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큰 저택을 청소할 수 있겠어?"


  여자는 자신의 가사 도우미들에게 웃으면서 그렇게 묻는다. 여자는 한창 건축 중인 자신의 대저택을 둘러보는 중이다. 이 집은 여자에게는 평생의 숙원과도 같다. 여자는 그 집에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관사 'The'가 붙지 않았으니, 진짜 베르사유 궁전의 미국판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어마어마한 저택이기는 하다. 여자의 이름은 재키, 남편은 데이비드 시겔. 미국에서 부동산과 리조트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재력가이다.


  로렌 그린필드가 2012년에 제작한 다큐 '베르사유의 여왕(The Queen of Versailles)'은 재력가 부부의 화려한 일상을 촬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무려 17개의 욕실이 있는 대저택인데, 새로 짓는 베르사유 궁전은 30개가 될 거라고 재키는 자랑한다. 오랫동안 재키는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본떠서 만드는 새 저택에 어울릴 온갖 앤티크 가구들이며 장식품들을 사들였다. 그것들을 보관하는 전용 창고까지 있을 정도다. 이제 그 '꿈의 집'이 지어지기를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고 생각한다.


  부자라고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가 이 부부의 일상을 뒤흔든다. 거칠 것 없었던 사업은 자금 흐름이 막히면서 직원들의 대량 해고, 은행의 압류, 자산 매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다큐를 제작하는 감독에게 이건 생각지 못한 '호재'였는지도 모른다. 급전직하하는 부자의 모습을 담아낼 기회가 흔하겠는가? 꿈의 집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은 중단되고, 그들이 살고 있는 대저택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긴다.


  입양한 재키의 조카 한 명을 비롯해 여덟 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와 가사 도우미들,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이 우선 줄어든다. 그러자 집안은 재키가 키우는 개들의 배설물들이 나뒹굴며, 수족관의 물고기와 키우던 도마뱀이 죽어 나간다. 주방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은 제멋대로이며 어질러 놓기 바쁘다. 은행에서는 데이비드의 돈줄을 막고 있고 그는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재키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사들이고, 남편의 우울한 기분을 달래준다며 성대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도 한다. 재키는 34세에 결혼한 이후로 그렇게 물쓰듯 돈을 쓰며 살아왔다. 그때 데이비드의 나이는 65세. 그는 2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사업가로 재키는 흔히 말하는 그의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였다.


  재키의 인생 역전은 미인대회에서 시작되었다. 공대를 나와서 엔지니어로 IBM에서 일하기도 했던 여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칸막이 사무실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가서 모델일을 하다가 미인 대회에 출전한다. 데이비드를 만난 것도 그 대회의 파티에서였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꽤 순탄하게 이어져 왔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돈 가뭄'에 늙은 남편은 화가 난 상태고, 여자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이 부부는, 그리고 이 집의 아이들은 이 위기를 잘 견딜 수 있을까...


  감독 로렌 그린필드는 재력가 부부의 삶에 닥친 풍랑을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거기에는 부자들의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고용인들의 목소리도 들어있다. 재키의 아이들을 돌보는 필리핀 유모는 돈을 벌어서 죄다 고국의 가족들에게 부친다. 정작 자신의 어린 아들은 못보고 지낸지가 꽤 되었다. 유모에게는 부양해야할 친정 식구들도 여럿이다. 화려한 저택에서 떨어진 한 귀퉁이 작은 조립식 건물은 오로지 침실 한 칸으로 되어있다. 침대는 접이식으로 매우 비좁은 공간이다.


  "우리 아버지는 시멘트로 된 집 한 채를 갖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어요. 그런데 그걸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죠. 그리고 결국 시멘트 무덤에 누워계세요."


