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올 때


그러니까 말이죠
이야기가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그 언젠가

주술사의 말을
들었다

정해진 그때를
알지 못한다면
미당첨 복권 같은
신세겠지 작가란

실버 유모차를 몰고
등 굽은 노파 둘이
1등 당첨자 배출점
로또 복권방으로
들어간다

저 나이에 당첨이 되면
뭐하게 비뚤게 웃지만
새카만 선팅지의
유리창은
물욕의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그러는 넌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니

애달피 좇았으나
사라지는 연인의 그림자
결코 가질 수 없는

문드러진 발가락
주름에 파묻힌 눈
이제 이야기가 온다 한들
환대할 수 없으리
부서진 손톱으로
꾹꾹 눌러서
그 얼굴이라도 만져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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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엄마, 왜 티셔츠를
쓰레기통에 버렸어?

몰라

23-8은 얼마지?

글쎄다 그 답이
당최 생각이

엄마는 1부터 89번에 이르는
점을 잇는다
커다란 귀상어가
스르륵

얘야, 이건 무섭구나

엄마는 이제 
TV 속 트로트의 나라로

쟤가 새로 나왔는데
노래를 잘하네

사라지는 겨울
엄지손톱만큼 뭉크러진
단감 하나 식탁에
두고 나온다

쥐똥나무 근처에서
멀리뛰기하는 까치
까치 까치 아빠
엄마를 좀 데려가 줘

툭툭
툭 툭툭
투투투 툭
부정맥의 심장
다독이며

오후 6시
시 쓰기에
가장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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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가 있는 유모차


늙은 여자가
유모차를 끌고 간다
흰색의 작은 강아지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자식들은
지들 밥벌이로
바쁘겠지
어미의 물크러진 마음
강아지 유모차에

아니, 어쩌면
자식이 없었을 수도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 아닌가
그건 아닌가

요양원의 어느 할머니는
질투심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저 할멈은 자식들이
그토록 열심으로
들여다보는데
난 아무도 없어
외로움은
마침내 살기(殺氣)로
어버이날을 기다려
숨을 끊어버린

요양원에서 키울
강아지 한 마리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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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비


아픈 발을 절뚝이며
집을 나선다
우편함에는
관리비 고지서와
부활 판공성사표가
들어있다

오래된 아파트 관리비는
돈을 먹는 하마
성사표(聖事表)는
집 나간 신앙심을
가냘프게 부르지만
호주머니에 구깃구깃

단지 구석탱이의
매화나무
슬금슬금 느린
도둑처럼 내리는 비
사람들 볼까 몰래
가지 하나를 똑

집에 돌아와
유리 화병에 꽂는데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꽃봉오리가 후두둑
가난한 봄을 들여놓는 일은
이토록 모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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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온도


최근 과학 기사를 읽으니
우울한 사람은 체온이
좀 높다고 하더군 

오래전 울화병을 앓았지
매일 청소해도
귀신처럼 쌓이는 먼지
열기는 혈관을 타고
온몸을 들쑤시지

한의사가 길다란 침을
목과 가슴에 비스듬히
꽂았어 작은 침은
손과 발에 수직으로
온 몸뚱이에 핀을 꽂은
박제된 박쥐

동굴 너머의 하늘은
너무 멀어
불안의 온도는
날개를 태우고
눈알만 덩그라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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