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추리 영화는 시작한 지 4분도 되지 않아서 시신이 나온다. 주인공 미스 마플(마가렛 러더포드 분)은 꽤 덩치가 있고, 약간 부산스럽게 보이는 할머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미스 마플에게는 조수도 있다. 홈즈와 왓슨도 아닌데 이 영화 뭐지, 싶어진다. 배경도 경마 클럽이다. 분명히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영화로 만든 거라는데, 내가 읽은 '장례식을 마치고(After the Funeral)'가 이런 내용이었나?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렇다. 이 영화(Murder at the Gallop, 1963)는 주요한 설정만 원작 소설에서 따왔을 뿐, 나머지는 새롭게 각색했다. 원작 소설에서는 에르큘 포와로가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미스 마플로 바뀌었다. 영화 제목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경마 클럽 살인 사건'이 맞다.

  재소자 교화를 위한 모금 활동을 하던 미스 마플은 부유한 앤더비 씨 저택을 방문한다. 같이 모금을 하던 친구 스트린저와 함께 집에 들어서자마자, 앤더비 씨는 계단을 굴러 떨어지며 숨을 거둔다. 경찰에서는 심장병을 앓고 있던 앤더비 씨가 지병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미스 마플은 시신 옆에서 발견된 작은 흙조각이 뭔가 마음에 걸린다. 자연사를 가장한 살인의 의도가 있다고 본 마플은 스트린저와 함께 앤더비 일가의 동향을 살핀다. 다음 날, 유언장 공개일에 4명의 상속인 가운데 '타살'이라는 의심을 내보인 앤더비의 여동생 코라가 모자핀에 찔린 채 발견된다. 미스 마플은 사건 해결을 위해 유산 상속인 가운데 한 명인 헥터의 경마 클럽에 머물면서 단서를 찾는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

  그동안 여러 번 제작된 TV 시리즈의 미스 마플의 이미지를 떠올린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의 미스 마플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가렛 러더포드가 연기하는 미스 마플은 조용히 앉아서 뜨개질을 하며 사건을 추리하는 할머니가 아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단서를 수집하고,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 할머니, 상당히 과감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의 에르큘 포와로의 특질들을 이 영화에서는 미스 마플이 겉옷으로 두르고 연기하기 때문이다(영화 속에서 미스 마플은 두꺼운 트위드 망토를 걸치고 나온다). 촬영 당시 70이 넘은 나이로 연기했던 마가렛 러더포드는 자신만의 미스 마플을 보여준다. 나중에 클럽에서 열린 무도회에서는 어깨가 드러나는 화려한 오프 숄더 드레스를 입고 트위스트까지 춘다. 영화는 그런 마가렛 러더포드의 연기력에 상당부분을 기대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팬들이라면 나름대로 즐겁게 보겠지만, 영화는 평범하다. 영화사 MGM에서 B무비로 만든 이 영화는 미스 마플 3부작 가운데 하나이다. 뜬금없는 각색은 원작자 크리스티도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연 배우 마가렛 러더포드의 연기만큼은 마음에 들어했다. 처진 아래턱이 눈길을 끄는 이 독특한 외모의 배우는 33살이 되어서야 연극 무대에 처음으로 섰다. 늦은 데뷔에다 전형적인 여배우의 아름다운 외모와도 거리가 멀었던 러더포드는 자신의 재능을 코미디에서 발견했다. 노년이 되어 미스 마플을 연기한 세 편의 영화는 꽤 인기를 끌었다.

