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ch'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속어로 쓰이는 이 단어는 남에게 무언가를 뜯어낸다는 뜻으로 쓰인다. 예를 들면 담배 한 개피 얻는 것, 빈대를 붙는 행위 같은 것들을 총칭한다. 그다지 좋지 않은 어감의 단어인데, 에릭 로메르의 '사자 자리(Le Signe Du Lion, 1959)'를 보는 내내 그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인공 피에르는 가진 돈이 다 떨어져서 어떻게든 자신의 친구와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파리 시내를 헤매고 다닌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뜨거운 한여름의 파리에 그가 빌붙을 친구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났다. 해외 출장을 가거나, 더위를 피해 휴가지로 가버렸다. 명색이 작곡가로 파리 문화계에 나름의 인맥을 갖고 있는 피에르는 노숙자로 전락한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에릭 로메르의 장편 데뷔작 '사자 자리'는 별자리의 운명을 믿는 남자 피에르의 천국과 지옥을 그린다.

  피에르(제스 한 분)의 천국은 한 장의 전보에서부터 시작된다. 후사가 없는 부자 친척 아주머니의 부고는 피에르에게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다. 조카인 자신에게 상속이 될 거라 믿는 피에르는 친구들을 죄다 불러 모아 흥청망청 파티를 연다. 그저 그런 작곡가로 파리 생활을 겨우 겨우 버티던 이 독일계 미국인은 자신의 별자리인 사자 자리가 이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고 믿는다. 술, 음악, 여자 친구, 거기다 객기 넘치는 한 밤의 총질까지 피에르의 자축 파티는 날이 새도록 이어진다. 그런데 별자리의 운명이 피에르를 배반한 것일까? 유언장에 적힌 상속자는 피에르가 아닌 다른 사촌이었던 것. 피에르는 그렇게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다. 가진 책들을 팔아 끼니를 해결하고, 나중에는 숙박비를 내지 못해 허름한 호텔에서도 쫓겨난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파리의 지인들을 수소문하며 다니는 피에르. 거는 전화마다 어디론가 떠나서 없다는 대답만 듣는다. 단벌 양복 바지에는 청어 통조림 뜯다가 흘린 기름이 묻어 있고, 수중에는 정말이지 땡전 한 푼도 없다. 그는 푹푹 찌는 7월의 파리를 무작정 걷는다. 피에르의 행색은 시간이 갈수록 그가 지나쳐가는 파리의 거지와 노숙자를 닮아간다.

  에릭 로메르는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으로 피에르의 몰락을 그려낸다. 6월 22일에 부고 전보로 시작된 피에르의 행운은 7월 13일에는 유언장 내용을 알리는 전보에 의해 끔찍한 불운으로 귀결된다. 그때부터 시작된 피에르의 처절한 파리 생존기는 노숙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로메르는 피에르가 헤매고 다니는 파리 시내 곳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회화적으로 배치한다. 나들이 나온 연인들과 가족들, 유람선의 관광객들, 카페의 여유로운 사람들... 피에르의 눈에는 자신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물건 훔치다 들켜서 망신당하고, 강가에 떠내려온 과자 봉지 건지려고 애를 쓰고, 피에르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육체 노동을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룸펜 예술가에게 몸을 쓰는 일은 생존 선택지에 없다. 피에르의 몰락은 너무나도 처절하게 그려지지만, 거기에는 로메르만의 유머 감각이 느껴진다. 로메르의 세계에서 운명과 우연의 힘을 늘 발견했던 관객들이라면 어딘가에서 터질 피에르의 인생 한 방을 기다리게 된다.

