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추워지는 계절에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TV 시리즈 연작 '십계(1989)' 가운데 1편, 언어학자인 아버지와 그의 어린 아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1시간이 채 되지 못하는 이 짧은 드라마가 말하는 주제는 무척 무겁고 심오하다. 이 연작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곳은 당연히 '종교' 쪽이다. 예전에는 이 시리즈를 다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전편을 구해서 본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지금처럼 영화 공부하기 편한 시대가 아니었다. 원하는 자료 찾으려고 비디오 가게들도 여러 군데 들리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십계'가 온전히 다 갖추어진 곳이 있기는 했다. 성 바오로 딸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서원이었다. 회원 가입을 하면 빌릴 수가 있어서 결국 다 보았다. 그 시리즈는 항상 인기가 있었으므로, 늘 대여 중일 때가 많았다.  

 

  "하느님을 믿어요?"

  "그럼."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


  언어학자 크르지스토프의 누나인 이레나는 독실한 신자다. 그는 어린 조카 파웰의 물음에 파웰을 꼭 안아주며 묻는다. 무엇을 느끼냐고 하자, 파웰은 고모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 하느님은 그런 분이야."


  신을 믿는 누나와는 달리 크르지스토프는 신이 아닌, 자연과학의 법칙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는 컴퓨터로 대변되는 현대 문물에 대해서도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의 아들 파웰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 어느 아주 추운 날, 파웰은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말한다. 크르지스토프는 아들과 함께 컴퓨터로 연못의 얼음 두께를 계산해 본다. 그 계산의 결과는 연못의 얼음이 아들 파웰의 몸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고, 깨지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아들은 연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


  주의깊게 볼 것, 그래서 불행해지는 일을 가급적 피할 것. 인생의 어떤 고통과 불행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약점과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크르지스토프가 완전하다고 믿은 과학의 법칙, 진리는 미세한 균열을 가진 것이었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가져온다. 


  결국 아들의 시신을 연못에서 건지는 것을 보면서, 크르지스토프는 절망한다. 그는 아들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기 전날 밤에 직접 연못으로 가서 얼음의 두께까지 재어보고 확인까지 했었다. 그가 신봉하던 과학과 삶을 지탱하던 가치관 모두가 무너져 내린다. 그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을 잃었다.


  마치 과학과 컴퓨터를 물신 숭배하는 크르지스토프에게 닥친 신의 징벌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단선적 시선에서 더 나아가 깊이 볼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신념, 확신, 사상, 가치관 그 모든 것들은 결코 확고부동한 진리가 아니며, 지상의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 가운데 '신'의 지위를 부여하고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키에슬로프스키는 황량하고 암울한 폴란드 바르샤바의 풍경 속에 담아낸다.



*사진 출처: prezkroj.p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중학교 때, 아침 첫 수업 시작 전, 그러니까 대략 8시 50분쯤에 '명상의 시간'이란 이름의 학교 방송이 나왔다. 방송반 애들이 하던 건데, 그냥 별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름 우아하게 늘어놓는 방송이었다. 5분 정도 되는 그 방송은 뭐 오늘 하루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보내자, 가끔은 하늘과 꽃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자, 그런 내용들이었다. 중학교 방송반 애들의 방송 원고 수준이란 것이 뭐 그랬겠지. 그걸 주의깊게 들은 애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나도 그 방송 나오면, 조금 있으면 1교시네, 그랬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그 방송이 나오기만 하면 몸서리를 쳤는데, 그건 '명상의 시간'을 읽는 방송반 아이의 목소리가 '전설의 고향' 오프닝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란 제목이 세로로 뜨면서, 음울한 까마귀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KBS의 오래된 드라마. 우리 집에 있던 흑백 TV는 갈색 장식장에 다리 받침이 4개 있었더랬다. 그 시절부터 봐오다가, 1980년대 초반에 금성 칼라 TV가 나오면서 칼라 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그 칼라 TV가 나왔을 때 처음 봤던 방송은 외화 '기동순찰대'였다. 아무튼 당시의 아이들에게 '전설의 고향'은 좀 무섭기는 해도, 뭔가 끊을 수 없는 마력의 드라마였다. 무슨 대단한 재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거기에 담긴 기이하고 나름 놀라웠던 이야기들이 꽤나 인기를 끌었다. 무서운 이야기들은 보고 나면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극이 끝날 때면, 성우 김용식 씨가 어디에서 전해 내려오는지 지역명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교훈도 말해준다.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김용식 씨의 개인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에게도 이 방송은 성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방송이었다고 했다.


