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은 시초축적 이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논리를 따라가며 발췌해보았다.

(문장을 많이, 그리고 순서를 약간 변형하였으므로 굳이 출처는 달지 않았다)


 

맑스는 시초축적을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박탈하여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의 물적-인적 약탈과 자본주의 성장의 관계는 인식하고 있었으나, 자본주의가 성별, 인종, 나이 등에 따라 노동계급을 세밀하게 분할하였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변화를 가져온 것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애덤 스미스도 오직 시장을 위한 생산만을 가치창조 활동이라 정의했다.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애덤 스미스가 원흉이다?)

 

 

인클로저로 공동경작 체제가 붕괴되면서 농민집단은 경제적 격차와 증오로 양극화되었고, 장인들은 선대제를 활용한 상업자본가들에 의해 경제적 지위를 위협받았다. 임금은 노동자를 노예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여성은 임신과 육아로 부랑자나 이주노동자가 되기 어려웠고 재생산 (출산 및 가사 노동) 에 한정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재생산 노동이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거나 가정 바깥에서 이루어진 경우에는 최저수준으로 보수가 지급되었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노동인구 재생산은 ‘자연적 사명’으로 신비화되고 ‘여자의 일’ 이란 꼬리표가 붙어서, 경제적 중요성과 자본축적 과정에서의 기능은 잊혀졌다.


무시도 아니고 인식되지 않다니, 정말 슬프다…

존재하는 노동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다니.

<아내 가뭄>에서 여성 돌봄 노동의 가치의 구현에 대해 알아봤었는데, 그게 왜 지불되지 않게 되었는지를 여기서 보게 되었다.


 

토지사유화가 해방시킨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이었다. 자본을 가지고 있는 지주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국가와 고용주들은 남성에게만 임금을 지불하고 여성의 노동을 무보수로 착취할 수 있었다. 가정 밖의 여성은 재생산 노동의 평가 절하로 임금이 낮아져 만성적인 가난에 시달렸다. 상인들의 식료품 매점매석으로 물가가 상승하였고 식민지에서 금과 은이 유입되어 부가 재분배되자 이러한 상황이 더 심화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조절한다고 했지만, 이는 노동자의 조직화를 금지하고 상인에게 상품의 가격결정과 유통에 자유를 보장해 준 국가 정책의 산물이었다. 물가 상승으로 실질 임금이 하락하자 매춘이 증가하고 반란이 만연했으며 범죄율이 증가했다.


국가들은 1) 더 잘 훈육된 노동력을 창출하고 2) 사회적 저항을 분쇄하고 3) 노동자들을 일자리에 묶어두기 위한 정책을 폈다.

집단 모임을 금지했고, 노동자의 도피를 막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공공부조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에게 국가의 책임 하에 직접 금품을 제공하거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제도) 를 도입했다.


현대 국가의 개념이 이쯤 생겨난 것 같다. 기본 소득과 비슷한 개념이랄까..

기본 소득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지급한다는 점에서 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체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16-17세기 아메리카에 이어 유럽 본토에서도 인구가 감소했다. 16세기 중엽에는 인구가 국부를 결정한다는 관념이 일종의 사회적 공리가 되어 있었다. 포르투갈 배들은 아프리카에서 인간 화물을 싣고 왔으며, 종교개혁가들은 성적 금욕에 대한 기존 기독교의 찬양을 부정하면서까지 결혼과 성의 가치를 드높였다 (가증스럽다). 인구기록이 시작되고 국가가 성, 출산, 가족생활을 감독하며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출산에 대해 행사하던 통제권을 파괴하기 위해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피임, 낙태, 영아살해에 대해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고 출산 과정에 남성 의사가 관여하기 시작했으며, 산파는 국가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여성들은 출산노예로 전락했다. 아메리카 식민지의 여성 노예는 새로운 노동력 창출의 수단으로 공개적으로 이용되었고 자식은 경매로 팔려나가는 등 유럽의 여성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었으나, 장소를 불문하고 여성의 신체는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노동인구를 확대시키는 기구로 변질되었고, 여성 자신이 스스로의 몸을 제어할 수 없었다.

