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파치(破치) 버섯은 품절이다
그래서 '하'품 버섯을 주문했다
'하'라는 푸른색 매직이 선명한
스티로폼 뚜껑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버섯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파치에
익숙해진 사람의 비극이란
이런 것이다 '하'품에
만족하는 사람은 '상'품을 보고
놀라 자빠질 것이다 '상'품은
'하'품 보다 8천 원이 비싸다
엄마, '하'품 버섯이 이렇게나
좋아요 엄마의 하품이 이어진다
얘야, 잠이 오지 않는구나
엄마, 시를 읽는 사람이 없어요
얘야, 그렇다고 사람들을 욕할 수는
없잖니 하품의 시 하품의 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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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 시


요새 잘 나가는
젊은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A는
연애시만 줄구장창
가만 생각해 보니
연애시가 잘 팔려서
그런 거 같아
청춘의 독자들은
사랑을 짝사랑하니까

B는
달달한 감성의
국수 기계에서
시를 뽑아내더군

밥벌이의 고뇌
시 창작 교실에
손수 쓴 종이 카드까지
팔고 있어

자본주의 시대에
시인의 삶이란

매대에 글을 걸어놓고
애써 태연하려 하지만
궁핍함은 비참의 강으로
흐르고 무언가 팔 것을
궁리해야 하는
떠돌이 상인

가난이 뇌를 적시고
허영이 심장을 통과할 때
시인은 합격증을
받는다

삐딱하게 눈을 뜨며
똑바르게 걷지 않고
살짝 미친 사람이 되어
노래하자

그래,
오늘도 시를 쓰자
마침표가 없는
좋은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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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飼養) 벌꿀의 사랑


그는 희고 마알간 얼굴에
가느다란 손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자는 한눈에 그에게
반했지요

여자의 남편은
사양 벌꿀을 만듭니다
여자는 그런 남편이
부끄러웠어요
가짜 꿀이잖아요
그건 진짜가 아닌데

고운 그의 얼굴을
보다가 벌에 부어터진
흠집투성이의
남편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요

왜 저런 남자가
내 남편일까요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요

사양 벌꿀은
여자의 젊음을
천천히 들이켰어요

진짜 사랑은
오지 않아요
가짜 꿀의
삶이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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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


거실과 베란다에는 열댓 명의 청소부들이
있었다 소파에 앉아계시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저 사람들 차 대접이라도
해 주려무나 나는 더러운 그들이 싫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커피와 과자를 내왔다 걸신들린 것처럼
그들은 음식을 먹었고 내가 좋아하는 비싼 덴마크
쿠키를 엄마는 기꺼이 선물로 싸주었다 나는 엄마와
큰소리로 싸웠다 마침내 그들이 갔다

세 명의 늙은 여자들이 초인종을 눌렀다
집을 한번 봐야겠다고 하더니 신발도 벗지 않고
들어왔다 나비 모양의 안경을 쓴 푸른 염색 머리 여편네가
내 방에 왔다 나는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현관까지
힘겹게 질질 끌어내었다

아픈 몸을 들쑤셔대는 불운은
입안의 모래처럼 굴러다니지만
도무지 뱉어낼 수가 없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기운 없는 자식을 대신해서 침입자들을
먹을 것으로 달래려고 아버지 아버지
마침내 독살스러운 늙은 년 셋을 쫓아냈답니다
이젠 병이 좀 나으려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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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무일도(聖務日禱): 명사. 기독교.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公的)이고 공통적인 기도. 성직자ㆍ수도자의 의무로서 8개의 정시과(定時課)로 되어 있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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