  대개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들이었지만, 더러는 참신한 이야기들도 있었고, 특히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는 '구미호'가 나오는 전설이었다. 정말 구미호 이야기는 잊을 만하면 나오고 그랬었다. 배우 최선자 씨가 주로 구미호, 내지는 귀신, 무당과 같은 배역을 맡아서 했는데, 정말 잘 어울렸다.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는 그렇게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싫기도 했겠다 싶기도 하다. 아무튼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약점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벌을 받거나,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아주 고전적인 의미의 '인과응보'를 여실하게 보여준달까? 아이들에게 그만한 TV 도덕 교과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야기 소재도 고갈되었고, 사람들에게 그런 고전적 이야기의 드라마가 더이상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면서 1989년에는 중단되었다. 종영은 아니었고, 여름 특집으로 한정적으로 1996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 때도 드문드문 챙겨 보았던 기억이 난다. 케이블 TV에서도 그 당시 그렇게 방영된 '전설의 고향'을 가끔씩 틀어준다. 그걸 보면, 지금은 인기 배우가 된 이들의 신인 시절 모습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의외로 많은 배우들의 '연기 등용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결국 그렇게 부활한 드라마였지만, 특수 효과나 분장 면에서 한정된 제작비 때문에 질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의 사실성에 비한다면야 어떤 의미에서 아이들조차도 외면할 것 같은 수준이었다. 스티로폼에 암회색 페인트칠 해놓은 돌무더기가 쌓인 험준한(?) 마을 입구 세트장도 그냥 즐겁게 봐주던 1980년대 전설의 고향 시청자들이 아니었다.


  그런 외적인 문제점 이전에 어쩌면 사람들은 구닥다리 과거의 괴담에 흥미를 잃었던 것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그런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주는 훈계를 귀담아 듣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19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이르는 시대는 경제발전의 호황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중산층으로의 진입, 부의 축적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내면은 도덕과 윤리적 가치 보다 물신주의에 빠르게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중장년층 세대에게 그 시대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시기가 아니라, '어떻게든 돈이 잘 벌리던 시대'로 기억된다.


  아무튼 '전설의 고향'은 2009년을 끝으로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방송이 다시 부활하기를 기대하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난 방송들에서 추억을 찾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요즘 세대들이야 그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도대체 저런 '후진'걸 어떻게 보냐고 하겠지만 그 드라마와 함께 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재미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전설의 고향'에는 분명, 국가가 국민의 가치관을 억압하고 강제하던 시절의 '교훈적 가치'들이 명확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즐겁게 보았던 이유는 1980년대라는 그 시대가 점점 더 전통적 사회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나름대로 자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고전 드라마가 강조하는 가치들은 어디까지나 '이상향'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되돌아갈 수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편의주의적이고 물신숭배적인 가치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전설의 고향'과 더불어 내게는 1988년에 MBC에서 보여준 이혁수 감독의 '여곡성(1986)'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진짜 그 당시에 그걸 공중파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게 충격과 공포였다. '여곡성'은 한국 공포 영화를 우습게 생각하던 나에게 진정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어떻게 저런 날것의, 사람의 감각을 온통 뒤흔드는 공포를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세월이 꽤 흘러서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저런 놀라운 한국 영화가 왜 언급되지 않는지, 나중에 영화를 공부하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그 '여곡성'이 2018년에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도 그 영화를 알아봐준 사람이 있기는 있었구나 했었다. 그러나 그 리메이크 영화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영화 '여곡성'이 보여준 한국적 공포의 세계도 놀라웠지만, 나에게 그 영화는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내면적 풍경으로도 느껴졌다. 물론 나는 당시에 학생이었고, 뭔가 그 영화를 분석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호황으로 정신없이 질주하던 그 시대의 사람들과 사회의 이면에는 뭔가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었다. 영화 속 한 집안에 닥친 엄청난 액운은 가장의 비도덕적이고 불의()한 행동이 그 시작점이었다. 그런 어긋난 윤리와 파렴치한 과거의 행위 때문에 그 집안의 뿌리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화 '여곡성'은 단 한번 그렇게 공중파 방송으로 나왔을 뿐이고, 다시는 그 어떤 형태로든 방영된 적이 없다. 어쩌면 그 엄청나고 대단한 영화를 내가 본 것은 행운 같기도 하다. 아마도 그 영화에 대한 추억을 가진 이들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며, 그렇게 떠올릴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드라마와 영화를 떠올릴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가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에서 드라마를 안 본 것이 꽤 되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지금 세대의 작가들이 쓰는 이야기들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꽤 많은 공감을 받았다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도 나는 시큰둥하게 봤다. 그 시대를 살아온 내가 보기에 그 드라마의 핍진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젊은 세대가 보기 좋도록 잘 꾸며놓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 드라마에서 사실적인 것은 오직 '노래'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나중에 그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로 꼽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전설의 고향'과 '여곡성'을 추억하는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부부()라는 이름의 무게: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The Separation of Nader from Simin, 2011)'
 