  그리 뛰어난 미모가 아니었던 또 다른 배우가 이 영화에서 등장한다. 주요한 배역인 밀크리스트 부인을 연기한 플로라 롭슨이다. 개성적이고 강인한 인상의 롭슨은 나에게는 'Fire Over England(1937)'에서의 엘리자베스 여왕 역으로 기억된다. 그 영화에서 롭슨은 유능하고 강단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보여준다. 마가렛 러더포드처럼 롭슨은 외모를 넘어서는 자신만의 연기력으로 영화 경력을 쌓았다. 그 두 배우들 모두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 부터 여성 기사 작위 Dame을 받았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원작자 애거서 크리스티도 Dame 작위를 받았으니, 이 B무비에는 무려 3명의 여성 기사들이 등장하는 셈이다. 원작을 색다르게 각색한 이 영화는 크리스티 추리 소설의 폭넓은 변용을 보여준다. 미스 마플의 특별한 변신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찾아볼 법하다.  



*사진 출처: tcm.com 미스 마플 역의 마가렛 러더포드. 그 옆에 자리한 스트린저 역을 연기한 스트린저 데이비스는 러더포드의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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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현관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가봤더니 광고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보통 전단지를 붙이는 이들은 평일 오후에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붙여야 했던 전단지는 새로 생긴 전자 제품 판매점 광고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문앞에 붙어있는 전단지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유례없는 전염병 시대에 판매업과 서비스 업종도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주말을 앞두고 배달음식 전단지들은 끊이지 않고 붙여졌다. 놀랍게도 2군데의 헬스장과 요가 학원이 개업해서 열심히 광고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전단지 광고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분리수거를 위해 스카치테이프를 떼어내면서 테이프의 길이를 보니 2cm정도였다. 나는 테이프 길이를 보면서 전단지 붙이는 이들의 경력을 가늠해 보곤 한다. 언젠가는 손가락 길이만큼 붙어진 테이프를 떼낸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전단지 붙이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오래된, 대단한 고수는 단 1cm정도의 테이프로 전단지를 붙이기도 한다. 종이가 떨어지지 않을만큼, 그리고 아주 경제적으로 테이프를 썼다. 스카치테이프 같은 소모품도 돈이 드는 것이니 최대한으로 아껴 쓰려고 그리한 것이다.

  그들은 대개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나다닌다. 입주민의 눈에 띄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한번은 밖을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이제 막 앞집 문앞에 전단지를 붙이고 있던 사람과 마주쳤다. 그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자로 비쩍 마른 몸에 아주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낡은 청바지와 빛 바랜 흰색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가 자신의 할 일을 하고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문을 닫았다. 어느 날은 키 작은 중년의 여자가 전단지를 붙이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보았다. 그들을 직접 본 것은 단 두 번 뿐이었지만, 그 일이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꼭 그런 건 아닌듯 했다. 자주 다니던 사이트 게시판에 전단지 붙이는 일을 하는 이의 경험담이 올라왔었다. 이십 대인 그는 그 일을 부업이 아니라 본업으로 하고 있었다. 원래는 다른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했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전단지 붙이는 일에 주력하게 되었다고 했다. 전단지 일감이 주어지는 경로, 일당, 자신이 하루종일 일하면서 걷는 거리 등,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로만 보아도 그 노동의 정도와 힘듦이 팍팍하게 전해졌다. 댓글에는 건강을 챙겨가면서 무리하지 말라는 격려의 글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떤 이는 댓글에서 과외하는 알바도 세금을 납부하는데, 이런 이들이 받은 수입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적었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직업의 또 다른 세계와 그 삶의 고단함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세금과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그런 댓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현직 변호사가 정리하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엄밀히 말하면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맞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일하면서 이런 경우를 문제 삼는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법리를 따지는 일로 먹고 살고 있기는 하지만, 힘든 여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썼다. 나도 솔직히 세금 운운하는 댓글에 적잖이 뜨악한 기분이 들었다. 그 세금 댓글에 놀라고 실망했던지, 글을 썼던 이는 얼마 안가 자신의 글을 삭제하고 사이트를 탈퇴해 버렸다.      

