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존 휴즈 지음, 연진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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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배웠던 중학교 교과서에는 중국의 문인 주자청의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이 실려있었다. 무척 담담하고 소박한 필치로 쓰여진 그 짧은 수필은 매번 읽을 때마다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아버지의 속 깊은 잔잔한 사랑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글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저자 존 휴즈가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반추하며,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된 아버지의 노년기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오직 펜만을 사용해서 단순하고 솔직한 그림체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펜의 질감과 흑백이 두드러지는 저자의 그림체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단번에 끌어들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아트 슈피겔만의 그림책 "쥐"와 비슷한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대립,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이해의 노력들이 두 책에 공통적으로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 된 아버지의 이전과는 달라진 변덕스러운 모습에 때론 화도 내고 연민과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에게 혹 그 병이 유전되지나 않을까 근심하는 모습도 보인다. 함께 산책을 나간 어느날 아버지가 바지에 실례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차라리 저렇게 사느니 돌아가시는 것이 낫지 않은가 하고 한탄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무너지고 약해지는 모습은 자식에게는 가슴아프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터이다. 결국, 아버지를 더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 보내야했던 저자의 안타까움과 슬픔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자식들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무척이나 든든하고 넓게 보여서 세상의 그 무엇도 다 막아낼 것 같은 아버지의 등은 이제는 많이 굽고 내려앉아 있다. 단지 세월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이런저런 걱정과 짐들로 당신의 쓸쓸한 뒷모습을 만든 것은 아닌지 가슴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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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o Sasaki - Stars & Wave - 재발매
Isao Sasaki 연주 / 엔티움 (구 만월당)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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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처럼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나 기분이 바닥으로 축 처지는 느낌이 들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이럴 때 바다를 보면 가슴이 확 트일텐데..."

  별과 파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음반에서 이사오 사사키는 그런 사람들의 희망을 들어주는 음악 배달부가 되기를 자처한다. 맑게 울리는 그의 피아노 소리 뿐만 아니라 이 음반에는 바람과 파도 소리도 함께 들어있어서 듣다보면 별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저녁 바닷가의 흰모래사장에 앉아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내가 이제까지 가본 바닷가는 사사키가 들려주는 음악 속 그 장소와는 좀 멀었던 것 같다. 파도와 바람 소리가 듣고 싶어서 찾아간 바닷가에서 만난 것은 무수히 많은 횟집과 여기저기 건조를 위해 널어놓은 오징어와 생선들, 고운 눈 같은 모래가 아닌 푹푹 빠지는 젖은 모래 사장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곳이 현실의 바닷가와 더 많이 맞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엔 그런 바닷가와는 다른 곳이 있음을 사사키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알려준다. 이 음반에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또한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마음 속에 이미 있다는 희망이 살포시 접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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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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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누군가와 만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분이 물었다. 그 일을 목숨을 걸고 할 수 있겠느냐고, 그 일을 할 때마다 매 순간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목숨"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져서였을까, 새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어하는 일이 과연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추구해야할 가치인지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목숨까지 내놓고 열정적으로 매달려야할 일이 있다면 그 일은 아마도 한 사람의 생애를 바꿔놓을 것이며 그것이 가치있는 일이라면 그 위대함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전이 기술하는 체의 삶을 읽어내려 가노라면 한 인간이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것, 말 그대로 목숨까지 내어놓고 걸어간 좁고 험한 길이 떠오른다. 한번쯤 한눈을 팔 수도 있으련만, 또는 더 편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을 법한데도 그는 오로지 자신이 가야할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갔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는 길을 걸어갔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의 방법론은 지금의 시대와 사람들에게 통용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의 삶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잊혀지지 않고 남는 것은 그가 택했던 방법론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유와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는 세상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지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던져버렸다"는 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분명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과 열정의 최대치를 살다간 사람이다.