*이 글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결말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씨민과 나데르 부부의 이혼 법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내 씨민은 딸 테르메의 교육을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 살고 싶은데, 남편 나데르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떠나 살 수 없다며 거부한다. 결국 씨민은 집을 나와 친정으로 가고, 나데르는 낮 동안 아버지를 보살펴 줄 간병인 라지에를 고용한다. 라지에는 임신을 한 무거운 몸으로 어린 딸 소마예를 데리고 힘든 간병일을 하는데,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다. 남편 호얏이 실직자인 데다가,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일을 시작한 지 겨우 며칠, 라지에가 일하는 도중 잠깐 외출한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나데르가 딸 테르메와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침상에서 떨어진 채 의식이 없다. 겨우 응급 처치를 해서 아버지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나데르의 라지에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다. 마침 돌아온 라지에에게 아버지를 묶어 놓고 어디 갔느냐며 추궁하고, 안방에서 없어진 돈까지 언급하며 닥달한다. 일당을 달라는 라지에와 못준다는 나데르가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라지에는 현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이 일로 유산하게 된다. 라지에의 남편은 나데르를 살인죄로 고발한다.


  이후 이어지는 재판 장면들에서는 그곳에 소환된 주변 사람들의 증언, 어떻게든 자신의 윤리적 우위를 입증하기 위해 때론 거짓을 말하는 인물들의 모습들이 담긴다. 이 과정에서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은 두 부부의 모습이다. 씨민과 나데르 부부, 라지에와 호얏 부부는 그들이 속한 계층, 가치관, 삶의 방식, 그 모든 것에서 이질적이다. 학교 선생인 씨민과 은행원인 나데르 부부, 전형적인 하층민으로 독실한 이슬람 신앙을 고수하는 라지에와 전직 구두 수선공 호얏 부부. 이 두 부부는 자신들의 삶에 닥친 예기치 못한 사건의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갈등한다. 그들은 분명 서로 다른 편으로 나뉘어 있지만, 부부 사이에서도 균열과 상처가 드러난다.


  어쨌든 라지에의 유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건을 무마해야 할 거 아니냐고, 라지에 부부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끝내자는 씨민에게 나데르는 비난을 퍼붓는다. 라지에가 유산된 것은 자신이 밀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자신은 그것이 명확히 해명될 때까지는 합의를 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나데르를 씨민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라지에의 남편 호얏이 딸 테르메의 학교 앞에서 매일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딸의 안위 보다는 자신의 윤리적 정당성 확보를 우선으로 하는 나데르의 행동은 이기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더욱 불거지는 씨민과 나데르 부부의 갈등처럼 라지에와 호얏 부부 또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라지에는 자신의 유산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전날 집을 나간 나데르의 아버지를 찾다 차에 부딪힌 후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다. 불같은 성미의 남편은 일자리를 잃고 상심한 데다가 빚쟁이한테 시달리며 고통을 받고 있다. 오직 합의금 받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남편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의 신앙적 양심에 따라 씨민에게 찾아 가서 합의금을 주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어느 부부의 불화로 시작해서 그것이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사건의 이면을 면밀히 살핀다. 거기에는 결별에 처한 부부가 만들어낸 소통의 불협화음 뿐만 아니라 이란 사회의 종교, 계층적 갈등 또한 묵직한 배경으로 깔려 있다. 감독은 또한 어른들의 갈등 뒤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의 내면도 세심하게 포착한다. 특히 씨민과 나데르 부부의 딸로 나오는 테르메의 연기가 정말 뛰어난데, 명민할 뿐만 아니라 단아한 얼굴을 가진 테르메 역은 감독의 딸이 맡았다. 또한 라지에의 딸로 나온 귀여운 '소마예'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어린 아역 배우는 지금은 이란의 잘 나가는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혼 법정에서 판사는 테르메에게 부모 가운데 누구와 살 것인지 묻는다. 테르메가 판사에게 대답하는 동안 씨민과 나데르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관객은 테르메의 대답을 결국 듣지 못한다. 테르메는 과연 누구와 살기로 결정했을까? 그건 단지 아빠와 엄마, 그 두 사람 가운데 누굴 더 좋아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테르메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아빠인 나데르를 택한다면 테르메는 자신의 나라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부딪히고 직면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반면, 엄마 씨민과 사는 것을 택한다면 갈등을 가급적 피하고 타협하는 삶의 방식을 수용할 것이다. 이제 14살인 테르메에게 그 선택은 가혹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 선택을 강요하는 부모 씨민과 나데르. 부부라는 이름의 그 가늠하기 어려운 무게가 아이의 삶에 깊고도 넓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 dreamlabfilms.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작년이었을 것이다. KBS에서 보여준 아시아 특집 다큐멘터리였던 같은데, 인도 편은 인도 어느 입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육열로 치자면야 인도도 입시 광풍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인도에는 도시 전체가 입시 학원으로 채워진 그런 곳이 여럿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본 다큐에 나온 도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인도 각지에서 몰려든 수험생들이 꽉 짜여진 학원의 일정의 따라 하루를 일사불란하게 보낸다. 그야말로 난다 긴다 하는 수재들이 모여서 경쟁을 하는데, 그들이 목표로 하는 곳은 인도 공과대학교(IIT), 의과 대학, 교대, 이런 곳들이다. 인도 사회가 뿌리 깊은 카스트 사회이기는 해도 돈 잘 버는 안정적인 직업은 상류층으로의 지름길이다.