  로메르는 피에르에게 닥친 행운과 불운을 시간에 따른 이미지로 변주한다. 피에르가 노숙자가 되기까지의 행색의 변화는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땀에 절은 양복, 면도를 하지 못해 덥수룩해진 수염, 지워지지 않는 바지의 생선 기름 얼룩을 보면서 관객들은 피에르가 가진 것 가운데 그나마 온전한 것이 신발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그때, 카메라는 터벅터벅 걷고 있는 피에르의 뒷모습과 함께 구두를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가 피에르의 구두는 돌부리에 채여 터져 버린다. 로메르의 세계는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으며, 운명론이 지배하는 그 세계에서 돌발적인 변수와 일탈까지도 조화에 기여한다. 완전 거지꼴로 노숙자가 되어버린 피에르가 친구에게 발견된 것은 카페에서 자신의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때이다. 그 친구가 전한 소식은 피에르가 믿는 사자 자리의 행운이 결코 허황된 미신이 아님을 입증한다.

  이 영화에 쓰인 음악은 프랑스의 현대 음악 작곡가 Louis Saguer의 바이올린 소타나이다. 음울하고 날카로운 바이올린 선율은 피에르의 몰락을 따라가며, 그가 처한 운명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데에 기여한다. '사자 자리'는 1959년에 만들어졌으나 3년 뒤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영화는 상업적으로 철저히 실패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후 로메르가 만들어갈 거대하고 기이하며 아름다운 영화 세계의 전주곡으로 남는다. 피에르의 인생역전을 그린 '사자 자리'에는 그렇게 로메르의 영화적 세계에 대한 청사진이 담겨 있다.  
 



*사진 출처: list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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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아내(妻, 1953)'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카가와와 미네코는 결혼 10년차 부부다. 영화는 부부 각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관객은 결혼 10년 동안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서로 푸념하는 부부의 속내를 듣게 된다. 이 부부에게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들은 별다른 소통도 하지 않고 얼굴을 바라보는 일도 거의 없다. 아내에게 마음이 멀어진 남편은 사무실의 여직원에게 마음이 기운다. 무뚝뚝하며 돈에 집착하는 아내와는 달리, 여직원 사가라는 사근사근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성품을 지녔다. 아내가 아닌 새로운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나카가와. 아내는 남편의 변화를 눈치채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해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한다. 과연 이 부부는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Wife, 1953)'는 나루세 미키오의 '방랑기(1962)' 원작자이기도 했던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의 '갈색의 눈동자'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는 위기에 처한 부부를 통해 결혼 생활의 황량하고 고독한 풍경을 그려낸다.

  나카가와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먹는데, 밥에서 머리카락이 나온다. 미네코는 확실히 살림에는 별 뜻이 없는 듯하다. 그들 부부의 화해를 위해서 미네코의 친구는 장을 봐와서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친구가 본 미네코의 주방은 제대로 된 칼도 없고, 그나마 그 칼도 무딘 상태다. 친구는 자취생의 주방 같다고 말하고, 나카가와는 아내의 음식은 맛이 없다고 답한다. 이 아내는 그렇다고 남편의 심기를 잘 헤아리는 것도 아니다. 저녁에 책 좀 읽고 자려는 남편 옆에서 과자를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먹는다. 식사하고 나서는 젓가락으로 이를 아무렇지 않게 쑤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아내에게 나카가와는 마음이 멀어진다. 그렇다면 미네코의 삶의 낙은 뭘까? 교외에 2층 단독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세를 놓아 살림에 보태는 것을 보면 '돈'이 미네코의 주된 관심사인 것도 같다. 2층 세입자로 백수 남편 데리고 살던 술집 여종업원 에이코가 나가버리자, 미네코는 그 방을 에이코가 소개해준 동료에게 세를 준다. 새로 온 여자는 돈 많은 유부남을 꼬셔서 집에 드나들도록 만드는데, 미네코는 여자가 지불하는 높은 월세 때문에 그런 부도덕한 광경를 감수한다. 어쩌면 아이가 없고, 남편의 애정도 얻지 못한 미네코가 돈을 든든한 미래의 대비책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내에게서 나카가와는 매일 '직장'으로 도피하고 있다. 그곳에는 마음이 통하는 여직원 사가라가 있다. 사가라가 사무실을 그만두고 오사카로 떠나자, 나카가와는 출장길에 사가라와 재회한다. 그는 사가라의 어린 아들과 함께 여관에 하룻밤 머물면서 지내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와 놀아주는 그에게 사가라는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 묻는다. 그때 아이와 장난감 자동차로 놀아주던 나카가와는 장난감을 세게 밀다가 마루 밑으로 떨어뜨린다. 그냥 이 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만 말하는 나카가와에게 그 관계는 툇마루에서 굴러 떨어지는 자동차의 탈선 같은 것이다. 분명히 아내에게 마음이 멀어졌고, 결혼 생활에 대한 의지도 없지만 그는 결정을 미룬다.