  필리핀 보모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훔친다. 자신이 돌보는 이 집구석의 아이들은 이미 수십 대의 자전거가 있는데도 월마트에 가서 자전거며 장난감과 물품들을 미친듯이 사들인다. 그렇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재키는 남편의 사업이 어찌 되든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값비싼 캐비어 통조림으로 달랜다. 보톡스 시술도 거를 수 없다. 이 여자는 자신의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지지 못할까봐 가슴 아프고 조바심이 난다.


  다큐는 이 부부의 경제적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는 도중에 끝이 난다. 세상에서 부자 걱정하는 게 가장 쓸데없는 일이다. 이 부부의 현재는 평화롭다. 데이비드의 사업은 위기를 넘겼고, 재키의 베르사유 궁전은 이제 곧 완공을 앞두고 있는 모양이다. 이 대저택은 미국에서 4번째로 값나가는 집이며, 추정가만 해도 3400억이다. 팔려고 내놓아도 살 만한 사람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 재키의 꿈은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이 다큐의 반전은 부자의 시련과 곤궁(?)을 그려낸 것에 있지 않다. 이 다큐는 그 화제성 덕분에 2012년 선댄스 영화제, 브리스번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데이비드 시겔의 심사가 무척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 다큐로 자신의 사업체와 관련된 명예가 손상되었다며 제작을 지원한 미국 독립 영화 협회(IFTA)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무려 3년에 이르는 법적 공방이 계속 되었다. 결국 다큐의 저작권에 일정 부분의 지분을 갖는 것으로 감독과 제작사는 합의를 해야했다. 부자 성질 건드리면 뒤끝도 그렇게 지독하다.


  문득 오래전 공부할 때 들었던 '영화와 법' 강의가 떠오른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들에 대해 다루는 강의였다. 변호사 양반이 퇴근한 늦은 저녁에 하는 강의였다. 한 학기 동안 배우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에 그리 관대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 명예 훼손은 '사실의 적시()'와는 관계없이 적용되는 죄목이라는 것. 어쨌든 만약에 대비해서 영화 제작을 하는 이들은 제작의 마지막 단계에서 법률적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다큐 제작의 경우에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더 많은 것들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르사유의 여왕'은 돈이 썩어나가게 많은 부자에게 닥친 꽤나 심각한(?) 일상의 위기를 면도칼처럼 예리하게 잘 포착해 낸다. 그것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이 다큐가 그 궁금증을 조금은 풀어줄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부자라고 해서 그렇게 삶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은 관객이 보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재키의 첫째 딸 빅토리아는 2015년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떴다. 부부는 딸에게 생긴 비극을 이 다큐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다큐를 본 이들이라면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대저택에 사는 그 가족들의 내면이 무질서와 공허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베르사유의 여왕'이 입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dogwo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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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가라앉는 것 같아요. 침몰하는 배처럼..."


  비좁은 팡 부인의 방에는 아들과 딸 내외를 비롯해 친척들로 북적인다. 68세의 팡 부인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살거죽이 드러난 초췌한 얼굴, 가느다란 팔, 촛점을 잃은 눈동자, 입을 반쯤 벌리고 겨우 내쉬는 숨은 이제 곧 죽음의 소식이 전해지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중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왕빙의 '미세스 팡(Mrs.Fang, 2017)'은 임종을 앞둔 노인과 그 가족의 모습을 담아냈다. 죽어가는 이의 모습이 마치 서서히 물에 가라앉는 배를 떠올리게 한다고 가족 중 누군가 말한다.


  임종의 과정은 길게는 몇 주, 짧게는 며칠이다. 죽음을 앞둔 이는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는데, 장에서 더이상의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치매나 다른 혼수성 질환이 아니라면 깨어있을 때의 의식은 또렷하지만, 대개는 가수면(眠) 상태로 누워있다. 호흡이 불규칙해지는 시점은 이제 임종의 과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Death Rattle'이라고 알려진 그르렁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말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듣는 것은 가능하므로, 이때 가족들은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넬 수 있다. 내가 본 임종의 모습은 그러했다.