  자신에게 걸린 집안의 미래와 부모의 기대를 생각하며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하숙비와 학원비를 비롯해 생활비까지, 그곳에서 공부하는 자체가 엄청난 비용이 든다. 아무튼 대학 입시 시험을 치루고 다큐에 나온 학생들의 후일담까지 나오는데, 내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그 도시에 있는 냉각탑이었는지, 아무튼 높고 거대한 구조물에 관한 것이었다. 좋지 못한 입시 결과를 받아든 학생들이 해마다 그곳에서 목숨을 끊는다고 했다.


  학력고사 세대로서 내가 지나온 시대에는 입시 끝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한 해에 꼭 몇 명씩 나왔다. 1980년대 신문에는 손주 시험에 붙으라고 찰떡 만들어 먹다 목에 걸리는 사고로 할머니가 죽는 일도 드문 드문 실렸다. 마치 영화 속의 흔하디 흔한 클리셰처럼, 학력고사 만점자의 인터뷰에는 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느니, 과외는 안했다느니, 규칙적으로 생활했다느니, 하는 내용들이 있었다. 요새도 수능 만점자 인터뷰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다녔던 재수 학원은 기숙 학원을 따로 운영했는데, 그곳에서 사고가 있었다. 내가 학원에 등록한 지 2개월이 되던 3월 말의 일이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 학생을 나는 학원 복도에서 딱 한 번 보았다. 제법 덩치가 있는 여학생이었데, 머리를 삭발해서 눈에 확 띄었다.


  "죽을려면 지네 집에 가서 죽지, 재수없게 여기서... 참, 나..."

 

  그렇게 말한 사람은 학원 선생 가운데 한 명으로, 그 학원에 공동 출자한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다른 곳으로 학원을 옮겼다. 새로 옮긴 학원은 들어가기 전에 시험을 쳐야했는데, 그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므로 나는 특별반에 배정되었다. 그곳에서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을 때가 기억이 난다. 50명 정원인 반에서의 석차가 이제까지 내가 받아본 적이 없는 등수였다. 나는 학창 시절 동안 전교 등수로도 그런 석차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곳에는 서울대 다니다가 과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만 두고 온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그랬었다.

 

  "내가 대학 가면, 여기 학원에서 만난 애들은 아는 척 안할 거야."

 

  같은 반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도 속으로 그랬다. 너 같이 재수없는 아이는 나도 결코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아. 걔가 어느 대학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울대의 원하는 과에 간 사람도 있었고, 명문대 공대로 간 이도 있었다. 더러는 또 다시 떨어져서 후기 대학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공부해서 치대와 의대를 간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대는 '워너비' 인기 학과였다. 내 생각에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돈 잘 버는 전문직이어서 모두다 가고 싶어했다.


