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다양한 옷을 입어봤고, 가죽 치마까지 입어봤지만, 가죽바지는 이번에 처음 입었는데 좋다. 이렇게 쓰면 동물애호가들이 단체로 나를 떠나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을. 


크리스마스에도 입으려고 빨간색 가죽바지를 샀다. 아직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오늘 입었는데 너무 편하고 따뜻하고 더러운 것이 묻어도 닦기 쉽고, 등등 장점이 정말 많다. 이 바지를 입고 마트에 갔더니 어떤 여자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 한다는 말이, "어디서 샀어요?"와 "바지가 참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도 참 마음에 든다.^^;;

사무실에 와서 다시 SOP 수정하고 있다. 수정한다고 없는 업적(?)이 나오지는 않지만, 한 단어라도 이리 고치고 저리 고쳐본다. 이런 과정이 다 필연적으로 쌓여서 좋은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눈에 보이게 쌓이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정성이 계속 글자 하나하나에 쌓여서 어쩌면 먼지처럼 쌓여서 입학 사정관들이 내 SOP를 열어서 읽으려고 할 때 정성이라는 먼지가 그들의 눈앞에 아른거려서 찍어주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알 수 없잖아? 기적!


이틀 동안 Santa Ana라고 불리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렇게 많은 나뭇잎이 떨어져 있는 것을 아침에 출근하면서 봤는데 오후에 퇴근하고 집에 오니까 남편과 해든이가 쓰레기통에 담으려고 가지런히 정리를 해서 사진을 찍었다. 저건 한 부분임. 다른 곳에 저렇게 쌓인 나뭇잎이 더 있었다는. 해든이 하고 남편이 고생 많았다.

샌타 애나라는 바람은 이맘때부터 3월 정도까지 부는 바람인데 devil winds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바람이 불면 늘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The Holiday>는 쥬드 로, 캐머런 디아즈, 케잇 윈슬렛, 그리고 잭 블랙이 열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이 영화는 내정 애정 하는 로맨틱 영화인데 지금 봐도 좋다. 샌타 애나라는 바람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쨌든 샌타 애나 바람이 불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생각나는 영화. 다음 주 땡스기빙에 남편이랑 다시 봐야지.


암튼, 마트에서 85디그리 제과점에서 티라미수와 초코 무스 케이크를 사 와서 먹었다. 역시 파리 바게뜨가 더 맛있지만, SPC 불매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안 사 먹었다. 내가 신념을 잘 지키는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킨다.


그나저나 머리에 있는 생각을 짜내려고 해도 생각이 없어서인지 나오질 않네그려. 시간은 자꾸 가는데 SOP가 너무 허접해서 어쩌나.ㅠㅠ 도대체 오늘 뭘 한거야??ㅠㅠ 살찌는 음식만 먹고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 나여나여나여~~~~~.ㅠㅠ



Sam Cooke - You send me


<The Holiday>의 사운드트랙 중 한 곡이다. 샘 쿡은 남편이 젤로 좋아하는 흑인 가수. 


아! 그리고 알라딘의 당신의 기록을 보니까 올 내가 사랑한 작가는 아니 에르노라고 하는데,, 내가 책을 가장 많이 산 작가가 아니 에르노라는 말로 읽었다. 알라딘 이런 식의 멘트는 좀 아니지 싶은데.. 그냥 솔직하게 당신이 가장 많이 구매한 작가,, 그런데 그게 그건가? 사랑하니까 많이 사나? 아닌데, 나는 궁금해서 많이 샀는뎅.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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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2-11-20 1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엉뚱한 작가를 사랑한 게 될 때가 ㅋㅋㅋㅋ 그나저나 빨간 가죽바지라니...

라로 2022-11-21 06:21   좋아요 2 | URL
그죠! 저도 아니 에르노는 사실 <단순한 열정>으로 첨 만났;; 말줄임표는 무슨 의미인가요??ㅎㅎㅎㅎㅎ(알 것 같아요!!ㅋㅋ) 그나저나 넘 올만이에요, 혜윰샘!!! 방가요.^^

그렇게혜윰 2022-11-21 07:56   좋아요 1 | URL
저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요. 라로님은 넘 잘 어울리실 듯요. 얼마전 빨간 조끼를 사곤 옷걸이에만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2-11-20 1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 매냐 라로님이군요 ㅋ 전 하루키라고 뜨더라구요. 이미 다 가지고 있는데 또 구매한게 있나?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와 저는 감히 가죽 바지는 못입겠더라구요. 가죽 자켓은 입어도 😅 역시 패잘알 이십니다~!!