  자, 그렇다면 남편의 바람을 확실히 알아챈 미네코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미네코는 남편의 배신을 용납할 수 없고,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이혼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사가라에게 편지를 써서 헤어지라고 종용하고, 나중에는 찾아가서 자신의 뜻을 밝힌다. 머리끄댕이 잡는 혈투는 벌어지지 않는다. 남편을 계속 만나면 약먹고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는 미네코를 사가라는 '구식'이라며 비웃는다. 사가라의 비웃음은 아주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에 나는 화면을 되돌려서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사가라는 나카가와에게 이별을 통보하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스스로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두 여성의 모습은 전후 일본 사회의 과도기적 변화를 보여준다. 구시대적 관습에 속한 미네코는 혼자서 꾸려가야할 생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이라는 내면의 감옥과 2층 주택의 한정된 공간에 자신을 유폐시킨다. 아버지에게서 재정적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친구와 함께 옷가게를 개업한 사가라는 미네코와는 달리 독립적인 여성의 삶을 살고 있다. 경제력을 가진 여성은 더이상 자신의 삶을 남자와 결혼이라는 틀에 끼워맞추지 않는다. 미네코의 세입자 에이코는 취업할 생각이 없는 백수 남편을 내쳐버린다. 전쟁이라는 변혁의 시기를 거치면서 전후 일본의 여성은 그렇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 나갔다.

  영화의 마지막은 첫부분에 나왔던 부부의 독백이 비슷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마치 수미쌍관을 이루는 그 구성은 그들 부부의 불모(不毛)의 비극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그 어떤 감정의 교류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매일의 삶을 이어가는 것. 남자는 매일 아침 직장으로 도피했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잠든다. 아내는 남편이 늘 하는 '피곤하다'는 말을 들으며, 맛없는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할 것이다. 나루세 미키오가 보여주는 이 결혼의 풍경은 너무나도 냉혹하고 끔찍하다. 화해도 결별도 아닌, 비극의 연장인 '아내'의 결말은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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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의 지평과 앙드레의 지평이 만났을 때,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My Dinner with Andre, 1981)


  "예전의 내 머릿속에는 예술과 음악으로 가득찼었는데, 내 나이 서른 여섯, 이젠 오로지 돈 생각만 할 뿐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궁핍한 극작가 월러스는 약간은 어색하고 불편한 저녁 식사 약속을 앞두고 있다. 연극계에서 잘 나가던 연출가 앙드레는 처자식을 내버려두고 어느날 갑자기 잠적했다. 월러스는 그가 티벳이며 세계 이곳저곳을 떠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가,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앙드레를 봤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려준 예전의 인연도 있고,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도 궁금해진 월러스는 앙드레와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한다. 1시간 5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 두 사람이 저녁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영화 속 등장인물 월러스와 앙드레는 실제 연극계 종사자로 실명으로 등장한다. 월러스는 친구 앙드레와 나눈 대화를 희곡으로 써서 연극으로 올릴 생각이었으나 영화가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소식을 들은 루이 말은 감독을 자청했고, 그렇게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가 만들어졌다.     

  월러스는 딱히 할 말도 없고, 질문을 계속 던짐으로써 앙드레가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유도한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앙드레의 말문이 터진다. 영화는 거의 앙드레의 1인극처럼 보일 정도다. 월러스는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다가, 식사가 끝날 무렵에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앙드레, 이 양반이 들려주는 방랑기가 정말 골때린다. 앙드레는 자신의 절친 그로토프스키의 연극 세미나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일반인 40명과 숲속에서 진행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연극 캠프는 하루종일 노래를 부르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일종의 실험적 연극 캠프였다. 앙드레는 계속해서 그로토프스키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째 그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예전에 연극 수업에서 들었던 이름이다. 그렇다.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는 폴란드 출신의 유명한 연출가로 일명 '가난한 연극'으로 연극 연출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사람이다.