  국회방송에서 내가 챙겨서 보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는 '세계의 극한 직업'이다. 주로 제 3세계 빈국들의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엊그제는 방글라데시 편이 나왔다. 그 나라에서는 혼수물품으로 금 장신구를 해가는 전통 때문에 금 세공업이 발달했다. 금 세공업 거리의 극한 직업은 이런 것이었다. 세공업자들이 화장실 갈 때마다 미세한 금가루가 떨어지는데, 그곳 하수구의 오물들을 걸러서 그 금가루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수구에 모인 오물들을 큰통으로 퍼서 작업장으로 가져와 거른다. 마침내 남은 금속 찌꺼기들에서 금가루를 채취하는데, 여기에는 유독 물질인 수은과 세정제가 사용된다. 3명의 작업자가 일해서 얻은 금의 양은 말그대로 작은 팥알만 했다. 예전에 경기가 호황이었을 때는 그 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단다. 지금은 세공 산업이 많이 위축되다 보니, 나오는 금의 양도 적어서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한다고 했다. 집에서 그는 아내와 딸이 하는 쇼핑백 조립일을 도왔다. 딸은 학교를 다니다 그만 두었다. 아직 어린 아들 둘은 학교에 보내서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어제 밤늦게 TV를 틀었더니, 'AI 시대와 새로운 직업'이라는 강연이 나오고 있었다. 외국의 전문가가 AI를 이용한 공유 경제가 새로운 직업들을 창출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참이었다. 나는 강연을 좀 듣다가 껐다. 나의 세대들은 AI와 공존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세대들을 바라보면서 늙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이라는 변수는 직업의 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집 근처 스포츠 센터의 주차장에는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주차료를 징수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요금이 자동으로 결제되는 주차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언젠가 전단지를 붙이는 이들의 일감도 떨어질지 모른다. 종이의 형태가 아닌 다른 방식의 광고가 그들의 일을 대체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 힘들고 열악한 노동 여건의 일용직으로 밀려나게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직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법과 의료 분야에서도 AI는 점점 더 어렵고 까다로운 일들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예술 영역도 마찬가지다. AI가 써낸 시들과 시인이 쓴 시들을 구분해 보라는 과제들에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글을 쓰는 작가, 비평가들이 AI와 경쟁하게 될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그런 미래는 우리의 발밑까지는 다가오지 않았다. 오늘도 전단지를 붙이는 이들의 일감은 남아있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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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대학 시절,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련 과목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다 당국에 검거되어 자퇴를 강요받았다. 학교를 그만 두고 무얼 할까 생각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걸로는 먹고 살 방도가 안될 것 같았다. 영화를 하면 밥은 먹고 살겠지 싶은 마음이 들어서 영화사에 들어갔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그는 종전 후에는 도호 영화사에서 인정받는 감독이 된다. 그러나 공산당원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그는 미군정 하에서 뜻밖의 시련을 겪는다. 도호 제작사는 사회주의 영화인들의 노조와 충돌한다. 이른바 '도호 쟁의'라고 불리는 그 사건으로 영화사를 나와야 했다. 빙수 장사를 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마침 영화사에서 분쟁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영화를 한 편 찍는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그 돈을 가지고 제작사를 차린다. 감독 야마모토 사츠오의 이야기다. 그에게 제 2의 영화 인생을 열어준 작품은 '폭력의 거리(暴力の街, 1950)'였다.