  아마도 3학년 1학기였던 것 같은데, 개인 프로젝트 수업에 다큐를 만들려고 했었다. '청소년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처음 만드는 다큐로는 너무 버거운 소재였는데도 나는 그걸 꼭 만들고 싶었다. 기획 단계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고, 결국은 그냥 미완으로 남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왜 나는 그런 이야기의 소재를 택했던 것일까? 아마도 재수 시절의 그 '사건'이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닌데도, 그 일은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보기도 어렵고, 어쨌든 나는 아직도 종교인이 아닌 사람이 머리를 빡빡 밀은 것을 보면 '흠칫'하고 놀라는 때가 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작년에도 수능 끝난 후에 비극적 선택을 했던 학생이 있었다. 그래도 요새는 대학 입시 전형 과정도 다양해져서 그런지, 학생들도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서 여러 선택지를 갖고 있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대학 입시는 인생의 많은 과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그것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해서 학생들이 지나친 압박감에 시달리다 못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해도 그 꿈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그 직업으로 만족할 만큼의 소득을 얻는 경우는 더 드물다. 대개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 보다 더 흔들리고, 부서지기 쉬우며, 더 좌절하기 쉽다는 생각도 든다. 그 과정이 때론 혹독하기 때문이다.


  재수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들이야 여러가지가 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을 소설로 써야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서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걸 소설로 쓴다 해도 그 책을 누가 사서 볼까 싶다. 나와 비슷한 꼰대 세대로 재수를 했던 이들이나 사서 볼까? 지금의 젊은 세대가 그런 이야기를 읽을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블로그에나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새 EBS 클래스 e에서 박중근의 '90년생과 일하는 법'을 보고 있다. 강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꼰대' 70년생이 어떻게 하면 '자기 중심적'인 90년생과 더불어 잘 일해나갈 수 있는지를 다룬다. 강의의 외피는 회사의 인적 관리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뭔가 세대 분석론 같기도 하고 의외로 재미가 있다.


  가끔 주변에서 듣는 요즘 회사의 풍경은 확실히 낯설게 느껴지기는 한다. 부하 직원에서 일을 시키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구요."


  생각해 보고, 그 업무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세대. 내가 들은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상사는 물론 동료와의 대화 녹음이 일상화 되어서, 조금이라도 본인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인사팀에 발췌한 녹음 파일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쏟아지는 고발 때문에 인사팀에서는 속된 말로 '돌아버릴 지경'인 듯하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장착된 녹음 기능이 요새는 그렇게 쓰이는가 보다. 하긴, 요새 대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필기를 안 한 지 오래고, 많이들 녹음을 해간다고 듣기는 했다.


  다큐 'The Social Dilemma(2020)'를 보면서 그 90년생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성장기에 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가 세대적 특성을 규정하는 데에 특별한 역할을 했을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셜 미디어로 무엇이든 즉시 연결되며, 소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연결망 안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완벽하게 잘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과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온 기성 세대들이 같이 일하면서 겪는 갈등은 비단 한국만의 경우는 아닌 모양이다. 외국의 회사들도 비슷한 세대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다큐는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이용자의 정보를 토대로 극도의 상업적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문제를 다룬다. 끊임없이 이용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과정이 마치 마약에 '중독'되는 것과 비슷하며, 그것을 이윤 창출의 상업적 방편으로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 회사들의 비윤리성을 지적한다. 그것을 막으려면 정부의 정책적 규제, 그리고 이용자 스스로 자신의 주의력을 분산(distraction)시키는 그런 소셜 미디어에 비판적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단순한 요약 같지만, 다큐에서 제기하는 소셜 미디어의 주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은 어렵고 암울해 보인다.   


  특히,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주 연령대인 십대에서 정서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다룬다. 이 부분은 심리학에서 아주 관심있게 연구하고 있는 주제들이고, 그 연구 결과들도 많이 나온 상태다. 다큐에서 인터뷰한 실리콘 밸리의 임원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소셜 미디어 이용을 극도로 엄격히 제한, 또는 금지하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뭔가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그 도구들이 무서운 괴물의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다큐는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의 핵심 파트에서 일했던 주요 경영진들, 관련 분야 학자들의 인터뷰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이 말하는 무거운 이야기들을 보다 쉽게 보여주기 위해 가상의 가족이 등장하는 영화적 설정을 넣었는데, 그 부분도 꽤나 흥미롭다. 한마디로 현재적 시점에서 소셜 미디어의 문제점을 다룬, 아주 잘 만들어낸 시사 다큐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thenewsminute.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