  앙드레 그레고리는 그로토프스키가 미국에서 3년 남짓 체류할 때, 실제로 무척 가깝게 지냈고 그의 미국 정착을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수동적 관객의 존재를 배제하고, 연극의 원초적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로토프스키의 급진적 연극론은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는 미국 체류를 끝내고 이태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자신의 연극적 실험을 이어갔다. 나중에는 일반적 연극 연출은 포기하고, 자신과 가까운 친구와 연극 관계자들만을 초청한 연극 세미나를 이끌었다. 영화에서 앙드레가 말하는 숲속 연극 캠프 이야기는 그렇게 초청받아 참가한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불 없이 숲에서 지내기, 아침에 직접 빵 구워보기를 비롯해 파놓은 구덩이에 참가자를 들어가게 해서 머리만 내놓고 흙으로 덮기 등등,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기상천외한 실험 연극적 시도가 이어졌다. 영화에서 앙드레가 친구들이 자신을 구덩이에 내던져 파묻었다가 나중에 꺼냈다는 이야기도 결코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아무튼 이 특이하기 짝이 없는 연출가의 방랑은 폴란드의 숲, 스코틀랜드의 핀드혼, 사하라 사막 등등 세계 곳곳으로 이어진다. 도대체 앙드레는 왜 그런 곳을 다니며 무엇을 찾아 헤맸던 것일까? 매일매일 쌓이는 공과금 고지서와 씨름하고, 자신의 희곡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월러스에게 앙드레의 기행은 팔자 늘어진 유람처럼 보인다. 앙드레는 자신의 삶의 본질, 존재의 진정한 자각을 찾아 떠났다고 온갖 철학적인 수사를 늘어놓는다. 웨이트리스로 맞벌이하는 여자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기를 꿈꾸는 월러스는 앙드레가 찾는 인생의 의미가 머나먼 나라들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녁에 마시다 놔둔 커피를 아침에 마시려는데 바퀴벌레가 없으면 만족한다는 월러스. 그가 뉴욕의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해준 전기 장판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자 앙드레의 반응은 이렇다.

  "전기 장판이 주는 안온함은 실재를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구. 그건 우리가 '추위'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지. 그런 것 없이 사는 것이 진짜 세계와 대면하는 거야."

  이미 전기 장판 없이 살 수 없는 몸뚱이가 되어버린 뉴요커 월러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앙드레를 바라본다. 월러스는 앙드레가 말하는 결정론적 세계관, 운명, 무의식 같은 것에 별로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식사가 끝나고 커피를 마실 때쯤 월러스는 앙드레의 이야기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는다. 아마 앙드레도 월러스가 말하는 일상의 행복과 과학적 합리주의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레스토랑의 손님들이 이미 1시간 전에 다 나가고 문 닫을 시간까지 이어진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 월러스는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늘 별 생각없이 바라보던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들에서 어릴 적 자신과 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린다. 어쩌면 앙드레와의 대화가 월러스의 세계를 조금은 바꾸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낯설고 기이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새삼 오래전 서양 현대 철학사를 한학기 동안 머리 아프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 강의가 결국 내게 남긴 것은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 한 조각이었다. 나의 지평과 너의 지평이 만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것, 월러스의 지평은 앙드레의 지평과 만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간다. 그건 앙드레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를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화로만 이루어진 이 이상하고 지루한 영화를 통해 자신의 영화적 지평을 넓히려는 이들은 언젠가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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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도입부부터 특이하다. 항공 촬영으로 뉴욕 도시를 조망하는 장면과 함께 남성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영화의 제작자 마크 헬린저(Mark Hellinger). 그는 관객에게 앞으로 보게 될 영화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한다. 영화의 제목과 감독,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 소개 등등...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설명과 함께 뉴욕의 무더운 여름날, 새벽 1시에 일어나는 살인 사건 현장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간다. 젊은 여자는 두 명의 남자에 둘러싸여 죽임을 당한다. 한 명의 얼굴은 보이지만, 다른 한 명은 등을 보이고 서있다. 다음날, 여자의 집으로 출근한 가정부는 시신을 발견한다. 사건이 신고되고, 그때부터 형사들의 범인찾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죽은 여성은 진 덱스터란 이름의 모델. 과연 누가, 왜 이 여자를 살해했을까?