  영화는 '도조'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진 부정부패 사건을 다룬다. 도조로 발령받은 신참 기자 키타는 지역 유지 오니시와 경찰, 검찰 간부의 유착 관계를 알게 된다. 오니시는 직물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데, 암거래로 물건을 빼돌려 큰 돈을 벌고 있다. 관공서 뿐만 아니라 야쿠자와도 결탁한 오니시는 도시의 권력자로 군림하며 온갖 횡포를 부린다. 키타가 오니시에 대한 고발 기사를 내자, 앙심을 품은 오니시는 검찰 신청사 개관식에서 키타를 폭행한다. 키타는 굴하지 않고 그에 맞서 신문사의 동료들과 함께 도조 시에서 벌어지는 불의를 기사로 써낸다. 그들의 뜻에 동참한 시민들은 범죄 추방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오니시와 야쿠자, 부패한 경찰과 관리들은 회유와 협박으로, 나중에는 폭력을 휘두르며 저항한다. 과연 도조 시에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폭력의 거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극영화임에도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마치 뉴스 보도 화면처럼 중간 중간 내레이터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 준다. 기자들이 써내는 기사들은 몽타주 기법으로, 야쿠자들이 과거에 저지른 폭력과 범죄 행위는 재연 장면으로 제시된다. 재미있는 장면도 있는데, 신문사 편집장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부분이다.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은 등장한 인물들의 얼굴 위에 커다란 흰색의 가위표(믿을 수 없음)와 세모(판단 유보)로 표시해 놓는다. 그런가 하면, 나중에 시민들이 주최한 대규모 집회는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를 연상케 한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주면서 의견을 말하게 하는 장면은 영화에 사실성을 더한다(물론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이들은 출연 배우들이다). 이것은 영화의 끝부분에 실제로 도시에서 개최된 마츠리 촬영분을 넣은 것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영화를 '재미'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당시에 어떻게 크게 흥행했는지 그다지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밋밋하고, 서사는 극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재미' 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진실'이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1948년에 있었던 '혼조 사건'이 그것이다. 아사히 신문기자가 사이타마 현 혼조 시의 부정부패와 폭력 범죄 사건을 취재하면서 겪은 것을 1949년에 책으로 펴냈다. 그리고 '폭력의 거리'는 사건의 그 도시 혼조에서, 주민들의 협조를 받으면서 촬영되었다. 1950년까지도 혼조의 상황은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영화 제작은 야쿠자들의 방해를 받는 가운데에서 강행되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집회 장면의 사람들은 동원된 엑스트라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온 실제 주민들이었다. '폭력의 거리'의 사실성은 그런 상황에서 획득한 것이었다.

  '폭력의 거리'는 종전 후, 공권력 부재의 상황에서 토호와 범죄조직이 결탁한 소도시의 비극을 그려냈다. 미군정 하의 일본 사회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혼조 사건'은 일본 정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는 GHQ(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GHQ가 개입하고 나서야 사건이 대강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상영이 되자, 경찰을 비롯한 관료 조직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겉으로는 영화가 시민들의 공권력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그 속내는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데에 대한 열패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은 당시 일본의 공권력과 관료 조직이 진정으로 자정 능력이 있었는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부패한 사업가와 야쿠자들은 자리를 잃지 않았다. 미군정 하에서 좌익 세력과 공산주의자 색출의 선봉에 선 야쿠자들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포착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시민들이 거둔 승리가 불완전하고 잠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근절되지 못한 범죄와 폭력의 뿌리는 이후 일본 사회에 단단히 자리잡게 된다.