  다큐의 첫 화면은 비교적 정정한 모습으로 자신의 방에 서 있는 팡 부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사망하기 전 해의 가을이다. 해를 넘겨 여름의 초입인 6월에 이르자 부인의 상태는 악화된다. 다큐의 대부분은 열흘 동안의 팡 부인과 가족의 일상을 찍었다. 팡 부인의 주변 침대와 의자에 이리저리 흩어져 앉아있는 가족들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자신들의 일상을 비롯해 부인의 장례 절차에 대한 의논도 하고, 죽음의 징후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토대로 부인의 상태를 가늠하기도 한다. 간호를 맡은 가족은 부인의 등에 생긴 욕창 때문에 수시로 자세를 옮겨주기도 하고, 주사기로 물을 입안으로 흘려 넣어 마시게도 한다.


  카메라는 팡 부인의 얼굴을 상당히 오랫동안 비춘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화면 속 부인의 임종 과정을 함께 한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낯선 경험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것은 고통스럽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부인의 눈을 보면, 어느 정도는 촬영을 인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지점에서 감독 왕빙이 얼마나 다큐 제작자로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의문을 품는다. 과연 팡 부인은 이 다큐의 촬영을 허락했다고 볼 수 있는가? 부인의 인지기능은 치매로 손상된 상태다. 엔딩 크레딧에 보여지듯 자녀들의 촬영 동의를 얻은 것에 대한 감사와는 별개로, 팡 부인이 이 다큐의 촬영을 허락했다고 볼 수 있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이 다큐의 뭔가 생경하고 기이한 지점은 죽어가는 이의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팡 부인의 가족과 이웃들의 모습이 그러한데, 특히 남자들이 동네와 접한 천변에 나가 뱀장어며 물고기를 탐욕스럽게 잡아들이는 모습들이 꽤 비중있게 나온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계속 찾아다니며,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킨 물고기를 상당히 많이 건져올린다. 그 지역에서 여름에 그렇게 물고기를 잡는 것은 귀한 식재료를 얻는 일이므로 놓칠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집요하게 취하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에게 긴장과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알록달록한 이불을 덮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겨우 숨을 내쉬고 있는 팡 부인의 주변에는 온갖 소음이 가득하다. 도박을 하다 돈을 잃었다는 이야기며, 아는 누구의 이혼 소송 이야기도 나온다. 방안의 TV는 항상 켜있다. 이웃들은 밖에서 떠들썩하게 음식을 먹으며 자신들이 본 죽음의 모습과 팡 부인의 손자들은 왜 안오는지,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그랬다. 팡 부인의 마지막 날들에 주변은 그렇게 시끄러웠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 무례하거나 상스럽게만 보이지 않는다. 살아있는 자들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드디어 팡 부인에게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에 카메라는 거리를 두고 비켜서 있다. 부인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관객은 부인이 세상을 떠나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왕빙 감독은 그 지점에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가족들에게만 허락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소음은 사라졌고, 대신 나즈막하게 읊조리는 기도문과 조용한 흐느낌이 그 작은 방을 채운다. 팡 부인의 마지막은 그러했다.


  러닝 타임이 1시간 26분 정도인 그리 길지 않은 다큐이지만, '미세스 팡'을 보는 일은 꽤나 복잡하고 괴로운 감정을 수반한다. 알지도 못하는 이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며, 관객은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죽음'의 기억과 함께 그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불편하고 낯설며, 보다가 그만 두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 그 순간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죽음을 기억하시오(Memento Mori).' '미세스 팡'은 감독 왕빙이 그려낸 바니타스(Vanitas)인 셈이다.



*사진 출처: sabzian.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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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야."


