가시는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조금 덜하지만 젊은 날에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에 많이 치였다.

사람들에 다치는 양상은 달라도 이유는 대개 한 가지였다. 무언가를 할 때는 성심껏 열심히 하는데,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나쁜 경우에는 ‘무슨 야심이 있기에 저러나, 무섭다’라는 유추가 있었고, 보통의 경우에는 뭔가 개선을 하기보다는 세상이 지금 있는 그대로 조용한 편을 더 좋아했다. 더구나 가까운 데서 시끄러운 것은 다들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벽들에 부딪쳤을 때 무슨 수가 있겠는가. 그럴 때도 대개는 몸이 아팠다. 별 수 있겠는가. 가끔씩은 많이 아팠다.

"저는 어머니께서 어려운 일도 맡은 일이라면 건강도 잊고 열심히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지요.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바로 어머니 마음속의 시, 바로 좋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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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 행동에 관여하는 그 부위는 바로 전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사람을 비롯한 영장류들이 공유하고 있고 그 기원이 오랜 옛날 포유류 및 파충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부위이다. 영장류가 아닌 포유류와 파충류의 관습적 행동이나 과시 행동도 이 부위가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파충류에 기원을 둔 이 영역에 손상을 입으면 관습적 행위 이외의 다른 자동적 행동들, 예를 들어 걷기나 달리기 같은 행동에도 장애가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성과 지배라는 두 기능이 동일한 신체 기관계와 관련되어 있지만 한편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음경을 드러내는 과시 행동은 집단의 지배 서열에서 가장 효과적인 사회적 신호로 여겨진다. 이 행위는 일종의 의식과 같은 것이 되어 ‘내가 주인이다.’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는 성적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지금은 생식 활동에서 분리되어 사회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음경을 드러내는 행동은 성적 행동에서 유도된 의식이지만 생식 목적이 아닌 사회적 목적으로 사용된다."

인간의 이타적 행동이 변연계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을 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실제로 몇몇 드문 예외(주로 사회성 곤충들의 사례)를 제외하고 자신의 새끼를 보살피는 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생물은 포유류와 조류뿐이다. 그것은 오랜 적응 기간을 통해 대량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된 포유류와 영장류의 뇌의 이점을 십분 활용한 진화적 발달이다. 사랑을 처음 발견한 동물은 아마도 포유류인 듯하다.9)

개는 우리가 신에게 느끼는 종교적 도취감을 사람에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우리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동물들이 느끼는 강렬하거나 미묘한 감정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러한 사례들을 살펴볼 때 성교와 같이 복잡한 포유류의 활동에는 삼위일체의 뇌의 세 가지 요소 ? R 복합체, 변연계, 신피질 ? 가 동시에 관여하는 것이 틀림없는 듯하다.(우리는 이미 R 복합체와 변연계가 성적 행동에 작용하는 것에 대해 논의해 왔다. 신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내적 성찰로부터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물고기도 전뇌에 손상을 입으면 스스로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나 조심성 등이 사라지게 된다.

신피질의 추상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의 상징적 언어 활동, 특히 읽기와 쓰기와 수학이다. 이러한 활동은 측두엽, 두정엽, 전두엽, 그리고 아마도 후두엽의 협동을 통해 수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상징 언어가 신피질의 산물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피질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벌이 정교한 춤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벌이 춤을 통해 먹을 것이 위치한 곳의 방향과 거리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오스트리아의 곤충학자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가 처음 발견했다. 벌의 춤은 사실상 과장된 몸짓 언어, 벌이 먹이를 발견했을 때 실제로 보여 주는 활동을 모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냉장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하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손으로 배를 두드리거나 문지르는 행동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의 어휘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기껏해야 몇십 개의 낱말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인간의 어린이들이 긴 유년기에 하는 학습은 거의 전적으로 신피질의 기능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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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필연적으로 의심이라는 조작을 거쳐야 한다.
의심도 해보지 않고 믿었다는 건 엄밀히 말해 행위로서의 성립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일탈이며, 그런 점에서비난받아 마땅하다. - P103