라로 2022-11-21 06:23   좋아요 1 | URL
그르게요, 제가 아니 에르노 매냐에 등극을?? 하고 봤더니 북플엔 아예 없어요.ㅎㅎㅎ 하루키 다 가지고 계신다고요?? 우와~~~!!
저는 가죽 모든 다 좋아해요!!! 패잘알,,ㅋㅋㅋ 닉네임 바꾸고 싶어요,, 패잘알!!ㅎㅎㅎ

Conan 2022-11-20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강준만 이라고 하네요~
한국 현대사 산책을 사 모은 결과인듯 합니다.~ 그리고 빨간 가죽바지 멋있습니다.^^

라로 2022-11-21 06:25   좋아요 1 | URL
와~~ 현대사 산책이라니요!! 그거 거의 25권 정도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잘 봤죠!! 코난님 책 엄청 많아 보이더라구요!!^^
감사합니다. 튀게 옷을 입는 것 좋아해요,, 제가 안 튀게 생겨서요.^^;;ㅎㅎ

거리의화가 2022-11-21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베카 솔닛이라는데요?ㅎㅎ 음... 몇 권 구매한 게 큰듯합니다^^; 솔직히 5권도 구매안한것 같은데... 그만큼 한 작가를 파지 않아서인듯합니다.
가죽바지는 정말 입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가죽자켓조차도 잘 안 입게 되네요ㅠㅠ 라로님 빨간 가죽자켓 입으신 모습 넘 멋있을 듯합니다!

라로 2022-11-22 13:30   좋아요 1 | URL
그렇죠! 구매를 많이 한 작가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 같아요.^^;; 한 작가를 파지 않았다는 말씀이 참 좋게 들려요. 저는 한 작가를 몇 번 찼는데 그분들이 책을 많이 안 낸 분들이라 아니 에르노에게 밀린 것 같아요.ㅎㅎㅎ
저도 첨 입어봤는데 좋아요!! 혹 기회 되시면 입어보세요.^^;; 빨간 가죽 자켓도 언젠가 입을 날이 오기를요.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러고보니 빨간색 짧은 코트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거 입고 나가면 다 이쁘다고 하긴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빨간색이 눈이 확 띄니까 그런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11-22 1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빨간 가죽 바지!!!

땀 차지 않을까요... 별 걱정을 다 ㅋㅋ

라로 2022-11-23 14:42   좋아요 1 | URL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주 현실적인 질문인 것을요!!ㅋㅋㅋ
질문이 아주 맘에 들어요!!^^
땀은 안 찼어요,, 아마도 날씨가 추워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여름엔 입기 힘들겠죠??^^;;

얄라알라 2022-12-11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레삭매냐님과 라로님의 주고받음에.빙그레 미소가 뜨는 건 뭘까요?^^다정들.하셔라

라로 2022-12-12 09:08   좋아요 0 | URL
매냐님과 제 댓글이 다정한가요??^^;; 그런 생각은 못했는데,,, ㅎㅎㅎㅎㅎㅎㅎㅎ

얄라알라 2022-12-12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현실적인...그 단어에 빵

얄라알라 2022-12-1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내기때 팔부위만 투명 비닐 소재점퍼 입은 아이가 있었는데 수업시간에 보니 그 아이 옷 안에.땀이 찼더라고요...현실적으로 가죽은 아니고 합성비닐인 경우 그런 문제 가능할슈 있나봐요 로

라로 2022-12-12 15:08   좋아요 1 | URL
그런 것 같아요,, 가죽은 숨을 쉬거든요, 하지만 합성비닐은 숨을 안 쉬니까요.^^;; 전 가죽을 너무 좋아하는 문제가 있어요,, 동물애호가들이 들으면...하지만 이런 것도 극복하려면 극복 할 수 있겠죠??

psyche 2022-12-19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간 가죽바지라니!! 역시 멋쟁이 라로님!

