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케이블에서는 NHK 위성방송이 나왔었는데, 거기서는 매일 저녁 8시인가 9시쯤에 영화를 틀어주었다. 세계 유명 영화들, 때로는 일본 영화들이 나왔다. 쉽게 접하기 힘든 영화들도 있었는데 문제는 오직 일본어 자막만 나온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은 린제이 앤더슨의 'If....(1968)'를 보았다. 영어라고 해도 영국식 억양의 영어는 내게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처럼 들렸다. 아무튼 대충 일본어 자막으로 꿰맞추어 가며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 엄청난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야 나는 영화의 모든 것이 마치 벼락치듯 다가오는 느낌과 마주했다. 영화에서 언어란 그렇게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티베트어 이름으로는 페마 체덴(Pema Tseden), 중국어 이름으로는 완마 차이단(Wanma Tsaidan)이라는 두 가지 이름을 가진 감독이 있다. 1969년생인 이 티베트 출신의 감독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이 여러가지다. 티베트어로 된 영화를 최초로 촬영한 감독, 티베트인으로는 최초로 북경 전영학원을 졸업한 사람. 그 페마 체덴 감독의 2011년작 '老狗(Old Dog)'을 보았다. 이 영화는 유일한 자막이 있기는 한데, 중국어 자막이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본다. 그나마 대사가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아는 한자(字)들이 나오면 대충 헤아려서 본 다음에, 줄거리도 검색해 본다.


  티베트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양을 치는 늙은이가 아들 내외와 살고 있다. '곤포'라는 이름의 아들은 별 다른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지낸다. 어느날 그는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집에서 기르는 양몰이 개를 중국인 개장수에게 팔아 넘긴다. 노인은 13년 동안 가족같이 지내온 개를 팔아넘긴 아들 녀석이 괘씸하기 짝이 없다. 돈을 주고 개를 다시 찾아오려 하지만, 개장수는 돌려주지 못하겠다며 완강히 버틴다. 하는 수 없이 공안(우리나라의 경찰에 해당)인 사위를 앞세워 겨우 돌려 받는다. 다른 개장수가 노인에게 개를 팔아 넘길 것을 권유하지만 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던 와중에 개를 훔치려는 도둑이 들기도 한다. 노인은 개를 산에다 풀어주지만, 개는 그 중국인 개장수에게 다시 붙잡힌 신세가 된다. 그걸 알게된 아들은 개장수와 시비가 붙어 유치장에 갇힌다. 노인은 다시 찾은 개를 평온히 키울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아주 단순한 서사와 롱테이크를 주로 하는 간명한 촬영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내가 느낀 것은 그렇다. 롱테이크는 이제 정말 한물 갔다는 것. 진짜 촌스럽다. 그렇다고 감독 페마 체덴이 영화를 어설프게 배워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그는 당시 티베트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에 그런 영화적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 언어는 낡은 것이며, 그야말로 후졌다. 아마도 서구의 비평가들에게는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는 그런 모습들이 자신들의 과거 영화를 연상케하는 향수를 가져다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느리게 흘러가는 인물들의 시간, 고요한 평원의 풍경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 문명과 대비되는 지점이 있기도 하다.


  그렇게 영화 형식적인 측면에서 'Old Dog'은 별로 참신하다거나 칭찬받을만한 요소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끝내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페마 체덴이 엮어나가는 서사에는 티베트의 현실에 대한 여러 은유들이 다양하게 내포되어 있다. 영화에서 노인은 개장수들로부터 늙은 개를 팔아넘기라는 요구를 끈질기게 받는다. 티베트 양몰이 개는 중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애완견이 되어서 꽤나 큰 돈벌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노인의 아들 곤포는 덜덜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를 누비는데, 비포장 흙길은 양과 염소, 트럭과 자동차, 오토바이가 서로 엉켜서 다닌다. 곳곳에는 신축 중인 건물들이 보인다. 건축 자재를 싣고 달리는 덤프트럭은 티벳에 불고 있는 개발의 바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흙바람 부는 공간을 채우는 것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불경 소리다. 가난하지만 영적이고 소박한 삶을 살았던 티베트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다.


