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은 냉장고 이야기가 기억난다. 글을 쓴 이는 아들인데 본가에 갔다가, 어머니의 긴 출타를 틈타서 몇년 동안 하지 못한 본가 냉장고 청소를 해버린다. 그는 냉장고 칸칸마다 가득 채워진 '정체불명의 검은 봉다리'를 모두 버릴 수 있어서 속이 후련하다고 썼다. 그 냉장고 청소를 위해 오랫동안 절호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도 덧붙였다. 그 아들은 무척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는 성격이었는지, 본가 냉장고의 '처참한' 상태를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 글에는 이런저런 댓글이 달렸는데, 잘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냉장고의 주인인 어머니의 의견도 묻지 않고 한 것은 심하다는 글도 있었다. 그 '검은 봉다리'는 어쩌면 다들 자신들의 집에서 한 번쯤은 보았던 것이라 그랬는지 많은 공감도 자아냈다.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걸 확인하려면 일일히 열어봐야 하는 그 검정 비닐 봉투. 어머니들이 사랑하는 시장 비닐 봉투는 내용물과 함께 도대체 언제 샀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마법 봉투이다. 그것들이 점령한 냉장고가 못마땅하다 하더라도 내 생각에 그 '깔끔한' 아들은 나중에 집에 와서 그 모든 사태를 확인한 어머니한테 등짝을 한 대 세게 맞았을 것 같다. 


  올 봄에 세탁기에 문제가 생겨서 수리 기사가 방문했는데, 같은 회사의 제품인 냉장고도 점검해 주었다. 냉장고는 잘 정리되어 있었고, 검정 비닐 봉다리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기사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마치 어디선가 일기장을 잃어버렸는데, 그걸 주운 누군가가 읽어 본다고 생각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냉장고'란 물건이 지닌 그 본성, 그리고 그 공간에 든 내용물들이 냉장고 주인의 일부, 어쩌면 아주 큰 부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기장'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스테파니 드 루즈(Stephanie de rouge)는 바로 그 냉장고가 가진 특별한 의미에 주목하고 자신의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당신의 냉장고 안(In Your Fridge, 2011)'으로 펴냈다. 그 사진들은 냉장고 주인(또는 가족들)과 그 냉장고 안 사진을 이어 붙여서 보여준다. 각각의 냉장고 사진들은 그것을 쓰는 이들의 삶의 방식, 가족 구성원, 계층, 선호하는 음식과 같은 아주 다양한 정보들을 유추하게 한다. 그 유추된 생각들과 사진 속 냉장고 주인의 실제 모습을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있다.


  이제는 종영한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그런 냉장고 사진들을 보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 프로에서 냉장고는 당당히 중심을 차지하는데, 그 열려진 냉장고 안의 내용물들은 그 주인들의 성격, 일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각종 주류와 안주로 가득찬 냉장고 주인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는 정보를 준다. 그런가 하면 각종 건강식품과 오만가지 '즙들의 향연'을 냉장고에서 보여준 출연자도 있었다. 운동선수였던 그가 가장 중시하는 삶의 가치는 아마도 '건강'이었을 것이다. 유통 기한이 지난 식품이 나오는 것은 흔한데,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출연자는 문희준이었다. 그의 냉장고 하단 야채 박스에는 유통 기한이 몇년 지난 닭가슴살 팩들이 잔뜩 있었다. 진행자가 왜 이걸 아직도 버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닭가슴살 팩에 인쇄된 선배 연예인 사진을 보면 미안한 마음에 차마 버릴 수 없었다고 해서 웃음을 주었다.

 

  나의 냉장고 안을 누군가 본다면 아주 단번에, 명확하게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아, 이 냉장고 주인은 요리에는 뜻이 없구나."