라로 2022-12-20 15:00   좋아요 0 | URL
히힛, 저는 못 말리죠,,^^;;
 

가을 구름이라는 것이 있을까 싶어서 찾아보니까 가을에는 공기의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공기 중에 수분의 양이 줄어들어 습도가 적어지고 그래서 구름도 적다고 한다. 어쩐지! 어제 해든이 학교가 끝나고 데리고 오는데 구름이 무척 얇다(?)고 느껴졌는데 오늘 남편이랑 코스트코 가는데 아무리 찾아도 구름이 안 보였다. 내가 하늘만 올려다보면 구름 찾는 줄 아는 남편도 "오늘은 구름이 없네."란다. 나도 알아. 나는 눈이 없냐? 식의 말이 툭 나올 뻔 했지만 과학적으로 가을이라 그렇다고 설명해 줬다. 나 성격 많이 좋아짐.ㅋㅋ

수분이 없어서 얇아진 듯한 구름도 나름 운치 있다. 이런 구름을 보면 수묵화를 그리고 싶어지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1차 rough draft를 오늘 또 고쳤다. 고친 것을 남편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남편이 재미가 없단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 평범하고 재미가 없는데 사람들이 끝까지 읽겠냐?" 아 놔~~~, 남편이여 남편이여~~~.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 솔직히 평가를 하는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서!! 그래서 또 좀 고쳐서 다시 보냈다. 그랬더니 준비할 것이 많아서 내일 읽겠다고. 아 놔~~. 이 남자가!!! 소리를 꽥 질렀더니 좀 있다 읽겠다고. 암튼, 이런 글을 여러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하고 feedback을 받는 것이 좋다고 하니까 딸아이랑 사위에게도 읽어보라고 하고, 엔 군에게도(엔 군 자기가 글 잘 쓴다고 늘 자신만만,,, 아~~ 어쩜 이렇게 자기 긍정이 강한 인간으로 태어났는지!!ㅋㅋㅋ), 친한 의사샘에게도 보내고, 책 많이 읽으셨고 선생님이기도 했던 시어머니, 글 잘 쓰는 미미라는 친구 일단 이렇게 보내보는 것으로. 물론 내 추천서를 써 줄 사람들에게도 보내야 하는데 그건 완성한 다음에. 


준비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11월부터 시작했으니,,ㅠㅠ) 꼭 붙었으면 좋겠다. 일단 이 학교가 서부에서는 거의 상위권의 학교이기도 하지만 내가 찾은 학교 중에서 학비가 가장 저렴하다. 한국 돈으로 확인하니까 거의 1억;;;;; 뭥미?ㅠㅠ 암튼 그래도 이 학비가 정말 저렴한 학비라서 꼭 이 학교에 가고 싶은데,,,, 그걸 나만 알겠어? 다른 더 잘 준비된 사람들이 학비가 싸니까 득달같이 신청하겠지..

그렇더라도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PR을 해야 된다. 나 자신을 남에게 알리는 것. 그런데 정말 초라하구나. 한 게 없어, 정말 없어...하하하 뭐라도 한 게 있어야 나를 좀 뽑아주세요, 할 텐데,, 뭐 이룬 것이 없네그려!! 이룬 것이 없으면 간호 경력이라도 길어야 하는데,,,,, 휴

그래서 또 책을 샀지. 책이라도 읽고 아무 글이라도 올리자. 사실 SOP쓰면서 이 알라딘 서재라도 내세울까,, 오래 했잖아,,, 뭐 이런 마음. ^^;;; 설마 구글 번역 돌려서 내가 뭘 썼는지 확인 할까? 농담이지만 아주 생각 안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


일단 전자책 출간 알림 신청. 아무래도 알라딘에서 전자책 알림 신청 젤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닐까 하오.