  페마 체덴은 자신의 고향에 닥친 거대한 흐름을 비관적으로 응시한다. 노인은 아들 내외가 결혼한지 3년이 되었는데도 아이가 없자 걱정을 한다. 그래서 아들에게 며느리와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게 한다.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사는 아들, 그 아들이 하루종일 보는 TV에서는 중국 방송이 나온다. 술만 마시면 주정도 심하게 한다. 꿈도 희망도 없는 삶. 노인은 아들로부터 며느리가 불임이 아니라는 희소식을 듣지만, 이 가족이 이어갈 세대의 모습은 불투명하게 보인다. 'Old Dog'이 조심스럽게 펼쳐서 보여주는 티베트의 미래는 그런 것이다.


  티베트에서 급속도로 진행된 개발과 중국 중앙 정부의 영향력을 내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EBS의 '세계 테마 기행'과 같은 프로와 여러 여행 다큐들에서였다. 티베트인들의 삶의 방식은 이전에 비해 많이 현대화되었고, 그것은 그들의 집과 옷차림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그들은 일상에서 티베트어가 아닌 중국어를 쓰고 있었다. 언젠가 티베트에서 탱화를 제작하는 장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그리는 탱화를 중국인들이 얼마나 비싼 가격에 사가는가를 설명하면서 대단한 자부심을 보였다. 어쩌면 티베트인들은 과거에 그들이 제일로 추구했던 영적 가치를 물질과 맞바꾸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불모(不毛)의 미래. 노인은 집요하고 끈질긴 개장수와 개도둑이 앞으로도 자신의 근심거리로 남아있을 것임을 잘 안다. 그에게 삶 그 자체나 다름없는 양떼와 그것을 지키는 소중한 늙은 개는 더이상 평화롭게 살 수 없다. 마침내 그는 개의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의 보잘 것 없는 서사, 진부하기 짝이 없는 롱테이크,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페마 체덴은 자신이 태어난 곳과 그곳 사람들이 처한 순탄치 않은 미래를 그렇게 짧지만, 통렬한 영화적 수사로 보여준다.



*사진 출처: filmex.jp


 

*내일은 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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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사고였어. 내가 무서워서 실수로 널 때렸단다."


  늙은 남자는 실수로 오리를 다치게 만든 손주에게 오리에게 할 말을 일러준다. 어린 오리 새끼는 다리를 절며 돌아다닌다. 만약 그 대상이 오리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 남자는 젊은 시절 준군사 조직의 행동 대장으로 자신의 기억으로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사람이다. 그야말로 '학살자'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다. 안와르 콩고(Anwar Congo), 이것이 그의 이름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2012년 다큐 'The Act of Killing'은 금세기에 가장 덜 알려진 어떤 학살의 기억을 복구해 나간다.


  이 다큐는 무려 2시간 40분에 이르는 러닝 타임을 갖고 있다(감독판). 나는 긴 시간 때문에도 그랬지만, 다큐가 다루는 그 무거운 이야기 때문에 거의 7년의 시간을 그냥 안보고 있었다. 어떤 실제적인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보는 이의 진을 다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이 작품도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 다큐를 보려는 이들은 되도록이면 빈속에 보아야 하며, 무언가 먹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다. 욕지기와 함께 내내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에 가장 덜 알려진 학살 사건. 1965년과 6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 사건이었다. 1965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를 쿠데타로 몰아낸 수하르토는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다.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서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범죄 행위들이 자행되었고, 그 결과 목숨을 잃은 피해자만 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무고한 양민들과 중국인이었으며 그 학살을 실질적으로 수행한 준군사 조직 판카실라는 공식적으로 그 어떤 조사나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판카실라는 유력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온갖 더러운 사업과 범죄에 연관되어 있다.


  다큐의 초반부에 안와르 콩고와 그의 수하였던 아디가 아주 유쾌하게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떠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가장 쉽고 편하게 죽이는 방법을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고 배웠다는 이야기부터, 자신이 철사로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도 웃으면서 재연한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양심의 거리낌도 없어 보인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안와르와 아디에게 그들의 과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그들은 흔쾌히 승락했다. 다큐의 제목 'The Act of Killing(인도네시아어 제목 Jagal: 도살자)'는 그렇게 만들어 졌다.