*사진 출처: 100satsuoyamamoto.com



**다음 글은 월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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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꽤나 단조롭고 지루하다. 그러나 영화가 마침내 끝났을 때 어떤 감정의 파고가 밀려왔다. 그것은 흥분도, 감동도 아니었다. 약간의 충격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 몬티 헬먼(Monte Hellman)도 그 점에 동의했다. '자유의 이차선(Two-Lane Blacktop, 1971)'은 '이지 라이더'의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영화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이지 라이더'의 아류작인가 하면 그건 분명히 아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도 처음엔 '이지 라이더'의 마일드한 버전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자신만의 차선(lane)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의 시작은 어두운 밤, 시의 외곽에서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 장면에서부터이다. 1955년형 쉐보레를 경주용 엔진으로 개조한 차를 몰고 다니는 드라이버(제임스 테일러 분)와 정비공(데니스 윌슨 분)은 자동차 경주에 미쳐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66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는 여정을 이어간다. 들르는 곳마다 자동차 경주장을 찾아 경주를 하고, 그렇게 딴 돈으로 길거리 생활을 이어간다. 그들은 우연히 만난 GTO를 모는 운전자(워렌 오티스 분)와 워싱턴 D.C.까지 경주 내기를 하게 된다. 여기에 히치 하이커 걸(로리 버드 분)이 동행한다. 가는 도중에 GTO의 차는 엔진에 문제가 생기고, 드라이버와 정비공은 돈이 떨어져 곤란을 겪는다. 이들은 가기로 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이 영화 속 인물들에는 이름이 없다. 그들은 또한 대화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거의 나누지 않는다. GTO의 경우는 예외다. 히치 하이커들에게 관대한 그는 자신의 차를 기꺼이 제공하며,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게이, 히피, 묘지를 찾아가는 할머니와 손녀,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공허하며 아무 의미도 없다. '자유의 이차선'의 인물들은 결코 소통하지 못한다. GTO가 드라이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자, 드라이버는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드라이버와 정비공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묻는 이들에게 '동쪽'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적지는 수시로 바뀐다. GTO는 히치 하이커 걸에게 원하는 어디든지 데려가 주겠다며 허세를 부린다. 멕시코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사실 가야할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성도 상실한 사람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도 없고, 삶의 목적도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길 위에 서있다는 것 뿐이다. 되는대로 살아가는 방랑의 삶.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의 1960년대는 격동의 시기였다. 폭발적으로 분출했던 민권 운동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것이 1960년대 말에 이르면 가중된 피로와 침체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민들은 대외적으로는 패색이 짙어가는 베트남전을 보며 실망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었다. 1971년에 이른바 '닉슨 쇼크(Nixon Shock)'라고 불리는 경제조치가 이루어진다. 금-달러 태환을 가능하게 했던 금본위제의 폐지는 달러 부도에 대한 선언이었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로소 미국은 달러를 무제한 찍어낼 수 있는 양적 완화를 취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그러한 경제적인 혼란과 침체는 세계 경제까지 뒤흔들었다. 미국민들의 삶의 질과 안정성은 떨어졌고, 그것은 공동체적 이상 보다는 '개인'에 대한 극명한 자각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언론인 톰 울프는 1970년대를 'Me' Decade로 규정하기도 했다.

  '자유의 이차선'에 나오는 인물들은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개인'을 보여준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거대 공동체적 구심점에서 이탈한 파편화된 개인들이었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무수히 많은 개인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위로를 찾았다. 1970년대의 미국에서는 명상과 요가와 같은 종교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영화 속의 드라이버와 정비공에게 종교는 자동차였고 그것이 주는 위로는 속도였다. 거기에는 즉각적인 만족과 위험이 수반된다. 그러므로 GTO는 이런 말로 드라이버에게 경고한다.

  "언젠가 그 속도에 잡아먹히게 될 거야."

  그것은 드라이버가 도로에서 목격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그는 가다가 차 사고 현장을 보게 되는데, 거기에는 목이 부러져 죽은 시신이 있었다. 과속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길 위의 삶의 댓가는 그렇게 참혹했다. 언젠가 드라이버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미래이기도 한 그 현장은 소멸과 망각을 상징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맞닿아 있다. 감독 몬티 헬먼은 매우 건조한 로드 무비 속에서 자신의 시대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보여준다. 중심에서 이탈한 개인들의 방랑과 끝없이 침잠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1970년대 미국의 불안하고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된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사진 출처: paris-la.com 히치 하이커 걸을 연기한 로리 버드. 영화를 찍을 당시의 나이는 18살이었다. 로리 버드는 26살의 나이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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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부터 EBS 클래스e에서는 노문학자 석영중 선생이 강의하는 '도스토옙스키와 여행을'을 방영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창작의 근원이 되었던 도시들과 여행지, 그곳에서 쓴 작품들에 대해서 들려준다. 먼저 '죄와 벌'이 다루어졌고, 오늘로 '백치'가 끝났다. '죄와 벌'은 읽은 책이라 이해가 쉬웠는데, '백치'는 오래 전에 도입부만 읽다가 그만 둔 소설이었다. 마침 자료 화면으로 나오는 영화가 1958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라서 찾아서 보았다. 꽤 두꺼운 이 소설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 소설의 중간 부분에서 끝나버린다...