<그림값의 비밀>과 <세계 철학 필독서 50>은 개정판이네. 가운데 책은 시리즈고. <잉크, 예뻐서 좋아합니다> 책 소개만 보니까 나도 이 분보다 만년필은 더 많이 갖고 있고 (뭥미?ㅠㅠ) 잉크도 100병이 넘게 갖고 있으니 이런 책이라도 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창피한 마음이 들;;; 어쨌든 나는 잉크가 예뻐서도 좋아하지만, 잉크를 담은 유리병들이 너무 이뻐서 좋아하기도. 다양한 잉크병을 손에 잡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솟구치는.... 병증이 심한 거지!!^^;;


나 이 책 간호대에서 요구하는 영문학 수업 들을 때 읽었는데 번역이 되어 나왔구나!! 내겐 좀 난해한(?) 작가였는데.. 궁금하다.

남편과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집을 짓고 싶다. 남편이 디자인한 집. 남편의 설계대로 집이 만들어진다면 분명 단순하지만 멋진 집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남이 집을 지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런 책은 늘 관심을 끈다.

아니면 한국에서 시골집을 개조해서 살던가. 근데 다 꿈이 될까?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출간 신청은 이 정도만 했고 책을 샀지. 김연수 작가하면 이상하게 김영하 작가가 떠오르고 김영하 작가하면 김연수 작가가 떠오른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전자책을 하나 샀다. 

걷고 뛰는 것에 대한 글 좋아함.

<징구>는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너무 많이 해서 많이 미안했는데 마침 적립금이 8,000원이나 생겨서 적립금으로 주문한다 생각하고 주문함. 그리고 다른 책 또 샀는데 그건 나중에 올리기로. 어쨌든, 책만 자꾸 산다. 스트레스 많다는 증거가 여실하다.^^;;;


어쨌든 전자책으로 주로 사니까 책탑을 쌓아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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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11-20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준비하시고 계신 일 잘 되시길 바랍니다. 미국의 학비는 정말 비싸군요...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라는데 저는 이게 제일 어렵다고 생각해요ㅜㅜ 라로님께서는 잘해내시라 믿습니다.

라로 2022-11-20 18:13   좋아요 1 | URL
방금 페이퍼 올리고 나왔더니 파이버님의 댓글이!!^^ 감사합니다, 정말 잘 되어야 할텐데... 고민이에요.^^;;
미국 학비가 정말 너무 비싸요!!! 더구나 $가 오르면 한국에서 유학오시는 분들은 어떻게 할까 그런 걱정도 합니다. 자기 PR 의 시대라는 말이 벌써 한 20년 전에 나온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네요. 뭔가를 했어야 하는데 한 게 하나도 없어서요.^^;; 어쨌든 격려의 말씀도 감사드리고 좋아요도 늘 감사합니다!!^^
 

나 혼자만 이런 수렁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오해, 어쩌면 그런 오해를 기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한 구절을 대할 때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 내 눈앞을 스쳐가는 삶의 굽이굽이들. 그걸 지나고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무슨 전투를 벌이겠다는 생각이 누가 애초에 있겠는가. 그저 삶의 감당이 그토록 어렵고, 외연이 넓어지면 감당할 것도 그만큼 더 많을 것일 뿐이리라. 그런 전투, 삶의 와중에는 이런 힘 있는 필적을 읽는 기쁨의 순간, 아름다운 사치도 있다.

"힘드시지요? 지금 아주 높은 산에 오르는 중이셔요. 많이 힘드신데 저희가 같이 못 가네요. 하지만 저희도 곧 따라갈 거예요. 산에도 늘 혼자 가셨지요. 지금 올라가시는 산은 아주 높은 산이니 올라가시면 장관일 거예요. 높은 산에서 보신 것은 늘 글로 쓰셔서 들려주셨지요. 지금 가시는 높은 곳 이야기도 저희에게 들려주세요."

그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수업에서도 나는 특별한 교재가 없다. 교재 대신 학생들이 학기 말에 ‘나의 책’을 만들어낸다. 그 이유는 학생들 스스로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내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때문이다.

또 그들 스스로에게서 우러나오는 것을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게 여기는 때문이다.

온갖 공부를 다 하면서도 탈북자를 돌보고, 독거노인을 돌보고, 고가의 백혈병 치료제로 폭리를 취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을 조용히 날카롭게 성토하던 의학도 영수는 언젠가 슈바이처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토마스 만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제 아무리 멋진 말에도 ‘사랑이 없으면 꽹과리 소리일 뿐’이라는 구절을 그토록 눈여겨 읽었던 갑석이는 좋은 의사 선생님이 되어 있다. 세상에 그런 의사 선생님이 계시다는 생각만으로 즐겁다.