  안와르와 아디는 그 학살에 동참했던 과거의 동료들을 불러 모아 재회한다. 그들에게 학살의 기억은 끔찍하고 참혹한 것이 아니라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이야깃거리다. 당시에 영화관을 끼고 암표장사를 하던 그들은 사업을 소유한 중국인들이 미국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게 하자 앙심을 품었다. 마침 수하르토의 쿠데타가 터졌고, 그들은 돈과 권력을 위해 거리낌없이 학살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대적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범죄는 인생의 새로운 발판이 되어서 지역 유지, 사업가, 정치가가 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모두 숨죽이며 입을 틀어막고 살아야 했다.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영화로 만든다는 사실에 신나고 들뜬 그들은 의상이며 소품을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기도 하고, 보조 출연을 할 동네 주민들도 모집하러 다닌다. 그 주민들 가운데에는 그들에 의해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학살자와 피해자들은 함께 영화를 촬영한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 그들의 촬영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뭔가 불안스러운 흔들림과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숲 속에서 이루어진 방화와 살인, 강간의 촬영 장면에서 안와르의 표정은 어둡고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단지 짧은 재연 장면이었음에도 촬영에 참가한 동네의 중년 부인은 넋이 나가 버린다. 촬영이 끝나고도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서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학살자 아디의 딸도 있다.


  "솔직히 후회되는데, 이 장면이 이렇게 끔찍할 줄 몰랐어요. 친구들은 나에게 더 가학적으로 해야한다고 하는데, 저 여자애들과 어린애들을 보니까... 평생 우리를 저주하지 않겠어요?"


  안와르는 그렇게 학살의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 나간다. 자신이 행한 고문과 온갖 살인의 방법들을 재현하는 그의 얼굴은 고통과 공포, 회한으로 일그러진다. 다큐의 마지막에 그는 자신과 조직원들이 사람을 죽인 건물의 옥상을 둘러 보며 구토를 참지 못한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그곳을 나와 계단으로 내려가는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학살자의 내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끔찍한 범죄의 과거는 지나갔으며, 그가 그곳을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학살자 안와르 콩고는 2019년 10월 25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자신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다큐 이후에도 지역의 여러 범죄 사업에 연루된 삶을 살았다. 


  "글쎄, 안와르와 나 사이의 유대감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정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다만 난 그가 좀 마음에 걸려요."(theguardian.com과의 2013년 6월 20일 인터뷰)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다큐 제작 이후로도 안와르와 지속적으로 연락했다. 오펜하이머가 안와르와 맺은 인간적 관계와 어떤 신뢰가 없었다면 이 다큐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안와르는 감독을 '조슈아'라고 친구처럼 부르며, 아주 가감없이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


  'The Act of Killing'을 통해 관객은 학살자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학살자들이 스스로 배우가 되어 자신의 범죄를 '재연'하는 이 기이하고 낯선 방법은 어떤 면에서는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한편으로는 이 다큐가 부각시킨 역사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은 가해자들의 입장만을 다룬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2014년에 '침묵의 시선(Senyap, The Look of Silence)'를 만든다. '침묵'이라는 뜻의 인도네시아어 제목의 다큐 'Senyap'은 아버지를 학살로 잃은 아들이 가해자들을 만나는 여정을 담아냈다. 나는 아마도 그 다큐를 보기까지 꽤 오랫동안 망설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통스럽고 괴로운 감정에 휩싸이게 만드는 영화를 보는 이들은 누구나 그것을 삭혀내기까지 나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진 출처: documenta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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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미스미 켄지 감독의 '검(劍, 1964)' 리뷰를 쓰면서 '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생각이 났다. '검'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문학을 좋아하고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 가진 작품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극우적인 가치관과 생의 마지막에 택한 끔찍한 죽음의 방식은 이 작가를 언급할 때 어떤 면에서는 흠칫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전집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초기작인 '가면의 고백'과 '금각사', '파도 소리' 정도가 번역되었다. 민음사에서 미번역된 미시마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폴 슈레이더의 '미시마-그의 인생(Mishima: A Life in Four Chapters, 1985)'은 4개의 장으로 나누어 미시마 유키오의 생애를 조망한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된 사건은 역시 '미시마 사건'으로 알려진 자위대 점거 할복 자살 사건이다. 영화를 4부분으로 분할한 것은 사실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일부분을 영화적으로 재연해서 보여주는데, '금각사', '교코의 집', '달리는 말'이 나온다. 젊은 청춘 4명의 욕망의 행로를 그린 '교코의 집'과 극우적 사상이 드러난 '달리는 말'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다. 이시오카 에이코가 맡은 미술 세트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면서도 매우 화려한 색감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음악은 그 유명한 현대 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맡았다. 폴 슈레이더는 그렇게 관객의 눈과 귀를 장악해나가면서도 본질인 미시마의 생애를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이 논란 그 자체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 이 영화가 가져올 파장을 최소화하고 싶어한 것처럼 보인다.    