  오늘날의 관객에게 70년 전의 범죄 수사 과정을 보는 것은 나름대로 흥미롭다. 사건 현장에 출동한 형사 반장 멀둔은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인 남자 잠옷을 아무렇게 않게 들어서 살펴 본다. 당시의 과학 수사라는 것이 기껏해야 검시와 지문 채취라는 전통적 방법이 전부라는 사실은 형사들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만든다. 살인범을 잡으려는 형사들은 뉴욕 바닥에서 바늘 찾는 형국으로 탐문 수사와 미행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사실, 이 영화에서 범인을 검거하기까지의 과정은 일반적인 필름 느와르 영화와 비교해 그다지 특출난 점이 없다. 그러나 '네이키드 시티'에는 제목에 들어 있는 '시티', 즉 뉴욕의 사람들과 그곳의 다채로운 풍광들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여느 범죄 추리물과 차별점을 갖는다. 마차에 실려 배달되는 우유, 아침에 미어터지는 뉴욕의 지하철, 범죄 소식을 알리는 신문 매체의 유통 과정, 사람들이 식사하는 카페와 번잡한 시장,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노는 여름의 노상 도로... 영화는 1948년의 뉴욕이란 도시를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다. 특히 일반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 소형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영화의 그러한 사실주의적 면모는 거대 도시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범죄와 도덕적 타락, 도시인의 익명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죽은 모델 진 덱스터는 장물아비와 공모해 보석을 훔쳐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는 부도덕한 인물이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의 불륜, 절도, 사기, 거짓말이 속속 드러난다. 돈을 추종하는 남자가 약혼녀에게 준 반지는 장물이다. 그런가 하면, 살인을 저지른 주범은 훔친 보석을 나누기 싫어서 공범을 죽인다. 나이든 남자는 젊은 여자의 미모에 눈이 멀어 범죄를 묵인한다. 이 도시는 벌거벗은 욕망으로 넘쳐나고 있으며, 그 욕망의 끝은 범죄와 맞닿아 있다. 평화로운 일상의 공간은 언제든 범죄가 틈입할 수 있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강에서는 시체가 떠오르고, 도시의 일상적 공간인 도로와 다리는 범죄자가 탈주극을 벌이는 장소가 된다. 젊은 형사 할로런은 자신의 아이가 집앞을 벗어나 근처 큰 도로에 혼자 갔다왔다는 아내의 말에 걱정한다. 이 도시에서 완벽한 안전은 결코 담보할 수 없다.

  '네이키드 시티'는 도시가 갖고 있는 양면성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화려한 쇼윈도, 부유층의 주거지와 대비되는 범죄자가 사는 빈민가가 있다. 고급 병원의 안락한 진료실의 의사와 고층 건물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막노동자는 또 다른 대조를 이룬다. 영화의 마지막, 형사들의 추격을 피해 다리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범인은 추락한다.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던 범죄자는 비상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검거하러 온 형사 할로런에게 전직 레슬러인 자신의 육체를 과시하며 자신은 머리도 좋다고 말한다. 강인한 육체와 좋은 머리를 갖고도 하층민이 생존하기에 이 크나큰 도시는 냉혹하고 비정한 곳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택한 범죄의 길은 파멸로 이어진다.