출산에 대한 여성의 통제권을 불법화한 것은 여성에 대한 효과 측면에서나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라는 귀결의 측면에서나 대단히 중요한 변화였다. 새로운 성적 분업에서 여성은 스스로의 의사에 반해 출산하거나 모성을 강요받았을 뿐 아니라 비노동자로 정의되었다. 여성은 남편을 돕는 방식으로만 ‘생산’에 참여할 수 있었고 여성이 집에서 한 일은 그것이 내다 팔기 위한 노동일지라도 비노동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곧 가내여성운동은 모두 ‘집안일’로 분류되었고, 가외여성노동에 대한 보수는 남성노동의 보수에 비해 적었으며 생계유지에 충분치 않았다. 매춘 금지와 일자리로부터의 여성 배제는 가정주부의 탄생 및 가족의 노동력 생산기지로서의 재구성을 야기했다. 여성과 그 자식들의 신체와 노동에 대한 권리는 남성에게 부여되었다.

 

자본주의는 유럽의 ‘아메리카 병합’과 두 세기 동안 플랜테이션 농장들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간 ‘피와 땀'을 토대로 발전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대대적인 경제위기로 자본주의 체제가 위협받을 때마다 자본가계급은 대규모의 식민지 건설과 노예화의 과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플랜테이션 체제는 공장제, 이주노동, 지구화의 선례가 되었다. (오늘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을 위한 ‘저렴한 소비재’의 공급원으로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노동자가 활용된다). 여성 무임노동과 마찬가지로 노예제는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노동시간’을 확대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이 책의 제목 <캘리번과 마녀>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따온 것이다. <템페스트>에서는 마녀의 아들이자 토착민 반란자인 캘리번과 먼 바다를 항해하는 유럽 출신 프롤레타리아트 트린큘로(광대)와 스테퍼노 (뱃사람)이 음모를 꾸며 섬의 현재 주인 프로스퍼로를 몰아내고자 음모를 꾸민다. 이 작품에서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는 좀도둑이자 술주정뱅이로, 캘리번은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되며 이들의 음모는 불명예스럽게 종결된다. 캘리번의 모친인 마녀 시코락스는 극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아메리카 식민지 초기에는 프롤레타리아트 백인여성이 원주민 혹은 노예들과 친밀하게 지냈고 살림을 차리고 자식을 낳기도 했으나 노예제가 확립된 이후 인종적 계서제가 법에 근거하여 자리잡기 시작했다. 유럽의 성차별 문화는 토착여성에게서 자립성을 박탈하고 그들의 남성친족들의 권력을 증가시키는 새로운 성적 계서제를 도입했다. 아프리카의 노예 공급이 감소하면서 여성의 성생활과 출산 패턴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노동의 성적 분업은 남성과 여성의 업무에 차별을 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경험, 삶, 자본과의 관계, 노동계급 내의 다른 부문들과의 관계에서도 차별을 규정했다. 결과적으로 성적 분업은 권력관계를 만들었다. 여성 무임금노동의 은폐 덕택에 자본주의는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노동시간’을 확대할 수 있었다. 계급적대는 남녀간의 적대관계로 굴절되었다. 남성은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자본주의 축적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인정받았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해왔다. 남성노동자는 그때도 지금도 일종의 공모자로 작용하고 있다.


헉헉.. 내용이 참 많다. 그냥 맥락대로 따라가면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논리를 정리해 두어야 머릿속에 잘 남을 것 같다. 다음 장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마녀사냥이 나오는가..? 했는데 3장에서는 푸코의 '신체 이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고 4장이 본격적으로 마녀사냥 이야기인 듯. (3장 어렵겠다)

 

남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하층계급 유럽인 여성, 메스티조 여성, 아프리카인 여성들이 서로 협력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디언 여성들은 스페인 치료사들에게 성적 유혹에 쓰도록 벌새humming bird를 줬다.

물라토 여성들은 메스티조 여성들에게 남편을 길들이는 방법을 가르쳤다.

'늑대' 여성은 '코요테 (메스티소+인디오)' 여성을 '악마'에게 소개시켜 줬다.

181쪽


이는 여성이 공통된 경험을 통해 식민지배와 피부색의 구분선을 극복하고 동맹을 형성할 수 있었음을 보여 주는 생생한 사례다. 그들이 재생산을 통제하고 성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전통적 지식 및 실천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182쪽).