  요리, 나에게 있어 그렇게 괴롭고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작업은 없었다. 수많은 요리책을 읽었고 도전해 보았지만, 그 모든 시도들은 실망과 놀라움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 후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요리를 못하는 이유는 요리에 너무나 많은 '창의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요리란 정확한 분량의 계량, 정해진 조리 순서, 그것을 충실히 따르고자 하는 의지의 총체적 결과물인데 나는 그 모든 과정의 중요성을 때론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해버린다. 요리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은 '창의성'이다. 그건 대가들에게나 허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요리를 포기하게 된 이후로 나의 냉장고는 간촐해졌으며, 대신 이런저런 냉동, 즉석 식품들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 가끔은 그런 냉장고를 들여다보는 것이 냉기가 가득한 황량한 사막의 밤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냉장고 안 주황색의 백열전구 불빛만이 그 쓸쓸한 풍경에 그나마 온기를 더한다. 이제는 요리에 창의성을 발휘하는 대신에, 매일의 글쓰기를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냉장고 안 풍경은 건조하고, 단조로우며, 고독하다. 그러나 내가 쓰는, 그리고 쓰게 될 글들에는 따뜻함과 다채로움, 세상과 사람들 사이의 연대(solidarity)를 가능하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있기를 꿈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전 드라마 '아들과 딸(1992)'은 케이블 드라마 채널에서도 나름대로 사랑받는 재방목록에 들어간다. 누군가 그 드라마에서 자신에게 가장 충격적인 대사는 바로 이것이었다고 썼다.


  "아이고, 귀남이한테 폐병 옮기는 거 아녀?"


  아들 딸 쌍둥이로 태어난 귀남과 후남, 늘 모든 애정을 독차지하는 귀남에 비해 구박덩어리로 자란 후남은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결핵에 걸렸다. 그걸 듣고 귀남 엄마가 하는 말이다.


  그 드라마를 주의깊게, 인상적으로 본 연령대는 아마도 3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는,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올라오는 그 드라마 감상평을 보면 그러하다. 그 연령대의 여성들이 경험한 시대는 이전 세대에 비하면 사회적으로 여성 인권이 많이 향상된, 눈에 보이는 남녀차별, 가부장제가 물리적으로 해체되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관습법적으로 굳어져온 남성 위주 사회의 정신적 지형은 견고했다. 드라마 '아들과 딸'은 그러한 사회적 균열이 일어나던 1990년대에 방영되면서 높은 시청률과 함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었다.


  정혜선이 분한 귀남 엄마(그는 결코 후남 엄마로 불리우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지독하고, 신앙에 가까운 '아들 사랑'은 결핵에 걸린 딸 걱정 보다는 아들에게 전염이 될까 걱정하는 것에까지 미친다. 그걸 보는 이들에게는 그쯤되면 진짜 딸이 맞나 싶을 정도의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나중에 후남이가 귀남의 친구 석호와 결혼하게 되자, 사법고시에 합격한 석호를 보는 게 귀남이가 괴롭지 않겠냐며 딸의 혼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한마디로 딸 잘되는 것이 귀남 엄마는 '싫다'. 그 이유는 하나다. 쌍둥이로 태어난 후남이가 잘 풀리는 것은, 귀남의 운을 뺏어가서 귀남이의 인생이 엉키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귀남 엄마는 6대 독자 집으로 시집와서 연달아 딸 셋을 낳았다. 귀남이가 그저 '아들'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 '귀한 아들'이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귀남 엄마가 살아왔던 시대의 여성의 인권이란게 얼마나 보잘 것 없었던 시대였는지는 1960년대에서야 민법에 규정된 배우자 상속권을 보면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사망해도 상속을 받을 수가 없었다. 상속법은 일제 식민시대 구관습법을 그대로 인정해서 호주상속 순위에 따랐는데, 적출 장남과 차남, 직계 비속의 순서를 따랐다. 딸이라 하더라도 출가한 자식은 제외되었다. 그러니까 여성 배우자는 남편이 사망하면 재산을 상속한 아들에게 기대어 살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1958년에 새롭게 제정된 민법이 1960년부터 효력을 미칠 때까지 이어졌다.