  원래 영화 '백치'는 2편으로 기획되었는데, 배우들의 일정이나 여러 문제 때문에 감독 이반 피리예프가 후속편을 찍는 것을 포기했다. 국영 영화사 Mosfilm에서도 별다른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던 모양인지 영화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뒷부분이 궁금하면 소설을 읽든가, 아니면 나중에 TV 시리즈로 제작된 것을 찾아서 보아야 한다.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을 볼 때 거는 기대는 이런 것이다. 길고 두꺼운 소설을 짧은 시간에 이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소설 속의 인물과 사건을 재현된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런 기대들은 완벽하게 충족되기 어렵다. 아니, 완벽은 커녕 소설과 영화 사이의 괴리를 절실히 느끼는 데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 '백치'를 영화로 본다고 해서 원작 소설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그의 복잡하고 긴 소설에는 작가의 사상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열변과 생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사건들이 주가 된 영화로 그의 소설에 접근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 때문에 나는 영화 '백치'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소설의 영화화는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지며, 그 결과물은 소설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마거릿 미첼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빅터 플레밍 감독의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한번 보자. 영화는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 애쉴리 윌크스의 애증에 찬 세월을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원작 소설에서 묘사된 남북 전쟁 전의 남부의 상황, 전쟁의 발발, 전후의 재건에 이르는 세부적 역사는 생략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멋진 배우들과 화려한 세트, 유려한 영화 음악(이 영화의 타라의 테마는 유명하다)이 전부다.

  이것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닥터 지바고(1965)'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의 모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이 가진 깊은 사유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러시아 혁명에 이은 내전, 공산 정권의 수립이라는 역사적 상황이 주인공들의 상황과 맞물려 펼쳐지는데, 영화는 그런 배경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심지어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축약되어 있다. 영화 초반부에 라라와 코마로프스키의 내연 관계가 애매하게 제시되는 것과 달리, 소설은 라라와 모친과의 사이에서 그가 가진 영향력을 잘 알 수 있다. 적군과 백군으로 대립해서 싸운 러시아 내전의 상황이라던가 지바고가 쓴 시들도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 알렉 기네스가 펼치는 명연기, 눈부신 설원의 풍경, 그리고 라라의 테마로 유명한 모리스 자르의 음악이 영화 '닥터 지바고'에 있다.

  결국 그런 영화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문학과 영화의 근원적 괴리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 또는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들에서 원작 텍스트에 대한 이해없이 영화를 비평하는 행위는 무모한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가 소설 '백치'를 읽지 않고 영화 '백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적인 부분에 대해서이다. 주로 풀쇼트와 미디엄 쇼트로 제시된,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 연기가 주가 되는 드라마라고 밖에는 말할 것이 없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원작 텍스트와 따로 분리된 '영화'라는 텍스트가 완벽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것을 가지고 비평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에서 기인한다. 문학 작품을 영화화한 경우, 적어도 번역된 저작물이 있다면 그걸 읽어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비평의 기본 자세라는 생각을 늘 한다. 어떤 면에서 1958년작 영화 '백치'는 문학과 영화의 관계에 대한 은유적 텍스트인지도 모른다. 결코 만들어지지 못한 후속편은 영화가 소설의 절반 정도만을 이해할 수 있는, 비어있고 상상의 가능성을 남기는 다른 차원의 결과물임을 상기시키는듯 하다.  



*사진 출처: ru.kinori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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