 

조금 억지스럽게 여성의 연대를 말하고자 하는게 느껴졌다. 여성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공감하지만, 이 문장이 이 부분의 논리에 아주 부합하는 것 같지는 않다. 꼭 필요한 문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여러 입장의 여성이 연대할 수 있으며 그것이 필요하다고 치자. 맞벌이 여성의 입장으로서 내가 아이를 키우는 데 조력을 구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족, 기관, 도우미 등. 그런데 결국 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은 항상 여성이었다. 재생산 노동이 여성의 전문 분야로 여겨지기도 하고, 노동 강도에 비해 임금이 적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외국 국적의 도우미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고려해도 항상 불편했다.

 

내가 고용주 혹은 용역을 발주하는 사람(?)의 입장이라고 치고, 내가 이들 여성과의 연대를 실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간적으로 친절하게 대하고 임금을 높게 조정하는 일?

아니면 재생산 노동이 여성의 영역으로 한정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여성을 고용하지 않는 (남성을 찾아보는?) 일?

다른 여성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나 스스로의 힘으로 키우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니까 나의 가정 밖에서의 일을 그만두는 것?


이것은 사회 구조의 문제니까 개인적으로는 뭔가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또 답이 없어보이는 문제를 만들어 보았다.

 

 

+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는 그렇다 치고, 카리브 제도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잊고있던 책을 다시 떠올려본다.

 

 

 



 

 

(이 책의 주인공 버사 앙투아네타 메이슨 - 제인 에어의 남자 로체스터의 부인- 은 크레올 (유럽인의 자손으로 현지인에서 태어난 사람 혹은 유럽인과 식민지 현지인의 혼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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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3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캘리번과 마녀를 읽기 위해 템페스트를 읽었던 날들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템페스트 읽으면서 마녀는 왜 마녀가 되었는가를 저 역시도 궁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 캘리번과 마녀, 혁명의 영점은 좀 어려웠는데 이미 2년정도 지났으니 지금 다시 읽으면 처음보다 더 나을까요?

덕분에 복습합니다.

건수하 2021-11-03 16:57   좋아요 0 | URL
저도 캘리번과 마녀 때문에 템페스트를 읽었지요! ^^

어려워서 1장씩 2장씩 읽고 글로 정리하고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혁명의 영점>은 저는 아직 못 읽어봤고요,
지금은 <캘리번과 마녀> 다 읽고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고 있어요. :)
 








데리치는 ‘가사노동에 임금을’ 이란 캠페인을 벌여온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철학자이다. 그의 저서 <혁명의 영점>의 서문에서 페데리치는 여성운동을 벌이던 초창기에는 가사 노을 ‘거부’하는데 초점을 두었다가 점점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 하는 쪽으로 옮겨갔다고 말한다.

전쟁을 겪으며 독립적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었던 어머니 세대의 영향을 받아 여성이 가사 노동의 전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태도를 가졌다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는 우선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위상을 높여야겠다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정아은 작가의 책을 읽고 페데리치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다. 

여성이 가사 노동의 전담자라는 사실을 거부하다가,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서문>


페데리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여성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남성에게 종속되었다는 정통맑스주의의 주장 -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근거한 - 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자본주의에서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된 것은 “여성노동”의 “비생산적인” 본성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조건 속에 있기 때문이며, 남성의 지배는 임금이 남성들에게 부여한 권력에서 비롯된다.

한국어판 서문 9쪽


결국 임금을 받고 안 받고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서론>


페데리치는 이 책의 근원이 된 연구의 동기를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


1)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기원과 발전을 재고하고자 함

2)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영향이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인클로저,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박해, 여성에 대한 폭력 심화가 만연함


페데리치는 이 작업을 여성이 자본주의에서 생산 구조 밖에 속하게 된 과정을 역사 속에서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다 러너는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가부장제가 기원전 2000년 경에 시작된 역사의 결과물이라고 보지만, 이어지는 저서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에서 역사의 개혁기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탄압이 더욱 공고해졌다고 이야기했다.

마녀사냥은 12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일반적으로 중세에 흔했던 것으로 여겨지나 근세(16-17세기)에 더 횡행했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 시기 마녀사냥이 행해진 배경, 그리고 마녀사냥과 자본주의와의 상관 관계를 연구했다.