  삼종지도(), 유교의 고전 '예기()'에 나오는 여자가 따라야할 세 가지 도리. 즉,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유교 문화권의 도덕규범이다. 귀남 엄마에게 남편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허세가 가득하고, 제멋대로이며, 가정 돌보는 일에는 등한한 무능한 가장을 둔 귀남 엄마는 낚시터 점방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 귀남 엄마에게 오직 꿈이 있다면,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아들 귀남이가 잘 되어서 집안을 일으키고, 자신의 노후도 편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애정을 '몰빵'하는 귀남이의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후남이는 어렵게 방통대를 졸업한 후 교사가 되고 검사 남편까지 얻는다. 거기다 소설가의 꿈까지 이룬다. 귀남 엄마는 그 모든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다. '아들이 잘 되어야 집안이 풀리는 것인데', 하면서 한탄을 했을 것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 귀남 엄마로 나온 정혜선은 그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온갖 미움을 다 받았다. 드라마의 내용과는 달리 정작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은 사람은 김희애가 분한 '후남'이었다. 귀남 엄마와 함께 귀남이도 밉상으로 여겨졌다. 귀남이가 보여준 쪼잔함, 자기 중심성, 우유부단함, 그 모든 것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드라마의 귀남 엄마와 귀남이를 보면서 미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어떤 면으로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연민을 느꼈고, 이해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귀남이가 살아낸 삶, 부모의 넘치는 관심과 기대를 받으면서 그가 느꼈을 그 부담감과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에서의 좌절감을 주의깊게 보았다.


  드라마는 귀남 엄마가 딸 후남이와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화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후남이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귀남이를 편애할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고, 그 오랜 애증의 시간들을 담담히 받아들일까? 어떻게 딸이라고 해서 그렇게 자식을 모질게 대할 수 있느냐고 평생에 걸쳐서 울분을 쏟아낼까? 아마도 귀남 엄마의 아들 사랑은 평생동안 지속될 것이기에 후남이의 속내는 더 복잡하고 괴로울 것이다.


  귀남 엄마의 과도한 아들 사랑, 또 그 근원이 되는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일은 이 드라마를 보는 단선적 시선이 될 것이다. 그 보다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그 질기고도 거대한 서사를 볼 필요가 있다. 부모 자식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 애정의 많고 적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이 특별한 관계는 서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받으며, 생채기가 난 자리에 애정을 들이붓고 거두기를 반복한다.


  자식은 부모가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지만, '부모'는 결코 완전무결한, 흠결이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므로 그것은 이루어지기 힘든 꿈이다. 그 보다는 '부모'는 나름의 결점과 약함을 가진 이들로, 그들의 타고난 성정대로 자식을 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자식'은 그러한 부모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연민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평생을 두고 이어지는 부모 자식 사이의 '애증의 서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될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후남이에게 안정적인 직업, 좋은 남편, 소설가로서의 성공을 선물함으로써 후남이의 인생에 빛을 드리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결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남이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긍정하고, 어머니를 연민으로 바라보았을 것 같다. 그것이 애증의 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간 여성,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후남이의 선택으로 어울리지 않을까. 그 오래된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 '장고(1966)'의 프랑코 네로가 1976년에 찍은 '케오마(Keoma, 서부의 불청객)'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케오마'는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데, 그 이름은 원주민어로 '자유'라는 뜻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독특한 주술적 장치, 원주민 혼혈의 북군 출신의 주인공, 악당으로 설정된 남부군 등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찾다가 DVD를 구매한 이의 평을 읽었는데, 이런 글이 있었다.


  "진짜로 돈과 시간만 낭비한 작품입니다."