  모니카(한예리 분)는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 분)에게 그렇게 불만을 표현한다. 사방이 드넓은 풀밭인 외딴 곳에 덩그라니 있는 이동식 주택은 모니카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그곳은 그렇게 이 부부의 새로운 출발지가 된다. 부부에게는 두 자녀, 첫째 앤(노엘 케이트 조 분)과 둘째 데이비드(앨런 킴 분)가 있다. 남편의 직업은 '병아리 감별사'. 아내도 같이 작업장에서 일한다. 갓 부화한 병아리의 항문의 모양새를 보고 수평아리를 감별해 내는 직업이다. 그 직업군에서 한국인들은 뛰어난 감식안으로 전세계로 진출했다. 제이콥도 그렇게 1970년대에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Minari, 2020)'은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영어의 미나리에 해당하는 'dropwort' 대신에 'minari'라고 썼다. 아마도 감독에게 '미나리'란 식물은 결코 다른 언어로 대체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들어있으며, 그의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미나리 씨앗을 미국으로 가져와서 심었다고 한다. '미나리'는 그에게 혈연과의 연결고리가 되며, 그의 근원이 되는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어린 아들 데이비드는 심장이 약해서 부부의 근심거리인데, 가뜩이나 병원과 먼 곳의 시골 깡촌에 왔다고 생각하는 모니카는 어떻게든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그곳에 커다란 농장을 일굴 생각이다. 한국인 이민자들을 위한 농산물을 심어서 근처 대도시에 내다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병아리 감별사 일과 병행하는 농장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낮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다. 모니카는 자신의 어머니(윤여정 분)를 모셔오기로 한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외할머니와 아이들은 잘 지낼 수 있을까? 제이콥의 농장은 과연 잘 되어갈까? 그들 부부가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대부분은 한국어 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모니카와 제이콥, 모니카의 어머니가 대화를 나눌 때 영어 자막이 화면에 뜬다. 앤과 데이비드는 주로 영어로 대화한다. 영어 대사는 당연히 자막으로 안나온다. 이 영화는 미국 제작사(브래드 피트가 만든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다. 감독도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도 한예리와 윤여정을 빼고 미국 국적이다. 당연히 스탭들도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미국의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고 있어서, 이 부분이 과연 '미국적인' 영화가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다. 단지 한국어 대사가 주가 된다고 해서 미국 영화가 아니라고 보는 것에 이민자들, 특히 아시안 이민자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언어'라는 장벽이 가진 꽤나 견고한 힘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아역 배우들이다. 특히 어린 아들 데이비드로 나온 앨런 킴은 타고난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아이에게는 현실과 배역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극중에서 미국 태생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쓰면서도 이민자 부모의 언어인 한국어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연기가 아주 좋다. 그건 딸 역의 노엘 케이트 조도 마찬가지다. 이 두 아역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은 어쩌면 이 영화의 70프로, 아니 그 이상을 차지한다.


  배우 윤여정이 외할머니 역으로 주요 영화제의 연기상을 휩쓸고 있지만, 어쩐지 내게는 틀에 박힌 연기처럼 보인다. 윤여정은 오랫동안 TV의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등에서 자신의 연기 이력을 이어오면서 그다지 인상적인 면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현지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윤여정의 연기가 다르게 평가받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티븐 연의 연기도 평이하다. 뭔가 연극적인 대사 처리가 드문드문 드러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한예리의 연기는 아주 좋다. 이 영화에서 한예리는 자신의 배우로서의 존재 가치를 명백하게 각인시킨다.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뿌리내리고자 하는 이민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불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매우 잘 소화해냈다.


  '미나리'에서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1980년대 초반을 재현해낸 소품과 미술 세트들이다. 극중에서 모니카는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나오는데, 거실 벽면을 장식한 태피스트리에는 예수님이 보인다. 그 시절의 한국에서 그 자줏빛 태피스트리는 왠만한 집들마다 다 있는 벽장식품이었다. 성서적 내용부터 시작해서, 돈 잘벌게 해달라는 의미의 멧돼지 그림까지 다양한 무늬들이 짜여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나온 컬러 TV는 대체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아니 저런 걸 지금도 소품으로 구할 수 있나 싶어서 놀랐다. 심지어 욕실에 있던 푸른색 '플라스틱 바가지'까지 미술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차들도 당연히 그 시대의 차들인데, 굴러가는 것이 신기하게 보일 정도다. 