  '미시마-그의 인생'이 보여준 영화적 성취와 객관성은 찬사받을 만하다. 각본은 감독 폴 슈레이더와 그의 동생 레너드가 맡았는데, 레너드는 오랜 일본 생활을 통해 나름의 현지 정서에 익숙했다. 또한 그의 부인 치에코는 영어 대본을 일본어로 옮기는 작업을 맡음으로써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제작비를 마련해준 미국 제작자들(코폴라와 루카스)과 미국인 감독, 일본어로 연기하는 일본 배우들, 일본인 세트 디자이너, 일본 현지 촬영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조합은 놀라운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폴 슈레이더에게 이 작품은 자신이 각본을 쓴 '성난 황소(1980)'와 더불어 말 그대로 인생작으로 남았다. 뭔가 그가 가진 재능의 총합을 다 보여준 느낌이다. 


  미시마 역을 맡은 오가타 켄의 연기도 아주 좋다. 원래 그 역은 다카쿠라 켄에게 제안이 갔지만, 그는 극우파의 위협에 출연을 고사했다.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 일본에서 상영된 적이 없는데, 그 배경에는 미시마의 유족과 극우파의 반대가 자리하고 있다. 극우파는 자신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미시마를 동성애자로 그렸다는 점을 참을 수 없어한다. 어쨌든 폴 슈레이더는 지뢰 피해가듯 조심스러우면서도 절제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이 논란덩어리 인물을 영화적으로 부활시킨다.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슈레이더는 왜 미시마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 시작은 감독 자신의 개인적 관심에서였을 것이다. 사실, 미시마 유키오란 인물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의문과 궁금증을 남긴다. 그가 쓴 소설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그 정치적 변신의 여정과 함께 끔찍하고 참혹한,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죽음까지 모든 것이 그렇다. 나는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릴 때면 어떤 '괴물'의 형상을 상상해 보곤 한다. 어떻게 그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인 글을 써내려갔던 작가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추한 모습의 괴물로 변해버린 것일까?


  괴물을 대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피해서 도망가든가, 아니면 괴물의 주위를 맴돌면서 괴물과 직면할 방법을 찾아보든가. 괴물과 마주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대적하기로 결심한 이들은 괴물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에게 그 모험과 도전은 가치있다. 괴물의 실체를 알아낸다면 그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괴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괴물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폴 슈레이더는 관객에게 괴물의 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은 그 커다랗고 컴컴한 입구에서 뛰어난 재능의 작가와 그가 쓴 작품, 그의 시대를 조심스럽게 가늠해 본다. 어쩌면 이 탐험은 이제 시작이며, 슈레이더처럼 누군가는 자신만의 영화적 방법으로 그 여정의 기록을 남길지도 모르겠다.



*리뷰를 쓰고 나서 미시마 유키오와 관련된 자료를 다시 찾아 보니,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11・25 자결의 날, 미시마 유키오와 젊은이들(2012)'를 남겼다. 극영화로 미시마 유키오의 생의 후반기 5년의 여정을 담은 영화라고 한다.  

**사진 출처: film-gr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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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건 우리는 상하이에서 왔다는 것과 우리 애들도 상하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야."