  그 글을 쓴 이는 어느 블로그에서 좋다는 평을 읽고 구매했다가, 지뢰작을 고른 셈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영화 '장고'를 이 글을 읽고나서 보려는 이들도 그런 비슷한 평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영화의 화면 자체가 전반적으로 많이 '후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촬영 당시의 절대적인 광량()의 부족 때문이다. 영화는 대부분 춥고 흐린 날씨의 환경에서 촬영이 되었는데, 이 부분이 후반 현상 작업에서 문제가 되었다. 음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촬영분을 다시 찍거나 할만한 제작비도, 여건도 되지 못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영화에서 멕시코 국경 수비대의 금을 탈취한 다음에 창고에 쏟아서 보관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금이 아스팔트 포장재로 보일 정도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화면의 어두움과 주요 배경이 되는 마을 세트장의 진창길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측면도 있다. 대부분의 서부극이 모래가 날리는, 햇빛이 쏟아지는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 달리, '장고'는 웅덩이가 흥건한 진창길, 음울한 잿빛 하늘이 이 화면을 채운다. 프랑코 네로가 분한 장고는 밧줄에 묶은 관을 그 진창길을 질질 끌고가며 등장한다.  


  북군 출신의 장고는 자신의 아내를 죽인 남부군 잭슨 소령에 원한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는 잭슨 소령의 잔당과 KKK(Ku Klux Klan)단원들을 기관총으로 그야말로 '쓸어버린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이러한 설정은 미국 서부극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면이다. 마치 뭐랄까, 어떤 강고한 결의마저 느껴진다.


  "당신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가 대신 보여주마."


  수정주의 웨스턴의 걸작이라고 하는 존 포드의 '수색자(1956)' 이후로, 미국 할리우드의 서부극에는 원주민들을 악마화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자기 성찰의 기운이 감지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부군을 '악의 축'으로 내세우지는 못했다. 존 포드의 1959년 작 '기병대'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남군이 북군에 격파당하는 결말인데 당시의 처참한 흥행실패가 그 점을 보여준다. 미국의 관객들, 특히 남부 주민들에게 그런 영화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노예들은 해방되었지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온 것은 아니었다. 여전한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의 유령이 남부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것은 1960년대의 흑인 인권운동, 최근의 BLM(Black Lives Matter)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장고는 자신이 끌고 다니는 관 속에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에, '장고'라는 사내가 누워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 내내 관 속에 자신을 넣어야한다고도 말한다. 그 말은 아내의 복수와 함께 이전의 자신의 삶도 의미한다. 더불어 그 관 속에 들어가야할 것은 그가 살아온 시대의 모든 악습과 치부일지도 모른다.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오래된 역사, 그 모든 것이 영화에 등장하는 '더러운 진창길' 위에 깔려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선 후보 토론에서도 언급된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는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극우단체로 트럼프의 호위무사를 자처한다. 그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공권력에 맞서는 나라, 그것이 오늘날의 미국이다. 프라우드 보이스의 단원들에게 백인 우월주의는 수치가 아니라 신념이며 지켜야할 중요한 가치이다. 이미 오래전에 폐기되었어야할 구시대적 악습이 미국을 분열시키며 흔들고 있다. 멕시코 양민들을 사격 연습대상으로 삼는 인종 차별주의자 잭슨 대령과 그 잔당들, KKK단원들을 장고는 결국 궤멸시키며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지만, 그가 자신이 끌고 다녔던 관 같은 어둡고 슬픈 과거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관에 넣어서 영원히 매장했어야할 악인들의 신념은 악령처럼 오늘날의 미국을 떠돈다.


  아마도 타란티노의 흥미를 끌었던 지점도 그 부분일 것이다. 그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로 1966년에 만들어진 영화 '장고'를 다시 소환한다. 어쩌면 그 영화는 영화적 시효가 다했어야할 주인공에게 숨을 다시 불어넣을 만큼 미국의 오랜 악습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감독 세르지오 코르부치가 창조한 '장고'라는 인물은 오래전에 자신의 복수를 끝냈다. 그가 끌고 다니던 관은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유사(砂)'속에 가라앉았으며, 신기에 가까운 사격솜씨를 보여주던 두 손은 짓이겨져서 못쓰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할 바를 끝내고 더러운 진창길과 묘지가 있는 마을을 떠나갔다. 장고에게 또 다시 관을 끌게 만들어 우리 시대로 소환하는 일은 비극이 될 것이다.


