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과 3월 두 달에 걸쳐 함께 읽기로 했던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이틀 넘겨서 완독했다.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22년 1월이었고, 한 번 멈췄더니 다시 손이 가지 않아서 '이러다 못 읽겠구나' 했는데 다른 분들과 함께 읽은 덕분에 완독할 수 있었다. 느슨하나마 함께 한다는 것은 힘이 된다. 먼저 완독하셔서 용기를 주신(?) 햇살과함께님 감사드리며 곧 다른 분들의 글도 올라오길 기다리겠다. 




보부아르의 논지가 집약된 1권은 감명깊게 읽었다. 1949년이란 시기 (프랑스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지 얼마 안된) 에 이렇게 논리를 확립하고 책을 낸 보부아르 너무 똑똑하고 멋진거다. 2권은 1권에서 주장한 여성의 현실 상황에 대해 (많이) 자세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1-3부는 예시가 매우 자세하여 그것을 세세히 읽다보면 지금 이 예시로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망각하게 되면서 (...) 기계적으로 읽게 되곤 했다. 저번에도 썼지만 2권의 상세한 예시들은, 여성보다는 여성을 이해하고 싶은 남성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여성은 이미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느낀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막연하게 느꼈던 것들이 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며 역시 이 언니 너무 멋지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이 두꺼운 책을 기꺼이 완독할 만큼 여성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남성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지는 잘 알 수 없지만. 




2권의 2부 마지막쯤에 가서는 지쳐갔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거야? 언제까지 이 조금 아는 이야기가 이어지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을 때쯤에는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하는 생각만 들었고. 


3부 '정당화' 에서는 세 유형의 여성 (사랑에 빠진 여자, 나르시시즘의 여자, 신비주의 여자) 분류를 통해 


'타자로서 머물러 있기를 강요하는 세계에서 주체의 불가능한 자기실현의 시도가 어떻게 실패로 끝나는지를 보여준다' (해제 중, 1004쪽) 


라고 하는데, 단순히 세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에도 약간 의문이 있었지만 이 부분의 내용은 잘 공감이 안 되었다.. 2부 마지막에서 '여성 조건의 경제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재성의 한가운데서 자기의 실존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한 경우를 3부에서 이야기하겠다고 했는데, 현재는 이미 '여성 조건의 경제적 변화' 가 약간 이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파트에 비해 3부의 내용은 시대를 초월하여 적용하기에 좀 무리있는 내용이 많지 않았나 싶다. 



1부 다음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해방을 향해' 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4부, 14장 '독립한 여자'였다. <제2의 성>이 부담스럽다면, 1부와 4부, 결론만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많이 길지 않고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 힘들지 않다.


4부를 읽으며 가지고 있던 질문은 2부 마지막쯤에서 생각한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였고, 그래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그녀에게는 자기가 임의로 가장 어려운 길을 도맡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자문한다. 여자는 부단히 자기의 결심을 새롭게 일신해야만 한다. 그녀는 자기 앞에 하나의 목표를 곧게 세우고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그녀의 걸음걸이는 소심하고 불확실하다.  ... 그러므로 그녀는 그만큼 더 우아하고 경박하게 보이려 전념할 뿐만 아니라 자기 도약을 억제한다.  ... 그녀는 힘을 쓸데없이 쓰지 않고 아껴 두겠다고 결심한다. ... 그녀는 인내와 근면에만 성공의 기회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특히 약간의 창조성이나 독창성, 어느 정도의 사소한 발상을 요구하는 연구나 직업에서 그런 타산적인 태도는 해롭다. ... 지나치게 성실한 여학생은 권위에 대한 존경과 박학다식의 무게에 눌린 나머지 시야가 가려져서 비판적인 감각과 지성을 죽여 버린다. ... 신중함은 평범함이 되어 버린다. 여자에게서는 모험이나 무상의 경험을 하려는 취미, 사심이 없는 호기심을 발견하기 어렵다. ... 이런 방법으로는 명예로운 이력을 실현할 수는 있어도 위대한 행동을 실현할 수는 없게 된다. ...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여자에게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를 잊는 것이다.  (947-951)