  극중에서 윤여정은 미나리 씨앗을 한국에서 가져와 집 근처 냇가에 심어놓는다.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힘들게 뿌리내리는 딸과 사위, 손주들의 미래가 어디서든 잘 번성하는 미나리처럼 되어가길 바라는 뜻이다. 미나리는 물이 있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잘 자란다. 물을 정화하는 수생식물의 특성이 있어서, 심지어 공장 폐수가 나오는 곳에서도 자란다. 아마 좀 나이가 있는 세대라면 공장 지대 폐수를 끌어다 미나리를 키워 팔다 적발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한다구."


  다시 도시로 돌아가서 살자는 아내의 요구에 제이콥은 그렇게 말한다. 그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 가치있는 무언가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거대한 정원(garden)을 가꾸는 것, 그것은 농작물을 길러내는 농장(farm)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하는 정신적 가치가 들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식물들처럼 이민자들은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때로 그것은 많은 희생을 수반한다.


  제이콥이 일하는 공장 굴뚝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쓸모없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되는 수평아리들을 소각하기 때문이다. 그 연기는 낯선 곳에서 자신들의 유용성을 입증해내지 못하면 언제든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이민자들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나리'는 미국으로 떠난 한국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모든 이민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이삭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그렇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 혈연으로 이어진 모국의 근원을 들여다 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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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지지 마, 불결해!"


  미카(히로스에 료코 분)는 남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에게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뜬다. 도대체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영문 제목 Departures, 2008)'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첼리스트에서 졸지에 납관사(우리나라의 장례지도사에 해당함)가 된 다이고의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다. 아내 미카는 이제 막 남편이 새로 얻은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소리친다.


  자신이 단원으로 있던 교향악단이 해산되자 다이고는 첼로를 팔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새 직업을 찾던 다이고는 여행 가이드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사무실에서 엉겁결에 채용된다. 그곳은 장의사들에게 일감을 받아 납관일을 하는 곳이다. 다이고의 새 직장 'NK에이전트'는 어떤 의미에서 여행사가 맞기는 맞다. 사장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분)는 '영원으로 향하는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라고 말한다.  


  다이고는 납관사 일을 하면서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배워나간다. 물론 그가 맞부닥치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기껏해야 시체 닦아주는 천한 일이라는 세간의 편견은 아내를 비롯해 그의 고향 친구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일하러 간 상갓집에서도 다이고와 사장은 때로 대놓고 하대를 받기도 한다. 


  "당신들 말야, 죽은 사람이나 팔아먹고 살면서."