  장고 역의 프랑코 네로는 23살의 나이에 이 영화를 찍고 세계적인 스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영어로 더빙된 이 영화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제대로 찍지 못해 어두운 화면, 제작사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택한 진흙으로 범벅된 질척거리는 세트장, 더빙 때문에 몰입이 안되는 인물들의 대사, 그 모든 것이 '옥의 티'일 수 있다. 그러나 헐리우드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서부극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진정성'과 '신념'이 영화 '장고'에 있다. 이 영화를 보는 일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며, 영화를 통해 54년 전에 장고가 걸어갔던 그 고통스럽고 더러운 진창길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주인공 '장고'의 이름은 대본을 쓴 감독 세르지오 코르부치와 그의 동생 브루노가 집시 출신의 세계적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에서 따온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언젠가 'CSI 라스베가스'를 보는데, 재미난 부분이 있었다. 범인을 다 검거하고 나서, 브래스 경감과 스톡스 요원이 대화를 나눈다. 범인들이 저지른 일들이 'Jumping the shark' 같아, 라고 말을 주고 받자, 스톡스 요원도 수긍한다. 그러나 그걸 들은 그리섬 반장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jumping the shark, 이 말뜻을 정말 모르는 거야?"


  그리섬 반장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만, 브래스 경감과 스톡스 요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가버린다. 어쩌면 이제 쓰고자 하는 글은 그 'Jumping the shark'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다른 과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입학하기 전에 학교 강당에서 열렸다는 굿 공연에 대해 들었다. 굿을 주관한 만신(오랜 경력의 큰 무당을 일컫는 말)이 굿을 끝내고 그 학과 관계자들에게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아, 굿하는데 귀신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놀랐지 뭐요. 구석 구석 자리 잡고 앉아서 보는데, 그것도 다 무복()입은 옛날 귀신들이야. 이렇게 귀신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어찌 공부하나 싶고, 걱정이 됩디다. 이런 데서 공부하면 애들이 많이 아프고 힘들어요. 보통 기가 센 애들 아니면 견디질 못해."


  어느 수업 시간에 예전에 학교에서 살풀이 굿 공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런 뒷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만신이 덧붙인 이야기도 전했다.


  "학생들 가운데는 귀신 보는 애들도 있을 거요. 그러면 놀라지 말고 기도를 하라 그래요. 귀신한테 여기 있지 말고 좋은 데 가라고, 기도해주겠다고 그러면 괜찮아요."


  나는 흥미진진한 그 이야기를 듣고 그냥 웃어넘겼다. 학교 옆에 무덤이 있으니 그럴 법도 하네,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니던 학교의 아이들 생각하면 만신의 말도 맞겠다 싶었다. 보통의, 평균적인 삶의 행로를 가길 원하던 아이들은 대개 그 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통계의 정규분포 곡선에서 가운데가 아닌 양쪽 끝에 자리한 아이들의 집합체 같았다고나 할까, 학교 밖에서라면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아마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는 나도 그러했을 것이다. 


  몸이 아픈 아이들이 많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모두들 마음속 고민들은 많고 나름의 괴로움을 떠안고 살았을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 같다. 그걸 배워도 무슨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취업이 보장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 세계에서 빛나는 사람은 빙산의 맨 위쪽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차가운 얼음물 밑에 잠겨서 보이지도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들어온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애들도 많았고, 더러는 점집 찾아가서 이 공부 계속 해야하냐며 물었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어쨌든 만신의 그 말은 귀신 많은 학교에서 어떻게든 잘 다녀야겠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성질 나쁜 아이들과 부딪히더라도, 그래, 너나 되니까 이 학교에서 견디는 거겠지,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내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머무르고, 그나마 편하게 여겼던 곳은 지하 시사실이었다. 공강 시간이나 일찍 강의가 끝난 날은 자료실에서 영화 대출해서 그곳에서 보는 때가 많았다. 방학 때는 학교에 아침 10시쯤 나와서 오후 6시까지 영화를 보다 갔다. 방학 때조차 마치 출퇴근 하는 직장인처럼 살았던 것 같다. 하는 일이 돈을 버는 일이 아닌 영화 보는 일이었지만.