보부아르가 생각하는 '초월'은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목표를 정하고 실현함으로써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로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뜻 보기에 이 '초월'은 남성적 사회에서 추구하는 성취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 물질적인 성공 같은 것은 이 '초월'의 의미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보부아르는 학자였으니 공부와 관련한 성취를 자연스럽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다양한 가치 혹은 현재의 상태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발전' 이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부아르가 이야기한 '도약' '새로운 일신' 이 꼭 그런 선형적인 개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도달해야 하는 '정도' 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 같다. 눈치보지 말고 겸손하지 말고, 노력을 아끼지 말고, 꼭 해야 하는 일 말고 다른 것도 해보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욕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해 보자 라는 이야기인 것. 



일정 정도의 자격을 갖춘 뒤, 그리고 특히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뒤에 나는 특별한 목표 없이 적당히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가정에 더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이미 할만큼 했다는 생각으로, 쉽게 자기만족했다. 작년에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업계의 대충 희망' '진짜 희망이 나타나기 전의 대타 같은 희망' 이 되고 싶다, 그 정도면 됐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 말 - 올해 초 쯤부터는 업계와 상관없이 그냥 좀더 내가 하고싶은 것을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현상유지하고 즐겁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이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충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 더 이상 '나' 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좀더 잘 해보고 싶다라는 건 딱히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것만은 아니다. 북플에서 '읽었어요' 그리고 별표 다섯 개를 누르고, 조금 더 한다면 문장 몇 개를 옮긴 뒤 내가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을 적지 않고 넘어가는 대신, 귀찮음을 무릅쓰고 머리를 굴려가며 뭔가 적고 넘어가겠다는 결심같은 것이다. (글을 더 잘 쓰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것은 내가 눈치를 보느라 못 쓰는 것이 아니고 그냥 나의 한계이다-라고 주장해본다) 어쨌든 내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좋다. 




<제2의 성>을 읽고 남성과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초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는 이야기만 하니 좀 핀트가 어긋나나 싶기도 한데... 내가 그런 내용을 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남성과 함께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그에게 종속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인 것 같다. 그는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남성과 여성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아이에게도 그런 생각을 이제 말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이 평안한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이 상태에서 '초월' 에 신경쓰려고 한다. 













+ <제2의 성>을 읽고 두 권의 책을 더 읽어보려고 하는데, 하나는 보부아르의 평전이다. 이 책은 전에 사르트르와 계약관계를 맺는 부분쯤까지 읽었다. 보부아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았으니 <제2의 성>을 읽는데 사전 정보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제2의 성>을 읽어보니 보부아르는 그 이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서 왜 <제2의 성>을 쓰게 되었는가까지는 읽었어야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이정순 번역가의 해제를 보면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을 쓴 이후 (사실 <제2의 성>에서는 학문적인 태도로, 약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좀더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고 한다. 몰랐던 사실인데 (...) '343 선언'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그래서 보부아르가 왜 '여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로 변모했는지 알고 싶고, <제2의 성> 보다 늦은 시기의 보부아르의 글도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에 대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그런데 4월 읽을 책에 넣어놓질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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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4-03 18: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하님!
완독 축하드려용^^

건수하 2023-04-03 18:21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 제 글이 조금 힘이 되면 좋겠어요 ❤️

DYDADDY 2023-04-03 18: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수하님의 완독을 축하드려요. 힘들다 하셨는데 끝까지 읽으셨군요. ^^
보부아르의 시기에는 가장 기초가 되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불가능해보일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적 독립이 가능하다면 그 위에서 여성의 주체적 존립을 시도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상황이 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남성이지만 읽고 싶은 책에서 항상 마음 한켠을 자리잡고 있는 책이에요. 저도 계획이 잘 풀린다면 6월쯤에는 읽을 것 같아요. 계획이 잘 풀린다면요.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4-03 20:55   좋아요 3 | URL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 상태라 해도 그렇게 세 가지 유형만으로 나누는 건 너무 단순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경제적 독립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대디님의 계획이 궁금하네요, 술술 풀리길 기원하겠습니다 ^^