  약속 시간이 5분이나 늦었다는 이유로 상주는 대놓고 성질을 부린다. 일본 사회의 큰 문제로 자리잡은 '고독사' 이야기도 나온다. 다이고는 여러 죽음을 접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한 의미와 보람을 찾아가지만 결국 아내는 그를 떠난다. 과연 다이고는 납관사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굿바이'는 일견 무거워 보이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그러한 균형 감각이말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다. 다이고 역을 맡은 모토키 마사히로의 연기는 아주 자연스럽고 지나침이 없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첼로는 물론 납관사 일도 열심히 배웠다. 특히 그가 영화 속에서 직접 연주하는 첼로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히사이시 조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그렇게 관객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다이고의 아내 역으로 나온 히로스에 료코의 연기도 좋다. 사생활로 이런 저런 말이 끊이질 않는 배우이지만, 료코는 카메라만 돌아가면 배역 그 자체가 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히로스에 료코가 나온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기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영화 '비밀(1999)', 드라마 '썸머 스노우(2000)',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2002)'의 눈부신 연기를 기억한다. 사장으로 나온 야마자키 츠토무의 연기는 이 영화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아 준다. 이 영화는 시신으로 나오는 단역 배우들까지도 눈길을 끌게 만든다. 결코 움직여서는 안되는 '시신 역할'을 위해서 제작사는 오디션까지 보고 뽑았다. 무려 200대 1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 'おくりびと'는 '보내주는 사람'을 뜻한다. 영화 속의 납관사를 뜻한다. 영어 제목은 'Departures',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의 떠남을 의미한다. 한글 제목은 좀 뭔가 뜬금없기는 하다. 굿'바이, 안녕이란 뜻 자체 보다는 'Good and Bye'로 산자와 망자 사이의 좋은 이별을 뜻하는 의미로 지은듯 하다. 각각의 다른 언어의 제목들은 결국 죽음이 가리키는 것들에 대해서 성찰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냥 비통해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기 보다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마지막 과정이며 언젠가 우리 모두 마주해야할 미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는 영어 제목의 '떠남'이란 의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곳으로의 새로운 여행일런지도 모른다. 왜 단수가 아닌 복수 형태의 'Departures'가 된 것일까? 그건 영화 속에서 다이고가 마주한 여러 죽음들을 뜻하기도 하고, 모든 죽음의 모습은 각각이 가진 사연과 그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을 보여주기에 그리 된 것이리라.


  영화의 마지막에 다이고는 어릴 때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조우한다.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다이고는 자신이 직접 납관 의식을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망자는 산자의 기억 속에 남는다. '납관사'라는 직업을 통해 죽음의 의미뿐만 아니라, 살아있음의 의미까지 되새겨 보게 만드는 '굿바이'는 꽤 괜찮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의 나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을 다시 한번 찬찬히,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진 출처: asianwi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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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EBS '세계의 명화'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을 방영해 주었다. 이 영화에서 주걸륜이 피아노 배틀을 할 때 나왔던 곡들은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에서 매우 인기있는 신청곡이다. 그동안 음악으로만 듣다가, 그걸 영화에서 직접 보았다. 이 영화를 만든 주걸륜은 자신이 주연 배우를 맡아서 피아노도 직접 친다. 아주 잘 친다. 그냥 그 뿐이다.


  이 영화의 만듦새는 나름대로 괜찮다. 로맨스 영화의 일반적 공식을 따라가는 듯하다가 중간 부분부터 확 틀어버린다. 시간대를 비틀어 버림으로써 영화는 긴장감과 활력을 띄게 된다. '비밀(Secret)'이라고 적혀진 마법의 악보가 매개체로 등장하는 것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진다. 배우들의 연기, 특히 샤오위 역을 맡은 계륜미의 다채로운 얼굴 표정과 청순한 매력도 빛난다. 예상륜 역의 주걸륜은 솔직히 복학생이 고등학생 교복입고 연기한다는 느낌이다. 뭔가 어색한 주걸륜의 대사 처리는 영화의 음악이 그럭저럭 메꿔준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 대만의 대중가요도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 음악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예술 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주걸륜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맘껏 펼쳐 보인다. 영화의 촬영 장소도 그의 모교를 택했다. 이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은 팬들은 그 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그렇다. 과연 이 영화는 '명화()'인가? EBS에서 '세계의 명화'로 방영하는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괜찮은 줄거리, 적당한 감동이 있으면 '명화'의 요건을 갖추는 것인가? 그런 일련의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만약 다른 공중파 방송에서 '명화 극장'이란 프로그램으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방영했다면 그다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오래전의 EBS '세계의 명화'는 영화를 보는 눈을 열어 준 좋은 안내자였다. 친절하고 유능한 그 안내자를 따라 나는 명화의 세계를 탐험했다. 정말로 많은 명화들을 '세계의 명화'를 통해서 만났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1925)'를 영화 교과서에 제목으로만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금지 목록에 올라 있었다. 조악한 화질의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떠돌아 다니며, 알음알이로 보던 시절이었다. 그걸 EBS에서 1994년 3월에 방영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공중파로 이 영화가 처음 방영된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로 화제였다. 그러나 '모종의 입김'에 의해 방영은 불발되었다. 좀 시간이 지난 후에 어쨌든 EBS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나는 '전함 포템킨'을 보았다.


