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더는 파우더인 것 같지만 에스프레소 파우더를 만드는 공정이 대단 한 것 같다.

Espresso powder is not the same as instant coffee. Espresso powder is made from darkly roasted coffee beans that have been ground, brewed, dried, and then ground to a very fine powder. It‘s much more concentrated than instant coffee, which means you only need a teaspoon.

인스턴트 커피랑은 또 다르다고 한다. 어쨌든 커피 내린 것을건조시킨다는 부분이 가능한 것인가? 그런 다음에 그것을 다시 간다고 하니 대단하다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에스프레소 가루는 저렇게 반짝거린다. 밤하늘의 별빛처럼. 내 이름이 써있는 건 연유통.

어쨌든새로 산 블루 바틀의 에스프레소 파우더로 물을 넣어서 일단 아메리카노로 만든 다음에 연유를 넣어서 마셨는데 베트남 커피 마시는 듯한 느낌이 좀 났다. 사진 참조.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를 읽는데 조경란 작가가 허리가 많이 아프다는 부분을 읽는데 왜 내 허리도 아픈 느낌이 들까? 왜 이런 건 책과 이입이 잘 되는 것인가? 이래서 내가 무서운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이유다. 왜 <과학자의 자화상>같은 책을 읽을 땐 좋다는 생각 말고 이입되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왜 무서운 이야기만 온 몸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이겠지?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잘 읽은 것이고. 뭐 이런 쓸데없는생각이 들었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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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11-28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우더를 뜨거운 물에 녹여서 마시는 건가요? 체나 망에 걸러서 먹는건가요? 사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 거리게 됩니다. 커피향이 날까 해서요 ㅎㅎㅎ

라로 2022-11-30 15:53   좋아요 1 | URL
파우더를 뜨거운 물에 녹여서 핫에스프레소 음료를 드실 수도 있고 차갑게 얼음을 넣어서 아이스로 먹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추워서 아이스 넣어서 안 먹어봤지만 (솔직히 뜨거운 커피가 더 맛나잖아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글구 커피향이 괜찮요. 근데 진짜 신기방기해요.^^;

꼬마요정 2022-11-30 16:39   좋아요 0 | URL
아, 영어에 brewed가 있네요 ㅎㅎ 기술이 대단합니다. 내린 커피를 얼리는 건 뭔가 밥을 해서 냉동밥으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 ㅎㅎ 먹어보고 싶네요.

그렇게혜윰 2022-11-28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린 커피를 말려서 다시 간다?는 거죠??? 그게 또 맛있다는 거죠? 오!!

라로 2022-11-30 15:54   좋아요 1 | URL
내린 커피를 말려서 다시 갈은 거래요. 신기하죠. 근데 맛이 진짜 스타벅스나 다른 곳에서 파는 것처럼 괜춘해요!! 기술이 갈수록!!! ^^
 

고등학교 3학년 때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어릴 때 이런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 내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 실제 내가 통과해온 시간은 3백 년도 더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 P70

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순원의 소설은 거의 다 어머니가1
써주고(『수색 그 물빛 무늬) 아버지가 써주고(아들과 함께 걷는길) 할아버지가 써주고(나무』 망배) 친척이 써주고(『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말을 찾아서』) 초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첫사랑』 『강릉 가는 옛길) 고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영혼은 호수로가 잠든다) 동네 고향 사람들이 써주고(순수) 정말 자기가쓴 건 압구정동엔비상구가 없다』 『은비령』 『19세』등 몇개밖에 없다고 했다. - P71

그래, 그렇게 써주는 사람이 많은데도 나는 늘 내 재능에목이 마르고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 - P71

"나는 소설을 글로 짓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의 소재,
집을 짓는 재료에 따라서, 초가집을 짓는 것과 기와집을 짓는 것과 양옥을 짓는 것, 또 아파트를 짓는 것들은 저마다 공법이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품마다 문체와 분위기가똑같아서 몇 줄만 봐도 이것이 누구 작품인지표가 나는 그런 소설을 계속 써나갈 바에는 바로 지금이라도 대관령으로농사를 지으러 올라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P74