  두눈을 뜨고 최후를 맞은 체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목숨을 걸고 스스로가 꿈꾸고 바라는 것을 위해 살 수 있겠느냐고. 오직 하나의 것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삶을 택하겠느냐고... 평생을 두고 추구해야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목숨을 걸고 해내야할 일일 것이다. 체 게바라는 그 삶의 가능성과 위대함을 직접 보여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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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
서덱 헤더야트 지음, 김영연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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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면"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어릴적 누군가 해준 설명이 생각난다. 그는 손을 예를 들어 말했는데 표면을 손등이라고 한다면 이면은 손바닥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주먹을 쥐어버리면 펴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손안의 것들... 숨겨진 장소, 무언가 감추고 있어서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사람의 삶에서도 그러한 이면이 존재할까? 분명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보여주고 싶지 않는 여러 모습들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리 자신을 드러낼 때,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

  서덱 헤더야트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것들과 미처 다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는 삶의 이면을 촘촘한 그물망과도 같은 글로써 잡아낸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는 이란의 작가가 보여주는 진실의 모습은 때론 서글프고 쓸쓸할 뿐만 아니라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오롯이 한 여인만을 사모했던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채 죽는데 그가 남긴 구관조만이 남자의 사랑을 때늦게 여인에게 전하고(더그 위콜), 남편이 죽은 후 재산 다툼을 벌이던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무덤에서 깨어나 돌아오자 혼비백산한다(살아있는 사자). 동생에게 경쟁의식을 가졌던 언니는 동생이 먼저 결혼하자 질투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가 하면(언니), 사랑이라 믿고 결혼한 처녀는 바람둥이 남편에게 아이와 함께 버림받은 후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남편을 잃은 여인).

  이 책에 나오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삶의 이면이 보여주는 차갑고도 쓸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란 특유의 토속적인 등장 인물들과 배경은 때론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글에는 희미하게나마 독이 스며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작가로서 이란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자신의 내면 세계와 현실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창 나이에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다. 한쪽 면만을 바라보면 다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쓸쓸한 생의 이면을 응시하던 작가가 남긴 글에서는 그래서 더욱 외로움과 슬픔이 묻어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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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성자들 -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여섯 외국인 성자 이야기
김나미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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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영화 한편에 따라붙는 광고가 참으로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잘 알려진 흥행 대작 영화의 경우에는 광고 시간이 마치 영화의 일부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십분을 넘는 때가 허다하다. 그 많은 광고들이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 단순한지, 이것 좀 먹어보세요, 사보세요, 입어보세요, 이곳에서 살아보세요 같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런 광고들을 보고 나면 더 좋은 것을 먹고, 입고, 걸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에 진정한 충만함과 기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러한 채움을 위해 맹렬히 달려가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다. 절대자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의 생애와 가진 전부를 충족이 아닌 결핍과 가난의 구덩이 속에 말 그대로 던져버린 이들이다. 철거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울고 웃으며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기도 하고, 그 누구도 가까이 가길 꺼리는 에이즈 환자의 곁을 지키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약손 같은 삶을 살기도 하고, 우리 나라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로 봉헌하는 삶을 사는 분도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종교인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그 점이 처음에는 신기함과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진정한 사랑과 평화와 이해와 나눔에 있어서는 그 어떤 경계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진정한 삶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마음에 남는 귀절은 그것이다. 저자가 수녀님께 예쁜 것을 보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수녀님은 다음과 같은 답을 하셨다.

  "예쁜 것을 보면 저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 대답에는 더 좋은 것, 고운 것, 예쁜 것을 보면서 꼭 가져야겠다고, 가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소유의 욕망으로 이끄는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는 수녀님의 삶의 비결이 드러나 있다.

  비록 책 속 성자들의 무소유와 희생과 봉헌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내 안에 있는 더 갖고자 하는 욕심, 남들 보다 나아보이기를 소망하는 허영을 응시하고 덜어내고자 노력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기쁘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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