  아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즈음이었을 것 같다. 자료실에서 영화 대출해서 지하 시사실 모퉁이를 돌아서 가는데, 내 앞으로 뭔가 확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형상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뭔가가 느껴지기는 했는데 아주 서늘한 기운이었다. 물론 그 지하의 공간 자체가 늘 서늘하고 추운 곳이기는 했지만, 내가 느낀 기운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것이라고 해두자.


  그 짧은 순간, 나를 보고 휙 스쳐갔던 그 뭔가는 푸르스름한 빛을 띄었다. 나는 귀신이란 것은 믿지도 않았고,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건 뭔가 다른 것이구나, 싶은 직감이 들었다. 어떤 에너지나 파장으로 느껴졌다는 것이 맞을 것도 같다. 그런데 그건 무서운 느낌이 아니라 슬픔과 외로움의 감정으로 느껴졌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좋은 곳으로 가렴. 내가 기도해줄게."


  나도 모르게 혼자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만신의 말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고나니 조금은 놀란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그 일 이후로 지하 시사실을 찾는 것이 꺼려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사실에서 영화 볼 때, 항상 전등을 켜두었다.


  'Jumping the shark'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TV시리즈 'Happy Days'에서 유래된 말이다. 처음에는 무척 인기를 끌었던 이 시트콤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소재고갈과 떨어지는 시청률에 고전했다. 급기야 해변에서 상어를 뛰어넘는 수상스키 장면을 넣는 무리수도 나왔다. 그 이후로 이 숙어는 '무리한 설정, 뜬금없는 이야기로 관심을 끄는' 이라는 관용어가 되었다.


  느닷없이 '귀신 이야기'라니, 나름 좋은 글을 기대한 블로그 방문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글이 될까 싶기도 하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귀신 글, 'Jumping the shark'가 되겠지만,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었던 글이었다. 푸른 이마의 그 귀신을 본 이후로는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본 적이 없다. 지하 시사실이 있었던 본관의 건물은 학교가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었다. 그래도 나는 영화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 본관 건물에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귀신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정겨운 공간으로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SI 마이애미 시리즈의 어느 회차였던가, 호라시오 케인 반장이 아이를 내팽겨쳐두고 범죄에 가담한 여자에게 건조한 어투로 내뱉는 대사가 있었다.


  "You make me sick."


  우리말로 번역하면 '당신이란 여자는 참 역겹군' 내지는, '당신 같은 여자를 보는 건 괴롭군' 정도쯤 될까. 영화 '황야는 통곡한다(1967)'에도 이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돈 호세는 집시 여인 카르멘을 만나면서 인생이 '꼬였다'. 그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직업군인인 그는 계급이 강등되었고, 상관을 살해한 일로 쫓기고 있는 중이다. 이 여자는 그에게 같이 도망치자며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조직에 가담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을 들은 돈 호세가 카르멘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자막은 이렇게 뜬다.


  "당신은 날 아프게 해."


  돈 호세는 카르멘을 미치도록,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 도덕이나 윤리 관념은 아예 갖고 있지 않는 여자다. 끊임없이 그를 인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선택을 하도록 충동질하며, 오로지 고통과 불안만을 선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여자에게 호세는 '당신은 견딜 수 없이 역겨워', 라고 했을까, 아니면 '당신은 날 아프게 해.'라고 했을까. 이건 오역일까? 나는 외화 번역가가 실수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 장면에서는 'You make me sick'을 글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 맞았을 것 같다.