그러나 강원도의 자연을 잘 알기 때문에 무대를 강원도로 잡는 것은 아니다. 은비령」 같은 경우에도 이 작품을 쓸 때까지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 작품을 쓰고 나서 독자들과 함께가봤다. 말을 찾아서』의 경우도 그 작품의 무대가 되는 봉평을 나중에 독자들과 함께 가보고, 서울 가까이에 있는 압구정동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쓰기 전에 사전 조사를 다니지 않았다. 가서 보기는 쉽지만, 가서 보고 나면 오히려 상상력의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 P75

그물 자리를 넓게 잡는다고 반드시 큰 고기가 걸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 P76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건 없건, 몸 상태가 어떻건 간에 매일 꾸준하게, 직업인처럼 쓰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시간과청소를 하는 시간 등을 합쳐서 ‘근무시간‘을 정해놨는데, 그시간을 매일 스톱워치로 재서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 P79

왜 2,200시간이냐 하면,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 2,100시간 남짓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출퇴근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1년에 최소한 2,200시간 정도는 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내 책을 사주는 독자에 대한 나름의 예의이기도 하고, 그런 숫자를 정해놓지 않으면 마냥 게을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야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그나마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P80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도 받는데, 나도 영감의 존재를 믿기는 한다. 그런데 영감을 불러일으키려면 먼저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 결과가나오지 않아도 뇌에 일정 시간 이상 압박을 줘야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할 때 비로소 뒤늦게 답을 얻게 되는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몇 줄 뒤에 다시 적도록 하겠다. - P81

반면 절정에서는 고민해야 할 점들이 많아진다. 폭탄을 하나 터뜨려야 하는데, 그게 앞에서 발전시킨 이야기나 인물과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하고, 소설 전체의 중심을 잡아줄 만한폭발력이나 무게감도 있어야 한다. - P83

벌집을 만드는 것은 꿀벌 개체의 개별 의지라기보다는 그종의 유전 정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벌집이 그런 모양이 되는 것은 벌이라는 종의 생물학적 특성보다는 오히려 수학과관련이 있다. 우리 우주에서는 뭔가를 겹쳐서 쌓아 올릴 때육각형 구조가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소설을 쓰는 작업의 배후에도 그런 거대한 힘과원리들이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 P85

어떤 때에는 의미의 세계가 실재하고, 내가 소설을 쓸 때잠시나마 그 세계에 들어가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듯한 느낌을 맛본다. 나의 존재는 쪼그라든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다른 세계의 의미를 우리 세계에 전하는 영매 같은 역할을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다른 세계의 타자기나 프린터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경우에는 ‘나는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이 그냥 스스로를 쓰고 있는 듯하다. - P87

원고는 늘 안 써진다. 잘 써지는 날은 없다. 안 써지는 날에도, 어쩌다 잘 써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이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날 하루 분량의 원고를 쓰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것조차 되지 않으면 빈 모니터를 바라본 채 묵묵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글이써지지 않아도 물러서지도 도망가지도 않겠다는 비교적 담담한 마음으로, 그런 자세로 이십여 년 앉아 있었던 게 허리에 큰 무리를 준 모양이었다. - P91

서 잠시 누워 있었다. 거실 창으로 환하고 때때로 붉은빛을띠는 빛이 들어와 바닥에 밝은 그늘을 만들었다. 빛이 있어서 만들어지는 그 그늘을 바라보며 얼마쯤 누워 있다 보면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지금 내게 주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은 곧 지나가버릴지도 모른다는 경이로움과안타까움이 함께 몰려왔다. 그 느낌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 P94

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웠으나 고독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열흘.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마침내 냉장고가텅 비었고 커피도 떨어졌다. - P94

계속 걷다 보면 ‘칼(KAL) 호텔‘이 나왔고 이따금 일층카페에 들어가 밤이 늦도록 앉아 있기도 했다. 그 안전한 실내에서 보는 일몰은 해안가 검은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는 것과는 다른 데가 있었고, 자연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호텔 커피숍의 커다란 통창 안에 있을 때가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 P97

세상의 여느 엄마와 딸처럼 별것 아닌 일로, 다른 사람한테는 할 수없는 가장 아픈 말들을 거침없이 주고받으며,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그 돌길을 걸으며 그렇게 어머니와 나는 맹렬히 싸웠다. - P99

"나는 전적으로 공간에 매혹 당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작가가 조이스 캐롤 오츠였던가. "공간이 희망이다"라고 말한 작가는 조르주 상드. - P99