  칭홍()의 아버지는 '상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에게는 이 시골 촌구석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래 살던 곳인 상하이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아버지 '우'는 아내의 분별력 없는 판단 때문에 상하이를 떠나서 십수 년 동안 시골에 처박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가족이 상하이에서 그곳 꾸이양에 오게 된 것은 칭홍의 엄마 탓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문화혁명 시기 마오쩌둥이 추진했던 삼선건설(三線建設)이 있었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의 침략에 대비해 연안 지역(일선과 이선지역)의 주요 산업시설을 서북부 지역(삼선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새롭게 공업 단지를 건설하는 정책이었다. 그에 따라 연안 대도시의 주민들은 강제적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왕 샤오슈아이의 2005년작 '청홍'은 그 삼선정책으로 뿌리 뽑힌 삶을 살아야 했던 일가족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왕 샤오슈아이는 이 영화를 자신의 부모와 삼선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바친다고 썼다. 강제적으로 시행된 당의 정책은 일반 민중들의 삶에 고통스러운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고서야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원거주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칭홍의 아버지에게 그 기다림의 시간은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안겨준다. 어떻게든 자신의 아이들은 그 깡촌 시골에서 벗어나 상하이로 가게 해야한다는 일념으로 그는 칭홍과 어린 아들을 엄격하게 훈육하고 다그친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칭홍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둘도 없는 친구 찐찐, 그리고 남자친구 홍껀이 있는 그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그곳 출신의 홍껀이 칭홍의 아버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칭홍의 뒤를 늘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가 하면, 홍껀에게는 칭홍은 언젠가 상하이로 돌아가야 하니까 네가 알아서 마음 접으라며 구슬리기도 한다. 아버지의 바램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칭홍은 홍껀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홍껀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그 일은 예기치 못한 비극을 불러온다.


  영화의 초반부, 홍껀은 빨간 구두를 칭홍에게 선물한다. 구두는 예쁘지만, 시골의 돌길을 걷는 칭홍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친구 찐찐은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지만, 칭홍은 그 구두를 다시는 신지 못한다. 그걸 본 아버지가 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시골의 흙바닥 돌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 빨간 구두는 마치 칭홍의 꿈과 소망 같다. 홍껀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홍껀은 구두를 다시 주워왔다며 돌려주지만, 구두는 결국 더렵혀지고 버려진다. 칭홍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린다. 


  영화 속에서 칭홍은 붉은 색 스웨터와 재킷, 파란 색 바지와 같이 자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색의 옷을 입고 나온다. 칭홍을 연기한 고원원의 하얀 얼굴은 옷의 색감을 더 부각시킨다. 극도의 고통과 상처의 기억을 안고 상하이로 쫓기듯이 떠나는 새벽의 차 안에서 칭홍이 두른 머플러의 색도 붉은 색이다.