  '돈 호세'와 '카르멘'이라니,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 '장고(1966)'의 대성공으로 뜬 프랑코 네로를 주연으로 앞세운 이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거기에다 '금괴 탈취'라는 사건을 넣어서 서부극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한마디로 프랑코 네로를 알뜰히(!) 써먹는다.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의 제목은 '황야는 통곡한다'이다.


  돈 호세로 나온 프랑코 네로는 이탈리아, 카르멘 역의 티나 오몽은 프랑스, 카르멘의 남편 역으로 나온 클라우스 킨스키는 독일 출신이다. 이 다국적 배우들을 묶는 것은 영어 대사이다. 원어민들이 아니니까 억양이나 발음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대본 작가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생각을 영화 내내 하게 된다. 직업 군인인 돈 호세를 제외하고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집시, 포주, 산적, 화전민 같은 하층민들인데, 그들이 쓰는 언어가 고급스러울 필요는 없다. 단순하고 명료한 단어 선택으로 이루어진 대사들은 배우들 입장에서도 부담을 줄여주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제작사들은 이런 다국적 배우들을 데려다가 주로 스페인 남부의 풍광을 배경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을 찍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이다. 꽤 잘 팔렸다. 프랑코 네로는 '장고'의 대성공으로 이어진 일련의 영화 경력으로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그랬던 그도 좀 지쳤던 모양이다. 그가 가발까지 쓰고 나온 독특한 서부극 '케오마(서부의 불청객, 1976)'에서는 무성의한, 정형화된 연기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황야는 통곡한다'에서 보여주는 빛나는, 열정적인 모습과는 딴판이다.


  카르멘 역으로 나온 티나 오몽의 연기는 압권이다. 이 프랑스 여배우는 마치 카르멘의 현신같다. 제멋대로이며, 남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미모를 지녔으며, 결코 한 남자에게 정착하지 않고, 언제든 자유롭게 떠난다. '팜므 파탈'이니 하는 말로 이 여자를 규정하는 것은 모욕에 가깝다. 카르멘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며, 여자는 그 누구의 삶에 간섭하거나 불행으로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다. 돈 호세의 선택들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탈취한 금괴를 가지고 신세계로 떠나는 배를 탈 수도 있었지만, 돈 호세는 투우사에게 정신이 팔린 카르멘을 다시 찾아간다. 같이 떠나자며 붙잡는 동료 산적에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겠다고 한다. 카르멘에게 미쳐버린 그에게 자신이 가야할 길은 카르멘 밖에 없었다.


  "아, 이 불쌍한 남자를 대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한탄이 쏟아진다. 결국 사랑에 미친 이 남자는 자신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도 파멸로 이끈다. 이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에 황야도 '통곡'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독특한 로맨스/웨스턴 영화를 보고나서, 오페라 '카르멘'이 궁금해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오페라는 초연 때의 대실패로 작곡가 조르주 비제를 커다란 상심에 빠지게 만들었다. 비제는 그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골의 한적한 별장으로 요양을 떠났다. 그리고 3개월 후, 서른 일곱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별세한다. 위대한 천재 작곡가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의 사후에 이 오페라는 전설이 되었다.


  아직 오페라 '카르멘'을 만나지 못한 이들이라면 아그네스 발차와 호세 카레라스가 열연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공연으로 감상하길 바란다. 아그네스 발차의 카르멘을 뛰어넘는 카르멘은 어쩌면 내 생애에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스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는 카르멘 그 자체를 보여준다.


  사랑에 미쳐버린 이의 그 슬픈 끝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결코 길들일 수 없는 한 마리 자유로운 새를 가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돈 호세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프랑코 네로는 그 가여운 숙명을 짊어져야 했던 한 남자의 내면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 '황야는 통곡한다'의 원제목은 'Man, Pride and Vengeance'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