인생에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여기서 살게 되겠지. 다행히 나에게는 일 년에 한두 차례다른 도시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기고 또 스스로 기회를 만들곤 한다. 나에게는 낯선 공간에서의 긴장과 호기심이 늘 필요하고 나는 그곳에서 내가 본 것, 느낀 것, 나를 불편하게하는 것, 나를 더욱 삶 쪽으로 끌어당기게 된 것들에 관해 쓴다. 지금도 종종 서서 쓴다.
어딜 가든 나에게는 푹신푹신한 운동화 한 켤레가 필요할뿐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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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비혼 페미니스트들은 지금까지 살았던 그 어떤 지역에서도 단 한 번도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 거야’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 살 돈이 없어 월세와 전세로 전전하던 대학로나 신촌, 홍대 근처에서 우리는 부평초였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은 ‘미혼 여성’으로 불렸고, 독립생활을 하는데도 ‘자취’하는 것으로 보였다. 결혼하여 온전한 거주를 결정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사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뜨내기, 친해질 필요가 별로 없는 존재들이었다.

"얘가 왜 이래 정말! 너는, 너는 결혼해서 그렇게 좋디? 결혼생활이 아주 행복해 죽겠어?"
"에이, 결혼해서 좋은 여자가 어딨어?"
"그지? 너도 해서 좋지도 않은 걸 뭐하러 추 원장한테 권해? 추 원장도 한번 당해봐라 이거냐, 응?"

"언니들, 내 사주에 남자가 없대요."
"응, 그러니까 결혼할 팔자가 아니라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결혼을 하든 말든 별 상관 없대요. 설사 결혼을 한다 해도 그 남자가 내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대요. 그게 사주에 남자가 없다는 의미래요."
한 언니가 정색을 했다.
"혜인아, 그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여자라면 다 그래. 비혼이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어. 우리 여자들 인생에 그렇게 중요한 남자는 없어."

이 동네 이 사람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죽고 싶으려면, 여기에서 살고 싶기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는 의료 지원이 절실한데 현실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진료하고 증거를 채집해줄 의사, 법정에서 증언을 해줄 의사, 다가올지도 모를 임신이나 성병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의사, 심리적 외상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의사가 꼭 필요했다.

내가 가장 순진했던 그 순간에 ‘순수한 피해자’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내가 고작 할 수 있었던 저항은, 그의 수업 시간에 보란 듯이 다른 과목 공부를 하거나,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정도였다. 도서관 운영위원이어서 도서를 정리해야 한다는 핑계로 수업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도 결국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나를 의대로 보냈나 보다. 나는 의대에 합격한 후 입학식을 앞두고 성폭력상담원 교육부터 받기 시작했다. 의학 교육보다 그걸 먼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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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2-11-29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계시군요.
제가 아는 분의 책이어서 무척 반갑네요. ^^
저는 정작 사놓고 안 읽었는데, 어서 읽어야겠어요.

라로 2022-11-30 15:50   좋아요 0 | URL
앗! 진짜요!!! 이분 넘 멋진 것 같아요!!^^
언제 기회가 되면 소개받고 싶은 분이네요.. 불가능하겠지만.^^;;
어서 읽으시길 바랍니다. 감은빛님은 아는 분의 책을 어떻게 읽으실지 넘 궁금해요.^^
 

할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체구가 자그마하셨다. 산소줄을 코에 꽂고, 가슴에는 마약성 진통제 패치를 붙인 채 고르릉거리며 힘없이 누워 계셨다. 산소줄, 소변줄과 사타구니에 꽂혀 있는 중심정맥관.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관리해야 할 것들이구나. 나는 할머니를 진찰한 후 보호자인 며느님께 앞으로 어떤 주기로 방문할지, 어떤 서류가 더 필요한지, 암성 통증 관리를 어떻게 할지, 영양 관리는 어떻게 할지 등을 의논했다.