  왕 샤오슈아이는 뿌리 뽑힌 삶을 살아야 했던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현대사의 그늘을 들여다 본다. 가족의 삶에 드리운 회한과 고통의 상처는 쉽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쩌면 평생을 두고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청홍'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왕 샤오슈아이에게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외적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역시 6세대 영화 감독 지아장커도 2004년작 '세계(界)'로 토론토 영화제 수상을 비롯해 인정을 받았지만, 그 영화 역시 중국 내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실질적인 흥행 수익을 내지 못하는 현실은 포스트 6세대 영화 감독들을 각성시켰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업성 있는 영화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에서 기존의 영화 감독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어떤 면에서는 작품성을 희생시키고 상업성과 영합하는 댓가로 영화들이 조금씩 망가져가는 과정을 2010년 이후의 6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 발견한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중국 작가주의 감독들의 좋은 영화들은 점점 더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중국의 팽창하는 영화 산업을 지배하게 된 현실에서 과연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청홍'을 보며 느꼈던 슬픔의 정서는 단지 영화 속 청홍에게 닥친 돌이킬 수 없는 비극과 그 가족의 고통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이런 괜찮은 영화들,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지난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아낸 중국 영화들을 이제는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청홍'이 다룬 뿌리 뽑힌 이들의 슬픔은 6세대 감독들이 마주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예술성이라는 자신들의 뿌리를 점차적으로 잘라내고 '자본'이라는 새로운 거주지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그들. 영화 마지막에 상하이로 향하는 가족을 태운 차가 길고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가는 모습처럼 6세대 감독들도 이 시대를 힘겹게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cn-hanx-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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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이해'는 영화 공부를 시작하던 첫해에 들었던 과목이었다.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들, 예를 들면 쇼트와 시퀀스, 영화에서의 방향성, 뭐 그런 것들. 방향성을 배울 때 예시로 나왔던 영화는 신상옥 감독의 '벙어리 삼룡이(1964)'였다. 삼룡이 역을 맡은 김진규가 집 마당에서 바깥으로 내달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쇼트가 바뀌어도 그 달리는 방향이 일관성이 있어야 관객은 안정감을 느낀다는 내용. 그 밖에 많은 유명 영화들이 수업의 교재가 되었다. 때론 뮤직 비디오도 나왔다. 그 가운데 어떤 가수가 나온 장면이 있었다. 키가 꽤 큰 남자 가수가 자신의 체구보다 훨씬 큰 흰색 양복을 입고, 고개를 비둘기처럼 까딱까딱 앞뒤로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를 비롯해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 가수의 노래며 퍼포먼스는 기이하고, 좀 웃기기도 하고 그렇게 보였었다. 그 지직거리는 화면 속에 나온 밴드의 이름이 'Talking Heads'라고 나중에 교수가 알려줬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조나단 드미의 다큐 'Stop Making Sense(1984)'를 보고 나서야, 그 수업 시간에 봤던 장면이 이 다큐의 도입부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영화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우연히 다시 만나기도 한다. 이 다큐는 토킹 헤즈가 1983년 12월에 Hollywood Phantages Theater에서 3일간 공연한 장면을 편집한 것이다. 다큐의 제목 'Stop Making Sense'는 그들의 앨범 'Speaking In Tongues' 수록곡인 'Girlfriend Is Better'에 나오는가사다. 공연은 리드 보컬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의 열창과 놀라운 퍼포먼스, 그리고 밴드 구성원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흥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나처럼 토킹 헤즈에 대해 말그대로 '1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흥겹다. 대중성과 전위적 혁명성, 그 두 세계 사이의 어드메에 위치하고 있는 그들의 음악은 기괴하면서도 놀랍다.


  1시간 반 가량에 이르는 이 다큐를 보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와 사람들에 대해서 뭐라고 써야 하나? 그럴 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냥 파보는 수 밖에. 토킹 헤즈 밴드의 역사, 멤버 구성원들, 특히 데이비드 번은 어떤 인물인지도 자료를 찾아 본다. 다큐에서 첫곡 'Psycho Killer'를 부를 때 딱 알아봤지만, 역시 이 양반도 그냥 보통 사람은 아니다.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희곡도 쓰고, 영화음악도 만들고, 뭐 무슨 공연에서 연기도 하고 아무튼 예술적 감성 충만한 삶을 살아낸 이였다. 독특한 자기 초상 사진을 찍은 사진 작가 신디 셔먼하고 한때 연인 사이로 지내기도 했고.


  그런데 사실 'Stop Making Sense'를 보면서 내 눈길을 끌었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기타를 들고 춤도 추고, 노래(두번째 곡 'Heaven')도 부르며 건반도 연주하는 여성 베이시스트 티나 웨이마우스(Tina Weymouth)였다. 예쁘장한 외모의 여성 뮤지션이 넘치지 않는 절제된 감성으로 밴드 멤버들과 어울려 멋진 공연을 펼치는 것을 보며 궁금증이 일었다. 데이비드 번과 연인 사이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더랬다. 그런데 티나의 연인이 밴드에 있기는 했다. 드럼을 맡은 크리스 프란츠. 그 두 사람은 이미 1977년에 결혼한 사이였다.


  그 당시에도 인기있는 여성 가수들이 있었지만,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보였던 록 밴드에서 여성 멤버는 좀 더 눈에 띄고 독특하게 보였다. 다큐는 어떤 면에서 데이비드 번의 원맨쇼인 것도 사실이다. 실질적으로는 토킹 헤즈가 그 자신이고, 데이비드 번이 토킹 헤즈이기도 하니까. 그는 밴드의 중심이었고 그가 다른 분야의 창작 활동으로 외도하는 동안 밴드는 정체기에 들어갔다. 결국 그렇게 쌓인 멤버들의 불만으로 밴드는 1991년,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토킹 헤즈가 해체된 이후에도 티나는 남편과 함께 자신의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뭐랄까, 지금의 여성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선배의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 그런 인상을 받았다.