이 책의 부제는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이다. 푸코의 몸 이론, 그리고 맑스주의에서 여성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맑스는 시초축적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노동력 재생산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간과하였고, 푸코는 권력의 원천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간과하였다고 주장한다.


<1장>


중세시대에도 가부장제는 이미 존재했지만, 영주의 권위가 여성의 남편 및 아버지의 권위를 압도했기 때문에 농노공동체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상태는 제한적이었다. 토지가 대개 가족단위에 교부되었고 여성은 토지에서 노동을 하였으며, 노동의 산물을 남성의 허락 없이도 처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역이 금납으로 대체되면서 농민층에 분열이 생겼고 많은 빈농이 도시로 이주했다. 천년왕국 운동과 이단 운동이 있었으며, 교회 중심의 사회는 위기를 느꼈다. 일부의 이단 종파에서는 여성이 설교를 행하고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는 등 권리를 누렸으며 이 시기 여성들은 낙태와 피임을 통해 재생산 기능을 통제할 수 있었다. 14세기 말 흑사병 창궐 이후 유럽의 인구가 2/3로 감소한 상황에서 지대납부와 부역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현상이 일어나 봉건질서를 지탱하던 계급관계가 전복되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부역 혹은 노예제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자기 통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경제-사회적으로 위협이 되었다.

15세기 말 정치당국들은 강간을 합법화하고 매춘을 제도화하여 젊은 남성에게 자유로운 성관계를 허용하였고, 그 결과 여성 비하 및 여성 혐오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또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사람들이 무관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까지 1장이 끝났다. 



저자의 의도를 이야기한 서문, 그리고 전체 큰 그림을 이야기한 서론이 어려웠고 1장이 되니 그냥 쭉 읽으면 되어서 오히려 나았다. 서문과 서론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것이고, 사실 1장만 가지고 볼 때는 크게 의문점이 없다.



+ 서론에서 <몸 정치학>이 왜 여성주의에서 중요한 지에 대해 조금 언급하였지만, 몸에 관한 부분은 (어릴 때부터 터부시해온 탓인지) 아직도 낯설고, 왜 꼭 그것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출퇴근 길에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 을 듣고 있는데, 모르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너어무 불편하다. <캘리번과 마녀>를 읽으며 그동안 멀리해왔던 몸 관련 페미니즘 책들을 읽을 마음을 먹을 수 있기를.


++ 다락방님 외 페미니즘 책읽기 하시는 분들 서재를 기웃거리다가 여기도 좀 써볼까 하고 글 옮기기 시작. 알라딘에서 리뷰 아닌 페이퍼는 처음 써보는 것 같다. 포맷이 좀 낡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 당분간 써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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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3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이 페이퍼를 읽으니 쌓아두기만 했던 성정치학을 이제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청 읽고 싶었는데 또 준비해두니까 안읽게 되어서요.

실비아 페데리치를 읽어두면 좋더라고요. 다른 여성주의 책 읽을 때 실비아 페데리치가 자주 언급이 되어서요. 읽기도 쓰기도 응원합니다, 수하 님!!

건수하 2021-11-03 11:3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 감사해요! 왠지 더 열심히 쓰고 싶어졌어요 ㅎㅎ

이 글 쓴지 좀 되었는데, <성 정치학> 출퇴근 길에 듣다가 너무 괴로워서 멈춰있는 상태예요. 생각난 김에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제가 다른 페미니즘 책모임을 하고 있어서, 페미니즘 함께 읽기 책 따라가진 못하고 있는데요 차곡차곡 보관함에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 합류할게요!

공쟝쟝 2021-11-03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 (페미니즘 책 함께 읽는 거 너무 좋아요😭) 올려주싱 페데리치 책은 지금까지 읽은 페미니즘 책들 중에서 제 최애 책입니다! (반가워요!)
수하님 프사의 러블 고양이, 제 반려 고양이와 많이 닮아서 친밀감을 느끼며… 몸 관련 페미니즘은 저역시 관심만(;;) 많은 상태입니다. 환영합니다, 따로 또 같이 읽어보아요! 수하님 🤗