DYDADDY 2023-04-04 12:24   좋아요 1 | URL
일전에 소위 진보 커뮤니티라는 곳에서 여성의 취업율과 임금격차를 교육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비방하는 글을 보고 대판 싸운 적이 있고, 일명 빨갱이(?)라서 하부구조가 선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하다보니 수하님의 글을 잘못 읽은 것 같아요. ^^;;;
계획은.. 수이님이 루카치에 대한 글을 올리셔서 같은 책은 아니지만 또 빨갱이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ㅋㅋㅋㅋ 지금 읽고 있는 빨간(표지는 검은 색이고 출판사 이름은 무려 ‘거름‘입니다. ㅋㅋㅋㅋㅋ) 책이 끝나면 보부아르로 넘어갈 계획이에요. ^^

건수하 2023-04-04 13:46   좋아요 1 | URL
하부구조도 선행되어야죠. 그건 당연한 게 맞고요...
다만 하부구조의 선행이 끝나지 않아도 다른 것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제 경제적 독립은 그만하면 됐어 라는 뜻은 아닙니다 ^^

<역사와 계급의식> 읽으시는거 봤답니다. 화이팅!

다락방 2023-04-03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합니다! 읽어두면 정말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초월에 집중하신 것도 너무 좋아요.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주는 영향은 다 다른 것이니까요. 그런걸 알게 되어서 알라딘이 좋고 같은 책 읽는게 반갑습니다! :)

건수하 2023-04-03 20:57   좋아요 1 | URL
인용하거나 찾아볼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읽기도 힘든데 어쩌면 이렇게 방대한 내용을 정리했을까요 ^^

쓰면서 좀 편협한가 생각도 했는데 다락방님 댓글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

스스로를 얽어매지 않는 것이 요즘은 더 큰 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서괭 2023-04-03 2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수하님 멋져요!!!👏👏👏👏👏
저도 2부 끝나가는데 지칩니다 ㅋㅋ 1부에 비해 난삽한 느낌ㅜㅜ 4부가 좋다고 하시니 기대되네요!
저도 아침에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만 요즘 방해가 더 심해져서 =_=;; 어서 읽었어요에 올리고 싶어요!

건수하 2023-04-03 20:58   좋아요 3 | URL
3부도 조금 힘드실테지만 4부부터 해제까지가 참 좋답니다. 독서괭님 힘내세요! 🙌🙌

단발머리 2023-04-03 21:2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여자에게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를 잊는 것이다.

저도 이 책 읽었는데 ㅋㅋㅋ 이런 중요한 문장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수하님 글에서 귀한 문장 주워갑니다~~
완독 축하드려요. 언제던가요, 정희진쌤이 ‘페미니스트 중에 <제2의 성> 읽은 사람 없다‘ 이런 농담하셨는데, 아.... 이렇게 <제2의 성> 읽으신 분 한 분 더 늘었네요.

건수하 2023-04-04 09:11   좋아요 2 | URL
저 문장 정말 좋죠? 그렇다고 이제 다 괜찮다, 너만 잊으면 된다 그런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읽었다고 하기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긴 부분이 꽤 되긴 하는데요 ㅎㅎ 철저하게 다 이해하기란 힘들것 같습니다 ㅠㅠ

이제 저도 <제2의 성> 읽은 페미니스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군요. 뿌듯~

햇살과함께 2023-04-03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수하님 막판 스퍼트!! 완독 축하드려요~!!
제가 기를 좀 드렸다니 기쁘네요 ㅎㅎ
저도 보부아르 평전 읽고싶어요. 가부장제의 창조 먼저 읽고요..