그런데 그 귀하고 빛나는 이들은 내가 알기 때문에 그렇게 귀하고 빛난다.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모를 뿐이지,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다 그렇게 귀하고 빛날 것이다.
젊은이들은 더더욱.

만만치 않은 직업에 공부까지 하느라 시간이 넉넉할 리 없건만, 내가 부끄러울 만큼 엄청나게 많이 책을 사고 읽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대신 다른 물건 같은 건 안 산다고 했다.(그 어느 온갖 명품을 걸친 사람이 이렇게 빛날 수 있겠는가.)

짝짓기에도 부모가 나서고, 애 낳는 데도 부모가 나서고, 애 엄마가 애 젖먹이는 것도 버거워하고, 밥 먹이는 것도 버거워하고, 한글 가르치는 것도 힘들어 한다. 이러다 국민 전체가 단체로 미성년화되는 건 아닌가, 그렇게 아이고 어른이고 다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 국력이 저하되는 게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기우마저 든다. 무엇보다 그런 약해진 사람들이 과도한 경쟁으로 공격성만 커지는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지나치게 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방치되거나 심지어 버려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모두 귀해지는 길이 없을까. 제도 탓으로 돌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만들어낼 제도도 없거니와 제도가 다 해결해 줄 일도 아니다.

가끔씩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니나는 유난히도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친구들의 소중함을 좀 더 가르쳐야 할 것 같다. 내가 남을,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나도 자동으로 귀해지는 이 자명한 이치를 마음에 새겨주어야 할 것 같다. 능률화가 가속화되는 미래에는 인구의 8할 정도는 불필요하다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고, 빈부격차의 심화도 심각하게 체감된다. 우리가 파멸로 가는 공룡이 될 수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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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편지들이 오갔다. 직접 만난 것은세 번에 불과하지만 참으로 소중한 사람 하나를얻었다고 생각했다. 학문과 시를 한꺼번에 이야기할 수 있는,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한 차례는그 댁을 방문하기도 했다. 화가인 사모님이 정성들여 가꾼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집 안에 있는 사모님의 미술작품들도 둘러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로 와 있는데마침 손님으로 온 어느 젊은 독일 학자가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아말 전한 사람 면전에서 이리저리 전화를 해보았다. 사실이었다.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집 정원에서 새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은 다리속 혈관에서 혈전이 생겨 그것이 몸을 돌다가하필 폐혈관의 판막에 걸려 혈관을 막았다는 것이었다.

한 손을 놓쳐버린 것만 같았다. 섰다 앉았다 하던 나는, 그의 시집에다 내가 시를 덧써 그에게부칠 때 복사를 떠놓은 것을 가지고 작은 수제본 시집을 만들었다. 맨 앞장에다 그분 이름을쓰고 ‘추모’라고 적었다. 다섯 부를 만들었다.
그래서 한 부는 마냥, 어디든 들고 다녔다. 조금위로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게쉥크템 가울, 지트 만 니히트 인스 마울 Geschenktem Gaul siehtman nicht ins Maul."
각운이 잘 맞아서 울림이 좋은 이 독일 속담은 직역하면 "선물받은 말(馬)은 주둥이를 벌려보지 않는다"이다.

이러쿵저러쿵 해서는 안 된다는 생활의 지혜가배인 속담이다. 선물에 담긴 성의를 감사히 받지 못하는, 모자라고 못난 욕심 많은 사람들에대한 따끔한 일침이기도 하다.

그 아침에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며 그날 내가받은 선물들을 다시 생각했다. 그동안 받은 너무도 많은 선물들이 눈앞을 오고 갔다. 마침 반가운 친구가 전화를 해서 그 반가움에 생각은더욱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전화한친구에게 "소식이 큰 선물이네" 하며 오늘이 내생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친구가 놀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기쁨이 네게도 조금 반사되기를 바란다." 내가 무얼 나누어 그런 말을 듣나 싶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염치없이 큰 기쁨이었다. 정말로 많은 선물을 받은날이었다.