건수하 2021-11-03 11:36   좋아요 2 | URL
공쟝쟝님 안녕하세요~ 사실 저 공쟝쟝님 서재도 많이 구경 갔어요.
첫째랑 둘째 고양이도 봤고 베어노트 얘기도 봤구요 ㅎㅎㅎ
(베어, 노션 다 깔아는 뒀지만 노션만 쪼금 쓰고 있습니다)
참, 저도 두 마리랑 같이 살아요. 러블이 첫째이자 제 첫 반려묘..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말해요 ㅋㅋ

앞으로도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

잠자냥 2021-11-09 15:45   좋아요 0 | URL
쟝쟝 너무.... 예의바르니까 이상해요.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1-09 16:02   좋아요 2 | URL
잠자냥/ 저 봉건적 가정에서 교육받고 자란 깍듯한 사람입니다. 엣헴!
수하/ 실망시켜드려 죄송해요. 저는 냥은 한분만 뫼시고 있습니다. 자주 놀러오시고 잠자냥님의 음해는 잊어주세요!

건수하 2021-11-09 16:07   좋아요 1 | URL
앗??? 그럼 페미니즘 책 같이 읽기 하시는 분 중 두 마리랑 같이 사시는 분이 있는거 같아요.. 헷갈렸나봐요. 죄송해요! ;ㅁ;

공쟝쟝 2021-11-09 16:11   좋아요 1 | URL
앍 ㅋㅋㅋ 헤깔린 걸로는 죄송해하지 않기로해요ㅋㅋㅋ 우리😫

잠자냥 2021-11-09 16:27   좋아요 1 | URL
수하 님 여기 괭이 키우는 분들이 많아서 헷갈리셔도 괜찮아요. 어차피 그 괭이가 모두 우리들의 귀여운 괭이 아니겠습니까? 저 위에 댓글 단 독서괭이 말고요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1-11-09 17:28   좋아요 1 | URL
제가 본 고양이 두마리 키우시는 분이 잠자냥님 이었네요! ㅎㅎㅎ

둘째의 뒷태…!

잠자냥 2021-11-10 00:0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수하 님! ㅋㅋㅋㅋㅋ 저는 세 마리 키우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1-11-10 09:01   좋아요 1 | URL
으악... ;ㅁ; 둘째까지밖에 못 봤어요 ㅎㅎㅎ
세 마리랑 같이 사시는군요!
 
화전가 - 배삼식 희곡
배삼식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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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까지 즐겁게 읽고 있었는데 마지막이 좀 슬펐다.


봉아는 꼭 영시를 읊어야만 했을까 살짝 아쉬웠고, 며느리 두 명의 대사 비중이 적은 것이 좀 안타까웠지만 시대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읽었다. 공연을 보면 더 감동적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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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책을 펼쳤다 - 위로가 필요한 모든 순간 곁을 지켜준 문장들
우혜진 지음 / SISO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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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는 않았는데, 요즘 흔한 독서 에세이치고도 베스트셀러가 많아 좀 아쉬웠다. 부담없는 독서, 독서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을 듯. 추천도서 리스트 100이 분야별로 나눠져있지도 않고 뻔한 책들의 나열인 것도 조금 실망스러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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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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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지지하든, 옹호하든, 반대하든, 자신이 주장하는 개혁을 위해 다른 한 세계를 비하하는 태도를 얼렁뚱땅 넘길 수는 없다.
(11장 <유도라 웰티 / 장소의 위계에 대하여>중)

라는 기조로 소위 ‘진보세력’에 대한 비난이 반복되었던 <타락한 저항>과 비교하여 비교적 부드럽게 쓰여진 이야기들이었다.

문학작품을 매개로 하니 좀더 흥미로웠다.
모르는 작가도 많았지만, 작가만의 시선으로 풀어준 그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또 많은 작가의 이름과 책의 제목을 얻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면서 백인 남성 저자로 가득차 있던 내 독서 목록은 여성 저자의 비율이 높아졌다. 그래도 아직은 백인의 비율이 높다.
그동안 듣지 않았던 목소리에 조금 더 귀기울여야겠다 생각한다.

젤다 피츠제럴드
케이트 쇼팽 - <각성>
루이스 어드리크
토니 모리슨 - <빌러비드>, <고향>
비엣 타인 응우옌 - <동조자>
산드라 시스네로스 - <망고 스트리트>
옥타비아 버틀러 - <킨>, <블러드차일드>

아, 그리고 이라영. 더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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