건수하 2023-04-04 09:12   좋아요 2 | URL
부지런한 햇살과함께님 큰 힘이 되었답니다. 벌써 가부장제의 창조 읽고 계신가요?
평전은 그냥 설렁설렁 tts로 듣고 있습니다. 재미있네요 ^^

햇살과함께 2023-04-04 09:23   좋아요 2 | URL
이번달 책이 만만치 않다고 해서, 가부징제의 창조는 월말에 읽으려고요^^

책먼지 2023-04-04 1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하님 진짜 고생하셨어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이 책 읽으면 보부아르 전기 진짜 읽고 싶어지죠!! 저도 그래서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사놓고 1년 넘게 묵히는 중😱 책장에서 꺼낼 때가 온 것인가.. 저는 현실과 화해하려고 페미니즘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수하님 적어주셨듯 어떻게 살아야할지 힌트를 얻어보려고요!!) 와 맞아 이거였어하고 깨우치며 후련해지는 단계와 이 현실을 도저히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모르는 단계가 반복되는 것 같아요😭 수하님 언어를 빌려오자면 어느 날엔가는 ‘초월’에 이른 듯 편안하다가 또 어느 날엔 대혼돈.. 아마 이 진자운동은 평생 계속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진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삼아보려고 합니다!! 수하님의 초월이 기대됩니다💕

건수하 2023-04-04 13:41   좋아요 4 | URL
책먼지님 감사해요 ^^ 말씀대로 그 진자운동을 감당하려고 계속 책을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완성될거라 생각하진 않고... 계속 읽으며 생각하며 살아가야할 것 같아요 :)

- 2023-04-07 1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이 글 이제봤어요! 이미 일과 엄마됨 거기에 독서까지 끊임없이 초월해온 수하님 이지만! 페미니즘과 읽고 쓰기에 더 ‘기투’하겠다는 의지로 읽겠습니다💪 너무 든든해요💕
 

3월은 갔고 벌써 4월 3일이니 간단히 마무리해야겠다. 


3월 완독한 책은 


그림책 11권 에세이 2권 (비비언 고닉) 한국여성작가소설 6편 각본집 1권 자기계발서 1권









<제2의 성>은 3월에 다 못 읽고 4월로 넘어가버렸고 ;ㅁ;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읽고 잠시 각성했었으나 어느새 글쓰기를 놓아버렸다.

3월은 가혹했다고 변명을 해보면서 다시 각성하기로.




비비언 고닉 에세이는 읽었지만 리뷰대회에는 응모하지 않았고 

여성주의책같이읽기 책도 펴보지 못했다. 

그래도 <제2의 성>을 읽었고 오정희와 강신재라는 작가를 발견했으며 

아이 보라고 + 궁금해서 빌려왔던 그림책들을 반납 전에 몰아서 봤는데, 바쁠 땐 그게 위안이 되고 좋았다. 





3월에 산 책은.. 이래저래 많다. 뭐 자주 책탑 올리시는 분들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건 아닌데 ㅋㅋㅋ

읽은 책에 비해 여전히 많다. 
























그래도 이 중 한 권을 읽었고, 한 권을 읽기 시작했으며 한 권을 곧 읽을 것이니까... 괜찮다. :) 

이제 웬만큼 사 모아서인지 (안 읽은 책이 많아 죄책감이 느껴져서인지) 요즘엔 사고싶은 책이 그리 많지 않아 다행이다. 




4월에는 











북클럽에서 이런 책들을 읽을 예정이고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읽을 예정이며 (읽던 책이 두 권 껴있다)










재미있는 것도 읽어야지 싶어서 이걸 읽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오래 묵혔는지 번역본 나오기 전 산 원서이고 (...)












그리고 4월의 여성주의책같이읽기 도서, 읽기 힘들 것 같지만 시도는 해 보려고 한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 '약속' 모두 내가 별로 관심없는 단어들이고 

어려울 것 같아서 끌리지는 않는다. ^^;



<제2의 성>을 주말동안 열심히 읽었더니 어느새 3일이 되어버렸다. 












한 권을 4월의 첫 책으로 주문했고, 한 권을 담아두었다. 








4월이 가기 전에 이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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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03 15: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신재라면 <젊은 느티나무>의 그 강신재 아닙니까! ㅋ ㅑ-
고등학교때 여동생이 저보다 먼저 읽고 언니 읽어봐, 해서 읽었다가 완전 반해서 몇 번이고 읽었던 책입니다. 비누냄새 나는 남자에 대한 로망의 시작이 바로 이 책 아닙니까.