  영화의 마지막에 촬영에 협조해준 뉴욕시 당국에 고마움을 표하는 자막이 뜬다. 뉴욕이란 도시는 일찍부터 영화의 상업성에 눈을 떴고, 그것은 곧 정책적 지원과 혜택으로 이어졌다. 뉴욕은 영화 제작시 다른 도시에 비해 적은 세율을 적용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The Departed, 2006)'도 영화 속 배경은 보스턴이지만, 실제 대부분의 촬영은 뉴욕에서 이루어졌다. 뉴욕시가 제공하는 세금 감면 혜택이 그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네이키드 시티'는 줄스 다신의 재능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영화인 동시에 뉴욕이란 도시로의 매혹적이고 놀라운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사진 출처: criterion.com   감독 줄스 다신(Jules Da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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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합작이 소련 영화에 남긴 유종의 미, 어느 이태리인들의 러시아 대모험(Невероятные приключения итальянцев в России, Unbelievable Adventures of Italians in Russia, 1974)

  노부인은 임종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 혁명의 불길을 피해 이태리에 정착한 이 할머니에게는 손녀딸이 있다.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그야말로 엄청난 유언을 남긴다. 고국을 떠나기 전,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자상 밑에다 수십억에 달하는 보석들을 감추어 두었다는 것. 병실에서 그 유언을 들은 사람은 손녀딸 올가를 비롯해 주치의, 다리 깁스를 한 환자, 남자 간호사 안토니오와 주제페, 마피아 로사리오까지 모두 여섯 명. 이들은 곧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라 보물을 찾을 생각에 들뜬다. 마피아 로사리오는 의사의 여권을 몰래 버리고, 깁스 환자는 밀수범이라고 세관에 신고해서 두 명을 떼놓는다. 나머지 세 명과 보물을 나눠가질 생각이 없는 올가는 그들을 피해 달아난다. 마피아는 나머지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안토니오와 주제페는 러시아 여행 가이드 안드레이와 함께 올가를 찾으려 애를 쓴다. 우여곡절 끝에 레닌그라드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 너무나도 많은 사자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사자상마다 파헤쳐 보는 보물 탐사대, 과연 보물 찾기는 성공할 것인가...

  엘다 라쟈노프(Eldar Ryazanov)감독의 1973년작 '어느 이태리인들의 러시아 대모험(Unbelievable Adventures of Italians in Russia)'은 소련 국영 영화사 모스 필름(Mosfilm)과 이태리 영화사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이태리 영화사가 모스 필름에 진 빚을 갚기 위한 대안이었다. 1970년,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워털루(Waterloo)'가 이태리와 합작으로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소련은 그 영화를 위해 막대한 제작비와 물량을 쏟아부었지만, 해외 흥행 실적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스탠리 큐브릭은 '워털루'가 망하는 것을 보고 나폴레옹에 대한 시대극을 만들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이태리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소련 영화 당국과 모스 필름의 손해는 컸다. 그에 대해 일종의 빚 청구서로 수익을 내기 위한 합작 영화 한 편을 더 만들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양쪽에서 공동으로 쓰기로 한 시나리오는 여러 번 엎어진 끝에 겨우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이태리 촬영시 제작비는 로렌티스가 부담하기로 했는데, 이 짠돌이 제작자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을 기용했고 영화를 위해 온 소련 촬영팀들에 대한 대우도 박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시작부터 쉽지가 않았다.