  티나 웨이마우스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2017년 9월에 'Paper(papermag.com)'매체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여성 뮤지션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나름의 회고가 실려있었다. 자신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토킹 헤즈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밴드 초창기에 데이비드 번이 베이시스트를 2년 동안 구하지 못해서 고생했는데, 보다못한 티나가 직접 기타를 사서 독학을 했었다고 했다. 그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펑크의 정신을 실현했다고 자평했다. 밴드가 유명해지기 이전, 이런저런 고생을 할 때 티나에게는 일종의 살림꾼 역할까지 맡겨졌다. 로드 매니저처럼 밴드 일정 관리하고 멤버들 다독이며 그렇게 지냈던 것이다.


  그렇게 밴드에 투신했음에도 리더였던 데이비드 번은 티나를 박하게 대했다. 티나는 밴드의 일원이 되기 위해 번에게 3번이나 오디션을 봐야했는데, 그것은 다른 멤버들은 하지 않는 일이었다. '이 바닥은 여자에게 험한 세계이므로, 여성의 역할이 대단할 필요는 없다'고 그는 티나에게 말했다. 그런 데이비드는 뭔가 일이 안풀릴 때마다 티나에게 성질도 꽤나 부렸던 모양이다. 자신의 부인이 그런 대접을 받아도 남편 크리스에게 별 뾰족한 수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데이비드 번이 밴드 얼굴이나 마찬가지인데 뭐 어쩌겠는가. 티나는 그 모든 것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버텼다. 그러나 세상은 티나를 뛰어난 뮤지션이 아니라 토킹 헤즈의 부속품처럼 바라봤다. 티나가 했던 언론 인터뷰의 대부분은 데이비드 번에 대한 질문이었고, 자신은 그때마다 아주 잘 대답해주었다고 했다. 어쨌든 자신은 '여성'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음악과 '뮤지션'으로 인정받길 원했다고 인터뷰 말미에 덧붙였다. 티나는 토킹 헤즈의 멤버로 2002년에 락 음악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티나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 내가 봤던 'Stop Making Sense'를 떠올려 보니, 뭔가 다르게 보였다. 그 공연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어떤 무언가가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이 다큐의 관객들은 리더 데이비드 번이 보여주는 독창적인 음악 세계와 무대 매너에 매혹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공연은 전적으로 그만의 것은 아니다. 밴드 구성원들과 서브보컬을 맡은 두 명의 여성 흑인 멤버들 모두 하나가 되어 열정적인 공연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관객들을 빼놓을 수가 없다.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이었음에도 관객들이 무척 점잖다고 해야할지 매너가 무척 좋았다. 흥겨워서 객석에서 추는 춤도 너무 얌전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심한 괴성을 지르거나 뭘 내던지고 그러지도 않았다(마지막 부분에 손수건인지 뭔가가 날아다니기는 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꼬마 관객도 있었던 점인데, 꼬마가 흰색 유니콘 인형 들고 신나서 흔드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이 공연은 모든 것이 마치 중용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군가 이 공연을 보고 쓴 짧은 댓글이 기억난다.


  "데이비드 번은 방금 정신 병동에서 탈출한 것 같은 모습인데, 매우 침착하게 행동한다."


  진짜 그랬다. 마치 영혼 가출한듯이 노래 부르고 춤도 추는데, 데이비드 번은 아주 절제된 무대 매너를 보여준다. 조나단 드미는 그 공연 현장의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꽉꽉 눌러 담았다. 특히 이 다큐는 편집이 무척이나 빼어나서, 도무지 뭘 이어붙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신기에 가깝다. 


  토킹 헤즈 팬이야 이 다큐는 두고두고 돌려보는 것이겠지만, 이런 음악에 문외한인 관객들에게도 'Stop Making Sense'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내게는 이 다큐에 나온 여성 뮤지션 티나 웨이마우스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나는 것은 그렇게 가려진, 잘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burningthecelluloid.com(뒷 부분에 보이는 인물이 티나 웨이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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