오빠. 그는 내게 무리와 부조리의 상징이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ㅋ ㅑ -

건수하 2023-04-03 15:52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비누냄새 ^^ 저는 이번에 처음 읽었어요.

제가 읽으려고 했던 건 원래 그 소설은 아니었고 <해방촌 가는 길> 이란 소설이었답니다 :) 그런데 같은 책에 들어 있어서 그것도 (제목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아서) 읽었지요. 두 소설이 분위기가 많이 다르더라고요.

햇살과함께 2023-04-03 22:12   좋아요 0 | URL
캬! 다락방님도!
저도 사랑하는 단편입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에 나온 지문 보고 반해서 찾아 읽은 단편이에요!

DYDADDY 2023-04-03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균 이틀에 한권을 읽으신걸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요. 숨쉬듯 읽는 분에 수하님도 추가해야겠어요. ㅎㅎㅎㅎ

건수하 2023-04-03 17:45   좋아요 1 | URL
책표지를 넣어두긴 했는데, 한국단편소설은 책 전체를 읽진 않았습니다 ^^;;
그리고 그림책은 금방 읽지요 여운은 길게 남지만 :)

DYDADDY 2023-04-03 18:44   좋아요 1 | URL
단편선은 마음에 와닿는 단편부터 읽어고 나중에 나머지를 읽으면 될거에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때그때 읽고 싶은 단편들이 있으니까요. 굳이 비유하자면 어릴 때의 과자 종합세트같다고나 할까요. ㅎㅎㅎ (가끔 정말 맛없는 것은 몰래 버리기도 했어요. ㅋㅋㅋㅋ)

2023-04-03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3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4-03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하님 덕분에 오정희 소설 이달에 읽을 예정입니다^^ 일단 한 권이라도 읽어보려구요. 바쁜 와중에도 이리 많이 읽으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저는 집안일도 거의 안하는 나이롱 주부인데도 주중엔 넘 피곤하네요ㅜㅜ 4월도 즐독하시길. 화이팅!

건수하 2023-04-03 17:48   좋아요 1 | URL
오정희 소설 전 인상깊게 읽었는데,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좋았다고 얘기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그래도 추천하고 싶은 소설들이었어요. 단편소설집에서는 소설 한두 편씩만 읽어가지구요... 많이 읽은 것은 아닙니다. 부끄럽네요 ^^;

일단 4월은 <제2의 성>을 끝냈다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

Falstaff 2023-04-03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에는 영숙이가 쓴 책을 읽으실 거군요. ㅎㅎㅎ

건수하 2023-04-03 17:50   좋아요 1 | URL
영숙이.. 영숙이가 누구일까요? 신경숙 작가인가 했는데 검색해도 안 나오고 ^^;;
좀 찜찜하지만 일단 읽어보려 합니다 :)

Falstaff 2023-04-03 18:01   좋아요 1 | URL
영숙....은 원래 이름이 있었는데요, 초성자음 부끄럼탈락 현상 때문에 영숙이가 된 겁니다.

건수하 2023-04-03 18:20   좋아요 1 | URL
저의 느낌이 틀리진 않았군요 ^^;; 변명하자면 제가 고른 책은 아닌데.. 하여튼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

단발머리 2023-04-03 21: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많이 읽으셨어요! 저는 3월에 2월보다는 많이 읽었으나 ㅋㅋㅋㅋㅋㅋㅋ 여전히 부진하며 ㅋㅋㅋㅋㅋㅋ
특히 <제2의 성> 완독 축하드리고, 4월 여성주의 읽기 같이 하신다니 무척 반갑습니다!!

건수하 2023-04-04 09:09   좋아요 2 | URL
칸이 많이 채워져있긴 한데 그림책이 많아서요. 읽은 양은 많지 않답니다.
단발머리님 많이 읽으셨던데요? ^^

4월 여성주의 읽기... 제가 시도는 해 본다고 썼는데.. 무척 반가우신거 맞습니까 ㅎㅎㅎ 여튼 시도는 꼭 해볼 생각입니다 :)

책먼지 2023-04-04 1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수하님 저도요!! 저는 일단 행복에서 백스텝 밟고 약속에서 후다닥 도망!! 요거 원서 pdf 파일로 돌아다니길래 챕터 1만 살짝 읽어보려고요!!