  이 골치 아픈 프로젝트를 맡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소련 영화 촬영 국가 위원회(Goskino)는 그 책임을 라쟈노프에게 맡겼다. 코미디 연출에 소질이 있는 라쟈노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라쟈노프는 처음에는 시나리오 작업에만 참여하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떠맡았다. 그리고 그는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멋지게 만들어 냈다. 이 영화를 보면 나름대로 큰 제작비가 투입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초반부에 마피아 로사리오의 실수 때문에 비행기가 고속도로에 긴급 착륙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짜로 비행기가 차들이 달리는 도로 한 가운데에 착륙을 한다! 물론 실제 고속도로에서의 촬영이 아니라, 공항의 활주로에서 이루어졌지만 거의 묘기에 가까운 그 착륙 장면은 놀랍기만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안토니오와 주제페, 안드레이가 올가를 자동차로 따라가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 스턴트는 박진감이 넘친다. 자동차 스턴트는 이태리의 레이서 겸 스턴트맨인 세르지오 미오니가 맡아서 멋진 장면을 만들어 냈다. 이 영화에 합성으로 처리된 가짜 장면은 하나도 없다. 라쟈노프 감독은 그런 장면들을 합성이 아닌 실제의 것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주유소 폭발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주유소 모양의 건물을 똑같이 지어놓고, 진짜로 폭파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국가가 영화 산업을 총괄하고 지원하는 소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볼거리에 더해 어설픈 보물 탐사대가 가는 곳마다 벌이는 소동은 끊임없는 웃음을 만들어 낸다. 사자상 아래 도로를 파헤치는가 하면, 동물원의 사자 우리까지 가서 보물을 찾다가 사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 게으르고 말 안듣는 사자를 다루는 것은 라쟈노프 감독에게 가장 큰 시련이었다. 사자는 이태리 배우 한 명에게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는데, 촬영이 끝날 무렵에는 부주의하게 접근한 일반인에게 덤벼들었다가 경찰의 총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 때문일까? 영화를 보다 보면 사자와 근접한 거리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이 조마조마하다. 러시아 여행 가이드 역을 맡은 안드레이 미로노프는 두어 발자국 거리에서 사자에게 말을 건네는 연기를 해야했다. 이 대단한 근성을 가진 배우는 자동차 스턴트 신의 일부분과 6층 호텔 창문에서 카펫으로 내려오는 장면까지 직접 해냈다. 그는 1969년작 '다이아몬드 팔(The Diamond Arm)'에서도 몸을 유연하게 쓰는 연기며 슬랩스틱도 잘 소화해냈다.

  라쟈노프 감독의 연출은 성공적이었다. 소련에서 개봉 첫해 5천만 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액션과 코미디가 적절히 어우러진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 '워털루'는 소련 영화 당국에 트라우마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왜 소련은 이태리와의 영화 합작을 시도했을까? 소련 국내 관객만을 대상으로 한 내수 시장을 넘어선 새로운 수익 창출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에 따른 정책적 지원은 흐루시초프 시절의 '해빙기'와도 맞물려 추진되었다. 소련은 원래 서독과의 영화 합작을 모색했다. 그러다 1967년에 이태리와의 상호 합작에 대한 협약이 이루어지면서 서독 대신 이태리가 제작 파트너가 되었다. 이태리는 제작 기술 쪽의 강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본 조달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였다. 영화에 대한 소련의 국가 정책적 지원은 이태리 제작사들에게 매력적인 조건이었고, 소련은 이태리를 통해 해외 배급과 판권 시장을 확장해 나간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이태리 영화사의 자본주의적 마인드와 소련의 관료주의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거기에 제작 현장에서의 의사 소통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오해는 영화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의 1969년작 'The Red Tent'는 그런 가운데 나온 첫 결과물이었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던 합작 영화 시스템은 '워털루'의 대실패로 결국 결별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어느 이태리인들의 러시아 대모험'은 그 결별의 과정에서 소련이 거둔 유종의 미일지도 모른다. 러시아어 대사는 더빙으로 처리되었지만, 주연 여배우를 비롯해 4명의 이태리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은 편이다. 소련 영화 당국과 라쟈노프 감독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했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게 이 영화의 제작 배경에는 소련이 가진 영화 산업적 고민이 깔려 있다.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넘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했던 소련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쓰디쓴 경험들이 훗날 소련 붕괴 이후 해외 합작으로 활로를 찾으려 했던 민간 영화 제작사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산업적 측면과 상업적 속성에 대해 공산주의 국가 소련은 1967년부터 1970년대 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태리와의 합작을 통해 그렇게 충분히 학습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film.ru


**사진 출처: pikabu.ru  실제 주유소로 착각한 운전자들이 기름을 넣기 위해 찾았던 주유소 세트의 폭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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