  EBS에는 다양하고 깊이있는 세계의 명화들을 소개하는 '세계의 명화'와 함께 일요일 낮에 좀더 대중적인 영화를 방영하는 '일요 시네마' 프로그램도 있다. '한국 영화 특선'도 오래된 흑백 한국 영화들을 방영함으로써 한국 영화가 가진 역사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나는 그 세 개의 영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EBS는 나에게 진정한 영화의 보고였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시점부터 EBS의 영화 프로그램들은 그 빛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방영되는 영화들의 목록에 나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 영화들의 목록은 비디오 테이프가 사라져 가던 시절, 폐업하는 비디오 가게에서 그나마 볼만한 테이프들을 골라서 담아놓은 것 같다. 그저 그런 영화들의 나열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좋은 영화를 가려내는 선구안의 부재가 심각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그다지 큰 흠이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영화이지, 좋은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한마디로 '명화'의 범주에 넣기에는 영화적 힘이 상당히 딸린다. 심심할 때 보기 좋은 영화 추천해 달라고 누가 묻는다면 주저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명화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영화의 만들어진 시대적 의미와 함께 영화적 성취도 고려해 봐야 한다. 무조건 '예술 영화'를 틀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화적 재미와 함께 영화의 내적 완성도가 높은 영화들, 예를 들어 스필버그의 '레이더스' 시리즈를 '세계의 명화'에서 방영한다면 나는 충분히 수긍할 것이다.


  지금의 EBS에서 방영하는 '세계의 명화' 라인업은 방영권을 사오는 배급사에서 그냥 떠넘긴 영화 목록들 같다. 한물간 1990년대와 2000년대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의 영화 목록들이다. 그렇다고 다른 유럽이나 제 3세계의 영화들을 열심히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런 면에서 국회방송(NATV)의 '명화 극장'은 더 나은 면모를 보인다. 마티유 카소비츠의 '크림슨 리버(2000)', 라세 할스트롬의 '개 같은 내 인생(1985)'이 '명화 극장'의 방영 목록에 들어 있다. 진정한 '세계의 명화'를 선정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특정 감독 특집이나, 영화제 수상작들을 선별해서 방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코폴라의 '컨버세이션(Conversation, 1974)'와 데이비드 헤어의 '웨더비(Wetherby, 1985)'를 본 것도 EBS의 '세계의 명화'에서였다. 오로지 영화관, 공중파 방송, 비디오 테이프만이 영화를 보는 방식들이었던 시절에 EBS는 좋은 영화에 목마른 이들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물론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구태여 EBS가 예술 영화 소개의 첨단에 있을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EBS가 아니더라도 자신들이 다 알아서 영화를 찾아서 본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라는 아름다운 세상에 처음으로 들어선 이들에게 EBS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명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내는 것이 제작진의 몫이다.


  오늘 아침, 늘 듣던 라디오를 어떻게 하다가 떨어뜨렸다. 켜보니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에서 가전 제품이나 컴퓨터가 작동이 되지 않아요, 란 질문에 올라온 대답의 1위는 '우선 한 번 두드려 보세요'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시도한다. 나도 그렇게 했다. 몇 번을 가볍게,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두들겼다. 전원이 들어온다. 아마 내부 기판의 납땜이 떨어져 버린 것이라면 소용이 없는 방법이겠지만, 운좋게도 라디오는 다시 소생했다. 그러나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어디까지나 이 방법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BS의 '세계의 명화'에는 그런 임시방편, 미봉책과 같은 대책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에 대한 근본적인 숙고와 성찰이 필요하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 프로그램을 아끼고 사랑한 시청자가 남기는 조언이다.



*사진 출처: 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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