건수하 2023-04-04 13:42   좋아요 1 | URL
책먼지님도 저런 ‘긍정적‘ ‘낙관적‘인 단어에 거부감 있으신가요 ㅎㅎㅎ
원서 pdf 파일이 돌아다닌다고 살짝 읽어보실 수 있는 책먼지님 멋짐 뿜뿜~👍👍

책먼지 2023-04-05 08:21   좋아요 1 | URL
저 책 편식 정말 없는 편인데.. 저런 거에 약간 흠칫하게 되어서.. 아무리 희진쌤 추천이라도 인생수업 이런 거는 선뜻 손이 안가더라고요..
후후후.. 이러려고 제가 지난 날 피터지게 영어 공부를!!!🔥

건수하 2023-04-05 08:34   좋아요 1 | URL
인생수업… 저도 그래요 😅
 

쿨하고 시크한 속마음은 따뜻한 서재인으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으하하하

<제2의 성> 다 읽으면 읽겠어요. 감사합니다 ❤️

(내일이 31일..)






















(치우고 찍었으나 칼자국에 커피얼룩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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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3-30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하님 눈에만 보이는 칼자국 커피얼룩 ㅎㅎㅎㅎ 말씀하셔서 부러 키워 봤어요.^^

건수하 2023-03-31 10:23   좋아요 0 | URL
칼자국은 어쩔 수 없지만 커피얼룩은 좀 닦고 찍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괜히 실토했군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3-03-30 2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어디가 얼룩이고, 어디가 칼자국인가?
처음엔 책은 넘나 깨끗한데?
내 눈이 침침하구나! 그러면서 봤네요.
전 난티님 댓글 보구서 키워서 봤습니다ㅋㅋㅋ

건수하 2023-03-31 10:24   좋아요 1 | URL
죄송합니다 키워 보시게 만들어서 :)

잠자냥 2023-03-31 0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찾았다! ㅋㅋㅋ 키워보구 둘 다 찾음 ㅋㅋㅋㅋ

건수하 2023-03-31 10:24   좋아요 1 | URL
다들 키워보셨군요
알라딘 서재는 15초 유지할 필요가 없는데 ㅋㅋㅋ
 
밤하늘을 봐! - 별빛의 비밀을 찾아서 너머학교 톡톡 지식그림책 3
제이컵 크레이머 지음, 스테파니 숄츠 그림, 하미나 옮김 / 너머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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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학교에서 그림책도 나오는 지 몰랐네, 내용 좋다. 아이들이 좀 지루해 할 수도 있지만, 다 읽는다면 얻는게 많을 듯 😊

하미나 작가가 번역한 책이라 더 반가웠다. 미괴오똑 보다 먼저 나온 책이라 역자 소개에 그 책은 없었는데, 그 책 제목이 들어갔으면 재미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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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9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9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9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9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9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0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건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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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 평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밑줄은 저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으므로 조금 더 길게 써보기로 한다. (길게 쓰는 것도 어렵지만, 100자 이내로 쓰는 것도 어렵다) 



<제2의 성>에서 '어머니' 라는 제목이 붙은 장은 낙태 이야기로 시작했다. <제2의 성>이란 책이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을텐데, '어머니'라는 장을 시작하는 방식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2의 성>이 출판된 1949년으로부터 14년이나 지난 1963년 아니 에르노는 임신했고, 중절을 했다. 49년과 63년 사이에 상황의 변화는 딱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책 모두에서 뜨개바늘이란 단어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경험을 쓴 책을 2000년에야 냈다.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읽기도 힘든 책을 써내는 것에는 얼마나 큰 용기와 결심 그리고 노력이 필요할까. 아니 에르노는 '재능을 받았지만 낭비해 버린 듯' 한 죄책감을 이 책을 쓰고 지웠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강한 사람이다. 