친구는 자녀가 아니다. 부모도 아니다. 남편도 아니다. 형제자매도 아니다. 연인도 아니다. 이것이 무엇을말하는가. 친구로부터 의견과 감상을 요구받기 전까지그들의 삶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친구라는 입장에서 그의 성공과 건강을 남몰래 기도하는 것으로 족하다. - P105

나는 오늘날까지 세상의 오해와 잡음에 시달리는 사람들 곁에서그들과 우정을 맺어왔다. 인생은 매순간 대가를 요구한다. 세상에 보기 드문 개성 강하고 똑똑한 친구들 곁에 머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다. - P106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귀머거리‘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청각장애자를 차별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적의나 차별 없는 말과행동이더라도 상대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치욕스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않도록 강해지는 방안을 생각해내야 한다. - P108

우리의 일생에서 타인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나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힘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당도할 수 없었다. 거부당하고 미움받고 괴롭힘을당하고, 때로는 사랑받고 구원받으며 칭찬받았기 때문에현재의 내가 있다. 그들 속에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 P109

파괴적인 사상과 실천은 세상이 없어지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기호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사상과 행동에 휘말려 원래의 나‘를 잃곤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이 찾아왔듯이 바라지 않았던 나쁜 일에 휘말리는 횟수가 쌓여삶을 이룬다. 인생에 좋은 일만 가득하다면 아마도 인간의 성격은 지금처럼 복잡하고 현명하게 완성되지 못했을게 분명하다. - P110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는 성격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으로는 한없이 나약하다는 점이다. ‘나는 나‘ 라는 자세를 취하지 못하는 성격적 결함을 안고 있다. - P111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나만의 방식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 P113

그 믿음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깊이 뒤얽힐수록 서로 성가시러워진다. 살다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생긴다. 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
서로의 신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다. 신상을털어놓는 그 순간부터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착각이피어나기 때문이다. - P120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 경우엔 조금 거리를두고 떨어져 있으면 세월과 더불어 그에게 품었던 나쁜생각들, 감정들이 소멸되고 오히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궁금함이 밀려온다. - P121

자녀는 철저하게 타인이다. 타인 중에 특별히 친한 타인이다. 특별히 친하다는 예를 찾아본다면 교도소를 출소한 그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이다. 자녀가 아닌다른 누구를 위해 이처럼 정성들여 대접하는 타인이 또있을까. - P122

결점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이상하게도 친구들이늘어난다. 사람들은 나의 장점에만 호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결점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지독히 말주변이 없더라도 나의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에겐 저절로 위안이 된다. 인간의 우월감을 자극하는 비겁한 방법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넓게 봤을 때 이 또한 사랑의 표현 방식 중 하나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가장 큰 체력소모는 결점을 감추는 데소비된다. 타인에게 나의 결점을 감추느라 거짓말을 하게 되고, 나중에 이것이 탄로나 서로 곤혹스러워진다. - P125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간다. 인간의 운명이다. 개별적인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상 인간은 서로 다름이 원칙이다. 굳이 무리해서 다름을 부각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타고난 유전자가 다르므로 살아가는 취향이 다른 것은당연하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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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아내는 분명 휴가 날짜를 조정해보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아내의 섣부른 바람이었을 뿐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우리는 너나없이 고통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란다. 아아아아.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에게 속엣말을 했다.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의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아아아아. 그래서 가족이란 단어는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란다. 그는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되새겼다. 아아아아. 그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소리를 내질렀다. 아아아아.

나는 그저 무언가를 다시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는 괜스레 케이블TV 속 셰프가 원망스러웠다. 누구에겐 초간단 요리가 또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음을…… 아무도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노모는 무겁지 않았으나 그래서 더 놓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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