사실 몸의 모든 기능들이 너무 쇠약해져 있어 투석을 견딜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던 터였다. 그로부터 2주 정도를 2~3일에 한 번씩 왕진을 갔다. 혈뇨와 방광염으로 인해 이수자 님은 계속 "소변 마렵다"며 잠을 한숨도 못 자고 불편해하셨고, 주치의들과 간호사는 최대한 불편을 줄여드리기 위해 소변줄을 꽂고 방광세척을 했다. 살림의원의 막내 간호사인 민정 선생님이 출근길 아침마다 그 집으로 가서 방광세척을 하고 의원으로 출근하곤 했다. 혈뇨도 많이 줄고, 어머니의 표정도 편안해지셨던 며칠 후, 열여섯 시간을 편안한 숨소리로 깨지도 않고 주무신 후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장례를 치른 후 아드님이 따로 의원을 방문하여 감사 인사와 함께 들려주신 이야기이다.(어머니 이름으로 기부를 해주셔서, 다른 건강약자를 지원하는 의료비로 사용하기로 조합원들과 함께 결정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아픈 와중에도 증손주를 위해 성냥개비에 찔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옛날 햇살이 잘 드는 방 금침 위에서 죽음을 향해 한 발씩 다가가고 있으면서도, 증손주의 병원놀이에 기꺼이 한몫 참여하셨던 내 증조할머니가, 연분홍색 꽃반지 위에 겹쳐 보였다.

"정신과 선생님들은 남자들이네요. 어쩌다 보니 염증을 째고, 용종을 떼어내고, 치아를 뽑는 등 외과적인 시술을 하는 의사들은 모두 여자들이고, 피를 전혀 보지 않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정신과 선생님들만 남자들이군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얘기하면서 보니 뭔가 재미있네요."

수술장에서 남자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지위가 높아진다고 한다. 인턴-전공의-전임의-교수 순으로 나이가 많아지면서 지위가 올라간다. 반면 여자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지위가 낮아진다고 했다. 인턴이나 전공의(즉 의사)-간호사-청소 노동자 순이었다.

그 인턴은 ‘나이 든 여자 외과 의사’의 존재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교수님을 청소 노동자로 오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 무슨 중요한 인계 사항처럼, ‘청소 여사님처럼 보이는 분이 바로 교수님’이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냥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면 되는 것을, 그것을 인계까지 하다니 별스럽다고 생각하며 나는 수술장에 들어갔다.

수술하는 과에도 여자 의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인턴 시절 마취과를 돌고 있을 때였다. 조용한 수술방 분위기에 돌연 깨달았다. 내가 들어온 수술방에 여자들만 모여서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변하려고 하면 최소한의 임계점이 필요하다. 일대일 대면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보건의료산업의 서비스 특성상, 그 임계점은 일정한 정도의 숫자로 형성된 여성 보건의료인들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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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공부할 나이에는 집에 쭈그리고만 앉았다가 나이 들고 형편이 조금은 나아졌을 때, 나는 배울 기회만 있으면 정말이지 앞뒤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달려갔다.

번번이 무리해서 떠나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 앉으면 숨 고를 사이도 없이 일거리를 펴게 된다. 떠날 때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발표장으로 달려가야 할 상황이 대부분이고, 돌아올 때는 벅찬 경험이었던 지난 며칠을 기록한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 못 챈 그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장면이 마음을 오래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작은 ‘셈’을 하며, 도토리 키를 재며 우리가 허비하고 있는 시간, 그 시간에 우리가 놓친 것은 얼마나 클까. 우리가 각박하게 만들고 있는 세상은 결국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몸담고 있어야 하는 곳 아닌가.

그 어린아이의 눈에도 선명할 만큼 평생 책을 읽고 쓰고 살아왔다. 그러느라 버려야 했던 것도 참 많고, 그래도 사람 도리는 하고 살고 싶어서 때로는 죽을 듯 무리하며 살아왔다. 왜 다른 길은 가지 않았을까. 실리를 추구하는 다른 길도 많았을 텐데.

돌아보니 책을 읽는 시간은 무엇보다 생각하고 탐구하는 시간이다. 어린 날, 젊은 날 그토록 진지하게 많이 생각하였으니 자기가 갈 길도 신중히 찾았을 것이다. 찾은 길은 또 성심껏 갔을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가니 누구든 자기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책은 그래서 읽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눈 반짝이던 사람에게는 여전히 대답이 안 될 것 같다. 물음 자체가, 책을 읽으며 스스로 찾는 답만이 힘을 갖는 그런 물음인 것 같다. 그만큼 중요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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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11-27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시간과 글을 쓰는 시간은 생각에 집중하는 시간이더라고요. 평상시엔 생각을 별로 안 하고 그냥 살아요.ㅋㅋ

라로 2022-11-28 14:47   좋아요 0 | URL
저는 글을 쓸때도 생각에 집중을 하지 않으니 생각이 깊지 않고 뭐랄까 그게 이유인가 싶다는 생각이 댓글을 읽으며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