페미니즘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지 3년째다. 많이 읽지 못했고 읽은 것을 잘 기억하고 있거나 활용하고 있거나 나누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임신 중절' 에 관한 책을 읽고 공개된 공간에서 이야기하고, 글을 쓸 수 있다. 이 상태로 만족하지 못하고 여성의 이야기에 목이 마르다. 목이 탄다.  



잘 쓰지 못하지만 자꾸 쓰는 이유는 나처럼 목이 마른 사람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반가워하고 또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쓰기를 바라는 때문이다. 





+ 그건 그렇고... 대학생이 집에 빨래, 그것도 속옷 빨래를 굳이 가져간다는 것은 조금 놀라웠다. 

  2주에 한 번씩 간다며.. 


‘내 배 속에 그것이 생길 수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과 쾌락을 누리며, 내 육체가 남자들의 육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P16

정의로운 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매번 ‘모든 게 끝났다.‘라는 명목으로 이전 희생자들에게 입 다물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그 이전과 똑같은 침묵을 일어나게 하는 일들을 다시 뒤덮어 버려도 말이다. - 1970년대의 투쟁들 -‘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 같은 것에 맞선 -이 어쩔 수 없이 단순화한 문구들과 그런 집단적인 관점에 거리를 두면서, 내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임신 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0

바칼로레아 합격도, 프랑스 문학 학사 학위도, 알코올 중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임신한 여자아이가 상징하는 가난이 물려주는 운명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섹스 때문에 나는 다시 따라잡혔고, 그때 내 안에서 자라나던 무언가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이었다.
- P22

그에게 나는 섹스 제안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알 수 없는 여자의 범주에서, 이제 의심할 여지없이 이미 섹스를 경험한 여자의 범주로 이동한 셈이었다. 두 범주 사이의 구분이 엄청나게 중요하고, 여자를 판단하는 남자의 태도에 영향을 끼치던 시절에, 그는 무엇보다 현실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게다가 나는 이미 임신한 상태라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위험마저 없었다. - P25

많은 소설들이 임신 중절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 일이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까지는 세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스스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과 이제 더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 사이는 생략되었다. - P27

논문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중절을 해야만 하는 필요성보다 더 끔찍했다. 논문을 쓸 수 없음은, 보이지 않는 내 타락의 명백한 징표였다. 이제 ‘지식인‘이 아니었다. 다들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일으킨다. - P33

청소년기부터 부모와의 관계는 벌써 일반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상황을 숨기는 일이 고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전쟁 이전 세대. 그러니까 유리적 죄악과 성적 수치심으로 대변되는 세대였다. 어머니의 신앙심은 신성했고, 나를 당신과 같으리라고 믿어 버리는 어머니이니만큼, 나 또한 그런 어머니의 신앙심을 참아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대부분 그러하듯. 내 부모님도 틀림없이 탈선의 아주 작은 조짐이라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으리라 생각 했다. 부모님을 안심시키려면 매끈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세탁할 빨래를 가져가고, 필요한 것들을 가져오며 규칙적으로 찾아가면 되었다.
- P37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 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임신 중절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것은 언어 속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 P39

우리는 거의 섹스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내 상태 - 나쁜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로 비롯된 이점을 누릴 수도 없었기에, 설령 하게 되더라도 서둘러서 끝냈다. 하릴없이 남아도는 실업자의 시간과 자유, 혹은 뭐든 먹고 마실 수 있다고 허락받은 불치병 환자보다 분명 더 나을 것 없는 이점이었으리라. - P47

신생아들은 끊임없이 울어 댔다. 내 병실에는 요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도 똑같이 새끼를 낳았다. 옆방에 있는 여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들보다 그런 사실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기숙사 화장실에서 나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잉태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여성들이 거쳐 간 사슬에 엮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P72

신성한 무엇처럼 1월 20일과 21일 밤의 비밀을 내 몸속에 간직한 채 거리를 걸었다. 내가 공포의 끝에 있었는지, 아름다움의 끝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긍심을 느꼈다. 어쩌면 고독한 항해자들, 약물 중독자들과 도둑들, 혹은 다른 이들은 결코 가려고 하지 않는 곳까지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긍심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감정의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쓰게끔 이끌었다. - P75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유일한 죄책감을 지웠다. 재능을 받았지만 낭비해 버린 듯. ...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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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3-28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덤덤하게 웃긴 수하 님 오늘도 ˝그건 그렇고... 대학생이 집에 빨래, 그것도 속옷 빨래를 굳이 가져간다는 것은 조금 놀라웠다. 2주에 한 번씩 간다며..˝에서 빵터졌습니다. 근데 저도 그 구절 읽으면서 와......넘나 싫다했어요. ㅋㅋㅋㅋ
24시간 빨래방이 있었어야 했거늘........