무슨 큰 일, 무슨 큰 선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하겠는가. 진정한 관심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온말로 서로 좀 기운 나게 할 수는 있겠지. 그럼으로써 실은 내 자신이 가장 기쁠 테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큰 선물이겠구나.

말馬을 선물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선물할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 주둥이를 들여다볼 기회도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건너가고 건너오는 마음의 말은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자신에게 선사하는 지혜야말로 ‘말‘ 선물에 비할 바 없는 큰 기쁨이다.

쿤체 시인의 팔십 회생신을 기지난여름에는념해서, 근처의 오버른첼 성에서 콘서트를 하고, 참석자들은 작은 한옥도 두루 둘러보았다.
쿤체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들을 우리 국악 연주자들이 가서 독일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했다. 유럽 각지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주었다.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는지. 다들 기뻐하고 감탄하고, 파사우 시장은 커다란 꽃다발을내게 안겨주기도 했다. 도나우 강 위로는 큰 무지개가 떴었다.

시심을 가진 사람이, 또 그런 사람을 아끼는사람이, 사람 못할 짓 하며 살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 세상이 아주 조금은 살 만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참 기쁘고, 쏟았던노고는 잊힌다.

이 부부는 전 세계에서 나온 괴테의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거의 모든 판본을 망라해서 가지고 있다. 내로라하는 괴테전문가들도 《헤르만과 도로테아》에 관한한 자기들을 찾아온다고 부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그런 장서가가 된 이유는 아주 소박했다. 남편의 이름이 헤르만이고 아내의 이름은도로테아여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부부가 만나고 보니 이름이 몽룡과 춘향이어서세상에 있는 《춘향전》 판본 및 관련서를 다 모아버린 셈이다. 초라해 보일 정도로 소박한 그들의 생애가 그 책들로 하여 얼마나 빛났을까.

괴테 하면, 아직 그 글을 깊이 읽어볼 기회가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쩐지 너무 거대한것 같고, 너무 잘난 것 같고, 뭔가 많은 것을 누렸을 것 같아 거부감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나예컨대 그런 힘 있는 구절 하나가 삶을 누리기만 한 사람의 손에서 그저 우연히 나올 수 있겠는가.

나 혼자만 이런 수렁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오해,
어쩌면 그런 오해를 기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한 구절을 대할 때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 내 눈앞을 스쳐가는 삶의굽이굽이들. 그걸 지나고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고마울 뿐이다.

무슨 전투를 벌이겠다는 생각이 누가 애초에있겠는가. 그저 삶의 감당이 그토록 어렵고, 외연이 넓어지면 감당할 것도 그만큼 더 많을 것일 뿐이리라. 그런 전투, 삶의 와중에는 이런 힘있는 필적을 읽는 기쁨의 순간, 아름다운 사치도 있다.

시심을 가진 사람이, 또 그런 사람을 아끼는사람이, 사람 못할 짓 하며 살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 세상이 아주 조금은 살 만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참 기쁘고, 쏟았던노고는 잊힌다.

그런데 그 귀하고 빛나는 이들은 내가 알기때문에 그렇게 귀하고 빛난다.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모를 뿐이지,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다 그렇게 귀하고 빛날것이다.
젊은이들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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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9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영애 선생님 글 열심히 읽고 계시네요. ^^ 아유 전 이놈의 19세기 여성작가들 좀 벗어나면 다른 책 읽게 될거 같아요. ^^

라로 2022-11-20 15:32   좋아요 0 | URL
굉장히 특별한 분이신 것 같아요, 전영애 샘. 이런 분을 직접 만나뵙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분이랄까요? 겸허해지는 느낌도 들고,, 바람돌이님도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19세기 여성작가 책은 대학때 영문학 시간에 좀 읽었는데,,한국어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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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맘에 들어서 중고로 샀는데 너무 좋은 내용만 읽어도 소화가 안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된 책. 그녀의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수 없지만, 나처럼 남을 너무 의식하는 사람에겐 고마운 조언이 많긴 했다. 그래도 라테 느낌이 많이 나고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 등 가끔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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