건수하 2023-03-28 16:42   좋아요 3 | URL
계속 그런 이미지로 밀기 위해 굳이 적었습니다 ㅋㅋ

그쵸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속옷 ㅠㅠ 엄마가 속옷도 꼭 가져와라! 그런 것은 아니겠죠 설마...

잠자냥 2023-03-28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작품에서 아니 에르노 임신하니까 임신 위험 없다고 섹스하려던 놈 넘나 싫지 않습니까.... 심지어 제 기억으로는 그놈 유부남이었던 거 같은데...

건수하 2023-03-28 16:44   좋아요 1 | URL
아오 진짜 그 놈 게다가 ‘피임의 자유, 가족계획과 관련된 비합법적인 협회의 일원‘인 지식인, 바른 척 하는 놈이잖아요... 완전 싫음요. 파렴치한..

- 2023-03-28 16: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나 레벤느망 봤는데 평소 친하던 남사친에게 임신 고백햇더니 이미 버린 몸 나랑도 자자고 함 ㅋㅋㅋㅋ

건수하 2023-03-28 16:53   좋아요 2 | URL
그런 망할 x의 xx... -_-
<레벤느망> 원작이 <사건>이니까 같은 놈인가...

- 2023-03-28 16: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도 목마르다!! 수하님 더 길게요~~~~ 👋👋👋👋

건수하 2023-03-28 16:44   좋아요 2 | URL
분발할게요!! 근데 제가 원래 길게 잘 못써요 ㅠㅠ

잠자냥 2023-03-28 16:46   좋아요 2 | URL
쟝 맥주 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3-03-28 16:48   좋아요 3 | URL
수하님이 갈쳐준 과즙맥주가 냉장고에서 익어간다 🤤 한번에 네캔을 다 퍼마셔야 하던 나는 이제 한번에 한캔으로 행복한 알쓰가 되었다🥹

건수하 2023-03-28 16:50   좋아요 2 | URL
그거 작은 캔도 있으면 좋겠어요 넘 배불러 ㅋㅋㅋ

책먼지 2023-03-29 09: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하님 글써주셔서 너무 좋아요!! 목말라하고 반가워하고 수하님 덕에 더 읽고 쓰기를 갈망하게 되는 사람 여기도 있습니다!!!

건수하 2023-03-29 10:32   좋아요 1 | URL
책먼지님 격려 댓글 감사해요! 잘 못써도 계속 쓸게요!! :)

단발머리 2023-04-03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모든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모두 다 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고 또 일부는 비밀이고요.

근데 수하님 말씀처럼 그걸 넘어서는 용기를 가진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저는 아니 에르노의 <탐닉> 읽고 나서 그런 생각했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하지만, 한 여성의 집요한 욕망, 이토록 노골적인 성적 욕망을 어떤 사회가 받아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저는 진짜, 아니 에르노가 정면승부했다고 보거든요. 대단한 사람인 거 같아요.

수하님만 목마르신거 아니고... 저도 목말라요. 더 자주, 더 길게 써 주세요!!

건수하 2023-04-04 13:54   좋아요 1 | URL
<탐닉>이 뭐더라... 찾아보니 <단순한 열정>을 읽고 읽으면 좋겠네요. 기억해둬야겠어요.
대단한 사람이 많지만, 아니 에르노도 정말 그래요. 전 애트우드 작품이 더 좋지만.. 그래서 노벨상을 받았을까 싶기도 해요.

단발머리님 댓글 보고나니 좀 짧아보이네요...
자주 더 길게.. 노력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